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화투회사에서 세계 최고 게임회사로 변신시킨 야마우치 히로시는 시대가 변한 만큼 새로운 리더쉽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21세기가 오면 은퇴를 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많은 언론에서는 그의 후계자와 관련된 여러 예상들이 쏟아졌다. 가장 강력한 후보는 야마우치 히로시의 데릴사위이자 닌텐도 어메리카의 사장이었던 아라카와 미노루였다.  1946년 교토의 부유한 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난 아라카와 미노루는 교토대학을 졸업하고 MIT 대학을 유학한 전형적인 엘리트였다.  파티에서 첫눈에 반한 야마우치 히로시의 딸 요코와 결혼을 한 후 캐나다의 밴쿠버에서 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원래부터 아라카와 미노루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던 야마우치 히로시는 끈질기게 닌텐도에서 함께 일하자고 제의를 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사이가 나뻤던 요코는 남편이 닌텐도에서 일하는 것을 극렬하게 반대했다. 일에 바뻤던 야마우치 히로시는 가정일에 소홀했는데 자신의 남편도 아버지처럼 일에 빼앗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 야마우치 히로시의 원대한 비전에 호의를 품고 있던 아라카와 미노루는 닌텐도가 미국에 지사를 설립하자 사장직을 받아들인다. 그후 아라카와 미노루는 미국시장에서 패미컴과 슈퍼패미컴 그리고 포켓몬등을 대성공 시킴으로써 일본의 닌텐도를 세계의 닌텐도로 만든 공신이 되었다.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직원들의 신망을 얻고 있었으며 다른 일본인들과 다르게 타고난 유머감각으로 언론들과도 관계가 좋았다. 특히 미국시장에서의 활약덕분에 북극에서도 아이스 크림을 팔 수 있는 세일즈맨이라는 명성을 얻었고 실제로 각종 경영관련 상들을 수상했다.


그런데 정작 2002년 야마우치 히로시는 게임회사 닌텐도의 개국공신이자  사위인 아라카와 미노루를 회사에서 퇴임 시킨다. 그리고 닌텐도로 부임한지 단 2년 밖에 안된  이와타 사토루를 사장으로 임명하며 많은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특히 그가 새롭게 발표한 집단 지도체제는 파격 그자체였다.  집단 지도 체제는 사장인 이와타 사토루 이외에도 아사다 아츠시, 모리 히토시, 다케다 겐요, 하타노 신지, 미야모토 시게루 등 6명의 이사들이 공동 대표권을 가지고 회사의 중요한 결정들을 합의를 통해서 결정하는 지도체제이다. 


아사다 아츠시는 회사 경영에 직접 참여하기 보다는 키잡이의 역할을 하고 모리 히토시는 경영총괄 본부장으로써 회사의 재무문제를 전담한다. 영업본부장인 하타노 신지는 주로 라이센스 업무를 담당하면서 다른 회사와의 업무제휴를 추진하는 일을 하였는데 한국에 지사를 세울 때 역시 하타노 신지가 직접 일을 추진하였다. 마리오와 젤다의 전설을 창조한 게임의 신 미야모토 시게루는 정보개발 본부장으로써 소프트웨어 개발을 책임지고 종합 개발 본부의 다케다 겐요는 하드웨어 개발을 총괄하는 구조였다. 이러한 역할 분담 자체는 IT 업체로서는 훌륭한 조직 체제이지만 문제는 중요 안건에 대해서 합의를 전제로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이는 야마우치 히로시가 지난 50여년을 넘게 혼자서 하던 일을 여섯명이 분담 분담하는 것으로 회사운영이 둔해지는 역효과를 가지게 될 것이 뻔했다. 


원래 닌텐도는 야마우치히로시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원맨회사였다. 닌텐도 내에서는 그의 말 한마디가 법이요 진리였으며 야마우치 히로시가 목표를 세우면 직원들은  그 목표를 세우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 야마우치 히로시가 화를 내면 직원들은 모든 것을 다 잃은 사람처럼 좌절하였고 한마디 칭찬이라도 하는 날에는 그것보다 즐겁고 기쁜 것이 없다고 할정도로 야마우치 히로시는 절대적 권위를 가진 통치자였다. 50년을 넘게  닌텐도는 야마우치 히로시라는 원맨체제에 익숙했던 만큼  새로운 사장도 야마우치 히로시 처럼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해야 할텐데 여섯명이나 되는 이사가 공동으로 대표권을 가지는 집단 체제는 많은 전문가들의 우려를 살수 밖에 없었다. 


원래 IT 업계는 발전속도가 빠른 만큼 그 어떤 분야보다도 의사결정 역시 빨라야 한다. 그래서 IT 업계는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하는 CEO가 회사를 장악하기 마련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빌게이츠가 대표적인 인물로써 그들은 회사를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방식으로 경영했다. 허브앤 스포크방식은 수레 바퀴의 중앙축에 살이 연결되어 있듯이 CEO가 회사 전체의 중앙통로가 되어서 각 사업부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관계를 말한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와 빌게이츠는 회사의 허브 역할을 하면서 사업을 직접 챙겼고 이를 통해서 효율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냈다. 


닌텐도 역시 야마우치 히로시를 중심으로 허브 앤 스포크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회사였고 대부분의 IT뿐만 아니라 게임 회사 CEO들은 야마우치 히로시와 같은 비슷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의 총 개발 책임자였던 구타라기 겐 역시 게임사업을 위해서는 확실한 주도권과 통제권을 확보한 리더의 중요성을 설파하였다. 플레이스테이션 사업을 처음 진행할 때는  임원들의 견제로 일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았지만 구타라기 겐이 회사로부터 전폭적인 임무와 권한을 약속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게임사업도 가속도를 내고 탄력을 얻기 시작했는데 그는 이후 게임회사에서는 집단 지도 체제는 안된다고 단언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야마우치 히로시가 3년을 넘게 고민한 끝에 내놓았다는 이와타 사로투 중심의 집단 지도 체제는 당초의 예상과 다르게 완벽하게 성공하였다. 이와타 사토루 사장 특유의 화합과 결단의 리더쉽으로 6인의 집단 지도체제는 환상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 집단 지도체제가 시작된 2002년 이후 닌텐도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서 5041억이었던 매출이 어느덧 2억엔을 넘어서면서 무려 네배가 넘는 초고속 성장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어느덧 이와타 사토루는 일본의 스티브 잡스라는 칭송을 듣고 있으며 야마우치 히로시의 마지막 결단은 그만이 할 수 있는 탁월한 선택이었다면서 어느덧 찬양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왜 야마우치 히로시는 수십년간 닌텐도에 충성한 여러 공신들을 제쳐두고 외부인사 그것도 하청업체 출신인 이와타 사토루를 사장으로 임명했을까? 야마우치 히로시는 그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게임산업에 완벽한 이해를 가진 인물로 한번도 자신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타 사토루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것만으는 뭔가 부족하다.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에 들어 오기까지의 삶의 궤적을 통해서 그가 어떻게 닌텐도의 하청업체 직원에서 사장이 될수 있었는지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닌텐도 처럼 창조한다는 것"  매주 연재 됩니다.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은 저의 페이스북 팬페이지에 접속하셔서 좋아요 버튼좀 눌러주세요.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