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개발 방식은 목표를 레이저 광선같이 좁히고, 가능한 적은 제품으로, 가능한 많은 고객을 획득하려고 합니다. 개발하는 제품을 줄이는 만큼 우리의 상품 라인업이 최고의 것으로 완성될 수 있도록 사내에 있는 모든 자원을 집중 투하할 수 있습니다.

‐ 필 실러 애플 부사장, <PC WATCH> 인터뷰 중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 마이크로소프트는 승리라는 목표를 세우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경쟁한다. 이에 비해서 애플은 다른 회사는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위대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열정을 쏟는다. 


애플 저팬의 일본 사장인 하라다 에이코에 의하면 애플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와 같다고 설명한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는 상대 선수를 신경 쓸 필요 없이 자신의 리듬에 맞춰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심판들에게 점수를 받으면 그만이다. 애플은 경쟁사를 의식하지 않고 오직 위대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소비자에게 심판받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D8 컨퍼런스에 참석한 스티브 잡스에게 사회자가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플랫폼 경쟁에 대해서 묻자 자신들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애플은 단지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을 뿐이라고 답했다. 이런 견해는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돌아왔을 때도 강조했던 사항이다.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1억 5,000만 달러를 투자받았다는 사실을 97년 <맥 엑스포>에서 알리자 당시 이 소식을 전해들은 청중들이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그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다시 예전의 영광을 회복하고 싶다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을 이긴다는 식의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애플은 누군가를 이겨서 잘하는 회사가 아니라 스스로 훌륭한 일을 해서 번성하는 회사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이 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업문화 자체가 미식축구와 닮았으며, 실제로 시장에서 경쟁하는 모습도 미식 축구선수와 같다. 피겨스케이팅과 다르게 미식축구에서는 점수를 얻기 위해서 상대팀과 끊임없이 몸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는 경쟁자에 대한 증오를 숨기지 않는다. 회사 모임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한 직원이 스티브 발머의 사진을 아이폰으로 찍으려 하자 수천 명의 직원 앞에서 아이폰을 빼앗고, 이를 짓밟는 시늉을 할 정도였다. 이 사건 이후 회사 내부에서는 함부로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게 되었다. 구글에 대해서도 스티브 발머는 마이크로소프트에게 2등은 의미가 없다면서 검색에서 1등이어야 한다며 구글을 격퇴의 대상으로 정했다. 승리를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미식축구 선수처럼 상대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전략적으로 결정한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는 회사다. 상대가 잘하면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 더 열심히 개선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상대가 쓰러지면 그 순간 움직임도 둔해진다.


피겨스케이팅 선수 같은 애플과 미식 축구선수 같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차이는 창의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애플이 뭔가를 새롭게 창조하는 회사라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성공한 분야에 뛰어들어서 기존 제품을 철저히 연구한 후에 상대방보다 조금 더 개선된 상품을 내놓고 상대방의 점유율을 빼앗는 경쟁을 한다. 점유율에 의한 순위야말로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장 의식하는 부분이라면, 정작 애플은 점유율은 낮아도 사용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명품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비싸도 제품만 좋으면 소비자들은 애플의 제품을 사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애플은 어떻게 남들이 생각 못한 위대한 제품들을 만들 수 있을까? 이는 기존의 틀에 사로잡히지 않고 다르게 생각하기(Think Different)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혁신을 위해서 일정한 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물론 효율적인 수단으로서의 프로세스는 갖추고 있지만 혁신을 위해서 따로 체계를 만들려고 하진 않는다. 스티브 잡스는 단지 위대한 상품을 만들려고 할 뿐이지 혁신하자고 따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는 회사에 혁신을 주제로 강좌를 열거나 혹은 혁신을 위한 다섯 가지 방법이 적힌 포스터를 회사 전체에 붙여 놓는다는 것은 쿨하지 못한 사람이 쿨한 척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밝힐 정도다. 스티브 잡스 스스로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애플이 제품을 만드는 방법을 보면 ‘안티 비즈니스’로 요약될 수 있다. 안티 비즈니스의 길을 택했기에 창조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제품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회사는 우선 시장조사를 한다. 시장에 어떤 제품이 나왔는지를 살펴보고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제품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집중 조사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마케팅 계획을 세운다. 마케팅의 첫 번째 단계는 소비자들의 성별, 나이, 직업, 소득, 인종 등의 요소를 고려해서 시장을 세분화하는데 이를 세그먼테이션(segmentation)이라고 한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회사는 자신들이 누구를 대상으로 제품을 팔게 될 지를 심사숙고하게 되는데 이를 표적시장, 즉 타깃을 결정한다(targeting)고 말한다. 만약 30대 초반이면서 컴퓨터에 익숙한 화이트 컬러 계층의 연봉 3,600만 원을 받는 솔로 남자를 타깃으로 삼았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제품을 개발한다. 이와 함께 타깃 내에서 다른 회사의 제품과 자사 제품의 차이를 연구해서 자사 제품이 시장에서 차지하게 될 위치를 결정하는데 이를 포지셔닝(positioning)이라고 한다. 시장조사를 통해서 세그먼테이션, 타켓팅, 그리고 포지셔닝을 결정하는 것은 마케팅의 핵심적인 요소로 흔히 앞의 단어들의 약자를 따서 ‘마케팅의 STP’라고 한다.


애플은 이런 전통적인 프로세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애플은 상품 개발단계에서 아예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 회사로 유명하다. 그래서 애플은 컨설턴트를 고용하지도 않는다. 스티브 잡스가 컨설턴트와 같이 일했을 때는 애플스토어를 계획했을 때 게이트웨이의 소매점 전략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그것도 시장에서 실패의 길을 걷고 있던 게이트웨이가 저지른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매킨토시를 만들 때도 역시 어떠한 시장조사도 없었다. 벨이 전화기를 만들 때 시장조사를 하지 않았듯이 매킨토시 역시 시장조사가 필요 없다는 것이 스티브 잡스의 생각이다. 사실 시장조사를 해서 나오는 상품은 결국 기존 상품에 무엇인가를 개선하는 정도의 제품일 수밖에 없다.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만약 내가 소비자들에게 원하는 상품이 무엇인지를 물었다면 소비자들은 그냥 좀 더 빠른 말을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을 창조할 정도의 위대한 상품은 소비자도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획기적인 것이어야 한다. 시장조사를 통해서 나오는 상품은 상식선에서 머무르지만 위대한 제품은 상식을 깨야만 한다.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 모른다.”고 말한다. 소비자가 기대하지 못한 놀라움을 전해줄 수 있는 상품은 고객에게 물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처럼 스스로 창조해야 한다. 애플이 생각하는 위대한 제품은 애초에 시장조사로 나올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애플은 시장조사에 의존하지 않고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애플이 오직 하나의 제품에 전력을 쏟는 것 역시 안티 비즈니스적인 자세와 연결된다. 휴대폰을 예로 들면 많은 회사들은 고객집단에 따라서 다양한 모델들을 만든다. 그래서 한 개의 휴대폰 회사에서 나이, 성별, 직업, 취향을 고려한 모델들이 매달 몇 개씩 쏟아진다. 위험을 피하고 최대한 많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마케팅의 기본인 STP 역시 고객을 취향별로 나누어서 타깃에 맞게 각양각색의 제품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듯 일반 휴대폰 회사들이 비즈니스의 정석을 걷고 있는 데 비해 애플은 반대로 안티 비즈니스의 길을 걷고 있다. 애플은 위험을 감수하고 오직 하나의 제품에 전력을 쏟는다. 한 번 실패하면 위험이 크지만 대신 애플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 


그렇다면 애플은 자신들이 만드는 것이 위대한 제품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평가할까? 애플은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원리를 가지고 있다. 애플 부사장인 필 실러는 “스스로 사랑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애플의 중요한 개발 철학”이라고 말한다. 스티브 잡스에 의하면 애플이 아이튠스를 만든 건 애플 직원 모두가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음악 소프트웨어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애플의 개발팀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게 곧 자신들이 원하는 제품이었던 만큼 하루라도 빨리 제품을 사용하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 아이팟 역시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직원들이 개발에 참여해서 온 열정을 쏟았다. 애플에서 디자인을 책임지는 조너선 아이브 역시 아이팟을 너무나 가지고 싶어서 정말 지치도록 일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것을 보면 이것이야말로 애플 창조성의 비결이 아닌가 싶다. 애플 직원들 스스로가 사랑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일단 개발이 시작되면 하루라도 빨리 완성품을 갖고 싶어서 더욱 열정적으로 일하며, 한편으로는 맨 첫 번째 고객으로서 제품을 까다롭고 엄격하게 바라볼 수도 있게 된다.


아이폰 개발도 마찬가지였다. 애플 직원들은 사용하기에 불편하고, 보기에 끔찍한 휴대폰이 너무나 싫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는 더 끔찍했고, 하드웨어 역시 별로라고 생각했다. 마침 주변사람들에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휴대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모두가 싫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휴대폰을 만드는 게 엄청난 도전이라는 것을 알긴 했지만 애플은 자신들이 스스로 사랑에 빠질 수 있는 휴대폰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애플에서는 완성된 제품을 평가할 때도 직원들이 사용해 보고 스스로 만족하느냐로 결정한다. 이것이야말로 애플에서 행해지는 시장조사 방법이기도 하다. 확실히 애플 직원은 시장조사를 하지 않아도 소비자의 마음을 꿰뚫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이것이 애플의 능력이며,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히트작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고, 직원들이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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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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