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5회)



실리콘밸리의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변하지 않는다. 작은 팀이 한정된 자원으로 놀라운 일을 이룬다. 그리고 벤처 자본가의 지원을 얻어, 대단한 회사를 만들어낸다.

‐ 구글 CEO 에릭 슈미츠


창업 초기 동아리 수준에 불과했던 애플은 마이크 마쿨라의 합류 이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마이크 마쿨라는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에게 없던 것들을 완벽하게 보충해 주었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엔지니어로서,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기획자로서 컴퓨터 개발에 매진했지만 둘이서만 사업을 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아무리 마케팅과 영업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어도 그는 회계장부도 읽지 못할 정도로 경영지식이 전무했고, 회사를 운영하기에는 사회경험이 부족했다. 아직 아마추어에 불과한 이들에게는 마이크 마쿨라처럼 이미 성공을 경험한 코치가 필요했다. 꿈꾸는 두 몽상가에게 마이크 마쿨라는 멘토가 되어서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고,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프로가 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애플2 컴퓨터는 1977년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웨스트코스트 컴퓨터페어라는 대규모 행사에 최초로 공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두 창업자는 이런 행사에 익숙하지 못했다. 이때 마이크 마쿨라는 옷 입는 방법부터 사람을 대하는 말투와 행동, 그리고 제품을 소개하는 방식까지 친절하게 설명했다.

내셔널 세미컨덕터(National Semiconductor)에서 이사로 재직 중이었던 마이크 스콧을 회사 사장으로 영입한 마이크 마쿨라는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서 더 많은 돈을 투자받으려고 했다. 마이크 마쿨라는 인텔에 자금을 투자해서 거액의 돈을 벌어들인 아서 록을 찾아간다. 아서 록은 마이크 마쿨라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자금을 투자했을 뿐만 아니라 애플의 이사진에 합류하게 된다. 아서 록은 실리콘밸리에서 벤처 캐피탈의 원조로 꼽는 사람이었던 만큼 아서 록의 투자와 합류는 애플이라는 회사의 성공 가능성을 더 높이는 것이었다. 아서 록은 록펠러 가문을 찾아가서 애플을 소개하고, 50만 달러의 투자를 이끌어낸다. 

마이크 마쿨라는 애플2 컴퓨터의 성공에 중요한 발판이 되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원래 애플2 컴퓨터의 저장 장치는 카세트 테이프여서 데이터를 컴퓨터로 불러오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플로피 디스크는 획기적인 속도를 자랑했고, 마이크 마쿨라는 기업에서도 사랑받는 컴퓨터가 되려면 플로피 디스크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마이크 마쿨라의 아이디어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애플2의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왜냐하면 플로피 디스크는 애플2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비지캘크(엑셀 같은 스프트레드 시트 프로그램의 원조)와 찰떡궁합이었기 때문이다. 플로피 디스크에 저장된 비지캘크를 판매하기 시작하자 애플2 컴퓨터의 판매량도 덩달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비지캘크는 그동안 컴퓨터 애호가들의 취미와 게임기로 사용되던 애플2 컴퓨터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비지캘크의 간편한 수식계산 기능 덕분에 기업에서 회계장부를 작성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미국에서는 개인이 직접 세금 계산을 해야 했는데, 비지캘크를 이용하면 훨씬 간편했다. 비지캘크의 유용성을 알게 된 사람들은 오직 비지캘크를 사용하기 위해서 애플2 컴퓨터를 구입할 정도였다. 비지캘크는 IT업계에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팔게 한다.’는 교훈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되었다. 

하드웨어를 구입하게 만들 정도로 뛰어난 소프트웨어를 뜻하는 ‘킬러 앱(Killer App)’이라는 말도 비지캘크 덕분에 생겨났다. 사실 비지캘크가 나오기 전만 해도 애플2 컴퓨터는 코모도어 PET와 라디오 샤크의 TRS‐80과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그런데 비지캘크가 나온 이후 애플2 컴퓨터의 판매량이 수직 상승하면서 나머지 회사를 압도하게 된다. 실제 수치를 보면 1978년 애플2 컴퓨터의 판매량은 7,600대였지만, 비지캘크가 등장한 1979년에는 35,100대가 나갔고 1980년에는 78,000대나 판매된다. 

이러한 판매량 증가 덕분에 애플의 매출은 매년 100%씩 성장했고, 창업한 지 단 4년 만에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1980년 12월 12일 애플의 주식이 공개되자 한 시간 만에 450만 주나 되는 모든 주식이 팔렸고, 그날 하루 동안 주식가격은 32%나 상승한다. 덕분에 스티브 잡스는 하루아침에 2억 1,750만 달러를 보유한 억만장자가 되었으며 스티브 워즈니악의 자산 역시 1억 1,600만 달러를 넘어섰다. 마이크 마쿨라의 주식 역시 2억 300만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았는데 이것은 그가 투자한 자금의 2,000%를 넘는 금액이었다. 포드 자동차 이후 가장 성공적인 애플의 주식공개는 미국 전역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특히 25살에 불과했던 스티브 잡스는 미국에서 가장 젊은 부자로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개인용 컴퓨터라는 신세계를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얼굴도 잘 생긴 스티브 잡스는 미국 젊은이들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애플 탄생 신화의 비밀


* 부모님의 사랑과 교육열

대학에 보내기 위해 평생 모은 돈을 한 번에 써버린 부모님의 사랑을 빼놓고, 스티브 잡스의 현재를 말할 수는 없다.


* 컴퓨터와 사랑에 빠지다

그가 컴퓨터로 성공한 것은 그가 누구보다도 컴퓨터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 좋은 친구를 곁에 두다

기획이 뛰어난 스티브 잡스에게 기술 지향적인 스티브 워즈니악과의 결합은 환상적인 결과를 낳았다.



* 포기를 모르는 열정을 지니다

스티브 잡스는 많은 사람에게 거절을 당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였다.



* 경험많은 경영자와의 조화


인텔에서 마케팅 담당자인 마이크 마쿨라의 합류로 동아리 수준이었던 애플은 주식회사로 변모하게 된다.



* 실리콘밸리의 벤처 문화

애플은 실적이 아니라 아이디어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관대한 실리콘밸리의 벤처문화 덕을 봤다.




<"애플 처럼 창조한다는 것"  매주 연재 됩니다. 다음에는 매킨토시 개발과 존 스컬리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은 저의 페이스북 팬페이지에 접속하셔서 좋아요 버튼좀 눌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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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