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흥미로운 선택들의 연속이라는 정의는 게임 개발자들이 가장 즐겨 하는 말 중에 하나다. 보통 게임 개발자들에게 게임은 무엇이냐고 물으면 항상 모범 답안처럼 게임은 흥미로운 선택들을 연속적으로 제공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필자는 한동안 그 말이 작자 미상의 게임계 격언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시드 마이어가 게임에 대해서 밝힌 견해임을 알게 되었고 그의 탁월함에 다시 한번 놀란 적이 있었다. 게임은 흥미로운 선택들의 연속이라는 것은 게임의 특질을 꿰뚫는 명언이다. 게임은 게임유저에게 한가지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게임은 게임 유저가 다양한 선택사항을 가지고 그에 따른 여러 결과물들을 감상할 수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게임의 본질이다. 그래서 그는 게임 기획자에게 게임을 개발할 때 항상 게임 유저들이 흥미로워하는 선택사항들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게임 유저가 게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명확하게 설명해서 게임 유저가 쉽게 게임의 내용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획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한 게임을 개발할 때 장르에 구속받지 말고 우선 소재를 먼저 생각하라고 말한다. 보통 게임 개발자들은 액션이나 롤플레잉 게임처럼 우선 장르를 생각하고서 게임을 기획하는데 이는 게임 개발에 있어서 창의성이 발휘될 기회를 원천적으로 막는다는 것이다. 

그가 레일로드 타이쿤을 기획할 때는 경영시뮬레이션을 먼저 생각하고 개발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철도를 표현할 수 있는 게임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경영시뮬레이션이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를 게임에 접목하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문명이 되었고 스파이들의 삶을 게임에 표현하고 싶어서 만들어진 것이 액션장르의 게임인 코버트 액션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바다속에 살아가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게임으로 만들고 싶어서 생각해낸 해적은 액션, 롤플레잉, 어드벤처, 경영시뮬레이션이 모두 합쳐진 복합장르로 탄생하였다. 이렇듯 장르가 아닌 소재를 먼저 생각해서 게임을 기획하라는 것이 시드 마이어의 절대적인 충고이다. 

이러한 소재들은 역시 책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항상 많은 책들을 읽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최근에 시드 마이어가 게임 아이디어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녀들과 함께하는 게임이라고 한다. 서로 다른 컴퓨터에서 각자 게임을 하면서 여러 가지 잡담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덧 게임에 대한 좋은 생각과 아이디어들이 쏟아진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가장 행복할 때 역시 자녀들과 자기가 만든 게임을 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정말 게임 개발자인 필자로써는 정말 부러운 광경이다. 

사실 그 광경은 세상의 모든 게임 크리에이터가 꿈꾸는 로망스이기도 하다. 게임 개발자에게 진정한 낭만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준 시드 마이어! 이제 나이 60이 넘어서도 게임 개발자로 일할 수 있음을 또 한번 증명해 주세요!


대표 게임


2005년 시드 마이어의 문명4 

2004년 시드 마이어의 해적

2002년 시드 마이어의 심골프 

2002년 심즈 디럭스 에디션 

1999년 시드 마이어의 알파 센타우리

1997년 시드 마이어의 게티스 버그

1991년 시드 마이어의 문명

1987년 시드 마이어의 해적

1985년 F-15 스트라이크 이글 

1984년 스핏 파이어 에이스(Spitfire 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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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회사를 창립할 결심을 한 시드 마이어가 우선 먼저 생각한 것은 경영자를 영입하는 것이었다. 자신은 개발에 전념하고 회사의 경영과 팀의 관리를 전적으로 맡을 사람을 원했던 것이다. 마침 같은 회사의 동료인 제프 브릭스(Jeff Briggs)도 소규모 회사에서 하나의 게임에 전념하는 시스템을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대규모화된 회사에 염증을 느끼던 제프 브릭스는 공공연히 회사의 운영방침에 반대하였다. 자기가 만약 회사를 세우면 우선 3명 정도의 소수가 프로토 타입의 게임을 완성한 후에 게임의 재미를 평가하고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드 마이어는 제프 브릭스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였고 둘은 금새 의기 투합 할 수 있었다. 회사의 중심은 마케팅이나 경영이 아니라 개발팀위주여야 한다는 신념으로 둘은 파이락 시스(firaxis)를 창업한다. 파이락 시스의 회사 모토는 우리가 하고 싶고 재미있어하는 게임에 열정을 다해서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시장에서 얼마나 팔릴까 보다는 얼마나 재미있는 게임을 개발하느냐가 이들의 유일한 관심사였다. 마침 경영과 관리에 있어서 제프 브릭스는 나중에 2004년 미국 유력 경제 잡지인 스마트 CEO 매거진에서 올해의 CEO로 뽑힐 정도로 탁월한 경영 수완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시드 마이어는 다른 일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게임 개발에만 전념할 수 있었고 그것은 최고의 게임을 개발하는데 원동력이 되었다. 미국 남북전쟁을 소재로 게임을 개발할 결심을 그는 실시간으로 2천명의 군인을 직접 콘트롤 하면서 전쟁을 수행하는 게티스 버그(Gettysburg )를 만든다. 게티스 버그는 미국 남북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에 하나로 게임유저는 장군이 되어서 직접 군대를 지휘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게임이다. 

실시간 게임 시스템을 채용하여 잠시도 게임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전투의 긴장감은 가히 최강의 게임으로 평가 받고 있다. 덕분에 다수의 게임 잡지와 웹진으로부터 최고의 전쟁 게임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게 된다.


그리고 이어서 1999년에 내놓은 알파 센타우리는 문명의 소재를 우주로 끌어 올린 게임으로 덴버 포스트와 토론토 썬 지에 의해서 최고의 게임으로 선정되었다. 그야 말로 시드 마이어는 성공의 보증수표였고 다시 한번 게임의 차원을 높인 위대한 게임 크리에이터로 거듭나게 되었다. 문명의 성공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고 그는 지속적인 성공작을 내는 진정한 천재 크리에이터라는 명성은 더해만 갔다.







2004년에 시드마이어는 최신의 3D기술을 활용해서 자신의 과거 작품인 해적을 리메이크 한다. 1987년도 작품을 17년만에 3D로 부활시킨 해적은 게임성뿐만 아니라 시장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나의 장르로 설명할 수 없는 전략, 액션, 어드벤쳐, 롤플레잉게임의 요소를 하나에 담아낸 진정한 복합장르의 게임으로 평가 받았다. 이 덕분에 해적은 시카고 트리뷴을 비롯한 각종 언론매체로부터 2004년 올해의 게임으로 선정되며 맹위를 떨쳤다.

 시드 마이어는 갈수록 명성이 더해지고 빛을 더하는 진정한 게임 크리에이터이다. 2005년 11월에 발매한 문명 4는 미국의 상점을 초토화시켰다는 표현을 할 도로 4주년 연속 판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사건은 단지 시드마이어의 명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수준이 아니다. 나이 50이 넘어서도 게임을 개발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 것이었다. 


물론 나이 50이 넘어서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자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실제 게임 개발에 실제적으로 관여하지도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다. 게임 개발에 몇 마디 조언한 것으로 작품의 디렉터나 프로듀서라 말을 하는 것은 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나마 실제로 개발에 참가한 몇몇 크리에이터들이 있다. 하지만 무뎌진 감각으로 작품성이나 시장성 모두 실패하여서 역시 나이는 속일 수 없다는 소리를 듣고서 개발 현장을 떠나야만 했다. 

그런데 이런 선입관을 바로 시드 마이어가 보기 좋게 깨놓은 것이다.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그는 문명4의 성공을 즐기고 있다. 앞으로 그가 어떤 게임을 내놓을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다만 그는 공룡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언젠가 한번 공룡을 소재로 게임을 개발하고 싶다고 공언하였다. 지금의 상승세라면 여러 가지 복잡함으로 보류되었던 공룡게임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 아하! >

 활발한 활동을 하는 게임 크리에이터 중에서 최고 연장자는 현재 58세의 브루스 쉘리이다. 시드 마이어와 함께 문명을 기획했던 그는 파이락 시스의 공동 창업자 3인방중에 하나다. 그는 컴퓨터 게임이 아닌 보드게임으로 게임계에 입문했으며 시드 마이어의 권유로 컴퓨터 게임계로 진출했다. 보드게임에서 잔뼈가 굵은 덕분에 게임의 규칙을 세우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실제 시드 마이어가 많은 도움을 받았다. 브루스 쉘리는 현재 에이지 어브 엠파이어로 유명한 앙상블 스튜디오의 수석 게임디자이너도 있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3는 비슷한 시기에 문명4와 발매되어 게임 판매 1등을 놓고 격돌 중이다

</아하>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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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 마이어의 게임 인생은 확실히 1991년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뉜다. 문명 이전에는 유명한 게임 개발자 정도에서 문명 이후에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수준의 게임 개발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게임 개발자의 톱이 된 것이 아니라 전체 문화산업에서 톱이 되었다. 그래서 게임 크리에이터와 게임의 위상을 높였다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그 후 시드 마이어라는 이름은 이미 성공을 보장하는 이름이었고 그는 그의 이름에 걸맞은 여러 게임들을 연속적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마이크로 프로즈의 재정은 날로 어려워졌다. 마이크로 프로즈는 갑작스런 성공으로 대규모의 인원들을 고용했는데 이들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빌 스텔리는 그 책임을 철저히 자신에게 있다고 말한다. 게임 재정과 마케팅을 책임지는 자신이 게임 개발의 매력에 너무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회사 내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회사경영에 대해서 알고 있는 자신이 사업계획보다는 게임을 개발하는데 정신이 빠져서 회사 재정문제를 제대로 신경 못썼다는 것이다. 다행히 마이크로 프로즈는 세계최고의 시뮬레이션 게임 회사였다. 

결국1993년 당시 팰콘 시리즈의 성공으로 메이저 회사로 발돋움한 스펙트럼 홀로바이트에 인수되면서 마이크로 프로즈는 안정적으로 다시 게임개발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두 개의 회사가 합병되면서 회사의 규모가 너무 비대해지는 부작용이 생겼다. 

시드 마이어는 대규모 제작인원과 같이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자신의 제작 철학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소수의 인원으로 하나의 게임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었다. 또한 회사가 커지면 커질수록 시드마 이어는 게임 개발할 시간보다는 조직을 관리 하는 시간이 더 많이 들었다. 

사업계획이나 경영에도 신경을 쓰게 되니 갈수록 게임 개발 현장에 있기가 힘들었다. 그는 게임 크리에이터야 말로 세계 최고의 직업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회사의 관리자나 경영자는 시드 마이어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오직 개발 현장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로 게임을 기획하고 싶다는 열망이 갈수록 커졌다. 결국 그는 오랜 고심끝에 마이크로 프로즈를 떠나서 소수정예로 게임을 개발할 결심을 한다. 경영이나 관리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오직 현장에서 게임 개발에 전념하고자 하는 그의 고육지책이었다.


 <아하!>

스펙트럼 홀로바이트는 나중에 재정난으로 하스브로 인터랙티브에 인수당한다. 그 후 하스브로 인터랙티브는 인포 그램즈에 다시 인수된다. 인포 그램즈는 그후 사명을 아타리로 바꾸며 현재에 이른다. 현재 그 파란 만장했던 마이크로 프로즈의 스튜디오는 폐쇄되었으며 아쉽게도 더 이상 마이크로 프로즈라는 이름으로 게임은 나오지 않게 되었다.

</아하!>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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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역사상 최고의 게임 문명





계속적으로 그의 게임이 성공하게 되자 이번에 그는 더욱 대범한 시도를 하게 된다. 인간 문명의 시작과 발전을 테마로 하여서 게임을 개발할 결심을 한것이다. 이는 게임 역사상 전무후무한 시도였다. 인간의 역사와 컴퓨터 기술을 꿰뚫을 수 있는 탁월한 식견이 없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기획이었다. 그는 게임 시스템을 세우는 데만 해도 수개월을 그냥 흘려 보내야 했다. 게임 하나에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사회를 담아내려는 시도는 무모한 것처럼만 보였다. 하지만 자신이 어린 시절 즐겼던 보드 게임을 참고하면서 점차적으로 게임의 구색을 맞추어 갈 수 있었다. 


문명이라는 테마는 매력적이었지만 게임으로 만드는 데는 정말 복잡한 문제였다. 아무리 게임이 사실적이라고 해도 재미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게임 유저가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바로 게임을 진행 할 수 있도록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와 게임 플레이를 제공해야만 비소서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해내었다.


 시드 마이어의 문명은 플레이어가 그리스나 로마 같은 종족의 지도자가 되어서 문명을 발전시켜서 세계를 정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의 문명이 발전하기 위해서 게임 유저들은 역사적인 지식을 활용하여 정치, 경제, 군사, 사회, 문화, 과학, 외교분야 별로 통치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하는 유저는 다양한 분야에 식견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덕분에 게임의 교육적인 효과는 다시 한번 부각되었고 문명은 게임의 놀라운 가능성을 발견한 게임으로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이 대단한 게임은 시장에 나오자 마자 수 백만장의 판매량을 기록하였고 오늘날 그가 세계 최고의 게임 크리에이터로 인정받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된다. 


필자 본인도 당시에 문명을 했던 기억이 난다. 중독성이라는 측면에서 이 게임은 가히 최강이었다. 고등학생시절에 이 게임을 접하고 밤샘이라는 것을 처음 해봤다.  초저녁에 잠깐 게임을 시작한다고 했는데 아침에 동이 틀 때까지 게임을 했던 것이다.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도 모르고 게임에 열중졌던 그 당시를 필자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놀라운 경험으로 인해 필자는 게임의 위대함을 실감하고 게임 크리에이터가 되어서 나처럼 재미있고 흥미로운 경험을 다른 누군가에게 선사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문명이라는 게임은 재미라는 측면에서 물론 대단했지만 역사와 철학을 결합시키면서 기존의 게임에 대한 관념을 크게 변화시켰다. 그런 측면에서 문명은 심시티와 가장 많이 비교된다. 실제 심시티가 이런 부분에서는 선구자적인 게임이다. 또한 심시티가 아니었다면 문명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시드 마이어가 심시티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인정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문명은 심시티에서 발전시킨 게임의 개념을 더욱 확대 발전 시킨 게임이다. 심시티가 도시개발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문명은 인간의 역사와 사회 그리고 개인의 삶 그 자체를 모두 담아 낸 것이다.


게임의 깊이나 폭에 있어서 문명은 심시티를 훌쩍 뛰어 넘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CNN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게임으로 문명을 뽑은 것이었다. 실제 심시티를 개발한 윌라이트는 가장 존경하는 게임 기획자로 시드 마이어를 첫손에 뽑는다. 그래서 함께 심골프를 만들기도 하였으며 심즈 온라인에서도 특별히 시드 마이어를 초빙하여 공동으로 게임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특히 심즈 온라인의 경우 게임 제작 기술이 외부에 공개된다면서 모회사인 EA에서는 반대하였지만 윌 라이트는 특별히 시드  마이어를 게임개발에 참가 시켰다. 


시드 마이어가 있음으로 해서 자신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문명을 통해서 심시티를 능가했듯이 시드 마이어가 함께 라면 게임의 폭과 깊이가 커져서 더 좋은 게임으로 발전 시킬 수 있다는 것이 윌 라이트의 지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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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둘은 회사를 막상 차렸지만 자신들의 일에 확신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 둘은 원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몰래 게임을 개발했던 것이다. 이른 바 투잡스였다. 6개월 동안 낮에는 회사에 출근하고 밤에는 모여서 게임을 개발했던 것이다.

 그리고 개발 중인 게임에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자 게임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그러고 나서야 회사를 그만두고 게임 개발에 전념했다. 2주만에 레드 바론보다 훨씬 좋은 게임을 개발하겠다는 시드마이어의 장담 한마디로 시작한 마이크로 프로즈답게 그 둘은 창업을 하고 1년 정도 연구기간을 가지더니 비행 시뮬레이션 게임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스핏 파이어 에이스(Spitfire Ace)를 시작으로 솔로파이트(Solo Flight), 아크로젯(Acrojet), 스트라이크 이글등(Strike Eagle)을 연속적으로 히트시키며 마이크로 프로즈는 전쟁 게임 전문회사로 명성을 차곡차곡 쌓아 올려간다. 군사 전문가인 빌 스텔리는 게임 개발에 있어서 큰 힘이 되었다. 특히 게임의 사실성을 갖추는데 있어서 최고의 조언자였다. 빌스텔리의 방대한 군사 전문 지식들은 시드 마이어가 각종 전투 시뮬레이션 게임을 개발하는데 큰 동기를 마련해주었다. 잠수함을 소재로 한 사일런트 서비스(Silent Servic), 유럽전쟁을 소재로 한 나토 커맨더(NATO Commander) 와 크루세이드인 유럽(Crusade in Europe)은 실제와 같은 시뮬레이션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1987년 비행기와 전쟁 시뮬레이션 게임을 통해서 제작 노하우를 쌓은 그는 어린 시절의 로망인 해적들의 이야기를 게임으로 개발할 결심을 한다. 하지만 빌 스텔리는 그의 생각에 반대하였다. 전쟁과 군사물을 소재로 하여 인기를 얻고 있는 회사에서 뜬금없이 해적을 소재로 해서 게임을 만든다고 하면 사람들이 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드 마이어는 꼭 해적과 관련된 게임을 개발하고 싶었다. 그러자 빌 스텔리는 한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그 동안 시드 마이어가 F16 스트라이 이글과 같은 게임을 개발해서 유명해졌으니 그의 이름을 표지에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시드 마이어가 만들었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게임에 신뢰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판매가 쉬울 것이라는 얘기였다.

 처음 시드 마이어는 자신의 이름을 게임 제목에 붙인다는 것이 너무 쑥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해적을 소재로 게임을 개발하고 싶었기 때문에 빌 스텔리의 말에 이내 동의를 한다.



최초로 게임 타이틀에 게임 크리에이터의 이름을 사용하다.





빌 스텔리의 말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시드마이어의 해적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된 이 게임은 회사 역사상 가장 성공한 게임이 되어서 돌아 왔다. 게임 타이틀에 게임 개발자의 이름을 단 것은 이때가 최초였기 때문에 시드  마이어는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우리가 영화를 선택할 때 영화를 만든 감독을 보고 선택하듯이 이제 게임도 누가 만들었는지가 중요한 판단 잣대가 되는 시대를 연 것이다. 사실 그전까지 만해도 게임회사들은 인력이 유출 될 까봐 개발자들을 외부에 알리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시드 마이어는 절친한 동업자 빌 스텔리 덕분에 최초로 게임 타이틀에 크리에이터 이름을 써넣은 사람으로 기억이 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 사건은 게임 개발에 있어서 회사보다는 실제 게임 개발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부각시킨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였다. 

시드 마이어의 해적이 성공을 거두자 그는 더욱 새롭고 더욱 실험적인 게임으로 자신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러던 차에 심시티(Sim City)의 성공을 지켜본 그는 심시티의 건설에 다가 경영적인 요소를 삽입할 결심을 한다. 그것이 바로 철도를 소재로한 레일로드 타이쿤이었다. 철도회사를 운영하면서 철도역을 건설하거나 각종 경영,교역,주식거래를 통해서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게임이었다. 이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게임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게임이었지만 실제 게임을 하게 되면 빠져 들 수 밖에 없는 매력을 선사하였던 것이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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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 마이어는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에서 1954년에 태어난다 그는 학창시절 책과 보드게임을 특별히 좋아했다는 점을 빼고는 일반 다른 학생과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는 역사, 해적, 비행기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이것은 나중에 그가 문명, 해적, 스트라이크 이글 같은 게임을 개발하는데 있어서 큰 영감을 제공해 주었다. 

 

그가 즐긴 보드 게임으로는 경영을 소재로 한 모노폴리와 전쟁을 소재로 한 게임들 이었다. 이러한 보드 게임에 대한 기억은 그가 턴 기반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개발하는데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미시건 대학에서 역사학과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그는 제너널 인스트루먼트라는 컴퓨터 회사에 시스템 관리자로 취직한다. 여기에서 그는 편의점이나 상점에 자동화된 계산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종업원들을 교육시켜주거나 보수를 해주는 일을 했다. 물론 밤늦은 시간이면 컴퓨터로 게임을 즐기는 게임마니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게임 개발자가 될 것이라고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운명적으로 빌 스텔리(Bill Stealy)를 만나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지게 된다. 


그 둘의 모임은 우연으로 시작됐지만 정말이지 운명적인 결합이었다. 시드 마이어는 컴퓨터 관련 컨퍼런스에 참가 하기 위해서 라스베가스의 MGM 그랜드 호텔에 가게 된다. 마침 빌스텔리도 컨퍼런스를 보기 위해서 호텔에 도착했다. 컨퍼런스에서는 다른 회사 사람들과의 각종 미팅을 주선했는데 이때 빌 스텔리와 시드 마이어가 만나게 되었다.  빌 스텔리는 미 공군 대령출신의 전투기 조종사 출신 이었다. 평소 비행기에 관심이 많았던 시드 마이어는 미국 항공 대학을 졸업하고 미 공군 대령으로 펜타곤에서 근무하는 빌 스텔리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이거 저것 물어봤다. 그러는 새에 어느덧 친밀함을 느낀 시드 마이어는 오락실에 비행기를 소재로 한 슈팅게임이 나왔다면서 같이 하자고 제의 하였다.  평소부터 게임을 즐겼던 시드 마이어는 연전 연승을 하면서 놀랍고 경이로운 게임 플레이를 선보였다. 그에 반해서 빌 스텔리는 게임에서 연전 연패를 하였다. 그래도 명색이 전투기 조종사로 실전에서도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였던 그였는데 게임에서는 계속해서 패배하자 자존심이 왕창 상하였다. 그냥 옆에서 시드 마이어의 게임 플레이를 지켜보던 빌 스텔리는 어쩜 그렇게 잘 할 수 있느냐며 물어 보았다. 

그러자 시드 마이어는 적들의 움직임이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는데 그 패턴을 예상하면 쉽게 게임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때 시드 마이어는 빌 스텔리에게 게임의 인공지능이라던가 여러 가지 컴퓨터 게임 제작 방법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었다. 


시드 마이어의 지식에 빌 스텔리는 크게 감동을 하였다. 만약 시드 마이어와 같이 게임을 만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마침 시드 마이어가 자신에게 2주의 시간만 주어지면 훨씬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단번에 빌스텔리는 시드 마이어에게 게임회사를 같이 창업하자고 제의하였다. 하지만 시드 마이어는 그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였다. 그는 당시만 해도 게임은 일시적인 유행에 불과할 것이라고 봤다.  진짜 직업이 있는 자신이 회사를 그만두고서 불확실한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너무 무모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빌 스텔리는 2주 동안을 넘게 집요하고 끈질기게 시드 마이어를 설득했다. 당신의 실력이라면 게임 하나는 충분히 만들 수 있으니 자기 자신이 알아서 판매를 하겠다고 장담하였다.





마침 빌 스텔리는 미국 펜타곤에서 근무하고 미국에서 가장 인정해주는 학위중에 하나인  펜실베니아 대학의 MBA학위를 가진 사람이었다.  빌 스텔리의 인맥과 마케팅 능력이라면 게임 판매도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시드 마이어 본인은 게임개발에서만큼은 남들에게 뒤지 않을 정도로 실력이 있다고 자부하고 있던 터였다. 

결국 계속되는 빌 스텔리의 설득에 시드 마이어는 공동창업을 하기로 결정한다. 빌스텔리는 판매를 전담하고 시드 마이어는 개발을 책임진다는 합의하에 이 둘은 1500달러를 모아서 매릴랜드주의 헌트 밸리에 마이크로 프로즈(Micro Prose)을 차린다.  이 둘이 회사를 열자마자 처음 한일은 둘의 우정을 쌓게 해준 바로 그 비행기 아케이드 게임기인 레드 바론을 사무실에 설치하는 것이었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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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모든 게임 기획자들의 교과서 시드 마이어






게임 크리에이터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고 가장 재미있는 직업이에요. 그래서 저는 세계 최고의 행운아죠.


시드 마이어는 블랙앤 화이트(Black and White)시리즈의 피터 몰리뉴 그리고 울티마(Ultima) 시리즈의 리차드 게리엇과 함께 세계 3대 게임 개발자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명예의 전당에 오른 다른 크리에이터와는 다른 면이 있다. 그는 게임 역사에 획을 긋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여 천재라는 격찬을 듣는 크리에이터가 아니다. 또한 게임 역사상 최다 판매량을 기록하며 화려한 스폿라이트를 받는 크리에이터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명예의 전당은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거나 게임 역사상 가장 성공한 게임을 만든 사람의 전유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게임 크리에이터가 명예롭게 생각하는 모든 상을 다 받아왔다. 특히 미국 컴퓨터 박물관 명예의 전당에 게임 크리에이터로는 유일하게 헌액이 될 정도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의아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게임 크리에이터를 표현하기 위한 가장 좋은 수식어구는 사상 최초 혹은 사상 최대라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수식어구는 포장하고 꾸며야 기사가 잘 팔리는 언론사에서 쉽게 사용하는 언어적 유희에 불과할 뿐이다. 실제 전체 게임 산업계를 돌아보면 게임 크리에이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꾸준함과 다양함으로 평가해야 한다. 또한 그런 측면에서 보면 시드 마이어야 말로 컴퓨터 게임계의 대부로 손색이 없다. 흔히 반짝 스타라는 말이 있다. 처음 운 좋게 스타가 됐는데 금방 바닥이 들어나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스타들을 우리는 쉽게 보아 오지 않았는가? 게임계에서도 혜성처럼 나타나서 천재소리 들었던 게임 크리에이터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내 얼마 못 가서 후속작의 실패와 함께 사라지는 게임 크리에이터들을 숱하게 봤다. 그러나 그는 20년째 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꾸준함이라는 측면에서 그가 50이 넘은 현재도 게임 개발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해주어야 한다. 사실 현재 게임 크리에이터로 알려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임 개발일선에서 물러 난지 오래다. 디렉터나 프로듀서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수십 개가 넘는 프로젝트에 조금의 조언을 해주고서는 자신의 이름을 제작자 명단에 당당하게 올려놓고 있다. 단지 세계적인 명성 때문에 그들이 개발에 관여한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상 따지고 들어가면 홍보를 위한 얼굴마담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그는 정말 다르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서 게임을 개발하는 사람이다. 실제 그는 게임 개발 일선에서 모든 것을 진두 지휘하고 있으며 자신의 이름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게임 크리에이터들은 대부분 30대에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40대가 되면 하향세를 보이며 제작일선에 물러나는 패턴이 있다. 게임은 유행에 민감해서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 감각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나이가 52세가 된 현재 문명4를 내놓으며 역시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 게임 웹진의 양대 산맥인 IGN과 게임스팟(GAME SPOT)에서 내놓은 게임 플레이 부분은 10점 만점의 평점을 받는 저력을 과시했던 것이다.  사실 게임 기획자인 필자는 그런 그를 보면서 경이로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는 45세가 된 로저 클레멘스가 메이저리그 투수 중에서 방어율 왕이 된 것과 같은 얘기로 비견될 만한 일이다. 물론 게임 기획자들의 최대 소망은 나이 50이 되어서도 게임을 만들고 자녀들과 같이 자신이 만든 게임을 재미있게 플레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소망은 꿈 같은 얘기에 불과하고 그냥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제 나이 52세가 된 시드 마이어가 그것은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몸소 증명해준 것이다. 


다양함이라는 측면에서 시드 마이어를 논하기 시작한다면 이제 그에게 남는 평가는 존경심 그 자체이다. 게임 크리에이터에게는 전문 분야가 있다. 같은 3대 개발자로 평가받는 리차드 게리엇은 울티마라는 롤플레잉 게임만을 개발했고 피터 몰리뉴는 포퓰리스와 블랙앤 화이트 같은 갓 게임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하지만 그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필자가 제목 타이틀에서부터 그의 게임을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로 구속하고 있는 같지만 그것은 게임이 사실성에 바탕을 두었다는 측면에서 높이 평가하기 위한 말이다. 일반적으로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서 적들을 물리칠 때는 슈팅게임이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드 마이어가 만들면 슈팅게임의 요소가 그대로 갖춰진 상태에서 사실성을 추가하여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승화한다. 그의 해적은 액션 롤플레잉 게임의 장르로 불러도 무방하다. 



하지만 해적의 생활자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였기 때문에 시뮬레이션으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편하게 그의 게임을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분류해서 그렇지 시드 마이어의 게임들은 모두 복합장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가 하나의 장르에 구속되지 않고 다양한 게임을 개발하는 것은 과거 서태지가 랩과 메탈의 장르를 뛰어넘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성실함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게임산업에는 홍보를 위한 과장광고가 판치는 곳이다. 매주 개발중인 게임 스크린샷을 공개하면서 사상 최고의 그래픽으로 무장된 게임임을 떠들어 대거나 지금까지 없는 획기적인 게임 시스템을 채용했다면서 게임 마니아들을 흥분시키기 마련이다. 그러나 막상 게임이 발매되고 나면 매주 공개했던 그 게임 그래픽은 포토샵으로 조작한 것이 밝혀지고 기대감을 가졌던 게임 시스템은 제작 일정상 어쩔 수없이 삭제가 되었다고 변명을 한다. 이러한 게임계의 현실을 보면 그의 진가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


 그는 게임이 나오기 전까지는 홍보활동을 최대한 자제하고 게임개발에 묵묵히 전념한다. 다른 게임들은 발매 2~3년전부터 역대 최고 혹은 사상 최초로 포장하며 이제 게임사가 달라질 것이라고 떠드는 것과는 다른 행보이다. 그의 게임은 완성이 되어야 비로서 홍보가 시작된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까지 그의 게임이 언제 발매되나 기다린 적이 없었다. 발매가 되고 나서야 비로서 그의 게임을 접하게 되는 패턴이다. 자기 자신을 과장하지 않고 묵묵히 게임 개발을 하고 오직 게임 자체로 평가를 받으려는 그의 성실함을 보면 박지성을 보는 듯하다. 화려한 말발이나 치장으로 자신을 꾸미기 보다는 오직 축구장에서 자신의 진가를 증명시키는 박지성의 성실함은 시드마이어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다. 


지금까지 그의 위대함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른 게임 크리에이터에 비해서 많은 분량으로 설명을 하였다. 최초나 최고라는 수식어를 사용할 수 있었다면 편하게 설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초나 최고라는 수식어가 있어도 필자는 그를 위해서 이렇게 얘기를 풀어 갈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꾸준함, 다양함, 성실함은 게임 크리에이터가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이고 시드 마이어는 그 모든 것을 갖췄기 때문이다. 자 이제 45세의 야구 방어율 왕 로저 클레멘스의 꾸준함과 서태지의 다양함 그리고 박지성의 성실함을 고루 갖춘 시드 마이어에 대해서 알아 보도록 하자.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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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