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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처럼창조한다는것(5)  존 스컬리의 시대


나는 항상 애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 인생의 실과 애플의 실이 서로 직물처럼 엮여 있으면 좋겠습니다. 애플에 내가 몇 년간 없을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돌아올 겁니다. 

‐ 스티브 잡스, 1985년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 중에서


사업은 결국 실적으로 말하는 세계다. 실적이 좋으면 찬양받지만, 실적이 떨어지면 온갖 비난에 시달려야 한다. 애플 컴퓨터의 창업자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창조한 영웅으로 칭송받던 스티브 잡스였지만 그가 온 전력을 쏟아 부은 매킨토시의 실적이 부진하자 함께 추락하기 시작한다. 당초 목표치였던 200만 대에 턱없이 부족한 25만 대만을 판매하는 것에 그쳤기 때문이다. 매킨토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회사 사람들에게 스티브 잡스는 독선적인 행동들을 빈번하게 벌였었고, 이 때문에 사내에 많은 반대파들을 만들었다. 급기야 스티브 잡스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세력들이 결집하여 1985년 4월 11일 이사회에서 그의 모든 실권을 빼앗았다.


아이러니한 점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축출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그가 직접 뉴욕까지 날아가서 스카우트한 존 스컬리(John Sculley)라는 점이다. 펩시의 사장인 존 스컬리는 1980년대 초반 펩시 세대라는 광고 캠페인을 통해서 펩시가 코카콜라를 넘어 세계 최고의 음료회사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마케팅 전문가였다. 애플로부터 CEO 영입을 의뢰받은 헤드헌터 업체인 에드 윙구쓰(Ed Winguth)는 존 스컬리와 접촉한다. 하지만 존 스컬리는 이를 단번에 거절했다. 이때 스티브 잡스가 나선 것이다. 뉴욕으로 직접 날아가서 존 스컬리에게 개발 중이던 매킨토시를 보여준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그 유명한 한 마디를 남긴다.


“남은 인생을 설탕물이나 팔고 살 건가요?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원하십니까?”


도발적인 발언에 애플에 매료되고, 함께 일할 결심을 한 그는 애플로 CEO 면접을 보러 온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존 스컬리를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했는데, 매킨토시 화면에서 펩시 뚜껑과 펩시캔이 여러 창 안에서 튀어나와서 이리저리 튕기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이 화면을 보고 더욱 깊은 인상을 받았다. 확실히 스티브 잡스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이미 애플 컴퓨터의 성공으로 전국적인 유명 인사였던 스티브 잡스가 직접 자신을 챙겨주자 더욱 감동했고, CEO 취임연설에서 애플로 온 이유가 “오직 스티브 잡스와 함께 일하기 위해서”라고 밝힐 정도였다. 처음 둘의 사이는 환상의 짝꿍이었다. 존 스컬리는 5년만 CEO를 하고 나중에는 스티브 잡스에게 물려줄 생각이었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의 스승이 되어서 마케팅과 기업경영에서 쌓은 자신의 모든 노하우를 전수해 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스티브 잡스의 대단함을 칭찬하며 항상 존중해 왔지만, 매킨토시의 판매량이 줄어들자 스티브 잡스를 몰아내는 일에 직접 나서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쉽게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 존 스컬리에게 실권을 빼앗긴 그는 다시 경영권을 회복하기 위한 비밀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쿠데타는 실패였다. 마케팅 이사인 장 루이 가세에게 자신의 전략을 설명했다가 오히려 큰 화를 자초하게 된다. 장 루이 가세는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중국으로 출장 가려던 존 스컬리에게 알렸고, 출장을 취소한 존 스컬리는 다음날 긴급회의를 소집한다. 그리고 이사진에게 자신과 스티브 잡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하며 익명의 투표를 재촉했다. 투표 결과 존 스컬리가 선택받았고, 스티브 잡스는 쓸쓸히 회의실을 나오게 된다. 권력싸움에서 패배한 스티브 잡스는 애플 본사 건물에서 나와서는 ‘시베리아’라고 불리는 작은 건물로 쫓겨났다. 회사에 나가봐야 정신건강에 해로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사무실에 나가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는 일 자체를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의자에 편히 앉아서 서류에 사인이나 하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제품을 만드는 그런 일이 필요했다. 애플에서는 더 이상 제품 개발을 진두지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그는 직접 회사를 창업할 결심을 한다. 애플2 컴퓨터를 통해 중ㆍ고등학생들을 위한 교육용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듯이 대학교육에도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그리고 1985년 9월 17일 애플에 정식 사직서를 직접 제출한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직원 중 여섯 명을 데리고 넥스트(NeXT)를 창업한 후 애플의 주식을 단 한 주만 남겨두고 모두 처분한다. 이렇게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인연은 완전히 끊기는 듯 보였다.


스티브 잡스가 떠난 후 존 스컬리가 애플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존 스컬리는 스티브 잡스가 이끌던 인재들을 모두 쓸어내었다. 내부분열을 최소화하고자 한 것이다. 그동안 사내 부서들은 애플2, 애플3, 리사, 매킨토시 등의 팀 단위로 나뉘어서 서로 경쟁했는데 이들 부서를 하나의 연구부서로 통합하고, 여기에 마케팅팀을 만들어서 두 부서가 긴밀히 협력하도록 했다. 


당면과제는 창업 후 처음 발생한 적자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였다. 그의 골칫거리는 스티브 잡스의 뛰어난 선견지명 덕분에 해결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가 사무실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고품질 인쇄가 가능한 프린터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몰두하였는데 이런 노력은 1985년 앨더스사(Aldus corp.)에서 등장한 페이지메이커(PageMaker)로 빛을 보게 되었다. 페이지메이커는 전자출판 혁명을 불러일으키며 추락하던 매킨토시의 컬러 소프트웨어가 된다. 사람들은 페이지메이커라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하기 위해서 매킨토시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 후 어도비에서 포토샵(photoshop)이라는 이미지 처리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면서 매킨토시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도 사랑받는다. 애플2가 가정과 교육용 시장을 창조하였고, IBM PC가 기업용 시장에 안착했듯이 매킨토시는 프리랜서와 전문가들을 타깃으로 한 시장에서 강력한 포지션을 구축하게 되었다. 


존 스컬리는 이때 마진율 55% 정책을 고수하며 회사의 수익을 극대화한다. 당시만 해도 매킨토시를 대체할 컴퓨터는 없었고, 매킨토시 사용자층은 전문가들이었기 때문에 존 스컬리의 선택은 옳은 듯 했다. 1985년 25만 대 정도 판매되던 매킨토시는 1989년에는 300만 대 이상이 판매되었다. 어느덧 애플은 세계 1위의 컴퓨터 제조업체로 우뚝 선다. 하지만 90년대로 들어서자 문제점들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 시작은 존 스컬리의 판단착오 때문이었다. 


매킨토시의 힘은 바로 독창적인 제품이라는 것인데, 마이크로소프트가 매킨토시를 베껴서 윈도우를 내놓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스티브 잡스의 요청으로 매킨토시에서 구동되는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었다. 처음 스티브 잡스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찾아갔을 때만 해도 빌 게이츠는 매킨토시에 부정적이었다. 이에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방문하도록 요청했고, 직접 매킨토시 시제품을 보고는 완전히 반해버린다. 빌 게이츠는 스티브 잡스에게 현재 엑셀로 이름이 바뀐 멀티플랜과 워드를 매킨토시용으로 개발해 주겠노라고 말한다. 제휴관계를 맺은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에 개발용으로 매킨토시 시제품을 보내준다. 빌 게이츠는 매킨토시 시제품을 ‘SAND(Steve's Amazing New Device)’라고 부를 정도로 사랑했다. 매킨토시와 같은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야말로 미래 기술이라고 확신한 빌 게이츠는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참고해서 윈도우를 개발한다. 1985년 11월 20일 윈도우가 세상에 공개되자 존 스컬리는 이에 분노했다.


법적 소송까지 고려했던 존 스컬리는 이틀 후 라스베이거스에서 빌 게이츠를 만나서는 애플 역사상 최악으로 기록되는 계약을 하고 만다. 빌 게이츠는 윈도우 등장을 1년 정도 연기하는 조건으로 매킨토시에 사용된 애플의 고유 인터페이스를 마이크로소프트가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고 했다. 존 스컬리는 엑셀이 매킨토시 독점으로 1년간 묶여 있게 된다는 사실에 너무나 기쁜 나머지 맥 OS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라이선스하는 계약을 했다. 스티브 잡스라면 자신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맥 OS를 그렇게 쉽게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에 대해 무지했던 존 스컬리는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 계약을 맺은 것인지도 모른 채 빌 게이츠가 원하는 대로 맥 OS의 인터페이스를 선물로 바친다. 


윈도우 2.0이 나오자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를 고소하지만 1985년 맺은 계약 때문에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판결을 받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더 이상 겁날 것이 없었다. 1990년에 등장한 윈도우 3.0은 기존의 형편없던 윈도우가 아니었다. 윈도우 3.0은 1년 동안 무려 4백만 개가 판매되는 돌풍을 일으킨다. 이전만 해도 쓸 만한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는 맥 OS밖에 없었지만 윈도우 3.0 이후 비로소 경쟁자가 생긴 것이다. 기업의 경우 누군가 뒤에서 추격할 때는 남보다 더 뛰어난 제품을 만들면 되지만 안타깝게도 존 스컬리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스티브 잡스가 뿌려 놓은 축복에 도취된 그는 미래 준비에 소홀했다. 


이것이 바로 스티브 잡스와 존 스컬리의 결정적인 차이다.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파는 능력은 있었지만 무엇인가를 새롭게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존 스컬리는 기술 개발을 잘 몰랐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었는데 오히려 이러한 자율성이 독이 되어 존 스컬리에게 돌아갔다. 매년 제품 개발에 5억 달러씩이나 투입됐지만 비용과 인력에 비해서 나오는 결과물은 형편없었다. 존 스컬리는 한때 ‘Aquarius’라는 CPU 개발에 거액을 투입하였다. 개발을 위해 1,500만 달러짜리 슈퍼컴퓨터까지 구입했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이 프로젝트는 취소되었다. 


존 스컬리는 서서히 회사에서의 통제력을 잃어갔다. 장 루이 가세(Jean Louis Gassée)는 스티브 잡스의 반란음모를 알려준 인물로 그 후 존 스컬리의 2인자가 되었지만, 몇 가지 치명적인 실수로 존 스컬리를 곤경에 처하게 만든다. 


우선 애플 매킨토시 성공에 절대적인 견인차 역할을 했던 어도비(adobe)와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스티브 잡스는 모니터 화면상의 그림과 글씨들을 프린터를 통해서 종이에 인쇄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마침 어도비는 최적의 상태로 쉽게 인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포스트스크립트’라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스티브 잡스는 이를 라이선스 받아 그동안의 골칫거리를 해결한다. 어도비 기술을 프린터에 적용하여 탄생한 것이 레이저 라이터였고, 이러한 솔루션 덕분에 애플의 매킨토시는 출판혁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단순히 기술만 사온 것이 아니라 250만 달러에 어도비의 지분 15%를 구입함으로써 어도비를 매킨토시의 강력한 후원자로 만들어 놓았다. 


장 루이 가세는 포스트스크립트 라이선스로 나가는 비용이 너무나 아까웠다. 장 루이 가세의 해결책은 어이없게도 당시 윈도우 문제로 재판 중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력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도움을 받아서 포스트스크립트를 대체할 트루타입 기술을 라이선스 받기로 한다. 이 사건으로 어도비는 애플에 분개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어도비의 주식이 애플의 발표로 50%나 떨어졌기 때문이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어도비의 주식이 떨어진 상황에서 애플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어도비의 지분까지 몽땅 팔아버렸다는 것이다. 


애플에게 어도비는 단순히 하나의 소프트웨어 업체가 아니다. 어도비는 매킨토시 판매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여러 킬러 소프트웨어의 제작자인 동시에 애플의 절대적인 우군으로서 형제와 같은 회사였는데, 장 루이 가세는 그런 회사의 등 뒤에서 배신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마이크로소프트와 제휴한 트루타입 기술이 훌륭했다면 다행이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어도비의 포스트스크립트 기술과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트루타입을 사용한 프린터의 인쇄품질은 형편없었기 때문에 애플은 이를 저가형 프린터에서나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런 엄청난 사건이 CEO인 존 스컬리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됐다는 것이다. 


기술에 대한 무지함과 조직 관리에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던 존 스컬리의 무능력함은 빌 게이츠가 애플을 몰락시키는 데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하였다.


<"애플 처럼 창조한다는 것"  매주 연재 됩니다. 다음에는 매킨토시 개발과 존 스컬리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은 저의 페이스북 팬페이지에 접속하셔서 좋아요 버튼좀 눌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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