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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2의 밀리언 셀러 등극으로 자금에 큰 여유를 가지게 된다. 알렌 애드햄은 이 자금으로 콘도르를 자회사로 인수하려고 했다. 그런데 마침 콘도르는 과거 데이비드 브레빅이 다녔던 이구아나 엔터테인먼트를 통해서 미국의 유력 게임 퍼블리싱 업체인 어클레임으로부터 인수 제의를 받았다.  블리자드가 콘도르에 제시한 인수금액은 어클레임보다도 적은 돈이었다. 하지만 블리자드와 콘도르는 져스티스 리그 태그포스 이후 특별한 인연을 느끼고 있었고 두 회사는 여러가지 공통점으로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데이비드 브레빅은 어클레임보다 더 적은 돈으로 인수합병안을 제안한 블리자드와 합병을 결심한다. 인수합병은 돈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서로 더 좋은 게임을 개발하자는 의기투합의 과정이었다. 그런데 인수 합병의 유일한 걸림돌은 블리자드의 모회사인 Davidson & Associates였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조마조마하게 인수합볍에 대하 결과를 기다렸고 팩스로 승인통보가 전달되었을때는 뛸듯이 기뻐하였다.


1999년 3월 인수콘도르는 블리자드가 Davidson & Associates에 인수되었을 때 처럼 최대한 개발의 독립성을 유지해주었다. 하지만 콘도르라는 회사 이름은 블리자드에 인수된후에 블리자드 노스라는 사명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블리자드 노스는 개발에 전념을 하고 블리자드는 본사에서는 기술지원, 품질관리, 고객지원, 자금, 언론홍보등을 후원해주었다. Davidson & Associates는 유통, 판매, 마케팅 그리고 제품의 생산과 회계문제를 책임졌다. 또한 블리자드의 인수로 자금에 여유가 생긴 블리자드노스는 12명이었던 직원을 24명으로으로 늘리고  3DO의 차세대 게임기인 M2용 미식축구 게임 개발프로젝트는 취소하고 디아블로 개발에 전력을 쏟는다. 그런데 1996년 5월이 되자 빌로퍼는 디아블로에 한가지 기능을 더 넣어 달라고 제안한다. 전세계의 게임 플레이어들이 네트워크로 연결해서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는 인터넷 접속망을 제공하는 배틀넷에 대한 아이디어였다. 원래 디아블로의 개발 완료는 11월이었고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데이비드 브레빅은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제대로 만들어 지기만 하면 이것이 게임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다. 


디아블로의 발매 그리고 상반된 반응


디아블로는 97년 1월에 발매된다. 미국은 11월 중순의 추수감사절에서부터 12월 25일의 크리스 마스때까지를 할러데이시즌이라고 하는데 이때가 일년중 최고의 성수기이다. 보통 미국에서는 12월 25일부터 1월의 첫번째 일요일까지 연휴이고 가게문도 닫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선물도 미리 구입하고 연휴를 즐겁게 만들어줄 게임등을 많이 구입한다. 그래서 미국에서 1년 장사는 바로 이때 좌우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디아블로는 막판에 버그와 같은 문제들이 발생해서 할러데이 시즌을 넘기고 1월 초에 발매된다. 1월은 미국에 연휴가 많았던 관계로 실제 전국상점에 배치된건 1월중순이 지나서이다. 하지만 이런 황금 같은 시기를 못맞춘 관계로 블리자드측에서도 판매량에 대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지 못했다. 


빌로퍼의 예상으로 10만개는 넘기겠지만 25만개정도만 팔려도 대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서 1년만에 2백만개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한다. 시장에서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사실 디아블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평가는 극명하게 상반되었다. 한쪽은 롤플레잉 게임의 혁명이라면서 디아블로의 탄생에 열광하였고 한쪽에서는 롤플레잉이  아니라 액션 어드벤쳐 게임이라면서 디아블로에 대해서 비난하였다. 이는 처음 블리자드에서 디아블로의 게임방식을 턴에서 실시간 게임 방식으로 바꾸라고 할때의 반응과 비슷하다. 어린 시절부터 던전앤 드래곤에서부터 울티마와 바즈테일,위저드리등 세계 3대 롤플레잉 게임이라고 불리우는 게임을 즐겼던 데이비드 브레빅은 블리자드에서 제안한 게임방식이 정통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고 이에 대해서 반발을 했었다. 하지만 막상 빌로퍼 말대로 게임방식을 바꾸자 실제의 게임플레이는 훨씬더 재미있었고 그는 이때부터 게임은 장르가 아니라 재미 그자체에 초점을 맞춰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게임 마니아들이 디아블로는 롤플레잉게임이 아니라면서 혹평을 하고 비난을 해도 나는 롤플레잉 게임이 아니라 디아블로를 만들었다면서 반박을 했다. 


디아블로는 노력과 보상이라는 철저한 체계아래서 성장과 육성의 재미를 철저하게 추구하였다. 그래서 적을 한명 죽이면 아이템으로 보상을 해주었다. 아이템은 유저들에게 성취감과 수집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게임에 계속해서 몰입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롤플레잉 게임의 미덕중에 하나인 자유도는 철저하게 희생했다. 자유도라는 것은 유저들에게 많은 선택사항을 주어서 다양한 방법으로 게임 속 세상을 모험 하고 탐험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울티마를 통해서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의 토대를 마련한 리차드 게리엇은 이른바 명예라는 시스템을 창안했다. 그래서 적을 죽일 때 악랄한 방법으로 죽이면 명예수치가 떨어지고 좋은 방법으로 쓰러뜨리면 명예수치가 올라간다. 적을 칼로 죽일수도 있고 대화로 설득을 할수도 있는데 이렇듯 롤플레잉 게임하면 이렇게 현실세계를 재현하것처럼 얼마나 많은 자유도를 제공하느냐가 명작과 졸작을 가르는 기준점이었다.


그런데 디아블로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적을 클릭하고 쉴새없이 전투를 벌이는 것이고 탐험지역도 지하도시하나에 한정되었다.  성장과 육성이라는 부분으로보면 분명 롤플레잉 게임이었지만 롤플레잉 게임의 매력인 자유도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마우스로 적을 클릭만 하니 많은 유저들은 혹시 마우스 제작회사와 연결되어 있느것이 아니냐고 비아냥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 디아블로는 롤플레잉 게임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그 이전의 턴방식의 롤플레잉 게임은 너무나 어렵고 귀찮고 많은 시간이 든다면서 서서히 퇴보를 하였고 디아블로처럼 쉽고 편리하고 캐주얼한 게임으로 유저들의 트렌드가 완전히 돌아선 것이다. 


이제는 게임방식이 자유도라는 이름아래 복잡해지면 환영받지 못하고 디아블로가 선사한 박진감 넘치는 게임진행은 필수적인 조건이 되었다. 디아블로는 롤플레잉게임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였고 디아블로에서 느꼈던 재미 즉 노력과 보상의 절묘한 조화는 이제 모든 롤플레잉 게임의 교과서가 되었다. 출시 당시 디아블로가 과연 롤플레잉게임인가에 대해서 수많은 논쟁들이 벌어졌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디아블로가 바꾸어 놓은 게임계를 보면 그때의 논쟁은 결국 진보와 보수를 외치는 세력간의 쓸데없는 이데올로기 논쟁에 불과했다. 정통이라는것도 결국 시대가 흐르고 나면 변하기 마련이고 이제는 디아블로가 그 기준점에 서있는 것이다. 


<다음회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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