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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삼국지(9) 초라한 시작이지만 자신만만했던 구글창업자들




빌 게이츠는 평소 자신이 잘 알고 있는 현재 경쟁자들보다도 자신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차고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무척 두려워했다. 이는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IT 기업이 사실은 차고처럼 작고 초라한 곳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이 IT 성공 신화를 설명하는 데 딱 들어맞는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 허름한 아파트에서 시작되었고, 스티브 잡스는 아버지 집의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하였다. 그리고 세계 1위의 PC 제조업체인 HP가 차고에서 창업되었고, 2위의 PC 제조업체인 델 컴퓨터는 마이클 델의 기숙사에서 시작되었다.


구글의 성공 신화 역시 그들의 선배들처럼 차고에서 작고 초라하게 시작되었다. 처음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창업을 결심했을 때만 해도 돈이 없었다. 창업을 위한 여러 방법을 찾던 도중에 데이비드 체리턴(David Cheriton) 교수의 소개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 Microsystems)의 창업자인 앤디 베히톨스하임(Andy Bechtolsheim)을 만나게 된다. 구글의 시연을 직접 본 앤디 베히톨스하임은 구글 검색엔진의 우수성을 간파하였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들었던 것은 다른 인터넷 회사들이 광고에 의존하는 것과 달리 뛰어난 검색엔진만 가지고도 고객들의 입소문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창업자들의 자신감이었다. 또한 저가의 부품으로 직접 컴퓨터를 조립해 시스템을 구성하는 절약정신 또한 앤디 베히톨스하임이 투자를 결정하는 데 매력적인 요소였다. 앤디 베히톨스하임은 자리에서 아무런 협상도 없이 바로 그 자리에서 10만 달러짜리 수표를 써 주었다. 앤디 베히톨스하임이 썬 마이크로시스템즈를 창업할 때 투자자들이 수표를 바로 써준 것이 너무나 고마웠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투자금을 받게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역사적인 순간을 축하하기 위해서 버거킹에 가서 함께 식사를 하였다. 그다음 할 일은 정식으로 사무실을 구하는 것이었다. 마침 세르게이 브린은 데이트를 했던 여성을 통해서 대학 동문인 수잔 보이치키(Susan Wojcicki)를 소개받았다. 인텔에서 근무하던 수잔 보이치키와 데니스 트로퍼 부부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외곽에 60평 규모의 방 다섯 개짜리 집을 구입한 터라 구글을 위한 사무실 임대를 부탁할 수 있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임대 승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로 다음날 식료품을 한가득 구입해서는 일을 시작했다. 그들의 사무실은 차고와 연결된 방이었기 때문에 회사 주소의 정식 주소는 차고였다. 그들이 일하는 공간은 말이 사무실이었지 사실상 창고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런 공간에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숙식을 해결하면서 매일 밤낮없이 일에 매진하였다. 구글의 첫 번째 정식 사원인 실버스타인 역시 새벽이 넘어서야 겨우 퇴근을 할 수 있었다. 실버스타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퇴근이라도 할 수 있었던 반면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거의 24시간 내내 일을 했다고 한다.

                                                                 

실리콘 밸리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으로 부상하다

구글의 두 창업자가 쉬지 않고 일에 매진한 덕분에 검색엔진은 나날이 향상되었다. 사용자들도 매달 50%씩 늘어났다. 그러나 정작 수익은 형편없었다. 그들의 검색엔진을 라이선스한 회사는 리눅스를 개발하고 판매하는 레드햇(RedHat)이었는데, 그로부터 받는 월 사용료 2,000달러가 고작이었다.


반면 구글의 접속자 수가 증가함에 따라서 추가적인 네트워크 장비와 컴퓨터를 늘리기 위해 필요한 자금은 늘어만 갔다. 들어 오는 돈은 없는데 날이 갈수록 비용이 계속 늘어가자 앤디 베히톨스하임에게 투자받은 돈은 물론이고 둘의 신용카드와 가족으로부터 빌린 돈 90만 달러마저도 바닥을 드러냈다. 사업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투자를 더 받아야 했다. 벤처캐피탈 업체들은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 종종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회사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투자를 받게 될 경우 회사의 통제권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다. 하지만 수익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의 통제권과 함께 최대 주주자리를 꼭 지키면서 투자를 받으려는 것은 꽤 무모한 일이었다. 그러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생기듯이 마침내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도 행운이 굴러 들어왔다. 때는 1999년으로 닷컴붐이 최절정에 이르며 인터넷과 관련된 회사들이 가장 투자를 받기 쉬었던 때였다.


구글의 투자자 중 한 명이었던 론 콘웨이(Ron Conway)는 구글의 두 창업자에게 야후, 애플, 아타리에 투자해서 큰돈을 번 세쿼이아 캐피탈(Sequoia Capital)의 마이크 모리츠(Mike Moritz)를 소개 주었다. 마침 세쿼이아 캐피탈은 야후에 200만 달러를 투자한 터였다. 당시 야후는 인터넷 기업중에서 가장 잘 나가는 회사였고 덕분에 세쿼이아 캐피탈 역시 덩달아 큰돈을 벌었다. 그리고 시기적절하게 구글은 야후에 검색엔진을 제공하는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마이클 모리츠는 구글의 뛰어난 검색엔진이 야후의 성공에 큰 도움이 될 것을 염두하고 야후와 구글이 긴밀히 협력할 수 있도록 투자를 결정했다. 이후 야후보다 훨씬 큰 수익을 내게 되는 구글에 대한 투자가 사실은 야후를 돕기 위한 투자였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물론 이러한 아이러니는 구글의 입장에서 보면 큰 행운이기도 했다.


당시 구글에 투자하려는 회사는 세쿼이아 캐피탈만이 아니었다.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와 넷스케이프 등에 투자를 해서 큰 수익을 낸 KPCB(Kleiner Perkins Caufield & Byers)의 존 도어는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구글의 초창기 투자자 중에 한 명인 제프 베조스를 통해서 구글을 소개받았고, 구글에 투자하기를 원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KPCB와 세쿼이아 캐피탈이 일종의 라이벌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두 회사는 확실한 주도권을 가지고 싶었기 때문에 공동투자가 아니라 자신의 회사로부터만 투자를 받도록 강요했다. 아무런 진전 없이 두 회사의 치열한 자존심 싸움으로 시간만 낭비하자 이에 신물이 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투자를 받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투자를 받지 않겠다는 식으로 강하게 나가자 오히려 상황은 역전되었다. 세쿼이아 캐피탈과 KPCB이 절대 굽히지 않을 것 같던 자존심을 버리고 공동 투자를 받아들인 것이다.


두 회사는 각각 1,250만 달러씩을 공동으로 구글에 투자할뿐만 아니라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경영권을 보장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세쿼이아 캐피탈과 KPCB의 공동 투자는 단순히 2,500만 달러의 자금이 마련됐음을 뜻하지 않았다. 실리콘 밸리를 좌지우지 하는 캐피탈 업체로부터 동시에 투자를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구글이 얼마나 대단한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지를 세상에 알리는 가장 좋은 홍보 수단되었다. 실제로 각종 언론에서는 투자 소식을 앞다투어 보도하면서 구글을 극찬하는 기사를 계속해서 다뤘다. 덕분에 구글은 어느덧 실리콘 밸리에서 가장 주목받는 회사가 되었다. 이렇게 그들은 성공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의 천하 삼분지계를 다룬 IT 삼국지 이야기는 다음에도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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