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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삼국지(19) 


스티브잡스의 애플부활프로젝트(4) 


애플다움을 되찾다




아이맥의 시작은 실패한 프로젝트에서부터 시작된다. 스티브잡스가 돌아오기전 부터 애플에서는 기능을 최소화해서 가격을 낮추는 대신 네트워크에 최적화된 저가형 컴퓨터 즉 맥 NC 를 개발중이었다. 강력한 구조조정을 펼친 스티브 잡스는 장래성이 없는 대부분의 프로젝트를 중단시키고 10개만 살려두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맥 NC 였다. 스티브 잡스가 맥 NC를 살려둔 것은 두가지 이유였다. 첫째 맥 NC는 기업용 시장에 유독 약했던 애플의 구세주가 될 수 있고 둘째 맥 NC의 멋진 디자인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스티브 잡스는 맥 NC의 시제품을 자신의 사무실에 올려놓고 감상할 정도였다. 하지만 시장에서 NC 와 관련된 제품이 외면 받자 스티브 잡스는 맥 NC를 인터넷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 즉 아이맥(iMac)으로 새롭게 개발하기로 결정한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맥을 만들면서 애플의 디자인팀에 많은 권한을 주었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디자인 팀을 맡은 조너선 아이브라는 인물을 높이 평가 했기 때문이다. 조너선 아이브는 영국인 출신으로 탠저린을 창업해서 화장실 세면기와 헤어드라이어등 다양한 제품들을 디자인했다. 1990년대 초반 조너선 아이브는 애플로부터 노트북 디자인을 의뢰 받는다. 조너선 아이브가 내놓은 시안에 감명 받은 애플은 그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한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를 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조너선 아이브는 애플에 입사를 결정한다. 대학 시절 조너선 아이브는 아이러니하게도 컴퓨터를 잘 사용하지 못했다. 거의 컴맹수준이었던 그는 매킨토시를 처음 접해보고는 깜짝놀랐다. 다른 컴퓨터와 다르게 너무나 쉬운 작동법에 완전히 매료된 조너선 아이브는 애플이라는 회사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애플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던 조너선 아이브였던 만큼 자신이 창립한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이주하는 것마저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애플에 입사를 하자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뀌게 된다. 애플의 디자인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았고 무능력한 경영진들은 디자인팀의 예산을 줄이는 데만 급급했다. 그 와중에도 조너선 아이브는 최초의 PDA인 뉴튼을 디지인하면서 회사에서 인정을 받았고 1996년부터 애플 디자인팀을 이끌고 있었다. 

원래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에 욕심이 많은 사람인 만큼 디자인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을 영입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기존의 애플 디자인팀에 별 관심이 없었다. 스티브 잡스가 새로 돌아오면 회사가 바뀔것이라고 기대한 조너선 아이브였지만 정작 스티브 잡스가 자신을 1년 동안이나 방치를 하자 이에 실망하고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한다. 

어느날 스티브 잡스가 회의를 소집하자 조너선 아이브는 사직서를 뒷주머니에 넣고 회의에 참석한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는 조너선 아이브의 능력을 활용할 아이맥의 개발을 명령한다. 나중에야  조너선 아이브의 존재를 알고는 그의 뛰어난 디자인에 반한 스티브 잡스는 조너선 아이브에게 아이맥을 개발하도록 지시한 것이었다. 조너선 아이브는 스티브 잡스의 기대에 바로 부응을 하였다. 기존 컴퓨터가 베이지색에 딱딱한 사각형 일색이었던 시대에 조너선 아이브는 아름다운 유선형에푸른빛의 반투명 디자인으로 무장한 새로운 형태의 컴퓨터를 선보인다. 특히 아이맥은 컴퓨터와 모니터의 일체형 모델에 플라스틱 소재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고급스런 느낌이 나서 호평을 들었는데 이는 애플디자인팀이 직접 사탕 공장을 방문해서 연구한 결과의 산물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맥의 디자인이 너무나 자랑스러웠고 사람들에게 훌륭한 디자이너가 사는 행성에서 온 제품이라고 소개했다. 아이맥은 등장과 함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아이맥이 6주만에 30만대를 판매했고 1년 동안 2백만대나 팔리더니 나중에는 600만대의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최고의 베스트셀러 컴퓨터가 된다. 아이맥의 성공은 적자에 시달리던 애플이 3억 950만달러의 흑자회사로 반전하는게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아이맥은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제품이다.  감성적인 요소를 중요시 여기는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도 컴퓨터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마치 시간이 정확하다는 이유로 손목시계가 팔리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 때문에 팔리듯이 컴퓨터 역시 디자인과 패션이 중요 해진다는 생각에 아이맥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빌게이츠는 디자인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고작 색깔밖에 다른게 없는 아이맥의 성공이 오래가지 못할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디자인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오랜 신념은 아이팟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더욱 빛을 보게 된다.


스티브 잡스 소프트웨어의 시대를 열다 


기업가의 측면에서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의 가장 큰 변화를 뽑으라면 소프트웨어에 대해서 더욱 진지해진 모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빌게이츠나 구글의 창업자들에 비해서 하드웨어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넥스트와 픽사를 거치면서 이러한 생각을 완전히 뒤집게 된다. 

넥스트와 픽사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개발하는 회사였다. 하지만 사업이 잘 안되자 넥스트는 기존의 하드웨어를 포기하고 소프트웨어 전문업체로 거듭나고 픽사 역시 하드웨어 사업부를 매각하고 3D 에니메이션 회사로 바뀌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1994년 인터뷰에서 컴퓨터는 아무리 잘 만들어봐야 두배 뛰어난 제품은 만들기도 힘들고 운이 좋아서 1.33배나 1.5배 정도 빠른 컴퓨터를 만들 수 있지만 그래봐야 6개월이면 따라잡히고 만다고 한탄하였다. 그러면서 소프트웨어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스티브 잡스가 다 무너져가는 애플의 구세주로 복귀할 때 그가 들고 온 것이 바로 소프트웨어였다는 점이다. 애플이 몰락 한 것은 운영체제를 독자적으로 개발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위기속에 빠진 애플을 구하기 위해 스티브 잡스가 운영체제를 들고서 다시 애플에 돌아왔다.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던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애플의 중요요직에 앉혔다. 넥스트에서 데려온 사람들이 중심으로 천여 명의 인력이 모여서 개발 한 것이 맥 OS X이다.  당시 맥 OS X은 애플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하는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운영체제가 발전하기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응용소프트웨어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그가 처음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 처럼 외부의 소프트웨어 업체들을 찾아다니면서 맥 OS X으로 소프트웨어를 발매해달라고 부탁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와는 굴욕적인 계약을 감수하면서까지 MS 오피스의 지속적인 공급을 약속 받아 놓았지만 문제는 다른 회사는 호응이 없었다. 매킨토시의 시장점유율이 한자릿수에 머물러있기 때문에 많은 회사들이 매킨토시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가장 충격을 먹었던 것은 자신의 도움으로 큰 성공을 거둔 어도비의 외면이었다.  어도비가 자신의 요청을 거절하자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직접 소프트웨어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애플은 사진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인 아이포토나 영상을 편집하게 해주는 아이무비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만들게 된다. 그런데 이때 스티브 잡스는 중대한 실수를 저지른다. 세상이 CD에서 DVD 시대로 넘어간 것으로 생각한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에 DVD-ROM을 기본 장착한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MP3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CD에 있는 음악을 컴퓨터로 변환해서 MP3 파일을 만들거나 그 반대로 MP3파일을 CD에 넣고서 음악을 듣는 변화가 생겨났다. 

그래서 컴퓨터 회사들은 CD에서 음악을 추출해서 MP3로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을 제공하였고 CD 라이터가 기본 장착시켜서 MP3파일을 얼마든지 CD로 복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애플은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MP3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지도 않았고 매킨토시에는 DVD롬을 장착했기 때문에 CD로 음악을 저장할 수도 없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참 바보 같다고 생각할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스티브 잡스는 매우 중요한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자괴감에 빠졌고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 열정적으로 일에 메달려야했다.

매킨토시에 CD 라이터를 추가하도록 지시한 스티브 잡스는 MP3 음악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스티브 잡스는 하루라도 빨리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티브 잡스는 개발자들에게 4개월안에 음악 소프트웨어를 완성하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애플 내부에서 음악 프로그램을 처음부터 만들기 시작하면 오래걸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기 위해서 외부의 도움을 얻고자 하였다. 

마침 매킨토시에서는 사운드 잼 MP라는 음악 재생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았다. 애플은 사운드 잼 MP의 제작사인 캐시디 & 그린 (Cassady & Green)과 계약을 맺고 공동으로 음악 소프트웨어 아이튠스를 개발하기로 한다. 그리고 4개월간의 개발끝에 2001년 1월 맥월드 엑스포에서 아이튠스를 발매한다. 처음 등장한 아이튠스는 정작 사운드 잼 MP보다도 부족한 점이 많았다. 

하지만 무료인 덕분에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아이튠스는 단순한 음악 소프트웨어가 아니었다. 아이튠스가 보여주는 비전은 현재의 애플을 지탱하는 중요한 전략을 담고 있다. 바로 아이팟 탄생의 핵심이 되는 디지털 허브이다.  스티브 잡스는 여러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면서 소비자들은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 PDA 같은 각종 전자기기를 컴퓨터에 연결한 후 각종 데이터를 관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컴퓨터가 다른 전자기기의 허브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하여 스티브 잡스는 디지털 허브전략을 수립했다. 그래서 디지털 카메라나 캠코더 같은 전자기기들이 매킨토시에 연결되서 잘 이용될 수 있도록 각종 소프트웨어를 지원해주었다. 그런데 컴퓨터에 연결는 서 사용되는 제품중에 유독 휴대용 MP 3플레이어가 형편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MP3 플레이어 기기에서 가능성을 본 스티브 잡스는 사내에 비밀 프로젝트를 지시한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의 천하 삼분지계를 다룬 IT 삼국지 이야기는 다음에도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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