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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가의 창업자인 마크 핀커스는 1966 2 13일 시카고에서 태어난다. 그는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후에 은행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게 된다. 그는 홍콩으로 넘어가서 아시안 캐피탈 파트너스라는 회사에서 2년간 근무를 하기도 했다. 미국에 돌아온 그는 하버드 대학교의 MBA를 졸업하고 현재 AT&T 케이블이 된 TCI에서 매니저로 일을 하다가 컬럼비아 캐피탈로 자리를 이동하게 된다. 하지만 마크 핀커스는 회사를 다니면서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었고 컬럼비아 캐피탈에서도 쫓겨나게 되자 결국 직접 회사를 창업한 결심을 한다. 드디어 1995년 중요한 정보들이 발생할 때마다 이를 인터넷으로 즉시 전송해주는 푸시기술을 바탕으로 프리로더라는 회사를 창업하게 된다. 회사가 시작된지 단 7개월만에 3800만달러에 판매하는 수완을 발휘한다.

1997
년에는 다시 소프트웨어를 공급하고 서비스하는 서포트닷컴을 창업하고 2000년에 상장에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회사에 돈을 투자한 벤처 캐피탈 업체의 계속되는 간섭에 회사에 회의감을 느낀 그는 다시 자신의 세번째 회사인 트라이브 네트웍스를 창업하게 된다. 일종의 커뮤니티 기반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였지만 큰 성공은 거두지 못하였고 결국 2007년 여러 기술자산들을 시스코 시스템즈에 넘기게 된다.   그리고 마크 핀커스는 자신의 네번째 회사를 설립하게 되는데 그 회사가 바로 오늘날 소셜 게임의 구글이라고 불리우는 징가이다. 처음 마크 핀커스가 페이스북에서 작동하는 앱을 개발한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다. 하지만 마크 핀커스는 앱 개발에 매진하게 된다. 징가가 본격적으로 그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마피아 워즈다. 2008 6월에 오픈한 마피아 워즈는 2010 8월에는 4 500만명의 액티브 유저를 확보할정도로 큰 인기를 끈다. 징가를 세계적인 회사로 거듭나게 만들어준 게임은 팜빌이다. 팜빌은 간단하게 말하면 농사를 짓는 게임이다. 더 많은 작물을 수확하기 위해서 땅을 개척한 다음에 농작물을 심고 비료를 줄 수 있다. 가축도 키울 수 있고 집도 지을 수 있다.

팜빌의 제작을 총 지휘한 사람은 마크 스캑스(Mark Skaggs)이다.  마피아 워즈의 개발이 완료되기 직전에 징가에 입사한 그는 현재 회사의 임원으로 있는 빙 고든(Bing Gordon)으로부터 농장 게임을 만들어 보라는 소리에 팜빌을 기획하게 된다. 마크 스캑스는 웨스트 우드에서 개발한 커맨드앤 퀀커:레드얼렛2를 경험삼아서 자원을 수집하고 이를 확장시키는 게임 방식을 구상한다. 게임 개발은 가볍고 빨라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있었다. 그래서 이미 징가가 서비스하고 있던 게임인 YoVile에서 사용된 캐릭터를 재사용하여서 팜빌을 만들어 낸다.

팜빌은 놀랍게도 불과 5주동안 11명의 개발자들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 프로그래머가 6, 아티스트가 2, 프로듀서/디자이너 3명이 만들었고 운영 개시로부터 1 8000명이 접속을 하였고 4일후에는 100만명을 돌파하며 큰 인기를 끈다.  원래 팀의 목표는 서비스 시작 30일 사이에 하루 이용자수가 40만명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표에 팀원들은 무모하다고 생각했고 회사의 개발부 부사장은 30일 안에 100만명의 접속하면 개발 전체를 파리여행을 보내준다는 농담까지 하였다. 하지만 5일도 안되서 100만명의 접속자를 확보했고 하루 최대 3200만명이 함께 게임을 즐기는 날이 있을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팜빌을 서비스할 때만해도 300명이었던 직원이 1000명에 이르게 된다.

그후 징가에서 여러가지 게임을 내놓지만 팜빌의 기록을 깨지 못한다. 하지만 2010년 새로운 게임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시티빌(CityVille)이었다. 시티빌은 팜빌의 도시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인기게임이었던 도시건설 시뮬레이션 게임 심시티와 비슷한 방식의 시티빌은  2010 8월 개발이 시작되었고 2010 12월에 정식서비스가 시작된다. 40명정도의 직원이 제작에 투입되었는데 그중에 절반은 게임개발 경험이 전무한 신입사원들이었다고 한다. 원래는 11월에 출시할 예정이었지만 게임의 재미를 강화하기 위해 서비스가 한달정도 늦어지게 된다. 시티빌은 등장하자 마자 팜빌이 세운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기 시작했다. 서비스가 오픈한지 단 하루만에 100만명을 기록하더니 한달만에 1400만을 돌파하고 2011 2 25일에는 2000만명을 넘어섰는데 이 모든 기록은 팜빌보다 두배 빠른 성장속도이다.

징가는 비상장 주식이지만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의하면 시장가치가 대략 1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세계 1위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129억달러에는 부족하지만 65억달러인 일렉트로닉 아츠의 가치는 훌쩍 뛰어넘는 기록이다.  징가는 페이스북 성공의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페이스북의 킬러콘테츠가 바로 징가의 게임들이기 떄문이다. 창업된지 5년이 된 회사인 트위터에 전체 가입된 회원수인 2억명인데 비해서 징가의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매달 2 1500만명이나 되고 있으니 징가 그 자체가 페이스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마어마하다. 사실 2010년 초반 무렵 페이스북과 징가 사이가 삐그덕 된적이 있었다. 페이스북에서는 자사의 결제수단인 페이스북 크레디트를 이용하도록 되어있는데 이를 통해서 사용자들이 결제를 하면 페이스북이 매출의 30%를 수수료로 가져가게 된다. 징가는 페이스북에 30%나 되는 수수료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페이스북을 배제한 독자적인 게임 서비스를 계획한다. 징가는 몇 개의 게임을 중단시키면서까지 페이스북을 강력하게 압박한다. 그리고 이들의 결별설이 계속 흘러나오더니 2010 5월 전격적으로 5년간 기한의 새로운 파트너 계약을 맺는다. 이 계약으로 두 회사가 더 밀접해지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계약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30%의 수수료문제에 대해서 징가에게만 특혜를 준 것이 아니냐는 추정만할 뿐이다.  페이스북과 징가의 계약은 징가의 위상을 재확인시켜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2010 Web 2.0 Summit 에 참가한 마크 주커버그는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 게임들이 가장 먼저 성공한 분야였고 PC시장의 초창기에도 게임 때문에 사람들이 컴퓨터를 구입하였음을 지적한적이 있다. 페이스북의 성공 역시 중심에는 징가의 게임들이 있다. 이렇듯 새로운 플랫폼이 생겨날때는 게임이 결정적인 공헌을 하고 게임이 큰 수혜를 입게 마련이다. 소셜네트워크 시대에도 소셜게임으로 새로운 승자가 되고 있는 만큼 소셜게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여 봤다. 그리고 필자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소셜네트워크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새로운 플랫폼이 탄생하게 된다면 꼭 게임부분을 주목해서 살펴보기 바란다.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시대의 승자들이 나타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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