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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의 사랑과 교육열

 스티브 잡스는 비록 입양되었지만 양부모님의 깊은 사랑을 받으면 자랐다.. 대학에 보내기 위해 평생 모은 돈을 한 번에 써버린 양 부모님의 사랑을 빼놓고, 스티브 잡스의 현재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할 때 스티브 잡스의 아버지는 차고에서 부업으로 자동차를 수리해서 재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를 위해 차고를 양보해주었다. 또한 스티브 잡스의 어머니는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하자 청소와 고객응대등 각종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 컴퓨터와 사랑에 빠지다

 내가 10살인가 11살 때쯤 에임스에 있는 나사 연구소에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보았어요. 그것은 진짜 컴퓨터는 아니었고, 컴퓨터와 선으로 연결된 단말기였죠. 어쨌든 나는 눈을 뗄 수 없었죠. 내가 처음으로 데스크톱 컴퓨터를 본 것은 9100A라 불리는 휴렛 팩커드의 제품입니다. ABL과 베이직이 돌아가는 세계 최초의 데스크톱 컴퓨터였어요.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스티브 잡스, 스미스소니언 협회 인터뷰 중에서-

 스티브 잡스는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한 외톨이였지만 그는 전자기기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전자기기에 대한 사랑은 고스란히 컴퓨터로 이어진다. 그가 성공한 이유를 하나만 든다면 남들이 컴퓨터라는 존재를 알지도 못했을 때 각 가정과 회사에는 컴퓨터가 놓이게될것이라는 비전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 비전의 밑바탕에는 사실 컴퓨터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 좋은 친구를 곁에 두다

  워즈니악이 엔지니어였다면, 스티브 잡스는 기획자였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자신의 기술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면 이를 돈이 되는 사업으로 만드는 것이 스티브 잡스의 역할이었다. 워즈니악이 공짜로 전화를 걸게 해주는 블루박스를 만들었고, 이를 상품화한 것은 스티브 잡스였다. 워즈니악이 기술에 의존했다면 스티브 잡스는 자유로운 발상과 창조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워즈니악이 현실에 만족하며 살았다면 스티브 잡스는 항상 배고픈 강한 야망의 소유자였다. 이러한 둘의 성향은 애플 컴퓨터의 성공을 이끌어 냈다.

 * 포기를 모르는 열정을 지니다

애플 컴퓨터를 창업한 후 스티브 잡스는 자금을 구하기 위해 구하기 위해 은행에 갔을때는 단번에 거절당했다. 실리콘밸리의 투자자인 돈 밸런타인을 찾아갔을때는 미치광이 소리를 들었다.  이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개인용 컴퓨터를 판매하겠다는 스티브 잡스의 생각을 부정적으로 봤지만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였다.

 * 경험많은 경영자와의 조화

 창업 초기 동아리 수준에 불과했던 애플은 마이크 마쿨라의 합류 이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인텔에서 마케팅 담당자로 일했떤 마이크 마쿨라는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에게 없던 것들을 완벽하게 보충해 주었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엔지니어로서,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기획자로서 컴퓨터 개발에 매진했지만 둘이서만 사업을 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아무리 마케팅과 영업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어도 그는 회계장부도 읽지 못할 정도로 경영지식이 전무했고, 회사를 운영하기에는 사회경험이 부족했다. 아직 아마추어에 불과한 이들에게는 마이크 마쿨라처럼 이미 성공을 경험한 코치가 필요했다. 꿈꾸는 두 몽상가에게 마이크 마쿨라는 멘토가 되어서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고,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프로가 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하면서 애플은 본격적인 성공의 시대를 열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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