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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성공신화의 비밀(1) 




“생산적인 나르시스트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들은 아버지가 부재하거나 약한 가정에서 자라났다는 거에요. 오바마, 클린터, 레이건, 닉스이 바로 이런 경우죠.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사람들의 시선 사이에서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관점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따르도록 하는 능력을 가지게 됐죠.”


-리더쉽 연구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마코비(Michael Maccoby) 타임즈 온라인 2009년 8월 16일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단순한 창업자가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곧 애플이고 애플이 곧 스티브 잡스다.  애플에서 근무했던 한 직원에 의하면 애플은 만개의 생명을 가진 스티브 잡스라고 표현할 정도다. 스티브 잡스를 빼놓고서는 결코 애플을 논 할 수 없다. 애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스티브 잡스를 이해하여야 한다. 애플의 모습 곳곳에서 스티브 잡스의 흔적이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를 아는 것은 애플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 내면의 영혼까지 이해하는 길을 제시해준다. 이 책은 애플에 관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창업이야기가 아니라 스티브 잡스로 부터 시작한다. 그의 삶 하나 하나를 보면 결국 애플은 스티브 잡스의 확장판이라는 것을 알게 될것이며 애플과 스티브 잡스는 결코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선 그의 가정 환경 이야기를 해보자. 그의 가정 환경을 이해하면 왜 애플이 혁신을 넘어서 시대를 리드하는 혁명적인 회사가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1955년 2월 24일 대학원생으로 동거를 하던 압둘파타 잔달리(Abdulfattah Jandali)와 조앤 쉬블(Joanne Schieble)사이에서 태어난다. 미혼모였던 그의 어머니는 스티브 잡스를 양육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대학교육을 시켜준다는 조건으로 폴(Paul)과 클라라(Clara) 잡스 부부에게 입양시켰다. 폴 잡스는 고등학교를 중퇴했지만 해군에 입대해서 정비병이 되었으며 제대 후에는 기계공으로 일하였다. 


클라라와 결혼 한 그는 10년간 아이가 없자 입양을 결정했다. 스티브 잡스를 첫번째 자식으로 맞이한 그들은 모든 사랑을 담아 성심 성의껏 스티브 잡스를 양육했다. 어른이 되어서 누군가가 스티브 잡스에게 그의 부모를 양부모라고 칭하면 바로 친부모로 수정을 요구할 정도로 부모와의 관계는 좋았다. 말썽꾸러기였던 스티브 잡스는 이런 저런 사고를 일으켰지만 부모들은 스티브 잡스에게 뭔가를 강요하기보다는 자유롭게 스티브 잡스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도록 믿고 따라주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사춘기 시절 자신이 입양되었음을 알게 되었으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느꼈다. 그의 이런 감정은 그대로 세상에 대한 반항 정신으로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기성세대의 권위로 가득 채워진 학교에 적응하는 것을 힘들어 했으며 60년대 생겨난 자유분방한 생활과 탈 사회적인 정신으로 대표되는 히피문화에 흠뻑 빠져 들었다. 


스티브 잡스는 기성세대의 관습을 파괴하는 데 게의치 않았다. 이런 대표적인 예로는 블루 박스(Blue Box)가 있다. 블루 박스는 미국의 장거린 통신망을 교란하여 공짜로 전화를 걸게 해주는 불법장치였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거리낌 없이 이런 해킹 도구를 만들어서는 사람들에게 150달러에 팔기까지 하였다. 그는 블루박스로 꽤 짭짤한 수익을 얻은 동시에 당시 히피들 세계에게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비록 불법이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기간 시설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에 짜릿함을 느꼈다.


어린 시절부터 골치 아픈 사고 뭉치였던 스티브 잡스였지만 양 부모님들은 항상 애정을 가지고 그의 의견을 따라주었다. 스티브 잡스는 마운트 뷰의 크리튼던 중학교를 다녔었는데 학교가 마음에 안들었던 그는 부모님에게 전학을 시켜주지 않으면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그의 부모님들은 스티브 잡스의 고집을 꺽을 수 없었고 가족 모두가 로스 앨토스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 대학교(Reed College) 물리학과에 진학하는 것 역시 순전히 스티브 잡스의 의지였다. 학비가 비쌌을뿐 아니라 집 하고도 너무 멀었기 때문에 처음에 양 부모들은  반대 했으나 결국은 스티브 잡스의 생각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평생 모은 돈을 대학교 등록금으로 모두 썼다는 사실을 알게된 스티브 잡스는 단 한학기만에 대학을 중퇴하고 만다. 하지만 그 후에도 스티브 잡스는 철저히 자신이 의지에 따라서 하고 싶은 것을 다하면서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그는 중퇴한 이후 집에 돌아와서 당시 세계최고의 게임회사였던 아타리(Atari)사에 취직하더니 돌연 선불교에 입문을 하면서 오리건주의 사과 과수원에서 공동체생활을 하였고 또 어느 날 갑자기 친구와 함께 훌쩍 인도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의 부모님들은 대학을 나오지 않은 노동자 계층이었고 자식들에게 자신과 같은 인생을 살도록 강요하지는 않았다. 이는 스티브 잡스에게 필생의 라이벌인 빌 게이츠의 가정환경과는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빌 게이츠는 지역의 유명 변호사인 빌 게이츠 2세와 사교계의 유명인사였던 메리 맥스웰 사이에서 태어난다. 덕분에 빌게이츠는 어린 시절부터 유복한 생활을 하였고 하버드 대학교보다 학비가 3배나 더 비싼 명문 사립 학교인 레이크 사이드를 다녔다.


 그런데 부모님들이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면 자녀들은 부모님의 길을 따라가려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빌 게이츠는 아버지를 따라서 변호사가 되려고 했지만 스티브 잡스는 부모님의 의지가 아니라  철저히 자신의 생각에 따라서 인생을 개척하려 했다. 그들의 이런 성향은 창의성과 사업방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빌 게이츠는 성공한 부모님의 모델을 그대로 따라가듯이 사업에 있어서도 성공한 기업의 모델들을 따라갔지만 기존 틀에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스티브 잡스는 기존의 성공법칙을 완전히 파괴하는 혁명적인 제품으로 세상을 바꾸는 존재가 되었다.


<애플 성공신화의 비밀은 매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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