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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삼국지(12) MS를 두려워한 야후의 실책과 구글의 발흥





잘나가던 야후에게도 한 가지 근심이 있었다. 바로 IT 업계의 절대군주 마이크로소프트였다. 1999년 1월 야후의 시가총액이 440억 달러를 기록하던 때, 빌 게이츠의 재산은 이미 천억 달러에 달했다. 또 넷스케이프를 회복 불가능하게 철저히 파괴하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모습을 보면 충분히 공포감을 가질 만했다. 넷스케이프가 웹브라우저 시장을 천하통일하며 세력을 확장해나가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익스플로러를 출시하며 도전장을 던졌다. 95년 처음 등장한 익스플로러는 여러 면에서 넷스케이프보다 떨어졌고 사용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이에 비해서 넷스케이프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이에 빌 게이츠는 운영체제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상황을 100% 활용하는 전략을 만들어 낸다. 윈도우95에 익스플로러를 무료로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사실상 넷스케이프를 시장에서 퇴출시켜버리겠다는 선전포고와도 같았다. 이 결정을 발표하자 넷스케이프의 주식이 폭락할 정도였다. 이때부터 넷스케이프의 가시밭길이 시작됐다. 시장 지배력뿐만 아니라 인재와 자금도 풍부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수백 명의 프로그래머를 동원해서 익스플로러를 업그레이드했고, 수천 명의 직원들을 인터넷 사업부로 발령했다. 아울러 마케팅에도 거액을 투자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996년 익스플로러3.0을 발표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처음에 비록 형편없는 제품을 만들지만 2.0 버전에서는 기존의 문제점을 해결한 제품을 내놓고 3.0 버전이 되면 경쟁사와 비슷한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 내는 비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익스플로러 역시 3.0 버전이 되자 비로소 넷스케이프의 내비게이터와 비슷한 수준의 제품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동급의 제품이라면 사람들이 굳이 내비게이터를 쓸 필요가 없다. 윈도우95에 포함된 익스플로러를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의 목적은 단순히 넷스케이프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예 넷스케이프를 시장에서 척결하는 것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좀 더 파괴적인 전략으로 넷스케이프를 시장에서 몰아내기 시작했다. 넷스케이프의 내비게이터는 당시 세계 1위의 PC 제조업체인 컴팩(나중에 HP에 합병되었다)의 컴퓨터에 납품되고 있었다. 컴팩은 바탕화면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익스플로러 아이콘을 삭제하고 넷스케이프의 내비게이터로 대체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의 항의로 인해 얼마 가지 않아 컴팩은 익스플로러 아이콘을 복원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마이크로소프트는 IBM에게 익스플로러 대신 넷스케이프를 쓰게 되면 윈도우를 아예 판매하지 않겠다고 말했고, 애플에게는 매킨토시로 오피스를 내놓지 않겠다면서 익스플로러 사용을 강요했다. 뿐만 아니라 넷스케이프와 거래를 준비 중인 팩벨, 월트디즈니, HP 등에 경고를 하거나 화를 내는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경고가 통하지 않는 회사에게는 더 좋은 조건으로 회유해서 넷스케이프와의 계약을 무용지물로 만들기도 했다. 


60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던 미국의 대표적인 인터넷 서비스 회사인 AOL(American Online)은 넷스케이프와 웹브라우저 배포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 덕분에 넷스케이프의 주식은 급등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AOL은 내비게이터뿐만 아니라 익스플로러도 사용자들에게 배포하겠다고 발표하였다. 문제는 사용자들이 설정을 바꾸지 않는 한 익스플로러가 자동적으로 실행되도록 초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이는 윈도우95의 바탕화면에 AOL에 접속할 수 있는 아이콘을 넣는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AOL이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마이크로소프트는 넷스케이프와 거래하는 회사에 접근해 여러 혜택을 제공하면서 넷스케이프와 관계를 끊도록 하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노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과로 나타났다. 1996년까지만 해도 넷스케이프의 시장 점유율은 87%, 익스플로러는 4%였다. 그러나 불과 2년 만에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은 44%로 상승하였고, 내비게이터는 42%로 추락하였다. 넷스케이프의 주식 또한 추락을 거듭하면서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다. 독자적 생존이 불가능하게 되자 결국 넷스케이프는 AOL에 인수되었고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한때 넷스케이프는 인터넷 그 자체로 통하였고, 새로운 미래를 열게 될 기업으로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맹공으로 4년 만에 쓰러지고 만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넷스케이프를 제압하는 모습은 실리콘 밸리의 모든 기업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안겨 주었다. IT 기업들은 가능한 마이크로소프트와 경쟁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벤처 투자자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마이크로소프트와 겹치는 사업 분야의 벤처기업에는 투자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야후 역시 마이크로소프트에 잔뜩 겁을 먹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혹시 자신들을 시장에서 몰아내기로 결정할까 봐 전정긍긍하던 야후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적대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야후는 가능하면 마이크로소프트와는 경쟁을 펼칠 필요가 없는 별개의 사업 분야를 가진 회사처럼 보이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전략이 미디어 기업으로써의 야후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IT, 즉 기술기업이지만 야후는 인터넷에 컨텐츠를 제공하고 배포하는 미디어 기업이라는 점을 집중 부각했다. 자신들을 미디어 기업으로 생각한 야후는 기술 개발 대신 홍보 마케팅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기도 했다. 당시 이루어진 광고 캠페인 ‘Do you Yahoo?’는 미국 어느 지역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기술을 홀대하던 야후의 창업자들은 구글이 자사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생각조차 못했다. 야후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손으로 직접 인터넷 사이트를 분류했다. 야후의 창업자들은 어떠한 기술 검색도 인간을 따라잡을 수 없다면서 대규모의 편집자들을 뽑아서 각 항목별로 인터넷 사이트들을 분류하는 일을 시켰다. 그와 달리 구글은 수작업을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기술에 의존했다. 구글이 야후보다 검색엔진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사용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었지만, 정작 야후는 검색엔진의 속도와 성능이 아니라 이용자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생각했다. 야후는 엄밀히 말하면 검색으로 시작한 회사였지만 놀라울 만큼 검색엔진에 관심이 없었다. 야후의 전략은 최대한 자사의 사이트로 사람들을 모아놓고 가능한 오랜시간 동안 야후에서 머무르게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사용자들을 다른 웹페이지로 이동시키는 역할을 하는 검색엔진이 야후에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이런 야후와 달리 구글의 최고 목표는 사용자들이 구글에 최소한으로 머무르고 가능한 빨리 다른 사이트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검색을 위해서 구글 접속한 사용자의 체류시간이 짧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구글이 원하는 정보를 빠르게 제공한 것을 의미함으로 구글에게는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포털을 지향하는 야후는 절대로 구글처럼 생각할 수 없었다. 야후의 CEO는 야후에서 사용자들의 검색엔진 횟수가 줄어든 것을 자랑스러워할 정도로 검색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검색보다 포털의 기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야후의 판단은 구글 검색엔진을 얻을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를 잃게 만들었다. 구글의 창업자들이 검색엔진을 팔기 위해서 야후를 찾아갔을 때, 야후는 그 제안을 거절한 것이다. 오히려 야후의 창업자인 데이비드 파일로는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창업을 권하기까지 했다. 야후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될 구글의 창업을 재촉한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결국 야후는 검색엔진을 외부에서 구입해야 했고, 2000년 6월, 과거에 그들이 거절했던 구글의 검색엔진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계약은 IBM이 마이크로소프트를 성장시키게 도와준 것처럼 구글에 그런 큰 기회를 제공하였다. 구글은 야후에 검색엔진을 제공한 덕분에 실질적으로 수익도 챙기고 대외적으로 회사의 브랜드를 알릴 수 있었다. 야후는 그야말로 자신을 잡아먹을 호랑이 새끼를 스스로 키운 꼴이 되었다. 야후가 검색의 가치를 무시하였던 중요한 이유는 배너광고를 통한 수익 모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야후는 대기업들의 브랜드 광고를 배너 형태로 제공하였고, 따라서 방문자들에게 가능한 많은 배너광고를 보여줘야만 야후는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검색이 아닌 포털 사이트로서 방문자들의 체류시간에 신경을 썼던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 거품이 한창일 때 야후는 배너 광고 하나에 백만 달러를 넘게 받을 정도로 광고주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야후의 수익 모델은 인터넷 거품이 꺼지면서 고전하기 시작했다. 야후의 고객이 대부분 인터넷 업체였던 것이다. 당시는 인터넷 열풍으로 인해 수많은 인터넷 회사들이 별다른 수익 없이도 주식 상장만으로 큰돈을 벌던 거품의 시대였다. 인터넷 회사들은 광고를 통해 사이트 인지도를 높이고 방문자 수를 늘리기 위한 전쟁을 벌였는데, 바로 그때 방문자 수를 높이는 최고의 방법이 야후에 배너 광고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 인터넷 거품이 꺼지면서 862개 이상의 회사들이 문을 닫았다. 그렇게 광고주를 잃게 된 야후는 직격탄을 맞게 된다. 한때 500달러에 이르던 주식이 2001년에는 10달러 이하로 추락했고 실적 역시 급속히 악화되었다. 결국 2001년 5월, 팀 쿠글(Tim Koogle)은 야후의 CEO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상황이 이렇긴 했지만 야후에게도 분명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야후는 오히려 기술 기업이 아니라 미디어 기업으로 더욱 자리 잡고자 했다. 팀 쿠글은 모토로라와 인터멕과 같은 IT 기업에서 일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야후의 새로운 CEO가 된 테리 시멜(Terry Semel)은 IT에 문외한이었고 영화사인 워너 브라더스에서 경력을 쌓은 인물이었다. 헐리우드 출신의 테리 시멜은 야후를 디즈니랜드처럼 디지털 테마파크로 만들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처음에는 야후의 선택이 옳은 것처럼 보였다. 테리 시멜 이후 실적이 급상승하며 부활찬가가 들리는 듯했다.


 2002년 2분기에 2,140만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하였다. 1년 6개월(7분기) 만의 흑자였다. 그리고 2002년 3분기에는 매출 2억 4,880만 달러(전해 대비 50% 상승)에 2,890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야후는 2003년 3분기에도 매출 3억 5천만 달러(3억 5680만 달러)에 6,530만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6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나 한편으로 구글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루며 야후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었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의 천하 삼분지계를 다룬 IT 삼국지 이야기는 다음에도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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