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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이 다른 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무시를 받는 건 그 역할이 분명하지 않고 작업을 할 때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라면 설계도라도 있고 프로그래머라면 코드가 남고 디자이너라면 그림이 존재해서 자기가 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지만 기획 업무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천하의 스티브 잡스 마저도 회로 하나, 디자인 하나, 코드 한줄 작성하지 않았다는 말에 의해서 비난을 받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처음에 회로 하나, 디자인 하나, 코드 한줄 작성하지 않았다고 폭로를 한 사람은 스티브 워즈니악이었고 이 때문에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의 공을 다 빼앗아간 기회주의자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과연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의 공을 가로챘을까? 스티브 워즈니악이 컴퓨터를 만들게 된 것은 파퓰러일렉트로닉스에서 최초의 마이크로컴퓨터 알테어 8800이 등장했다는 기사에 자극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HP에서 근무하던 스티브 워즈니악은 혼자힘으로 컴퓨터를 완성했고 그가 속했던 일종의 컴퓨터 관련 사교모임인 홈브루 클럽에 공개하게 된다. 스티브 워즈니악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스티브 잡스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고 램의 사용에서 아주 중요한 조언을 한다. 원래 스티브 워즈니악은 AMI 사의 램을 쓰고 있었는데 스티브 잡스는 시장에 출시도되지 않은 인텔의 램을 구해서는 이를 쓰도록 설득했다. 램의 교체여부를 두고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사이에는 논쟁이 벌어졌지만 결국 스티브 잡스의 뜻대로 인텔램으로 바뀌게 된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이에 대해 컴퓨터 개발과정에서 가장 운이 좋았던 선택이었다고 증언한다. 이렇게 완성된 애플 1 컴퓨터는 홈브루 컴퓨터에서 전혀 관심을 끌지 못한다. 오직 스티브 잡스만이 애플1 컴퓨터의 가능성을 높이샀고 애플 1컴퓨터를 함께 판매하자고 제안한다. 정작 스티브 워즈니악은 자신의 컴퓨터가 누군가에게 팔릴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했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의 제안을 거절한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끈질긴 설득으로 겨우 마음을 돌리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자동차를, 스티브 워즈니악은 전자계산기를 팔아 초기 사업 자금을 마련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동업자를 한명 불러들인다. 아타리에서 알게 된 론 웨인으로 40대인 그는 다양한 경험으로 사업과 영업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과 일을 하다보면 여러 분쟁과 갈등이 생길 것을 예상하고 일부러 나이가 많은 론 웨인을 영입했다. 론 웨인은 동업계약서처럼 법적인 문제와 회사로고와 매뉴얼 등을 작성했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든 컴퓨터를 대량생산하기 위해서는 인쇄 회로 기판이 필요했다. 이 역시 스티브 잡스가 아타리에서 알게 된 하워드 캔틴에게 부탁했다. 캔틴이 애플의 일을 해준 것은 스티브 잡스에게 호의를 베푼 것이었다.  여기에 스티브 잡스는 아주 결정적인 거래를 하나 성사시킨다. 바이트숍을 운영하는 폴 테럴을 찾아가 애플1 컴퓨터를 구매해달라는 것이었다. 폴 테럴은 스티브 잡스를 경계했지만 곧 50대의 컴퓨터를 현금으로 주문한다. 이 거래는 스티브 워즈니악도 믿지 못한 애플의 기념비적인 첫 거래였고 애플의 탄생을 알리는 그런 거래였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이를 애플 최대의 사건이라고 평한다. 


스티브 잡스의 활약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당장 애플 1컴퓨터를 조립하기 위해서는 부품을 살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이미 창업자금을 다 쓴 빈털터리 상황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은행을 찾아갔지만 단번에 거절당했다.  친분 있는 스탠포드대학 교수를 통해 부품 일부를 융통하고 실리콘밸리 곳곳을 찾아다녔지만 스티브 잡스에게 부품을 제공하겠다는 업체는 없었다. 다행히 키럴프일렉트로닉스의 밥 뉴턴은 폴 테럴이 신용을 보증한다면 부품을 외상에 판매하겠다고 말했다. 이 역시 스티브 잡스의 수완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거래였다. 

컴퓨터 부품가게에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가 함께 찾아가면 진풍경이 벌어졌다고 한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필요한 부품이 있으면 그게 꼭 필요하다고 떼를 쓰기 마련이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그를 매장 한켠으로 밀어 넣고서 더 좋은 조건의 거래를 위해서 점원과 점잖게 협상에 들어갔다고 한다. 자금이 부족했던 상황에서 부품 수급은 스티브 잡스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작업공간도 제공했다. 애플 창업이 스티브 잡스 아버지 집의 차고에서 이뤄졌다는 것은 유명하다. 그런데 그 차고라는 것이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원래 스티브 잡스 아버지는 부업으로 자동차를 수리해서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생떼에 아버지는 그 공간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장소제공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결혼하기 전 여동생이 쓰던 방에 부품을 저장했고 스티브 잡스의 방에서 납땜작업을 했다. 또한 스티브 잡스 부모집의 식탁은 사무실로 이용됐다. 컴퓨터를 만드는 일이 쉬운 것이 아닌 만큼 그 공간에서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밤을 새면서 작업에 열중해야 했다. 그들이 작업한 방에는 온갖 쓰레기들이 쌓여있었는데 이를 청소해준 사람이 바로 스티브 잡스의 어머니였다.


담낭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었던 스티브 잡스의 어머니가 전화를 응대했고 찾아오는 손님을 대접했다. 그리고 행여나 아들의 일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일부러 피해 다녔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싸우면 스티브 잡스의 아버지가 중재했다. 그의 아버지는 컴퓨터를 시험하는 장치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작업대 등 컴퓨터를 생산하기 위한 장비와 각종 기구 등을 구입하는 일은 스티브 잡스가 맡았다. 컴퓨터를 조립하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스티브 잡스는 여동생에게 이 일을 맡겼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조립된 제품의 불량여부를 체크했다. 완성된 제품은 스티브 잡스가 차에 싣고 매장에 가져가 현금을 받아왔다. 한편 바이트숍의 폴 테럴은 애플1 컴퓨터를 보고 크게 실망했다. 그가 원하던 제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와의 약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품을 받아야 했다. 폴 테럴이 넘겨받은 애플1 컴퓨터는 잘 팔리지 않았고 바이트숍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애플1 컴퓨터로 돈을 벌었기 때문에 애플2 컴퓨터로 이어질 수 있었지만 애플1 자체는 스티브 잡스의 영업력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판매 자체가 어려웠던 제품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금 관리를 위해 보석 세공사로 일하는 엘리자베스 홈스에게 회계장부를 작성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컴퓨터를 100대정도 조립했을 때 5,000달러가 더 필요하게 되자 앨머에게 돈을 빌렸다. 그는 처음에 돈을 빌려주고 싶지 않았지만 스티브 잡스의 화려한 설득에 넘어가 5,000달러를 빌려주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이밖에도 바닥청소나 매뉴얼정리 그리고 과자 사오기 등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회사에 좀 더 세련된 인상을 주기 위해서 팰러앨토의 우편함을 임대하였고 전화대행 업자를 고용했다.  그는 여러 직원들도 직접 뽑았는데 멀리 사는 다니엘 콧케을 고용했을 때는 가족 소파를 침대로 개조해 집에서 함께 지내기도 했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다니엘 콧케와 광고 초안을 작성했다.


애플1 컴퓨터를 만들 때 보여준 스티브 잡스의 활약이 이 정도였고 애플2에서는 스티브 잡스의 활동이 더욱 커졌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상품으로서 애플1 컴퓨터는 엄밀히 말하면 실패작이다. 175여대가 판매되었지만 소매점에 넘기 물건이지 실제 판매됐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티브잡스는 진짜 사업을 위해서는 제대로 된 홍보와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시 홍보전문가인 레지스 메키너를 설득해 애플컴퓨터의 일을 맡긴다. 레지스 메키너는 애플 컴퓨터의 일을 맡을 생각이 없었지만 스티브 잡스의 계속되는 설득에 넘어가고 만다.  스티브 잡스에게 반한 레지스 메키너는 벤처투자자인 돈 밸런타인을 소개한다. 스티브 잡스가 돈 밸런타인을 찾아갔을 때 그는 스티브 잡스가 이단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 투자를 부탁해 결국 인텔에서 스톡옵션을 통해 백만장자가 된 마이크 마쿨라를 소개받는다.

스티브 잡스의 차고를 직접 방문한 마이크 마쿨라는 역시 스티브 잡스의 설득에 넘어가 애플이 앞으로 포춘이 선정하는 500대 기업에 뽑힐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고 9만 1,000달러를 투자하게 된다. 동아리 수준에 불과했던 애플이 정식으로 주식회사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런 일들을 해낸 스티브 잡스에게 과연 남의 공적을 가로챈 사람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회사는 무릇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함께 모여 무엇인가를 이루는 곳이다. 그리고 애플의 성공은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의 환상적인 파트너십이 이뤄낸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둘은 역할이 달랐을 뿐이다.  스티브 잡스는 기획 역할을 담당하였고 스티브 워즈니악은 엔지니어링을 책임짐으로써 서로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애플 컴퓨터의 신화를 창조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획자 스티브 잡스


애플의 창업에 스티브 잡스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일일이 나열했음에도 불구하고 회로 하나, 디자인 하나, 코드 한줄 작성하지 않았다는 스티브 워즈니악의 폭로가 찝찝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감독을 한번 생각해보자. 영화감독은 직접 시나리오 한줄 작성하지 않고 영화 한 장면에 출연하지도 않고 영화의 한장면을 카메라로 찍는것도 아닌데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면서 모든 명예를 다 가져간다. 스티브 잡스는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데 감독 역할만 하지 않았다. 회사의 자금을 마련했고, 제품을 만들 개발자들을 불러모았으며, 사무실을 제공하고, 부품을 구입하여 직접 조립하고 테스트를 했으며, 배달에 수금까지 했다. 광고와 매뉴얼작성에도 관여한 스티브 잡스는 바닥청소에다가 과자칩까지 살정도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일을 하였다. 기획이란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완수하는 해내는 일로 정의한다면 스티브 잡스는 기획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였다. 영화로 치면 제작자, 프로듀서, 감독, 배급, 홍보, 캐스팅 디렉터, 조수의 역할을 혼자서 다해내었다. 여전히 스티브 잡스가 남의 공이나 가로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기획이라는 일 자체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기획을 무시하거나 폄하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저 많은 일을 한 스티브 잡스의 역할을 깔보는 판국에 과연 그 사람이 그 누구를 무시하지 않을지 궁금하다. 여기서 한가지 꼭 참고해야할 말이 있다. 매킨토시의 핵심개발자인 앤디허츠펠드는 “매킨토시의 아버지”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밝힌적이 있다..



“누가 매킨토시의 부모로서 자격이 있을까? 빌 앳킨슨은 강력한 후보다. 그는 강력한 유저인터페이스, 그래픽 소프트웨어, 맥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킬러 애플리케이션을 거의 혼자서 책임졌기 때문이다. 버렐 스미스 역시 또 다른 후보가 될 듯하다. 대단히 독창적인 디지털보드는 모든 것을 통합해내는 탁월함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단 한명만이 명예를 누려야 한다면 나의 선택은 분명히 스티브 잡스다.  그가 없었다면 매킨토시는 절대로 탄생할 수가 없었다. 나머지 개인들도 창조적인 작업들을 책임졌지만 스티브의 비전, 탁월함에 대한 열정, 순수하고 강한 의지, 언급할 필요가 없는 그의 놀라운 강력한 설득력들이 우리가 세웠던 불가능했던 기준들을 이루어내고 그 이상으로 뛰어넘을 수 있게 만들었다. 매킨토시 개발의 원동력이 된 스티브 잡스는 이미 많은 명성을 쌓았다. 나의 의견으로는 그는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있다.”


매킨토시에서도 스티브 잡스가 남의 공을 가로챘다는 험담을 들었던 적이 있다. 하지마 앤디 허츠펠드의 발언으로 그런 소리는 사라졌다. 그런데 위의 앤디 허츠펠드의 발언을 곱씹어보면 기획의 역할이 그대로 드러난다. 비전을 제시하고 팀원들이 비전을 달성할 수 있도록 동기를 자극하였다. 계획을 세우고 이를 성취해내는 기획의 모습을 매킨토시 개발에서 완벽히 보여주었고 그는 매킨토시의 아버지라는 명예까지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일의 양이나 공헌도를 보면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했을 때가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킨토시의 아버지로까지 불리 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가 애플1,과 애플2 시절에 과거 남의 공을 가로챘다고 하는 것은 합당해보이지 않는다. 

 기획업무가 팀 내에서 인정받기 힘든 이유중 하나는 그 역할과 포지션이 확실히 정해져 있지 않다는데 있다. 100명의 사람들에게 기획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100명이 모두 다를 것이다. 필자는 이글에서 가능하면 기획자라는 말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기획이 마치 기획자만의 전유물로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은 마치 창의력이나 성실함처럼 꼭 사람이 갖추고 있어야 할 필수적인 능력이다. 그런데 기획이라는 업무에 대해서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기획자를 예로 들어 보겠다. 

기획자라는 말이 영어로 바뀌게 되면 정말 다양한 단어로 대체가 된다.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로는 계획을 세우는 사람으로 플래너(Planner)를 들 수 있다. 계획을 세우는 일이 과연 기획자만이 하는 일일까?  기획자는 영어로 팀원을 조직화하고 조율한다는 의미에서 코디네이터(coordinator)로 사용되기도 한다.  팀원을 조직화하고 조율하는 일이 기획자만이 하는 일일까? 제품의 원형이 되는 아이디어를 내놓고 이를 구체적으로 설계한다고 해서 기획자는 디자이너(Designer)라고 불리운다. 과연 아이디어를 내놓고 이를 구체화하는게 기획자만의 업무일까? 기획자는 제품의 질직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감독한다고 해서 디렉터(Director)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과연 질적 기준을 제시하고 감독하는 하는 일을 기획자만의 업무일까? 전체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수 있도록 관리하고 총괄한다는 의미에서 프로듀서라고도 하는데 과연 기획자만이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총괄업무를 맡고 있을까?

기획자라는 직책이 있지만 기획이라는 일자체가 폭넓기 때문에 기획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무엇인가를 완수해내야 하는 프로젝트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기획에 관연하게 된다. 특히 기획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플래너, 코디네이터, 디자이너, 디렉터, 프로듀서로써 전체 기획에 이바지한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는 플래너, 코디네이터, 디자이너, 디렉터, 프로듀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멀티플레이어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만들면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기 위한 계획을 세웠고 매킨토시의 원형이 되는 아이디어를 제공하였다. 팀원들의 의견을 조율해서 매킨토시를 완성시키기 위한 방법들을 찾아냈고 작업 결과물들에 대해서 평가를 하면서 끊임없이 제품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다그쳤으며 매킨토시팀의 업무를 총괄하였다. 참고적으로 스티브 잡스는 아타리에 엔지니어로 취직했으나 브레이크 아웃에서는 게임 기획자 역할을 하였고 픽사에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디렉터라고 밝혔다. 또한 토이스토리에는 프로듀서로 그 이름을 올렸다. 그의 활약상을 보면 스티브 잡스는 플래너, 코디네이터, 디자이너, 디렉터, 프로듀서의 다섯가지 능력을 모두 갖추었다. 이 모든 것을 갖추었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는 기획력에 있어서 최고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차이가 있을뿐 뛰어난 기획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결국 스티브 잡스가 갖춘 다섯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자 그럼 다음 연재에서부터 스티브 잡스의 뛰어난 기획력의 실체와 그의 기획이 어떻게 회사에 공헌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오른쪽의 카테고리에서 연재를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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