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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섯 명의 영국 수상과 두 명의 미국 대통령 그리고 넬슨 만델라, 마이클 잭슨, 퀸을 만난 적이 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와의 만남은 그 어떤 때보다도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나도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 하지만 이게 사실이다. 나는 잡스가 정말 세상을 바꾼 혁신가이자 위대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흥행사, 완벽주의자, 선지자, 열성자, 기회주의자의 사이에 있다. 디자인, 디테일, 완성도, 품질, 사용자 편의성, 신뢰에 대한 그의 고집은 애플 성공에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개인적인 매력은 정말 치명적이다.

  - <타임> 기자 Stephen Fry, 2010년 The iPad Launch: Can Steve Jobs Do It Again? 중에서

기획자가 일하는 매 순간이 사실은 협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획자의 뜻대로 모든 개발자들이 순수하게 움직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안에 따라서 개발자들 각자의 의견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기획자의 생각이 처음부터 개발자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기는 힘들다. 기획자는 이상론자이고, 개발자는 현실론자이기 때문이다.

기획자는 자신의 머릿속에 상상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현실 세상에 구현하고 싶어 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지만, 개발자는 실현가능성과 스케줄을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상품을 제작하는 현장에서 기획자의 이상과 개발자의 이성은 끊임없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기획자가 풍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면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개발자의 시간과 노력은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과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사람의 입장차이가 명확한 만큼 현장에서는 기획자와 개발자 사이에 일종의 주도권 싸움이 벌어진다. 기획자가 아이디어를 말하면 개발자들은 긍정이 아니라 부정에서 시작한다. 개발자는 기획자의 아이디어에 대해 과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고 있는 만큼 개발자에게 이를 설득시켜야 한다. 결국 기획자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능력만큼이나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있도록 개발자와 끊임없이 협상해야 한다. 그래서 협상력이야말로 기획자의 필수적인 스킬 중 하나이다.

스티브 잡스의 협상력을 살펴보면 첫 단계는 생떼 부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황금배짱을 지닌 그는 일단 무조건 막무가내로 협상을 진행한다. 부모님에게 전학을 요구할 때도 전학을 시켜주지 않으면 학교를 가지 않겠노라고 선언했고, 결국 부모님도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막무가내 돌파 전략은 게임 회사 아타리에 취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게임 개발에 대한 어떠한 경험과 기술도 없던 그는 무작정 아타리에 찾아가서는 자신을 고용해 달라고 부탁했다. 만약에 자신을 채용하지 않으면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면서 말이다. 이런 수법은 그가 애플을 창업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돈도 없으면서 무작정 홍보업계의 유명인사인 레지스 맥키너에게 광고를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스티브 잡스가 단순히 생떼만 부리고,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만 했다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무작정 아타리와 레지스 맥키너를 찾아갔지만 겁 없이 달려드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열정과 확신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확고한 비전과 이를 반드시 완수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누구보다도 강력했던 만큼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데 두려움이 없었고, 때론 누구에게도 큰소리치는 뻔뻔함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 안의 열정과 확신을 알아보는 사람은 스티브 잡스의 후원자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미치광이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다른 사람과 협상할 때 보이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주눅 들거나 비굴하게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 협상 분위기 자체를 항상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려고 한다는 점이다. 넥스트를 창업할 때 미국의 억만장자인 로스 페로는 스티브 잡스에게 투자하고 싶다는 연락을 한다. 스티브 잡스는 바로 그 자리에서 협상에 들어가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로스 페로에게 전화를 걸었고, 2천만 달러의 투자를 받게 된다. 만약 투자의향을 밝혔을 때 흥분한 마음으로 덥석 협상을 시작했다면 스티브 잡스는 로스 페로에게 주도권을 완전히 잃었을 것이다. 협상에서 갑과 을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계약을 절실하게 원하는 쪽이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로스 페로의 투자가 꼭 필요했던 시점이었지만, 급한 마음과 초조함을 겉으로 드러내면 그 순간 협상의 주도권은 로스 페로에게 넘어간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로스페로에게 전화를 함으로써 여유로움을 과시하는 동시에 로스 페로와의 투자 협상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IBM과의 협상에서도 스티브 잡스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창업할 때의 기대와 달리 넥스트의 실적은 형편없었다.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지 못하면 회사의 앞날이 불투명하던 시점에 IBM이 넥스트의 운영체제에 관심을 보이게 된다. 넥스트의 운영체제가 IBM의 컴퓨터에 채택된다면 스티브 잡스는 그동안의 부진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였다. IBM과의 계약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스티브 잡스는 위축되지 않고 당당함을 유지했다. IBM이 들고 온 계약서를 보자 스티브 잡스는 그것을 바로 쓰레기통으로 버리고는 계약서를 다시 써오라고 말하면서 돌려보낸다. 만약에 IBM이 가져온 계약서를 토대로 협상이 시작됐다면 협상의 주도권은 IBM이 가져갔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IBM의 계약서를 처음부터 전부 무시하고 처음부터 자신의 기준에 맞춰서 협상을 시작하려 했다. 회사로 돌아간 IBM 관계자는 스티브 잡스가 원하는 계약내용을 토대로 협상하자고 제안했고, 결국 스티브 잡스의 뜻대로 계약이 이루어졌다.

협상의 주도권을 자신에게로 끌어가기 위해 스티브 잡스가 사용하는 전형적인 수법 중 하나는 집으로 협상 관계자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협상 상대가 누구일지라도 초대받은 사람은 손님일 뿐이고, 집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주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래서 협상 분위기 자체를 스티브 잡스가 쉽게 주도할 수 있게 된다. 스티브 잡스의 운명을 갈라놓은 역사적인 협상인 애플과 넥스트의 인수 협상도 스티브 잡스의 집에서 마무리되었다. 스티브 잡스가 따라주는 차를 마시며 협상을 진행한 당시 애플의 CEO 길 아멜리오는 그에게 완전히 매료되었고, 결국 스티브 잡스가 원하는 대로 4억 달러가 넘는 거액을 넘겨주었다. 마이크로소프트에게 1억 5,0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을 때 역시 관계자들을 집에 초대해서 협상했다. 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바로 얻어낼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협상할 때 절대로 자신의 조바심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반면에 상대의 초조함은 최대한 이용한다. 이러한 그의 협상 전략은 픽사를 1,000만 달러라는 헐값에 매수할 때 극대화 된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펠로우(애플 최고의 엔지니어에게 붙이는 호칭)였던 앨런 케이에게서 스타워즈의 영화감독 조지 루커스가 컴퓨터 그래픽팀을 매물로 내놓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앨런 케이의 추천으로 스티브 잡스는 직접 조지 루커스를 만나러 간다. 그리고 루커스가 데리고 있는 컴퓨터 그래픽팀의 영상물을 보고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흥미가 생긴 스티브 잡스는 루커스의 컴퓨터 그래픽팀을 인수하고 싶었다. 조지 루커스가 3,000만 달러를 요구하자 스티브 잡스는 살며시 뒤로 한 발 물러서 때를 기다린다. 루커스는 마침 다른 여러 회사와 인수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인수협상이 벽에 부딪치자 때를 놓치지 않고 다가가서 인수를 제안했다. 하지만 인수협상은 지지부진했다. 스티브 잡스가 쉽게 루커스가 원하는 돈을 내놓을 리가 없었다.  스티브 잡스는 루커스와 시간을 끄는 한편 협상을 중단시키지 않고 끈질기게 더 좋은 계약조건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했다. 당시 루커스는 이혼한 부인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했기 때문에 돈이 급했다. 결국 조바심을 느낀 루커스는 스티브 잡스와의 지긋지긋한 협상 끝에 컴퓨터 그래픽팀을 1,000만 달러에 넘기고 만다. 루커스로서는 속이 쓰릴 정도의 헐값이었지만 결국 스티브 잡스의 집요함에 더 이상의 돈을 얻어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협상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모든 협상의 기본은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다.  결국은 줄 수 있는 만큼 또 받아낼 수 있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아타리에서 일을 할 때 인도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몸이 아팠는데 죽기 전에 인도 순례여행을 하고 싶었다. 회사에 여행을 떠나겠다고 하자 직장상사는 독일에 문제가 있으니 그 문제를 해결하고 가라고 했다. 독일로 날아간 스티브 잡스는 단 두 시간 만에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고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인도 순례여행을 마친 후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아타리로 돌아와서 일을 시작했다. 스티브 잡스가 여행을 떠나고 복직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스티브 잡스가 독일에서의 문제를 쉽게 해결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뛰어난 협상력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사례는 아이튠스 서비스를 위해서 음반사들로부터 MP3 파일을 인터넷으로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한 일이다. 사실 5대 메이저 음반사로부터 판권계약을 맺는다는 것 자체가 당시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협상은 그런 고정관념을 부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음반사와의 협상은 결코 쉽지 않았다. 당시는 음반업체들이 MP3 파일의 불법복제 문제로 수입에 치명타를 입던 시절이었다. 음반업체들은 IT기업들이 MP3 파일의 불법복제를 방조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IT쪽 사람들을 탐탁찮게 여기고 있었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가 음반사에 처음 다가갈 때만 해도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고, 협상도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한 번에 포기하는 사람도 아니고 또 조바심을 드러내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음반사와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했다. 그 자신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며, 애플은 불법복제를 막을 대안을 가진 회사임을 알렸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음반사들은 애플과 협력하기보다는 독자적인 서비스를 시작한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단호하게 음반사들의 모든 시도가 실패할 것이라고 예견하는 한편 계속 신뢰감을 쌓기 위해서 노력했다. 스티브 잡스의 예측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자 비로소 애플을 우호적인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고, 불법복제 문제는 인터넷이 아니라 합법적인 서비스가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하면서 애플이 준비하는 아이튠스 뮤직스토어에 협조해줄 것을 부탁했다. 스티브 잡스가 처음부터 직접 음반사 관계자들과 협상을 하지는 않았다. 우선 직원을 통해서 협상을 하다가 잘 진전이 되지 않으면 그때 스티브 잡스가 나섰다. 아무리 지지부진한 협상도 스티브 잡스가 나서면 바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협상에 나선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낸 현실 왜곡의 장을 경험하고는 곧 스티브 잡스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경쟁 관계에 있던 소니뮤직의 CEO인 앤드루 랙마저도 스티브 잡스를 보고는 즉시 애플의 아이튠스 뮤직스토어에 음악 판권을 넘기는 계약서에 사인하기로 결정한다.

애플의 아이튠스 뮤직스토어는 서비스 개시부터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왜냐하면 유니버설, 소니, EMI, BMG, 워너뮤직과 같은 세계 5대 메이저 업체를 한곳에 모아서 서비스한다는 것은 당시만 해도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었는데 애플이 바로 그것을 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5대 음반사의 협력을 얻은 덕분에 처음부터 20만 곡의 음악을 보유한 상태에서 다운로드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는데, 소비자들은 원하는 곡들을 한곳에서 간편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에 열광했다. 아이튠스 뮤직스토어는 서비스 개시 15개월 만에 1억 곡을 돌파했고, 7년 만에 100억 곡이나 판매하는 등 음악 산업 자체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음반사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처음 거절당했다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음반사들과 접촉했기 때문이다. 또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관계자들과 친밀감을 쌓았고 음반사들의 실패를 예견하면서 신뢰감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음반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애플이 무엇인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애플과 협력할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불법복제라는 공공의 적을 상정하고, 자신이 그 불법복제를 물리칠 수 있는 구세주임을 부각시킴으로써 협상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최악의 상태가 되더라도 음반사는 별로 피해를 입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아이튠스 뮤직스토어는 매킨토시 이용자들에게만 서비스되는데, 매킨토시의 점유율은 매우 적기 때문에 아이튠스 뮤직스토어가 실패해도 음반사는 별 타격을 입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려 18개월에 걸친 꾸준한 접촉과 신뢰 쌓기 그리고 대안 제시를 통해 스티브 잡스는 5대 음반사와 판권계약이라는 기념비적인 협상을 완수할 수 있었는데, 결국 이 협상은 애플이 음반사에 손해를 주지 않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임을 알린 것이 주효했다.

 스티브 잡스가 미국의 이동통신사 AT&T로부터 유리한 계약을 이끌어낸 것도 마찬가지다. 스티브 잡스는 AT&T가 거액을 들여서 3G 네트워크망을 구축했지만 아무도 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서 기존의 휴대폰은 베이비 인터넷이지만, 아이폰은 빅보이 인터넷을 구현한 스마트폰이라면서 AT&T를 설득했다. 결국 애플의 아이폰이 AT&T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믿음을 주었기에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원하는 모든 것을 협상으로 얻을 수는 없다. 결국 스티브 잡스의 협상력이라는 것은 그가 원하는 것을 받아준다면 상대방도 결과적으로 이익을 얻게 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과 신뢰를 주는 능력, 바로 거기에 있다고 요약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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