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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삼국지(7)  서로 별로였던 구글창업자들이 친해진 이유





오늘날 세계적인 예술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3대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전한다. 우선 1세대가 돈을 많이 벌고, 2세대는 풍족한 환경에서 오직 예술을 탐구하고, 3세대는 예술적인 소양이 깊은 부모의 적극적인 관심 아래서 돈에 대한 걱정 없이 각종 교육을 받고 창작 활동에 매진해야만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IT 업계에서도 비록 3대까지는 아니지만 부모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특히 구글의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의 성공 신화는 그들의 부모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세르게이 브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수학자였다. 그들은 세르게이 브린이 여섯 살이 되자 자식의 미래를 위해 소련에서 탈출을 감행했다. 유대인 단체의 도움으로 미국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아무런 기반도 없이 빈털터리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하지만 워낙 뛰어난 학자 출신이었던 만큼 미국 생활에도 금방 적응하였다. 세르게이 브린의 아버지 마이클 브린(Michael Brin)은 메릴랜드 대학교의 수학과 교수가 되었고, 어머니 유지니아 브린(Eugenia Brin)은 나사에서 과학자로 일했다. 


부모님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세르게이 브린은 어린 시절부터 수학에 천재적 재능을 보였다. 불과 19세의 나이에 메릴랜드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국립과학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아서 자신의 부모처럼 박사가 되기 위해서 스탠퍼드 대학원에 진학했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할아버지마저 수학자였을 정도로 세르게이 브린 집안은 학자 집안이었고 박사 학위는 그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필수 코스였다. 미국 최고의 명문 대학 중 하나로 꼽히는 스탠퍼드 대학원에는 전 세계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도 세르게이 브린의 뛰어난 재능은 단연 빛을 발하였다. 1학년 학생 가운데 유일하게 첫해에 모든 시험을 통과하였고, 덕분에 학생들 사이에서 천재라는 명성을 얻었다. 


박사 2년차가 된 세르게이 브린은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을 데리고 샌프란시스코를 안내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신입생 무리 중에 래리 페이지라는 학생이 있었다. 처음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서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쉽게 친해졌다. 1973년에 태어난 동갑내기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서로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같은 유대인이었고, 형제가 있었으며, 세르게이 브린처럼 래리 페이지 집안 역시 학구적인 집안이었다. 아버지 칼 빅터 페이지(Carl Victor Page)는 미시간 주립대학교의 컴퓨터공학과 교수였고, 어머니 글로리아 페이지(Gloria Page) 역시 컴퓨터공학 석사 출신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나중에는 데이터베이스와 관련된 컨설팅을 하고 있었다. 


래리 페이지의 친부모는 그가 여덟 살 때 이혼했는데 아버지 칼 빅터 페이지는 같은 대학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던 동료와 재혼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집안은 과학적 사고를 중시하는 만큼 항상 질문하고 토론하는 가정 환경에 있었다. 토론이야말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일상이었고, 실제로 둘은 격렬한 논쟁을 벌이면서 서로 이끌리게 되었다. 부모의 교육열 역시 비슷했는데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둘다 놀이를 통해서 아이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스스로 학습 방식인 몬테소리 교육을 받았다.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서 교수가 되려는 생각으로 스탠퍼드 대학원에 입학한 것까지 그들에게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을 연결시켜 주는 것은 바로 컴퓨터였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둘다 부모님들이 컴퓨터와 가까운 직업을 가졌던 만큼 일반 가정에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에 이미 컴퓨터를 접할 수 있었다. 남들보다 빨리 컴퓨터를 접한 것은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큰 행운이었다. 그리고 둘은 컴퓨터를 처음 본 순간부터 컴퓨터와 사랑에 빠졌고 평생의 동지가 되었다. 세르게이 브린은 아홉 살 때 코모도어64라는 개인용 컴퓨터를 생일 선물로 받았고, 나중에 친구와 함께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다. 래리 페이지는 일곱 살이 되던 1978년에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했다. 그는 가능한 자신의 모든 일을 컴퓨터로 하려고 했다. 


동화책을 일일이 타이핑해서 컴퓨터에 저장해 놓았고, 숙제도 컴퓨터로 작성한 후 프린터로 멋지게 인쇄를 해서 제출을 했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과제물을 받은 선생님들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직접 장난감 레고블럭으로 잉크젯 프린터까지 만들었던 그가 대학에서 컴퓨터공학과를 전공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한 래리 페이지는 미시간 주립대학교의 컴퓨터 엔지니어 모임인 에타 카파 누(Eta Kappa Nu)의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컴퓨터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스탠퍼드 대학원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것이다. 둘은 사람들이 래리 세르게이라고 부를 정도로 붙어 다니며 컴퓨터에 몰두했다. 그리고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서 함께 연구를 거듭하던 그들은 어느덧 컴퓨터를 통해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컴퓨터에 미친 청년들의 역사


사랑에 빠지듯 컴퓨터에 빠지고 컴퓨터를 통해서 평생의 파트너이자 친구를 만나는 것은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IT 삼국지를 이루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 신화 역시 뜻이 맞는 두 명의 친구로부터 시작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가 별로 없는 외톨이였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각종 전자기기에 탐닉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중학생이 되자 스티브 잡스는 자신처럼 전자기기에 관심이 많은 빌 페르난데스(Bill Fernandez)라는 친구를 알게 된다. 


그런데 마침 빌 페르난데스는 다섯 살 연상의 대학생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차고에서 컴퓨터를 만들고 있었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과학경진대회를 휩쓸었고 수학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 엔지니어였다. 스티브 잡스는 빌 페르난데스의 소개로 컴퓨터를 보기 위해서 차고를 직접 방문한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처음 본 날부터 둘은 서로 끌리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들고 있는 컴퓨터와 그의 뛰어난 지식에 감탄한다. 스티브 워즈니악 역시 다섯 살이나 어리지만 자신의 말을 즉시 이해하는 스티브 잡스가 마음에 들었다. 둘은 공통적으로 악동 기질이 있는 데다 비틀즈와 밥 딜런의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뭐니뭐니 해도 그들을 끈끈하게 연결해 주는 것은 바로 컴퓨터였다. 컴퓨터에 대한 열정으로 둘은 하나가 되었고 함께 애플을 창업하였다.


10대의 스티브 잡스는 전자기기와 컴퓨터공학에 대한 탐구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는 빌 게이츠 역시 마찬가지였다. 빌 게이츠는 13살 때 학교에서 컴퓨터를 처음 보았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컴퓨터라기보다는 컴퓨터에 연결된 단말기였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는 무척 비쌌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감히 설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빌 게이츠가 다니던 레이크사이드 학교는 중앙컴퓨터에 전화선으로 ARS-33이라는 단말기를 연결해서 사용했다. ARS-33으로 처리할 데이터를 입력하면 중앙 컴퓨터에서 데이터를 계산한 다음에 다시 전화선으로 결과를 보내주었다. 1960년대와 70년대만 해도 컴퓨터라고 하면 보통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ARS-33을 처음 본 빌 게이츠는 매혹적인 컴퓨터의 세계에 자신의 마음을 다 빼앗겨 버렸다. 그는 컴퓨터를 완벽하게 다루기 위해서 열정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컴퓨터 덕분에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나듯이 빌 게이츠는 폴 알렌이라는 평생의 동지를 만나게 된다. 폴 알렌은 빌 게이츠보다 세 살 많았지만 컴퓨터에 대한 공통된 관심사로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빌 게이츠는 컴퓨터에 대한 사랑으로 해킹도 서슴지 않았다. 당시 컴퓨터는 이용 시간에 따라서 돈을 내야 하는 종량제였다. 그런데 시간당 내야 하는 돈이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레이크사이드 학교의 컴퓨터실은 예산 초과로 인해서 폐쇄 위기에 놓였다. 이때 빌 게이츠는 중앙 컴퓨터를 해킹해서 사용료에 상관없이 마음껏 컴퓨터를 썼다. 또한 그는 고등학교 시절 늦은 밤 부모님 몰래 집을 빠져 나와서 워싱턴 대학교에서 열심히 컴퓨터를 이용할 정도로 컴퓨터에 엄청난 집착을 보였다. 빌 게이츠의 컴퓨터 사랑을 보면 그가 나중에 컴퓨터로 세계 최고의 갑부로 등극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실 IT 삼국지를 이루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IT 시대의 승자가 되어서 갑부의 반열에 오른 대부분의 리더들이 첫눈에 반한 사랑처럼 컴퓨터에 빠져들었으며 평생의 배우자를 만날 때의 그런 확신을 컴퓨터에서 느꼈다. 델 컴퓨터의 창업자인 마이클 델(Michael Dell) 역시 고등학교 재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자주 라디오섀크에 놀러갔다. 라디오섀크는 라디오 키트나 거짓말 탐지기처럼 간단한 전자기기에서부터 컴퓨터 등을 판매하는 상점이지만 기계에 관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컴퓨터와 전자계산기에 관심이 많았던 마이클 델에게 라디오섀크는 일종의 놀이터와 같았는데 그때의 즐거움이 세계적 컴퓨터 업체인 델 컴퓨터를 있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한편 손정의는 미국 유학 시절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 탄생 기사를 보고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세계를 움직이는 IT 갑부들의 성공 비결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로 묶을 수 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컴퓨터를 사랑했다. 컴퓨터를 사랑하는 만큼 컴퓨터에 대해서는 열정적으로 행동했고, 그로 인해 컴퓨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컴퓨터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에서 비롯된 통찰력과 실행력이야말로 그들이 사업을 하는 데 진정한 원동력이 되어서 역사에 남는 성공 신화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의 천하 삼분지계를 다룬 IT 삼국지 이야기는 다음에도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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