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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인 제품이 나오면 모든 것을 뒤바꿔 버립니다. 애플은 이런 일을 잘 해왔죠. 만약에 여러분이 그런 일을 한 번이라도 하면 당신은 정말 대단한 행운아일 겁니다. 그런 면에서 애플은 운이 좋았습니다. 애플은 세상을 바꾸는 혁명적인 제품을 여러 번 소개할 수 있었거든요.


‐ 스티브 잡스, 2007년 맥 월드 연설 중에서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29)


애플은 이른바 우리가 정석 혹은 상식이라고까지 생각하던 게임의 법칙들을 바꾼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다. 실제로 애플의 행보를 보면 이른바 비즈니스의 정석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걸어왔음을 알 수 있다. 애플 부사장인 팀 쿡은 애플이 ‘안티 비즈니스 스쿨’이라고 당당히 말할 정도다. 이를 테면 ‘선택과 집중’은 기업경영의 금과옥조처럼 통하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그래서 기업은 하나의 전문분야에서 한 우물만 파야 한다는 것이 비즈니스의 정석으로 통했다. 


과거 인텔은 메모리와 마이크로프로세서 두 가지 사업을 병행했다. 일본 기업의 대공세에 의해서 인텔이 적자에 시달리게 되자 경영진은 메모리 사업을 철수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에 올인한다.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인텔은 그 후 기업경영의 선택과 집중의 좋은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게임이라는 우물만 파는 닌텐도와 휴대폰 사업에 전념하는 노키아 역시 기업은 잘하는 한 가지 분야에만 주력해야 한다는 성공 모델로 꼽힌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소프트웨어 사업에 전력을 쏟아서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애플과 IBM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이 두 개의 사업 분야를 병행하고 있을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오직 소프트웨어 사업만으로 승부를 걸었다. 당시만 해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통합된 개념으로 이해되었으나 마이크로소프트는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를 분리해서 오직 소프트웨어 경쟁력 향상에 매진하여 애플과 IBM을 물리치고 세계 최고의 IT기업으로 등극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확실히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게임의 규칙을 바꿀 줄 아는 게임 체인저다. 


애플은 아이팟 이후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들어 놓은 게임의 규칙을 새롭게 쓰고 있다. 아이팟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통합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튠스와 같은 음악 서비스까지 결합한 신개념 모델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과거의 기준으로 보면 참으로 무모한 사업모델이었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아이팟은 과거 매킨토시의 재현이 될 것이라면서 곧 무너질 것처럼 예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로 빌 게이츠는 2005년 5월 애플의 성공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며, 매킨토시도 초반에는 큰 인기를 끌었지만 얼마 가지 않았다며, 아이팟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얘기했다. 



MP3 플레이어 시장에 본격 진출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PC 분야에서 펼쳤던 전략을 그대로 사용했다. 여러 하드웨어 업체들이 자사의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MP3를 만들게 했다. 또한 아이튠스 뮤직스토어 서비스와 대항하기 위해서 다른 음악 서비스 업체와도 제휴하였다. 애플은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인터넷 뮤직 서비스를 혼자서 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각 전문 분야별로 여러 회사와 연합군을 구성한 것이다. 제휴업체를 늘리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세가 급격히 불어나자 아이팟이 매킨토시처럼 될 것이라는 예측도 늘어났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그야말로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버렸다. 그러자 기존의 연합군을 해체하더니 직접 준(Zune)을 제작했다. 회사 이름에 소프트가 들어갈 정도로 소프트웨어 중심임을 표명하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하드웨어를 직접 제작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이는 게임의 법칙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한 우물만 파는 모델이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음을 깨닫고 결국 애플식의 게임의 법칙을 받아들인 것이다.


애플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일거에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낼 줄 아는 회사다. 게임 체인저인 애플은 단순한 혁신이 아니라 혁명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애플이 무엇인가를 시도할 때마다 항상 부정적인 의견이 뒤따랐다. 현재를 지배하는 게임의 법칙이 미래에도 계속 적용될 것이라는 착각 때문이다. 어제까지는 승리한 게임의 법칙이라도, 다음날에는 게임 체인저에 의해 일거에 뒤집어질 수 있다. 그래서 애플의 일거수일투족은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이 하나의 성공을 만들어내면 세상을 지배하는 게임의 법칙이 또 그만큼 변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아이폰이 좋은 본보기가 된다. 2009년 11월 아이폰이 정식으로 출시되자 아이폰 판매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았다. 고작 10만 대에서 20만 대 정도 판매될 것이라 예상할 정도였다. 실패의 근거는 스마트폰 시장이 1%밖에 안 되고, 국산 휴대폰 점유율은 90%가 넘는다는 것이었다. 외국산 휴대폰의 무덤이며, 스마트폰 시장은 너무 작으니 아이폰 역시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이는 게임 체인저로서의 애플의 역량을 무시한 것이었다. 아이폰은 한국에서 출시된 후 40만 대를 판매하더니 6개월 만에 70만 대를 돌파했다. 아이폰이 처음 잘 팔릴 때는 대기수요가 한 번에 몰린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판매는 곧 줄어들 것이라고 장담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아이폰이 대세라고 보고 있다. 


아이폰의 성공과 함께 한국의 휴대폰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1%밖에 안 되는 시장 점유율로 찬밥신세였던 스마트폰 시장에 이동통신업체와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회사의 사운을 걸고 전력을 쏟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무선랜은 이동통신업체로서는 반갑지 않은 기능이다. 무선랜으로 인터넷을 하면 이동통신업체의 망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통신요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원래 있던 무선랜 기능을 정작 휴대폰 모델이 발매될 때는 제거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아이폰 이후 이제는 일반 폰에도 와이파이가 달릴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다. 이동통신업체는 회사의 사활이 와이파이에 있다는 생각으로 너 나 할 것 없이 와이파이 확충을 위한 경쟁에 돌입할 정도로 무선랜에 대한 태도 자체가 돌변했다.


아이폰은 단순히 이동통신 산업만 바꾸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인터넷 업체들은 모바일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으며, 기업들은 스마트폰을 업무에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언론, 출판, 금융, 유통업체들도 아이폰이 변화시킨 환경에 적응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현재 아이폰은 단순히 휴대폰 하나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라이프스타일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이런 변화가 외국에서도 신기했는지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는 ‘The iPhoning of Korea’라는 이름으로 아이폰이 어떻게 한국 사회를 변화시켰는지를 보도할 정도였다. 


게임 체인저로서 아이폰이 만들어낸 가장 놀라운 모습은 액티브 엑스(Active X) 일색인 한국 인터넷의 변화다. 액티브 엑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자적인 기술로 다른 웹 브라우저에서는 호환되지 않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웹 브라우저인 익스플로러에서만 완벽하게 작동된다. 한국은 윈도우가 시장을 장악한 영향도 있지만 유독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이 높다. 익스플로러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62.7%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97%나 된다. 한국에서 유독 시장점유율이 높은 것은 액티브 엑스 덕분이다. 한국에서 액티브 엑스 없이 인터넷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문제는 액티브 엑스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자기술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차원에서 전자상거래에 필수적인 공인인증서를 법으로 규정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브 엑스를 사용하도록 강제하였다는 점이다. 


국가가 이렇게 특정기업의 기술을 강제로 사용하도록 하는 정책은 세계 흐름과는 맞지 않는 것으로, 이 때문에 한국의 인터넷 환경을 퇴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브라우저인 익스플로러가 아니면 아예 인터넷을 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에, 다른 다양한 기술로 무장한 플랫폼이 설 자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폰이 실패할 중요한 근거 중 하나가 액티브 엑스였다. 액티브 엑스 없이 온전한 웹 서핑이 어려운 한국에서 아이폰에 탑재된 브라우저인 사파리로는 인터넷을 사용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폰이 등장하자 인터넷서비스업체들이 모바일 전용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아이폰으로도 편안하게 웹을 서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꾸고 있다. 또한 정부에서도 액티브 엑스 없이 아이폰에서도 인터넷 상거래가 가능하도록 공인인증서 제도를 바꾸기로 하는 등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역시 게임 체인저로서의 아이폰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애플은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게임의 법칙을 바꾸기도 한다. 애플은 처음부터 아이폰을 서비스할 이동통신업체를 직접 선택하려 했다. 이는 당시로는 정말 상상도 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이동통신업체와 휴대폰 업체의 관계는 슈퍼갑과 을의 관계였기 때문이다. 휴대폰 판매량은 이동통신업체가 밀어주느냐 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시장이었다. 그래서 휴대폰 업체들은 이동통신업체가 요구하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이런 관계 때문에 휴대폰 제조사와 이동통신업체를 농노로 표현하는 언론까지 있을 정도였다. 이동통신업체가 원하는 휴대폰이란 위대한 제품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동통신업체와 2년 정도 약정을 하는 고객에게 무료로 제공할 수 있는 정도의 무난한 휴대폰이면 충분했다. 그러다 보니 이동통신업체에서 보조금을 받고 소비자에게 무료로 팔 수 있는 정도의 그저 그런 수준의 휴대폰이 시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이동통신업체의 입김을 배제하고, 철저히 애플의 생각으로 아이폰을 개발하려고 했다. 이동통신업체와 협의 없이 제품을 만들겠다는 것도 당시로는 놀라운 발상이었지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이동통신업체의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콘텐츠를 소비자들에게 직접 팔아야 한다고까지 생각했다. 휴대폰을 만드는 업체가 이동통신사를 거치지 않고 콘텐츠를 직접 판매하겠다는 이런 계획 역시 당시에는 전례가 없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동통신사는 통신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휴대폰의 기능에서부터 판매와 서비스 방식까지 모든 것을 통제하던 현실에서 애플의 계획은 그야말로 무모함, 그 자체였다. 


실제로 미국 1위의 이동통신업체인 버라이존에 아이폰을 제안하자 그 즉시 거절당했다. 하지만 애플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게임의 법칙을 바꾸려 했다. 만약 이동통신사로부터 자신들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직접 이동통신사를 세울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AT&T는 5년 동안 아이폰 독점판매권을 갖는 대신 그 이외의 모든 통제권을 애플이 가져가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AT&T가 버라이존에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회사의 고객을 뺏어 와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AT&T는 애플의 아이폰이라면 다른 업체의 고객을 불러 모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내린 결정이었지만, 사실 매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동통신업체의 절대권력 중 상당 부분이 휴대폰 업체에게 이양된 날이기 때문이다. 아이폰 이후 이동통신업체는 자신들의 권력을 나누어 주면서까지 위대한 휴대폰을 모셔 오기 위한 경쟁을 펼치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그야말로 게임의 법칙이 완전히 바뀌었고, 혁명의 시작에는 역시 애플이 있었다. 


게임의 법칙을 애플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는 모습은 최근 벌어지는 플래시와의 전쟁에서도 잘 드러난다. 애플은 플래시가 자원을 많이 사용한다는 이유로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고 있다. 플래시의 제작사 어도비가 강력하게 반발했으며, 이를 비난하는 여론도 커지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직접 장문의 글을 통해서 애플이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는 이유를 밝혀야 했다. 그는 “플래시는 PC와 마우스 시대에 맞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모바일 시대에 필요한 저전력과 터치 인터페이스 그리고 개방형 웹 표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므로 애플은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기술업계에서는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다. 


애플 입장에서 보면 플래시는 매우 껄끄러운 존재다. 플래시는 윈도우 PC와 매킨토시에서 동시에 돌아가는 멀티 플랫폼을 지원한다. 그러나 사실 윈도우 PC에서 훨씬 잘 돌아간다. 이 때문에 아이폰에서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하자 매킨토시 사용자들은 오히려 잘 됐다고 환영할 정도였다. 그동안 매킨토시 이용자들은 윈도우 PC에 비해 형편없이 돌아가는 플래시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도비는 시장 점유율 90%가 넘는 윈도우 PC에 전력을 쏟았고, 점유율 5% 내외에 불과한 매킨토시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애플에게도 악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은 윈도우 PC에서 쌩쌩 잘 돌아가는 플래시가 매킨토시에서 잘 돌아가지 않으면, 애플의 컴퓨터 기술력이 떨어져서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전에도 이런 비슷한 악몽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 MS 워드의 경우 윈도우에서 문서 파일을 불러오면 즉시 열렸지만 매킨토시에서는 30초나 걸렸다. 매킨토시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다. 매킨토시 성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때야말로 애플의 암흑기가 시작되던 시기였다. (완전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는 MS 오피스가 아예 매킨토시용으로는 나오지도 않았었다.) 결국 애플이 너무 많은 부분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의존한 것이 화근이었다. 지금도 스티브 발머는 온전한 MS 오피스를 쓰고 싶다면 매킨토시가 아니라 윈도우를 쓰라고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다. 그런데 플래시가 같은 악몽을 재현하려 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에 의하면 매킨토시에서 일어나는 충돌 문제의 가장 빈번한 원인은 플래시 때문이라고 한다. 이 문제를 어도비에 지적했지만 별다른 대처를 해주지 않고 있다며 분노를 표했다. 


정작 어도비는 스티브 잡스의 불만에 대해 애플로서는 가장 치욕스러우면서도 절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답변을 내놓았다. 어도비 CEO인 산타누 나라옌은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매킨토시에서 플래시 때문에 충돌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플래시가 매킨토시 운영체제인 맥 OSX의 문제라고 밝혔다. 애플 입장에서 보면 정말 치명적인 일이다. 이는 맥 OSX가 윈도우보다 떨어진다고 낙인을 찍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도비는 10여 년 전부터 매킨토시 플랫폼에 소홀해 왔다. 어도비의 대표적인 소프트웨어인 포토샵만 해도 맥 OSX 버전이 윈도우보다 열등하다. 과거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와 비슷한 상황이 재현된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도움 덕분에 성공시대를 연 어도비가 정작 애플을 외면하자 스티브 잡스는 충격을 받았고, 그가 소프트웨어에 전력을 쏟는 계기가 될 정도였다. 이런 배경 때문에 애플이 플래시를 거부하는 이유가 사실은 과거에 대한 복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어도비는 매킨토시보다 윈도우에 정성을 쏟아왔다. 물론 돈을 벌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고객이 월등히 많은 곳에 회사의 자원을 투입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애플이 그런 사정까지는 봐줄 필요가 있을까? 애플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플랫폼을 보호해야 한다. 플래시는 애플의 명성에 타격을 주고 있으며, 플래시의 인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더 큰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어도비는 윈도우에 주력하는 회사이며, 이는 제품의 질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만약에 플래시를 기준으로 해서 윈도우와 맥 OSX을 평가하게 된다면 맥 OSX가 완패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 입장에서 보면 플래시가 플랫폼을 선택하는 기준은커녕 평가 대상도 될 수 없도록 플래시의 입지를 최소화시킬 필요가 있다. 


스티브 잡스의 공개 메일을 보면 애플의 이런 의도가 잘 드러난다. 스티브 잡스는 여섯 가지 이유를 들어서 플래시 거부 사유를 밝혔는데, 마지막 여섯 번째에 가장 중요한 이유를 말했다. 여섯 번째 항목에서 스티브 잡스는 외부의 소프트웨어 회사가 개발툴을 만들 경우 플랫폼의 기술과 성능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말한다. 회사에서 플랫폼을 향상시켜도, 외부 소프트웨어 업체에서 이를 적용하여 업그레이드해 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 어도비의 플래시는 윈도우와 맥 OSX 두 개의 운영체제를 지원하는 멀티 플랫폼이지만, 맥 OSX의 최신 기술이 등장한 지 10년이 지난 후에야 이를 접목할 정도로 맥 OSX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어도비의 플래시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처럼 강력한 힘을 가지는 소프트웨어가 된다면 애플에게 치명타가 될 것이 자명하다. 고로 애플의 입장에서는 플랫폼을 사수하기 위해서라도 플래시를 견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애플이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으면 애플에 대한 비난 여론이 흐를 수밖에 없고, 어도비 역시 애플이 벽을 만들고 있다면서 폐쇄성을 집중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시장에서 이익을 얻기 위한 싸움이라도 거기에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특히 IT업계에서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애플은 표준 기술인 HTML5를 들고 나오며 오히려 플래시가 폐쇄적이라고 역공격을 펼치고 있다. 어도비 입장에서는 자사의 기술을 애플에서 지원해 주지 않으니 애플이 폐쇄적이라고 하는데, 정작 애플은 웹이 특정회사의 기술로 통제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플래시야말로 폐쇄형이라고 지적한다. 사실 웹은 주인이 없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업체 간 합의를 통한 공개 표준이 중요한 곳이다. 플래시가 편리해서 사용하기는 하지만 모든 기술을 어도비 혼자서 통제하는 폐쇄형 기술인 것도 사실이다. 


애플은 플래시를 교체하기 위한 기술로 공개개방형 표준기술인 HTML5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문제는 HTML5가 아직 확정된 기술이 아니며, 언제 대중화될지 모르는 미완의 기술이라는 점이다. HTML5의 미래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애플이 HTML5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나서자 어느덧 IT업계의 화두는 HTML5가 되었고, IT기업이 너도나도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2010년 6월 스트리밍 미디어(Streaming Media)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1,147개의 미디어 사이트 중 49%에 이르는 업체가 앞으로 HTML5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많은 업체들이 HTML5를 지원하는 것은 아이패드의 성공 덕분이다. 아이패드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플래시가 아니라 HTML5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아이패드와 아이폰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HTML5 기술도 더 빨리 보급될 것이다. 


애플은 자사의 홈페이지에 HTML5 기술을 이용하면 얼마나 멋진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쇼 케이스까지 만들어 HTML5 기술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그들이 게임의 법칙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잘 알 수 있다.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음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듣는 한편 경쟁업체에게는 폐쇄적이라는 격렬한 비난을 들어야 했지만, 이런 논란 속에 HTML5라는 표준기술을 제시하면서 업계 전체를 애플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HTML5의 보급은 그 자체로 인터넷을 지배하는 게임의 법칙을 바꾸는 일이다. 업계의 방향을 자사에게 유리하도록 게임의 법칙을 바꿀 수 있는 애플의 능력, 그것이 바로 애플이 혁신을 넘어 혁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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