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첫째 아이디어 발상력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하는 일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는 위대한 사람들을 얻으려면 회사의 직원들이 위대한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한다. 스티브 잡스 역시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그것이야 말로 자신이 애플에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는 미국 특허청에 등록된 313가의 특허에 그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그는 아이폰뿐만 아니라 애플 스토어의 유리계단이나 제품의 파워 어댑터 그리고 포장방법등에도 직접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의 첫번째 히트작인 애플2 컴퓨터에서도 스티브 잡스의 아이디어는 빛을 발한다. 애플2 컴퓨터가 성공한 이유는 세가지다. 우선 컬러화면이었고 플라스틱 케이스로 뛰어난 외관을 자랑했으며 소음이 적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플라스틱케이스와 작은 소음은 바로 스티브 잡스의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아이디어는 그 가치를 올바로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자신이 만든 컴퓨터를 일반인들에게 팔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스티브 잡스는 그 가치를 한번에 꿰뚫어보고 회사를 차려서 판매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제록스내에서도 인정받지 못했던 그래픽 기반의 인터페이스의 가치를 알아보고 이를 상용화할 계획을 세운것도 스티브 잡스였다.  전자 출판 혁명을 불러일으킨 포스트 스크립트의 진가를 알아보고 250만달러를 투자해서 차고에있던 어도비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변화시킨것도 역시 스티브 잡스였다. 스티브 잡스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창조할뿐만 아니라 흙속의 진주를 발견하듯 아이디어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춘 사람이었기에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들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인재 활용술

사업 분야에서는 더 이상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팀을 만들어서 팀원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을 할수 있도록 해야 한다. 스티브 잡스는 팀을 구성해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사람이었다. 사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을 창업할 마음이 없었고 원래 다니고 있던 직장인 HP를 그만둘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을 끈질기게 설득했을뿐만 아닐 스티브 워즈니악의 가족들과 친구들을 자기편으로 만들어서 스티브 워즈니악이 HP를 그만두는데 도움을 얻는다.  돈 한푼 없었던 스티브 잡스였지만 막무가내로 찾아가서 광고 전문가였던 레지스 메키너에게 일을 맡기었을뿐만 아니라 투자가인 돈 밸런타인까지 소개받는다. 돈밸런타인에게도 무작정 찾아가 투자를 부탁했다가 이단아라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스티브 잡스는 이에 연연하지 않고 다른 투자자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결국 돈 밸런타인은 인텔의 직원으로 백만장자가 된 후에 은퇴를 한 마이크 마쿨라에게 스티브 잡스를 만나보도록 추천하였고 애플의 차고에 방문한 마이크 마쿨라는 스티브 잡스에 감동을 받아 즉시 애플에 투자를 하기로 결심한다. 애플의 로고를 그린 롭 야노프나 애플2 컴퓨터의 케이스디자인을 책임진 제리마녹  그리고  스노우 화이트로 개인용 컴퓨터의 표준을 제시한 하르무트 에슬링어 역시 스티브 잡스가 발굴한 인물이다. 현재 애플의 CEO를 맡고 있는 팀쿡 역시 스티브 잡스가 직접 스카우트 한 인물이고 회사에 불만을 품고 사표를 쓰려던 조너선 아이브의 진가를 알아보고 그에게 디자인 전권전 위임한 것 역시 스티브 잡스이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가 인재들을 발굴해서 자기편으로 만들어 놓는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매력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차고에 있던 애플에 광고전문가인 레지스 메키너와 백만장자인 마이크 마쿨라가 합류한 것은 가정과 회사에 컴퓨터를 팔겠다는 확고한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매킨토시의 개발에는 제록스의 팔로알토에서 근무했던 연구원들의 합류가 결정적이었다.  연구원들이 제록스를 그만두고 애플에 들어온 것은 스티브 잡스가 팔로알토에 있는 기술들을 안타까워하면서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가 미래가 될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하자 이에 연구원들은 스티브 잡스의 마음에 빼앗겨서 자신들의 직장을 그만두고 애플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셋째 위대한 제품을 개발하는 능력

스티브 잡스는 위대한 제품이 위대한 비즈니스를 탄생시킨다고 믿는 제품 지향적인 인물이었다. 위대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개발자들이 회사의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회사의 중간관리자들을 최대한 없애고 개발자들이 창의적으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중간 관리자들도 대부분 개발자 출신이기 때문에 개발에 대한 이해력이 높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 개발에서  극도의 단순함을 추구한다.  단순함은 스티브 잡스를 최고로 만들어준 만트라이자 그를 이해하는 만능열쇠이다.  스티브 잡스는 단순함이야 말로 궁극적인 정교함이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을 신봉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삶과 회사 운영 그리고 제품 개발에서 단순함을 추구한다. 스티브 잡스는 조직구성 자체를 누가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단순하게 만든다. 조직이 단순할수록 사내정치가 줄어들고 새로 시작하는 회사처럼 활기있는 조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 라인업 역시 단순한데 다른 휴대폰 업체들이 매년 수십가지 모델을 내놓는데 비해서 애플은 한가지 모델만 내놓을 뿐이다.   애플은 다른 제품과 차별화된 상품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제품을 매우 단순하게 만들겠다는 각오로 끊임없이 제품을 탐구해나간다.  그러다보면 기존의 제품과는 완전히 다른 제품을 탄생시키게 된다. 통짜로 된 알루미늄으로 완성시킨 유니바디 디자인은 애플 노트북만의 자랑인데 이는 이음색 하나 허용하지 않는 단순함을 추구하는 애플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스티브 잡스는 나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한번은 신형 맥을 만들면서 나사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고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디자이너는 나사를 시제품의 손잡이 밑에 나사 하나를 배치시켰는데 이를 발견한 스티브 잡스는 디자이너를 즉시 해고시켰다. 단순함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집착은 플로피 디스크를 제거한 아이맥이나 옵티컬 드라이브를 삭제시킨 맥북에어에서도 잘드러난다. 수천곡의 노래중에서 원하는 곡을 단번에 찾아주는 스크롤 횔 역시 단순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에서 버튼을 최소화하도록 지시했는데 이는 버튼이 줄어야 조작도 그만큼 쉬워지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을 만들면서 천번이상 노를 외치면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한다.  아이폰 역시 단순함의 절정에 서있는 제품이다. 아이폰은 물리적인 키보드와 스타일러 펜을 제거함으로써 오직 손하나로 모든 것을 조작하게 만들어주는 단순한 인터페이스를 갖춘 덕분에 휴대폰 업계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네번째 사람을 설득하는 협상력

스티브 잡스의 성공에서 그의 탁월한 협상력 역시 뻬놓을 수 없다. 스티브 잡스는 어린시절부터 뛰어난 협상력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자 부모님을 설득해서 가족 전체가 이사하도록 만들었으며 HP에 전화를 걸어서 공짜로 부품을 얻었을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 자리까지 구했다.  대학을 중퇴한 후에 게임회사인 아타리에 취직할 때 역시 게임에 아무런 지식이 없었지만 뛰어난 협상력으로 바로 취직할 수 있었다. 픽사를 500만달러라는 헐값에 구입할때나  넥스트를 운영할때 로스페로로부터 2천만달러를 투자받을 때 역시 스티브 잡스의 뛰어난 협상력이 있었다.  스티브 잡스의 훌륭한 협상력은 아이튠스 뮤직스토어를 런칭했을 때 잘드러난다.  음반 업계는 인터넷을 불법복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기 때문에 IT 업계를 무척 싫어했다. 스티브 잡스가 인터넷을 통해서 음악을 판매하려고 하자 음반업계는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음반사들을 찾아가서 자신들이 음반업계에 도움을 줄수 있는 존재임을 끊임없이 설득했다. 음반사들은 독자적인 서비스를 통해서 직업 음악을 판매하려고 헀다. 그러자 스티브 잡스는 음반사들의 모든 노력은 모두 실패할것이라고 조언하였다. 실제로 음반사들의 모든 시도들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고 음반사들은 조금씩 스티브 잡스의 말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들의 탁월한 서비스를 통해서 음악을 판매하게 되면 불법 복사와의 경쟁에서도 승리할 수 있음을 확신시켜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스티브 잡스의 끈질긴 설득이 계속되자 음반사들도 하나둘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1년 6개월간의 지루한 협상끝에 2003년 4월 28일 애플은 세계 최초로 세계 5대 음반사인 소니, 유니버셜, 워너, EMI, BMG, 소니의 음악을 한곳에 모아놓고서 뮤직스토어를 서비스하게 된다. 뮤직스토어는 메이저 음반사들의 협력덕분에 20만곡이 넘는 음악을 확보한상태에서 서비스를 한 덕분에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AT&T와의 제휴에도 스티브 잡스의 협상력이 뒷받침 되었다. 기존의 이동통신사는 단순히 네트워크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단말기의 기능과 서비스까지 직접 관여했다. 지금처럼 앱스토어를 휴대폰 제조업체가 직접 운영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이동통신사는 오직 네트워크만 제공하고 그 밖의 모든 통제권은 애플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줄 이동통신사는 없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AT&T에 접근한다. AT&T는 무선 인터넷망 구축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했지만 정작 무선 인터넷을 쓰는 소비자들이 없었다. 스티브 잡스는 기존 휴대폰 기술은 베이비 인터넷이지만 애플의 아이폰은 빅보이 인터넷을 경험할 수 있는 제품이라면서 AT&T의 CEO였던 스탄시그맨을 설득한다. 이동통신사 입장에서는 기존에 누리던 수 많은 기득권을 포기해야한다는 것을 스탄 시그맨도 잘 알고 있었지만 아이폰처럼 매력적인 제품이라면 사용자들을 불러 모을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스티브 잡스가 독점 판매권을 줄 수 있다고 하자 결국 애플에 엄청난 특혜를 주면서 아이폰 독점 공급계약을 맺게 된다. 

다섯번째 탁월한 마케팅 감각

스티브 잡스는 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마케팅 활동에도 적극적인 인물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이 완성되면 생면 부지의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제품을 홍보하였고 제품을 직접 들고서 직접 판촉활동에 나서기도 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광고캠페인에도 적극 관여하였다.  애플 초창기에는 홍보전문가인 레지스 메키너를 직접 영입해서 함께 협업으로 각종 광고물을 제작하였다. 애플이 그 유명한 1984와 Think Different를 제작하는데도 스티브 잡스가 직접 참가하였다. Think Different를 만든 치아트 데이의 직원인 켄 시걸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CEO가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상세한 부분까지 스티브 잡스가  광고에 관여한다고 밝혔다. 이를테면 스티브 잡스는 광고문구의 4번째 문단에서 세번째 단어가 별로라면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할 정도라고 말한다. 애플 학교에 무상으로 애플 2 컴퓨터를 기증하는 Kids Can’t Wait 덕분에 애플은 교육시장에 안작하게 되는데 이 계획안을 마련한 것이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 또한 메킨토시를 대학교에서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는 마케팅도 스티브 잡스의 작품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마케팅은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는 그의 프리젠테이션에서 완성된다. 스티브 잡스가 무대에서 제품을 소개하는 모습을 보면 한편의 연극을 보는 기분이 들정도로 감동적이다. 특히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은 앞에서도 소개했듯이 일곱번이나 세상을 바꾸었고 고아로 태어나서 혈혈단신으로 자수성가한 인물이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특별한 아우라가 느껴진다. 스티브 잡스 자체가 IT 업계를 뛰어넘는 세계적인 슈퍼스타인 만큼 스티브 잡스가 직접 등장하여 최고의 프레젠테이션을 보여주니 이는 인기 영화배우가 출연한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큰 화제성을 가지게 된다.  사실 스티브 잡스의 활약은 IT 업계에서도 스타 마케팅이 얼마나 강력해질 수 있느지를 발 보여준다.  단순한 아이폰 사진보다는 무대에서 스티브 잡스가 직접 신형 아이폰을 들고 살며시 웃고 있는 모습이 훨씬 이목을 집중시키고 파괴력이 있다.  그래서 애플이 앞으로 가장 타격을 받게 될 것도 당장의 제품 발표회이다.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 연설을 기점으로 전세계 언론은 애플 제품을 집중적으로 보도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모든 입소문 마케팅의 화룡점점에는 스티브 잡스가 존재하였는데 과연 스티브 잡스 없는 애플이 과연 과거처럼 인터넷과 언론에서 그렇게 화제를 불러 모을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이글은 저 멀티라이터(김정남)가 스타일 조선에 기고한 글입니다.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