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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테어 8800의 인기는 제작사인 MITS도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마침 알테어 8800의 탄생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개인용 컴퓨터 분야 뛰어든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빌게이츠다. 하버드 대학교에 재학중이었던 빌 게이츠는 파퓰러 일렉트로닉스의 표지사진을 보고는 알테어 8800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래밍 언어인 베이직을 개발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였다. 스티브 워즈니악 역시 빌 게이츠처럼 파퓰러 일렉트로닉스의 기사를 읽고 전율을 느꼈다. 당시 HP에서 공학용 계산기를 개발하고 있던 스티브 워즈니악은 기사를 꼼꼼히 읽으면서 자신도 알테어 8800같은 컴퓨터를 직접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워즈니악은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고 주변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마이크로 컴퓨터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알테어 8800 컴퓨터는 인텔의 8080 CPU를 사용했지만 워즈니악의 한달 치 집세보다도 비쌌기 때문에 20달러 정도로 가격이 훨씬 쌌던 모스 테크놀로지의 6502 CPU를 사용하게 된다. HP를 다니면서 틈틈히 개발에 몰두한 워즈니악은 단 3개월만에 컴퓨터를 완성하게 된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자신이 만든 컴퓨터를 홈브루 컴퓨터 클럽((Homebrew Computer Club) )에서 공개했다. 홈브루 컴퓨터 클럽은 마이크로 컴퓨터를 연구하고 기술을 교류하기 위해서 실리콘 밸리에서 결성된 모임이었다. 이 모임에는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같은 컴퓨터 광들이 모여서 컴퓨터 정보도 나누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자랑하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스티브 워즈니악의 기대와는 달리 그의 컴퓨터는 별 반응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런데 마침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서는 빌 게이츠가 유명했다. 그가 만든 프로그래밍 개발 도구인 베이직 이 모임에서 인기였기 때문이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자신도 베이직을 만들면 다른 사람에게 인정 받는 존재가 될 것 같았다. 그는 하드웨어만 존재했던 자신의 컴퓨터에 소프트웨어를 추가할 결심을 한다. 그가 계획한 소프트웨어를 구동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하드웨어 역시 업그레이드 되어야 함을 의미했다. 워즈니악이 컴퓨터를 만드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본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의 작업을 적극 도와주었다. 당시 워즈니악의 컴퓨터의 메모리는 AMI D램을 썼는데 스티브 잡스가 인텔에서 만든 D램을 구해주었다. 사실 인텔 D램은 구하기 힘든 부품이었지만 스티브 잡스는 인텔에 전화를 걸어서 공짜로 얻어냈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자신의 자서전 IWOZ에서 자신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스티브 잡스의 수완을 칭찬할 정도였다. AMI D램에서 인텔의 D램으로 바꾼 덕분에 크기도 줄이고 훨씬 효율적인 구조를 완성할 수 있었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초에 컴퓨터를 팔 생각은 전혀하지 않았다. 자신이 완성한 컴퓨터의 설계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무료로 공개하는 것에 만족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홈브루 컴퓨터 클럽내에서 스티브 워즈니악의 컴퓨터는 여전히 관심밖이었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든 설계도 대로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홈브루 컴퓨터 클럽내에서 워즈니악이 만든 컴퓨터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한 사람은 스티브 잡스 하나밖에 없었다. 사실 워즈니악 자신보다도 그의 컴퓨터를 더 높이 평가한 사람이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의 컴퓨터가 충분히 상업적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직접 컴퓨터를 판매해보고 싶었다. 스티브잡스의 계획에 대해 정작 개발자인 워즈니악은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알테어 8800이 이미 컴퓨터 마니아 사이에서 인기였기 때문에 그의 컴퓨터를 구입해줄 사람이 50명도 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평생에 한번 정도 시도해볼 수 있는 일이라면서 아예 회사를 창업해서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판매하자고 끈질기게 워즈니악을 설득했다. 스티브 잡스는 지금도 그렇지만 젊은 시절부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있어서는 절대적인 능력의 소유자였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결국 스티브 잡스의 강력한 설득에 마음을 바꾸고 자신이 가장 아끼던 물건이었던 HP의 공학용 계산기를 500달러에 팔아서 회사 창업자금을 마련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 역시 폭스바겐 자동차를 팔아서 창업 자금을 더한다. 처음에 회사이름은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워즈니악은 오리건주에 있는 사과농장으로 스티브 잡스를 태워주게 되었다. 그때 갑자기 스티브 잡스는 회사이름으로 애플을 제안하게 된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선불교사람들과 사과농장에서 공동생활을 했었다. 이때 즐거운 추억을 가진 스티브 잡스가 회사이름으로 애플을 생각해낸 것이었다 워즈니악은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인 비틀즈가 세운 회사이름과 똑같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결국 스티브 잡스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둘의 역할분담은 명확했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엔지니어로써 제품개발 전반을 책임졌고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이 할 수 없는 모든 일들을 서포트하였다. 우선 그는 컴퓨터를 판매하기 위해서 상점에 접근했다. 그 중 하나가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서 활동하던 폴 테럴이 운영하는 바이트 숍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폴테럴에 접근해서 50대의 컴퓨터를 주문받는다. 개당 500달러에 공급하기로 했기 때문에 25000달러의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문제는 당시 가지고 있던 돈으로는 도저히 주문받은 컴퓨터를 만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것에 쉽게 포기하는 스티브 잡스가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는 외상으로 부품을 공급받기 위해서 실리콘 밸리 지역의 상점 전체를 돌아 다녔다. 하지만 처음보는 20살의 애송이에게 거액의 부품을 외상으로 공급하는 매장은 없었다.



 그러던 중 키럴프 일렉트로닉스라는 컴퓨터 부품 상점에 들어간 스티브 잡스는 드디어 기회를 잡는다. 매장 관리인 봅 뉴턴이 만약 폴 테럴에게서 50대를 주문받은 것을 확인하고 나면 나중에 외상으로라도 부품을 공급해주겠다면서 스티브 잡스를 돌려 보내려고 했다. 그러자 스티브 잡스는 지금 바로 폴 테럴과 통화를 해야한다면서 적극적으로 설득하였고 할 수 없이 봅 뉴턴은 폴테럴에게 전화를 하게 된다. 폴 테럴과의 계약사실이 확인되자 스티브 잡스는 30일 이내에 부품값을 변제하는 대신 2만 달러까지 외상으로 부품을 가져 갈수 있게 된다.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스티브 워즈니악이 작성한 설계도를 보고서 컴퓨터를 조립하는 일이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친구와 여동생을 동원해서 컴퓨터를 만들도록 했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납기일에 맞추기 위해서 매일 밤샘을 하면서 함께 일에 매달려야만 했다. 그리고 컴퓨터가 완성되고 나면 스티브 잡스는 부모님의 차에 컴퓨터를 싣고 바이트숍에 가져가서 현금과 교환했다. 그들이 처음 거래에서  받은 돈은 6천달러짜리 수표였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세계 최고 기업의 반열에 오른 애플의 첫번째 매출이었다.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은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재미있게 읽으신 분은 저 밑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좋아요 버튼좀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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