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시애틀 내에서 손꼽히는 명문가 집안에서 1955년 10월 28일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은행창업자였고 아버지인 윌리엄 헨리 게이츠2세는 유명한 변호사였으며 어머니 매리 게이츠는 퍼스트 인터스테이트 은행( First Interstate Bank)의 워싱턴주 책임자로 일을 하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빌 게이츠의 이름이 같았던 관계로 집안에서는 그에게 트레이(Trey)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마을에서 알아주는 부자였지만 집안은 엄격하여서 초등학교시절의 하루 용돈은 25센트에 불과했다. 또한 주말에는 텔레비전을 시청하지 말고 보이스카우트 같은 적극적인 야외 활동을 하도록 하였다. 그는 아이큐 170을 자랑하는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는데 한번 읽은 백과사전은 있는 그대로 모든 내용을 기억 할 정도였다. 교회에서 성경 암송대회가 있기라도 하면 그는 가장 먼저 앞장서서 참가하고는 꼭 우승을 해내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학교 성적은 중간 정도에 머물렀다. 아버지는 빌게이츠에 대한 기대감이 컸고  그에게 항상 최고가 될 것을 강조했다. 경쟁에서는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아버지의 생각 때문에 그의 가족들은 여행을 가면 스포츠처럼 승패를 가리는 게임들로 여가시간을 보낼 정도였다. 


빌게이츠가 11살이 되던 해에 하버드 대학교의 등록금보다 3배가 더 비싼 시애틀 최고의 명문사립학교 레이크 사이드에 입학한다. 하지만 그에게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엄격한 교육환경을 자랑하는 학교였던 만큼 적응이 힘들었다. 이 때문에 짜증이 갈수록 늘어났고 반항심이 커져갔다. 결국 부모들은 그를  아동 심리 치료사에게 보낸다. 다행히 심리 치료사는 빌 게이츠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를 터득하도록 하였다. 부모와의 싸움은 결국 자식이 승리하는 게임이고 결국 그게다 부모가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으라는 조언 덕분에 그는 엄청난 양을 읽어 되는 독서가로 변모한다. 학교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아이가 15권이라면 빌 게이츠는 그 두 배인 30권을 읽었다. 포춘이라는 경제잡지처럼 어른들을 위한 서적과 심리학 서적을 특히 많이 읽은 덕분에 그는 나중에 뛰어난 협상가가 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중하위를 달리던 학업성적도 전체과목에서 A학점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학생으로 변모하였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정받으며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1968년 빌 게이츠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일대 사건이 벌어진다.





레이크 사이드 학교의 어머니회는 바자회에서 3천달러의 수익이 나자 이 돈으로 학생들을 위한 컴퓨터를 구입하기로 결정한다. 이는 시애틀에서 최초로 컴퓨터 환경을 구축하는 학교가 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의 개념은 대형컴퓨터에 단말기를 연결해서 사용하는 개념이었다. 학교에 설치된 컴퓨터 환경은 GE사의 ASR-33 텔레타이프를 임대하는 방식이었다. ASR-33은 회사 중앙 컴퓨터와 전화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타자기 모양의 단말기인데 모니터가 없는 대신 프린터로 출력결과를 알려주었다. 회사의 본사 중앙 컴퓨터에 데이터를 보내서 처리 결과를  단말기로 받아보기 위해서는 시간당 40달러의 요금을 내어야만 했다. ASR-33이 설치되자 학교에 호기심 많은 소년들이 달려들었다. 그 중에 으뜸은 역시 빌게이츠였다. 자신이 내린 명령을 척척 처리해내는 이 기계에 완전히 매료당한 그는 컴퓨터를 완벽하게 다루기 위해서 온 열정을 쏟아냈다. 그리고 빌게이츠 처럼 컴퓨터에 뛰어난 실력을 드러내는 소년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폴 알렌이다. 폴은 나중에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 창업하는 평생의 친구가 된다. 미국의 대학 수학능력 시험이라고 하는 SAT에서 1600점 만점을 받을 정도로 폴 알렌 역시 뛰어난 두뇌를 자랑하는 사람이었다. 천재가 천재를 알아 본다는 말이 있듯이 빌게이츠와 폴알렌은 처음 만남부터 컴퓨터를 매개로 하여서 깊은 우정을 나누기 시작한다.  둘은 컴퓨터에 대해서 정말 무섭게 달려들었다. 관련 서적은 물론이고 자료가 부족하면 컴퓨터회사에 직접 연락해서 기술지원과 매뉴얼을 받을 정도였다. 


중학생 밖에 안되는 이 소년들은 어느덧 TIC-TAC-TO 같은 게임을 직접 개발하며 컴퓨터 전문가가 되어갔다. 덕분에 학교선생님보다 컴퓨터에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컴퓨터 사용시간이 과다한 게 문제였다. 컴퓨터를 이용한 시간에 따라서 요금을 내는 종량제였기 때문에 어머니회에서 확보한 자금이 몇주만에 바닥난다. 결국 컴퓨터 사용료를 감당 못한 학교에서는 컴퓨터를 더 이상 학생에게 개방하지 않았다. 





이때 빌 게이츠가 하나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낸다. 자신들의 컴퓨터 프로그래밍 능력이라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폴을 비롯한 몇 명의 친구를 더 규합해서 레이크 사이드 프로그래밍 그룹을 결성한다. 그리고 빌게이츠는 대형컴퓨터를 임대해주거나 판매하는 C-CUBED 본사에 당당히 찾아가서 협상을 시도한다. 프로그램의 버그를 찾아 줄 테니 컴퓨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회사의 사장은 나이도 어린 10대 청소년들의 제안을 듣고는 잠시 당황스럽고 황당하기까지 했지만 이내 곧 그들의 실력을 인정하고 컴퓨터를 야간시간에 한정하여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허락한다.


하지만 C-CUBED는 얼마 못 가서 회사가 도산을 하게 되고 빌게이츠를 주축으로 한 레이크 사이드 프로그래밍 그룹은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생각해낸다. 그런데 마침 폴 알렌의 아버지를 통해서 워싱팅 주립대학교에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조금씩 이들의 컴퓨터 실력이 알려지게 되고 인포메이션 서비스라는 회사에서 일꺼리를 하나준다. 사원들의 급여를 컴퓨터로 관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제작의뢰를 맡겼다. 처음 제안이 들어 왔을 때 만해도 다른 친구들은 고등학생인 자신들의 수준을 뛰어넘는 일이라면서 중도에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이때 빌게이츠가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하여 팀원들과 함께 프로그램 제작을 완수해낸다. 3개월 동안의 작업끝에 1만달러의 수고비를 받은 빌게이츠는 이때의 자신감을 발판 삼아서 정식으로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사업도 인생의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아버지는 빌게이츠의 생각에 선뜻 허락해준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그가 세운 회사의 이름은 TRAF- O -DATA 였다. 그는 고속도로에 지나가는 자동차의 숫자와 용량을 컴퓨터로 계산해내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2만달러를 벌게 된다. 이렇게 빌게이츠의 컴퓨터 실력이 일취월장하게 되자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성적과 출석관리를 하는 프로그램의 제작을 부탁하기도 하였다. 이때 그는 학교에서 예쁜 여자학생들로만 이루어진 반을 구성하고 같이 수업을 듣는 남자는 빌게이츠 혼자만 출석하는 수업시간표를 만들기도 한다. 이때가  빌게이츠의 학생 생활 중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었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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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