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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2011년 10월 5일 췌장암으로 타계하였다. 그의 뛰어났던 업적들과 세계에 미친 영향력을 확인 시켜주듯이 그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전세계적인 애도 물결이 이어졌다.  애플스토어에는 꽃다발을 든 추모객들의 방문이 이어졌고 인터넷에서도 스티브 잡스에 대한 글들이 쏟아졌다. 전세계 언론의 메인 화면은 스티브 잡스 사진이 장식하였고 그의 놀라웠던 인생을 추모하는 기사들로 채워졌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하여 빌게이츠, 마크주커버그, 에릭슈미트, 래리페이지, 손정의 같은 IT 업계의 리더들이 스티브 잡스의 업적을 칭송하며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아놀드 슈활츠 제네거, 애쉬튼 커쳐 , 밀라 요보비치 같은 세계적인 스타 뿐만 아니라 보아나 윤종신처럼 한국의 연예인들도 스티브 잡스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스티브 잡스의 죽음과 함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스티브 잡스의 후계자인 팀쿡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팀쿡은 스티브 잡스보다 다섯살 어린 1960년 생으로 조선소 노동자였던 아버지 도널드 쿡(Donald Cook)과  전업주부였던 어머니 제랄딘(Geraldine) 쿡 사이에 태어났다. 그가 자란 곳은 앨라바마주 모빌 시의 작고 조용한 바닷가 마을이었다. 그는 로버츠 테일 고등학교를 차석으로 졸업할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었으며 밴드의 멤버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1978년 오반대학교를 졸업한 후 IBM에 입사하였고 회사를 다니면서 야간에 듀크대의 MBA과정을 이수하였다.  IBM에서 12년간 제조와 유통부분의 일을 담당했던 그는 1994년 인텔리전트 일렉트로닉스(Intelligent Electronics)라는 소매업체로 옮겨서 회사의 최고 운영 책임자 COO(Chief operating officer)가 되었으며 3년간 근무를 한 후에  컴퓨터 제조업체인 컴팩으로 이직하게 된다. 컴팩에서 팀 쿡은 자재 부분의 부사장으로 일하게 된다. 하지만 6개월도 되지 않아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데 이는 스티브 잡스의 요청 때문이었다. 


1998년 스티브 잡스는 임시 CEO라는 직책을 달고 애플에 복귀해서 고군분투를 하던 시기로 회사에 최고 운영 책임자가 사임을 하자 9개월간 스티브 잡스가 겸직을 하고 있었다.  적당한 인물을 찾기 위해서 고심을 하던 스티브 잡스는 헤드헌팅 업체를 통해서 팀 쿡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와의 인터뷰를 요청한다.


상식적으로 보면 팀 쿡이 회사를 옮겨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왜냐하면 컴팩은 당시 세계 1위의 업체였고 애플은 언제 망할지 모르는 풍전등화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팀쿡은 애플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단 5분만에 팀쿡을 설득해낸다. 원래 이과 출신으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 방식이 몸에 베이었던 팀쿡 이었지만 팀쿡은 스티브 잡스와의 만남을 통해 이성보다는 직관이 따르는 삶을 선택하기로 결정한다. 그는 애플에서 일한다는게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생각하였고 애플의 경영진이 되어서 애플을 부활시키는데 일조하고자 하였다.


팀 쿡은 스티브 잡스와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고 회의를 주도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마음껏 표현하는 스티브 잡스와 달리 조용한 성격의 팀 쿡은 침착하고 차분한 자세로 스티브 잡스를 충실히 보필하였다.  하지만 일에 대한 열정은 둘이 같았다. 독신자로써 임대아파트에 살 정도로 검소한 팀 쿡은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서 이메일을 보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2010년 그는 팰로알토에 있는 집을 190만달에 구입하게 된다.) 다섯시가 되면 자전거를 타고 체육관에 도착해서 한시간 운동을 한 후에 6시가 되면 회사에서 업무를 시작하는 팀 쿡은 회사에 가장 먼저 출근해서 가장 나중에 퇴근하기로 유명한 일 중독자이다.  그가 일이외에 빠져 있는 것은 자전거 타기이다. 그가 이렇게 자전거에 열중하는 것은 1996년 다발성 경화증을 판정받는 사건 때문이었다. 다발성 경화증은 온몸에 마비가 오는 심각한 병인데 다행히 팀쿡은  오진이라는 판정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 때를 계기로 팀 쿡은 인생을 달리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사이클 같은 운동에 더욱 매진하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발성 경화증의 연구 기금 마련에 힘쓰게 된다.


애플에 들어온 팀 쿡은 그의 전문분야라고 할  수 있는 제품의 제조와 유통과 관련된 일을 하였다. 애플은 오래전부터 애플 출신이 아닌 사람들이 자리 잡기 힘든곳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 주변에는 애플과 넥스트에서 같이 한솥밭을 먹었던 수많은 측근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팀 쿡은 승진의 승진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하게 된다.  회사에 들어온지 6년밖에 되지 않았던 2004년 스티브 잡스는 췌장암 수술로 병가를 냈는데 이때 팀 쿡이 잡스 대신 회사의 업무를 맡게 된다. 그리고 2005년에는 회사의 최고 운영 책임자 자리에 오르며 회사의 2인자이자 스티브 잡스의 후계자로 주목받게 된다.


팀 쿡이 애플에서 인정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회사의 단점들을 장점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애플의 고질적인 문제는 생산과 고질적인 악성 재고 문제였다. 재고는 일주일에 1~2%씩 가치가 즐어든다고 생각하는 팀 쿡은 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였다. . 창고를 19개 에서 10개로 줄이면서 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력을 쏟았는데 스티브 잡스의 노력으로 애플은 2개월분의 재고를 1개월로 줄여놓았는데 팀 쿡은 이를 2일분으로 줄이게 된다. 팀쿡은 핵심적인 부품 공급 업체을 100곳에서 24곳으로 줄이고 공장도 모두 폐쇄하고 폭스콘 같은 외부 업체에 생산을 위탁하여 생산의 효율성을 추구했다. 


팀쿡의 능력이 발휘되었던 것은 아이팟을 생산할 때 이다. 그는 메모리 업체에 12억 5천만달러를 선불로 지급하고 대량의 메모리를 확보하게 된다.  대량의 부품을 선금으로 지불함으로써 애플은 더 싼값에 부품을 공급받게 되었고 애플은 제품 생산에 강력한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현재 애플의 가장 중요한 생산방식으로 애플의 이익율을 높여주는 발판이기도 하다. 


팀쿡의 능력이 꽃이 피울수록 스티브 잡스는 팀쿡에게 더 의지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팀쿡이 자신의 일을 덜어준 덕분에 제품 개발과 같은 창의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맥 사업부를 팀쿡에게 넘겨주었으며 아이폰의 판매와 운영 역시 팀쿡이 맡도록 하였다. 2009년 간 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6개월간 스티브 잡스가 회사를 떠나있어야 했을 때 팀쿡은 다시 한번 스티브 잡스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이때를 계기로 팀쿡이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을 것이라는 전망이 대내외적으로 우세하게 된다.


 2011년에 들어서자 스티브 잡스는 세번째로 회사에 병가를 내게 되는데 스티브 잡스의 편지에는 언제 돌아온다는 시간을 적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건강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도 우려가 되었던 순간이었다. 이번 역시 팀 쿡은 스티브 잡스의 업무를 대신하는데 두번이나 스티브 잡스의 자리를 대신한 경험이 있었던 검증된 경영자였기에 애플은 흔들림 없이 실적과 매출에서 신기록을 작성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2011년 8월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던 대로 팀 쿡이 스티브 잡스의 뒤를 이어서 정식 CEO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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