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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삼국지(20) 


아이팟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애플은 처음부터 대단위의 인력을 동원해서 휴대용 MP3 플레이어 시장을 진출하지 않았다. 아이팟의 시작은 단 두명으로부터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한명은 애플에서 마케팅관련일을 하던 정직원 stan ng였고 다른 한명은 컨설턴트 형식으로 임시 고용한 토니 퍼델이었다.  그런데 Stan Ng와 토니 퍼델은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과 비슷한 관계였다.


 애플에서 일한지 6년째가 되는 Stan NG는 파워맥과 데스크탑 컴퓨터에서 기획자로 일을 하였다. 이에 비해서 토니 퍼델은 개발에 능한 엔지니어였다. 원래 토니 퍼델은 필립스에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 인물이었다. 그가 필립스에서 개발한 PDA는 50만대 이상이 판매되었는데 그는 이때부터 휴대용음악기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게 되었다. 마침 그의 아이디어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리얼네트웍스에서 일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6주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직접 휴대용 음악기기를 만들기 위해서 Fuse라는 회사를 시작하려고 했지만 투자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애플에서는 토니퍼델이 애플의 비밀프로젝트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8주일의 초단기 계약을 제안한다. 토니 퍼델은 계약전만해도 자신이 무슨을 일을 하게 될지 몰랐다. 다만 애플이 자신에게 적합한 일이라는 말을 해주었기 때문에 계약서에 사인을 한다. 계약을 한 후에야 토니 퍼델은 애플이 아이튠스와 연동되는 휴대용 음악기기 개발을 위해서 자신을 고용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애플의 경영진은 8 주 동안 Stan NG와 토니 퍼델이 만들어 낸 결과물을 보고서 MP3 플레이어 시장에 정식으로 진출할지 여부를 결정할 생각이었다.  8주 라는 시간 자체가 촉박하기도 했지만 두사람의 어깨에 따라서 애플은 완전히 다른 회사로 변화할 수 있는 중대한 일인 만큼 둘은 눈을 뜨고 있는 내내 비밀 프로젝트에 물두해야만 했다.  비록 두사람의 비밀 프로젝트였지만 애플 사내에서는 자기업무가 아니라도 직원들끼리 서로 돕는 문화가 있었다. 사내의 모든 직원들과 접촉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STAN NG와 토니 퍼델들은 사내에 돌아다니면 각종 자료와 아이디어를 수집했다. 엄격한 비밀주의 때문에 자신들이 휴대용 음악기기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지만 애플 직원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도움을 주었다.


 작업을 진행 하면서 그들은 제품이 어떠한 형태로 완성되어야 하는지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휴대용 음악기기의 크기는 셔츠나 양복의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여야 했으며 대용량의 음악을 담아야 하기 떄문에 하드 디스크를 넣기로 한다. 2.5인치면 본체크기가 너무 커지기 때문에 1.8인치를 사용하기로 한다.  


프로젝트가 시작되기 전부터 애플은 매킨토시용으로 하드디스크를 공급하는 업체인 도시바가 1.8인치 짜리 하드 디스크를 개발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든 도시바는 정작 자신들이 미니 하드드라이브로 무엇을 만들지 몰랐다. 하지만 애플의 간부인 루빈 스타인은 애플의 휴대용 음악기기에 꼭 필요한 기술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차였다.  


Stan NG는 기존 휴대용 음악기기의 액정이 너무 적다고 생각했다. 음악기기에서는 적어도 아티스트나 곡의 이름과 연주 시간은 표시가능 해야한다고 확신한 그는 2인치 짜리 패널을 넣기로 결정한다. Stan NG가 애플이 만들어야할 휴대용 음악기기의 모습을 기획하는 동안 토니 퍼델은 직접 시제품을 만들고 있었다. 토니 퍼델은 스티로폼을 잘라서 담배갑 크기로 시제품을 만들었다. 상단에는 곡을 표시해주는 화면이 있고 밑에는 곡을 찾을 수 있는 버튼을 배치했다. 시제품이 상부로부터 허락을 받자 토니 퍼델은 기본 모형에 실제로 작동하는 시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4월이 되자 Stan NG와 토니 파델은 스티브 잡스 앞에서 그들의 계획과 제품들을 직접 설명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애플은 이들의 발표자료에 의해서 최종적으로 휴대용 음악기기 시장에 진출할 참이었다. Stan NG 는 기존 제품의 문제점을 나열하면서 애플이 휴대용 음악 시장에서 어떤 기회가 있는지를 설명하였다. 그 후 토니 퍼델은 그동안 만든 시제품을 보여주었다. 토니 퍼델이 만든 시제품은 전체적인 모형과 하드디스크와 액정 그리고 배터리와 같은 부품들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보여주었다. 토니 퍼델은 일부러 세가지 모델을 만들었다.  


그가 전력을 쏟아서 만든 모델은 하나였지만 그 하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나머지 두개를 더 만들었다. 그의 예상대로 그가 첫번째와 두번째로 보여준 모델을 본 스티브 잡스는 실망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그리고  토니 파델이 비장의 무기로 준비한 세번째 시제품을 보여주자 스티브 잡스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필 쉴러는 회의장을 나가더니 각종 전자기기를 들고 다시 돌아왔다. 


각각의 전자기기는 여러 목록들을 편안하게 찾을 수 있도록 스크롤 휠을 채택한 제품들이었다. 필 쉴러는 애플이 만드는 휴대용 음악기기에서 음악파일을 찾을 때 휠 스크롤을 통해서 쉽고 간편하게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의 아이디어는 나중에 아이팟의 성공에 일등 공신이 된다. 천곡의 음악을 담는 음악기기인 만큼 사용자들이 원하는 곡을 바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중요했다. 스크롤휠이라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에 빠른 반응속도를 자랑하는 액정성능이 결합하면서 아이팟은 원하는 곡은 쉬우면서도 가장빨리 찾을 수 있는 기기로 명성을 날렸기 때문이다.


회의가 끝난  일주일 후 애플은 휴대용 음악기기 시장에 진출하기로 최종 결정한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는 미국에서 최고의 쇼핑 시즌인 크리스 마스 이전에는 발매할 수 있도록 제품을 개발해야한다고 지시한다. 한번도 휴대용 음악기기를 만들어 본적이 없는 애플 개발자들로써는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조금은 무리한 작업스케쥴을 내림으로써 애플을 한단계씩 업그레이드 해왔다. 매킨토시를 만들 때 개발자들에게 전화번호부를 던져주고서 본체의 크기는 절대로 전화번호부보다 커서는 안된다고 지시했다. 


당시만 해도 전화번호부 크기의 컴퓨터를 만든다는 건 상상하기도 힘든 시기였다. 처음에 스티브 잡스의  지시를 받은 개발자들은 황당했지만 결국 스티브 잡스의 명령을 어길수는 없었다. 결국 온갖 고생끝에 겨우 스티브 잡스가 원하는 컴퓨터를 만들 수 있었다. 아이맥의 경우 엔지니어들은 수십가지의 이유를 들어서 절대 만들 수 없는 제품이라고 했지만 스티브 잡스는 CEO의 명령이라면서 무조건 완성하라고 윽박질렀다.  아이튠스 역시 빠듯한 스케쥴이었지만 개발자들은 이를 완수했고 회사는 한 단계 진보 할 수 있었다.


애플 개발자들은 아이팟을 만들면서 밤샘과 야근을 거듭해야 했다. 하지만 애플 내부에서 모든것을 해결하기는 불가능했다. 결국 아이튠스를 개발할 때 처럼 최대한 외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토니 퍼델은 휴대용 음악기기를 만든 경험이 있는 회사인 포털 플레이어사를 찾아가서 아이팟의 하드웨어 부분을 휴대 전화용 휴대전화를 만드는 픽소와는 소프트웨어 부분을 제휴해서 공동 개발하기로 한다. 토니 퍼델은 포털 플레이어사를 찾아가서 이번 프로젝트가 애플을 완전히 새로게 만들 일이라면서 앞으로 10후면 애플이 음악회사가 되있을것이라고 말하여 직원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토니 파델의 말에 감동한 포털 플레이어사의 직원들은 다른 외부 회사와의 협력도 미뤄두고 애플과의 일에 전력을 쏟게 된다.


애플이 아이팟을 개발하면서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인터페이스였다. 그 다음으로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원하는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가 되게 하기 위해서 극도의 단순함을 추구하였다. 단순함이야 말로 애플의 전체 제품을 관통하는 개발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애플은 불필요한 기능을 최대한 줄임으로써 소비자들이 복잡함을 느끼지 않도록 철저히 배려한다. 아이팟에 들어간 버튼은 개발자 스스로 이것이 반드시 필요한 기능인지를 수없이 반문한 끝에 넣은 것이다. 더 이상 뺄것이 없다고 생각할 때까지 버튼의 수를 줄여나갔다. 덕분에 아이팟은 특이하게도 전원버튼이 없다. 사실 스티브 잡스는 메뉴버튼도 빼고 싶었지만 하지만 개발자들의 설득에 겨우 넣을 수 있었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개발자들이 만들어온 시제품으로 원하는 곡을 세번 이내의 버튼 조작으로 찾지 못하면 불같이 화내며 간편한 인터페이스를 강조하였다.


아이팟의 또 다른 자랑은 역시 아이튠스와의 통합이었다. 사실 이점이야 말로 기존의 휴대용 음악기가와 완전히 다른 접근이였다. 일부러 아이튠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친숙하게 아이팟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에 통일감을 주었다. 또한 사용자들은 아이팟을 컴퓨터에 연결하면 아이튠스로 음악을 옮길 수 있었고 각종 음악파일을 손쉽게 관리할 수 있었다. 


스케쥴 자체는 빡빡했지만 아이팟 개발은 순풍에 돚단듯 술술 풀려나갔다.  이는 회사내의 각종 부서들의 협력을 쉽게 얻어낼 수 있었던 덕분이다. 비록 아이팟의 개발자들이 수십명에 불과하지만 전체 애플직원으로부터 도움을 얻었기 때문에 수천명이 참여한것과 마찬가지였다.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분위기 덕분에 신선한 아이디어들도 쉽게 생겨났다.  하지만 제품의 최종 완성을 앞두고 치명적인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아이팟의 이용자들이 장거리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동안에도 음악을 감상하 할 수 있도록 8시간 정도의 배터리시간을 제공하려고 했다. 하지만 음악 재생을 3~4시간 정도하면 배터리가 모두 닳았다. 다행히 32MB의 메모리를 추가함으로써 10시간의 재생시간을 확보하게 된다. 프로젝트가 여러 난관에 부딪히자 자신감을 잃은  포털 플레이어사의 개발자 벤 나우스는 제품이 실패할 것이라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두기까지 한다.


조너선 아이브가 이끄는 애플의 디자인팀도 아이팟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휴대용 음악기기의 경우 밖에 들고 다니는 제품인 만큼 기존의 컴퓨터보다도 디자인이 중요한 만큼 애플의 디자인팀은 자신들의 능력을 다시 한번 대내외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애플은 아름다운 디자인을 위해서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 그래서 애플은 새로운 제조공법을 과감하게 받아들인다.. 아이팟에도 더블 샷(Double Shot)이는 새로운 공정이 들어갔다. 더블 샷은 하나의 제품에 여러 색을 동시에 합치는 기술인데 아이팟 크기에 이 기술을 넣기는 힘들었다. 애플은 크기가 작은 제품에 더블샷을 사용할 줄 아는 업체를 접촉해서 아이팟에도 더블샷을 적용하도록 끈질기게 설득한 덕분에 이질감이 없는 아름다운 색상의 아이팟을 탄생시킬수 있었다.


제품 막판에 비록 개발자들을 당혹시키는 문제가 발생했었지만 다행히 스티브 잡스가 정한 스케쥴은 지킬 수 있었다. 2001년 10월 23일 스티브 잡스는 대중에게 최초로 아이팟을 공개한다. 스티브 잡스는 주머니에서 아이포드를 꺼내놓고는 프리젠테이션의 대가 답게 아이포드가 얼마나 대단한 제품인지를 소개하였다. 그의 프리젠테이션은 정말 멋졌지만 반응은 시큰둥했다. 이미 시장에는 휴대용 음악기기가 얼마든지 있었고 339달러라는 가격이 너무나 비쌌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팟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멍청이가 값을 매긴 제품( Idiots Price Our Device), 나는 디스크가 더 좋아 ( I prefer Owning Discs ) 나는 다른 기기가 좋아(Iprefer other devices) 처럼 비아냥 섞인 글들이 인터넷을 뒤덮었다. 실제로 아이팟의 판매량은 처음부터 인기를 끈 제품은 아니었다. 2001년 판매량은 고작 16만대에 불과했다. 


애플의 인기는 아이팟을 실제 구입한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서 서서히 퍼져나갔다. 아이팟이 인기를 끄는데는 우연에서부터 시작됐다. 애플 디자인팀은 아이팟의 본체 색깔과 맞추어서 이어폰 역시 하얀색으로 결정했다. 당시만 해도 이어폰은 검정색 일색이었기 때문에 하얀색 이어폰은 사람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자극했다. 또한 하얀색 이어폰은 다른 휴대용 음악기기를 듣는 사람과 구별되었고 그만큼 더 특별해 보였다.  길거리에 하얀색 이어폰이 늘어나자 자연스럽게 아이팟도 홍보가 되었다.  어느덧 하얀색 이어폰은 아이팟의 상징이 되었다. 아이팟이 주머니에 있지만 하얀색 이어폰 만으로도 그 사람이 아이팟의 사용자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하얀색 이어폰을 쓰는 사람들끼리는 같은 애플 제품을 쓴다는 유대감을 느낄정도였다. 하얀색 이어폰의 위력을 알게된 애플은 사람은 검은색 실루엣으로 처리하는 대신 횐색 이어폰을 강조하는 광고를 만들어서 큰 반향을 일으킨다. 컬트브랜드 아이팟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아이팟이 진정한 대중화의 길을 걷는 것은 아이팟이 윈도우를 지원하면서부터다. 이전만 해도 아이팟은 맥 마니아들의 전유물에 불과했다. 아이팟으로 음악을 옮기기 위해서는 매킨토시가 필요했기 떄문이다.  애플은 그 동안 모든 제품을 매킨토시 중심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이 만드는 각종 기기들은 매킨토시에서만 돌아가도록 했다. 하지만 아이팟을 계기로 애플은 스스로 벽을 깨고 달라졌다. 애플은 2003년 5월 윈도우를 사용하는 PC에서도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아이팟을 공개하는데 이전에 1년 6개월 동안 아이팟이 백만대가 판매됐지만 아이팟 3세대 출시후에는 단 6개월만에 백만대가 팔려나가게 된다. 1년 6개월 후에는 아이팟은 9백만개 판매하면서 어느덧 휴대용 음악기기 시장의 강자로 떠오르게된다.

 

아이팟이 음악 산업을 재발명했다는 극찬을 들으며 음악 듣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아이튠스 뮤직스토어 덕분이었다. 인터넷으로 음악을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는 서비스인 아이튠스 뮤직스토어야 말로 아이팟 성공의 일등공신이며 왜 애플이 강력한 집단인지를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휴대용 음악기기 업체들은 기기를 파는데 급급했지만 애플은 새롭게 음악을 듣는 경험을 판매했다. 


그래서 애플은 아이팟을 만드는데만 공들인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쉽고 편리하게 음악을 구입하고 들을 수 있도록  아이튠스 뮤직스토어 서비스를 준비했다. 아이튠스 뮤직스토어는 스티브 잡스가 있었기에 가능한 서비스였다. 5대 메이저 음반사는 IT 업계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IT 업체와 협력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리고 5대 메이저 음반사를 한곳에 모아서 음악서비스를 한다는 것은 당시만해도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지만 스티브 잡스는 5 대 메이저 음반사들을 끈질기게 설득하였고 세계 최초로 5대 메이저 음반사가 참여하는 아이튠스 뮤직 스토어를 시작하였다.  


20만곡의 음악을 한곳에서 구입할 수 있게 되자 많은 소비자들이 아이튠스 뮤직 스토어 서비스에 열광하였다. 아이튠스 뮤직스토어는 3일만에 백만명의 사용자를 확보했고 15개월만에 1억곡을 판매했다. 2005년 온라인 음악시장의 75%의 시장점유을 기록한 아이튠스 뮤직스토어는 7년만에 100억곡의 음원을 판매하면서 음악 산업의 혁명을 이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의 천하 삼분지계를 다룬 IT 삼국지 이야기는 다음에도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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