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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에게도 수많은 위기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그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준 것은 인터넷 거품이 터졌던 2000년대 초반이었다. 2000년 손정의의 재산은 760억 달러로 전 세계 IT 인사중에서 빌 게이츠에 이어 2위에 오른다. 비록 3일간에 그쳤지만 빌 게이츠의 재산을 넘어선 적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 거품이 꺼지면서 750억 달러에 이르던 손정의의 재산은 10억 달러로 쪼그라 든다. 이는 그가 투자한 인터넷 회사의 주가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특히 소프트뱅크의 주가는 100분의 1로 떨어지는 비운을 겪게 된다. 그에게 쏟아졌던 온갖 찬사와 칭찬들은 어느덧 그를 비웃고 비난하는 기사로 도배된다.


위기의 순간 손정의는 움츠려들기 보다는 더욱 과감한 사업을 실행한다. 바로 거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인터넷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소프트뱅크에 투자해서 큰 돈을 날린 주주들은 손정의의 계획에 대해서 격하게 비난하였지만 손정의는 6시간 동안 서서 주주들의 의견을 끝까지 경청하고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밝힌다. 처음 손정의를 비난하던 주주들도 손정의의 태도와 말에 감동하였고 나중에는 박수를 치며 손정의를 격려하게 된다.


손정의는 초고속인터넷 사업을 이끌 100명의 인재를 단 3일 만에 규합한다. 문제는 초고속인터넷 사업에 아무런 경험과 기술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손정의에게 기적처럼 도움을 주는 존재가 생겨난다. 바로 한국이었다. 한국은 1990년대 후반부터 초고속인터넷 사업이 시작되면서 관련 기술과 노하우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손정의는 한국기업의 도움을 받아 일본에 초고속인터넷선을 구축하게 된다. 


2001년 6월 19일 한달 이용료 990엔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야후 BB를 발표한다. 당시 초고속인터넷 서비스의 가격은 6600엔정도 였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큰 화제가 되었다. 이렇게 파격적인 가격에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모뎀 100만개를 선구입하는 조건으로 좀 더 싸게 모뎀을 공급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회사의 자금은 거의 바닥이 난 상황이었고 은행에서는 상대도 안해주던 시절이었다. 때문에 초고속인터넷에 투자하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미국 야후의 본사 주식 같은 자산을 매각해서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손정의와 1990년 초부터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던 기타오 요시타카와 심각한 갈등을 겪는다. 소프트뱅크의 최고 재무책임자인(CFO)인 기타오 요시타카는 미래가 불확실한 초고속인터넷 사업에 무리한 투자를 한다고 지적했지만 손정의를 이를 듣지않고 계속해서 투자를 감행한다. 결국 이사회 멤버였던 기타오 요시타카는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서 회사를 일부 분리하는 방식으로 독립을 하게 된다. 기타오 요시타카와의 결별은 큰 고통이었지만 책임지고 미래를 여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손정의는 하루 18시간 일에 매달렸다. 목욕할 시간이 없어서 옷에서 냄새가 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새벽 3시에 회의를 열정도로 강행군을 펼치며 초고속인터넷 사업에 전념한다. 서비스가 개시한지 11개월 만에 백만 명의 가입자를 모으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지만 자금사정은 계속 악화되어서 2003년에는 190억 엔을 차입해야할 정도였다. 소프트뱅크는 5년 연속 적자에 시달리지만 손정의는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초고속인터넷 사업에 집중한다. 그리고 드디어 2006년 야후 BB의 가입자는 500만 명을 돌파하면서 회사도 흑자를 기록하게 된다. 마침 중국에 인터넷 붐이 일어나면서 그가 투자한 돈이 10배이상의 가치로 상승한다. 덕분에 손정의 재산은 2조엔을 넘어서면서 일본 최고 갑부로 등극하게 된다.


하지만 손정의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큰 모험을 찾는 사람이었다. 회사가 재정적으로 여유를 찾기 시작하자 미래는 손안의 컴퓨터 시대가 열릴 것이라며 보다폰 재팬을 1조 8천억 엔에 인수한다.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되는 보다폰 재팬 인수를 위해 손정의는 일정한 수익을 올리지 못하면 경영권을 박탈한다는 각서를 써주고 은행으로부터 1조 2800억 엔을 빌린다. 보다폰 재팬은 통화품질에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고작 1450만 명의 고객을 확보한 3위 업체에 불과했다. 그래서 손정의가 실패를 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다.


손정의는 이동통신 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화이트 플랜’이라는 파격적인 요금제도를 들고 나온다. 화이트 플랜의 핵심은 오전 1시부터 저녁 9시까지 소프트뱅크 모바일 가입자간에 공짜로 통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화이트 플랜은 일본 이동통신 시장에 일대 파란을 불러 일으켰고 덕분에 2007년 소프트 뱅크는 사상 최대의 순이익을 기록하게 된다.


그런데 손정의가 준비한 진짜 카드는 이게 아니었다. 손정의는 보다폰 재팬을 인수하기전에 스티브 잡스를 만난다. (참고로, 손정의는 스티브 잡스와 오랜 친분을 맺고 있었다. 1980년대 중반 애플에서 쫓겨난 후 넥스트를 운영 중이던 스티브 잡스를 오라클의 CEO인 래리 앨리슨의 집에서 만나게 된다. 둘은 만나자마자 비즈니스와 인생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고 곧 친구 사이가 된다.) 손정의는 아이팟에 휴대전화 기능을 넣은 휴대폰을 일본에 팔고 싶다고 말한다. 이에 스티브 잡스는 외부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처음이라면서 지금 여러 가지를 생각중이니 이동통신 라이선스를 따놓으라고 화답한다. 사실 손정의가 보다폰 재팬을 인수한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아이폰의 등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008년 드디어 아이폰 3G가 일본에 발매가 된다. 발매 첫날에는 제품을 사기 위해 줄까지 생겼지만 실제 판매는 매우 미미했다. 일본 사실 외국산 휴대폰의 무덤으로 불리었던 곳이다. 당시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의욕적으로 시장에 진출했다가 참패를 기록하고 철수하거나 사업을 축소시켜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아이폰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고 아이폰 3G만 보면 분명 실패였다. 


하지만 아이폰 3GS가 나온 이후 아이폰이 그야말로 일본시장을 뒤흔든다. 그래서 일본에 아이폰을 독점으로 공급하는 소프트뱅크의 실적도 매분기 신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2011년 5월 9일 발표된 소프트뱅크의 2010년(회계연도상 2010년 4월~ 2011년 3월)의 회계자료를 보면 매출은 3조 46억 엔을 기록하였고 순이익도 전년대비 96.2% 증가한 1879억 엔을 기록한다. 이는 일본 기업중에서 3위에 해당한다. 과거 손정의에 대해서 왜 그가 그렇게 대단하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표했던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인터넷 거품으로 위기에 처한 손정의가 회사를 부활시키는 모습을 보면 이제 더 이상 의문을 가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위기가 와도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과감한 도전으로 이를 이겨낸 손정의는 어느덧 월스트리트 저널이 스티브 잡스를 이을 인물로 뽑을 정도로 세계적인 거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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