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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크리에이터

리니지의 아버지 송재경

멀티라이터 2012.10.06 19:27


 

 

한국 최고의 천재 게임 크리에이터를 뽑으라고 하면 단연 송재경 XL 게임즈사장일 것이다. 송재경 사장이 게임을 하나 만들 때 마다 한국의 게임 산업은 한 단계씩 발전하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이를 직접 체험해왔다. 송재경 사장이 게임을 하나 히트할 때마다 나의 월급은 두 배씩 올랐던 것이다.


 송재경 사장이 게임시장의 파이를 키웠기 때문이다. 또한 동아리 수준에 머물렀던 한국 게임 개발사들을 세계의 유명 회사와 경쟁하게 만든 것은 송재경씨의 뛰어난 게임들 덕분이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송재경씨의 영향력을 확인 할 수 있는 사건이 2005년 10월에 일어났다. 네오위즈에서 송재경 사장의 게임을 퍼블리싱 한다는 계약 소식이 전해지자 다음날 네오위즈의 주가는 상한가를 쳤다.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고작 사람 한 명 가지고 그게 뭐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기사였다. 하지만 이미 김택진 사장이 설파 했듯이 게임이라는 분야는 한 사람의 천재에 의해서 달라질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실제로 송재경 XL게임즈 사장은 그 의미를 몸소 증명해 왔다.


그는 이미 86학번으로 서울대학교 컴퓨터 공학과 수석으로  범상치 않게 컴퓨터계에 등장한다. 그 후 카이스트 박사 과정 중이었던 송재경사장은 94년도에 국내 최초의 텍스트 머드 게임을 개발하여 세상을 깜짝 놀래 키었다. 당시 마리텔레콤이 제작한 단군의 땅과 함께 PC통신에서 최고 인기 있는 유료 콘텐츠로 이름을 날렸다.
솔직히 필자는 분당 30원씩이나 하는 그 게임에 사람들이 왜 그토록 열광하는지 몰랐다가 호기심에 한번 플레이 한 후 중독되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필자에게는 한달 동안의 요금만 10만원이 넘게 지불하도록 했으니 내게는 실로 대단했던 게임이었다.


이러한 쥬라기 공원의 성공은 이제 한국 에서도 게임이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 할 수 있는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는 가치가 있다. 기존에 아마추어들이 순수한 열정으로 작은 옥탑방에 모여 컵라면이나 먹으면서 게임 하나 완성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동아리 수준에서 게임이 수익창출이 가능한 사업분야로 당당히 인정받게 된 것이다.


당시 게임 회사들이 창투사로부터 투자를 요청해도 사업계획서 검토 단계에서 거절당해야만 했다. 투자 제안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 성공 사례를 예로 들고 그것보다 더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고 있음을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그전에 돈을 벌었다는 게임이 없으니 창투사에서 투자제안을 순순히 받아 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쥬라기 공원의 등장 이후에는 확실히 모든 것이 달라졌다. 성공한 수익모델로 쥬라기 공원을 예로 들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쥬라기 공원 이후 정말 많은 곳에서 쥬라기 공원을 흉내 내며 텍스트 머드 게임을 발매하였다.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하이텔에서만도 무려 30개가 넘는 온라인 게임을 서비스 했었다. 중소형의 PC통신사가 세워질 때면 어김없이 머드 게임을 핵심 콘텐츠로 소개하였다. 게임을 인기 콘텐츠로 자리잡게 만든 쥬라기 공원의 성공모델 덕분으로 많은 회사들이 투자를 받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었다. 이렇듯 동아리 수준의 게임 개발사들이 기업으로 변모하는데 절대적 공헌을 한 것이 바로 송재경 사장이다.
송재경 사장의 천재성은 세계 최초의 MMORPG라는 타이틀을 가진 바람의 나라에서 다시 한번 발휘된다. 송재경 사장은 자신이 재미있게 읽던 만화책인 바람의 나라를 게임화하는데   직접 프로그래밍뿐만 아니라 기획,그래픽, 음악등 게임제작의 전 분야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열정을 쏟아 부어 게임을 완성시킨다.


 이때 같이 작업을 했던 김정주 넥슨 사장은 송재경 사장의 활약을 보면서 내가 아는 진정한 슈퍼 천재라며 극찬을 할 정도였다. 일반사람이라면 단순히 책을 워드로 옮겨도 힘들 분량인 3만줄을 하루만에 프로그래밍했던 사람이 바로 송재경 사장이었다.


 하지만 초기에 바람의 나라는 사람들에게 그래픽 채팅 게임에 불과하다며 혹평을 듣는다. 서비스 초기의 한달 이용료는 고작 90만원에 불과하였다. 이것은 시대를 앞서갔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막상 게임에 접속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갈팡질팡 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람의 나라의 귀엽고 깜찍한 아바타를 사용해서 열심히 채팅을 하면서 만족했다.


 사실 처음 사람들은 바람의 나라를  아바타 채팅 프로그램으로 알고 있었다. 필자도 그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스타 크래프트의 인기로 PC방이 활성화되면서 바람의 나라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급작스럽게 증가한 PC방에서는 디아블로와 리니지와 다른 분위기의 게임을 원했다. 그리고 그 틈새시장을 바람의 나라가 장악하면서 국산 게임중에서 리니지를 뒤쫓아가는 최고의 인기 콘텐츠로 자리잡게 된다.


현재의 넥슨이 있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바람의 나라덕분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송재경 사장을 보면 항상 일반 대중보다 한 박자 정도 앞서가는 센스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을 운으로 표현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게임방의 폭발적인 증가를 예상하지는 못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송재경 사장이 리니지를 개발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게임 유저들이 어떤 게임을 원하는지를 파악하는 데는 동물적인 감각이 있다.
98년 리니지를 처음 베타 테스트 했을 때를 필자는 잊지 못한다. 나 역시 제이씨 엔터테인먼트에서 워바이블이라는 온라인 게임 개발에 참여하고 있었다. 당시에 온라인 게임은 바람의 나라, 영웅문, 워바이블정도였고 수익성 측면에서는 사실 최악이었다. 그럴 때 바로 리니지가 등장한 것이다. 마을 하나에 몬스터는 슬라임하나가 고작이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외국인들이 베타테스트에 참여할 정도로 대단한 인기였다.


기존에 나왔던 온라인 게임과는 확실히 달랐다. 디아블로처럼 8등신의 캐릭터에 화려한 액션을 자랑했는데 손끝에서 느껴지는 타격감에서 다른 게임이 가지지 못한 게임성을 확보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처음 게임을 접한 사람은 디아블로의 아류작이라면서 폄하하기도 하였다. 나 역시 한국도 이제 외국의 유명 게임을 베낄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면서 자랑(?)스럽게 여기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베타테스트에 불과했던것이다. 리니지의 처음은 디아블로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리니지 신화에는 가속이 붙었다. 디아블로와 리니지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디아블로는 고작 네명이서 접속해서 플레이하는 네트워크게임이다. 그리고 리니지는 수 천명이 동시에 즐기는 게임으로 기본적으로 게임 제작에 들어가는  기술의 수준이 다르다.
디아블로에서는 요구되는 서버의 안전성이 리니지에서는 그 몇 배가 필요하다. 그리고 송재경 사장은 그의 천재적인 프로그래밍 실력을 리니지의 서버 안전성 확보를 위해서 쏟아 부었던 것이다. 당시 타 온라인 게임은 랙이 심해서 많은 사람이 접속을 하면 속도가 느려졌다. 속도가 느려지면 이동도 불편하고 특히 전투할 때 재미가 반감된다.


 하지만 리니지에서는 서버의 완전성덕분에 많은 사람이 등장해도 속도가 느려지지 않고 게임을 즐길 수가 있었다. 송재경 사장의 슈퍼 프로그래머적인 능력이 있었기에 우후 죽순격으로 등장하는 MMORPG중에서도 절대적인 시장의 강자로 지금까지도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리니지가 자랑하는 공성전만해도 간단한 것이 아니다. 리니지 시리즈 이외에 아직까지도 제대로 공성전을 구현한 것을 보기 힘든 것이 엄연한 사실이 아니다. 송재경사장의 뛰어난 서버 프로그래밍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비록 그래픽과 게임시스템이 디아블로의 영향을 받았을지 몰라도 그것을 능가하는 서버/네트워크 기술로 게임의 새로운 영역을 구축한 것이 바로 리니지이다.
 리니지가 온라인게임의 블루오션을 만들어 내고 전체 게임 시장을 키웠다는 것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를 해야 한다. 리니지 덕분에 다른 온라인 게임도 덩달아 매출이 껑충 뛰는 광경을 내가 직접 지켜봤기 때문이었다. 리니지는 환타지를 배경으로 어두운 분위기에 금속성의 사실적인 그래픽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PC 방 사장은 라이트 유저를 위해서 다른 분위기의 게임들을 찾았다. 그래서 초등학생과 같은 저연령층을 위해서 바람의 나라를 서비스했다. 그 밖에 무협 매니아를 위해서 영웅문이나 우주SF를 세계관으로 워바이블등이 틈새시장을 노려서 전체 게임시장의 파이가 커질 수 있었다.
 결국 리니지의 성공은 엔씨소프트의 직원들을 부자로만 만든 것이 아니라 전체 게임 회사에 파이를 크게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나는 이점에서 송재경 사장의 업적을 높이 산다. 게임회사에 다닌다고 하면 불쌍하게 보던 눈빛이 점차 호의적이고 부러워하던 눈빛으로 바뀌었던 것이 바로 리니지 성공신화 덕분이었음을 필자는 몸소 경험 했다.


 리니지는 그 자체로 한국에서도 게임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게임이다. 게임회사도 기회의 땅이 될 수 있음을 한국의 젊은이 들에게 알려줬고 유능한 개발자들이 게임회사에서 문을 두드리게 만든 계기가 바로 리니지의 성공덕분이라는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송재경 사장을 필자가 존경하는 진정한 이유는 그가 300억대의 부자이지만 아직까지도 게임 개발의 현장에 있다는 것이다. 사실 현재 한국 게임 개발 현장에서 가장 심각한 현상은 개발자들의 조기 은퇴가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이미 게임이 유명해져서 먹고 살만해졌다 싶으면 20대에도 개발현장을 떠나서 관리직으로 자리를 옮긴다.
외국의 경우는 빌로퍼처럼 개발 현장이 그리워서 회사를 그만두고서도 제작 현장으로 복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한국은 개발자들이 가능한 빨리 무조건적으로 제작 일선에서 물러 날려고 안달한다.
35살까지 관리직이 아니라 개발 현장에 있으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까지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개발 현장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많다. 게임이 하나라도 성공해서 회사에서 인정이라도 받을라 치면 제작현장에서 벗어나서 관리직을 시켜달라고 생떼를 부리기도 한다.
 개발현장에서 벗어나려는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다. 개발자들은 주당 80시간은 기본이고 서비스 날짜를 임박해서는 출퇴근 개념이 없어지고 회사에서 생활하기 마련이다. 그에 비해서 관리직이 되면 여가시간도 즐기면서 육체적으로 정말 편해진다. 게다가 월급에서는 오히려 관리직보다 개발자가 적은 경우도 있다.
관리직 우대와 개발자에 대한 홀대 현상이 엄연히 한국 게임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니 개발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관리직을 원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게임 개발을 하면서 쌓아놓았던 노하우도 같이 사라지는 것이 문제다.


이렇게 성공한 게임개발자들이 다들 30대 초반이면 개발 일선에서 물러나 관리직으로 옮긴다면 한국 게임계의 미래는 현재 상태로 정체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송재경사장은 불혹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경영자로 물러나 있지 않고 개발현장에 아직도 남아 있다는 것이 안심이 된다.
개발현장에 송재경 사장이 남아있다는 것은 아직도 자신이 게임을 위한 순수한 열정이 남아있음을 뜻한다. 송재경 사장이 현재 개발하고 있는 레이싱 게임은 무엇보다 물리 엔진이 중요하다. 차가 작동하는 원리에 의해서 레이싱 게임을 시뮬레이션 해야 유저들이 실제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리 엔진은 한국 게임계의 가장 취약한 분야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송재경 사장은 비록 자신과 일하는 사람이 레이싱 게임을 좋아해서 자신은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을 했다. 하지만 송재경 사장이 만드는 물리 엔진은 한국 게임계의 새로운 획을 그어주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부수적인 효과로 40이 넘어서도 게임 프로그래밍을 할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었으면 좋겠다. 나이 40이면 머리가 굳어서 프로그래밍 할 수 없다는 그런 헛소리를 제발 잠재워 주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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