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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삼국지(2)] 거인을 상대할줄 아는 빌게이츠의 지혜





빌 게이츠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회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꿰뚫는 사람이었다. 특히 자신보다 거대한 회사를 만났을 때 그들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는 MITS와의 계약에서도 잘 드러난다. 빌 게이츠는 베이식을 MITS가 판매하는 마이크로 컴퓨터 알테어8800에 공급하는 대신 독점권도 함께 넘겼다. MITS의 허락 없이는 다른 컴퓨터로 베이식을 판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당시 업계의 관행이었다. 그러나 빌 게이츠는 MITS와의 계약서에 하나의 문장을 삽입함으로써 회사 미래에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그 문장은 MITS가 베이식의 판매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을 시 모든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계약 직후 MITS와 마이크로소프트의 관계는 매우 좋았다. 하지만 MITS의 제품 생산력이 기대 이하였다. 베이식은 MITS의 마이크로 컴퓨터 알테어8800과 함께 팔았기 때문에 제품이 제대로 생산되지 않으면 마이크로소프트가 받게 되는 로열티의 몫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베이식을 원하는 회사는 많았지만 MITS의 허락 없이는 팔 수가 없었으므로 빌 게이츠는 다른 회사와 거래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빌 게이츠는 MITS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싶어 했다. 만약 계약서에 MITS가 판매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는 문장을 삽입하지 않았다면 계약 해지는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처음 빌 게이츠가 계약 파기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MITS는 20대 초반의 빌 게이츠를 무시했다. MITS는 어린 애송이에게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시애틀 최고의 변호사를 아버지로 둔 빌 게이츠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담당한 소송 사건을 들으며 자라왔다. MITS가 법으로 빌 게이츠를 이길 수는 없었다. 재판부는 단 3주 만에 빌 게이츠의 손을 들어주었다. 빌 게이츠는 거인이 자신에게 필요한 존재인지를 판단하고 그들과 어떻게 거래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간파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언제 거인과 협력을 하고 언제 손을 떼야 하는지 역시 너무나 잘 알았다. 


그의 통찰력이 최고로 돋보이는 사건은 IBM과의 계약이었다. 대형 컴퓨터 시장을 장악했던 IBM은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무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1979년 애플2 컴퓨터가 비지캘크(VisiCalc)의 성공으로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하자 이에 자극을 받은 IBM은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진출할 계획을 세운다. 가능한 빨리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 IBM은 한 가지 결단을 내린다. PC에 들어가는 부품과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하면 시간이 많이 드니 가능한 외부 업체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IBM 관계자들은 PC 환경에서 개발자들이 각종 소프트웨어를 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제작을 의뢰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와 접촉했다. 첫 미팅을 위해 IBM 측 관계자가 전화를 했을 때 빌 게이츠는 약속이 있었지만 중요한 일임을 직감하고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바로 다음 날로 미팅을 잡았다. 


PC 개발은 극비에 추진되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IBM 측은 처음 만남에서 모든 것을 말해 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IBM과의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다음 날 마이크로소프트에 방문해 주셔서 고맙다는 감사 편지를 보내기까지 했다. 빌 게이츠의 통찰력과 호의적인 태도에 호감을 느낀 IBM 관계자들은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일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빌 게이츠에게 PC 개발 계획을 이야기해 주고, PC의 프로그래밍 언어 개발을 의뢰했다. 사실 IBM의 개발 스케줄은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빌 게이츠는 IBM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이러한 빌 게이츠와의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은 IBM 관계자들은 수시로 그와 미팅을 가지고 PC 개발과 관련해 여러 조언을 구했다. 당시 IBM은 PC에 필요한 운영체제를 만들 회사를 구하고 있었고, 빌 게이츠는 운영체제 업계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던 디지털 리서치사의 CP/M을 추천해 주기도 했다.


CP/M은 인텔 CPU(컴퓨터의 두뇌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이다)가 들어간 컴퓨터뿐만 아니라 애플2에서도 설치가 가능했기 때문에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었다. 이를 개발한 게리 킬달(Gary Kildall)은 CP/M 덕분에 백만장자가 되었다. 매년 회사로 수백만 달러의 로열티가 들어왔기 때문에 게리 킬달은 취미로 자가용 비행기를 몰면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IBM 사람들을 대하는 게리 킬달은 빌 게이츠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빌 게이츠가 IBM 직원들을 최대한 공손하게 대하고 IBM과 적극 협력하려고 노력했던 데 비해 게리 킬달은 아쉬울 것이 없었다. IBM 측에서는 기밀 유지 등 여러 조건을 내세웠는데 이런 고압적인 자세가 게리 킬달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게리 킬달은 IBM 같은 거대 기업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IBM이 개발하는 PC 역시 큰 성공을 거두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IBM 관계자 역시 깐깐한 태도로 일관하는 게리 킬달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어느 기업이나 IBM과 거래를 하고 싶어서 안달났었기 때문에 IBM 직원들은 어디서나 친절한 환대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IBM 관계자들은 거만한 게리 킬달의 태도에 분노했다.


결국 협상이 결렬되고 IBM은 빌 게이츠가 중재해 주기를 바라며 마이크로소프트를 다시 찾았다.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마이크로소프트가 IBM-PC의 운영체제를 제공하기로 전격적으로 합의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체제를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술로는 IBM-PC에 맞는 운영체제를 만든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2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위치한 시애틀 컴퓨터사(Seattle Computer Products)로부터 온 전화 한 통이 빌 게이츠를 살렸다. 때마침 시애틀 컴퓨터사에서 인텔 CPU에서 작동하는 QDOS를 개발중이었는데, QDOS의 개발자 팀 패터슨(Tim Paterson)이 마이크로소프트에 전화해서 QDOS에 맞게 베이식을 수정할 생각이 없느냐고 전화로 문의해 온 것이다. 정말이지 빌 게이츠는 행운도 함께 따르는 사람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즉각 시애틀 컴퓨터사에 접근해서 QDOS의 비독점 사용권을 단돈 2만 5천 달러에 구입했다. IBM과의 계약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음으로써 적은 돈으로 유리한 계약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빌 게이츠의 도덕성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마이크로소프트의 뛰어난 협상력을 칭찬할 일이지 그들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을 향한 결정적 순간마다 빌 게이츠의 뛰어난 협상력이 빛을 발했다. 사람들은 빌 게이츠와 IBM이 맺은 계약이 천억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말할 정도다. 그 계약에서 빌 게이츠는 무슨 일이 있어도 IBM에게 비독점적 사용권을 주려고 했다. MITS에 베이식을 납품할 당시 독점권을 준 탓에 다른 컴퓨터용으로는 베이식을 팔 수 없었고 그로 인한 손해가 컸기 때문이다. 이러한 학습 효과 덕분에 빌 게이츠는 IBM의 허락 없이 마이크로소프트 마음대로 다른 회사에 운영체제를 팔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당시 계약 관행으로는 달성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IBM은 빌 게이츠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었다. 게리 킬달이 IBM과의 협력을 선택의 문제로 생각했던 데 비해 빌 게이츠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보고 최대한 IBM과 같이 일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사실 IBM-PC 발매에 맞춰서 운영체제를 개발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었지만 빌 게이츠는 IBM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게다가 당시 IBM-PC의 개발팀은 회사와 약속된 기한을 어길 경우 PC 개발 자체가 취소될지도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개발 스케줄을 꼭 지켜야 하는 IBM-PC 팀에게는 마이크로소프트 외에는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빌 게이츠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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