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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의 활약상들을 지켜보면 혼자서 무엇인가를 이루기 보다는 결국 누군가에게 일을 시키거나 도움을 받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이 바로 기획의 한계이자 본질이다. 기획은 결국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얻고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가 수 많은 인재들을 자신의 편으로 불러 모을 수 있는 비법은 무엇일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원대한 비전을 상대에게 각인시키고 동기를 부여해서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온다.

 

광고 전문가 레지스 메키너의 회사에 전화를 처음했을때만 해도 스티브 잡스는 이제 막 차고에서 시작한 직후라 돈이 없었다.  레지스 메키너는 마지못해서 스티브 잡스에게 한번 회사를 방문하라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는 작은 회의실에 앉아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어린이들과 교사 그리고  사업가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훗날 레지스 메키너는 평생을 살면서 스티브 잡스처럼 마음속에 미래를 그리고 사는 사람은 인텔의 창업자 밥노이스 밖에 없었다고 증언할 정도로 그날의 스티브 잡스에게 깊은 인상을 받는다.  레지스 메키너는 스티브 잡스의 비전을 듣고는 무일푼이었던 애플의 일을 맡기로 하였을뿐만 아니라 돈을 투자 받을 수 있도록 실리콘 밸리의 벤처 투자가인 돈 밸런타인까지 소개시켜준다.


애플의 첫번째 투자자이자 공동창업자가 되는 마이크 마쿨라 역시 스티브 잡스의 비전에 반한 사람이었다. 마이크 마쿨라가 직접 애플의 차고에 들어서자 스티브 잡스는 가정과 회사에 컴퓨터를 팔겠다는 비전을 제시하였고 마이크 마쿨라는 애플이 경제 전문지 “포춘”이 선정하는 500대 기업에 들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그가 애플에 자금을 투자하고 경영자로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제록스가 자랑하는 PARC 연구소에서 인재를 데려올때도 스티브 잡스의 비전이 힘을 발휘했다. 제록스는 애플에 100만달러를 투자한 특수관계였는데 덕분에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의 PARC 연구소를 견학하게 되는 기회를 잡게 된다. 그곳에서 스티브 잡스는 난생처음으로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를 채택한 제록스 알토(Xerox Alto)라는 컴퓨터를 직접 목격하게 된다. 그는 단 10분만에 세상의 모든 컴퓨터가 그렇게 작동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연구소 직원들에게 왜 이 기술을 가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고 질문을 했는데 이는 당시 제록스 직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었다. 제록스의 중역들 앞에서 10여차례나 시연을 해보여도 스티브 잡스처럼 그 기술의 의미를 제대로 간파한 사람이 없었지만 스티브 잡스는 단번에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가 얼마다 대단한지 그 가치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가 미래라고 생각하고 이를 리사프로젝트에 접목하기로 한다. 이는 세계 제일의 컴퓨터 전문가들이 모였던 PARC연구소의 연구원들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제록스 PARC에서 일하던 15명의 연구원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알아주지도 않고 아무런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제록스를 그만두고 애플로 자리를 옮겼다.


비전을 제시하고 동기로 사람을 자극하는 스티브 잡스의 인재술은 존 스컬리를 CEO로 데려올때도 그 힘을 발휘하였다. 펩시콜라의 사장이었던 존스컬리는 마케팅 전문가로써 스티브 잡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존 스컬리는 눈을 가리고 펩시콜라와 코카콜라중에서 어느 게 더 맛있는지를 평가하는 게릴라 마케팅을 선보여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게릴라 마케팅은 미국 전역에서 시행되었고 펩시콜라의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이후 존스컬리는 펩시세대라는 캠페인을 새롭게 선보였는데 이러한 마케팅 덕분에 펩시는 미국 최대의 음료수 회사로 발돋움하게 된다. 존 스컬리는 마케팅분야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초고속으로 사장에 승진하였다. 애플에서는 마케팅 전문가인 존 스컬리를 회사의 CEO로 데려오고 싶었다. 펩시 세대처럼 애플 세대를 만들고 싶었던 스티브 잡스 역시 존 스컬리를 원했다. 하지만 존 스컬리는 펩시를 그만둘 생각이 없다면서 애플의 제안을 거절한다. 이때 스티브 잡스가 직접 나서서 존 스컬리를 설득하게 된다. 뉴욕에서 존 스컬리를 만난 스티브 잡스는 함께 뉴욕을 관광하며 컴퓨터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끝까지 존 스컬리가 거절을 하자 그 유명한 말 한마디로 존 스컬리의 마음을 바꾸어 놓는다.


“남은 인생을 설탕물이나 팔고 살 건가요?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원하십니까?”


스티브 잡스의 도발적인 저 말 한마디에 존 스컬리가 자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스티브 잡스가 전세계의 컴퓨터 사용법을 바꾸겠다는 미래 비전을 확실하게 제시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비전을 제시하였고 애플과 함께 하면 세상을 바꿀수 있다는 동기를 제시함으로써 존 스컬리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었다.


매킨토시의 운영체제 맥 OS의 개발자인 브루스 혼을 처음 스카우트 할 때 역시 스티브 잡스의 비전이 큰 힘을 발휘했다. 브루스 혼은 원래 VTI라는 회사에 취업이 결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로부터 전화가 왔다. 스티브 잡스는 정말 필요한 인재가 있으면 남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직접 나서는 사람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브루스 혼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애플이 어떤 회사냐고 물었다. 브루스 혼은 좋은 회사라고 생각하지만 자신은 이미 VTI에 다니기로 했다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한번에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는 브루스혼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날 9시까지 애플로 오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스티브 잡스라면 애플을 창업한 유명인사였던 만큼 브루스 혼은 예의상 애플을 방문하게 된다.  브루슨 혼을 만난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개발팀 전원을 소개시켜주고는 매킨토시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결국 스티브 잡스의 비전에 넘어간 그는 VTI에 전화를 해서 입사를 취소시켜달라고 통보한 후 매킨토시 팀에 합류하게 된다.


비전으로 사람을 모으는 모습은 넥스트를 창업할 때 더욱 극대화 된다. 넥스트는 스티브 잡스의 개인재산으로 창업한 회사였기 때문에 다른 대기업에 비해서 임금과 각종 혜택이 부족했다. 또한 스티브 잡스가 1976년 애플을 창업했을 때와는 달리 이미 IBM과 애플이 PC 업계를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생회사가 성공하기 힘든 시대였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인재를 모으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연봉이나 기타 이유로 원하는 사람들을 채용하지 못할 때 스티브 잡스가 나서면 만사 해결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교육용 컴퓨터를 만들어 학교에 교육혁명을 불러 일으킬것이라는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내면의 동기를 자극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바꾸어 놓았다. 


에이비 티베이니언(Avie Tevanian)을 데려올 때는 좀 더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했다. 에이비 티베이니언은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1백만달러의 주식을 배당해주겠다는 제의까지 받은 인재였다. 에이비 티베이니언은 운영체제를 개발하였는데  스티브 잡스는 에이비 티베이니언이  만드는 운영체제개발에 모든 것을 걸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에이비 티베이니언은 스티브 잡스의 말에 감동하여 마이크로소프트의 제의를 거절하고 이제 막 시작한 기업이었던 넥스트에 합류하게 된다. 인재를 보는 스티브잡스의 뛰어난 직관력은 이번에도 다시한번 힘을 발휘했다. 에이비 티베이니언은 스티브 잡스의 기대에 부응하듯 뛰어난 운영체제를 개발하였는데 스티브 잡스는 이 운영체제 덕분에 넥스트를 애플에 넘기고 애플에 복귀할 수 있게 된다..  그 후 애플의 임시 CEO가 된 스티브 잡스는 에이비 티베이니언을 소프트웨어 개발 책임자로 임명하였고  함께 애플을 부활시켰다. 


비전의 힘은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의 아버지가 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 많은 사람들이 매킨토시는 제프 레스킨의 프로젝트를 일방적으로 빼앗은 걸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제프 레스킨의 매킨토시와 스티브 잡스의 매킨토시는 이름만 같았을뿐 완전히 다른 제품이었다. 매킨토시 프로젝트는 제프 레스킨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맞다. 마이크 마쿨라는 500달러 수준의 게임기를 만들라고 지시를 하였는데 제프 라스킨은 500달러 짜리 컴퓨터를 만들 겠다고 역제안을 해서 프로젝트를 승인받는다. 


제프 라스킨의 비전은 토스터처럼 추가 장치가 필요없고 세탁기나 냉장고처럼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든 다는 것이었다. 초창기에 매킨토시 프로젝트는 애플에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리사팀에서 쫓겨나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스티브 잡스에게는 새로운 일꺼리가 필요했고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가 마음에 들었다.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에 관심을 보이자 제프 래스킨은 불안해졌다. 그리고 그의 불안감은 현실이 되어서 스티브 잡스가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할 수록 제프레스킨의 입지는 줄어들었다. 


스티브 잡스와 제프 레스킨이 주도권을 놓고 싸움을 벌이는 도중에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제프 레스킨은 매킨토시의 가격이 천달러를 넘어서는 안된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구형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저장장치도 테이프레코더를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가격이 더 비싸진다고 해도 신형 프로세서스에 저장장치도 플로피 디스크를 쓰려고 했다.  메모리 용량도 제프 레스킨이 주장하는 것보다 더 큰 용량을 고집했다. 이 문제로 스티브 잡스와 제프 레스킨은 대결이 벌어졌다.  


결국 스티브 잡스가 승리했고 제프 레스킨은 회사를 떠나게 된다. 그런데 당시 매킨토시팀은 제프레스킨이 조직한 팀이였다. 그중에서도 버드 트리블은 핵심인재였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와 제프 레스킨은 서로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고 했다. 버드 트리블은 제프 라스킨과 오랜 친구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스티브 잡스의 비전이 더 끌렸다. 왜냐하면 자신이 만든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스티브 잡스가 꿈꾸는 컴퓨터가 더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킨토시 팀을 사실상 장악하게 되자 스티브 잡스는 애플 2 컴퓨터의 전원장치를 만들었던 로드 홀트, 애플 2의 케이스를 디자인한 제리 매녹, 하드웨어 전문가 버렐 스미스를 매킨토시 프로젝트 팀으로 데려오는데 이들은 매킨토시 개발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변방의 프로젝트가 스티브 잡스가 데려온 인재들 덕분에 회사의 가장 촉망받는 프로젝트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연재글입니다. 오른쪽 카테고리를 참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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