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10회)


우리가 맥을 발표하기 일주일 전이 생각나네요. 우리 모두는 컴퓨터가 맥처럼 바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앞으로 컴퓨터가 맥처럼 바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언제쯤 맥처럼 바뀌느냐가 문제였죠. 지금 이 순간 그런 느낌이 듭니다. 


- 스티브 잡스, 아이폰 발매 전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 중에서


아이폰 개발은 태블릿 컴퓨터 개발에서 시작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유리 위에 멀티터치를 입력할 수 있는 기기를 구상하고, 이를 개발하도록 지시한다. 지시를 받은 개발자들은 6개월이 지난 후에 정말 멋진 인터페이스를 구현한 기기를 가져왔다. 직접 만져본 스티브 잡스는 반해 버리고 개발자들이 만든 기기를 바탕으로 휴대폰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애플의 휴대폰 개발은 내부의 기술과 아이디어로 시작됐지만 외부 시장의 변화 역시 한몫했다. 아이팟 덕분에 엄청난 순이익을 기록할 수 있었지만 휴대용 MP3 플레이어 시장에는 한 가지 위험요소가 있었다. 바로 휴대폰에 MP3 재생 기능을 탑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휴대폰에서 MP3 음악 파일을 마음껏 들을 수 있다면 아이팟을 구입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변화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애플이 휴대폰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황이었다. 


특히 모토로라와 합작으로 아이튠스와 연동되는 MP3폰 로커(ROKR)를 개발하면서 스티브 잡스는 휴대폰 시장 진출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다. 로커는 시장과 애플 마니아로부터 혹평을 받았는데 이때 로커에 실망한 애플 중역들은 직접 휴대폰을 만드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가지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다른 업체를 거치지 않고 애플 방식으로 휴대폰 시장을 직접 공략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 수 있었던 데는 애플이 자랑하는 데스크톱 운영체제인 맥 OSX가 모바일에서도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기술업계가 발전한 것도 한몫하였다. 2006년 애플은 인텔칩을 지원하는 맥 OSX 개발을 완료하였고, 이들 개발자들이 맥 OSX를 모바일 기기용으로 수정하기 시작했다. 


아이폰은 필연적으로 이동통신사와 함께 일해야 한다. 그런데 애플은 다른 기업과 같이 일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회사다. 애플의 중요한 사업원칙은 스스로 통제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휴대폰 업계는 이동통신사의 통제를 받는 것이 관행이었다. 다행히 미국의 이동통신업체인 AT&T사는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 애플이 개발하던 아이폰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아이폰이라면 시장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AT&T는 애플이 제시하는 까다로운 조건들을 수용하였다. AT&T는 오직 네트워크만 책임지고, 휴대폰과 콘텐츠 부분에서는 애플이 전적으로 통제할 뿐만 아니라 통신 요금의 10%를 받게 된다는 획기적인 계약이었다. 대신 애플은 AT&T에게 5년 동안 독점판매권을 넘겨주었다. 


1년간의 협상 끝에 2006년 7월 두 회사의 계약이 이루어진 후 아이폰 개발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AT&T는 아이폰의 통신망 테스트에 적극적인 도움을 주었다. 애플은 원래부터 비밀주의로 유명했다. 애플 직원들은 가족들에게도 자신이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이야기하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다. 스티브 잡스도 예외가 아니어서 집에서 제품을 테스트할 때는 혼자 몰래 검은 천을 덮어 놓고 할 정도다. 아이폰에서도 애플의 비밀주의는 예외가 아니어서 처음에 아이폰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만드는지도 몰랐다. 하드웨어팀과 소프트웨어팀이 각자 일했고, 나중에야 그것이 아이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플 내부에서도 철저히 기밀을 지켰던 만큼 AT&T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AT&T와 망 연동 테스트를 할 때 AT&T쪽 관계자는 제대로 된 아이폰이 아니라 통화만 가능한 시제품을 제공받아서 테스트를 진행해야 했다. 


AT&T가 애플에게 많은 양보를 하긴 했지만 문화적인 차이로 인한 갈등은 어쩔 수 없었다. 한 번은 AT&T 직원이 애플 직원에게 AT&T의 이사를 만나러 갈 때는 양복을 입고 가야 한다고 말하자 “우리는 애플이다. 우리는 양복을 입지 않고, 양복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라며 맞받아 쳤다. 통신칩 채택 문제나 무선인터넷 서비스와 관련된 요금문제로 두 회사는 심각한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그래도 파트너 관계는 잘 유지되었다. 


애플의 모든 제품이 그렇듯이 아이폰 역시 넉넉한 스케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이팟을 개발할 때처럼 모든 것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2007년 1월 맥 월드에서 완벽하게 작동되는 아이폰을 공개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2006년 가을까지만 해도 수많은 버그로 인해서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당시 제작 중이던 아이폰을 만져본 스티브 잡스는 평소처럼 큰소리로 꾸짖기는커녕 아직 물건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서 차분하게 말했다. 그러자 스티브 잡스의 조용한 말투에 개발자들은 오히려 공포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후 개발자들은 3개월 동안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오직 개발에만 매달려야 했다. 


개발자들의 고생은 드디어 2007년 1월 9일 결실을 맺게 된다. 맥 월드에서 스티브 잡스가 처음으로 아이폰을 공개하자 전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곧장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TV와 신문 같은 미디어는 물론이고 인터넷 전체가 온통 아이폰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시장조사 전문 기관인 컴스코어에 의하면 애플에서 아이폰을 발표한 후 일주일간 아이폰의 검색 횟수가 무려 120만 건에 이르렀다고 한다. 아이폰은 아이팟에 비해 호의적인 반응이었지만 실패를 예상하는 사람도 많았다. <불룸버그>의 매튜 린(Matthew Lynn) 기자와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인 존 드보락(John Dvorak)은 애플이 비록 아이팟에서는 성공했지만 휴대폰 업계에는 거대 기업들이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고전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발매 당일 깨져버렸다. 아이폰이 처음으로 발매될 때 애플의 각 매장에는 아이폰을 구입하기 위한 긴 줄이 늘어섰다. 아이폰은 단 74일 만에 100만 대가 판매되면서 애플의 새로운 무기가 되었다.


당시 아이폰 판매량은 성공적이었지만 스티브 잡스의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는 판매량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출시 두 달 만에 599달러였던 아이폰을 200달러 인하해서 399달러에 팔았다. 이는 애플 마니아들을 자극했고 스티브 잡스는 엄청난 항의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애플 마니아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애플은 아이폰을 이미 구입한 고객에게 100달러짜리 보상 쿠폰을 지급하면서 사과했다. 아이폰의 판매량은 훌륭했지만 스티브 잡스의 야망을 충족시키지 못했음을 뜻한다. 사실 1세대 아이폰은 최신의 3G 이동통신이 아닌 한 세대 뒤쳐진 통신규격을 지원해서 무선 인터넷 속도가 느렸다. 


또한 애플이 처음으로 만든 휴대폰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불안정했다. 애플이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연 것은 3세대 이동통신 규격을 지원한 아이폰 3G가 나오면서부터다. 1세대 아이폰이 백만 대를 판매하는데 74일이 걸렸던 것에 비해서 아이폰 3G는 일주일 만에 백만 대가 판매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2008년 7월 10일 앱스토어가 시작되면서 아이폰 3G의 판매도 덩달아 늘어나기 시작한다. 이때만 해도 아이폰의 인기는 미국과 유럽에 치중되어 있었지만, 아이폰 3GS가 등장하면서 아이폰은 전 세계적인 히트상품이 되었고 2010년 6월까지 6천여 만 대가 판매되었다. 


아이폰은 이제 스마트폰의 대명사가 되었다. 아이폰은 ‘지저스 폰(Jesus Phone)’이라는 극찬을 들으면서 이동통신 업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중이다. 아직 별 감흥이 오지 않는가? 아이폰 효과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싶다면 일본 이동통신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손정의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손정의는 한때 닷컴열풍 덕분에 2000년 자산 총액이 700억 달러에 이르며 세계 재산 순위 4위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불과 3년 만에 그의 재산은 11억 달러로 쪼그라든다. 다행히 중국에 투자한 주식 덕분에 2006년 자산 총액 70억 달러로 다시 일본 최고 갑부에 등극한다. 손정의는 153억 달러에 보다폰 저팬의 주식 97.7%를 인수하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다. 


일본 기업 역사에서 최대 자금이 투입된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직접 자신의 재산을 차압하기까지 했다. 당시 무리한 인수라면서 손정의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 파생상품에 투자해서 750억 엔에 이르는 거액의 손실을 기록했다. 사실 손정의가 의욕적으로 도입한 아이폰 3G 역시 별다른 인기를 끌진 못했다. 아이폰이 일본에서 처음 발매될 때 언론은 아이폰이 일부 애플 마니아들에게만 사랑받을 제품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손정의는 중국에 출장 갔을 때 PC를 사용하지 않고 아이폰만으로 모든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성공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폰이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하자 사람들은 그 이유를 일본 브랜드만을 선호하는 폐쇄적인 일본 시장 환경에서 찾았다. 일본은 오래 전부터 세계 시장과 동떨어져 갈라파고스화 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에서 히트한 상품도 일본에서는 고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휴대폰 분야는 더욱 고착화되어 있었다. 세계 시장 점유율에서 각각 1위와 2위, 그리고 3위를 기록 중인 노키아와 삼성 그리고 엘지에게 일본 시장은 무덤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점유율 자체가 형편없다. 일본의 휴대폰 시장에서 성공하는 제품은 오직 일본 자국 브랜드밖에 없지만 정작 세계 시장에서 일본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은 3.5%에 불과하다. 아이폰 3G의 실패 이후 일본의 휴대폰 시장 자체가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만큼 세계 어떤 기업이 와도 좋은 성적을 거두기 힘들다는 것이 통념처럼 자리 잡게 되었다. 



아이폰 3GS가 나오면서 이런 고정관념은 완전히 깨져 버렸고, 일본에 큰 충격파를 선사했다. 판매시작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던 아이폰 3GS의 정확한 판매량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프트뱅크의 성공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서 아이폰의 성공을 추측할 수 있다. 2009년 10월 손정의는 실적 발표에서 아이폰이 전년보다 수백 % 성장했다면서 아이폰이 소프트뱅크의 실적에 기여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2009년 결산에서 소프트 뱅크의 영업이익은 4,658억 엔을 기록했는데, 이는 일본 전체 기업 중 세 번째로 높은 금액이었다. 소프트뱅크의 놀라운 실적은 역시 아이폰이 일등공신이었음은 당연지사이다.


애플 부활의 교훈


* 최고의 전문가를 고용해라

생산과 재고관리에서 약점을 가진 애플은 팀 쿡의 영입 이후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 제품 라인업을 단순화하라

위기에 빠진 애플로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경쟁력 있는 4개의 제품만을 만들어 핵심 역량을 강화했다.


* 적과도 협력하라

어려울 때는 도움을 줄 수 있는 협력자를 최대한 모아야 한다.


* 브랜드를 관리하라

브랜드는 회사의 훌륭한 자산으로 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 결국은 제품이다

애플이 부활한 것은 결국 아이맥이라는 히트작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 소규모 팀으로부터 시작해라 

아이팟은 두 명의 비밀팀에서 시작되고, 철저한 내부검증을 걸친 후 본격적으로 출발한 프로젝트다.


* 경제 위기에도 도전을 멈추지 마라

애플이 창업된 1976년은 오일쇼크로 인해서 경제위기를 겪는 순간이었고, 아이팟 역시 911과 닷컴붕괴로 어려운 시기였지만 애플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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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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