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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삼국지(10) 준비된 행운의 사나이 에릭 슈미트 





세쿼이아 캐피탈과 KPCB는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원하는 대로 백기투항하듯이 공동 투자를 결정했지만 한 가지 조건이 걸었다. 바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을 도와줄 경험 많고 노련한 경영자를 영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IT 기업에서는 삼두체제가 무척 중요하다. IT 기업의 경쟁력은 바로 삼두체제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차고에서 창업할 때만 해도 회사는 동아리 수준에 불과했다. 경영에 무지한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사업을 확장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마이크 마쿨라가 없었다면 초창기 애플의 성공도 그렇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이크 마쿨라는 인텔 마케팅 책임자 출신으로 인텔이 주식시장에 상장되면서 백만장자가 된 인물이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차고에서 컴퓨터를 만들고 있을 때, 마이크 마쿨라(Mike Markkula)는 회사에서 은퇴하고 수영장이 달린 대저택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이때 마침 마이크 마쿨라는 세쿼이아 캐피탈의 창업자인 돈 밸런타인(Don Valentine)으로부터 애플에 대한 정보를 듣는다. 그는 스티브 잡스의 차고를 직접 방문해서 애플2 컴퓨터를 직접 만져봤다. 


그리고 애플2 컴퓨터의 가능성을 확신하고는 회사 지분의 3분의 1을 갖는 조건으로 9만 1천 달러를 투자한다. 마이크 마쿨라의 합류는 단순히 투자를 받았다거나 사람 하나가 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드디어 회사가 제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구색이 갖춰졌음을 뜻하였다. 마이크 마쿨라 이전의 애플은 동아리였다면 그가 합류한 이후 애플은 정식으로 주식회사가 되었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멋진 컴퓨터를 만들었으니 사람들에게 팔기만 하면 된다는 아마추어적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마이크 마쿨라는 뼛속까지 사업가적 마인드를 가진 진정한 프로였다. 마이크 마쿨라는 두 명의 젊은이에게 스승이 되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방법부터 양복 입는 법까지 가르쳐 주었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 개발에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기획자의 역할을 하였고, 스티브 워즈니악은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 내는 엔지니어였으며, 마이크 마쿨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자의 역할을 했다. 


이러한 삼두체제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볼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이라는 두 명의 프로그래머가 창업을 했다. 물론 둘 다 프로그래머였지만 빌 게이츠는 비전과 전략을 만들어 내는 기획자의 역할에 가까웠고, 폴 알렌은 엔지니어 역할에 더욱 치중해서 일을 했다. 둘 다 경영에는 밝지 못했다.


 그래서 재무나 회계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곤 했다. 이때 빌 게이츠는 하버드에서 친하게 지냈던 스티브 발머를 떠올렸다. 스티브 발머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응용통계학과를 졸업해 마케팅 사관학교로 통하는 P&G에서 근무를 하였고, 당시엔 스탠퍼드 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었다. 빌 게이츠는 스티브 발머를 집에 초대해서 극진히 대접한 다음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같이 일하자고 제안했다. 5만 달러의 고액 연봉에 5~10%의 배당금까지 제시하면서 말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비록 직원 27명의 작은 회사였지만 평소 빌 게이츠의 능력을 높이 샀던 스티브 발머는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한다. 스티브 발머의 공식 직함은 비서였다. 이렇게 정식으로 경영을 배운 스티브 발머가 합류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환상적인 삼두체제를 구축하였고 이후 급성장을 이루게 된다.


준비된 사람, 에릭 슈미트


삼두체제는 IT 기업에서 매우 중요한 조직체계다. 두 명의 젊은이가 주축을 이루는 구글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삼두체제를 이룰 경영자의 영입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정작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새로운 인물을 영입해야 한다는 것에 떨떠름했다. 투자를 받고서 퇴짜를 놓은 CEO 후보자들만 해도 75명이 넘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18개월 동안이나 온갖 이유를 들며 코치가 되어 줄 경영자를 뽑지 않았다. 그러나 존 도어(John Doerr)는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CEO 후보들을 물색했다. 


존 도어는 자신의 친구이자 노벨(Novell)의 CEO인 에릭 슈미트(Eric Schmidt)가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까다로운 조건들을 충족시킬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존 도어가 넌지시 구글에서 면접을 보라고 할 때만 해도 에릭 슈미트는 구글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2000년 11월만 해도 검색이 아니라 포털이 대세였던 때였다. 검색은 인터넷 시대에 일찍 피고 이미 사그라진 사양 사업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런데 검색을 전문으로 하는 구글에서 일을 해보라니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존 도어가 실리콘 밸리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유명인사였던 만큼 에릭 슈미트는 그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다. 


존 도어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결국 에릭 슈미트는 구글 본사를 방문했다. 그런데 면접을 위해서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에릭 슈미트는 매우 불쾌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20대 중반의 두 젊은이들이 프로젝터를 이용해서 에릭 슈미트의 사진과 약력을 벽에 비춘 것이다. 그리고 느닷없이 그의 과거 행적들과 경영 전략을 신랄하게 비난하기 시작했다. 에릭 슈미트는 순간 당황했지만 바로 제정신을 차리고 바로 반론을 펼쳤다. 원래 예정된 미팅 시간은 45분이었지만, 계속되는 치열한 논쟁이 이어지면서 시간은 두 배로 늘어난 90분간 계속되었다.


 사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도 에릭 슈미트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존 도어의 제안을 거절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면접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90분간의 지적인 전투 후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드디어 자신들에게 맞는 경영자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특히 에릭 슈미트가 마음에 든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자신들과 같은 엔지니어라는 점이었다. 


에릭 슈미트는 프린스턴 대학교의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처럼 아버지가 대학 교수였다. 그는 1983년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에 입사하여 14년간 재직하면서 자바(Java) 개발을 진두 지휘하였다. 최고 기술 책임자로 근무하던 그는 1997년 노벨의 CEO로 취임하게 된다. 2001년 2월, 구글은 에릭 슈미트에게 CEO 자리를 정식으로 제안한다. 첫 만남 이후 구글을 매력적으로 생각하던 에릭 슈미트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다음 달 3월에 회장이 되었고, 8월에 정식 CEO가 되었다. 


래리 페이지는 제품 부분 사장을, 세르게이 브린은 기술 부분 사장을 맡으면서 드디어 구글도 이제 완벽한 삼두체제를 완성하였다. 구글의 삼두체제가 완성되면서 회사는 비로소 동아리에서 정식 회사가 되는 변화를 겪게 된다. 불필요한 사람들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비효율적이었던 회의 방식을 폐지하고 에릭 슈미트가 직접 회의를 주도했다. 또한 구글이 헤지펀드를 해야한다는 세르게이 브린의 아이디어에 따라 회사 운영에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은 아예 싹부터 잘라 버렸다. 


또한 회사 재정에도 적극 관여하여 직원들에게 나눠준 신용카드를 몽땅 회수하기도 했다. 그리고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탐탁치 않아 하던 언론이나 외부와의 미팅을 에릭 슈미트가 대신하였다. 아울러 구글이 제대로 된 회사로 운영되도록 각종 체계를 바로 잡으면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일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도록 냉철하고 차가운 감독관의 역할도 하였다. 자유분방하기만 했던 구글의 문화에 책임감과 진지함을 강조한 에릭 슈미트의 노력은 즉시 효과를 발휘했다. 1998년 창업 이후 계속해서 적자를 기록했던 회사가 그가 합류한 이후 처음으로 분기 흑자를 기록한 것이다. 정식 CEO로 취임한 이후 구글의 순이익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2006년에는 「비즈니스위크」가 선정하는 올해의 CEO로 뽑히기까지 하였다. 


사실 에릭 슈미트가 엄청난 행운의 사나이인 것은 분명하다. 에릭 슈미트가 CEO로 재직하는 동안 노벨의 실적은 형편없었으며 심지어 파산 직전에 다른 회사에 합병되는 상황을 맞이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기가막히게도 구글로부터 CEO 제안이 들어온 것이었다. 그리고 에릭 슈미트가 합류한 이후 단 한 달 만에 흑자를 기록한 것도 엄밀히 말하면 그의 공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원래 구글의 창업자들은 광고에 부정적이었다. 검색 결과에 유료 광고를 보여주는 것을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광고가 검색의 순수성을 훼손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구글에 광고를 접목하는 것을 완강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수입보다도 지출이 많아지면서 현금이 갈수록 고갈되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뭔가 새로운 수익 모델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동안의 고집을 꺾고 구글의 검색 결과에 광고를 싣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에릭 슈미트가 합류하기 이전인 2000년 10월, 고객이 검색한 키워드에 따라서 광고를 보여주는 애드워즈(AdWords) 서비스가 런칭되었던 것이다.


 하루 6,000만 건의 검색 건수를 기록하던 구글은 광고 시장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냈고, 에릭 슈미트는 에드워즈의 성공이 결실을 맺을 때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구글에 합류했던 것이다. 구글 이전에 에릭 슈미트는 성공한 기업을 직접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그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이 많았다. CEO로 재직했던 노벨에서 별다른 실적을 내지 못하다가 구글을 만나고서 큰 성공을 거두었으니 에릭 슈미트에게 행운이 따른 것이라고 주장할 만도 하다. 


하지만 사업가에게는 항상 행운이 따라야 한다. 에릭 슈미트는 적당한 때와 적당한 장소에 있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뛰어난 능력을 갖춘 천재들이었지만 그들을 보완해서 삼두체제를 구성할 사람이 필요했고, 에릭 슈미트가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과 함께 삼두체제의 한 축이 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게 중요하다. 또한 에릭 슈미트는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도맡아 했다. 분명한 것은 적자에 시달리던 구글이 에릭 슈미트의 합류 이후 급속도로 안정을 찾았고 극적인 실적 향상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렇게 2001년 이후 9년을 넘게 누구보다도 까다로운 사람들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과 함께 삼두체제의 한 축을 담당하며 별다른 문제 없이 회사를 성장시키고 있는 에릭 슈미트는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는다는 오랜 격언에 딱 맞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의 천하 삼분지계를 다룬 IT 삼국지 이야기는 다음에도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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