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6회)




나는 애플을 소생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것이 완벽한 제품과 완벽한 전략에 대한 것 이상이라는 것 빼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듣지 않을 것이다.

‐ 스티브 잡스, 1996년 <포춘>


윈도우가 승승장구하면서 애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동안 정작 회사의 CEO인 존 스컬리는 회사 일에 흥미를 잃어갔다. 그는 회사일보다 자신을 알리기 위한 언론 홍보활동에 열심이었다. 평생을 공화당 당원으로 살았던 그는 IT기업에 관심이 많던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빌 클린턴에게 호감을 느끼고, 선거운동 지원에 직접 나선다. 업무보다 선거운동에 더 열중하는 존 스컬리의 행동은 이사회의 분노를 사게 된다. 


마침 존 스컬리가 열정을 가지고 전념했던 제품이 ‘뉴튼’이었다. 휴대 가능한 손안의 컴퓨터라는 개념으로 시작한 뉴튼은 문자인식이 가능한 패드를 갖추어서 오늘날 태블릿 컴퓨터의 원조이자 PDA의 시작으로 일컬어지는 제품이다. 하지만 뉴튼이 당초 가지고 있던 원대한 포부와는 다르게 실제 구현상의 어려움으로 발매일이 계속해서 연기되었다. 1993년에 이르자 애플의 실적은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주가 역시 몇 주 만에 3분의 2로 추락하자 존 스컬리의 입지는 더욱 줄어든다. 이제 스티브 잡스가 존 스컬리에 의해서 축출되었듯이 똑같은 역사가 재현된다. 


존 스컬리는 애플을 두 개의 회사로 분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소프트웨어 회사인 애플소프트와 하드웨어를 책임지는 매킨토시 사업부였다. 그는 매킨토시 사업부를 마이클 스핀들러(michael spindler)에 맡길 생각이었다. 원래 마이클 스핀들러는 인텔에서 근무하면서 마이크 마쿨라와 친하게 지낸 사이였다. 인텔에서 번 돈을 애플에 투자하여 큰돈을 벌게 된 마큘라는 평소 능력을 높이 평가하던 마이클 스핀들러를 애플로 불러들인다. 마이클 스핀들러는 독일 태생으로 주로 유럽에서 활동하던 인물이었는데, 마큘라는 그에게 유럽에서의 마케팅을 맡겼다. 유럽에서 뛰어난 실적을 기록하자 존 스컬리는 마이클 스핀들러를 미국 본사로 데려온다.


마이클 스핀들러는 사람 앞에서 낯가림이 심하고, 쉽게 긴장하는 성격으로 야망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지만 존 스컬리 덕분에 고속 승진을 거듭하면서 서서히 야망을 키워갔다. 특히 존 스컬리의 오른팔로 제품개발 전반을 책임지던 장 루이 가세가 여러 치명적인 실책들을 저지르고 자리에서 물러나자 후임으로 임명되어 더욱 대범해져 갔다. 존 스컬리가 분사 계획을 세우고, 전혀 가망 없어 보이는 매킨토시 사업부를 맡기려 하자 이에 큰 불만을 가지게 된다. 마이클 스핀들러가 매킨토시 사업부를 맡고 싶지 않다고 하자 충격을 받은 존 스컬리는 자신의 계획을 전면적으로 취소한다.


 이런 와중에 존 스컬리는 회사에서 신용을 잃어 갔으며 악화된 실적과 함께 결국 이사회에 의해서 쫓겨난다. 스티브 잡스의 모든 실권을 빼앗아서 스컬리에게 전권을 주었던 애플의 이사회 멤버이자 벤처 투자가인 아서 록이 이번에는 스컬리의 해고를 통보했다. 그리고 후임자가 된 사람은 존 스컬리가 그렇게 믿었던 마이클 스핀들러였다. 스핀들러는 처음부터 쿠데타 음모를 알고 있었으며, 미리 CEO 자리를 수락하였다. 하지만 스컬리에게는 마치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행동하며 CEO 자리에서 쫓겨난 그를 위로해 주었다.


회사의 CEO가 된 스핀들러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진행한다. 2,500명의 사원을 해고하고, 각종 임금인상을 취소하고 보너스를 삭감한다. 회사경비를 줄이기 위해서 무료였던 구내식당과 헬스장을 유료화 시킨다. 스핀들러의 지상과제는 9%로 떨어진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매킨토시의 운영체제인 맥 OS를 모토로라, 파워컴퓨팅, 유맥스 등 다른 하드웨어 업체에 라이선스하는 초강수를 둔다. 덕분에 매킨토시의 시장 점유율은 상승했으나 매우 중요한 문제가 생겼다. 


다른 회사에서 제조된 매킨토시가 한 대씩 팔릴 때 애플은 50달러를 받았는데, 만약 애플이 직접 제조해서 팔았다면 500달러의 이익을 볼 수 있는 상태였다. 다른 제조사에서 제작한 매킨토시가 팔린다는 이야기는 결국 애플의 매킨토시가 그만큼 팔리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애플은 이제 자신의 제품을 복제한 회사와 서로 경쟁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여기에 윈도우 95가 가세하면서 마이클 스핀들러는 직격탄을 맞는다. 매킨토시의 재고는 10억 달러에 이르렀는데 매킨토시 전체 매출이 60억 달러였음을 고려하면 엄청난 손실이었다. 회사의 시장 점유율은 9%에서 7.4%로 줄어들었으며, 1995년 마지막 분기는 6,800만 달러의 적자가 났다. 이런 실적으로는 더 이상 마이클 스핀들러가 회사에 머무를 수 없었다. 


마이클 스핀들러의 후임으로는 길 아멜리오((Gil Amelio)가 임명되었다. 물리학 박사학위를 가진 길 아멜리오는 디지털 카메라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인 CCD를 발명한 개발자 출신으로, 40대의 나이에 내셔널 세미컨덕터(National Semiconductor)의 CEO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5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무너져 가는 내셔널 세미컨덕터를 3년 만에 회생시키는 뛰어난 경영수완을 보여준 덕분에 업계에서는 영웅으로 여겨졌다.


마침 내셔널 세미컨덕터는 애플에 각종 부품을 공급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애플에서 이사직을 제안하자 평소 애플의 팬이었던 길 아멜리오는 기쁜 마음으로 애플의 이사회에 합류하게 된다. 전임 CEO인 마이클 스핀들러는 IBM, 썬마이크로시스템즈, 필립스, 게이트 2000, 소니 등에 애플을 팔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애플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던 길 아멜리오는 이사회에서 마이클 스핀들러의 행동을 비난하며 회사가 헐값에 팔리는 것을 막았다. 이때 길 아멜리오를 높이 평가한 이사회 멤버인 피터 크리스프(Peter Crisp)는 그에게 CEO직을 제안한다. 비록 애플의 실적은 엉망이었지만 애플의 CEO가 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되는 것을 뜻했다. 게다가 그렇게 사모하던 회사가 아니던가? 이미 내셔널 세미컨덕터의 CEO임에도 불구하고, 길 아멜리오는 아무런 계약서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애플의 CEO직을 수락한다. 그는 구체적인 연봉이나 대우에 대한 합의도 없이 바로 애플에 출근했으며, 구체적인 계약 내용은 3개월 후에나 확정되었다. 


길 아멜리오는 이전의 CEO들과는 두 가지가 달랐다. 이전의 CEO는 마케팅 전문가들이었으나 마이클 스핀들러는 기술을 아는 개발자 출신이었다. 전의 CEO는 회사를 팔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지만 애플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그는 애플이 싸구려로 팔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애플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길 아멜리오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사의 운영자금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6억 6,100만 달러에 이르는 사채를 골드만삭스에서 구입해 감으로써 잠시 숨통을 틀 수 있었다. 길 아멜리오는 회사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고민했고, 운영체제가 가장 문제라는 것을 발견했다. 윈도우 95가 발매된 이후 시장을 급속도로 확장하는 동안 애플은 이에 대응하는 어떤 제품도 내놓지 못했다. 원래 애플은 90년대 초반부터 차세대 운영체제인 코플랜드를 개발 중이었다. 하지만 5년여가 지나도록 아무런 성과도 없었기 때문에 결단을 내려야 했다. 회사 내에서는 도저히 운영체제를 만들 능력이 없으니 외부에서 사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를 알게 된 빌 게이츠는 애플에 전화를 걸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NT를 매킨토시에서도 작동되는 운영체제로 변환할 수 있도록 개발자들을 언제든지 투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매킨토시 운영체제인 맥 OS 고유의 인터페이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다시 빌 게이츠는 맥 OS의 운영체제에 욕심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길 아멜리오는 존 스컬리와는 다르게 그의 의도를 꿰뚫고 협상을 중지시켰다. 이때 장 루이 가세가 끼어들었다. 그는 이미 매킨토시에서 작동되는 비오에스(BeOS)를 개발 중이었는데, 길 아멜리오는 호감을 가지고 가격을 물었다. 하지만 5억 달러라는 거액을 부르는 바람에 협상은 잠시 중단된 상태가 되었다.


이런 소식들이 스티브 잡스의 회사인 넥스트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었다. 그리고 넥스트의 개발자들은 스티브 잡스 몰래 애플과 접촉한다. 애플 관계자들이 넥스트의 사무실을 방문해서 개발 중인 운영체제를 직접 테스트했고, 흡족한 결과를 얻었다. 충성스런 넥스트의 개발자들 덕분에 스티브 잡스의 인생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 이 접촉 사실을 알게 된 스티브 잡스는 직관적으로 이번 거래의 중요성을 알았고, 자신이 직접 협상을 주도했다. 


이미 스티브 잡스와 길 아멜리오는 구면이었다. 길 아멜리오가 애플의 이사회에 임명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스티브 잡스가 직접 길 아멜리오를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었다. 길 아멜리오는 애플의 창업자이자 컴퓨터 업계의 전설인 스티브 잡스의 초대에 기꺼이 응한다. 스티브 잡스는 길 아멜리오에게 간접적으로 자신이 애플을 부활시킬 수 있는 인물임을 암시했다. 길 아멜리오는 애플을 부활시킬 전략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당시 스티브 잡스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했고, 그들의 만남은 그렇게 어색한 침묵 속에서 끝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에는 실제로 존재하는 제품을 평가받는 것이었다. 애플 직원들은 매일 넥스트와 회의를 하면서 넥스트의 운영체제를 검증했다. 검증에 참여한 직원들은 넥스트의 운영체제가 비오에스보다 더 뛰어나다는 최종 평가를 내렸지만, 길 아멜리오는 운영체제 선택에 신중했다. 좀 더 합리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 스티브 잡스와 장 루이 가세가 애플 경영진 앞에서 직접 제품을 설명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런 경쟁 프레젠테이션이라면 이미 스티브 잡스에게 저울이 기울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승부는 이미 결정되었고, 관건은 이제 얼마나 좋은 조건에 계약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직접 노트북을 가지고 넥스트의 운영체제를 시연해 보이며 경영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반면 프레젠테이션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장 루이 가세는 스티브 잡스와 비교되면서 오히려 스티브 잡스의 협상력만 높여주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길 아멜리오는 3억 7,750달러의 막대한 현금과 150만 주에 이르는 주식으로 넥스트를 인수하고, 스티브 잡스를 애플의 고문으로 영입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가 고문으로 애플에 돌아왔지만 회사는 아주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중이었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이상할 정도로 회사 일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는데, 오히려 애플로부터 받은 150만 주를 모두 처분함으로써 회사에 큰 충격파를 던져준다. 이런 태도에 대해서 사람들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쿠데타를 일으키기 위해 뒤에서 더러운 모략을 꾸민다는 사람들과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경영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확실한 것은 스티브 잡스가 길 아멜리오를 배신했다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절친한 친구인 오라클의 창업자 래리 앨리슨(Larry  Ellison)이 애플을 인수합병하려 하자 이를 말렸다고 한다. 자신이 애플로 돌아갔을 때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애플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스티브 잡스였던 만큼 그가 CEO 자리를 욕심내는 것은 당연하지만 길 아멜리오의 후임이 된다는 것은 사실 도박과 같았다. 길 아멜리오가 CEO로 재직 중일 때 애플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6%에서 3%로 떨어졌고, 교육 시장 점유율은 41%에서 27%로 하락하면서 실적은 계속 추락 중이었다. 결국 애플의 실적은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악화되어 갔고, 주식은 10년 내 최저로 떨어져 있었다. 언론 이곳저곳에서는 애플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고, 부정적이기는 스티브 잡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티브 잡스가 주식을 판 행위는 오히려 그만큼 회사의 미래를 밝게 보지 않았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주식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면 주식을 팔 이유가 없었고, 경영권을 목표로 한다면 더더욱 주식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면 스티브 잡스는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기 전에 팔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150만 주를 판 것이 회사와 언론에 일종의 충격파를 던져준 것은 확실하다. 창업자마저도 애플의 회생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사회는 길 아멜리오의 후임을 선택하기 위해서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에게 SOS를 쳤다.


<"애플 처럼 창조한다는 것" 매주 연재 됩니다. 다음에는 매킨토시 개발과 존 스컬리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은 저의 페이스북 팬페이지에 접속하셔서 좋아요 버튼좀 눌러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