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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삼국지(11) 인터넷의 관문 야후 창업 스토리






야후와 구글은 여러 가지 인연으로 맺어진 기업이다. 창업자인 제리 양(Jerry Yang)과 데이비드 파일로(David Filo)는 구글 창업자들과 마찬가지로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중에 처음 만났고, 같은 연구실을 쓰면서 급속도로 친해진다. 1993년에는 인터넷 브라우저인 모자이크가 공개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인터넷 세상이 열렸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인구가 급속도로 늘어났고 각종 웹사이트들이 새롭게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당시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는 때마침 불어닥친 인터넷 세상에 푹 빠져 있었다. 데이비드 파일로는 자주 가는 웹사이트 리스트를 정리하였는데 무려 200개가 넘었다. 200개가 넘는 인터넷 사이트 목록을 관리하기가 힘들어지자 데이비드 파일로는 친구인 제리 양과 함께 자신이 모아 놓은 웹사이트들을 주제별로 정리해서 이를 편리하게 관리하는 방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아예 하나의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홈페이지 목록을 관리하면 훨씬 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데이비드 파일로와 제리 양은 인터넷 세상을 탐험하면서 마음에 드는 홈페이지를 알게 되면 바로 자신들이 구축한 웹사이트 목록을 추가했다. 둘이 만든 웹사이트는 인터넷을 통해서도 누구나 접속할 수 있었는데, 여러 웹사이트가 뉴스, 취미, 예술, 경제, 건강, 오락 등 각각의 주제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친구들 사이에서 호평을 들었다. 구글이 주변 사람들의 입소문에 의해서 서서히 세상에 알려졌듯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의 웹사이트 역시 친구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 서서히 인기를 끌기 시작한다.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의 웹사이트 이름은 처음에 ‘제리와 데이브의 월드와이드웹 가이드(Jerry and Dave’s Guide to the World Wide Web)’이었는데 나중에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인간 모습의 야수들을 뜻하는 야후로 바꾸게 된다. 이후 야후가 급성장을 이루게 되는 것은 넷스케이프 창업자인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en) 덕분이었다. 


마크 앤드리슨은 웹브라우저인 모자이크를 만들어서 인터넷을 대중화시킨 인물이다. 모자이크 이전의 인터넷은 사용하기 불편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접근하기가 힘들었지만, 모자이크을 이용하면 누구나 쉽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 당시 모자이크가 누렸던 인기는 수치로도 쉽게 증명된다. 모자이크가 공개된 1993년 인터넷 웹 이용자 수가 342,000퍼센트나 증가했고, 50여 개였던 상업적인 웹사이트가 1년도 채 안 되어서 10,000개를 넘어섰다.


<쥬라기 공원>의 특수효과를 담당한 것으로 잘 알려진 실리콘 그래픽스의 창업자인 짐 클라크(Jim Clark)는 모자이크를 만든 마크 앤드리슨이라는 인물에 끌리게 되었다. 회사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짐 클라크는 실리콘 그래픽스를 그만두고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 마크 앤드리슨 역시 짐 클라크와 비슷한 처지였다. 모자이크를 직접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소속되어 있던 NCSA(National Center for Supercomputing Applications)에서 온갖 부당한 대우를 당했다. NCSA가 급기야 마크 앤드리슨을 모자이크 개발팀에서 쫓아내기로 결정하면서, 


이러한 상황에 진절머리가 난 그는 아예 NCSA를 그만두고 실리콘 밸리의 작은 회사에 취직한 상태였다. 짐 클라크가 만나자는 이메일을 보내자 마크 앤드리슨은 이에 선뜻 응하였다. 그들은 서로 만나는 순간 통하였다. 두 사람 모두 현실에 불만이 많았고 세상을 바꿔보고 싶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몇 번의 만남 끝에 마크 앤드리슨과 짐 클라크는 함께 회사를 창업하기로 의기투합하였다. 바로 그 회사가 오늘날 인터넷 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넷스케이프였다. 마크 앤드리슨은 웹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의 개발을 주도했다.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는 1994년 10월 출시되었는데 발매와 동시에 웹브라우저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했다. 1994년 말에는 KPCB로부터 500만 달러를 투자받았으며, 1995년 8월 8일 주식 시장에 상장되면서 창업자인 짐 클라크는 5억 4,400만 달러를 마크 앤드리슨은 5,800만 달러의 자산을 하루 아침에 벌어들였다. KPCB가 넷스케이프에 투자할 때 평가했던 기업 가치보다 무려 92배가 넘는 초고속 성장이었다. 1995년 당시 인터넷의 황제는 넷스케이프였고 최고의 슈퍼스타는 마크 앤드리슨이었다. 80년대의 스티브 잡스처럼 마크 앤드리슨은 새로운 시대의 아이콘으로 등극하였다. 


1995년 일찍이 야후를 주목하고 있었던 마크 앤드리슨은 스탠퍼드 대학원생인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에게 매우 호의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제안을 한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인터넷 서버를 이용하고 있던 야후 서비스를 넷스케이프에서 대신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마크 앤드리슨은 자사의 웹브라우저에 야후로 바로 접속할 수 있는 버튼까지 만들어 주었다. 넷스케이프의 호의 덕분에 야후는 더욱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처음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는 재미로 한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은 자신들의 일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직접 사업을 하기로 결정하고, 독자적인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서 투자를 받으려고 했다. 사실 넷스케이프가 야후에 접근했던 데는 야후를 인수하려는 의도가 컸는데,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가 독자적으로 회사를 설립하려고 하자 넷스케이프는 즉시 야후의 인터넷 서비스를 담당하던 서버를 철거하였다.


야후가 꽤 인기를 얻으면서 넷스케이프 말고도 투자를 제안하는 벤처캐피탈 업체들이 몇 군데 있었다. 세쿼이아 캐피탈도 그중 하나였다. 야후는 세쿼이아 캐피탈로부터 200만 달러를 투자받아 되고 새로운 사무실을 얻게 된다. 인터넷을 대중화시킨 것은 넷스케이프의 활약 덕분이었지만 정작 돈을 번 것은 야후였다.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는 거의 무료로 배포되었던 데다 정작 넷스케이프를 이용한 고객들은 야후에 접속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넷스케이프는 정작 큰돈을 벌지는 못했다. 


야후는 인터넷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관문, 즉 포털이 되어 갔다. 접속자 수가 늘어가자 야후는 마스타카드나 소니 같은 기업 광고를 실어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1996년 4월 12일 야후가 기업을 공개하던 날 제리 양과 데이비드 파일로의 주식 가치는 1억 3,200만 달러에 이르렀다. 그리고 점차 넷스케이프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의해서 힘을 잃어가는 사이 야후는 사실상 대표적 인터넷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1997년 야후의 주가는 전해 대비 511%나 상승했고, 1999년 1월에는 시가총액이 440억 달러에 이르렀다. 넷스케이프의 시가총액이 최고로 올랐을 때가 80억 달러였음을 고려한다면 어마어마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의 천하 삼분지계를 다룬 IT 삼국지 이야기는 다음에도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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