회사에 위기 의식을 전파하다.


이와타 사토루가 사장이 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HAL 연구소에서 처럼 직원들과의 면담이었다.  야마우치 히로시의 경우 50년을 넘게 사장을 하면서 많은 성공을 이뤄냈기 때문에 그의 말 한 마디가 직원들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와타 사토루는 상황이 달랐다. 물론 야마우치 히로시가 그를 직접 사장으로 임명했지만 그렇다고  처음부터 직원들에게 권위를 인정받기는 힘들었다. 오히려 수십년간 닌텐도를 다녔던 직원들에게 하청업체의 사장이었던 이와타 사토루는 낙하산과 같은 존재로 비춰질 수도 있었다. 이와타 사토루 역시 이점을 잘 알고 있었고 면담을 통해서 직원들에게 한발 짝 더 다가가려고 했다.  그는 우선 회사내에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최종적으로 직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합치기 위해 동분서주하였다. 


HAL 연구소의 직원이 가장 많을 때가 80~90명이었던데 비해서 닌텐도의 경우 교토에 있는 본사 직원만  1200명이 넘었기 때문에 과거처럼 전직원을 상대로 면접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전체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돌렸다. 현재 닌텐도의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 앙케이트 형식의 이메일을 보내면서 꼭 답장을 달라고 부탁하였다. 사실 처음 직원들은 이와타 사토루가 답장메일을 읽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와타 사토루는 일일이 메일을 다 읽고서  면담을 본격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직원들 사이에서는 꽤 화제가 되었다.


HAL연구소와 닌텐도는 상황이 달랐기 때문에 이와타 사토루가 묻는 주제도 역시 바뀌었다. HAL연구소에서는 당신은 지금 행복합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됐지만 닌텐도에서는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하고 왜 닌텐도에 들어왔는지 그리고 무엇을 할 때 즐겁고 무엇을 할 때 괴로운지등 개인신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물어봤다. 아무래도 HAL연구소는 직원도 적었고 오랜시간 함께해서 개인사등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닌텐도는 고작 2년을 다니고 사장이 됐고 무엇보다 사원숫자도 많았기 때문에 직원들을 좀더 자세하게 파악 하면서 교감을 나눠야 했다.


면담에서 이와타 사토루가 중점을 둔 것은 위기의식이었다.  10년 이상 회사를 다닌 베테랑 직원들 중에는 패미컴과 슈퍼패미컴으로 닌텐도가 전성기를 보내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과거의 화려했던 영광에 사로잡혀서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와타 사토루는 위기의식이 패배의식으로 빠지지 않도록 주의했다.  그래서 이와타 사토루는 닌텐도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개혁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닌텐도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성실한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그것을 부정하면 사람들의 반발만 산다. 이와타 사토루는 직원들에과거 닌텐도는 엄청난 업적을 달성했고 과거의 방식은  옳았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다만 시대가 뀌었으니 닌텐도 역시 변해야 함을 강조했다. 닌텐도가 스스로 변하지 않아서 천천히 죽어갈것인지 아니면 변화를 통해서 미래에 닌텐도가 만든 것으로 고객을 행복하게 해줄것인지를 선택할 순간할 순간임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이와타 사토루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직원들은 한번 듣고서 변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상대가 알아들을 동안 반복해서 이야기해야함을 알게 되었다. 


회사내의 위기 의식은 게임큐브가 사실상 실패하면서 더욱 커져갔다. 게임큐브는 이와타 사토루가 사장이 되기 전인 2001년 9월 발매되었지만 원래 게임 큐브 개발의 총책임자가 바로 이와타 사토루였다.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에 온 이유가 바로 게임큐브 개발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야마우치 히로시가 이와타 사토루에게 후임자리를 2002년 6월에 맡긴것도 차세대 게임기전쟁에서 제대로 경쟁을 해보라는 의미였다.  원래 게임 큐브는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로 회사를 옮겨온 후 내놓은 첫번째 결과물이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게임큐브는 훌륭한 게임기였다. 닌텐도의 소프트웨어 개발팀은 게임 큐브 성능이 그들의 전세대기인 닌텐도 64보다 10배의 CPU 처리속도와 100배의 그래픽 속도를 요구했다. 이와타 사토루는 실효성능을 기준으로 소프트웨어팀의 요청을 달성했다.  특히 완성된 게임큐브는 다른 게임 업체보다도 확연하게 작았는데 이와타 사토루는 완성된 기판의 크기를 보고 성공을 장담할 정도였다.  또한 천재프로그래머인 이와타 사토루의 작품답게 게임 개발 도구부분도 혁신적이었서 게임큐브는 개발자들로부터 가장 개발하기 쉬운 게임기라는 호평을 들었다.


하지만 닌텐도 내부와 개발자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게임큐브의 판매는 다른 경쟁업체에비해서 부진했다. (2008년기준으로 플레이스테이션2 1억 3천 6백만대, XBOX 2400만대, 게임 큐브 2174만대가 판매되었다.) 특히 2003년에는 판매량 부진으로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 게임큐브 생산을 일시 중단하는 굴욕을 당하기 까지 했다.  그런데 게임 업계에는 한가지 속설이 있다. 게임기 시장에서 점유율 3위 이하로 떨어진 업체는 하드웨어부분을 철수한다는 것이다.  이는 시장 점유율에서  3위로 떨어진 NEC, 마츠시타, 세가등의 회사들이 하드웨어를 포기했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세가의 경우 90년대 초반만해도 메가드라이브로 미국에서 닌텐도를 제칠 정도로 돌풍을 불러 일으켰으나 드림캐스트가 실패하자 게임 소프트웨어 전문업체로 거듭났다. 많은 전문가들은 닌텐도 역시 세가와 같은 운명을 걸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게임큐브의 시장 점유율이 떨어질때마다 닌텐도에 대한 극단적인 기사도 함께 나왔다. 2003년 타임지는 닌텐도가 더 이상 게임산업의 멤버가 아니라면서 게임오버를 선언하기 까지 하였다. 이러한 부진속에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보유한 업체중에 하나인 마이크로소프트가 닌텐도를 인수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닌텐도로부터 오는 전화는 언제든지 환영한다면서 서슴없이 인수에 대한 야욕을 발혔으며 몇몇 전문가는 서슴없이 마이크로스프트가 결국 닌텐도를 획득할수 있을 것이라고 까지 예견하였다. 그런 가운데 소니가 전격적으로 휴대용 게임기 시장을 진출하면서 닌텐도 위기론은 더욱 힘이 실렸다. 원래 휴대용 게임기는 닌텐도가 100%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니가 경쟁자로 뛰어든다는 것은 어찌되었든 닌텐도가 가지고 있던 점유율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뜻하였다.  그런데 이미 소니는 워크맨으로 전세계를 장악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플레이스테이션2급의 성능을 자사의 휴대용 게임기 PSP에 구현하겠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은 소니가 21세기 워크맨 신화를 재현할 것이라고 찬사를 보내기까지 하였다. 이는 곧 닌텐도 위기설에 더욱 힘을 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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