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9회)



애플의 존재를 설명해 주는 제품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아이팟입니다. 아이팟에는 애플의 놀라운 기술과 누구나 다루기 쉬운 사용자 편의성, 그리고 굉장히 멋진 디자인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그래온 것처럼 말이죠. 만약 누군가 애플이 왜 세상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이팟을 들어 올릴 겁니다.

- 스티브 잡스


2001년 2월, 애플 내부에 비밀팀이 하나 결성됐다. 당시 애플의 실적은 1억 9,5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저가형 컴퓨터로 무장한 PC 업체들의 공습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던 애플은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비밀팀의 임무는 MP3 플레이어 시장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새로운 MP3에 대한 아이디어를 애플의 경영진에게 제공하는 것이었는데, 성과에 따라 애플은 컴퓨터 전문기업에서 소비자 가전기업으로 변신을 꾀할 생각이었다. 


비밀팀은 애플 정식직원인 Stan Ng와 외부 파트너 토니 파델, 단 두 명으로 구성되었다. 파델은 필립스에서 휴대용 기기를 만들었고, 리얼네트웍스 음악 서비스 개발에 참여한 경력 덕분에 휴대용 음악기기를 만드는 데 최적의 인물이었다. 원래 토니 파델은 디지털 뮤직과 관련된 제품을 만들어 보고자 직접 Fuse Networks라는 회사를 창업하기도 했다. 하지만 투자를 받지 못하고 사업은 정체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는 여러 회사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안했지만 이 역시 번번이 거절당한다.

 

이런 와중에 애플에서 8주 동안 진행될 계약을 하나 맡기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비밀이 엄격한 애플은 계약 전에도 파델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다만 파델에게 적합한 일이라는 정도만 전했을 뿐이다. 계약 후에야 애플이 휴대용 MP3 플레이어를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는 그가 예전부터 꿈꾸던 바로 그 일이었다. Stan Ng가 기존의 MP3 플레이어 시장을 꼼꼼히 체크하는 동안 토니 파델은 시제품을 완성했다. 


비밀팀은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단 두 달 만에 스티브 잡스를 포함한 중역들 앞에서 자신들의 결과물을 발표했다. 이때 토니 파델은 한 가지 꾀를 내 시제품을 일부러 세 개로 만들었는데, 그가 진심을 담아서 만든 시제품은 하나였지만 일부러 세 개를 선보여서 그중 하나만 선택하도록 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뭔가 부족하고 어정쩡한 시제품을 내놓고, 숨겨 놓은 진짜 카드는 마지막 세 번째에 보임으로써 좀 더 효과적으로 그의 시제품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는 그가 생각한 대로 반응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제품을 보여줄 때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더니 세 번째 시제품을 보여주자 바로 마음에 들어 했다. 시제품을 보고 MP3 플레이어 시장에 진출할 결심을 한 스티브 잡스는 개발자들에게 크리스마스 시즌 안에 제품을 완성하라고 엄명을 내린다. 이는 단 9개월 만에 제품 개발을 완료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처음으로 만드는 상품을, 그것도 시장을 압도할 만한 최고의 제품으로 완성하라는 것은 시간상 거의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초 계획보다도 빨리 할 수 있었던 것은 애플의 저력과 훌륭한 전략 덕분이다. 애플 내부에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개발자가 있었고, 세계 최고 수준의 디자이너팀도 보유하고 있었다. MP3 플레이어 개발팀의 핵심적인 멤버는 수십 명에 불과했지만 회사 내부에 있는 수백 명의 개발자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에 효율적인 개발이 가능했다. 그러나 내부에서 모든 것을 처리하기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외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애플은 원래 내부에서 개발된 기술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지만 아이팟을 만들 때는 이러한 생각을 버리고 실용적으로 접근했다.


토니 파델만 해도 외부에서 데려온 파트너였지만 아이팟 개발의 총책임자로 임명될 정도였다. 토니 파델 역시 애플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휴대용 음악기기를 개발한 적이 있는 포털 플레이어(Portal Player)사와 접촉해서 아이팟을 공동으로 제작할 것을 결심한다. 토니 파델은 포털 플레이어사를 직접 찾아가서 이번 프로젝트가 애플을 완전히 새롭게 변화시킬 것이며 앞으로 10년 후 애플은 컴퓨터 회사가 아니라 음악 회사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해 직원들을 놀라게 했다. 애플의 적극적인 태도를 확인한 포털 플레이어 직원들은 다른 일은 제쳐두고 애플의 일에 더욱 열심히 매달렸다.


휴대용 뮤직 플레이어 개발이 본궤도에 오르자 스티브 잡스 역시 적극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회의에 참석하더니 나중에는 매일같이 개발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음악광이었던 스티브 잡스는 좋은 소리와 나쁜 소리를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귀를 가졌던 만큼 음질 부분에서 많은 의견을 내었다. 인터페이스나 작동 방식에도 관여했는데 특히 버튼의 숫자를 최소화하도록 지시했다. 디자인에도 많은 신경을 쓴 스티브 잡스는 제품 표면의 광택까지 체크할 정도였다. 그는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메뉴의 반응속도를 중요하게 여겼다. 애플이 만드는 휴대용 음악기기는 5기가바이트의 용량을 자랑하는 미니 하드디스크를 넣을 계획이었는데, 무려 천 곡의 음악을 넣을 수 있는 방대한 저장 공간이다. 홍보 역시 천 곡의 음악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던 참이었다. 천 곡의 노래를 저장한 후 이를 쉽게 찾으려면 무엇보다도 메뉴 반응 속도가 빨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이팟’이라는 이름을 최종 결정한 것은 스티브 잡스였다. 그는 비니 치에코(vinnie chieco)라는 프리랜서에게 새로 만드는 휴대용 음악기기의 이름을 의뢰하였다. 이때 휴대용 음악기기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각종 디지털 기기를 매킨토시에 연결시킨다는 애플의 디지털 허브 전략을 소개했다. 비니 치에코는 스티브 잡스가 말한 ‘허브’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그는 휴대용 음악기기를 컴퓨터에 연결하여 사용한다는 말에 Pod(우주선에서 분리 가능한 작은 비행선) 이미지를 떠올렸다. 이런 생각은 실제 애플이 만들고 있던 음악기기를 보고는 더욱 확고해졌다. 흰색의 휴대용 음악 플레이어를 보는 순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우주선 안으로 착륙하려는 작은 비행선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Pod이라는 단어를 결정한 비니 치에코는 여기에 애플의 제품명에 애용되었던 i를 덧붙였다. 그래서 그가 스티브 잡스에게 제안한 최종 제품명은 ‘iPod’이었다. 비니 치에코는 iPod 외에도 수십 가지의 제품명이 적혀 있는 문서를 스티브 잡스에게 전달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스티브 잡스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iPod으로 제품명이 결정됐음을 알렸다.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개발은 너무나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하지만 발매 3개월을 앞두고 치명적인 문제가 드러난다. 아이팟을 작동하지 않아도 3시간만 지나면 배터리가 자동으로 방전되었던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개발자들은 8주 동안 밤낮없이 매달렸고 겨우 해결할 수 있었다. 또한 오리지널 아이팟은 하드디스크를 사용했던 만큼 기기에 조금만 충격을 주어도 음이 튀는 문제가 발생했다. 애플은 사용자가 음악을 선택하면 하드디스크에서 메모리로 데이터를 이동시킨 후 메모리에서 음악이 플레이되도록 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아이팟이 처음 대중에게 공개된 2001년 10월 23일은 최악의 시기였다. 911 테러로 미국 사회 전체가 충격에 빠졌었고, 닷컴붕괴와 함께 경제 사정도 밝지 못하던 시점이었다. 회사 사정역시 좋지 않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2,500만 달러의 홍보비용을 투입해서 아이팟을 출시하였다. 


아이팟이 처음부터 큰 히트를 친 것은 아니었다. 2001년에는 12만 5천 대를 판매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열혈 애플 마니아들이 아이팟을 구입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내면서 판매량은 서서히 달아올랐다. 특히 아이팟에 반한 몇몇 고객들은 직접 아이팟을 위해 자체적인 홍보물을 만들 정도였다. 마니아들의 노력과 입소문 덕분에 아이팟은 발매된 지 2년 만에 130만 대가 넘게 판매되면서 인기 제품의 반열에 오른다. 


애플이 음악 산업 전체를 바꿀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애플에서 만드는 제품은 오직 매킨토시에서만 돌아간다는 정책을 폐기했다는 점이다. 아이팟은 원래 매킨토시를 통해서만 음악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3세대 아이팟에서 윈도우와의 호환성을 대폭 개선하면서 아이팟의 판매량에 가속도가 붙었다. 3세대 이전만 해도 아이팟은 매킨토시 사용자들에게나 한정된 틈새시장용 제품에 불과했지만 윈도우를 본격 지원하면서 전체 대중들에게 사랑받기 시작했다. 실제로 아이팟 3세대가 등장하기 전 1년 동안의 판매량은 67만 3천 대에 불과했지만, 이후 1년 동안의 판매량은 218만 대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인 성공을 거뒀다. 애플이 이렇게 윈도우를 적극 지원하는 전략을 펼친 것은 애플이 그동안 지켰던 자존심보다는 실리를 선택한 중요한 변화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인터넷 서비스를 하나로 결합하는 삼위일체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이는 애플이 과거와는 다르게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회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아이팟이 잘 나가자 수많은 업체들이 아이팟을 모방했다. 아이팟보다 가격이 싼 제품이 쏟아지자 많은 전문가들이 매킨토시가 몰락했던 것처럼 그렇게 쓰러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빌 게이츠 역시 아이팟의 성공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면서 매킨토시를 예로 들었다. 그러나 애플에게는 다른 회사가 가지지 못한 온라인 음악상점인 아이튠스 뮤직스토어가 있었다. 세계 5대 음반 메이저 업체들의 음악을 한곳에서 서비스하는 아이튠스 뮤직스토어를 이용할 수 있는 MP3 플레이어는 아이팟이 유일했다. 2003년 아이튠스 뮤직스토어가 오픈할 때만 해도 합법적으로 음악을 구입하고 싶은 사람은 아이팟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회사는 휴대용 MP3 플레이어라는 기계 하나를 팔았지만 애플은 음악을 듣는 방식, 즉 경험을 판 것이었다. 


만약 애플이 하드웨어로 승부했다면 아이팟은 매킨토시처럼 어려운 순간을 맞이했을 것이다. 애플의 아이팟은 하드웨어에 아이튠스 뮤직스토어와 같은 인터넷 서비스를 결합함으로써 다른 기기들이 넘볼 수 없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실제로 아이튠스 뮤직스토어와 결합된 아이팟은 생활 그 자체를 바꾸었다. 이전에는 음악이 듣고 싶으면 상점까지 가서 음반을 구입해야 했지만, 아이팟 이후에는 인터넷으로 음원을 다운로드받아 바로 그 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고 사람들의 생활 자체가 바뀌게 되었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성능이 좋고 값이 싸다는 이유가 아니라 음악을 쉽고 간편하게 들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애플의 제품을 선택했다. 특히 아이튠스 뮤직스토어에서 구입한 음악은 오직 아이팟에서만 재생되었기 때문에 이미 구입한 음악이 아까워서라도 다른 기기로 떠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디지털 음원을 판매하는 인터넷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통합해낸 아이팟은 2009년 시장점유율이 70%에 이를 정도로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 독주를 하고 있다. 아이팟은 5년 반 만에 1억 대를 돌파하였고, 2010년 6월까지 2억 6,949만 대가 판매되었다. 


아이팟의 성공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애플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물리쳤다는 점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95를 통해 PC시장을 장악한 이후 IT업계의 절대 권력자였다. 막강한 자본을 가진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느 분야에 진출하든 기존의 강자를 물리치고 시장의 지배자가 되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절대로 마이크로소프트와 경쟁하지 말라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그런데 아이팟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지고 있던 천하무적의 이미지에 상처를 입혔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준(ZUNE)으로 MP3 플레이어 시장에 등장할 때만 해도 기세등등했다. 준 사업의 책임자였던 제이 알라드(J Allard)는 준을 개발하는 직원 230명에게 마이크로소프트는 미학이 전혀 없다면서 회사의 창조성을 비웃는 스티브 잡스의 동영상을 보여 주면서, 스티브 잡스가 잘못을 인정하는 광경을 보기 위해서라도 다 함께 싸우자는 말을 덧붙였다. 


또다시 마이크로소프트가 스티브 잡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서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준은 시장 점유율 두 자릿수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계속 고전 중이다. 조사 전문기관인 NPD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0년 5월 미국시장에서 아이팟의 시장 점유율이 76%에 이를 정도로 승승장구 하는 동안 마이크로소프트는 고작 1%에 머물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처음 시장에 진출할 때 보여준 자신감을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처참한 성적이다.


아이팟이 준을 상대로 승리한 것은 단순히 사업 하나가 성공했음을 뜻하지 않는다. 아이팟의 성공으로 애플은 PC가 아닌 소비자 가전업체로 변신할 수 있었고, 또한 PC가 아닌 분야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이라는 큰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애플 처럼 창조한다는 것" 매주 연재 됩니다. 다음에는 아이폰의 탄생 스토리가 이어집니다.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은 저의 페이스북 팬페이지에 접속하셔서 좋아요 버튼좀 눌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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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