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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처럼 창조 한다는 것 <2>


이와타 사토루는 1959년 일본의 삿포루에서 태어난다. 어린 시절부터 천식이 있었던 그는 전학간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며 자라야 했다. 그랬던 이와타 사토루의 인생전체를 바꾸는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휴렛패커드에서 발매한 공학용 전자계산기였다. 휴렛패커드의 전자계산기는 아폴로 11호가 달에 발사 됐을 때 승무원들이 이용해서 많은 젊은이들에게 첨단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기기였다. 애플의 창업자중에 한명인 스티브 워즈니악 역시 HP의 공학용 계산기를 몹시 아꼈던 걸로 유명하다. 또한 델 컴퓨터의 창업자 마이클 델이나 이베이의 창업자 피에르 오미디에르 같은 IT 거장들 역시 전자계산기의 매력에 빠지면서 컴퓨터의 세계로 입문했다.  HP의 공학용 계산기는 당시 가격으로 무려 2백만원이 넘을 정도로 비싼 기계였다. 하지만 이와타 사토루는 이 전자계산기가 무척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신문배달과 접시 닦는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의 노력을 가상히 여기던 아버지는 이와타 사토루가 전자계산기값의 반을 모우자 나머지 돈을 보태줘서 전자계산기를 구입할 수 있게 해준다.


휴렛 패커드의 공학용 전자계산기는 단순히 숫자계산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프로그래밍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초 미니컴퓨터였다. 이와타 사토루는 제대로 된 사용설명서도 없던 HP의 공학용 전자계산기를 철저하게 파고들기로 결심했다. 전자 계산기의 사용자 설명서를 읽어가면서 여러 게임 프로그램들을 개발했다. 그는 직접 자신이 짠 프로그램들을 휴렛팩커드 일본지사에 보내자 이를 본 관계자들은 이와타 사토루의 실력에 깜짝 놀라며 선물을 보내줄 정도였다.


전자계산기에 완전히 미쳐버린 이와타 사토루의 실력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면서 발리볼이나 미사일 사격 게임 등을 개발할 수 있었다. 같은 수업을 듣는 학교 친구에게 자신이 만든 게임을 보여주자 정말 대단한 걸 해냈다면서 진심으로 칭찬하고 그를 격려했다.  이와타 사토루는 자신의 실력으로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자부심이 생겼고 이러한 자신감 덕분에 성격도 점차 활발하고 외향적으로 변해갔다. 이와타 사토루는 아직도 그때의 칭찬이야 말로 오늘날 자신을 있게 고백할 정도로 자신의 일에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친구가 있었던 건 행운이라고 말할 정도다. 


전자계산기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던 이와타 사토루는 일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명문대인 동경공업대의 컴퓨터 공학과에 지원해서 합격을 한다. 하지만 1978년도만 해도 컴퓨터가 별로 보급되어 있지 않아서 컴퓨터 공학과의 교육수준도 별로 그리 높지 않았다. 학교의 수업자체가 이와타 사토루가 알고 있는 것 보다도 뒤떨어 졌었다. 처음에는 학교친구를 규합해서 스터디를 하려고 했지만 친구들은 학교 수업을 받는 것만으로도 벅차했다. 결국 이와타 사토루는 혼자서 컴퓨터 공부를 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코모도어사의 PET 컴퓨터를 구입한 후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혼자서 하는 것은 아무래도 재미가 없었다. 고등 학교시절 친구가 옆에서 응원을 해주었기 때문에 자신의 실력도 일취월장했다고 생각하던 이와타 사토루는 그런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도쿄의 대표적인 상업 중심지역중에 하나인 이케부쿠로역에 있는 세이부 백화점의 컴퓨터 판매점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당시 컴퓨터 판매점은 단순히 컴퓨터만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컴퓨터 고수들이 모여서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는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진정한 고수들은 자신이 직접 짠 컴퓨터 프로그램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이와타 사토루는 매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컴퓨터로 프로그래밍 하는 것을 지켜 보면서 앞에 사람들이 뭔가 잘못하면 지적을 해주고 쉽게 설명을 해주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실력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컴퓨터 판매점의 직원 중 한 명이 영화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에 등장하는 컴퓨터에서 이름을 딴 HAL 연구소라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창업하게 된다. 이때 이와타 사토루의 실력을 잘 알고 있던 점원은 회사에서 개발 업무를 맡아달라면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하였다. 1980년 당시 대학교 2학년생이었던 이와타 사토루는 어차피 학생으로써 동아리 활동을 한다는 생각으로 HAL 연구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결정한다.  HAL 연구소는 아키하바라의 맨션에서 한 명의 정직원과 여섯 명의 아르바이트생으로 시작하였다. 아르바이트 생이었지만 이와타 사토루는 개발할 제품의 계획을 세우고 직접 프로그래밍을 하는 등 회사 개발팀의 실질적인 리더가 되었다. 이와타 사토루의 첫 번째 작품은  당시 텍스트만 표시되었던 컴퓨터에 그래픽이 표현가능 하도록 만들어주는 PCG라는 주변기기를 만들었고 여기에 대응하는 게임 소프트웨어를 제작하였다. 


이와타 사토루는 적은 임금을 받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일 자체가 너무나 좋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프로그래밍의 세계에 더욱 빠져 들어갔다. 결국 이와타 사토루는 학교생활보다는 HAL 연구소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일에 매달렸다.  


대학 졸업 때가 다가오자 대학교 친구들은 모두 대기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와타 사토루는 망설일 것도 없이 정직원이 다섯 명밖에 없었던 HAL 연구소의 정직원이 되기로 결심한다.  일류대학을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작고 초라한 벤처기업인 HAL 연구소에 들어가자 그의 아버지는 6개월을 넘게 대화도 나누려 하지 않을 정도로 화를 냈다. 가족들은 이와타 사토루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고 생각 할 정도로 그의 HAL 연구소행은 대단히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스스로 가족 역사중에서 가장 슬픈 순간이었다고 칭할 정도의 충격을 주면서까지 굳이 왜  HAL 연구소를 선택했을까?  이에 대해 게임 개발자들의 컨퍼런스인 GDC 2006에 참가한 이와타 사토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게임의 프로그래머이자 엔지니어였으며 디자이너였고 마켓터였습니다. 또한 음식을 주문하고 청소를 도왔지요. 그것은 정말 멋진 일이었죠”


 이와타 사토루는 명예와 돈보다는 스스로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자신이 만든 물건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전형적인 장인의 피가 흐르는 인물이었다. 결국 이러한 그의 성향이 닌텐도 최초로 가족이 아닌 인물로 최초의 전문 경영인에 등극할 수 었던 원동력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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