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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그로브는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1936년에 태어난다. 원래 이름은 안드라스  그로프(Gróf András )이고 앤디 그로브는 그가 미국으로 망명한 후에 바꾼 미국식 이름이다. 이다. 그로프라는 이름의 성은 원래 백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그의 선조분이 백작의 재산관리인으로 일을 하면서 주위 동네 사람들이 부르기 시작한 별명이었다.  앤디 그로브의 아버지 조지 그라프는 치즈나 야쿠르트 그리고 버터 같은 우유 가공 제품을 만드는 회사를 운영중이었다. 그는 직접 제품을 상점에 배달했는데 거래를 했던 가게집의 딸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로 당시 여성으로써는 드물게 대학의 예비학교 격인 김나지움을 나온 피아니스트였다. 둘은 결혼을 하게 되고 이들 사이에 낳은 유일한 자녀가 바로 앤디 그로브였다.  


사업에 성공한 아버지 덕분에 그의 집안은 가정부가 있을 정도로 유복했다. 그는 어린 시절 몸이 약했다. 특히 4살 때 심장수술을 받던중에 부작용으로 인하여 50%의 청력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으로 잘 극복하면서 유아기를 보낸다. 행복한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을 보내던 어느 날 아버지는 2차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헝가리의 의용군이 되어서 전쟁터로 나간다. 하지만 전쟁중에 행방불명이 되어서 실종자 처리가 된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독일군이 헝가리를 침공하면서 앤디 그로브의 수난이 계속되었다. 유대인인 그는 지하대피소에서 숨어지내야 했다. 친척들은 독일군에 붙잡혀 홀로코스트의 희생양이 되기도 하였다. 앤디 그로브는 자신이 철저하게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숨기어야 했으며 어머니 역시 서로 아는 척을 해서는 안되었다.


 어느날 앤디 그로브는 친했던 친구에게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알리게 되면서 친구 아버지에게 조사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얼마후 소련군이 독일군을 격퇴하면서 무사히 위기를 벗어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소련군 역시 헝가리의 또 다른 점령군이었다. 아버지가 없었던 앤디그로브와 그의 어머니는 고달프게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다. 1945년 4월이 되어서야 소련군도 철수하고 앤디그로브는 2학년을 뛰어넘고 3학년이 되어 학교로 돌아간다. 이때 마침 죽은줄로만 알았던  아버지가 3년만에 돌아오는 감격을 맛보게 된다.  소련군 프로로 혹독한 날들을 지냈던 그는 오직 아내와 아들에 대한 사랑으로 온갖 고난을 이겨낸다. 하지만 그는 포로수용소 생활로 인하여  몸이 피폐해졌고 나중에는 폐병으로 고생하게 된다. 앤디 그로브의 아버지는 비록 중학교 중퇴였지만 사업적 재능이 뛰어났다. 아버지는 다시 사업을 일으켰고 곧 그의 집안은 경제적으로 회복하게 된다. 


 경제적 감각만큼이나 시사와 정치등의 잡학박사였던 그의 아버지 조지는 2차세계 대전의 승전국인 미국이 앞으로 국제적인 영향력이 커질 것임을 예감하고 앤디 그로브에게 영어과외를 시키기로 결정한다. 가정교사를 구하기 위해서 그의 어머니 마리아는 금목걸이를 팔아야 했다.  비록 앤디 그로브는 정작 영어공부가 싫었지만 아버지의 이런 선택은 나중에 그가 미국으로 유학하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다. 아버지의 교육열이 결국 앤디 그로브의 오늘을 만들어 냈다. 


피아니스트 출신인 어머니는 교사를 고용해서 피오노 레슨을 받도록 했다. 앤디 그로브는 피아노역시 배우고 싶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강권으로 억지로 수업을 받아야했다. 당시 배운 피아노는 그가 지금 가장 좋아하는 취미인 뮤지컬을 공부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앤디 그로브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수학도 따로 개인교습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학교를 다닐 때 수학을 가장 좋아했는데 그래서 앤디 그로브의 수학성적에 각별하게 신경을 썼고 과외까지 시켰다. 이와 같은 부모님들의 열성적인 교육관 덕분에 그는 학교에서 알아주는 우등생이었다.


 선생님들은 앤디 그로브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고 그에 대한 칭찬이 끊이지 않았다. 학부모 모임에서 선생님들은 공개적으로 앤디 그로브를 모범적인 학생으로 칭찬하였고 모임에 참석한 그의 부모님들은 항상 뿌듯함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학교의 친구들은 앤디그로브가 공부만 잘하는 학생이라는 인식을 가졌는데 그는 이러한 선입관을 깨기 위해서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는 해군 제독 호레이쇼 혼블로어를 소재로한 소설을 감명깊게 읽었다. 이 책을 계기로 그는 작가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한다. 어느 날 우등생이었던 친구가 방황하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다.


 소설을 완성한  그는 학교내의 독서모임에 발표하여 일약 교내의 스타로 등극한다. 지금도 여러 권의 저서를 베스트셀러에 올려 놓으면서 뛰어난 문필가로 명성이  높은 그는 신문사에 기사를 쓰는 아마추어 저널리스트로 활약하기 까지 한다. 또한 여자와의 데이트를 꿈꾸며 그는 댄스학원을 다녔으며 펜싱과 수영등 다양한 운동을 즐겼다. 그가 특히 좋아했던 것은 오페라였다. 공연장에서 카르멘을 관람한 후에 완전히 뮤지컬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그에게 최고의 즐거움은 뮤지컬 공연을 보는 것이었다. 


그는 장래에 화학자가 되고 싶어했다. 여러가지의 용액을 합쳐서 전혀 다른 새로운 물체를만드는 것에 그는 매료되었다.  화학의 세계는 그를 마술사로 만드는 기분이었다. 그는 매일 집에서 화학실험을 하면서 놀았고 어느날은 직접 다이나 마이트를 만들기까지 하였다.  결국 그는 뛰어난 학업 성적이 인정받아서 헝가리 최고의 명문인 부다페스트 대학교의 화학과로 진학한다. 자신이 그토록 좋아했던 화학분야를 대학에서 공부하게 된 그는 마음이 맞는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면서 최고의 시간을 가진다.


 그는 틈틈히 성악을 공부했고 학교에서 공연을 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카누를 하면서 살을 뺀 그는 운동도 더욱 열심히 하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던 어느날 헝가리의 정치상황이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암울한 시기를 겪게 된다. 당시 헝가리는 공산국가로써 소련과 각별한 관계였다. 이에 헝가리의 시민들은 소련과 결별하고 새로운 민주화를 이루자는 시위를 벌였다. 앤디 그로브도 당시의 민주화 시위에 참석했다. 하지만 소련이 헝가리를 침공하면서 이른바 10월의 민주혁명은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이미 2차세계대전으로 전쟁이라면 진절머리가 났던 그의 부모들은 소련군들이 헝가리 여러지역을 점령하자 아들인 앤디 그로브의 미래를 위해 해외로 도피 시킬 생각을 한다. 처음 앤디 그로브는 부모님을 두고서 떠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상황이 더욱 급박하게 돌아가자 결국 그는 망명을 선택한다.  앤디 그로브는 미국에 있는 고모집으로 가기로 결정한후에 도피계획을 세운다. 당시 헝가리사람들은 대규모로 국경을 넘어 탈출하는 사례가 많아서 심야시간에는 통행금지였고 검색도 강화되었다. 당시 정국이 불안한 시절이었기 때문에  탈출에 실패하면 앤디 그로브는 필연적으로 신변상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앤디 그로브는 국경근처에 가본적도 없기 때문에 탈출을 위한 루트를 알수가 없었다. 기차를 운전하는 사람을 포섭해서 길을 안내받기로하고 돈을 건냈지만 사기를 당하고 만다. 하지만 다행히 새로운 가이드를 만나게 되고 그가 지시하는 길을 통해서 국경근처에 가게 된다.  불빛이 보이는 집을 향해서 달리라는 가이드의 말을 듣고서 그는 전속력으로 숲속을 달렸으며  드디어 오스트리아 국경으로 당도하게 된다. 하지만 탈출의 기쁨도 잠시였다. 그는 미국이외에 아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난민으로 인정받아야만 했다. 난민은 미국의 관계자들과의 면접으로 결정되었다. 아버지가 어린시절부터 공부를 시켰던 영어가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앤디 그로브의 영어실력이 난민으로 인정받기에는 좋은 조건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난민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결과발표를 본 그는 출구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치달은 느낌이었다. 충격속에서 그는 미국 관계자들을 향해서 분노를 표출했으며 제발 미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큰소리로 호소하였다. 그의 그런 모습에서 열정을 느낀 관계자들은 기회를 주기로 결정한다. 드디어 앤디 그로브는 1956년 2주간의 항해 끝에 미국의 뉴욕항에 도착하며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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