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세기 최고의 사업가이자 기술자로 불리는 빌 게이츠는 정보화 시대의 혁명을 이끈 소프트웨어의 황제이다. 지금은 개인용 컴퓨터라는 단어를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하드웨어라는 말과 소프트웨어라는 말도 쉽게 구분하고 있지만 그가 회사를 창립했던 1975년도만 해도 사람들에게 희귀하고 생소한 전문적인 용어였다. 회사명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는 한때 사람들로부터 작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회사로 오인을 받아야 할 정도였다.

 


사실 마이크로와 소프트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로 이루어진 회사이름에는 그의 선견지명이 그대로 녹아져 들어간 이름이다. 회사를 창업한 75년 당시까지 만해도 사람들이 컴퓨터 라고 하면 핵실험을 위해 개발된 장치를 떠올리면서 건물의 벽 전체를 차지하는 대형컴퓨터를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사람들은 그 대형 컴퓨터에 전화선으로 단말기를 연결해서 간단한 수치계산을 하는 것만으로도 혜택 받은 특권층이라고 생각하며 뿌듯해했다. 그랬던 시대에 그는 대형컴퓨터의 성능을 뛰어넘는 소형컴퓨터의 미래를 예상하고 회사의 이름에 아주 작은 것을 뜻하는 마이크로(Micro)라는 단어를 넣었다. 모든 사람들의 집과 사무실의 책상에 컴퓨터가 오르는 그날을 예상하면서 말이다. 또한 그는 컴퓨터와 프로그램이라는 개념만 존재했을 때 소프트웨어라는 새로운 방식의 수익모델을 창조해냈다. 당시만해도 컴퓨터를 사면 프로그램은 그냥 무료로 따라오거나 직접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프로그램을 소프트웨어라는 이름으로 사고 파는 시대를 예견했다.

 


실제로 그가 소프트웨어는 돈을 주고 사야 한다고 주장할 때만 해도 당시 컴퓨터 마니아들은 그에게 비도덕적인 인간이라며 비아냥 되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때 당시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소프트웨어를 돈 주고 사야 한다는 개념자체가 없었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그냥 얼마든지 무료로 복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프로그램은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해커정신이 당시의 일반적인 관념이었다.  그러한 시대에 빌 게이츠는 당당하게 회사의 주소와 연락처까지 밝히면서 소프트웨어는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것이며 만약에 그렇지 않으면 소프트웨어 개발은 아마추어 수준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이 각종 컴퓨터 잡지에 소개되자 많은 논쟁과 논란을 야기 시켰지만 결국에는 소프트웨어 저작권에 대한 각성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서신이 공개된 1976년 즈음부터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공짜가 아니며 개발노력에 대한 대가를 제공해야만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으면서 소프트웨어 전문회사들이 본격적으로 창업되기 시작하였다. 소프트웨어의 저작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여 컴퓨터 업계에 새로운 수익모델을 제시한 빌게이츠는 원래 본업인 프로그래밍을 통에서도 훌륭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였다. 그가 직접 프로그래밍을 짜서 만든  소형 컴퓨토용“베이직”은 미국 중고등학교 교육과 컴퓨터 산업에 혁명을 일으킨 제품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그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베이직은 컴퓨터로 각종 프로그램들을 새롭게 만들게 해주는 언어이다.  물론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들이 많이 존재하지만 특히 베이직의 명령어는 일반 자연언어와 비슷한 점이 많아서 컴퓨터 초보자들도 쉽게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1970년대 후반 미국 정부에서는 컴퓨터 교육을 위한 방편으로 베이직 언어를 정규교과 과정으로 채택을 했다. 이때 개인용 컴퓨터를 만드는 하드웨어 업체는 아이들이 대학에 가는데 컴퓨터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집중 부각하며 대대적인 마케팅을 돌입한다. 이 덕분에 개인용 컴퓨터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미국 산업전체에 큰 활기를 불어 넣는다. 물론 그렇게 팔린 개인용 컴퓨터에는 그가 만든 베이직언어가 필수적인 소프트웨어였다.

 


컴퓨터 왕좌에 오르다.

 


베이직은 그에게 미국 소프트웨어 업계의 유력인사로 인정받는 정도로 만들었다면 MS-DOS는 디지털 시대의 왕으로 군림하게 만들어 주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베이직의 성공으로 오백만불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IBM-PC의 운영체제인 MS-DOS를 개발한 1981년에는 1600만불의 회사로 거듭났다.

또한 마이크로 소프트는 당시까지 만해도 개인용 컴퓨터시장을 사실상 독점했던 애플2를 추격하는데 일조를 하였다. PC(Personal Computer)라는 신조어까지 창조해낸 IBM이 주도한 개인용 컴퓨터는 다른 회사의 제품과는 다르게 호환성과 개방성을 무기로 가지고 있었다. 이는 현재 플레이스테이션과 엑스 박스 같은 게임기들이 같은 DVD라는 매체를 사용해도 서로 다른 게임기에서는 각자의 게임소프트웨어만 실행되는 것과 유사하다.

 

 

 

 


개인용 컴퓨터간에 호환성이 없는 것은 산업전체로 보면 엄청난 낭비였다. 당시 개인용 컴퓨터를 판매했던 회사는 애플, 코모도어, 아타리, 휴렛팩커드, TANDY, NEC등으로 수많은 업체들이 난립하고 있었다. 저마다 독자적인 컴퓨터 시스템 규격을 가지고 있었고 자사의 컴퓨터에서는 전용소프트웨어만 실행되도록 했다. 이로 인해서 소프트웨어 개발사는 자신들의 프로그램들을 각 개인용 컴퓨터마다 따로따로 개발해서 판매하여야 했다. 한정된 수요층이 있는 컴퓨터 시장에서 동일한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따라서 개발해야 했기 때문에 돈과 인력이 불필요하게 중복 투입되었고 이는 회사의 자금사정을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소비자들 역시 호환성이 없는 컴퓨터 업체들의 난립으로 큰 피해를 봐야만 했다. 막상 목돈을 주고 컴퓨터를 어렵게 하나 구입했는데 원하는 소프트웨어가 다른 컴퓨터의 제품으로만 출시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로 소비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위해서 컴퓨터를 여러 대 따로 구입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현재로 따지자면 좋아하는 게임을 위해서 소니, 닌텐도, 마이크로소프트의 가정용 게임기를 모두 구입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많은 소프트웨어 개발사들과 소비자들의 불만이 점차적으로 커져갈 때 즈음 당시 컴퓨터 업계의 공룡이었던 IBM이 개인용 컴퓨터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대형 컴퓨터 개발에만 몰두했던 IBM은 소형 컴퓨터 시장의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애플이 시장을 장악하며 승승장구하자 뼈저린 후회를 하고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호환성이 없는 컴퓨터들의 난립으로 인한 상황을 인식하고 범용적인 개인용 컴퓨터를 개발하기로 결정한다.

 


기존의 컴퓨터 하드웨어 업체들은 독점적인 위치에서 컴퓨터를 제작하고 판매하였다. 하지만 IBM 컴퓨터는 표준적인 규격만 제시해주고 어느 회사나 그 규격을 지키면 자유롭게 컴퓨터를 개발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을 내놓았다. IBM이 주도권을 가진 선두업체로써 컴퓨터 시스템을 내놓으면 다른 회사에서 그것을 참고로 해서 PC라는 이름으로 얼마든지 판매를 할 수 있는 수익 모델이 제시되었다. 지금은 PC라고 하면 집에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데스크탑 컴퓨터를 뜻하는 용어가 되었지만 1980년대 초반만해도 IBM이 제시한 표준규격을 지켜서 호환성이 확보된 컴퓨터들을 뜻하는 고유명사였다. 

 


이러한 IBM의 시도는 고객과 개발사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얻었고 그 덕분에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는 속담처럼 IBM의 제안으로 시작된 PC 사업이지만 축복을 받은 사람은 다른 곳에 있었다. 개인용 컴퓨터를 천하 통일시킨 IBM이었지만 정작 돈을 번 회사는 따로 있었으니 CPU를 개발한 인텔과 DOS를 만든 마이크로소프트였다. 그 후 퍼스널 컴퓨터의 본체 사업도 델 컴퓨터에 패권을 넘겨준 IBM은 현재 PC사업부분을 중국의 레노보에 매각하고 현재는 PC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한 상태다.

 


하지만 IBM의 PC산업 진출 덕분에 컴퓨터 산업 전체에 크나큰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IBM 덕분에 현재의 마이크로 소프트와 빌게이츠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IBM에서 진행하는 PC 사업의 가능성을 확실하게 예측하고 있었던  그의 행보이다. 그는 원래 고용하고 있었던 직원 이외에도 수십 명의 인원을 새로 충원해서 DOS를 개발했는데 만약 IBM-PC가 실패했다면 마이크로 소프트도 함께 역사속에서 사라질정도의 도박이었다. 이미 IBM은 PC 사업을 예전에 내부적으로 여러 번 추진했고 몇 번 실패한 사례가 있을 정도로 불확실한 사업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었고 그에 따른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된다. 위험이 없으면 돌아오는 것도 없다는 빌게이츠의 승부사적인 감각이 성공을 부른 것이다.

 


또한 마이크로 소프트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이유중에 하나는 유리하게 쓸 줄 아는 계약서였다. 빌게이츠는 IBM이 마이크로 소프트의 도움 없이는 새로운 운영체제를 개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계약에 확실히 이용했다. IBM은 애초에 프로그램에 대한 독점 사용권을 일괄적으로 구입하려고 했으나 마이크로 소프트는 DOS의 판매량에 따른 로열티를 달라고 하였다. 운영체제 개발이 다급했던 IBM은 어쩔 수 없이 마이크로 소프트의 요구조건을 수락하고야 만다.  결국 이 계약은 이후 20세기 IBM최악의 사건이 되는 동시에 마이크로 소프트에게는 최고의 축복으로 남게 되다. 오라클의 창업자로 IT 인사중에서 재산순위 2위를 기록하는 래리앨리슨은 이때의 IBM과 마이크로소프트의 계약을 100억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두 회사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빌게이츠가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계약을 성사시킨 덕분에 마이크로 소프트는 IBM-PC의 성공 이후  미국 역사상 아니 세계 역사상 최고의 기업 신화를 하나씩 작성해 나갈 수 있었다. 79년 IBM-PC가 출시되기 전의 마이크로 소프트는 400만불의 매출을 기록했던 작은 회사였지만 IBM-PC가 출시된 81년에는 무려 4배의 성장을 기록하며 1600만불의 회사로 거듭났다. 85년에는 9배가 성장하여 1억 4만불의 매출을 기록함과 동시에 마이크로 소프트는 주식을 전격적으로 공개한다. 이때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은 가장 나이 어린 억만장자로 등극하게 되고 언론에서는 이들을 찬양하는 기사를 쓰기 시작한다.

 


디지털 시대의 황제로 등극하다.

 


MS-DOS가 빌게이츠를 미국최고의 부자로 만들었다면 윈도우는 그에게 세계최고의 갑부라는 영예를 안겨주었다. MS-DOS는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운영체제이다. 그래서 모든 명령어를 직접 키보드로 입력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윈도우는 그래픽을 기반으로 한 운영체제로 마우스 하나만 있으면 모든 명령을 처리하는 획기적인 시스템이다. 그는 매킨토시에서 개발중인 운영체제를 보고서는 그래픽을 기반으로 한 윈도우 개발을 서두른다. 언젠가 윈도우의 시대가 올 것 임을 예측하고 83년도부터 개발에 몰두했지만 경쟁사 제품에 한참 떨어지는 퀄리티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야 만다. 윈도우는 미래에 기회를 제공하는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회사내에서 개발비만 축내는 시절이 이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1990년도에 비로서 윈도우 3.0버전을 출시함으로써 컴퓨터 운영체제 경쟁에 유리한 자리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윈도우 3.0버전은 MS-DOS라는 운영체제안에서 돌아가는 응용프로그램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의 반쪽짜리 제품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래픽 운영체제에서도 MS-DOS와 같은 독주를 하기 위해 선택한 프로젝트가 윈도우 95이다. 윈도우 95의 결과에 의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활이 걸려 있었다. 테스트가 본격화된 94년도에는 윈도우 95의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제품에 대한 기대와 호평이 쏟아졌다. 이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은 급등하였고 회사의 최대주주였던 빌게이츠는 마침내 포브스에서 선정하는 세계최고의 갑부로 등극하게 된다. 윈도우 95가 출시된 이후부터 마이크로소프트는 그야말로 전체컴퓨터 업계에서 그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는 황제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세상은 로마에 의해 지배된다는 팍스 로마나의 의미 그대로 이제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로마의 위치로 올라선다. 실제로 컴덱스와 같은 컴퓨터 전시회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이 전시된 부스에서는 로마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게 구성하였다. 부스의 가이드들은 로마시대의 군사복장을 하며 모든 길은 마이크로 소프트로 통한다는 의미를 강조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95는 단순히 빌 게이츠 개인의 성공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80년대 일본에게 세계 경제 대국이라는 칭호를 빼앗길 정도로 경쟁력을 상실했던 미국산업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MS-DOS의 활약으로 미국에서는 IBM 호환 PC가 시장을 장악했지만 외국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일본에서는 NEC의 PC-9801 이라는 독자적인 하드웨어 규격을 가지는 컴퓨터가 시장을 독점하였다. 이는 미국과 일본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미국이 아무리 경쟁력 있는 제품을 만들어 내도 일본은 독자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어 내수 시장을 방어해냈다. 일본 기업들은 인구 1억이 넘는 내수시장을 확보한 덕분에 기술과 자본을 축적하게 된다. 내수에서 힘을 기른 후에는 해외시장에 진출해서 본격적으로 경쟁한다.

 


이미 우호적인 내수시장에서 확보한 상품의 경쟁력 덕분에 해외의 다른 전자 업체들보다 우위에 설수 있게 된다. 지금의 디지털 TV, 휴대폰등에서도 이러한 일본의 경제 전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휴대폰의 예를 들면 일본은 해외의 다른 이동통신 서비스 표준과 다른 독자적인 전송방식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되면 해외의 유명 휴대폰 업체들은 일본 표준에 대한 기술이 뒤쳐져서 일본시장에 접근하기가 힘들다. 그에 비해서 일본 업체들은 쉽게 표준기술에 접근해서 휴대폰을 생산해낸다. 1억 5천만의 거대 내수시장에서 휴대폰을 판매한 후 일본 업체들은 자금을 확보하게 되고 돈과 기술을 합쳐 세계 시장에 경쟁력있는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내수시장을 우선 방어해서 자금을 확보한 후에 검증된 제품들 위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이러한 방식이 바로 일본경제의 힘으로 작용하였다.

 


물론 NEC의 PC-9801은 일본이 아닌 지역에서는 제대로 판매도 되지 못했지만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에서 시장을 독점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무척 답답했지만 NEC가 철옹성처럼 느껴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바로 마이크로 소프트의 윈도 95가 그 벽을 부숴버렸다. 이로 인해서 미국의 IT 기술이 일본시장에 접근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98년도에 미국의 학자들은 일본에게 빼앗긴 경쟁력을 완전히 역전시켰다고 선언하는데 이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가 전세계 운영체제의 95%를 독점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운영체제는 업계의 표준을 주도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제공하게 된다. 윈도우에서 인증하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만이 시장에 출시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윈도우에 최적화된 제품을 찾게 되고 이 과정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결국 IT 업체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정책방향에 민감할 수 밖에 없고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커뮤니케이션이 무척 중요하다. 이는 미국에 자리를 잡고 있는 업체들이 IT 분야에서 이미 매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음을 뜻한다. 오늘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통합하는 IT 산업에서 미국이 절대적인 힘을 가지게 되는 원동력은 결국 마이크로 소프트가 장악한 운영체제 윈도우시리즈 덕분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과거의 영광을 다시 찾는데 윈도우가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와 함께 주목할 점은 소프트웨어의 힘이다. DOS 시절까지만해도 IT 산업은 컴퓨터의 본체와 주변기기를 생산하는 하드웨어 업체들이 주도하였다. 하지만 윈도우시대가 열리자 이제는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득세하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훌륭한 하드웨어를 만들어도 소프트웨어 차원에서 제공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파워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 바로 NEC의 PC9801의 몰락이다. 당시 사람들은 미국의 그 어떤 첨단 업체도 일본에서는 고전한다면서 무엇을 만들어도 일본에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그 일본의 컴퓨터 시장을 장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하드웨어 업체가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라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콘텐츠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이렇듯 윈도 95의 성공은 이제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라는 사실을 세상에 증명한 사건이다.

 


역사상 최고의 자선사업가를 꿈꾸다.

 


윈도의 성공 이후 빌 게이츠는 14년 연속 세계 최고의 부자라는 타이틀을 지켜내고 있다.   덕분에 그를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소개는 세상에서 돈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다. 그가 가진 재산 내역과 변동사항이 늘 화제속의 뉴스가 된다. 그런데 그에게 더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가 부자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첫번째 그는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부자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시대 이전의 부자들은 자원을 독점하거나 정부로부터 각종 사업에서 특혜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록펠러와 폴게티는 석유라는 천연자원을 독점하였고 카네기는 석탄과 철광석을 독점하여 크게 성공했다. 또한 미국은 한해에 1800조원의 물품을 구입하는 세계 최고의 고객으로 IBM이나 보잉, GE, 하니웰 같은 대기업들 대부분이 미국정부에 납품을 하며 성장했다.

 


그런데 빌게이츠는 그런 과거의 성공 패턴과는 다른 길을 제시하였다. 시대를 앞서가는 아이디어 하나만으로도 부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그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미래가 보장된 하버드 대학 졸업이라는 타이틀을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서 모험을 걸었다는 점도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두번째 그는 젊어서는 부를 축적하고 그 다음에는 벌어들인 돈을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써야 한다는 부자의 모범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빌 게이츠에게 가장 흔한 질문은 세계 최고의 부자라는 타이틀이 부담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반복되는 그런 질문에 짜증도 낼만한데 그는 그런 질문에 항상 웃음을 띄우며 흥분된 표정으로 한결같이 이야기한다. 돈이 많다는 뜻은 그만큼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더 많은 것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세계최고 부자라는 사실은 그에게 더 큰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가 세계최고의 부자로 등극하기 시작한 94년도부터 꾸준히 공언했던 사항이었고 그의 이런 말들은 2000년 빌 앤드 멜린다 재단이 설립되면서 현실화 되었다. 교육과 의료등의 자선사업에 중점을 둔 빌 앤드 멜린다 재단의 자산은  무려 261억달러에 이르고 있는데 이는 세계 자선 단체 중에서 최고의 규모를 자랑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미 빌 게이츠는 역사상 최대 금액의 자선 기부금을 내놓았고 앞으로도 신기록 행진은 계속 될 것이다. 특히 그는 많은 사람들이 골고루 최대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기부를 하여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특히 그의 이런 선행들이  부자들에게 기부금 문화를 확산하는데도 일조를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를 따라서 기부를 결심하는 부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일화로는 그의 오랜 친구이자 투자의 귀재로 세계 2위의 재산가인 워렌 버핏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워렌 버핏의 재산은 440억달러나 되는데 보통의 부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워렌 버핏은 오랜 우정을 나눠온 빌 게이츠가 이끄는 자선 단체에 300억달러나 되는 금액을 기부하기로 했다. 이 사건은 새삼 그의 영향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워렌버핏은 빌게이츠의 자선행위가 단순한 이미지 개선용이 아니라 진정성을 담고 있다고 극찬하였다. 그리고 빌 게이츠의 뛰어난 머리와 능력이라면 전세계 복지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최고의 지혜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장담하였다. 인류복지를 위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돈을 사용할 사람이 바로 빌 게이츠라는 것이 바로 투자의 현인으로 불리우는 워렌버핏의 결론이다.

 

 

 

 


빌 게이츠는 2008년 7월부터는 파트타임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일을 수행할 것이며 가능한 많은 시간을 빌앤드 멜린다 재단을 위해서 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은퇴를 위한 수순을 밟아가고 있는 그의 행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대를 품게 한다. 빌 게이츠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디지털 시대의 황제다. 그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뛰어난 머리와 열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회사에서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세계의 교육과 의료의 복지 문제를 해결하고자 자선단체일에 전념하기로 했다. 세계 경제산업계에 그가 이루어 놓은 업적을 생각해보면 그가 세계 복지문제에 있어서도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을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가 앞으로 세계 자선 문화에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