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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네트워크의 발전은 전통적인 언론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었다. 블로거들이 언론의 대안세력으로 급부상하였고 기존 언론사의 권위와 영향력을 급속히 축소 시켰다.  블로그의 힘을 보여줄 수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허핑턴 포스트를 들 수 있다. 허핑턴 포스트는 블로그의 여왕이라고 불리우는 이리아나 허핑턴의 주도로 창업되었다. 1950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난 그녀는 16세에 영국으로 건너가 캠브리지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하였고 여성으서는 세 번째로 학생회장에 당선된다. 대학을 졸업 한 허핑턴은 21살에 ‘더 타임tm’의 컬럼니스트였던 버나드 레빈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곧 동거에 들어간다. 버나드 레빈은 연인이자 스승 같은 존재로 그녀가 작가와 컬럼니스트로 활동하는데 중요한 롤모델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버나드 레빈은 이리아나 허팅턴과의 결혼을 원하지 않았고 결국 이리아나 허핑턴은 1980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미국에서 컬럼니스트와 작가로 활동하던 그녀는 석유재벌인 마이클 허핑턴을 만나서 1985년 결혼을 하게 된다.  마이클 허핑턴은 공화당 후보로 1992년 하원의원에 당선되는데 rm 덕분에 아리아나 허핑턴은 정계의 인사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게 된다. 그녀는 결혼생활을 하면서 보수적인 시각으로 각종 컬럼을 쓰게 되고, 이것 때문에 유명세를 타게 되지만 1997년 이혼 후, 정치적 성향이 진보로 바뀌게 된다. 그 후 2005년 AOL의 전 임원이었던 케네스 레러와 의기투합해서 함께  블로그 기반의 미디어 사이트인 허핑턴 포스트를 탄생시키게 된다.


 블로거들에게 전면적으로 문호를 개방한 허핑턴 포스트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덕분에 2006년에는 타임스가 선정하는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에 선정, 또 2009년에는 포브스에서 선정한 최고로 영향력있는 언론인 부문에서 2위에 오르기도 한다. 2009년 부터는 허핑턴 포스트가 워싱포스트와 BBC의 방문자수를 앞서게 되었으며, 현재 뉴욕타임스 인터넷판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매달 방문자수가 2,500만명에 4억 4,000회의 페이지뷰를 자랑하는 허핑턴 포스트지는 2010년 3,000만 달러의 매출과 함께 사상 최초로 흑자를 기록하게 된다. 2백만 달러로 시작한 허핑턴 포스트는 AOL에 의해서 2011년 2월, 3억 500만 달러라는 거액에 인수되었는데 이 계약으로 이리아나 허핑턴은 큰 돈을 벌게 되었다.


 승승장구하는 허핑턴 포스트의 모습은 기존의 신문매체들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와 시카고트리뷴 등을 소유한 미디어 그룹 트리뷴 컴퍼니가 파산하였고, 뉴욕타임스는 본사 사옥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정도로 기존 신문업체들은 사상유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다. 150년을 자랑하는 미국의 지역신문인 로키마운틴뉴스마저도 폐간할 정도이니 갈수록 신문에 대한 회의감은 늘어가고 있다. 실제로 피어널 타임스의 모회사에 이사로 재직중인 솔로몬은 2015년이면 인쇄를 중단 할 수 있다고 말하였고 뉴욕타임스 회장은 언젠인지 모르지만 뉴욕타임스는 신문 인쇄를 중단하게 될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렇게 신문업체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허핑턴 포스트와 같은 블로거 기반의 매체들의 활약과 무관하지 않다.  언론사들은 고학력의 엘리트 출신의 기자들을을 고용해서  고액 연봉을  주어야 하고 사무실과 종이인쇄비용까지 자금을 투자해야만 한다. 문제는 이러한 언론사의 고정비용이 블로그 기반의 소셜미디어에 비해서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루퍼드 머독에 의하면 월스트리스트 저널은 기사 하나당 8.25명의 편집자가 들어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허핑턴 포스트는 100명의 제작진이 있으나 이는 뉴욕타임스의 10분 1밖에 안되는 인력이고 대부분의 기사는  블로거들이 공짜로 올려준다. 


 

 이러한 허핑턴 포스트는 신문사 입장에서 보면 눈에 가시같은 존재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기사는 직접 취재한 것 보다는 이미 언론사에서 보도한 기사들을 인용해서 재포장을 한 후 기사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언론들이 무작정 허핑턴 포스트와 같은 블로그들을 비난할 수도 없는 형국이다. 왜냐하면 블로그들이 계속해서 특종을 내놓으면서 기존 언론들도 블로그들의 기사에 의존하는 판국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IT 관련 소식에 있어서는 블로그 미디어들이 독보적이다. 기즈모도는 세계 최초로 아이폰4를 입수해서 전 세계에 공개하였고, 테크크런치는 구글이 유튜브를 인수한다는 특종을 보도하였다. 지금도 IT관련 정보들은 시시각각 쏟아지고 있으며 앞에서 소개한 기즈모도와 테크크린치외에 엔가젯, BGR, 9 to 5 Mac은 기존 미디어보다도 빠르게 IT 관련소식을 보도한다. 

 한편 2009년 허핑턴 포스트와 함께 가장 영향력 있는 블로그로 선정된 TPM(토킹포인트메모)은 부시 행정부가 연방 검사 8명을 해고한다는 소식을 특종보도하면서 조지포크상을  수상, 2009년에는 타임지에서 선정한 ‘최고의 블로그’가 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연예분야에서도 소셜 미디어의 활약이 이어지고 있다. 마이클 잭슨 사망소식을 전 세계에 가장 먼저 전한 TMZ는 팝스타 리한나가 남자친구에게 폭행당하는 모습을 특종보도하기도 해 그 뛰어난 보도력을 자랑하는데 이러한 사례들은 올드미디어가 소셜미디어에 밀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신문들이 블로그의 기사와 논평 등을 인용 보도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함부로 블로그 매체들은 비난하거나 폄하 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CNN의 이슨 조던 뉴스 본부장은 블로그의 글 하나 때문에 사임을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 것을 보면 언론의 견제세력으로서 블로그의 파워는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수준까지 왔음을 알 수 있다. 2010년 D8컨퍼런스에 참석한 스티브 잡스는 이 나라가 블로거의 나라로 되는걸 원치 않는다고 밝히자 청중들로부터 환호를 듣기도 했는데 이는 역설적이게도 미국에서 블로거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소셜네트워크의 발전이 블로그들을 무작정 적대시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2008년 5월 중국 쓰촨성에서 지진이 발생한 사실이 트위터를 통해서 먼저 전해졌고, 2009년 허드슨 강에 비행기가 불시착할 때도 역시 그 모습이 트위터로 가정 먼저 공개됐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미 속보능력에서 올드미디어가 소셜네트워크를 이용하는 블로거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 올드미디어가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 글을 마음대로 인용하면서 자신들의 보도글은 인용하지 못한다고 못을 박으면 스스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이제 소셜네트워크 시대를 맞이해 어떤 식으로든지 변화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최근 올드미디어들은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포용하는 방향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허핑턴 포스트가 로이터와 제휴를 맺고 있는 것처럼 워싱턴 포스트는 테크크런치와 손을 잡아서 기사를 공급받고 있다. 또 USA 투데이는 Mashable이라는 블로그와 뉴욕타임스는 유명정치 블로그인 파이브써티에잇(FiveThityEight )과 손을 잡았으며, 샌프란시스코 크로니콜은 블로그 미디어인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글을 기사화하고 있다. 또한 언론사들은 블로그 매체와 제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능력 있는 블로거들을 자사에 고용하고 있다. 2007년 뉴욕타임스는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블로거를 기자로 채용해서 세상을 깜짝 놀래켰으며, 워싱턴 포스트는 뉴스 혁신 에디터로 프로그래머 출신의 파워블로거 마크 루키를 영입하여 화제가 되었다. 미국의 격월간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대니얼 드레즈너와 마크 린치 같은 저명한 블로그를 영입해서 데일리 잡지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리고 뉴욕타임스, CNN, 월스트리트 저널, 포브스, 포춘 같은 언론사들은 자산의 인력들을 블로거로 변신시키고 있기도 하다. 뉴욕타임스의 저명한 IT 전문 컬럼니스트인 데이비드 포그는 트위터의 팔로워 숫자가 130만 명이 넘을 정도로 유명인사인데 뉴욕타임스가 마련한 블로그에 재치있는 글을 남겨 사람들로부터 인기가 많다. 세계적인 경제학자이며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 풀 크루먼은 뉴욕타임스의 블로그를 이용해 글을 쓰고 있는데 그는 타임지에서 선정한 베스트 블로그 25에 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포춘같은 경우 비즈니스나 IT 등 각 섹션별로 자사가 고용한 블로거의 글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한편 신문 매체였다가 블로그 중심의 매체로 변신해 대성공을 거둔 케이스도 있다. 2009년 시애틀의 대표적 신문인 ‘포스트인텔리전서’는 신문 발행을 전격적으로 중지했다. 1863년에 창간되어 긴 역사를 자랑하는 대표적 신문 중 하나였지만 계속되는 경영악화로 어쩔 수 없이 신문사를 매각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아 2009년 3월 16일자로 온라인으로만 신문을 발행하게 된다. 온라인 전용 매체로 변신한 포스트인텔리전서는 글쓰기에서부터 달라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기자들이 블로거가 되어 신속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했다. 여기에 150명의 독자들이 블로거가 되어 포스트인텔리전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준 덕분에 온라인세계에서 자리를 잘 잡아가고 있다. 이처럼 언론사들은 시민 저널리스트도 적극 도입하고 있다.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는 2006년 CNN이 도입한 아이리포트(iReport)가 있다. 10만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한 아이리포트는 매달 1만개의 글이 올라오고 100건 이상이 TV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언론사의 변화만큼이나 기자들도 소셜미디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가장 먼저 표면적으로 눈에 띄는 모습은 기자들의 이직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저명한 기자중 하나인 하워드 커츠는 허핑턴 포스트의 경쟁 매체인 ‘데일리 비스트’로 옮겼고, 뉴스위크 기자인 하워드 파인먼은 허핑턴 포스트로 이직하였다. 또한 기자가 블로그 매체를 창업하는 경우도 있다. 타임과 워싱턴 포스트의 베테랑 기자들이 만든 미국의 정치 전문 블로그인 폴리티코는 한 달 방문자수가 200만 명이 넘는다. 또한 보스턴 글로브에서 해외특파원으로 일했던 찰리 세노트는 40개 이상의 국가에서 3,000명 이상의 블로그들을 모은 인터넷 매체인 글로벌 포스트를 창업하였다. 그리고 기자에서 애널리스트로 변신한 헨리 블로짓은 아마존의 주가를 예측한 덕분에 업계에서 유명인사가 되었고 한때 더스트리트가 선정한 애널리스트 순위에서 1위에 오르기도 하였다. 컬럼니스트로도 활동했던 그는 지금 블로그 매체인 비즈니스 인사이더를 창업하여 열심히 활동 중이다. 



 기자들은 이제 과거처럼 글만 쓰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 또한 플릭커나 유투브의 발전으로 사진과 동영상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회사의 지원 아래 스스로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해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다. 기자들도 이제 스스로 다양한 업무를 해내는 멀티태스커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편 소셜네트워크를 열심히 탐구중이다. 왜냐하면 많은 특종자료들이 소셜네트워크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한국을 예로 들면 해운대에 큰불이 났을 때에도 언론에서 보도하기도 전에 트위터를 통해 불이나는 사진이 올라왔다. 그리고 신월동 일대에 홍수 피해가 발행했을 때에도 트위터에 이 소식이 먼저 전파되었다.  소셜네트워크는 어느덧 언론의 중요한 컨텐츠 생산기지가 되었기 때문에 이를 집중적으로 파헤쳐 기사화하는 경우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현 상황으로 봤을 때, 지금 당장 쇼셜미디어의 발전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산업은 올드미디어 관련 업체들이다. 하지만 최근 올드미디어들의 변신을 보면 그들의 미래자체가 부정적으로만  생각되지는 않는다. 소셜미디어는 언론에게 있어서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낼 전략적 변곡점이자 기존의 존속성 기술을 파괴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여는 와해성 기술인 블루오션이기도 하다. 만일 지금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은 도태되겠지만 이 변화를 기회로 활용하는 언론사는 소셜미디어의 강력함을 발판으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는 신흥강자로 거듭나게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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