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에 해당되는 글 31건

  1. 2017.04.29 애플이 시장을 창조하는 비법(2) 생태계를 창조하라
  2. 2017.04.21 애플이 시장을 창조하는 비법(1) 게임의 법칙을 바꿔라
  3. 2017.04.15 애플 마케팅 신화의 비밀(5) 후광 효과 마케팅
  4. 2017.04.08 애플 마케팅 신화의 비밀(4) 역발상이 빛나는 애플스토어
  5. 2017.03.26 애플 마케팅 신화의 비밀(3)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다
  6. 2017.03.20 애플 마케팅 신화의 비밀(2) 잡스와 함께 가는 브랜드 파워
  7. 2017.03.03 애플 마케팅 신화의 비밀(1) 기술에 감성을 불어넣는 명품 마케팅
  8. 2017.01.23 애플의 디자인은 어떻게 다른가?(4) 아낌없는 지원과 투자
  9. 2017.01.09 애플의 디자인은 어떻게 다른가?(3) 기술적인 디자이너와 예술적인 개발자
  10. 2016.10.06 애플의 디자인은 어떻게 다른가?(2) 디테일이 살아있는 단순함에 대한 철학
  11. 2016.09.28 애플의 디자인은 어떻게 다른가?(1) 애플 로고부터 아이팟까지
  12. 2016.08.29 애플은 왜 개발에 강한가(5) 애플이여 해적이 되어라! 세상을 바꾼다는 사명감을 고취시키다. (2)
  13. 2016.08.10 애플은 왜 개발에 강한가(4) 애플이여 해적이 되어라!
  14. 2016.07.27 애플은 왜 개발에 강한가(3) 잡스 아래 모두가 평등하다.
  15. 2016.07.18 애플은 왜 개발에 강한가? (2) 개발자 중심의 기업 문화
  16. 2016.07.11 애플의 개발 방식(1) 철저히 추구되는 소수정예
  17. 2016.07.07 애플처럼 창조한다는것(14) 통합과 조합의 힘
  18. 2016.07.01 궁극의 최종 사용자 스티브 잡스의 독재 (2)
  19. 2016.06.27 애플의 창조성은 무엇이 다른가? 소프트웨어 중심의 사고 방식
  20. 2016.06.22 애플, 위대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Think Different (2)
  21. 2016.06.16 아이폰이라는 이름의 혁명
  22. 2016.06.13 애플의 존재를 설명해주는 아이팟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23. 2016.06.09 돌아온 스티브잡스, 애플의 르네상스를 열다
  24. 2016.06.02 위대한 독재자의 귀환, 스티브 잡스 2.0의 시대
  25. 2016.05.30 위기속의 길 아멜리오 스티브 잡스에게 SOS를 치다.
  26. 2016.05.09 애플처럼창조한다는것(5) 존 스컬리의 시대
  27. 2016.05.02 스티브잡스의 스승 마이크 마쿨라
  28. 2016.04.25 포기를 몰랐던 스티브 잡스의 열정
  29. 2016.04.18 애플 I 컴퓨터의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2)
  30. 2016.04.12 스티브잡스가 워즈니악을 만났을 때





애플과 스티브 잡스는 미래를 위해 음악 산업을 구했습니다. 우리는 광고를 하지 않습니다만 애플의 캠페인에는 동참합니다.


- 록 밴드 U2의 드러머 래리 뮬런, December 23, 2004 <The Irish Times>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30)


세상은 생태계를 창조하는 기업과 이미 창조된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기업,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생태계를 창조하는 기업은 마치 창조주처럼 생태계를 통치하며 세금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기업이라는 먹이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를 차지할 수 있다. 애플의 역사를 볼 때 놀라운 것은 혼자서 모든 것을 독식한다는 회사의 이미지와는 달리 생태계를 창조하기 위해 탁월한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다.


애플2 컴퓨터 이전만 해도 소프트웨어 산업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프트웨어만으로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최초의 스프트레드시트 프로그램인 비지칼크의 등장 덕분이었다. 비지칼크가 애플2로 처음 등장한 배경은 댄 필스트라에게 스티브 잡스가 할인가로 애플2 컴퓨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하버드대학교 비즈니스 스쿨에서 공부하던 댄 브리클린은 컴퓨터를 이용한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는, 댄 필스트라에게 애플2 컴퓨터를 빌린다. 그리고 스티브 워즈니악이 작성한 베이직으로 비지칼크의 데모를 만든 후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한다. 나중에는 애플의 마이크 마큘라가 여러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개발된 비지칼크는 킬러 애플리케이션이라는 명성을 얻으며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비지칼크 이후 애플2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확실한 주도권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때 애플은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팔게 한다는 절대불변의 교훈을 얻게 된다.


하지만 리사를 개발할 때 애플은 소프트웨어마저도 혼자서 독식하려는 야망을 가졌다. 애플 내의 소프트웨어 개발팀은 소프트웨어가 시스템을 판다.’는 표어까지 만들면서 열심히 소프트웨어를 만들었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외부 소프트웨어 개발사의 도움 없이 혼자서 응용프로그램 을 만들어서는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리사의 끔찍한 실수에는 비싼 가격 등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소프트웨어의 부재 역시 한몫을 했다.


이런 경험을 한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 중점을 둔 부분은 소프트웨어 업체의 협력을 얻는 것이었다. 소프트웨어 업체와 상생해야만 매킨토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직접 개발사를 방문해서 매킨토시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도록 적극 설득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애플이 만들어 놓은 애플2 컴퓨터를 통해 많은 소프트웨어를 판매했고, 덕분에 높은 수익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가 협력관계를 맺기 위해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직접 찾아갔을 때만 해도 여전히 애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벤처회사에 불과했다. 스티브 잡스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매킨토시를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에 합의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의 도움으로 개발력을 증대시킬 수 있었다


1985년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장 많이 돈을 번 플랫폼이 매킨토시였을 만큼 두 회사는 서로 윈윈하며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포토샵으로 유명한 어도비와 전자출판의 강자 쿽(Quark) 같은 유명 소프트웨어 업체도 애플과의 협력을 통해서 급성장을 이룬 회사들이다.



애플은 매킨토시 출시 이후 아예 에반젤리스트(Evangelist)를 두고서 개발사들을 적극적으로 자사 플랫폼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했다. 에반젤리스트는 회사의 정책과 기술을 외부에 알리는 전도사들을 뜻하는데, 이들은 일반 대중에게 애플 브랜드를 알리는 일도 했지만 개발사들과의 관계증진을 위해서 힘을 쏟았다. 에반젤리스트는 직접 개발사를 방문해서 매킨토시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설득하였고, 나중에는 회사의 개발정보들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공유하였다. 매년 6월 새로운 아이폰을 공개해서 더욱 유명해진 WWDC도 사실은 World Wide Developers Conference의 약자로 전 세계 개발자들을 모아서 서로의 기술을 공개하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 애플이 1983년부터 개최한 이벤트다.


1995년 애플 내부에는 외부 개발자 관리팀이 있었는데 300명의 조직이 7,500만 달러의 예산으로 전 세계에 퍼진 12,000개의 독립적인 개발자들을 서포트해 주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매킨토시 판매량이 급락하자 개발사들 역시 애플을 외면한다. 결국 애플은 소프트웨어가 없으니 하드웨어가 더욱 팔리지 않는 악순환에 빠졌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돌아와서 한 일 역시 외부 소프트웨어 업체와의 관계회복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어도비의 창업자 존 워녹과 쿽의 최고기술책임자인 톰 길에게 전화를 해서 어떻게 하면 애플이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물었고, 함께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결국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가 좌우하는 시장이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팔게 하는 만큼 애플 역시 소프트웨어 개발에 힘을 쓴다. 하지만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애플이 자체적으로 몇 개의 응용프로그램은 만들지만 세상 모든 사람을 충족시킬 정도의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드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태계를 창조해서 소프트웨어 업체로부터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애플이 생태계를 창조하여 성장시키는 모습은 아이폰의 앱스토어에서 극대화된다. 애플이 공개한 개발도구를 이용하면 누구나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으며, 유통비용에 대한 부담 없이 전 세계인을 상대로 프로그램을 팔 수 있다는 성공 모델을 만들어낸 것이다. 앱스토어는 개발자들에게 꿈의 엘도라도가 되었다. 그래서 서부개척 시대처럼 개발자들의 골드러시 열풍이 일어났다. 그리고 실제로 수많은 부자들이 탄생했다.


에단 니콜라스라는 30살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두 아이를 가진 가장이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살고 있는 집까지 팔아야 했다. 그는 출근하기 전과 퇴근 후에 아이슛(ishoot)이라는 게임을 개발했다. 그리고 이 게임을 앱스토어에 올리자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한 달 동안 60만 달러를 벌었고, 어느 날은 다운로드 수가 17,000회에 이르면서 하루 만에 37,000달러까지 벌었다. 그는 아예 다니고 있던 직장인 선마이크로시스템즈를 그만두고 회사를 창업했다. 그는 집에서 아이들을 보면서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애플 앱스토어의 성공에 대해서 가장 놀란 사람은 프로그램을 제작한 개발자 자신이다. 페이크 콜은 회의라든가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곳에서 가짜로 전화가 온 것처럼 꾸며 그 자리를 피하게 만들어주는 단순한 프로그램이다. 이 간단한 프로그램을 앱스토어에 등록했는데 무려 25만 건의 다운로드가 기록되었고, 개발자는 173,200달러의 수익을 얻었다고 한다. 이렇듯 기대도 못한 높은 수입에 개발자도 놀라는 공간이 바로 앱스토어다.


앱스토어의 위대함은 이른바 연약한 포유류도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PC시장은 공룡들의 각축전이고, 개인의 능력보다는 회사의 기득권에 성패가 달려 있다. 이제 뛰어난 기술과 제품으로 승부를 보는 시대가 아니라 시장점유율을 확보한 회사의 영향력 아래서 승자와 패자가 결정 나는 상태라는 말이다. 게임만 해도 EA나 액티비전 같은 회사가 다 장악하였고, 사무용 프로그램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공룡이 존재하는 이상 소규모 회사들이 설 땅은 없다. 개발자의 삶도 결국 자신이 소속한 회사에 의해서 결정 난다. 개발자로서 뭔가를 새롭게 만들고 싶어도 그런 모험마저 허용되지 않는 게 PC시장이다. 이미 공룡들만의 생태계가 된 PC시장과는 다르게 앱스토어는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로 연약한 포유류가 억대의 돈을 벌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애플은 아이팟과 뮤직스토어를 통해 음악 생태계를 구축했고, 아이폰과 앱스토어로 애플리케이션 생태계를 창조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패드를 통해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신문과 잡지 등을 한곳에 모아 미디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전통적인 언론 미디어들은 IT기업들에게 일종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자신들의 영광스런 날들이 인터넷의 등장으로 종말을 고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IT기업들은 언론사들의 날카로운 비판을 받기 쉽고, 협력을 얻기가 힘들다.


아이패드는 달랐다. IT기업을 마땅찮게 여기는 인물로 세계적인 언론 재벌인 루퍼트 머독은 아이패드는 뉴스를 위한 최고의 플랫폼이라며 극찬했다. 언론사들은 자신들의 구세주로 아이패드를 서슴없이 지목하였고, 개발단계부터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이는 애플이 아이팟으로 음반사를, 그리고 아이폰으로 컴퓨터 개발자들에게 돈을 벌게 해주었듯이 아이패드가 자신들을 위해 탁월한 능력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 역시 이에 화답하듯 전통적 미디어업체들에게 직접 아이패드에 대해 설명하고, 유료화 모델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아이패드는 등장한 지 3개월도 안 되어서 앱스토어처럼 온갖 성공신화를 탄생시키고 있다


미국의 유명 IT 전문잡지인 <와이어드>20106월호를 아이패드용으로 발행했는데, 4달러 99센트의 유료임에도 10만 부나 판매되었다. 종이잡지가 74,000부 판매된 것을 감안하면 잡지사로서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발굴한 셈이다. 또한 Theodore W. Gray는 자신이 운영하는 periodictable.com의 자료들을 모아서 <The Element>라는 전자책을 아이패드로 발행했다. 앱스토어에 <The Element>를 발행한 지 단 하루 만에 periodictable.com을 운영하면서 5년 동안 구글 광고로 번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앞으로의 기업 역시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생태계를 창조하는 기업과 이미 존재하는 생태계 안에서 살아가는 기업 말이다. 생태계를 창조하는 기업은 바다처럼 커질 것이지만 생태계를 창조하지 못하면서 덩치만 큰 공룡 같은 기업은 서서히 멸종할 것이다. 생태계를 새로 만들기는 정말 어렵지만, 생태계를 구축해서 규모의 경제를 이끌 수 있다면 그 생태계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생태계 안에서라면 신처럼 권력을 부리면서 각종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앱스토어에 올려진 프로그램이 판매될 때마다 애플은 세금처럼 30%씩 수익을 가져가게 된다. 애플은 하드웨어를 판매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태계 안에서 벌어진 경제행위에 대해서 수수료를 부과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으니, 그 어떤 기업보다도 탄탄한 자금흐름을 이어갈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윈도우라는 생태계를 창조했고, 그 세금으로 돈을 버는 회사다. 델과 HP 같은 컴퓨터 회사에 윈도우 라이선스를 넘기면 델과 HP의 컴퓨터가 한 대씩 팔릴 때마다 자동으로 돈을 버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구글은 마이크로소프트와 다르게 무료로 소프트웨어를 제공하지만 광고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소니가 구글 TV로 협력하고 있고, 수많은 휴대폰 제조사들이 구글의 안드로이드 밑으로 들어가고 있다.


생태계 창조자는 생태계의 지배자가 되어서 생태계에서 발생하는 경제행위에 대해서 일종의 세금을 부과할 수 있기 때문에 생태계 안의 기업이 커질수록 자연히 생태계 창조자는 더욱 거대해지는 선순환이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는 단순히 공룡처럼 커지는 것이 아니라 바다처럼 어마어마한 규모로 커지게 된다. 생태계를 창조하는 기업은 제국이 될 수 있지만, 생태계가 없는 기업은 제국의 지배를 받는 소왕국에 불과할 뿐이다. 애플에게 경쟁을 외칠 수 있는 회사란 뮤직스토어나 앱스토어 같은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할 수 있는 회사에게나 겨우 허락된 일이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그리고 저의 밥줄인 모바일 게임 러브아이돌 주식회사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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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혁명적인 제품이 나오면 모든 것을 뒤바꿔 버립니다. 애플은 이런 일을 잘 해왔죠. 만약에 여러분이 그런 일을 한 번이라도 하면 당신은 정말 대단한 행운아일 겁니다. 그런 면에서 애플은 운이 좋았습니다. 애플은 세상을 바꾸는 혁명적인 제품을 여러 번 소개할 수 있었거든요.


‐ 스티브 잡스, 2007년 맥 월드 연설 중에서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29)


애플은 이른바 우리가 정석 혹은 상식이라고까지 생각하던 게임의 법칙들을 바꾼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다. 실제로 애플의 행보를 보면 이른바 비즈니스의 정석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걸어왔음을 알 수 있다. 애플 부사장인 팀 쿡은 애플이 ‘안티 비즈니스 스쿨’이라고 당당히 말할 정도다. 이를 테면 ‘선택과 집중’은 기업경영의 금과옥조처럼 통하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그래서 기업은 하나의 전문분야에서 한 우물만 파야 한다는 것이 비즈니스의 정석으로 통했다. 


과거 인텔은 메모리와 마이크로프로세서 두 가지 사업을 병행했다. 일본 기업의 대공세에 의해서 인텔이 적자에 시달리게 되자 경영진은 메모리 사업을 철수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에 올인한다.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인텔은 그 후 기업경영의 선택과 집중의 좋은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게임이라는 우물만 파는 닌텐도와 휴대폰 사업에 전념하는 노키아 역시 기업은 잘하는 한 가지 분야에만 주력해야 한다는 성공 모델로 꼽힌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소프트웨어 사업에 전력을 쏟아서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애플과 IBM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이 두 개의 사업 분야를 병행하고 있을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오직 소프트웨어 사업만으로 승부를 걸었다. 당시만 해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통합된 개념으로 이해되었으나 마이크로소프트는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를 분리해서 오직 소프트웨어 경쟁력 향상에 매진하여 애플과 IBM을 물리치고 세계 최고의 IT기업으로 등극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확실히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게임의 규칙을 바꿀 줄 아는 게임 체인저다. 


애플은 아이팟 이후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들어 놓은 게임의 규칙을 새롭게 쓰고 있다. 아이팟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통합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튠스와 같은 음악 서비스까지 결합한 신개념 모델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과거의 기준으로 보면 참으로 무모한 사업모델이었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아이팟은 과거 매킨토시의 재현이 될 것이라면서 곧 무너질 것처럼 예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로 빌 게이츠는 2005년 5월 애플의 성공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며, 매킨토시도 초반에는 큰 인기를 끌었지만 얼마 가지 않았다며, 아이팟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얘기했다. 



MP3 플레이어 시장에 본격 진출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PC 분야에서 펼쳤던 전략을 그대로 사용했다. 여러 하드웨어 업체들이 자사의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MP3를 만들게 했다. 또한 아이튠스 뮤직스토어 서비스와 대항하기 위해서 다른 음악 서비스 업체와도 제휴하였다. 애플은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인터넷 뮤직 서비스를 혼자서 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각 전문 분야별로 여러 회사와 연합군을 구성한 것이다. 제휴업체를 늘리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세가 급격히 불어나자 아이팟이 매킨토시처럼 될 것이라는 예측도 늘어났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그야말로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버렸다. 그러자 기존의 연합군을 해체하더니 직접 준(Zune)을 제작했다. 회사 이름에 소프트가 들어갈 정도로 소프트웨어 중심임을 표명하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하드웨어를 직접 제작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이는 게임의 법칙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한 우물만 파는 모델이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음을 깨닫고 결국 애플식의 게임의 법칙을 받아들인 것이다.


애플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일거에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낼 줄 아는 회사다. 게임 체인저인 애플은 단순한 혁신이 아니라 혁명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애플이 무엇인가를 시도할 때마다 항상 부정적인 의견이 뒤따랐다. 현재를 지배하는 게임의 법칙이 미래에도 계속 적용될 것이라는 착각 때문이다. 어제까지는 승리한 게임의 법칙이라도, 다음날에는 게임 체인저에 의해 일거에 뒤집어질 수 있다. 그래서 애플의 일거수일투족은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이 하나의 성공을 만들어내면 세상을 지배하는 게임의 법칙이 또 그만큼 변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아이폰이 좋은 본보기가 된다. 2009년 11월 아이폰이 정식으로 출시되자 아이폰 판매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았다. 고작 10만 대에서 20만 대 정도 판매될 것이라 예상할 정도였다. 실패의 근거는 스마트폰 시장이 1%밖에 안 되고, 국산 휴대폰 점유율은 90%가 넘는다는 것이었다. 외국산 휴대폰의 무덤이며, 스마트폰 시장은 너무 작으니 아이폰 역시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이는 게임 체인저로서의 애플의 역량을 무시한 것이었다. 아이폰은 한국에서 출시된 후 40만 대를 판매하더니 6개월 만에 70만 대를 돌파했다. 아이폰이 처음 잘 팔릴 때는 대기수요가 한 번에 몰린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판매는 곧 줄어들 것이라고 장담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아이폰이 대세라고 보고 있다. 


아이폰의 성공과 함께 한국의 휴대폰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1%밖에 안 되는 시장 점유율로 찬밥신세였던 스마트폰 시장에 이동통신업체와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회사의 사운을 걸고 전력을 쏟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무선랜은 이동통신업체로서는 반갑지 않은 기능이다. 무선랜으로 인터넷을 하면 이동통신업체의 망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통신요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원래 있던 무선랜 기능을 정작 휴대폰 모델이 발매될 때는 제거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아이폰 이후 이제는 일반 폰에도 와이파이가 달릴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다. 이동통신업체는 회사의 사활이 와이파이에 있다는 생각으로 너 나 할 것 없이 와이파이 확충을 위한 경쟁에 돌입할 정도로 무선랜에 대한 태도 자체가 돌변했다.


아이폰은 단순히 이동통신 산업만 바꾸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인터넷 업체들은 모바일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으며, 기업들은 스마트폰을 업무에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언론, 출판, 금융, 유통업체들도 아이폰이 변화시킨 환경에 적응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현재 아이폰은 단순히 휴대폰 하나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라이프스타일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이런 변화가 외국에서도 신기했는지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는 ‘The iPhoning of Korea’라는 이름으로 아이폰이 어떻게 한국 사회를 변화시켰는지를 보도할 정도였다. 


게임 체인저로서 아이폰이 만들어낸 가장 놀라운 모습은 액티브 엑스(Active X) 일색인 한국 인터넷의 변화다. 액티브 엑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자적인 기술로 다른 웹 브라우저에서는 호환되지 않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웹 브라우저인 익스플로러에서만 완벽하게 작동된다. 한국은 윈도우가 시장을 장악한 영향도 있지만 유독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이 높다. 익스플로러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62.7%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97%나 된다. 한국에서 유독 시장점유율이 높은 것은 액티브 엑스 덕분이다. 한국에서 액티브 엑스 없이 인터넷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문제는 액티브 엑스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자기술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차원에서 전자상거래에 필수적인 공인인증서를 법으로 규정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브 엑스를 사용하도록 강제하였다는 점이다. 


국가가 이렇게 특정기업의 기술을 강제로 사용하도록 하는 정책은 세계 흐름과는 맞지 않는 것으로, 이 때문에 한국의 인터넷 환경을 퇴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브라우저인 익스플로러가 아니면 아예 인터넷을 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에, 다른 다양한 기술로 무장한 플랫폼이 설 자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폰이 실패할 중요한 근거 중 하나가 액티브 엑스였다. 액티브 엑스 없이 온전한 웹 서핑이 어려운 한국에서 아이폰에 탑재된 브라우저인 사파리로는 인터넷을 사용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폰이 등장하자 인터넷서비스업체들이 모바일 전용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아이폰으로도 편안하게 웹을 서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꾸고 있다. 또한 정부에서도 액티브 엑스 없이 아이폰에서도 인터넷 상거래가 가능하도록 공인인증서 제도를 바꾸기로 하는 등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역시 게임 체인저로서의 아이폰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애플은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게임의 법칙을 바꾸기도 한다. 애플은 처음부터 아이폰을 서비스할 이동통신업체를 직접 선택하려 했다. 이는 당시로는 정말 상상도 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이동통신업체와 휴대폰 업체의 관계는 슈퍼갑과 을의 관계였기 때문이다. 휴대폰 판매량은 이동통신업체가 밀어주느냐 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시장이었다. 그래서 휴대폰 업체들은 이동통신업체가 요구하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이런 관계 때문에 휴대폰 제조사와 이동통신업체를 농노로 표현하는 언론까지 있을 정도였다. 이동통신업체가 원하는 휴대폰이란 위대한 제품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동통신업체와 2년 정도 약정을 하는 고객에게 무료로 제공할 수 있는 정도의 무난한 휴대폰이면 충분했다. 그러다 보니 이동통신업체에서 보조금을 받고 소비자에게 무료로 팔 수 있는 정도의 그저 그런 수준의 휴대폰이 시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이동통신업체의 입김을 배제하고, 철저히 애플의 생각으로 아이폰을 개발하려고 했다. 이동통신업체와 협의 없이 제품을 만들겠다는 것도 당시로는 놀라운 발상이었지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이동통신업체의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콘텐츠를 소비자들에게 직접 팔아야 한다고까지 생각했다. 휴대폰을 만드는 업체가 이동통신사를 거치지 않고 콘텐츠를 직접 판매하겠다는 이런 계획 역시 당시에는 전례가 없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동통신사는 통신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휴대폰의 기능에서부터 판매와 서비스 방식까지 모든 것을 통제하던 현실에서 애플의 계획은 그야말로 무모함, 그 자체였다. 


실제로 미국 1위의 이동통신업체인 버라이존에 아이폰을 제안하자 그 즉시 거절당했다. 하지만 애플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게임의 법칙을 바꾸려 했다. 만약 이동통신사로부터 자신들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직접 이동통신사를 세울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AT&T는 5년 동안 아이폰 독점판매권을 갖는 대신 그 이외의 모든 통제권을 애플이 가져가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AT&T가 버라이존에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회사의 고객을 뺏어 와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AT&T는 애플의 아이폰이라면 다른 업체의 고객을 불러 모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내린 결정이었지만, 사실 매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동통신업체의 절대권력 중 상당 부분이 휴대폰 업체에게 이양된 날이기 때문이다. 아이폰 이후 이동통신업체는 자신들의 권력을 나누어 주면서까지 위대한 휴대폰을 모셔 오기 위한 경쟁을 펼치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그야말로 게임의 법칙이 완전히 바뀌었고, 혁명의 시작에는 역시 애플이 있었다. 


게임의 법칙을 애플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는 모습은 최근 벌어지는 플래시와의 전쟁에서도 잘 드러난다. 애플은 플래시가 자원을 많이 사용한다는 이유로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고 있다. 플래시의 제작사 어도비가 강력하게 반발했으며, 이를 비난하는 여론도 커지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직접 장문의 글을 통해서 애플이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는 이유를 밝혀야 했다. 그는 “플래시는 PC와 마우스 시대에 맞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모바일 시대에 필요한 저전력과 터치 인터페이스 그리고 개방형 웹 표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므로 애플은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기술업계에서는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다. 


애플 입장에서 보면 플래시는 매우 껄끄러운 존재다. 플래시는 윈도우 PC와 매킨토시에서 동시에 돌아가는 멀티 플랫폼을 지원한다. 그러나 사실 윈도우 PC에서 훨씬 잘 돌아간다. 이 때문에 아이폰에서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하자 매킨토시 사용자들은 오히려 잘 됐다고 환영할 정도였다. 그동안 매킨토시 이용자들은 윈도우 PC에 비해 형편없이 돌아가는 플래시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도비는 시장 점유율 90%가 넘는 윈도우 PC에 전력을 쏟았고, 점유율 5% 내외에 불과한 매킨토시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애플에게도 악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은 윈도우 PC에서 쌩쌩 잘 돌아가는 플래시가 매킨토시에서 잘 돌아가지 않으면, 애플의 컴퓨터 기술력이 떨어져서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전에도 이런 비슷한 악몽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 MS 워드의 경우 윈도우에서 문서 파일을 불러오면 즉시 열렸지만 매킨토시에서는 30초나 걸렸다. 매킨토시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다. 매킨토시 성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때야말로 애플의 암흑기가 시작되던 시기였다. (완전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는 MS 오피스가 아예 매킨토시용으로는 나오지도 않았었다.) 결국 애플이 너무 많은 부분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의존한 것이 화근이었다. 지금도 스티브 발머는 온전한 MS 오피스를 쓰고 싶다면 매킨토시가 아니라 윈도우를 쓰라고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다. 그런데 플래시가 같은 악몽을 재현하려 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에 의하면 매킨토시에서 일어나는 충돌 문제의 가장 빈번한 원인은 플래시 때문이라고 한다. 이 문제를 어도비에 지적했지만 별다른 대처를 해주지 않고 있다며 분노를 표했다. 


정작 어도비는 스티브 잡스의 불만에 대해 애플로서는 가장 치욕스러우면서도 절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답변을 내놓았다. 어도비 CEO인 산타누 나라옌은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매킨토시에서 플래시 때문에 충돌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플래시가 매킨토시 운영체제인 맥 OSX의 문제라고 밝혔다. 애플 입장에서 보면 정말 치명적인 일이다. 이는 맥 OSX가 윈도우보다 떨어진다고 낙인을 찍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도비는 10여 년 전부터 매킨토시 플랫폼에 소홀해 왔다. 어도비의 대표적인 소프트웨어인 포토샵만 해도 맥 OSX 버전이 윈도우보다 열등하다. 과거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와 비슷한 상황이 재현된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도움 덕분에 성공시대를 연 어도비가 정작 애플을 외면하자 스티브 잡스는 충격을 받았고, 그가 소프트웨어에 전력을 쏟는 계기가 될 정도였다. 이런 배경 때문에 애플이 플래시를 거부하는 이유가 사실은 과거에 대한 복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어도비는 매킨토시보다 윈도우에 정성을 쏟아왔다. 물론 돈을 벌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고객이 월등히 많은 곳에 회사의 자원을 투입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애플이 그런 사정까지는 봐줄 필요가 있을까? 애플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플랫폼을 보호해야 한다. 플래시는 애플의 명성에 타격을 주고 있으며, 플래시의 인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더 큰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어도비는 윈도우에 주력하는 회사이며, 이는 제품의 질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만약에 플래시를 기준으로 해서 윈도우와 맥 OSX을 평가하게 된다면 맥 OSX가 완패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 입장에서 보면 플래시가 플랫폼을 선택하는 기준은커녕 평가 대상도 될 수 없도록 플래시의 입지를 최소화시킬 필요가 있다. 


스티브 잡스의 공개 메일을 보면 애플의 이런 의도가 잘 드러난다. 스티브 잡스는 여섯 가지 이유를 들어서 플래시 거부 사유를 밝혔는데, 마지막 여섯 번째에 가장 중요한 이유를 말했다. 여섯 번째 항목에서 스티브 잡스는 외부의 소프트웨어 회사가 개발툴을 만들 경우 플랫폼의 기술과 성능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말한다. 회사에서 플랫폼을 향상시켜도, 외부 소프트웨어 업체에서 이를 적용하여 업그레이드해 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 어도비의 플래시는 윈도우와 맥 OSX 두 개의 운영체제를 지원하는 멀티 플랫폼이지만, 맥 OSX의 최신 기술이 등장한 지 10년이 지난 후에야 이를 접목할 정도로 맥 OSX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어도비의 플래시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처럼 강력한 힘을 가지는 소프트웨어가 된다면 애플에게 치명타가 될 것이 자명하다. 고로 애플의 입장에서는 플랫폼을 사수하기 위해서라도 플래시를 견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애플이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으면 애플에 대한 비난 여론이 흐를 수밖에 없고, 어도비 역시 애플이 벽을 만들고 있다면서 폐쇄성을 집중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시장에서 이익을 얻기 위한 싸움이라도 거기에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특히 IT업계에서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애플은 표준 기술인 HTML5를 들고 나오며 오히려 플래시가 폐쇄적이라고 역공격을 펼치고 있다. 어도비 입장에서는 자사의 기술을 애플에서 지원해 주지 않으니 애플이 폐쇄적이라고 하는데, 정작 애플은 웹이 특정회사의 기술로 통제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플래시야말로 폐쇄형이라고 지적한다. 사실 웹은 주인이 없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업체 간 합의를 통한 공개 표준이 중요한 곳이다. 플래시가 편리해서 사용하기는 하지만 모든 기술을 어도비 혼자서 통제하는 폐쇄형 기술인 것도 사실이다. 


애플은 플래시를 교체하기 위한 기술로 공개개방형 표준기술인 HTML5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문제는 HTML5가 아직 확정된 기술이 아니며, 언제 대중화될지 모르는 미완의 기술이라는 점이다. HTML5의 미래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애플이 HTML5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나서자 어느덧 IT업계의 화두는 HTML5가 되었고, IT기업이 너도나도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2010년 6월 스트리밍 미디어(Streaming Media)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1,147개의 미디어 사이트 중 49%에 이르는 업체가 앞으로 HTML5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많은 업체들이 HTML5를 지원하는 것은 아이패드의 성공 덕분이다. 아이패드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플래시가 아니라 HTML5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아이패드와 아이폰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HTML5 기술도 더 빨리 보급될 것이다. 


애플은 자사의 홈페이지에 HTML5 기술을 이용하면 얼마나 멋진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쇼 케이스까지 만들어 HTML5 기술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그들이 게임의 법칙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잘 알 수 있다.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음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듣는 한편 경쟁업체에게는 폐쇄적이라는 격렬한 비난을 들어야 했지만, 이런 논란 속에 HTML5라는 표준기술을 제시하면서 업계 전체를 애플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HTML5의 보급은 그 자체로 인터넷을 지배하는 게임의 법칙을 바꾸는 일이다. 업계의 방향을 자사에게 유리하도록 게임의 법칙을 바꿀 수 있는 애플의 능력, 그것이 바로 애플이 혁신을 넘어 혁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그리고 저의 밥줄인 모바일 게임 러브아이돌 주식회사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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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팟 사업에는 분명한 후광 효과가 있었습니다. 애플 제품을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아이팟을 구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이팟을 사용하고는 이렇게 말해요. “와우! 애플의 다른 제품들은 어떨까?” 그들은 애플이 만든 제품에 훨씬 호의적으로 변하는 거죠. 나는 후광 효과가 아이폰에서도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구입하는 애플 제품이 아이폰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 스티브 잡스, 2007년 <월스트리트 저널>





시장조사 전문 업체인 Frurry는 2009년 11월 매우 흥미로운 보고서를 하나 공개한다. 2009년 9월을 기준으로 iOS 기기들의 총판매량은 5,800만 대인데, 이중 아이팟 터치의 비중이 40%가 넘어선다는 것이었다. 흔히 iOS라고 하면 아이폰만 떠올리는데 휴대폰 기능이 빠진 아이팟 터치 역시 아이폰과 동일한 플랫폼으로 작동한다. Frurry는 아이팟 터치가 애플이 전 세대를 아우르는 제품 라인업을 구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맥도날드가 장난감을 선물하는 해피밀 마케팅을 통해 아이들을 매장으로 유인한 후 아예 맥도날드의 고객으로 만든 것처럼 아이팟 터치가 상대적으로 어린 고객들을 애플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팟 터치를 구입한 어린 고객들은 애플의 인터넷 서비스인 아이튠스 계정을 만들게 되고, 그 후 음악과 애플리케이션을 구입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팟 터치의 운영체제 iOS에 익숙해지는데, 그들이 자라서 스마트폰을 선택할 때는 자신들에게 익숙한 아이폰을 구입하게 된다는 것이 Frurry의 주장이다. 또 애플에 대한 충성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iOS를 탑재한 아이폰의 전체 플랫폼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애플과 경쟁하는 업체들은 이 점을 깨달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이팟 터치를 사용한 10대 초중반의 아이가 자라서, 휴대폰을 구입할 나이가 되면 아이폰을 선택하게 된다는 Frurry의 이론을 전 세대별 마케팅에 적용해 본다면 애플은 매우 치밀하게 제품 라인업을 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고객들은 나중에 맥으로도 연결될 것이다. iOS는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즉 아이폰을 구입한 사람은 맥 OS로 자연스럽게 관심을 옮겨간다. 한국의 경우 2009년 1분기의 맥 판매량에 비해서, 아이폰이 발매된 2010년 1분기의 맥 판매량이 200%나 늘어났다고 한다. 2010년 2분기의 맥 판매량은 역대 최고기록인 347만 대였는데 이는 작년 동기 대비 33%나 증가한 수치다. 



주목해야 할 것은 애플 노트북이 최근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트북은 아무래도 밖으로 들고 다니는 것이기 때문에 성능과 기술뿐만 아니라 디자인도 선택 요소가 된다. 디자인이 뛰어난 애플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 애플은 1,000달러가 넘는 프리미엄 노트북 시장에서는 90%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애플 노트북은 대학생들에게 특히 인기 있다. 애플은 이미 2007년 미국 고등교육 노트북 시장에서 델을 누르고, 1위를 기록하였다. 애플과 델은 각각 33%와 32%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2008년 시장조사기관인 스튜던트 모니터(Student Monitor)가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1년 안에 사고 싶은 노트북으로 애플 제품을 선택한 사람이 무려 43%로 1위를 기록했는데, 2위인 델이 22%임을 고려하면 대학생들 사이에서 애플 노트북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2007년 조사에서는 애플 노트북을 구입하고 싶다는 응답이 17%였다. 2007년에 발매된 아이폰의 인기가 노트북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애플의 또 다른 핵심제품인 데스크톱 기반의 맥은 전통적으로 디자이너와 개발자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제품이다. 



이제 애플의 제품 라인업을 세대별로 구성해 보자. 10대 초중반의 소비자를 아이팟 터치를 통해 애플의 고객으로 만들 수 있다면, 애플의 운영체제와 인터페이스에 익숙해진 고객이 전화를 가질 나이가 될 때면 자연스럽게 아이폰으로 유도할 수 있게 된다. 이 고객이 대학에 가면 애플의 맥 노트북을 쓰고, 직업을 가지게 되면 데스크톱 기반의 맥으로 유인할 수 있는 라인업이다. 



잘 살펴보면 10대 이전과 50대 이후의 중장년층에 맞는 제품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애플이 전 세대를 아우르는 라인업을 갖추기 위해서는 아이패드의 탄생이 필연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팟 터치나 아이폰 같은 기기는 화면이 작기 때문에 미취학 아동이나 시력이 좋지 않은 중장년층이 사용하기는 어렵다. 화면이 더 커서 조작하기 쉽고, 눈으로 보기에도 편한 새로운 기기가 필요했고, 결국 아이패드가 추가됨으로써 애플은 전 세대와 연령대를 아우르는 완벽한 제품 라인업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아이폰에서 화면만 커진 기기’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긴 했지만 화면이 커짐으로써 아이패드는 기존의 애플 제품이 유인하지 못한 고객들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실제로 아이패드는 미취학 아동에게 장난감과 교육용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유튜브를 보면 아이패드를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동영상들이 넘쳐난다. 특히 19개월 된 마키가 아이패드를 가지고 노는 동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유아들이 아이패드의 애플리케이션을 조작하며 즐거워하는 것이 인상적인데,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런 모습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한다. 한 번 익숙해진 인터페이스를 다른 것으로 바꾸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의 심리다. 아이가 말을 배우는 것처럼 어려서부터 아이패드로 IT기기를 배운 아이가 자라서도 애플의 제품을 선호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실현가능한 시나리오다. 아이패드는 4~5살 아이뿐만 아니라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도 공략할 수 있는 상품이다. IT전문 블로그 테크 크런치는 아이패드를 컴퓨터를 좋아하지 않는 컴퓨터로 규정하면서, 엄마들의 컴퓨터도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쉬워서 기계를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패드가 새롭게 창출할 수 있는 고객층을 고려하면 애플은 아이팟 터치, 아이폰, 맥 노트북, 맥 데스크톱을 통해 요람에서 무덤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완벽한 라인업을 구축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제품들은 서로의 후광 효과를 통해서 상품판매에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다. 사실 후광 효과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잘 나가는 아이팟과 아이폰에 비해 맥은 아직까지 시장점유율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패드의 판매량을 보면 확실히 후광 효과는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아이패드는 발매된 지 단 58일 만에 200만 대가 넘게 판매됐다. 아이폰이 100만 대를 판매하는 데 74일이 걸렸음을 고려하면, 초기 판매 속도는 두 배나 빠르다. 이에 비해 아이팟은 2년이 넘게 걸려서야 200만 대가 판매되었다. 아이패드 판매에서 더욱 놀라운 점은 매진으로 인해 실제 수요보다 공급이 못 따라가는 상황에서 얻은 소득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패드는 소비자 가전제품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10억 달러 매출을 기록한 제품이 되었다. 



아이팟에서 아이패드로 이어지는 판매기록을 역으로 생각해 보면, 아이팟의 후광 효과 덕분에 아이폰의 판매량을 끌어올렸음을 가정할 수 있다. 아이팟으로 MP3 플레이어 시장을 장악하지 못했다면 아이폰이 그렇게 화제 속에서 발매되지도 않았을 테고, 74일 만에 100만 대를 판매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아이팟으로 휴대용 기기 시장의 강자가 되었고, 이런 기대감이 아이폰의 판매량을 끌어올렸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또 아이폰에서의 활약이 지금은 고스란히 아이패드의 판매량으로 끌어올려져 있다. 실제로 <월스트리트 저널>은 현재 아이폰에 대한 높은 수요가 아이패드의 판매량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애플과의 스마트폰 경쟁을 단순히 휴대폰 하나 더 팔기 위한 것으로 본다면 전체 그림을 잘못 그리고 있는 것이다. 아이폰의 힘은 단순히 판매량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아이팟 터치와 아이패드를 같이 고려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세 제품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제품들이 각 연령대를 공략하면서, 하나의 제품이 잘 팔리면 다른 제품의 판매를 견인하는 후광 효과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 세대를 아우르는 애플의 치밀한 제품 라인업은 애플스토어를 통해서 최종 완성된다. 최고 매출을 기록한다는 애플스토어에서 이들 제품을 유기적으로 전시 판매함으로써 또다시 후광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아이팟을 사기 위해 애플스토어를 방문한 고객에게 애플의 다양한 제품을 선보임으로써 새로운 구매 욕구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광 효과라는 면에서 보면 애플의 제품 라인업과 애플스토어는 그야말로 매우 정교하다. 



애플 주식이 지난 10년 동안 10배 상승하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총액을 괜히 넘어선 것이 아니다. 지금의 애플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평생 소비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제품 라인업을 유기적으로 구축했고, 이들 제품을 한곳에 모아서 효과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유통망을 환상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시장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애플 마케팅 신화의 비밀


* 감성을 불어넣어라

애플은 기술 중심의 IT제품에 감성을 불어넣어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 영웅이 되라

애플은 경쟁 기업이라는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이 되어서 브랜드 가치를 더욱 상승시켰다.


*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어지는 제품 라인업을 만들어라

애플의 제품 라인업은 서로의 판매량을 견인하는 강력한 후광 효과를 가지고 있다.


* 마니아들을 잡아라

인터넷의 발전으로 마니아들의 입소문 마케팅이 강력해지고 있기 때문에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


* 이야기를 제공해라

마니아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제품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 소재를 제공해야 한다.


* 최고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라

애플은 직영점 사업을 시작하면서 의류업체 갭의 CEO였던 미키 드렉슬러를 영입해서 도움을 받았다.


* 물건이 아니라 경험을 팔아라

애플에서 물건을 사는 순간, 애플과 고객의 관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고객의 삶에 도움을 주고, 특별한 경험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라.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은 매주 연재됩니다. 그리고 모바일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러브 아이돌 주식회사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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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방문은 마치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다.


‐ 헨리 블로젯, 2010년 <비즈니스 인사이더> How I Ended My Affair With BlackBerry And Eloped With The iPhone 기사 중에서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27)



사람들이 애플의 힘을 평가할 때 가장 쉽게 간과하는 부분이 바로 애플스토어다. 애플이 곧 망할 것이라면서 애플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사람들이 정작 애플의 가장 훌륭한 자산인 애플스토어라는 존재는 쏙 빼놓는다. 애플은 소비자 가전업체로 항상 소비자와 직접 접촉하면서 물건 파는 방법을 배웠다. 이것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보다 나은 애플만의 노하우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소비자에게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HP나 델컴퓨터에게 라이선스를 넘긴다. 엄격히 말하면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을 고객으로 상대한다. 구글 역시 광고주와 거래를 하는 것이지 소비자로부터 돈을 벌지는 않는다. 하지만 애플은 소비자에게 직접 돈을 받고, 물건을 판다. 그래서 애플은 다른 어떤 기업보다도 소비자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떻게 물건을 팔아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이런 노하우가 애플스토어에 그대로 응축되어 있다.


미국처럼 땅덩어리가 큰 나라에서는 유통점의 영향력이 우리 생각 이상으로 크다.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물건들의 수에 비해 제품의 물류비용이 많이 드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통업체는 소비자가 제품을 선택하기 전에 먼저 팔릴 물건과 그렇지 않을 물건을 선별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대형 유통점이 발달한 미국에서는 제품을 어느 위치에 배치하느냐에 따라서 판매량이 절대적인 영향을 받을 정도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상점의 구석자리에 전시되어 있다면 팔리기 힘들다. 당연히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회사 간의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사실 애플이 직접 소매점을 운영할 생각을 한 것도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유통점에서 전혀 환영받지 못하는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고자 만들어진 고육지책이었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애플2 컴퓨터는 인기 상품이었고, 유통업체는 애플의 까다로운 요구를 다 들어주면서까지 애플 제품을 공급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IBM PC가 등장하자 상황은 돌변했다. IBM PC가 매장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했고, 애플 제품은 주변부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은 점원의 권유를 뿌리치기 힘든데, 매장 점원은 IBM PC에 익숙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고객을 IBM PC가 있는 쪽으로 안내했다. 매킨토시가 팔리지 않자 매장은 더욱 애플 제품을 홀대했고,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설치해 놓지 않아서 작동도 되지 않는 매킨토시가 먼지만 잔뜩 낀 채 구석에 방치되었다. 오죽하면 그 광경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열혈 애플 마니아들이 매장에 전시된 매킨토시를 직접 깨끗이 닦고, 꺼져 있는 전원을 켜서 손수 소프트웨어를 작동시켰을까.


매장에서 찬밥대우를 받게 되자 스티브 잡스는 뭔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야만 했다. 특히 구석에 손상된 채 방치되어 있는 매킨토시는 그 자체로 애플의 브랜드에 악영향을 주었다. 구겨진 애플의 브랜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가만히 앉아서 희생자가 되느니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고심 끝에 직접 소매점을 운영하기로 결정한다.

 

스티브 잡스가 이 어려운 도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선택한 인물은 의류업체 갭(GAP)의 CEO였던 미키 드렉슬러(Mikey Drexler)였다. 그는 하나의 매장 안에서 여러 의류 브랜드 상품을 팔던 당시의 관행을 깨고, 갭 제품만 판매하는 소매점을 운영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83년 5억 달러가 되지 않았던 갭의 매출은 그의 전략 덕분에 2000년에는 137억 달러로 성장했다. 스티브 잡스는 마케팅과 소매점에 대한 노하우를 얻고자 애플의 이사회로 초대했고, 미키 드렉슬러는 컴퓨터에 대한 경험이 없었지만 기꺼이 애플 이사회의 일원이 되어 주었다. 


또 스티브 잡스는 애플스토어 사업을 책임지고 실행해줄 인물로 론 존슨을 스카우트했다. 론 존슨은 타깃(Target)이라는 유통업체에서 근무했었다. 타깃은 월마트와 같은 할인마트 지점 방식을 추구했지만 회사 전체의 규모는 군소업체에 불과했다. 그는 갭의 직영점 운영전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타깃에 적용하였다. 패션업체가 디자이너의 명성을 이용하는 것처럼 론 존슨은 산업계에 유명한 디자이너를 끌어들여서 주전자와 같은 가정용품을 만든 후 타깃 브랜드로 상품을 판매했다. 아름다운 디자인과 타깃의 브랜드, 그리고 유통망이 합쳐져서 론 존슨의 전략은 대성공을 거둔다. 


스티브 잡스는 론 존슨을 소매점 책임자로 임명하고 함께 애플스토어 전략을 세워갔다. 애플스토어가 실현하고자 하는 핵심 전략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전략은 단순히 물건을 구입하기 위한 매장이 아니라 고객의 경험을 디자인하기로 한 것이다. 대부분의 다른 상점들은 고객이 제품을 쉽게 찾아서 빨리 계산을 하고 매장을 빠져 나가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애플은 좀 더 크게 생각해야 한다고 봤다. 두 번째 전략은 애플스토어를 통해서 고객이 주인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고객이 물건을 구입하는 바로 그 순간 상점과 고객 사이의 관계도 끝난다. 그러나 애플은 고객이 제품을 구입하는 순간이야말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시간으로 간주하고, 계속해서 고객의 디지털 라이프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


직영점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방법은 애플에서 제품을 만드는 방법과 똑같았다. 수많은 프로토타입을 만들어가면서 제품을 개발하듯이 본사 근처에 실험적으로 매장을 직접 만들었다. 몇 개월간의 노력 끝에 실험 매장이 거의 완성됐을 무렵 론 존슨은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론 존슨은 애플스토어가 물건 파는 곳이 아니라 미래의 디지털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제안했고, 이런 의견을 듣자마자 스티브 잡스는 크게 화를 내며 당신이 지금 말하는 게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모두 포기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임을 알고 있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단단히 화가 난 채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한 시간도 안 되어 다시 론 존슨을 찾아온다. 아까보다는 훨씬 부드러워진 말투로 론 존슨의 의견을 따라주었다. 론 존슨은 고객이 원하는 물건보다는 회사가 생각하는 제품별로 분류되어 있다는 문제를 깨닫고 있었다. 이는 고객 체험에 초점을 맞춘다는 전략에 위배되었다. 결국 스티브 잡스와 론 존슨은 처음부터 다시 애플스토어를 디자인했다. 그리고 6개월에서 9개월이 더 걸려서야 애플스토어의 실내 디자인을 끝마칠 수 있었다. 애플스토어에서 제품과 관련된 공간은 4분의 1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고객의 흥미와 관심에 따라 구성됐다. 이런 노력 끝에 애플스토어는 겨우 완성되었고, 정식으로 개장을 하게 된다. 


애플스토어에 대한 고객 평가를 조사하던 중 론 존슨은 한 가지 중요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애플스토어에 초대된 다양한 부류의 고객들에게 지금까지 받았던 최고의 서비스가 무엇인지를 물어봤더니 18명 중 16명이 호텔이라고 말했다. 호텔은 고객에게 아무런 물건을 팔지 않고 오직 고객에게 경험을 서비스하는 곳이다. 고객의 삶을 풍요롭게 하자는 애플스토어의 전략은 호텔의 역할과도 여러 가지로 맞아떨어졌다. 론 존슨은 다시 사람들에게 그렇다면 애플스토어에서 호텔과 같은 친절한 느낌을 받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고객들은 애플스토어 안에 바를 설치하라고 답해 주었다. 론 존슨은 이를 바탕으로 해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개념의 ‘지니어스 바(genius bar)’를 선보이게 된다.


지니어스 바는 고객의 삶을 풍족하게 한다는 애플스토어의 당초 취지를 완벽하게 구현한 장소이다. 기존의 컴퓨터 업계에서 고객상담은 전화로만 이루어졌다. 고객상담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컴퓨터의 이상증세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한다. 그런 컴퓨터 초보자가 전화로만 상담을 받는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특히 기존의 컴퓨터 업체들은 비용을 줄이고자 인도에 외주를 줄 정도로 고객상담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바로 그때 애플은 고객과 얼굴을 맞대고 친절하게 상담할 수 있는 공간을 생각해낸 것이다.


 지니어스 바에서는 ‘지니어스’라고 불리는 컴퓨터 전문가에게 누구나 무료로 컴퓨터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지니어스 바는 단순히 애프터서비스를 받는 공간이 아니라 컴퓨터 전반에 대한 다양한 조언을 들을 수 있다. 론 존슨에 의하면 요즘 지니어스 바는 마치 스튜디오처럼 되어버렸다고 한다. 왜냐하면 애플의 맥용 소프트웨어인 아이 무비에 음악 넣는 방법을 배우거나 친구 결혼식에서 맥을 이용해서 DJ를 하는 방법을 상담받으면서 분위기가 마치 크리에이티브한 스튜디오처럼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지니어스 바는 친절하게 애프터서비스를 받는 공간에서 어느덧 고객의 경험과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곳으로 진화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스토어를 오픈하면서 한 가지 위험한 도박을 한다. 대도시 지역에서, 그것도 누구나 한 번 가보면 금방 기억할 수 있는 가장 노른자위 땅 위에 매장이 들어서도록 했다. 땅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이는 초기에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의 도박은 결국 큰 성공으로 돌아왔다. 스티브 잡스가 이렇게 과감한 선택을 한 이유는 애플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애플스토어를 한 번 정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차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곳에 매장이 있다면 특별한 애정이 있지 않는 한 방문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지만, 유동인구가 많은 도시 중심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벼운 마음으로 애플스토어에 들어와서 매장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애플 제품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철저한 계산 아래 디자인된 만큼 막상 매장에 들어오면 애플에 호의적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Sillicon Alley Insider>의 기자인 헨리 블로젯(Henry Blodet)은 애플스토어에 처음 들어서자 마치 새로운 신세계가 열리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그와 같은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애플이라는 브랜드에 호의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애플스토어는 애플이 만들면 매장도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애플이 직영점을 연 시기는 인터넷을 통한 직거래가 대세였기 때문에 애플의 선택은 시대를 거스르는 것처럼 보였다. 직영점을 운영하던 컴퓨터 회사 게이트웨이는 매장사업을 그만두려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더욱 애플을 부정적으로 봤다. 애플의 제품에 언제나 그랬듯이 <비즈니스위크> 같은 언론에서는 실패할 것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애플은 기존의 상식을 깨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집단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2001년 오픈한 애플스토어의 매출은 3년 만에 10억 달러를 넘어섰고, 2006년에는 분기당 매출이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2008년에는 각 매장당 매출액이 2,800만 달러 정도를 기록했으며 제곱미터당 수익은 4,700달러에 이르렀는데, 이는 미국의 모든 소매점 중 가장 장사를 잘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2009년 애플의 전체 매출은 299억 달러였는데, 당시 애플스토어 매출이 66억 달러였을 정도다.


애플스토어에는 수치로만 드러나지 않는 다른 여러 장점들이 있다. 우선 애플스토어 자체가 애플의 광고판 역할을 한다. 애플을 전혀 모르던 사람도 아름답게 꾸며진 매장을 지나가면서 애플이라는 브랜드에 호감을 갖게 된다. 또한 애플스토어의 지니어스 바 덕분에 컴퓨터와 가전업체 중에서 서비스가 최고인 회사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충성도 높은 애플 마니아들은 마치 성지를 순례하듯이 애플스토어를 방문해서 애플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하고 마니아들끼리의 사교 공간으로 활용한다. 또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소비자들의 의견을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애플은 제품개발 단계에서는 시장조사를 별로 하지 않는다. 대신 시장에 출시한 후에는 고객들의 반응을 세밀하게 체크해서 차세대 제품에 이를 반영한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애플의 제품은 그 어떤 기업의 제품보다 소비자 만족도가 높다. 2009년 미국 소비자 만족도 조사(American Customer Satisfaction Index, ACSI)에서 애플 컴퓨터는 PC 분야 1위를 기록했는데, 델컴퓨터와는 9점, HP와는 10점이라는 큰 차이를 보였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인 JD파워가 발표한 스마트폰 만족도에서도 810점으로 1위를 기록했는데, 경쟁사들이 700점대 초반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역시 엄청난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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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26)


우리는 권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고객들이 놀라고 기뻐하는 혁신적인 제품을 만듭니다. 그러면 충성스러운 고객들이 애플에 힘을 실어 주지요. 우리는 마음속으로 정말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제품을 만들 뿐이에요. 고객들이 우리가 사랑하는 만큼 우리 제품을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이 일을 참 잘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 스티브 잡스, 2007년 <포춘>





과거 마니아 집단은 기업 입장에서 보면 참 계륵과 같은 존재였다. 입맛은 까다로워서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는 힘든데, 막상 그들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열심히 제품을 개발하면 일반인들의 취향과 멀어지는 결과가 생긴다. 마니아들의 취향에 맞추었다 해도 숫


아이패드가 발매될 때 아이패드를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 역시 애플 추종자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요즘처럼 미디어가 발전한 세상에서 수많은 인파가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은 홍보에 큰 도움이 된다. 문자로 아이패드가 몇 대 팔렸다는 것을 보는 것보다 매장 앞에 길게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 하나가 큰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아이패드 발매 당시 미국의 애플스토어 앞에는 여지없이 사람들이 긴 줄로 서 있었고, 이 모습은 전 세계 언론사에 긴급 타전되었다. 특히 일본에서 발매될 때는 1,200명 이상이 아이패드를 구입하기 위해서 줄을 섰는데 이 모습 역시 전 세계에 일제히 보도되었다. 일본에서 얼마나 팔렸는지는 몰라도 그 사진을 본 사람들은 아이패드가 매우 인기 있는 제품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애플은 이렇게 새로운 제품을 발매할 때마다 줄을 서서 기다려줄 정도의 열혈 추종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들이 고민하는 전혀 새로운 콘셉트의 제품에 겁 없이 도전할 수 있다. 일반 기업들은 새로운 기기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이를 세상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건 무척 힘들다.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수많은 상품들이 쏟아지기 때문에 단순히 아이디어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주목을 받는 것이 어려운 시대다. 제품이 나오는 동시에 화제의 중심에 서지 않으면, 발매와 동시에 사장되기가 십상이다. 하지만 애플은 제품을 보지도 않고 무조건 구입해 주는 마니아 집단을 가지고 있다. 이들 마니아 집단 덕분에 어떤 제품이라도 일정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할 수 있어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으며, 자발적으로 애플 제품을 인터넷으로 홍보해 주기 때문에 실패의 위험도 훨씬 적어진다. 과거의 마니아들이란 매장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컴퓨터에 대해서 얘기하며 노닥거리는 게 전부였고 그들의 영향력은 오프라인에 한정되었지만, 인터넷과 미디어의 발전 덕분에 소수 마니아들도 블로그나 트위터 등을 이용해 얼마든지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광고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광고가 쏟아지니 기억나는 것도 없고, 기업이 자사제품의 좋은 부분만을 극대화하여 보여 줄 뿐 단점은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회사 광고보다 누군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의견에 더 의존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요즘 광고업계는 트위터와 블로그 같은 소셜 서비스와 입소문 마케팅이 결합한 홍보 모델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효과적인 입소문 마케팅이 되려면 말하는 사람의 권위와 정보를 퍼뜨리려는 열정 두 가지가 합쳐져야 하며, 이런 면에서 뭔가 하나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마니아들의 도움은 필수적이다. 미국의 ‘Geek’, 일본의 ‘오타쿠’ 그리고 한국에서는 ‘빠’라는 비아냥거림을 듣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큰 힘을 발휘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애플은 세상 그 어떤 브랜드보다도 강력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때로는 ‘애플빠’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하지만 애플 마니아들의 활약은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여 애플 브랜드 파워를 더욱 강화하는 동시에 판매에도 크게 일조하고 있다. 애플은 어떻게 지금처럼 충성도 높은 애플 마니아들을 끌어모을 수 있었을까? 첫 번째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뛰어난 제품 덕분이다. 제품이 훌륭하지 않으면 아무리 광고하고, 홍보해 봐야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다. 마니아들은 누구보다 까다로운 사람들이라서 쉽게 마음을 주지 않지만 대신 한 번 마음을 주면 열정적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제품과 차별화되는 특별한 제품이어야만 마니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제품이 훌륭하다는 것만으로 애플 마니아들만의 강력한 유대감과 활동력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오래 전부터 애플은 마니아들의 힘을 꿰뚫고 있었다. 그들은 매킨토시가 컬트 제품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홍보에 임했다. 이런 전략 아래서 애플은 매킨토시를 쓰는 사람들은 시대를 창조하는 선도자라는 이미지를 심어 주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애플이 마니아들을 모으는 방법 중 하나는 앞에서 설명한 감성마케팅과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들을 더욱 열광적으로 애플에 빠지게 하는 또 하나의 요소는 강력한 교주 같은 스티브 잡스다. 스티브 잡스가 설파하는 이야기들은 애플 마니아들에게는 교리와도 같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회사를 대표하는 각 팬들 간의 논쟁은 전쟁 수준으로 발전했다. 스티브 잡스는 논쟁의 한 가운데 서서 애플 마니아들에게 중요한 논리를 제시해 준다. 아이패드에서 플래시가 지원되지 않자 많은 논란이 생긴 적이 있었다. 그때 스티브 잡스는 직접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는 이유를 장문으로 작성하여 애플 홈페이지에 올려놨다. 스티브 잡스의 글은 플래시와 관련해서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논쟁을 벌일 때 사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반박 논리를 제공해 준거나 마찬가지였다.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아이튠스의 음악파일은 독자적인 포맷이기 때문에 아이팟에서만 재생될 수 있었는데, 이 때문에 폐쇄적인 애플 정책을 비난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스티브 잡스는 불법복사 등의 이유로 독자 포맷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히고, 몇 가지 조건만 해결된다면 얼마든지 독자적인 파일 시스템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애플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반박 논리를 제공해준 셈이다.


애플이 마니아들을 사로잡는 여러 이유들을 전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된다. 바로 마니아들에게 끊임없이 이야기꺼리를 마련해 준다는 것이다. 애플은 블로그나 트위터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이야기 소재를 1년 내내 제공해 준다. 


아이패드가 등장하기 전을 생각해 보자. 2009년 연말부터 애플에서 새로운 기기가 등장할 것이라는 루머가 인터넷을 강타하였다. 애플이 준비한다는 태블릿 컴퓨터와 관련된 정보들이 잊을 만하면 한두 개씩 등장했다. 그럴 때마다 애플 마니아들은 태블릿 컴퓨터가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 지에 대해 이야기를 한 보따리씩 풀어 놓았다. 가끔씩 유출샷이라는 이름으로 애플의 태블릿 컴퓨터 사진이 등장하면 인터넷 전체가 떠들썩해졌다. 그림 실력이 뛰어난 몇몇 애플마니아들은 직접 차세대 애플 제품의 상상도를 그려서 블로그에 올려놓기도 한다. 그러면 이런 그림마저도 인터넷에서는 화제가 된다. 사람들이 애플 제품을 이야기 소재로 삼는 것은 애플이라는 브랜드 자체가 인기스타와 같은 화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기스타에게 파파라치가 붙는 것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증거인데, 애플 역시 파파라치처럼 그들의 소식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마니아들이 전 세계에 퍼져 있다. 애플 소식이 하나라도 등장하면 애플 마니아들이 블로그와 트위터에 관련 글을 퍼뜨리고, 또 이를 읽은 독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하면서 인터넷 전체에 확대 재생산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애플의 신제품에 대한 이야기가 최고조에 이를 때, 애플은 전 세계 기자들에게 제품 발표회를 연다고 초대장을 보낸다. 그러면 인터넷은 애플이 무슨 제품을 내놓을 지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게 된다. 스티브 잡스가 이벤트에 등장하는 순간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생중계된다. 스티브 잡스가 그동안 수많은 추측들이 난무했던 태블릿 컴퓨터의 실체가 아이패드였음을 공개한 후 아이패드에 대한 장점들을 열거할 때마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실시간으로 각종 댓글이 달리면서 마니아 집단들이 뜨겁게 반응한다. 이렇게 하나의 제품을 발표하기 전까지 수많은 루머들이 양산되고, 인터넷에서 끊임없이 화제를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루머 자체를 애플에서 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꽤 정교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 루머의 내용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구체화되면서, 고객들이 궁금할 만한 내용들이 감칠맛 나게 공개되는데 타이밍 역시 절묘하기 때문이다. 


아이패드가 정식으로 공개되면 인터넷 게시판은 아이패드가 과연 성공할 것인지 실패할 것인지에 대해 한바탕 논쟁이 벌어진다. 이때는 기자와 전문가뿐만 아니라 닌텐도 사장인 이와타 사토루나 구글의 CEO인 에릭 슈미트 같은 업계의 리더들도 덩달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다. 정식 발매일이 다가오면 아이패드에 대한 논쟁은 절정을 맞이하는데, 애플에서 예약을 받기 시작하면서 이런 논쟁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예약 숫자를 보면 이 제품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를 알 수 있는데 아시다시피 아이패드는 전문가 수준을 뛰어넘는 사람들이 예약하기 때문에 각종 언론에서 톱뉴스로 다루어진다. 성공이 확실해지는 순간이 오면 이제 아이패드에 대한 논쟁은 다시 아이패드가 과연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간다. 


사실 애플이 모든 이야기의 화제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애플이 미래를 만들어 가는 회사라는 점이다. 애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곧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미래를 예측하고 그것이 적중할 때 쾌감을 느끼는 존재다. 아이패드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를 가지고 논쟁을 하는 것도 자신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선지자임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욕망 때문이다. 앞을 내다볼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 제일 필요한 능력이고,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미래를 보는 능력이 탁월하다. 우리의 삶 자체가 사실은 끊임없이 미래를 예측하고 이에 따라서 움직인다. 불과 몇 초 후의 결과에 따라서 승부가 결정되는 도박에 사람들이 빠져드는 것 역시 미래를 예측하고 적중할 때 오는 짜릿함 때문이다.


애플은 바로 이런 미래를 창조하는 회사다. 아이패드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뀌게 될 것인지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아이패드로 인해서 미디어와 컴퓨터의 미래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아이패드를 쓰는 것 자체가 먼저 미래를 체험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이패드를 남보다 하루라도 먼저 쓰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이런 자부심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애플 마니아들은 남들보다 하루라도 먼저 제품을 구입하고, 재빠르게 사용기를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다. 그러면 사용기를 적은 글 밑에는 이를 부러워하는 댓글들이 올라오면서 애플 마니아들은 더욱 뿌듯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아이패드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가 다시 소강상태가 되면 아이폰에 대한 정보가 조금씩 유출되기 시작한다. 신형 아이폰은 매년 6월에 열리는 WWDC에서 스티브 잡스가 직접 발표하는데, 정식 공개되기 한 달 전에는 각종 루머로 인터넷 게시판이 떠들썩하게 된다. 그리고 6월 말에 신형 아이폰이 정식 발매되면, 이에 대한 사용기가 인터넷 게시판을 점령한다. 그 후 8월이 되면 이제 새로운 아이팟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9월에는 아이폰처럼 스티브 잡스가 직접 나서서 신형 아이팟을 발표하고, 얼마 후 화제 속에서 판매에 돌입한다. 이제 연말이 다가오면 다시 새롭게 발매될 신형 아이패드에 대한 루머들이 한두 가지씩 올라오면서 이야기의 주제도 자연스럽게 바뀌게 될 것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완벽한 제품 라인업을 갖춘 애플은 그야말로 1년 내내 자사 상품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까지 가지게 되었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애플의 능력은 사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원래부터 애플이 인기가 있으니, 사람들이 애플에 대해서 이야기를 그만큼 더 많이 하는 것이라고도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인기를 얻기 위해서 애플은 위대한 제품을 만들었고, 제품에 감성을 담기 위한 마케팅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년에 네다섯 번에 걸쳐서 스티브 잡스가 직접 제품을 발표하는 이벤트만 보아도 그들이 얼마나 이야기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 철두철미하게 준비하는지를 알 수 있다. 사실 그 이벤트를 빛나게 하기 위해서 애플은 철저한 비밀주의를 채택했다. 언론으로부터 과도한 비밀주의라는 비난도 듣고 있지만, 여전히 철저하게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애플은 각종 루머를 통해서 마니아들이 각종 예측을 쏟아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다. 그리고 막상 제품 발표회가 시작되면 그동안의 루머가 적중할지 아닐지를 관심 있게 지켜볼 수 있게 된다. 제품 발표회가 끝나고 나면 이제 터지듯이 수많은 진짜 정보들이 쏟아지면서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각종 인터넷 사이트들은 애플 이야기로 채워지게 된다. 철저한 신비주의 마케팅과 환상적인 깜짝쇼가 절묘한 타이밍에 이뤄짐으로써 마니아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것이다. 그리고 흥분을 가라앉힌 애플 마니아들은 또 열심히 자신의 블로그와 주위 사람들에게 열정적으로 애플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게 된다. 이때는 애플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도 인터넷과 언론 어디에선가 애플의 신제품 소식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이렇게 대단한 애플을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살펴보면 결국은 애플이 장기적인 시나리오에 따라서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나리오가 바로 다른 회사와 애플의 근본적인 차이다. 연초가 되면 아이패드의 신제품이 나온다. 또 6월이 되면 아이폰이 등장하고, 9월에는 아이팟이 출시된다. 애플은 1년마다 반복되는 로드맵을 가지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해서 애플 내에서는 주제를 바꿔가면서 정보를 통제하고 관리해서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발표되는 제품이 수십 가지 중 하나가 아니라 아이패드, 아이폰, 아이팟처럼 임팩트 있는 제품, 그것도 하나의 모델만을 발표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로 치면 애플은 1년에 세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발표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영화들이 쏟아지지만 화제의 중심은 결국 블록버스터 영화 몇 편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막대한 제작비를 쓴 만큼 영화사에서 사활을 걸고 홍보전에 뛰어든다. 영화 개봉에 맞춰서 사람들에게 기대를 심어주기 위한 노력들이 치밀하게 이루어진다. 애플 역시 영화계처럼 세 편 이상의 블록버스터 제품을 마련해 놓고 발표일에 맞춰서 끊임없이 이야기꺼리를 계속 만들어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이 부분이 다른 회사와 애플의 근본적인 차이다. 대부분의 회사는 애플처럼 블록버스터급 제품 하나에 올인하는 것이 아니라 물량공세를 펼치기 때문에 1년을 주기로 반복되는 로드맵이 없다. 우리는 애플의 아이폰이 매년 6월에 WWDC에서 발표될 것을 알지만 다른 회사의 휴대폰이 언제 어떻게 발표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세상에서 애플처럼 휴대폰을 멋지게 발표할 수 있는 회사는 없을 것이다. 제품 발표회를 한 편의 연극처럼 만들어내는 애플의 스토리 창조 능력이야말로 애플이 마니아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이유다. 


애플 마니아와 아닌 사람의 차이는 별개가 아니다. 끊임없이 애플에 대해 궁금해 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애플의 좋은 점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는 사람들, 애플에 대한 이야기를 더 알고 싶어서 관련 정보에 쫑긋거리고, 남들과 함께 애플 이야기하기를 즐기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마니아다. 결국 마니아들을 계속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제품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애플은 스토리 제공 능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마니아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를 잘 살펴보기 바란다. 그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하나의 트위터, 하나의 블로그, 하나의 카페, 하나의 인터넷 사이트, 하나의 언론사까지 운영할 정도로 이야깃거리가 많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전한 시대에는 더욱 이야기가 중요해진다. 인터넷에서 얼굴도 모르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가까워지는 것은 결국 공통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자 자체가 소수이고, 그들의 영향력도 기껏해야 주변사람 몇몇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이패드가 발매되는 과정을 보면 인터넷의 발전과 마니아들의 역할이 무척 중요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0년 1월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공개할 때만 해도 화면만 커진 아이폰이라면서 실패를 점치는 글들이 많았다. 허나 온갖 악평에 시달리던 아이패드의 예약자가 단 하루 만에 12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에 분위기는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애플에 대한 관심이 다른 나라보다 적은 편인 한국에서도 이 소식을 다음과 네이버 같은 포털 사이트에서 메인으로 소개할 정도였다. 나오지도 않은 상품이, 그것도 예약자 수가 12만 명을 돌파했다는 기사를 전 세계에서 대서특필해 주니 애플은 공짜로 홍보 효과를 얻는 동시에 아이패드에 대한 기대감도 높일 수 있었다. 


나오지도 않은 상품을 예약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애플 추종자라고 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품이 출시된 후 직접 만져 보거나 주변의 평가를 참고해서 물건을 구입하기 마련이다. 평소 애플 브랜드에 대한 믿음과 충성도가 없는 사람이 나오지도 않은 제품을, 그것도 오랫동안 기다려야 물건을 받아 볼 수 있는 것을 사전예약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만약 아이패드의 사전예약 접수 첫날 주문자 수가 적었다면, 그렇지 않아도 악평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아이패드 위기론은 더욱 힘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애플 마니아들이 적극적으로 아이패드를 예약해 줌으로써 아이패드는 다시 화제의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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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스티브 잡스는 사실 애플을 뛰어넘는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뉴요커>에 스티브 잡스가 영웅이라고 밝혔다. 넷스케이프의 창업자 마크 앤드리슨은 기업가들에게 첫 번째 제품을 내놓을 때쯤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보라고 조언을 한다. ‘스티브라면 어떻게 했을까?’



- 2009년 <포춘> The decade of Steve 중에서






IBM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 진출을 선언할 때 이미 시장의 판도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IBM은 컴퓨터 시장 전체를 장악했고, IBM이 무엇인가를 결정하면 그건 곧 표준을 의미했다. 그도 그럴 것이 1980년 개인용 컴퓨터 업체 중 선두를 달리던 애플의 매출액이 1억 4,000만 달러에 불과했는데, IBM은 이미 252억 달러를 넘어설 정도로 두 회사의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애플이 컴퓨터 시장에 혁명을 불러일으키면서 포드 이후 가장 성공한 회사라는 극찬을 듣고 있었지만 IBM과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IBM과의 경쟁에 긴장할 만도 한데 오히려 애플은 IBM의 시장 진출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광고를 내보냈다. 그런데 광고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애플을 홍보하기 위해서 매우 정교하게 다듬어진 문장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글은 35년 전 컴퓨터 혁명이 시작된 이래 가장 흥미롭고 중요한 시장에 IBM이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는 메시지로 시작된다. 



그 다음 개인용 컴퓨터가 사람의 일과 생각 그리고 배움과 커뮤니케이션 등 전반적인 생활 전체를 바꿀 수 있는 도구임을 말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컴퓨터는 읽기나 쓰기처럼 필수적인 능력이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문장에서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발명한 것은 애플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애플이 처음으로 개인용 컴퓨터를 발명했을 때 전 세계 1억 4,0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컴퓨터를 구입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었다면서, 애플이 시장의 창조자이자 선지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동안 개인용 컴퓨터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것이니 함께 책임 있는 경쟁을 펼치자고 다짐하는 한편 다시 한 번 IBM의 시장진출을 환영한다는 문장으로 광고는 마무리 되어 있다. 결국 타이틀은 IBM을 환영한다는 이야기지만 글을 잘 살펴보면 IBM이라는 거대기업에 맞서서 싸우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혁명가 애플의 역할을 효율적으로 드러낸 광고였다. 더불어 당시만 해도 개인용 컴퓨터를 만드는 업체가 50여 개 있었는데, IBM과 경쟁하는 애플을 강조함으로써 애플은 자연스럽게 IBM을 뺀 다른 업체 중 가장 강력한 브랜드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실제로 1981년 초만 해도 애플은 미국인들 중 10%만 아는 브랜드였지만 연말에는 80%로 급상승하였다. IBM PC는 많은 사람들이 예측한 대로 시장에 진출한 직후부터 승승장구하더니 곧 시장을 장악한다. 애플은 IBM을 환영한다는 광고를 내보낼 때의 여유와 달리 갈수록 위기감이 커져갔다. 그리고 결국 IBM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최강자라는 자리를 빼앗을 즈음에 애플은 IBM과의 경쟁을 단순히 기업 간의 문제가 아니라 선과 악의 대결로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IBM이라는 악당이 있는데, 이를 물리치는 영웅으로서의 애플을 부각시킨 것이었다. 이는 다른 업체와는 확실히 다른 접근 방식이었다. 미국 시장에서 2위를 차지하는 업체가 1위 업체와 비교 광고를 하는 것은 자연스런 광고 방식이다. 애플이 개인용 컴퓨터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을 때 뒤를 쫓던 코모도어는 끊임없이 애플과 비교했다. 특히 코모도어는 가격적인 면에서 많이 비교했는데 코모도어 64를 광고할 때는 사과를 한 입씩 베어 먹는 장면이 나오면서 애플을 노골적으로 비아냥대었다.


 하지만 IBM에 의해서 시장 주도권을 잃어가던 애플은 코모도어와 다른 전략을 선택했다. 단순히 선두업체를 비아냥대고 씹는 것이 아니라 악과 싸우는 애플을 고귀한 영웅으로 부각시킴으로써 브랜드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전략을 펼쳤다. 코모도어처럼 후발업체가 선두업체를 무작정 비교하면 오히려 선두업체의 인지도만 상승시켜준다. 기업이 광고를 할 때는 당연히 자사에게 유리하고, 경쟁자에 불리한 면을 강조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아무리 비교 광고로 1등 기업을 씹어봐야 결국 사람들은 그 말을 다 믿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시장의 지배자만 대중들에게 각인시켜줄 뿐이다. 결국 코모도어의 비교 광고는 애플을 간접적으로 광고하는 격이었다. 이는 아이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매일같이 다른 여러 스마트폰이 나오고 있지만 그런 기사와 광고를 볼 때마다 사람들은 아이폰의 지배력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될 뿐이다. 물론 애플도 선두자리에서 밀려났을 때는 1위 기업과 비교 광고를 함으로써 자사의 우위성을 강조하려 했다.


 그러나 애플의 광고는 전문용어로 뒤범벅된 기술과 기능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을 이용했다는 점이 다르다. 1984년에 방영된 매킨토시 광고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 광고는 조지오웰의 소설인 <1984>에서 영감을 얻었다. 소설 <1984>는 절대권력을 가진 독재자 빅 브라더가 개인의 사생활 정보를 완전 통제하여 세상을 지배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매킨토시 광고는 소설 속의 모습을 그대로 영상으로 담아내었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빅 브라더가 끊임없이 윽박지르면서 소리를 지르면 넋이 나가 보이는 사람들은 이를 힘없이 지켜본다. 사람들이 아무런 생각과 의지도 없이 그냥 빅 브라더의 지배를 받고 복종하는 모습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때 망치를 든 여인이 총으로 무장한 경비병들을 따돌리고 달려와서는 도끼를 던져서 대형 스크린을 파괴한다. 


그리고 자막을 통해 애플에서는 1984년 매킨토시를 소개한다면서 왜 소설의 1984와 현실의 1984가 다른지를 알게 될 것이라고 전한다. 이 광고는 전국에 단 한 번 밖에 방송되지 않았지만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각종 광고 관련상을 휩쓸었고, 지금까지도 광고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명작으로 남아 있다. 1984 광고는 일체의 상품을 등장시키지 않고도 애플이라는 브랜드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서 IBM은 거대한 악당이 되었고, 애플은 이를 물리치는 영웅으로 부각시킬 수 있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라면 보통 사람들은 약자인 다윗의 편을 들어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애플은 바로 이런 인간의 심리를 자극하였다. 


사실 영웅과 악당 구도를 1984처럼 추상적이면서도 세련되게 표현하지 못했다면 오히려 쿨한 애플의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을 줄 수 있었을 테지만 1984 광고는 광고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면서, 젊고 도발적인 애플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었다. 1984 광고에는 애플의 절박함과 스티브 잡스의 비장함이 들어 있었다. 1981년 IBM이 시장에 진출한 이후 빠른 속도로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회사들이 어려움에 처했고 IBM이 곧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독점하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였다. 1984년 1월 24일 처음으로 대중에게 매킨토시를 공개하던 날 스티브 잡스는 IBM을 환영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두려움을 느끼고 다시 애플로 돌아오고 있다면서 애플을 IBM의 통제로부터 미래를 구할 영웅으로 부각시킨다. 애플은 단순히 IBM과 경쟁하는 기업이 아니라 독재에 대해 항거하는 숭고한 회사로 격상되어 버린 것이다. 영웅 브랜드로서의 애플은 드라마나 영화 속의 간접광고에도 자주 이용되었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주인공 톰크루즈는 애플의 제품을 이용했다.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에서 외계인의 우주선을 무력화시킬 때 사용하는 노트북 컴퓨터 역시 애플 제품이었다. 영웅들이 등장하는 인기 드라마인 <히어로즈>, <24>,  에서도 주인공들은 애플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간접광고 덕분에 ‘영웅은 맥을 쓰고, 악당은 PC를 쓴다.’는 농담이 생길 정도다. 영웅으로서의 애플 브랜드는 결국 스티브 잡스에 의해서 완성된다. 스티브 잡스의 인생 자체가 하나의 영웅 스토리를 보여준다. 그야말로 영화와 소설속의 주인공 같은 삶을 살아온 스티브 잡스지만 삶 자체가 너무나 기가 막혀서 작가의 상상력만으로 창작된 스토리라고 하면 허무맹랑하다는 비난을 들을 만한 게 바로 스티브 잡스의 인생이다. 스티브 잡스가 처음부터 잘사는 부모님을 만나서 실패의 경험 없이 승승장구했다면 지금처럼 열광적인 마니아들을 거느릴 수 없을 것이다. 혼자 힘으로 자수성가했고, 그것도 여러 번 성공과 실패를 반복했으며 벌떼처럼 달려드는 비평가들의 혹평을 이겨내고 성공했기에 스티브 잡스에 대한 영웅 이미지가 더욱 극대화될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의 영웅적인 삶과 이미지들이 그대로 애플 브랜드와 결합되면서 최고의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냈다. 스티브 잡스는 곧 애플이고, 애플을 통해서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를 본다. 스티브 잡스의 영향력은 IT 세상에서 따라잡을 사람이 없다. 거액의 돈을 들여서 슈퍼스타에게 휴대폰 광고를 맡겨봐야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 연설만큼의 효과를 얻을 수 없다. 스티브 잡스 자체가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세계 최고의 슈퍼스타이기 때문이다. 그가 출연하는 키노트 연설은 전 세계 언론을 통해서 공짜로 대서특필되기 때문에 훨씬 효과적으로 대중들에게 제품을 알릴 수 있다. 스티브 잡스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한 사람의 영웅적인 삶이 회사의 브랜드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보다 더 잘생기고, 목소리도 좋은 사람이 더욱 활기차고 멋지게 프레젠테이션을 한다고 해도 절대로 그 같은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할 것이다. 4번이나 전체 산업계를 뒤바꿨다는 화려한 이력이 있기에 그의 한 마디에 전 세계가 이목을 집중하는 것이고, 그가 말하는 미래에 동참하려는 것이다. 애플의 브랜드 파워에 있어 스티브 잡스라는 한 개인의 삶이 절대적인 공헌을 하고 있는 만큼 애플의 불안 요인도 그에게 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절대로 대체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애플의 최대 불안 요인은 스티브 잡스의 부재이다. 스티브 잡스의 건강 이상설이 퍼지면 애플의 주가는 요동을 친다. 스티브 잡스라는 한 개인의 브랜드가 회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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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컴퓨터를 사는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창조적인 영혼들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주어진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도구들을 이용해서 세상을 바꾸려 합니다. 우리는 바로 이처럼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을 위한 도구를 만듭니다.


‐ 스티브 잡스, 1997년 보스턴 맥 월드 중에서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24)


돌아온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남겨진 자산은 브랜드와 맥 OS 두 가지라고 칭할 만큼 애플의 브랜드는 실로 막강하다. 애플에게 강력한 브랜드가 없었다면 애플은 부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애플이 이렇게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컴퓨터라는 최첨단 기계에 인간의 감성을 절묘하게 결합시켰기 때문이다. 기계에 감성을 불어넣을 줄 아는 애플은 시작부터 다른 컴퓨터 회사와는 달랐다. 다른 컴퓨터 회사들은 회사 이름으로 MITS, 코모도어처럼 사람들이 기억하기 힘든 난해한 용어를 사용했지만 스티브 잡스는 회사 이름과 제품명에 사람들에게 가장 친근한 과일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컴퓨터를 모르는 일반 대중들에게도 회사를 쉽게 알릴 수 있었다. 


마케팅 방식에서도 애플은 혁신을 가함으로써 다른 회사와 차별화된 성공적인 회사로 각인될 수 있었다. 사실 컴퓨터 애호가들에게 애플1 컴퓨터를 판매하던 시절에는 스티브 잡스 자신도 다른 컴퓨터 회사와 별반 다를 바 없었기 때문에, 광고전단에 온통 기술과 성능을 자랑하는 글들을 채워 넣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IT업체들은 자사의 기술을 자랑하기 위해 지면 전체에 제품의 스펙과 기능을 빼곡히 적어 넣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꽉 채우지 않으면 자랑할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는 인식마저 있다.


애플2 컴퓨터 때는 완전히 달랐는데, 홍보 전문가 레지스 맥키너 덕분이었다. 레지스 맥키너는 마이크로프로세서 회사인 인텔을 광고할 때 컴퓨터 잡지가 아니라 <플레이보이>에 사람의 감성에 어필하는 광고를 만들어 화제가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레지스 맥키너의 이런 광고 방식에 매료되어 홍보를 부탁한다. 레지스 맥키너가 탄생시킨 광고는 확실히 특별했다. 다른 회사의 광고가 기술과 기능을 통해서 고객의 이성에 호소했다면, 애플의 광고는 철저히 인간의 감성을 자극했다.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여성이 사랑스런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보는데 마침 남편은 애플2 컴퓨터를 이용해서 업무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애플2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은 능력 있는 남성이며, 행복한 가정에서 아내에게 사랑받는 사람일 것이라는 이미지가 그대로 느껴진다. 감성 마케팅이란 그 제품을 이용한 사람에게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마치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면 뉴요커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듯이 말이다. 


특히 감성 마케팅은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할 때 하나의 기준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미국에서 하이네켄 맥주를 마시면 화이트 컬러로 여겨지지만, 밀러 맥주를 마시면 블루 컬러라는 인식이 있다. 픽업형 트럭을 몰면 시골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유틸리티 차량을 운전하면 도시 사람으로 여겨진다. 제품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성향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인데, 애플 제품이 바로 그렇다. 애플이 추구하는 감성 마케팅 덕분에 애플 제품을 이용하는 사람은 남보다 앞서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선구자의 느낌을 준다.


정치적인 성향을 보면 보수적인 공화당보다는 진보적인 민주당에 가까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그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준을 사용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오바마 대통령이 준을 사용한다는 사실에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통령이 MP3 플레이어로 무엇을 사용하는지를 보도하는 것도 신기하지만 이에 대해서 인터넷에서 한바탕 논쟁이 벌어진 것은 애플이 세상에 심어놓은 이미지가 그만큼 강력하기 때문이다. 오바마처럼 시대를 선도하는 인물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니라 애플의 제품을 선호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보도를 접하고, 이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 사람들이 결국은 기사 자체의 신뢰성을 믿지 못한다는 반응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렇게 논란이 계속되자 결국 오바마의 대변인은 대통령이 MP3 플레이어로 애플의 아이팟을 사용하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발표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2003년 한 소녀가 선거방송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들에게 사용하는 컴퓨터가 맥인지 아니면 윈도우 PC인지를 물었던 적이 있다. 대부분의 후보는 PC를 사용했지만 몇몇 후보가 자신이 사용하는 컴퓨터가 맥이라고 답했는데 그럴 때마다 방청객들의 환호소리가 들렸다. 방청객의 환호는 애플을 사용하는 사람들끼리의 유대감을 보여주는 사례인 동시에 사용하는 컴퓨터를 통해서 그 사람의 정치적인 성향까지도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사실 민주당과 애플은 매우 친근한 관계다. 스티브 잡스는 열혈 민주당 지지자로서 클린턴 대통령과 친분을 맺었으며,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앨 고어 전 부통령은 애플의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200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선출을 위한 전당 대회에서 사용된 모든 컴퓨터는 애플의 아이맥이었다. 변화를 주도하는 애플이 정치적으로 민주당과 비슷한 이미지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한편 마이크로소프트는 공화당과 민주당 양쪽에 똑같은 정치헌금을 내면서 중립을 지키려고 한다. 그러나 민주당 정부에서 시작된 반독점법 문제가 공화당 정부에서 빌 게이츠의 뜻대로 종결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정치적으로 공화당의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유행을 주도하는 브랜드라는 애플의 이미지는 90년대 중반 회사의 위기와 함께 추락하고 만다. 스티브 잡스가 가장 안타까워했던 것도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애플의 브랜드였다. 애플의 시장점유율은 10% 내외였지만, 이는 시대를 선도하는 소수자의 이미지로 적극 활용되었었다. 애플의 매킨토시는 다른 컴퓨터보다도 비쌌고, 매킨토시를 사용하는 사람은 단순 사무직보다는 디자이너나 뮤지션 등 전문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95가 등장하고 시장점유율에서 압도적으로 밀리게 되자 애플에 대한 이미지마저 변질되고 말았다. 애플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은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괴짜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Think Different를 들고 나왔다. 소수가 된다는 것은 시대에 뒤쳐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대를 앞선다는 이미지를 담은 Think Different를 통해 애플의 브랜드는 겨우 회복되기 시작한다.


애플은 Think Different 이후 더욱 노골적인 스위치(Switch) 캠페인을 시작했다. 스위치 캠페인에는 PC와 맥으로 이름 붙여진 두 명의 배우가 등장한다. PC라고 말하는 배우는 좀 둔하고 어수룩하게 행동하는 데 비해, 맥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배우는 스마트하고 쿨하게 행동한다. 은유적으로 PC와 맥을 표현하던 애플이 이제는 외모에서부터 확연히 차이가 나는 두 배우를 동원해서 PC와 맥을 의인화한 것이다. 광고 속 주제는 매번 바뀌지만 패턴은 항상 같다. PC라고 불리는 배우가 PC로 인해서 겪게 되는 문제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면, 맥으로 이름 붙여진 배우가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데 결론은 PC에서 맥으로 바꾸라(Switch)는 이야기다. 재치 넘치는 유머가 듬뿍 담겨진 광고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웃으면서 넘어갔지만 시간이 갈수록 배우 속 캐릭터가 PC와 매킨토시로 옮겨가면서 제품 이미지를 더 고착화시켰다. PC는 어수룩하면서도 올드한 아저씨가 되었고, 맥은 산뜻하면서도 세련된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정형화되어가자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처음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인기 코미디언인 사인 필드와 빌 게이츠를 등장시켜서 스위치 광고에 대항했지만 별 반응을 일으키지 못하고 2주 만에 중단된다. 그 후 마이크로소프트는 전 세계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I’m a PC!”를 외치는 새로운 광고를 선보인다. 광고 속에서 PC를 외치는 사람은 에바 롱고리아(Eva Longoria) 같은 유명배우에서 우주비행사와 박사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대거 출연하였다. 한 마디로 애플의 광고처럼 PC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둔하고 답답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사실 I’m a PC가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누구도 분명하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컴퓨터에도 감성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애플이 보여주었고, I’m a PC로 마이크로소프트가 반응했다는 것이다. 


컴퓨터라는 것은 성능 좋고 가격만 싸면 전부인 시장이다. 필자 역시 컴퓨터는 결국 성능과 가격이 좌우하는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컴퓨터 시장에서도 역시 감성은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애플이 증명하고 있다. 사용하는 컴퓨터로 그 사람의 성향을 알 수 있고 사용하는 컴퓨터로 좀 더 쿨하고 특별한 사람처럼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애플 감성 마케팅의 소중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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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야심가들이 제품을 만들 때는 순차적으로 개발을 진행해서는 안 됩니다. 도전이 정말 복잡하다면 좀 더 협력적이고 통합적인 방식으로 제품을 개발해야 합니다.


- 조너선 아이브, 2005년 <타임>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23) 



애플의 디자인 프로세스는 우선 실물 크기의 프로토타입을 직접 만들어 보고, 이를 수정하는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렇게 프로토타입을 직접 만드는 관행은 1980년대 초반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매킨토시 역시 애플의 다른 제품처럼 개발 초기부터 디자인 작업이 병행되었다. 애플2 컴퓨터를 담당했던 디자이너인 제리 메녹이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을 개발팀원들에게 공개하면, 개발팀원들은 자신의 생각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제리 메녹은 팀원들의 의견을 참조해서 매달 조금씩 달라진 프로토타입을 공개했다. 팀원들이 변화된 모습을 비교할 수 있도록 이전 모형들과 나란히 전시했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디자인이 최종 확정되는 날에는 팀원들이 모두 모여서 샴페인 파티를 열었다. 


당시 매킨토시의 프로토타입은 석고 모형이었지만, 지금은 실제 디자인과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 본다는 차이점이 있다. 애플 시제품은 조금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하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만든다. 이 때문에 애플은 시제품을 만드는 단계에서부터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다. 이 부분이야말로 다른 회사와 애플의 근본적인 차이다. 사실 시제품을 많이 만들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실패작을 많이 만든다는 것을 뜻한다. 애플 디자이너들은 실패작을 만드는 데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자신들이 실패작을 만들어낸 것을 기뻐한다. 틀렸다는 것은 곧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조너선 아이브는 애플 디자인팀의 장점은 틀린 것을 추구할 줄 아는 호기심과 탐구정신에 있다고 밝힐 정도다. 실패작을 만드는 과정에서 얻게 된 경험은 디자인팀 전체의 학습능력을 발전시키고, 더욱 뛰어난 디자이너로 성장시킨다. 당장의 실패가 나중에 발생하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애플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실패작을 연발해도 새로운 시제품을 다시 만드는 데 부끄러움이 없다.


애플에서 프로토타입을 제작할 때는 10:3:1의 법칙으로 작업한다. 우선 디자이너들이 마음껏 자유롭게 10개의 프로토타입을 만든다. 10개의 프로토타입은 콘셉트 자체가 완전히 다른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완성된 프로토타입 중 3개를 선택한 후 몇 개월에 걸쳐서 선택된 프로토타입을 끊임없이 수정한다. 마지막에는 이 3개의 프로토타입 중 최종 디자인을 결정하게 된다.


디자인팀에는 브레인스토밍 회의와 제작회의 두 가지 종류의 회의가 있다. 브레인스토밍 회의는 그야말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든 것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회의인 반면, 제작회의는 철저히 현실성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회의다. 이때는 엔지니어와 협의하면서 제조 전반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된다. 애플의 디자인팀을 이끌었던 로버트 브르너에 의하면 애플에서 디자이너의 업무 시간은 디자인 콘셉트를 잡을 때 대략 15%에서 20% 정도만을 쓰고, 나머지 시간에는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고 한다. 아무리 훌륭한 디자인도 대량생산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애플 디자이너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항상 제조과정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해야 하며, 디자인 콘셉트가 제품에 제대로 구현되어야 하는 만큼 디자이너들이 직접 제조과정에 참여한다.


애플의 디자인 자체가 독창적이고 시대를 앞선 만큼 생산공정 역시 만만찮다. 다른 회사라면 생산의 어려움 때문에 포기하는 디자인이라도 애플은 많은 돈을 투자해서 직접 새로운 공법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매킨토시는 독특한 외관 때문에 대량생산이 힘들었지만 매킨토시만의 독특한 사출성형 방식(플라스틱 같은 가소성 재료를 열로 녹여서 원하는 모형의 형틀에 압력을 가해 찍어내는 제조 방법)을 만들어냈다. 하나의 제품에 다른 색을 동시에 입히는 방법을 더블 샷(Double Shot)이라고 한다. 더블 샷은 아이팟 크기의 제품에는 적용하기 힘들지만 애플은 더블 샷 기술을 보유한 회사를 찾아가 열심히 설득했고 결국 공장은 애플을 위해서 더블 샷 기술을 적용한 공정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디자이너들은 하청을 주는 공장 관계자와 만나서 생산공정에 대해서 직접 협의를 하는데 때로는 공장이 있는 아시아에 출장 가서 몇 개월씩 머무르기도 한다. 제조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만큼 외주 공장에서는 애플 디자인팀과 함께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애플의 제품은 만드는 것 자체가 까다롭다. 애플의 노트북에는 어떠한 나사도 들어가지 않아야 하는데 공장에서는 이를 위해서 기존에 없었던 제조공정을 배워야만 했다. 덕분에 공장은 더 뛰어난 기술력을 확보하면서 새로운 미래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애플 디자이너들은 재료에도 많은 시간을 투입한다. 2010년 조너선 아이브는 <Core 77>과의 인터뷰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컴퓨터의 3차원 기술에 너무 의존하지 말 것을 충고한 적이 있다. 3차원에 의존하면 재료가 가지는 중요성을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디오가 아니라 직접 재료를 이용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봐야 한다는 것이 조너선 아이브의 생각이다. 실제로 조너선 아이브는 끊임없이 재료에 대해서 연구하고 실험하면서 재료가 가진 속성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재료 연구가 조너선 아이브의 활약 덕분인지 실제로 애플은 플라스틱, 티타늄,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유리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서 제품을 만들어 오고 있다. 


재료에 대한 이런 노력 덕분에 한때 가졌던 환경오염기업이라는 불명예를 재빠르게 벗어 던질 수 있었다. 2007년 그린피스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기업으로 애플을 선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언론에 알렸다. 이로 인해 애플의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받았지만 애플의 디자인팀은 알루미늄을 이용한 노트북을 만들어냈다. 재활용이 가능한 알루미늄을 사용한 덕분에 애플은 환경오염기업이라는 주장에 대해 떳떳이 반론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애플은 제품 제작에 알루미늄과 같은 친환경 재료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덕분에 2010년 그린피스에서 발표하는 환경보호 부분에서 최고 수준인 별 4개를 받을 수 있었다.


애플 디자인 성공 신화의 비밀


* 디자인은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작동 방식이다

외형은 디자인의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며, 좋은 디자인을 하려면 사물의 본질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어야만 한다.


* 디자인은 제품을 특별하게 만든다

IT제품이라도 패션 분야처럼 디자인만으로도 제품의 차별화를 이루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 극도의 세밀함을 추구한다

남들이 보지 않는 컴퓨터 케이스 안의 전선 하나까지 배려하는 디테일이 애플의 제품을 살린다.


* CEO의 감각과 의지가 필요하다

단순히 디자인에 많은 돈을 투자한다고 해서 좋은 디자인이 나오지는 않는다. 훌륭한 디자인을 알아보고 힘을 실어 주는 CEO의 역할이 필요하다.


*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는 별개가 아니다

애플은 순차적인 개발 방식이 아니라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처음부터 함께 통합적으로 개발을 진행한다.


* 디자이너들을 위한 독립된 환경을 배려한다

애플 디자이너들은 외부 환경에 영향 받지 않고, 창조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독립적인 장소에 사무실이 배치되었다.


* 디자인도 팀 스포츠다

디자인은 개인의 창조성도 중요하지만 서로간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서 더욱 멋진 디자인을 만들 수 있는 팀 스포츠다.


* 디자인은 대량생산을 통해서 완성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디자인이라도 제품으로 대량생산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애플의 디자이너는 업무의 80% 정도를 제조 부분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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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참 재미있는 단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디자인을 단순히 제품의 외형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사실은 제품이 어떻게 작동하느냐를 의미하는 것이죠. 맥의 디자인은 단순히 외형만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외형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작동 방식입니다. 정말로 디자인을 잘하고 싶다면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즉 제품의 본질에 완벽하게 통달해야만 합니다. 겉핥기가 아니라 완벽하게 제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열정적으로 헌신을 다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일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지요.


- 스티브 잡스, 1996년 <와이어드> 인터뷰 중에서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21) 



애플의 디자인 방식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CEO인 스티브 잡스가 회사 내에서 그 누구보다도 디자인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뛰어난 감각으로 직접 디자인을 챙긴다는 점이다.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에 대한 방향을 결정하고 디자이너를 직접 영입하는 일을 해왔다. 애플2 컴퓨터를 만들 때는 제리 마녹을, 매킨토시 이후에는 하르무트 에슬링어를 스카우트했다. 애플에 돌아온 직후에도 세계 제일의 디자이너를 데려오려 했지만 조너선 아이브를 보고는 즉시 그의 재능을 간파했다. 디자이너의 재능을 알아보는 스티브 잡스의 능력은 뉴욕 맨해튼에 있는 애플스토어를 디자인할 때도 잘 드러난다. 스티브 잡스는 직접 건축가 피터 보울린(Peter Bohlin)을 고용했다. 피터 보울린은 한 번도 매장을 디자인해 본 적이 없었지만 그가 디자인한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보고는 그 천재성에 감탄해서 애플스토어 디자인을 맡긴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스토어가 물건을 파는 장소가 아니라 소셜 스페이스(Social Space)가 되어야 하며, 아이폰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기념사진을 찍고 싶을 만큼 멋진 장소가 되기를 바랐다. 당시 애플이 뉴욕에 임대한 건물은 지하에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사람들을 지하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뭔가 특별한 것이 필요했다. 매장 디자인을 맡은 피터 보울린은 거대한 사각형의 유리로 입구를 만들었다. 화려한 사각형의 유리에서 뿜어내는 환한 빛이 지나가는 사람 누구에게나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시켰고, 지하에 내려오는 행동은 마치 하늘에서 땅으로 강림하는 그런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애플스토어는 애플이 만들면 무엇이든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다는 저력을 충분히 보여 주었다. 피터 보울린이 디자인한 뉴욕 맨해튼의 애플스토어는 개장할 때부터 큰 화제를 불러 모으더니 지금은 어느덧 뉴욕의 중요한 관광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코넬대학교는 사진 공유 사이트인 플리커에 올라온 사진 중 350만 개를 조사했더니, 뉴욕 5번가의 애플스토어가 뉴욕에서 사람들이 가장 사진을 많이 찍는 장소 중 5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전 세계의 관광지와 비교해도 28위에 이를 정도다. 어느덧 여행객들이 뉴욕을 가면 맨해튼의 애플스토어를 방문하는 것이 중요한 코스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디자이너를 보는 능력이 뛰어난 만큼 스티브 잡스는 디자이너가 원하는 작업 환경을 구축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 스티브 잡스는 자동차 전시회에서 공개되는 멋진 콘셉트 카들이 4년이 지나 막상 출시되었을 때는 엉망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에 의하면 디자이너가 아무리 훌륭한 디자인을 만들어도 엔지니어들이 여러 기술적인 이유를 들이대면서 반대하기 시작하면 디자인은 길을 잃고 헤매기 마련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개발 모델 대신 개발 초기단계부터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이 모두 모여서 디자인을 같이 하는 통합적인 개발 방법을 구축했다.


협력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한 통합적인 개발 환경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엔지니어보다 디자인팀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 전화번호부 하나를 보여주면서 매킨토시의 크기는 이것보다 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전화번호부보다 작은 컴퓨터는 상상하기도 힘들었지만, 개발자들은 스티브 잡스의 고집을 꺽을 수 없었고 결국 그의 뜻대로 매킨토시를 만들기 위해서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매킨토시에서 보듯이 디자인을 결정하면 엔지니어가 따라가는 개발 방식이 애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애초에 스티브 잡스가 디자인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엔지니어들은 디자이너가 원하는 디자인을 제품으로 완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엔지니어들이 디자이너가 원하는 것을 항상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불행히도 그렇지 못할 경우 애플은 기술적으로 문제인 상품을 만들어낸다. 


2001년 출시된 파워맥 G4 큐브는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극찬을 들었다. 특히 컴퓨터로는 이례적으로 뉴욕 박물관에 전시되어 예술품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작고 아름다운 사각형 디자인 때문에 발열 문제가 심각했는데, 거기에 투명 케이스에 쉽게 금이 생기면서 갈라지기까지 했다. 아이폰 4 역시 애플의 디자인팀이 엔지니어팀보다 강력한 집단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애플의 실패작들을 살펴보면 디자인에 대한 과도한 욕심에 비해 기술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디자이너가 기술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기술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결코 아니다. 디자이너 역시 엔지니어처럼 기술적인 소양을 가지고 있다. 아이팟 셔플을 만들 때 디자이너들은 손수 회로기판을 둘로 나누는 방법을 알아냈다. 이러한 디자이너의 아이디어 덕분에 기기의 크기는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었다. 


애플의 디자인팀은 애플의 조직구성이 그렇듯이 철저한 소수정예를 추구한다. 애플은 IT업계를 리드하는 업체로 수많은 히트작을 내놓고 있는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디자이너는 고작 10명 내외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소수정예를 추구하는 건 사람이 많다고 해서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것도 아니며, 소수의 인재가 팀워크로 움직이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견해 때문이다. 애플 디자인팀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디자인팀을 이끄는 조너선 아이브 자체가 영국인 출신이고, 내부 디자이너들은 일본, 독일, 뉴질랜드, 이탈리아에서 온 다국적팀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자인 업계에서 가장 훌륭한 디자이너들을 스카우트한 만큼 연봉도 업계 평균의 50%가 넘는 20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 디자인팀은 단순히 일만 같이 하는 사이가 아니다. 저녁식사도 함께 하고, 함께 여행을 떠나는 등 모두가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보통 개인의 창의성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직원들에게 각각 개인 사무실을 제공하기 마련인데 애플 디자이너들에게는 개인 사무실 자체가 없다.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통한 협동 관계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만큼 디자인팀에는 아예 칸막이조차도 설치하지 않았다. 애플 디자인팀은 하나의 사무실 공간 안에서 음악을 함께 들으면서 모두가 얼굴을 맞대고 공동작업을 한다. 조너선 아이브가 애플 제품 대부분이 스튜디오 안의 작은 부엌에서 함께 피자를 먹으면서 태어났다고 말할 정도로, 애플의 훌륭한 디자인은 결국 끈끈한 팀워크를 바탕으로 태어난 협력과 협동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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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목수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해서 장롱 뒤에 형편없는 목재를 쓰진 않습니다.

- 스티브 잡스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21)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스티브 잡스는 감성 지향적이고, 빌 게이츠는 이성 지향적이다. 이러한 차이는 디자인을 바라보는 견해에도 큰 차이를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만들 때부터 디자인이 제품의 중요한 차별점이 될 수 있으리라고 봤다. 애플에 돌아온 그는 디자인이 애플을 부활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아이맥을 탄생시켰다. 빌 게이츠는 아이맥의 독특함은 색깔밖에 없다면서 아이맥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봤지만 아이맥은 빌 게이츠의 발언 이후에도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 가격이 내려가면 시장은 활성화되고, 디자인과 패션은 더욱더 중요해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손목시계가 단순히 시간이 정확해서가 아니라 디자인 때문에 팔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디자인에 대한 그의 신념은 아이팟 시대가 도래하면서 확실한 보상을 받게 된다. 사실 아이팟은 기능이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가격도 비쌌지만 MP3 플레이어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애플이 아이팟에 ‘디자인과 패션’이라는 요소를 접목시킨 덕분이었다. 아이팟 이전에도 분명히 애플 컴퓨터의 디자인들은 뛰어났다. 그러나 컴퓨터는 집에서만 사용하는 기기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어도 매우 한정적이다. 패션과 디자인은 자기만족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과시할 수 있을 때 더욱 빛나기 마련이다. 휴대용 기기는 항상 착용할 수 있기 때문에 밖에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즉시 자랑할 수 있다. 특히 아이팟은 목걸이나 반지 같은 패션 아이템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이를 명품업체들이 놓칠 리가 없었다. 구찌, 버버리, 루이비통 같은 명품 패션업체들이 아이팟을 위해서 가죽 케이스를 만들기 시작했고, 새로운 시장이 창조되었다. 아이팟을 통해서 애플의 뛰어난 브랜드 파워와 훌륭한 디자인 감각이 폭발하였고 이는 MP3 플레이어 시장을 독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아이폰은 아이팟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아이폰은 애플의 브랜드 파워 덕분에 명품백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모임에서 누군가 명품백을 들고 나오면 사람들이 명품백에 주목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듯이 최신 아이폰을 들고 모임에 참석하면, 똑같은 상황을 겪게 된다. 2010년 WWDC에서 스티브 잡스는 자신에게 온 이메일 내용을 공개했다. 카페에서 한 남자가 아이패드를 사용하고 있자 한 여성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서 아이패드는 마법 같은 기기라고 극찬했다는 이야기였다. 이렇듯 휴대용 기기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취향과 특성을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도구인 만큼 옷을 잘 입는 것만큼이나 이성으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애플은 디자인에 대해서도 확고한 철학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단순한 것이 곧 최고’라는 사고방식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조직과 제품 라인업을 단순화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제품 개발을 할 때도 기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단순함에 대한 집착은 디자인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애플 휴대용 기기는 배터리가 일체화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불만을 표해도 애플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애플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것을 디자인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받아들인다. 착탈식 배터리를 채용하게 되면 디자인에 이음새가 생기는데 극도의 단순함을 추구하는 애플 디자인팀이 이를 받아들일 리가 만무하다. 이음새뿐만 아니라 애플은 나사에 대해서도 참지 못한다. 어느 날 스티브 잡스는 디자이너에게 새로 개발하는 맥에는 나사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고 선포했다. 그런데 디자이너가 제품 하단에 나사가 하나 있는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나사를 발견한 스티브 잡스는 즉시 디자이너를 해고했다. 


나사 하나도 싫어하는 애플이 제품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을 허용할 리 없다. 그러나 전자제품은 필수적으로 몇 가지 제품에 대한 정보를 표시해야 하고, 애플은 고육지책으로 레이저를 이용해 필수 정보들을 새겨 버렸을 정도다. 단순함을 추구하는 애플은 리모컨을 만들 때 역시 다르다. 2005년 10월 스티브 잡스는 스페셜 이벤트에서 컴퓨터를 조종할 수 있는 리모컨을 발표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리모컨을 애플 스타일로 만들었다면서 버튼이 여섯 개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섯 개의 버튼으로도 고객이 원하는 동작을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음을 보여준 스티브 잡스는 경쟁 회사에서 만든 PC용 리모컨의 버튼이 40개가 넘는다는 사실을 비교하면서 여섯 개의 버튼밖에 없는 리모컨만큼 애플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자랑스러워 했다.


단순함을 추구하는 애플의 일화는 아이맥 G4를 만들 때 잘 드러난다. 신형 아이맥이 마음에 안 들었던 스티브 잡스가 집으로 조너선 아이브를 초대했다. 스티브 잡스는 부인이 정성스럽게 가꾸고 있던 텃밭 주변을 그와 함께 산책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정원에 있는 꽃을 보여 주면서 모든 요소는 그 자체로 작동해야 한다면서 불필요한 부분이 하나도 없는 단순한 디자인을 요구했다. 마침 옆에는 해바라기 꽃이 있었고, 여기에서 영감을 얻은 조너선 아이브는 해바라기 모양의 뉴 아이맥을 디자인하게 된다. 


이렇게 애플은 단순함을 추구하고 단순함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는다. 애플이 추구하는 단순함은 이미 복잡함의 과정을 거치고 여러 심사숙고 끝에 내려진 일종의 해결책을 뜻한다. 조너선 아이브는 “매우 복잡한 문제를 소비자들이 전혀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게 만들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단순성은 복잡성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다. 결국 애플의 디자인은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복잡함에서 누구도 쉽게 찾을 수 없는 단순함을 얻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함을 추구하는 애플 디자인의 또 다른 한쪽에는 디테일이 자리 잡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얼마나 세세한 것까지 집착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하나 있다.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보드가 예쁘지 않다며 불평했다. 개발자들은 누가 컴퓨터 보드 모양 따위에 관심이 있겠냐면서 스티브 잡스의 말에 반박했다. 그러자 스티브 잡스는 위대한 목수는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장롱 밑에 형편없는 나무를 쓰지 않는다며 오히려 큰소리쳤다. 이때 팀의 베테랑이었던 버렐 스미스는 컴퓨터 보드의 배선이 복잡한 것은 기술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항변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순순히 수긍할 사람이 아니었다. 보드를 깔끔하게 만들도록 새롭게 기판을 디자인하되 그래도 제대로 작동이 안 되면 그때 포기하자는 것이었다. 결국 5천 달러나 들여서 새롭게 기판을 만들었지만 작동되지 않아 다시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야 했다. 컴퓨터 내부의 디자인까지 신경 쓰는 스티브 잡스의 완벽주의는 여전히 애플의 디자인에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과거에 이루지 못한 꿈은 조너선 아이브에 의해서 현실이 되었다. 조너선 아이브의 책임 아래 나오는 애플의 매킨토시 내부는 깔끔하기로 유명하다. 애플은 박물관에 노트북을 전시할 때 일부러 내부를 분해해서 공개했다. 이때 조너선 아이브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도 몰두하는 자신들의 노력을 이야기하면서, 애플에서 일하는 가장 전형적인 작업 방식은 극도로 세밀한 부분을 디테일하게 신경 쓰는 것이라고 밝혔다. 



남들이 보지 않는 컴퓨터 내부까지 신경 쓰는 애플의 세세함은 제품 곳곳에서 발견된다. 애플은 포장 디자인에서부터 세심하게 고객을 배려한다. 아이맥을 예로 들면 배달된 상자를 열면 안에 스티로폼 조각이 보인다. 이를 꺼내면 아이맥의 상단부가 드러나면서 바로 손잡이가 보인다. 박스에서 컴퓨터를 쉽게 꺼낼 수 있도록 디자이너들이 세심히 배려한 부분이다. 컴퓨터를 꺼내고 나면 이제 소비자는 자신이 다음으로 할 일이 액세서리 박스를 꺼내는 것임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액세서리 박스를 열면 세 개의 선이 보인다. 각각 전기, 인터넷, 키보드에 연결시켜야 하는 케이블인데 한눈에 봐도 어떤 케이블이 어디에 꽂아야 하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쉽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컴맹이라도 이 세 개의 선만 연결하면 바로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당시 아이맥의 패키지 디자인은 고객을 생각하는 디테일한 구성이라는 극찬을 들었다. 



애플 컴퓨터는 사람들이 보는 앞면뿐만 아니라 뒷면까지도 세심하게 신경 쓴다. 특히 노트북의 경우 테이블에 놓고 사용하는 제품인 만큼 일반적으로 바닥 부분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데, 애플은 바닥 부분도 철저하게 신경 쓰기로 유명하다. 사용할 때 보이진 않지만 노트북을 들고 다닐 때를 생각해 정성스럽게 디자인한다. 애플스토어도 애플의 디테일이 돋보이는 공간이다. 아이맥이 인쇄된 광고지에서와 똑같이 보이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조명을 직접 테스트해서 선택할 정도였다. 뉴욕 5번가에 있는 철제 볼트가 마음에 안 든다고 스티브 잡스가 직접 볼트 전체를 교체하도록 명령을 내리기도 했었다. 아이팟의 경우 이어폰을 뺄 때 나는 소리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새로운 잭으로 교체하라고 명령한 스티브 잡스가 운영하는 회사답게, 애플의 디테일은 정말 대단하다. 약간의 디테일을 개선하기 위해서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애플은 휴대용 기기의 경우 사람들이 실제 들었을 때의 무게를 중요시 여기는데 어느 한쪽이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기 위해 부품 배치마저도 새로 할 정도다.



애플 디자인의 철학은 지금까지 설명하였듯이 ‘단순함과 디테일’ 두 가지로 요약된다. 단순함과 디테일은 별개의 철학이 아니라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 양 날개와 같은 것이다. 애플이 오직 단순함만을 추구한다면 애플의 디자인이 지금처럼 특별할 수 없다. 단순하지만 그 내부에 극도의 디테일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단순함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불필요한 것을 담지 않는 대신 디자인을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는 최고를 담아냈기 때문이다. 반면에 애플 특유의 디테일이 가능한 것은 애플이 단순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만약 애플이 화려함과 다양함을 쫓는 회사라면 애초에 디테일에는 한계가 있다. 회사는 자기만족을 위한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팔리는 상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당한 때에 적당한 제품을 내놓는 것이다. 특히 IT업계의 경우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기 때문에 발매시기를 놓치면 큰 손해를 입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제품의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디테일까지 생각한다면 제작기간이 한없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시간이 곧 돈이 되는 IT세상에서는 경쟁기업보다도 가능한 빨리 제품을 완성해서 발매해야만 한다. 


결국 애플이 단순함을 선택한 것은 욕심을 버리고 최선의 밸런스를 찾은 결과다. 애플에게는 제작 일정이 있고, 이를 맞추려면 무엇인가를 버려야만 한다. 그래서 애플은 무엇인가를 더하는 플러스 디자인이 아니라 무엇을 빼는 마이너스 디자인을 선택한 것이다. 더 이상 뺄 것이 하나도 없을 때까지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대신 남아 있는 최소한의 것에 대해서는 최고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로 자연스럽게 탄생한 것이 애플의 디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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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디자인은 이제 전설이 되었다. 애플의 디자인은 매혹적인 동시에 질투의 대상이 된다. (Technology Review "The Secret of Apple Design" 중에서)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20) 


애플은 그동안 수많은 혁신을 이루어냈다. 애플2 컴퓨터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창조했으며, 매킨토시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아이맥으로 USB와 WIFI 같은 신기술을 대중화하였다. 아이팟과 아이튠스는 음악을 듣는 방법에 일대 혁명을 불러일으켰고, 아이폰은 휴대폰을 재 발명해서 전 세계 이동통신 시장에 새로운 빅뱅을 불러오고 있다. 애플은 제품뿐만 아니라 디자인을 통해서도 업계 전체에 강한 충격파를 선사했다.


애플은 로고부터 다른 회사와 달랐다. 원래 애플의 로고는 공동 창업자였던 론 웨인이 직접 펜으로 사과나무 밑에 뉴튼이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하지만 애플이 정식회사가 된 이후에 스티브 잡스는 새롭게 로고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레지스 맥키너에게 디자이너를 물색해 달라고 했고, 롭 야노프(Rob Janoff)를 소개받는다. 스티브 잡스는 절대 귀여워 보이면 안 된다는 조건을 걸고 일을 맡긴다. 


롭 야노프는 사과 모양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버전의 로고를 그려왔는데 스티브 잡스는 애플2 컴퓨터가 컬러를 지원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로고에도 다양한 색상이 들어가기를 바랐다. 이를 참고로 롭 야노프는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모양에 무지갯빛의 화려한 색상이 칠해진 로고를 완성해낸다.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모양에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아담과 이브의 사과를 의미한다는 것에서부터 사과에 독을 넣어서 죽은 천재과학자 앨런 튜링을 기리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롭 야노프에 의하면 사과의 모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를 그려야만 했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체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야노프가 그린 로고는 스티브 잡스의 마음에 쏙 들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로고에 들어간 화려한 색상을 사용하게 되면 인쇄비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회사 로고에 3가지 이상의 색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금기 같은 것이 있었다. 애플 내에서도 회사 로고의 색상을 하나로 통일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스티브 잡스의 끈질긴 고집으로 무지갯빛 애플 로고가 정식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 화려한 색들이 회사를 좀 더 인간미 있게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늘의 애플을 만들어 놓은 애플2 컴퓨터 역시 컴퓨터 디자인의 혁명을 불러왔다. 애플2 컴퓨터는 업계 최초로 플라스틱 케이스를 사용하여 기존의 컴퓨터보다 훨씬 세련된 다자인을 선보였다. 물론 스티브 잡스의 노력의 결과다. 애플1 컴퓨터는 엄밀히 말하면 조립이었기 때문에 케이스가 필요 없었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마니아가 아니라도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대중적인 컴퓨터를 원했기에 누구에게나 친숙한 디자인이 필요했다. 스티브 잡스는 백화점을 돌아다니면서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을 연구했고, 컴퓨터가 가전제품처럼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플라스틱 케이스를 소재로 컴퓨터를 만들 결심을 한다. 마침 스티브 잡스는 휴렛 팩커드 출신의 프리랜서 제리 마녹(Jerry Manock)을 알게 되었고, 그에게 일을 맡길 수 있었다. 키보드와 본체 일체형으로 만들어진 애플2 컴퓨터는 플라스틱 케이스를 사용한 덕분에 좀 더 세련되고 산뜻한 디자인이 가능했다. 애플2 컴퓨터의 외형은 당시로는 획기적이었고, 다른 컴퓨터보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모습이 훨씬 깔끔하고 세련되었다. 그 후 개인용 컴퓨터 업체들은 애플의 영향을 받아서 컴퓨터에 플라스틱 케이스를 채용하기 시작했다.


애플2 컴퓨터의 성공 이후 스티브 잡스는 더욱더 디자인에 집착하게 된다. 애플이 디자인을 통해서 다른 회사와 차별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좀 더 과감한 시도를 계획한다.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를 찾는다는 각오로 유명잡지를 통해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한다. 백설 공주의 일곱 난장이에서 이름을 딴 제품을 디자인하는 미션을 통해 소니에서 디자인을 담당했던 독일 출신의 하르무트 에슬링어(Hartmut Esslinger)를 발굴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하르무트 에슬링어의 회사인 프로그 디자인(Frog Design)에 월 10만 달러라는 거액과 각종 추가경비를 청구할 수 있는 파격적 조건으로 애플을 위해 독점적으로 일한다는 계약을 맺는다. 


그 후 스티브 잡스와 애플2의 케이스 디자인을 맡았던 제리 마녹, 프로그 디자인은 힘을 합쳐서 이른바 ‘스노우화이트 디자인’을 완성한다. 케이스의 로고 모양이나 컬러 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뿐만 아니라 컴퓨터 표면 처리까지 담긴 애플 내부의 디자인 양식이다. 스노우화이트 디자인이 최초로 적용된 애플2 컴퓨터는 등장하자마자 놀라운 디자인으로 격찬을 들었으며, 1984년 <타임>이 선정하는 올해의 디자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스노우화이트는 매킨토시에 그대로 전수되었으며 이후 개인용 컴퓨터 업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스노우화이트 디자인은 10년이 넘는 동안 컴퓨터 업계의 교과서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애플2와 매킨토시로 컴퓨터 디자인의 새 바람을 일으킨 애플은 또다시 아이맥으로 새로운 시대를 연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하얀 베이지색의 컴퓨터 케이스는 애플이 만들어 놓은 표준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아이맥이 바로 그 벽을 깨버렸다. 사탕 같은 푸른 빛깔의 일체형 투명 케이스를 자랑하는 아이맥은 지금까지의 컴퓨터에서는 볼 수 없는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아이맥에서 구현한 화려한 색상과 속이 다 보이는 누드 디자인은 단순히 컴퓨터 업계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산업계 전체에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애플 입장에서 보면 아이맥은 단순한 히트 상품이 아니었다. 애플에서 스티브 잡스 다음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인 조너선 아이브를 세상에 알린 작품이라는 게 중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조너선 아이브는 대학교 때만 해도 컴맹 수준으로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매킨토시를 접하면서 그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매킨토시에 완전히 반해 버린 그는 누가 이렇게 훌륭한 매킨토시를 개발했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그는 애플과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애플이라는 회사의 매력에 빠져든다.


 조너선 아이브는 대학 졸업 후 탠저린(Tangerine)이라는 회사를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동으로 설립한다. 이때는 욕조, 변기, 세면대, 빗 등 다양한 소비자 제품들을 디자인했다. 1992년이 되자 애플에서는 디자인 회사인 탠저린에게 노트북과 관련된 디자인을 의뢰한다. 이때 조너선 아이브가 내놓은 디자인에 감명을 받은 애플 디자인팀은 조너선 아이브를 아예 본사로 스카우트하기로 결정한다. 평소부터 애플에 큰 호감을 가지고 있던 조너선 아이브는 탠저린이 직접 창업한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영국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면서까지 선택한 회사였지만 당시 애플의 상황은 기대 이하였다. 대학시절부터 애플에 대해 품고 있었던 환상과 사랑은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큰 좌절감을 선사하였다. 회사생활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었을 즈음에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돌아온다. 스티브 잡스는 디자이너에 대한 기대치가 누구보다도 큰 사람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조너선 아이브를 보고 그가 그토록 꿈꾸던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임을 알고 감격했다. 처음부터 스티브 잡스가 조너선 아이브를 알아본 것은 아니다. 무려 1년 동안이나 스티브 잡스는 조너선 아이브를 방치하였다. 나중에야 조너선 아이브의 존재를 알고 면담을 하기로 약속을 잡았는데, 이때 조너선 아이브는 바지 뒷주머니에 사직서를 넣은 채 스티브 잡스를 만났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는 조너선 아이브를 만난 후 그에게 중책을 맡기기로 결정했고, 그 첫 번째 작품이 바로 아이맥이었다. 아이맥의 성공은 흥행성 높은 스티브-조너선 쇼의 시작이었다. 스티브 잡스와 조너선 아이브는 매일 만나 업무를 이야기할 정도로 밀접한 사이가 되었다. 


아이맥으로 단단해진 둘의 밀월관계는 아이팟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아이팟은 휴대용 기기가 패션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것, 특히 뛰어난 색깔 하나가 제품 판매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여실히 증명했다. 아이팟 1세대에서 보여준 고급스러운 흰색과 검정색은 많은 화제가 되었다. 아이팟 나노의 경우 연필보다 얇은 두께와 작은 크기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아홉 가지의 화려한 색상으로 다양한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아이팟이 시장을 독점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애플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어폰이 흰색이라는 것 역시 아이팟이 다른 MP3 플레이어와 구분되는 중요한 디자인이었다. 


애플은 단순히 아이팟 본체와 색깔을 맞추기 위해서 이어폰을 흰색으로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흰색 이어폰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둘 흰색 이어폰에 대해서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초창기 흰색 이어폰을 낀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구별되었고 그만큼 멋져 보였다. 길거리에서 흰색 이어폰을 낀 사람들끼리는 일종의 유대감이 있었다. 애플 마니아들끼리만 느낄 수 있었던 친밀감이었다. 아이팟 이전에는 충성도 높은 애플 마니아라도 자신의 신분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흰색 이어폰은 애플 마니아라는 징표와도 같았다. 


아이팟을 초창기에 구매한 애플 마니아들은 일종의 광고판이 되어 주었다. 흰색 이어폰은 어디에서나 눈에 띄었고, 사람들은 그것이 아이팟이라는 애플의 새로운 MP3 플레이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리 곳곳에서 흰색 이어폰을 한 사람들이 늘어나자 아이팟의 판매량은 더욱더 가파르게 상승했다. 애플은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모두 검정색으로 실루엣 처리한 후 흰색 이어폰을 강조하는 영상을 만들어 광고에 적극 활용했다. 


흰색 이어폰은 어느덧 아이팟의 상징이 되었다. 애플이라는 쿨한 브랜드는 소수의 멋쟁이가 사용한다는 이미지였다. 그러다 보니 아이팟의 판매량이 늘어나면 애플의 쿨함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우려와 달리 아이팟은 음악의 대명사가 되어 갔고, 학생들 사이에서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하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모르는 사이 흰색 이어폰은 시대의 아이콘이며, 필수적인 패션 아이템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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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주에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여기에 왔다. 그렇지 않다면 왜 우리가 여기에 있겠는가?


‐ 스티브 잡스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19)


애플에서 일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폰 개발팀은 발표 3개월 전에는 퇴근은커녕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매일 개발에 나서야 했다. 애플 제품들은 발매주기가 있기 때문에, 직원들은 출시일을 맞추기 위해 계속되는 밤샘작업에 주말과 휴일까지 반납하면서 일한다. 일 많기로 소문난 실리콘밸리에서도 지독한 편이다. 또 스티브 잡스의 기대치는 누구보다 높기 때문에 이에 따른 압박감도 보통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은 해고당하기를 두려워할 뿐 정작 먼저 그만두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막상 해고를 당해도 오히려 회사 사정을 먼저 이해해줄 뿐만 아니라 회사를 그만둔 다음에도 애플이 필요하다면 다시 달려 들어가 일을 맡는다. 애플에 대해 충성심을 가지는 소비자만큼이나 직원들의 애사심 역시 만만찮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애플 직원들은 회사를 사랑할까?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우선은 애플이 사람을 고용할 때 애플을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뽑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사랑하는 사람을 뽑으면 다른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애플을 사랑하는 직원은 애플에게 최선이 되는 일들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애플을 사랑하는 사람을 뽑으니 애초부터 애플 직원들의 충성심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애플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까? 애플은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기업으로, 그들의 제품은 전 세계에서 명품취급을 받으며 기록적인 판매량을 가진 회사인 만큼 애플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그 어떤 기업보다 많을 것은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애플에 들어오기 전에 호감을 가지는 것과 막상 애플에서 일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일단 들어온 직원이 회사에 애사심을 가지고 일하고 싶은 곳이라 여기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필요하다. 스티브 잡스는 <포춘>에서 사람들이 왜 애플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가를 묻는 질문에 다른 회사에서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미 대부분의 PC 회사에서는 엔지니어링이 사라졌으며, 다른 소비자 가전업체들은 소프트웨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예로 맥북 에어를 들며, 맥북 에어는 운영체제와 하드웨어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제품으로 이런 긴밀함은 윈도우와 델 노트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스티브 잡스의 발언을 보면 직원들이 애플을 사랑하는 것은 결국 애플에서만 제공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일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실 개발이라는 것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단순히 사회적인 성공과 편안함을 찾는다면 개발자의 길은 별로 추천하고 쉽지 않다. 특히 컴퓨터 업계는 기술 변화가 엄청나다. 그래서 어제까지 어렵게 익힌 기술이 오늘부터는 전혀 소용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끊임없이 자기 발전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곳이 개발자의 세계다. IT업계는 하루라도 빨리 더 좋은 기능으로 무장한 신제품을 내놓기 위한 기업 간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개발자들의 업무량 또한 만만찮다. 이는 국내 개발자도 마찬가지다. 


결국 개발자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를 견뎌낼 수 있는 강심장과 뛰어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IT의 숙명이기도 하다. 한 달이 멀다하고 새롭게 발표되는 IT기업의 기술과 제품에는 개발자들의 땀과 눈물이 스며들어 있다. 고생이 숙명이라면 개발자는 결국 좀 더 멋지고 매력적인 일을 하고 싶지 않을까?


애플에는 다른 회사가 제공해 주지 못하는 애플만의 것들이 있다. 사실 PC 업계에서의 기술이란 얼마나 싸게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어차피 소프트웨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책임지고, 하드웨어는 인텔을 중심으로 여러 핵심적인 기술을 공급받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새롭게 창조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애플 역시 하드웨어 대부분의 부품을 공급받지만 여기에 소프트웨어를 결합함으로써 다른 회사가 만들지 못하는 애플만의 제품을 만든다. 사람이란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것을 행함으로써 스스로 특별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데 애플 개발자 역시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애플 직원의 충성심을 자극하는 또 다른 요소는 사명감이다. <위대한 경영의 요소 12가지>라는 책을 보면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은 회사를 다니는 목표가 세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첫째는 돈을 벌기 위해서 다니는 사람, 둘째는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서 다니는 사람, 마지막 세 번째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 다니는 사람이다. 세 부류 중 가장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회사를 다니는 사람은 세 번째 사람이라고 한다. 스티브 잡스는 동기가 사람을 움직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사명감을 자극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끊임없이 애플이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든다는 점을 강조한다. 


1980년대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가치’라는 글을 작성한 적이 있다. 이 글은 직원들의 사명감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으로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돈을 버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여기에 있다.”라는 구절이 특히 인상적이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들이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면서 사람들의 동기를 자극한다. 


스티브 잡스가 존 스컬리를 회사에 스카우트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펩시에서 잘 나가던 존 스컬리에게 “평생 설탕물만 팔면서 살 것이냐,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얻고 싶으냐.”는 말을 던져서 존 스컬리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인간의 사명의식을 자극하여 사람을 불러 모으는 최고의 동기부여다. 


또 1997년 보스턴 맥 월드에서는 “애플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은 창조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그들은 단순히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다. 애플은 이처럼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을 위한 도구를 만든다.”고 했다. 애플 제품을 사랑하는 사람을 특별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그들을 위해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사명감을 불어넣은 말이다.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을 통해 사람들의 삶 속에 다시 음악이 녹아들 수 있도록 한 일이야말로 멋진 일이며, 이렇게 작은 일로나마 애플은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스티브 잡스의 인터뷰들을 보면 세상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회사로서 애플의 역할을 강조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애플스토어 역시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음을 생각해 보면 애플 스스로 사명감을 꽤 의식하고 있는 회사임을 알 수 있다. 애플이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는 발언을 자주 하는 것은 회사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것에만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Think Different가 일반 대중들뿐만 아니라 회사 직원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 주었듯이 사명감의 강조는 직원들의 동기를 자극한다. 스티브 잡스의 발언은 직원들에게 당신들이 하는 일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신성한 행위라며 사명의식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명의식은 결국 직원들이 일에 더 열정을 가지게 만들고, 회사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준다.


애플 개발 신화의 비밀


* 철저한 소수정예를 추구한다

애플은 팀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소수정예를 유지한다.


* 환상적인 삼두체제를 구축한다

애플은 제품 개발을 책임지는 스티브 잡스를 필두로 생산과 제조를 책임지는 팀 쿡, 여기에 마케팅을 담당하는 필 실러의 환상적인 삼두체제로 이루어져 있다.


* 명확하고 단순한 조직을 만든다

애플의 제품이 그렇듯이 애플의 조직 역시 불필요한 것이 없이 단순하고 명확하다.


* 개발 지향의 문화를 만든다

아무리 영리하고 똑똑한 사람이 많아도 이들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강력한 제품 지향 문화 없이는 위대한 제품이 나올 수 없다.


* 평등문화를 뿌리 내린다

애플의 절대자 스티브 잡스마저도 전용 주차장이 없을 정도로 애플은 평등하다.


* 창조적 파괴에 앞장선다

애플은 과거의 업적에 연연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창조적 파괴를 추구한다.


* 직원들에게 사명의식을 불어넣는다

돈과 직위보다 세상을 더 나은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명의식을 가질 때 더욱 자신의 일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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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운동, 우드스탁(Wood stock), 그리고 장발조차도 모두 잊어버려라! 60년대의 유산은 컴퓨터 혁명이다.  

‐ 스튜어트 브랜드, ‘We Owe it all to the Hippies’, 1995년 <타임>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18)



애플의 성공은 단순히 하나의 기업이 성공했음을 뜻하지 않는다. 미국의 서부경제가 이제 동부경제와 당당히 경쟁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원래 미국 서부에는 대학졸업생들이 다닐 만한 회사가 거의 없을 정도로 동부지역에 기업이 몰려 있었다. 서부지역을 대표하는 명문 스탠퍼드대학교를 졸업해도 학생들은 일자리를 찾아서 동부로 떠나야만 했다. 스탠퍼드대학교의 프레드릭 터먼(Fredrick Terman) 교수는 우수한 인재들이 졸업하자마자 직업을 구하기 위해서 고향을 등지고 동부지역으로 떠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터먼 교수는 스탠퍼드대학교 주변에 연구시설을 마련해서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진 젊은이들이 누구나 자유롭게 창업하여, 훌륭한 기업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했다. 

그의 도움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다. 사실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도 진학과 취직을 위해서 동부로 떠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 둘이 동부에서 서부로 돌아오자 평소 그들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던 터먼 교수는 휴렛과 팩커드가 창업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회사 이름은 동전 던지기를 통해서 결정했다. 동전 던지기는 휴렛의 승리였고, 회사 이름은 휴렛&팩커드 즉 HP가 되었다. 차고에서 두 명의 젊은이가 538달러의 자본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현재 개인용 컴퓨터 세계 1위의 자리에 올랐고,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시작으로 칭송받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의 경제 주도권은 IBM과 AT&T 같은 대기업이 몰려 있던 동부지역에 치우쳐 있었다. IBM이 거인이었다면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은 꼬맹이들에 불과했다. 그런 상황에서 애플이 IBM과 당당히 경쟁한다는 것은 그동안 뒤쳐졌던 서부의 반격과도 같은 것이다. 두 회사의 문화를 보면 더 근본적인 차이를 알 수 있다. 동부지역의 기업들은 유럽과 교역을 하면서 발전했기 때문에 역사도 깊고 전통과 규율 같은 관습을 중요시 여기지만 서부는 달랐다. 오히려 서부지역은 보수 문화에 반기를 든 저항적인 히피문화의 탄생지로서 전통 관습 같은 것에 얽매이기를 싫어했다. 

이는 IBM과 애플의 복장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IBM은 복장도 엄격해서 무조건 하얀 셔츠에 넥타이를 한 양복을 입고 출근해야 했다. 이에 비해 애플은 스티브 잡스처럼 청바지에 운동화가 일상 복장이다. 애플에서 양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마케팅 담당자나 외부의 방문객 등 극히 일부이기 때문에 양복을 일상복으로 입고 다니면 촌스런 사람처럼 보이기 쉽다. 동부지역에 있던 펩시를 다녔던 존 스컬리가 애플에 와서 가장 먼저 겪어야 했던 실수는 혼자만 양복을 입음으로써 스스로를 애플과 다른 이질적인 존재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복장의 차이는 단순히 옷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 문화 전체를 지배하는 사상의 차이다.

IBM은 그야말로 어른의 회사이며 점잖고, 예의 바르고, 격식을 차리는 회사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답답하고, 권위주의적이며, 관료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 회사를 ‘캠퍼스’라고 부르는 애플은 그야말로 대학생들의 회사다. 애플 캠퍼스에는 여전히 대학생처럼 풋풋하고 활기차며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생기발랄함이 남아 있다. 그러나 팀워크를 생각하기보다는 개인주의로 흘러 무례하기 쉽고, 서부 개척시대의 무법자처럼 과격한 공격성을 드러낸다는 문제가 있다. 애플 일본의 지사장을 맡았던 하라다 에이코는 애플과 IBM의 차이를 로큰롤과 교향곡의 차이로 비교한다. IBM 직원들이 하모니를 소중히 여기는 교향곡 연주자라면, 애플은 자기 퍼포먼스를 생각하는 로큰롤 연주자라는 것이다. 하라다 에이코는 로큰롤 연주자가 모래알처럼 흩어지기 쉬운 위험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팀플레이를 통해서는 개인의 이노베이션이 일어나기 어렵다고 전했다.

애플과 IBM의 차이는 스티브 잡스가 주창한 해적 문화에서 더 극명한 차이를 가지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IBM PC에 대항하는 매킨토시를 만들면서 팀원들에게 ‘해적이 되자!’고 외쳤다. 이는 다른 기업과 애플의 정체성을 그대로 표현해 주는 구호였다. 해군은 기존에 있는 사물과 관습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지만, 해적은 끊임없이 이를 파괴하면서 살아간다. 해적이 됨으로써 단순히 IBM과 맞서 싸우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뤄낸 업적마저도 파괴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의미였다. 매킨토시팀은 사실 애플 내에서 이단아 같은 존재였다. 스티브 잡스가 의도적으로 다른 팀을 배제시켰기 때문이다. 애플을 먹여 살렸던 애플2 컴퓨터팀마저도 무시했다. 이로 인해 애플2 컴퓨터팀과 매킨토시팀 간에는 라이벌 의식이 생겼고, 나중에는 사사건건 대립하게 된다. 이러한 갈등은 스티브 워즈니악이 회사를 떠나는 중요한 이유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이를 창조를 위한 필연적인 고통으로 보았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2 컴퓨터마저도 파괴하고 매킨토시로 새로운 세상을 열고 싶었다. 말 그대로 ‘창조적 파괴’였다. 

애플과 IBM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창조를 위해서 자신도 파괴하는 것이 애플이다. 창조적 파괴는 현재의 애플에게는 숙명이다. 애플은 매년 새로운 아이폰을 내놓는다. 그런데 아이폰의 최고 라이벌은 다른 회사의 제품이 아니라 그들이 1년 전에 만들어서 발표한 구형 아이폰이다. 아이폰은 결국 자신의 과거를 스스로 파괴하고 죽일 수 있어야 빛난다. 애플은 1년 전에 위대한 제품을 만들었다고 자만했다가는 바로 나락으로 빠질 수 있는 회사다. 애플은 항상 스스로를 뛰어넘어야 한다. 애플에게 과거는 이제 극복해야 할 대상이며, 그들에게는 반드시 끊어버려야 하는 사슬과 같은 존재다. 그러니 해군처럼 안정된 직장에서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한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 애플은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자신이 이뤄낸 업적마저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뺏기 위해서 망망대해의 바다를 찾아 떠나는 해적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졌다. 애플의 이런 해적 정신은 Think Different로 구체화되었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자는 염원이 담긴 Think Different는 원래 문법대로 하면 Thinking Different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문법이 파괴된 애플의 슬로건은 오히려 창조적 파괴를 추구하는 애플의 정신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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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적당한 사람을 얻게 된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잘 대우해야 합니다. (애플스토어 점원들은) 판매에 따라 수익금을 주는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동네에서 가장 뛰어난 맥 전문가라는 위치로 격상될 수 있었습니다. 

‐ 애플 부사장 론 존슨



인텔 CEO를 역임하게 되는 앤디 그로브는 회의에서 결정되는 여러 안건들이 자유로운 토론의 결과가 아니라 직위가 높은 임원의 의사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혁신이라는 것은 과거 기술의 한계를 발견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때 일어난다. 문제는 회사의 고위 임원들이란 과거 자신이 발견한 기술을 통해서 공을 쌓은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회의 결과가 직장상사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것이라면 회사는 결국 과거 방식만을 답습하게 되고 혁신은커녕 퇴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앤디 그로브는 회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맥 빠진 회의가 아니라 참가자들이 직위와 권력에 상관없이 각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때로는 일반직원과 임원사이에 전쟁 같은 토론과 논쟁을 벌이는 ‘건설적인 대립’이 일어나야 한다고 판단했다. 


건설적인 대립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회사 내에 평등문화가 깊이 뿌리박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회의실에서 아무리 계급장을 떼고 허심탄회하게 토론해야 한다고 강조해봐야 언제 어디서나 직원들은 상사의 눈치를 보는 존재다. 그래서 앤디 그로브는 인텔의 모든 직원은 평등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인텔의 직원은 그 사람이 임원이든 혹은 말단 직원이든 두 평 남짓한 공간에 똑같은 책상을 제공받는다. 주차장도 모두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 때문에 회사의 CEO였던 앤디 그로브도 조금만 늦게 출근한 날에는 주차공간을 찾기 위해서 회사를 몇 번이나 돌아야 했다. 이렇게 앤디 그로브가 솔선수범하며 겨우 회사 내에 평등주의가 자리 잡히자 인텔에서는 직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뿌리 내리게 되었다.


애플 역시 인텔의 평등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스티브 잡스가 해고된 후 한때 임원 위주의 권위적인 문화가 회사를 지배했지만 돌아온 스티브 잡스가 다시 평등문화를 되살렸다. 그는 전임 CEO였던 아멜리오가 사용하던 호화스러운 집무실을 폐쇄하고 회의실 옆 조그만 공간에 사무실을 차렸다. 이와 동시에 임원들의 중역실도 없애고, 인텔처럼 모든 직원들의 사무실 크기를 모두 같게 만들었다. 부사장급의 임원이 되어도 고작 창가 사무실을 얻을 수 있는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했을 뿐이다. 참고로 애플은 원래 파티션으로 각자의 위치를 나누었으나 소음문제로 인해 많은 불만이 쌓이자 파티션을 사용하지 않고 좀 더 독립된 공간으로 분배했다. 


스티브 잡스는 직원들의 연봉체계까지도 철저한 평등주의에 입각해서 전면적으로 손질했다. 우선 특별 퇴직금 같은 경영진에 대한 여러 특혜를 없앴다. 그리고 직위에 상관없이 모든 직원은 출장이 10시간 이하의 비행일 경우 이코노미스트 석에 타야 했고, 10시간 이상일 경우에나 비즈니스클래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또한 직원들의 보너스를 폐지하고 평등주의를 기초로 직원들이 봉급과 주식을 받도록 했다. 주식을 나누어 준 것은 직원들의 동기를 자극하기 위함이었다. 


주차장 역시 모두에게 평등한 공간이다. 임원이라고 해서 전용 주차공간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마저도 특별히 지정된 주차공간은 없다. 일화로 스티브 잡스가 장애인 주차공간에 자신의 자동차를 세워두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직원들은 가차 없이 스티브 잡스 차량에다가 애플의 슬로건이었던 Think Different를 패러디한 ‘Park Different’를 붙여 두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창업자이자 CEO로서 회사에서 절대권력을 가진 독재자라는 스티브 잡스마저도 전용 주차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를 바로 응징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 애플에 얼마나 평등문화가 깊이 뿌리박혀 있는지 알 수 있다.


토론 문화야말로 그 회사가 얼마나 평등한 조직인지를 보여준다. 스티브 잡스 역시 자유롭게 직원들이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혁신이란 결국 일정한 프로세스나 체계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 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에 있다고 믿는다. 


스티브 잡스는 무엇인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면 바로 그 순간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고 싶어 한다. 직위에 상관없이 회사에 100명 정도의 사람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일하는데 이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바로 알리고, 그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들으면서 검증 단계를 펼친다. 그는 회의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정보 공유라고 본다. 단순히 사업의 특정 부분만이 아니라 사업의 모든 부분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매주 월요일에 진행되는 회의에서는 전체 사업을 함께 검토하고 전주의 판매량과 개발현황을 함께 살펴보는 한편 제품에 대한 수요와 공급문제를 고민한다. 사실 애플 내에 확실히 뿌리내린 평등문화를 스티브 잡스가 종종 뒤흔들어 놓기는 한다. 이상하게도 스티브 잡스의 이런 행동은 오히려 평등문화를 굳건하게 하곤 하는데, 왜냐하면 아무리 직위가 높아도 스티브 잡스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래 모든 인간이 평등한 것처럼 스티브 잡스 아래에선 누구나 평등한 직원인 것이다.


애플은 직원 간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도 꾸준히 노력해 왔다. 애플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팀이 만들어지고 해체된다. 그러면 인력들을 재 이동시켜야 하는데 팀을 이동할 때 국적, 연령, 종교, 결혼여부 등 프라이버시를 물으면 안 된다. 또 기업 차원에서 직장상사라는 이유로 부하직원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노력 중이다. 예를 들어 직장상사는 함부로 부하직원에게 회식하자는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애플은 차별을 줄임으로써 업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미국 소매점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월급이 아니라 제품판매에 따라 일정 수수료를 봉급으로 받는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불안정한 직종으로 마치 소모품처럼 교체되곤 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애플은 소매점 직원들에게 판매수당이 아니라 정직원처럼 임금을 주었다. 처음 론 존슨이 판매 수당을 없애고 정식 임금으로만 직원들을 대우한다고 하자 애플 내부에서도 론 존슨을 미친 사람 취급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결정은 애플스토어의 직원들에게 큰 자부심과 애사심을 심어주었다. 회사로부터 안정적인 대우를 받는 애플스토어 직원들은 고객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지식으로 도움을 주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봤다. 


결과적으로 애플스토어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그야말로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장소로 바뀌었다. 어느덧 애플스토어의 직원들은 단순한 매장 점원이 아니라 지식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을 돕는 전문가가 된 것이다. 애플은 점원들이 컴퓨터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도록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으며,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지니어스(genius)나 크리에이티브(creative) 등 더 높은 직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해두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미국 소매업체 직원들이 해마다 80%씩 교체되는 데 비해, 애플스토어는 80%가 회사에 남아 있다. 대한민국이 최근 계약직과 정직원의 차별 문제로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이때 애플스토어의 성공사례는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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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16)


기술업계 회사일지라도 제품 지향 문화가 필요합니다. 많은 회사들이 훌륭한 엔지니어와 똑똑한 사람들을 잔뜩 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로 묶는 힘이 필요합니다.

‐ 스티브 잡스, 2004년 <비즈니스위크> 인터뷰 중에서 




애플은 남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소비자가 선택해 주는 위대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애플의 모든 전략은 결국 ‘위대한 제품 만들기’라는 하나의 목표에 집중되어 있다. 스티브 잡스 스스로 가장 잘하는 일은 소수의 팀을 구성해서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힐 만큼 그는 제품을 만드는 것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회계장부도 읽지 못하는 그가 애플의 CEO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제품 만들기에 뛰어난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 만들기야말로 최고의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개발자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를 보면 이런 특징이 잘 드러나는데,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 사업부에서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외부의 각종 압력으로부터 개발자들을 보호해 주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경영진과 좋지 않은 사이가 되어 회사에서 쫓겨나게 되었지만 그에게는 오직 제품 개발이 중요할 뿐이었다.


제품 개발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스티브 잡스는 아무리 훌륭한 엔지니어와 똑똑한 사람이 있어도 회사에 제품 개발 지향적인 문화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회사를 운영하고 이끄는 사람 역시 제품 개발자가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티브 잡스가 존 스컬리를 밀어내려고 했던 것은 스컬리가 개발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존 스컬리 밑에서 애플이 몰락의 길을 걸은 것도 스컬리가 개발자가 아니라 영업맨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위대한 회사가 서서히 과거의 마법을 잃어버리는 것도 결국 개발자 중심의 회사가 영업맨 중심의 회사가 되는 데 있다고 본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개발자들이 원동력이 되는 회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스티브 잡스에 의하면 영업맨이 회사를 운영하게 되면 제품 개발 지향 문화가 사라지면서 제품 개발보다는 독점을 이용하여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경향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개발자보다는 영업맨이 득세하게 되는데, 어느 날 독점이 끝나고 나면 이미 회사 안에는 개발자들이 떠나 있거나 발언권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회사는 혼란의 시기를 겪게 된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존 스컬리가 이끌던 애플이었고, 영업맨이었던 존 에이커스가 이끌었던 IBM의 모습이었다. 존 에이커스는 빌 게이츠에게 설득당해서 OS/2 개발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맡기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재미있는 사실은 스티브 잡스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브 발머를 존 스컬리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스티브 발머는 존 스컬리와 유사한 점이 많다. 스티브 발머는 개발자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마이크소프트에 취직하기 전에 P&G에서 일했다. P&G는 샴푸와 비누, 기저귀 같은 생활용품부터 과자나 커피까지 판매할 정도로 폭넓은 사업 분야를 가진 회사다. P&G의 성공비결 중 하나는 브랜드 관리를 창안해서 이를 마케팅에 접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P&G의 마케팅 능력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며, P&G는 ‘마케팅 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마케팅에 관해서는 매우 특별한 회사다. 


마케팅 전문가인 존 스컬리처럼 스티브 발머 역시 P&G에서의 경험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직원이 된 후 마케팅 부분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된다. 빌 게이츠의 요청으로 스티브 발머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처음 합류했을 때가 1980년인데 마침 그는 스탠퍼드대학원에서 MBA를 공부 중이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27명의 직원으로 1,25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었지만 회사운영은 그야말로 동아리 수준에 불과했다. 빌 게이츠는 회사를 제대로 된 법인으로 변신시키기 위해 경영전문가인 스티브 발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평소 빌 게이츠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던 스티브 발머는 그와 함께 일하는 건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합류하게 된다. 그의 첫 직책은 사장 비서였다. 그의 일은 한 마디로 빌 게이츠가 잘 하지 못하는 회계와 법률 같은 부분을 보완해 주는 것이었다. 둘은 완벽히 대조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서 서로를 보완해 주는 사이였다. 


빌 게이츠는 철저히 기술 중심적 사고를 가진 데 비해 스티브 발머는 영업 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기술 지향적 성격을 가진 빌 게이츠의 사람들은 대부분 기술 전문가이며, 스티브 발머의 사람들은 뼛속까지 영업맨인 사람들로 가득했다. 빌 게이츠가 그만 두고 스티브 발머가 CEO가 된 이후 둔 후 마이크로소프트의 인력도 개발자 중심에서 영업맨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개발자보다는 영업이나 MBA학위 소유자들이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마이크로소프트는 과거 같은 개발 지향 문화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놀랍게도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는 과거 애플과 IBM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영업맨 중심의 회사가 된 마이크로소프트는 정말 과거처럼 압도적인 느낌이 사라졌다. 스티브 발머가 CEO가 된 2000년 이후 지금까지를 돌이켜 보면 빌 게이츠 시대에 구축해 놓은 윈도우와 오피스로 세계시장을 여전히 독점하고 있지만 단지 그것뿐 아무런 발전이 없다. 지난 10년 동안 애플이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세계에 연속적으로 충격파를 던지고 있는 모습과 비교하면 정말 초라하기 그지없다. 


주식 시장은 이런 마이크로소프트의 상황을 더욱 냉혹하게 평가하고 있다. 2010년 5월 27일을 기준으로 보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은 지난 10년 동안 18%나 감소된 것에 비해 애플의 주식은 열배 이상 뛰어올랐다. 이는 제품 개발 지향적인 스티브 잡스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영업맨인 스티브 발머의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는 오직 제품 만들기에 매진했고 실제로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같은 위대한 제품으로 성공을 이끌었다. 스티브 발머는 스티브 잡스와는 완전히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2010년 2월 <뉴욕타임스>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현재는 비록 좋은 실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혁신의 부족과 내분의 영향으로 쇠퇴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전 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 딕 브라스(Dick Brass)의 칼럼을 기재했다. 그에 의하면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아이패드와 같은 스타일의 컴퓨터를 만들고 있었지만 오피스를 담당하던 부사장이 태블릿 컴퓨터 사업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체 협력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태블릿 컴퓨터에는 오피스를 사용할 수 없었고, 나중에는 아예 태블릿 사업부 자체가 폐쇄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태블릿에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투자한 애플과는 비교되는 사건이라고 했다. 그는 거짓소문을 퍼뜨리면서까지 다른 사업부를 견제하는 사내 정치에 진저리를 치면서 글을 끝마쳤다. 


칼럼이 보도된 이후 <베타뉴스>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의 일화가 공개되었다. 20년 이상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근무한 한 간부에 의하면 사내정치에 의해서 정말 획기적인 제품이 없어지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한다. 원래 마이크로소프트의 장점은 작은 팀에 권한을 주는 것이었는데, 작은 팀들을 모두 큰 팀에 흡수시킴으로써 사내에 정치적 대립이 발생했다고 한다. 특히 조직개편이 빈번하게 일어남에 따라 관리직들이 팀보다 자신의 경력에만 힘을 쓰게 되면서 여러 사람들이 사내정치에 휘말리고 있다고 증언한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해고된 또 다른 직원은 과거 6단계의 계층이 있었다면 지금은 10단계로 복잡해졌는데, 이렇게 늘어난 관리자들이 회사보다는 자신의 정치싸움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13년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근무했다는 한 직원은 20명이었던 팀이 정리해고 되었는데 회사에 남은 사람은 관리자 4명뿐이었다고 한다. 스티브 발머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대권을 잡은 이후 영업맨 출신의 간부들이 회사를 장악하면서 회사 전체가 개발자보다는 관리자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이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 개발력까지 떨어뜨린 것으로 보인다. 


스티브 발머 이후 심각한 문제는 돈을 아무리 투자해도 이렇다 할 상품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플이 지난 4년간 연구개발에 투자한 금액은 46억 달러이다. 그동안 영업 수입은 250달러에서 430억 달러로 증가했다. 이에 비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의 7배가 넘는 310억 달러나 연구개발에 사용했다. 이 부분이야말로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발머의 근본적인 역량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가 원하는 위대한 제품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제품 개발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마이크로소프트보다도 훨씬 적은 돈으로도 멋진 제품을 효율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에 비해서 스티브 발머는 이미 만들어진 제품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하는 방법은 알고 있으나 스티브 잡스처럼 새로운 것을 만드는 능력은 한참 뒤떨어진다. 


빌 게이츠 시대는 ‘컴퓨터광의, 컴퓨터광에 의한, 컴퓨터광을 위한 개발자들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스티브 발머는 그런 개발 중심 문화에서 영업 지향의 문화로 회사를 변화시켰고, 결국은 스티브 잡스에 의해서 제품 개발 지향적 문화를 가지게 된 애플의 연구 효율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도 천재는 수두룩하다. 그리고 연구개발 비용도 애플보다 몇 배나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처럼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결국 CEO의 차이가 결정적이다. 스티브 발머는 분명 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훌륭한 경영자다. 하지만 그의 경쟁상대가 세계 역사에 기록될 개발자 스티브 잡스라는 것이 문제다. CEO 성향의 차이로 인해서 애플은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비용에 비해 극도의 효율성을 가지게 되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과거의 애플이나 IBM은 영업맨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가 독점이 끝나자 생사의 기로를 걸을 수밖에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라고 했는데, 과연 마이크로소프트가 어떻게 될 지 한 번 지켜볼 일이다. 


스티브 잡스가 얼마나 개발자를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대한 사례는 많다. 젊은 시절 스티브 잡스는 자존심이 강해서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거나 자신의 잘못을 시정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또 직원들이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함부로 직원들이 자신의 의견에 반기를 들지 못하게 할 정도로 독선적인 면이 강했다. 그런데 어느 날 빌 앳킨슨(Bill Atkinson)이 모임에 가려던 스티브 잡스를 가로막았다. 빌 앳킨슨은 자신이 리사를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했다면서 큰소리로 항의했다. 모임이 급했던 스티브 잡스는 빌 앳킨슨이 막아서자 짜증이 난 나머지 불같이 화를 냈다. 결국 둘은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서로를 몰아세우며 논쟁을 벌였다. 그런 식으로 스티브 잡스와 싸운 사람이라면 회사를 그만두는 게 당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주에 스티브 잡스가 먼저 엔지니어인 빌 앳킨슨의 상한 마음을 풀어주려고 했다. 스티브 잡스는 빌 앳킨슨이 애플 펠로우(Apple Fellow)로 임명되도록 도움을 주었다. 애플 펠로우는 최고 기술자에게 주는 직위로, 그전까지는 스티브 워즈니악과 로드 홀트 단 두 명에게만 수여된 최고의 명예직이었다.


개발자들 앞에서라면 스티브 잡스의 엄격한 규율들도 종종 예외가 되는 경우가 있다. 스티브 잡스가 돌아왔을 때 애플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애플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강력한 구조조정을 시행해야 했다. 회사에는 각종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회사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해고를 당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스티브 잡스가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을 때 원하는 대답을 하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해고를 통보받는다는 루머가 돌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개발자는 예외였다. 만약에 스티브 잡스가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을 때 엔지니어라고 하면 해고당할 확률이 낮았다고 한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매우 중요한 원칙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회사의 정보가 밖으로 줄줄 새는 것은 회사 재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엄격한 비밀주의를 채택했다. 어느 날 스티브 잡스는 Think Different 광고 캠페인을 축하하며 직원들과 함께 야외파티를 열었다. 스티브 잡스는 Think Different를 소개하며 이것이 얼마나 멋진 의미를 담고 있는지 직원들에게 알렸다. 스티브 잡스의 연설에 감동한 한 여직원이 이를 친구에게 메일로 보냈다. 


문제는 메일을 받은 친구가 <데이브넷>이라는 메일 매거진의 관계자였다는 점이다. <데이브넷>은 빌 게이츠 같은 컴퓨터 기업의 유명 인사들에게 업계의 각종 정보를 수집해서 메일로 보내주는 서비스 회사였다. 결국 직원이 가벼운 마음으로 친구에게 보낸 메일이 <데이브넷>의 메일 매거진 서비스를 통해서 하루아침에 업계 전체에 동시다발적으로 퍼져나갔다. 스티브 잡스는 회사의 비전과 전략이 외부로 흘러나갔다는 사실에 너무나 화가 났다. 그래서 메일을 유출시킨 직원에게 직접 전화해 사무실로 불러들여 따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여직원은 해고되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무사히 회사를 잘 다녔다. 보통의 스티브 잡스라면 절대 용서하기 힘든 사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예외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은 그녀가 퀵타임이라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자라는 사실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마치 영화사와 같다. 영화사가 계속해서 영화를 선보이듯이 애플 역시 연속적으로 제품을 선보인다. 관객이 영화를 보지 않으면 영화사가 어려워지듯이 애플 역시 소비자가 제품을 구입하지 않으면 바로 타격을 입는다. 애플은 오직 제품으로만 승부하는 회사다. 제품은 결국 개발자가 만든다. 위대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개발자의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회사에 제품 개발 지향적인 문화가 퍼져 있어야 하며, 개발자가 실제로 회사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스티브 잡스가 돌아오기 전의 회사는 영업맨 중심의 회사였고, 스티브 잡스가 돌아온 후의 회사는 개발자 중심의 회사다. 물론 회사는 사정에 따라서 영업맨 혹은 개발자의 비중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애플의 부활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개발자가 원동력이 되는 제품 지향적인 문화를 가진 회사로의 변화였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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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15)


나의 일은 언제나 팀의 질적 수준을 최고로 유지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 스미스소니언 협회 인터뷰 중에서





IT업계의 판도를 휘어잡고 있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이 단 두 명의 친구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생각하면 IT업계는 사람 숫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뛰어난 소수의 인재에 의해서 움직이는 세상임을 알 수 있다.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을 비난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회사의 최우수 인재 30명만 나가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새로운 적수가 등장할 것이다. 컴퓨터 분야에는 고정자산이 없으며, 유능한 인력이 빠진 회사는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IT기업은 30명이 아니라 회사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 삼두체제에 따라서 성공과 실패가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플은 뛰어난 기획력을 가진 스티브 잡스와 천재적인 엔지니어 스티브 워즈니악, 그리고 경영과 마케팅에 많은 경험을 가진 마이크 마쿨라 이 셋이 차고에서 만났을 때 이미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초기 성공을 보면 애플 같은 삼두체제가 자리 잡고 있다. 기획이 뛰어난 빌 게이츠와 기술적인 부분을 전담했던 폴 알렌 둘이 창업했고, 경영과 마케팅 전문가인 스티브 발머가 합류하면서 삼두체제를 구성하여 급속한 성장을 이루었다. 구글 역시 래리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을 창업한 후 노련한 경영자인 에릭 슈미트가 CEO로 회사에 합류해서 삼두체제를 이룬 이후 만성적자에서 탈출하여 처음으로 분기흑자를 기록하면서 승승장구하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닌텐도 역시 CEO인 이와타 사토루를 중심으로, 개발을 책임지는 미야모토 시게루 전무와 마케팅을 담당하는 레지필즈 아이메 미국 지사장이 절묘한 삼두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잘 나가는 IT기업에는 환상적인 삼두체제가 구축되어 있는데, 회사가 삐걱거린다면 삼두체제가 붕괴되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스티브 잡스가 회사를 그만둔 후 애플의 삼두체제에 균열이 생겼다. CEO였던 존 스컬리는 장 루이 가세, 그리고 마이클 스핀들러와 함께 삼두체제를 구성했다. 문제는 이들 셋 모두 마케팅 전문가였다는 점이다. 삼두체제는 확실한 역할 분담으로 서로를 보완해 주면서 하나의 팀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존 스컬리가 구성한 삼두체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제품에 대한 기획력과 기술에 대한 이해가 없는 이들이 삼두체제를 구성함으로써 마케팅에 능했을지는 몰라도, 제품 개발력이 형편없어진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애플의 추락은 존 스컬리가 연구개발을 책임져야 하는 CTO까지 겸임하는 엽기적인 선택을 하면서 더욱 가속도가 붙었다. 과거 닌텐도가 어려운 시절을 보낸 것도 사실은 화투회사에서 게임회사로 변신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개발자들에게 스승 같은 역할을 한, 게임보이의 아버지 요코이 군페이가 회사를 그만둔 후 삼두체제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애플의 부활과 현재의 승승장구 역시 뛰어난 삼두체제가 구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애플 2.0은 애플 1.0과 좀 다르다. 스티브 잡스가 제품개발에서 맡은 기획 역할은 과거와 같지만, 팀 쿡이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낸 제품을 좀 더 효율적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했다. 그동안 애플은 제조 생산 물류 부분에서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팀 쿡 이후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다. 삼두체제의 또 다른 축을 구성하는 마케팅 부사장 필 실러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회사를 알리고 회사의 홍보와 영업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렇게 회사의 삼두체제만 봐도 그 회사의 역량이 그려질 정도로 인재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는 것이 바로 IT업계다. 


스티브 잡스 역시 인재의 중요함을 잘 알고 있으며 인재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가진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세계 최고의 인재를 모아서 이들이 개발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애플은 소수정예일 수밖에 없다. 스티브 잡스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줄 만한 사람은 세상에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애플은 일이 아무리 급박해도 회사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직원을 채용하지 않는다. 애플의 운영체제인 레오퍼드의 발매일이 연기되자 주주총회에서는 이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당시 애플이 하는 일들에 비해 직원 수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때였다. 그러자 스티브 잡스는 적당한 사람이 있으면 얼마든지 고용할 것이지만 검증되지 않은 직원들을 뽑는 건 애플의 방식이 아니라고 밝혔다. 세계 최고의 회사인 애플도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스티브 잡스는 당장은 직원이 부족하더라도 최고의 인재들만을 모아서 팀원들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스티브 잡스는 훌륭한 택시 운전사와 그렇지 않은 운전사의 차이는 두 배 정도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훌륭한 택시 운전사가 50분 정도면 갈 거리를, 나쁜 운전사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요리사끼리도 실력 차이는 두세 배 정도 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50배 정도 차이가 난다고 말한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항상 인재 관리에 엄격하다. 세계 최고가 아닌 직원을 데리고 있다고 생각되면 고통스럽더라도 해고시켜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아무리 인간적인 방법으로 정리한다고 해도 해고는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일을 잘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해고하는 것 역시 결국 자신의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스케줄을 두 배로 늘리고 싶으면 인력을 두 배로 충원시키면 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을 많이 투입하면 일이 더 빨리 끝날 것이라는 생각이지만, 오히려 사람이 많아지면 이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다시 생겨나면서 의사결정이 느려진다. 그러다 보면 실질적으로 일하는 시간보다 서로 업무를 나누고 조정하는 시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개발인원이 늘어난다고 해서 개발 속도 역시 빨라진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이 사람이 많으면 엉뚱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도 있다. 조직이 어찌되었든 일이 있어야 예산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신제품에 꼭 적용해야 한다고 정치싸움이 벌어진다. 스티브 잡스가 돌아오기 전의 애플 제품은 쓸모없는 기능이 잔뜩 추가되었지만 정작 완성을 보지 못한 프로젝트가 수두룩했다. 그리고 별 차이 없는 제품들로 라인업이 어지럽혀졌다. 이때의 애플은 비대한 조직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스티브 잡스는 회사 조직은 극도로 단순함을 추구해서 이해하기 분명하고 책임이 명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팀 구성도 100명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보았다. 100명이 넘으면 조직이 비대해져서 초점을 맞추기 힘들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자신이 직접 관리하는 사람이 100명 정도라고 한다. 이를 보면 스티브 잡스는 동시에 통제 가능한 사람의 숫자를 100명 정도로 보는 것 같다. 


조직 관리에서 초점과 단순함을 유지하고자 하는 스티브 잡스의 신념은 제품의 철학과도 일치한다. 애플의 인원은 쓸모없는 일을 할 정도로 여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애플은 베스트가 되는 곳에 정확하게 공을 던지려 하지 차선이라고 생각되는 곳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결국 철저한 소수정예를 추구하는 애플은 반드시 꼭 필요한 기능에만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작고 단순한 조직이기에, 애플 제품은 쓸모없는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 극도의 단순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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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14)


창조라는 것은 그냥 여러 가지 요소를 하나로 연결하는 겁니다. 창조적인 사람에게 어떻게 그렇게 창조적으로 일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죄책감을 느낄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실제로 무엇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뭔가를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그들의 창조성은 그들이 경험했던 것을 새로운 것으로 연결할 수 있을 때 생겨나는 겁니다. 그러한 능력은 그들이 다른 사람보다 많은 경험을 하고, 그들의 경험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거지요.


‐ 스티브 잡스, 1996년 <와이어드> 인터뷰 중에서





2010년 1월, 처음으로 아이패드를 소개하던 날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기술과 인문학 사이의 교차로에 서 있다고 말했다. 기술과 인문학을 결합함으로써 애플은 아이패드 같은 창조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강조한 것이다. 오래 전부터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기술 그 이상의 회사임을 주장해 왔다. 애플이 기술뿐만 아니라 인문학을 생각하는 만큼 그들이 만든 제품들은 사용하기 쉽고 더욱 인간적인 기기가 될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이질적인 두 개의 요소를 하나로 묶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또 다른 회사인 픽사를 보자. 픽사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영화 회사다. 엄밀히 말하면 예술을 추구하는 회사지만 여기에 컴퓨터 기술을 접목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영화를 창조함과 동시에 매우 특별한 회사가 될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 자신은 예술지향의 픽사와 기술지향의 애플, 이 두 회사를 동시에 경영함으로써 역시 새로운 경지에 오른 인물로 거듭났다. 스티브 잡스에 의하면 어느 분야에서든 최고의 반열에 오르는 사람은 한 가지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위대한 예술가이자 위대한 과학자였듯이 말이다. 그는 미켈란젤로 역시 채석장에서 돌을 자르기 위한 엄청난 지식들을 섭렵하고 있었음을 지적한다. 스티브 잡스는 한 번도 예술과 기술이 별개라고 생각한 적이 없으며, 자신이 아는 최고의 컴퓨터 과학자들은 곧 음악가였다고 강조한다.


애플의 저력은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독창적인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조합해서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 능력에 있다. 개인용 컴퓨터의 혁명을 불러일으킨 애플2 컴퓨터를 보면 애플만의 독창적인 기술은 거의 없다. 사실 애플2 컴퓨터 안에 들어가 있는 부품들은 누구나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들이다. 누구나 구할 수 있는 부품들을 모아서 역사에 남는 위대한 제품을 창조해낸 것이다. 헨리포드가 자동차 안에 들어간 부품을 직접 만들진 않았지만 모든 부품을 모아서 자동차를 발명했듯이 우리가 아는 창조라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닌텐도는 아예 이미 다른 분야에서 시든 기술에 자사의 아이디어를 접목하자는 개발 철학을 가지고 탄생한 제품이다. 전자계산기에 들어가는 액정값이 떨어지자 이를 이용해서 휴대용 게임기 ‘게임워치’를 개발해서 큰 히트를 쳤다. 닌텐도 DS는 PDA에서 일반적인 터치기술을 가져왔고, 닌텐도 Wii에는 모션센스 기술을 접목해서 위대한 제품을 탄생시켰다. 


다른 분야에 이미 존재하는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새롭게 접목하는 것은 창조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미국 최고의 의류업체인 갭(GAP)의 전 CEO였던 미키 드렉슬러(Mickey Drexler)는 우연히 접하게 된 코카콜라 전략을 회사의 마케팅 계획에 접목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스토어를 생각했을 때 그는 다른 분야의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을 했고, 이를 위해서 미키 드렉슬러를 이사회로 초빙하였다. 애플은 패션 분야에서의 매장 관리 방법을 애플스토어에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개척했다. 스티브 잡스는 그가 좋아하는 밥 딜런의 노래 가사처럼 모든 것에서, 모든 사람에게서 영향을 받는 존재다. 하지만 단순히 영향만 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창조에 이용할 줄 안다. 스티브 잡스는 ‘창의성이란 여러 가지 요소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창의적인 사람은 뭔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전에 본 것들을 연결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창조라는 말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낄 것’이라고 까지 말했다. 스티브 잡스의 말을 참고하면 창조란 경험을 연결해서 새로운 것으로 융합하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 애플만의 독창적인 제품이라고 보이는 것들이 알고 보면 다른 분야에서 가져온 아이디어인 경우가 많다. 아이팟의 절대적인 성공 요소인 휠 인터페이스도 애플의 독창적인 생각이 아니라 다른 전자기기에 달린 휠을 참고해서 아이팟에 접목한 것이다. 한 손으로 모든 것을 조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각종 기기들을 연구하던 중 마케팅을 담당하는 필 실러 부사장이 자신이 쓰고 있는 기기에 휠이 사용된 것을 보고 이를 아이팟에 접목할 생각을 하게 된다. 


애플의 자랑 중 하나가 AC 어댑터다. 노트북을 충전 중일 때 실수로 어댑터 선에 발이 걸리면 책상 위에 있던 노트북이 바닥으로 떨어져 파손되는 사고가 발생하지만, 애플의 노트북은 이런 걱정이 없다. AC 어댑터의 컴퓨터 접속부가 자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전원 코드가 분리되기 때문이다. 자석을 이용한 애플의 아이디어는 사소하지만 고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로 칭찬받고 있다. 이런 자석 아이디어는 일본의 전기포트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애플 부활의 선봉에 섰던 아이맥은 화려한 컬러 덕분에 큰 화제가 되었는데, 이 역시 다른 분야에서 가져온 아이디어다. 컴퓨터 케이스에 색을 입히면 싸구려처럼 보이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고급스런 색을 재현하기 위해서 애플의 디자인팀은 직접 사탕공장을 방문해서 제조과정을 꼼꼼히 살펴봤는데, 젤리에 색을 입히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덕분에 아이맥은 사탕처럼 먹고 싶을 정도로 탐스러운 디자인을 자랑하게 되었다.


여러 요소들을 하나로 조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이런 애플의 연금술사 같은 능력은 통합의 시대를 맞이해 더욱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아이폰의 탄생을 보면 오직 애플이기에 가능한 작품이었음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가 처음 아이폰을 정식으로 소개하기 전에 그는 애플의 신제품이 세 가지라고 소개했다. 하나는 와이드 스크린을 갖추고 터치를 통해서 조작이 가능한 아이팟, 둘째는 혁명적인 휴대전화, 셋째는 놀라운 인터넷 커뮤니케이터라고 밝혔다. 물론 이 세 가지 제품은 결국 아이폰을 뜻한다. 지금이야 애플의 아이폰과 경쟁하는 제품들이 매달 쏟아지고 있는 현실이지만 당시만 해도 아이폰 같은 제품을 세계적으로 히트시켜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애플밖에 없었다.


아이폰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던 힘은 개인용 컴퓨터 같은 수준의 뛰어난 소프트웨어와 훌륭한 하드웨어를 하나로 결합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컴퓨터에 들어가는 운영체제와 컴퓨터 하드웨어를 직접 만드는 회사는 애플밖에 없다. 아이폰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애플이 아이팟, 아이튠스, 아이튠스 스토어로 이어지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인터넷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이팟에서 성공모델을 만들지 못했다면 아이폰으로도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폰의 원류가 되는 아이팟 역시 애플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일체 전략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면 탄생할 수 없는 제품이었다. 애플 내에서 아이튠스라는 음악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가 이를 하드웨어로 확장한 것이 바로 아이팟이다. 애플이 하드웨어를 만들고 있지 않았다면 아이팟을 만들 계획조차 세우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일체 전략 덕분에 아이팟이 등장했고, 여기에 또다시 앱스토어로 대표되는 인터넷 서비스를 통합시켜서 아이폰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애플의 저력은 결국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그리고 인터넷 서비스를 하나로 통합하는 삼위일체 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회사라는 것이고, 실제로 이를 통해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다.


아이폰 4의 부품을 보면 매우 재미있는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애플이 직접 만드는 부품은 거의 없다는 것인데, 아이폰 4 자체가 알고 보면 전 세계에 있는 부품들을 하나로 묶어서 조합한 제품이다. 애플의 독자적인 기술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세계 여러 회사와 정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애플의 또 다른 힘은 바로 외부 네트워크가 잘 발달되어 있다는 점이다. 맥 에어 자체가 사실은 인텔의 긴밀한 협의 덕분에 나올 수 있었다. 아이팟 역시 도시바의 중역들로부터 새롭게 개발한 제품이라며 1.8인치짜리 초소형 하드디스크를 소개받음으로써 중대한 전환을 맞이한 경우다. 애플은 부품을 하나하나 발명하진 않지만 결국 이들을 조합함으로써 새로운 제품을 탄생시킨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외부를 향해 커다란 레이더를 켜놓고 여러 기술과 현황들을 면밀히 검토한다. 


애플이 단순히 세상에 존재하는 부품만을 조립해서 제품 하나를 만드는 것에서 그쳤다면 애플이라는 기업은 결코 오래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다른 회사도 똑같이 애플과 같은 제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애플이 다른 회사와 차이를 보이는 것은 소프트웨어다. 앞에서 애플은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있다는 스티브 잡스의 말을 소개했다. 조금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는 2010년 WWDC의 키노트 연설 말미에 좀 더 구체적인 말을 해준다. 결국 기술과 인문학 사이에 있다는 이 창조적인 회사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결합해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단순한 기술 회사가 아닙니다. 애플은 그 이상입니다. 바로 기술과 휴머니티죠. 우리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작업을 함께 합니다. 단순히 위대한 카메라 시스템을 만든 게 아니라 찍은 영상을 편집할 수도 있게 만드는 거죠. 단지 전면부에 카메라를 넣은 게 아니라 18개월이 넘는 동안 소프트웨어 작업을 병행한 결과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완결된 솔루션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시스템 전문가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


애플 창조성 신화의 비밀


*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다

시장조사를 하면 기존 제품을 보완하는 제품은 나와도 완전히 창조적인 제품은 나오기 힘들다.


* 하나의 모델에 전력을 쏟는다

하나의 모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


* 스스로 사랑하는 제품을 만든다

자신들이 직접 써보고 싶은 제품을 만들게 한다. 하루라도 먼저 쓰고 싶은 마음에 제품개발에 대한 열정은 그만큼 커질 수 있다. 


* 기술에 얽매이지 않는다

애플은 스펙과 성능으로 기술을 자랑하지 않는다. 오직 사용자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


* 위원회가 없다

위원회 합의에 의해서 만들어진 제품은 단점이 없는 평범한 제품을 만들 뿐 특출한 제품은 만들기 어렵다.


* 긍극의 최종 사용자, 스티브 잡스가 존재한다

까다로운 스티브 잡스의 취향을 맞추기는 어렵지만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 조합과 통합의 힘을 발휘한다

애플은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부품을 조합하여 새로운 제품을 발명하는 연금술사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 외부 네트워크를 열어 놓는다

애플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네트워크를 통해서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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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13회>






위대한 재능 따위는 없다. 운동감각? 전혀 없다. 지능? 그것도 별로다. 그에게 신이 주신 위대한 재능은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미리 간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스티브 잡스는 그 혼자만으로도 하나의 위원회다. 하나의 스티브 잡스는 100만 명의 기술책임자보다 가치 있다. 그는 흰색과 검정색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아이폰을 발표한다. 그는 단 하나의 아이패드만을 발표한다. 그의 재능은 이렇게 확고하다. 


- The street Steve Jobs: His Exponential Value for iPhone 4 기사 중에서



많은 회사들이 위원회를 통해서 중요안건을 결정하려 한다. 하지만 위원회 중심의 의사결정은 부작용도 만만찮다. 위원회에서 각종 안건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다수로부터 의견 일치를 보아야 한다. 그런데 위원회에서 의견을 수렴하고 토론하면서 하나의 안건을 결정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안건이 서로 논쟁만 벌이다가 그냥 대화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위원회의 폐해로는 과거 IBM의 이야기들이 좋은 교훈이 된다. 현재 데이터베이스 분야의 최강자는 오라클이다. 천하의 IBM이 오라클에 뒤쳐진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CEO 래리 앨리슨과 오라클 신화>라는 책을 보면 한 가지 좋은 사례를 들려주고 있다. IBM 내부에는 온갖 위원회가 존재하기 때문에 위원회에서 검토와 재검토를 거치지 않고는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한다. IBM의 전직 프로그래머에 의하면 “빈 상자 하나를 배에 선적하는 데도 아홉 달이나 걸리는 게 바로 IBM”이라고 한다. 위원회의 문제점은 단순히 일이 늦어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공이 많으면 산으로 간다는 말처럼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결론을 내기도 한다. 또한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서 제품을 개발하게 되면 시장조사를 통해서 제품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위대한 제품이 나오기 어렵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는 기존의 통념과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기 때문에, 훌륭한 아이디어를 바로 알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다수결에 의해서 결정되는 위원회 내부에서는 소수자의 의견으로 전락해서 사장되기 일쑤다. 흔히 특징이 없는 평범한 상품을 일컬어 ‘위원회 스타일의 제품’이라고 비아냥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돌아오기 전만 해도 애플은 위원회에 의해서 제품개발을 결정했다. 아이디어를 제품화하기 위해서 애플은 마케팅, 엔지니어링, 사용자 경험 이 세 가지를 평가했다. 마케팅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 엔지니어링은 애플이 할 수 있는 것, 사용자 경험은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이 세 원칙에 따라서 관리자 위원회에서 승인하면 본격적으로 제품 개발이 시작되었다. 구조적으로 보면 훌륭해 보이지만 부작용도 만만찮았다. 위대한 제품이 없었다는 것인데 1989년에서 1996년 초까지 애플 산업디자인팀을 이끌었던 로버트 브르너(Robert Brunner)에 의하면 “애플에서 위대한 요소들이 사라졌던 이유는 합의에 의해서 결정하다 보니 중도만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위원회 스타일 제품 개발의 문제를 한 가지 더 들자면 쓸데없는 제품을 만든다는 것이다. 위원회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정치싸움의 결과다. 회사에서 예산을 받아야 자신이 맡은 조직이 운영되기 때문에 회사의 이익에는 관심 없이 오직 자기 팀이 맡는 제품을 하나라도 더 추가하려는 정치싸움을 벌인다. 1992년에서 1997년까지 애플은 ‘퍼포마’라는 제품명으로 70여 개의 모델을 판매했다. 너무 많아서 애플에서는 맥을 선택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포스터까지 제작할 정도였다. 회사직원들조차 애플이 왜 그렇게 많은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을 정도다.


현재 애플에는 위원회로 인한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애플에는 위원회가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스티브 잡스가 모든 것을 결정하니 위원회가 필요 없을 듯도 하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의 철저한 통제 아래 돌아가는 독재국가라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독재야말로 애플을 위대하게 만들고 있다. 원래 IT업계는 발전 속도가 빠른 만큼 그 어떤 분야보다도 의사결정이 빨라야 하기 때문에,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독재형 CEO가 회사를 장악하기 마련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선비처럼 생긴 빌 게이츠만 해도 회사 내에서는 존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카리스마형 지도자다. 의견이 다른 직원에게 욕설이 담긴 메시지를 보내서 일부러 전투욕을 자극하기도 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엔지니어에게는 내가 차라리 프로그래밍하는 게 낫겠다며 비아냥대기도 한다. 또 기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을 하면 바보 같은 질문이라면서 상대를 무안하게 만든다. 꽤 터프한 경영자로 알려진 빌 게이츠는 회사를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 방식으로 경영했다. 허브 앤 스포크 방식은 수레바퀴의 중앙축에 살이 연결되어 있듯이 CEO가 회사 전체의 중앙통로가 되어서 각 사업부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관계를 말한다. 실제로 빌 게이츠는 회사의 허브 역할을 하면서 사업을 직접 통제하였고, 이를 통해서 효율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냈다.



스티브 잡스 역시 빌 게이츠처럼 회사 전체 사업과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처럼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의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는 주로 개발자와 연결되어 있다. 스티브 잡스는 회사 내 100여 명의 사람들과 직접 의사소통하며 이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직위에 따라서 높은 사람들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아래 계층의 엔지니어와도 직속으로 연결되어 대화를 나눈다.


국가와 사회에서는 당연히 민주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스티브 잡스 역시 자신의 사명을 ‘기술 민주주의’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제품 개발에 있어 민주주의가 꼭 옳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오죽하면 닌텐도 Wii와 슈퍼마리오를 개발해서 게임의 신으로까지 불리는 미야모토 시게루는 개발 과정에서의 민주주의를 경멸한다고 밝힐 정도일까. 개발 과정의 민주주의는 리더가 능력이 없을 때뿐이라고 생각한다. 제품 개발은 리더가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팀원들을 이끌어야 하는데 리더 스스로 확신을 못하니 팀원들에게 중요사항을 물어보는 학급회의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책임회피가 만연해진다. 


서로 합의해서 진행했으니 나중에 실패를 해도 누구 하나 자기 책임이라고 하기보다는 모두가 결정한 것을 따랐을 뿐이라면서 변명하기 바쁘다. 사실 애플의 첫 번째 실패작이었던 애플3 컴퓨터가 바로 위원회 식으로 제작해서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다. 애플3가 실패하고 나니 그 누구도 애플3를 자신의 자식이라고 하지 않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이런 모습은 스티브 잡스의 독재 아래 있는 애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스티브 잡스는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팀원들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애플의 위대한 제품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스티브 잡스의 독재에 의해서 나왔다. 



어느 날 스티브 잡스는 개발자들에게 매킨토시는 전화번호부 크기여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만 해도 그렇게 작은 컴퓨터는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팀원들은 스티브 잡스의 요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민주주의처럼 투표로 결정했다면 매킨토시는 전화번호부 크기로는 절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맥을 개발할 때 엔지니어들은 38가지의 이유를 들어서 제작이 무리라고 답했다. 하지만 잡스는 자신이 CEO이고 내가 가능하다고 믿고 있으니 무조건 따르라고 명령했다. 결국 끝까지 저항하던 엔지니어들은 잡스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스티브 잡스는 조금 불가능할 듯한 목표를 세워서 개발자들을 당황시킨다. 아이팟을 만들 때는 세 번 안에 원하는 곡을 찾도록 했으며, 출시일을 크리스마스 시즌 전까지로 결정해서 개발자들을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었다. 이렇게 팀원들의 의견이 아니라 스티브 잡스의 일방적인 명령으로 채택된 아이디어들은 애플을 역사적인 성공으로 이끌었다.


스티브 잡스의 독재에 대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스티브 잡스가 직원들의 말을 일체 안 듣는 고집불통은 아니라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생각은 얼마든지 직원들에 의해서 거부당하기도 한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도 언제든지 그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아이팟에서 전원 버튼은 스티브 잡스의 요구로 없앴다. 메뉴 버튼도 제거하라고 했지만 개발자의 설득으로 메뉴 버튼은 살아남았다. 사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 순종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확신에 가득차서 자신의 이야기에 반론을 펼치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스티브 잡스의 말이 직원들에게 먹히는 건 그가 단순히 폭군처럼 큰소리로 윽박을 질러서가 아니다. 


애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애플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직원들이다. 그래서 애플의 직원들은 애플이 아니라 실리콘밸리 어디를 가도 좋은 조건으로 취직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브 잡스의 독재를 견뎌내고, 끝까지 스티브 잡스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충성파들이 가득하다. 취업정보 사이트인 글래스도어닷컴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스티브 잡스에 대한 직원들의 지지율이 무려 98%에 이른다고 한다. 지지율이 두 번째로 높았던 CEO는 인텔의 폴 오텔리니(paul otellini)로 82%였고, 애플과 경쟁관계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브 발머가 52%, 델의 마이클 델은 51%, HP의 전 CEO였던 마크 허드는 34%에 불과했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을 만들 때 천 번 이상 NO를 외친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개발자 입장에서 천 번이나 NO를 듣게 된다면 회사에서 버티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애플의 개발자들은 스티브 잡스의 높은 기대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열정을 다 쏟는다. 스티브 잡스가 훌륭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궁극의 최종 사용자이기 때문이다. 애플에서는 시장조사를 통해서 제품을 만들지 않지만, 대신 스티브 잡스의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충족시켜 줘야 한다. 만약 스티브 잡스의 의견을 토대로 제품을 만들었는데 제품이 형편없고 시장에서 외면 받는다면, 스티브 잡스가 아무리 독재형 CEO라고 할지라도 불같은 성격을 견디면서까지 함께 일할 마음은 없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의 마음을 읽는 최고의 심미안을 가진 존재다. 스티브 잡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면 이는 역사에 남는 위대한 제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개발자들은 누구나 위대한 제품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데 훌륭한 안내판 역할을 한다. 결국 스티브 잡스가 불같은 성격으로 독재를 부려도 개발자들은 그것이 위대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충성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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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12회)



이제 하드웨어에서는 다른 제품보다 두 배 뛰어난 컴퓨터를 만드는 것이 힘들어졌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를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운이 좋다면 1.33배라든지 1.5배 정도로 빠른 컴퓨터를 만들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마저도 6개월 정도면 모두에게 따라잡히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라면 아직 가능성이 있습니다.


- 스티브 잡스, 1994년 <롤링스톤> 매거진과의 인터뷰 중에서





우리가 애플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 모두 하드웨어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애플은 하드웨어 회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하드웨어 회사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회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드웨어라고 생각하는 아이팟도 스티브 잡스는 그냥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한다. 스티브 잡스에게는 아이폰과 매킨토시도 소프트웨어다. 스티브 잡스에 의하면 애플은 그냥 아름다운 상자 안에 맥 OSX라는 소프트웨어를 파는 회사라고 한다. 그의 논리대로 하면 아름다운 상자 안에 맛있는 초콜릿을 파는 회사를 상자 회사가 아니라 초콜릿 회사라고 하듯이 애플은 소프트웨어 회사가 분명하다. 우리가 애플을 하드웨어 회사로 보고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애플이라는 회사 전체를 잘못 볼 수 있다. 


세상에 애플처럼 하드웨어를 만드는 회사는 많다. 그런데 애플처럼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는 회사는 마이크로소프트 정도 밖에는 없다. 즉 애플은 소프트웨어로 특별한 회사이지, 하드웨어로는 애플을 능가하는 회사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애플이 하드웨어를 만드는 것은 스티브 잡스가 자주 인용하는 앨런 케이의 명언인 “소프트웨어를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하드웨어를 만들고 싶어 한다.”에 답이 있다. 애플은 자신의 소프트웨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들이 만든 소프트웨어를 완벽하게 작동할 수 있는 하드웨어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애플의 역사적인 히트작들을 뒤돌아보면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먼저 생각했다. 매킨토시를 만들 때 애플은 세상에서 제일가는 하드웨어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접근한 것이 아니다.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라는 이 아이디어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매킨토시의 위대함은 소프트웨어에 있는 것이지 거기에 사용된 컴퓨터 부품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부활할 수 있었던 것도 소프트웨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픽사는 원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만들던 회사다. 하지만 하드웨어 사업부를 포기하고 남은 소프트웨어 기술을 이용해서 토이스토리를 제작할 수 있었다. 넥스트가 애플에 인수될 수 있었던 것 역시 소프트웨어 개발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가 회사에 남아 있는 거라곤 브랜드와 맥 OS밖에 없다고 밝혔을 정도로 애플을 지탱해준 생명줄 역시 소프트웨어였다.


<포춘>에 의하면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의 특징은 소프트웨어로 요약될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소프트웨어를 들고서 애플로 돌아왔으며, 소프트웨어 덕분에 애플을 부활시켰기 때문이다.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에 응용프로그램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직접 나서서 외부 소프트웨어 업체에 제발 매킨토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스티브 잡스는 번번이 거절을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특히 한때 형제 관계였던 어도비마저 애플의 러브콜을 거부하자 이에 충격을 먹은 스티브 잡스는 고육지책으로 어쩔 수 없이 회사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로 결정한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쉽게 관리하게 해주는 아이포토(iPhoto), 캠코더로 찍은 영상을 편집하게 해주는 아이무비(iMovie), DVD 제작을 쉽게 해주는 iDVD 등이 바로 그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들이 컴퓨터를 사용하는 방식에 있어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봤다. 컴퓨터가 일종의 허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캠코더를 컴퓨터에 연결해서 동영상을 편집하거나 디지털 카메라를 컴퓨터에 연결해서 사진을 정리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PDA와 휴대전화도 컴퓨터에 연결해서 데이터를 관리했다. 이렇게 컴퓨터가 각종 멀티미디어기기와 연결되는 허브가 되어가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스티브 잡스는 이런 변화에 큰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기회를 잘 활용하면 맥이 새로운 디지털라이프의 허브가 되어서 PC 혁명을 일으킬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하여 스티브 잡스는 2001년 디지털 허브 전략을 수립한다. 디지털 허브 전략은 애플이 컴퓨터 업체에서 소비자 가전업체로 변신하는 데 있어서 중대한 비전을 제시했다. 


디지털 허브 전략이라는 큰 틀 아래 발표된 소프트웨어 중 하나가 바로 아이튠스(iTunes)였다. 아이튠스는 사실 애플이 저지른 실수 때문에 급하게 만든 소프트웨어였다. 경쟁사가 CD에서 음원을 추출하는 소프트웨어를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내장해서 판매하고 있었지만 애플은 그렇지 못했다. 애플은 사람들이 CD에서 음원을 추출하여 MP3로 음악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이는 아이맥의 판매량에 직격탄을 날렸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바보라고 생각될 정도로 상황은 꽤 심각했다. 스티브 잡스는 실수를 재빨리 만회하기 위해서 CD에서 음원을 추출하고 MP3를 재생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도록 지시했다. 


시간이 별로 없던 애플은 외부 소프트웨어 업체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마침 애플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었던 소프트웨어 개발사인 캐시디&그린(Casady & Greene)에서 사운드 잼 MP라는 인기 프로그램으로 큰돈을 벌고 있었다. 애플은 캐시디&그린(Casady & Greene)의 전면적인 도움을 받아서 MP3 플레이어 제작에 돌입한다. 4개월 동안의 노력 끝에 개발된 소프트웨어가 2001년 맥 월드에서 디지털 허브 전략과 함께 밝혀진 아이튠스였다. 아이튠스는 CD에서 음악을 추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디지털 오디오 기능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급하게 만든 프로그램이라서 기능이 여러 가지로 미약했지만 다행히 탁월한 인터페이스를 갖추었고 무엇보다 무료였기 때문에 맥 사용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MP3의 가능성을 보았다. 스티브 잡스는 MP3를 재생하는 휴대용 기기들이 시장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스티브 잡스가 보기에 MP3 플레이어를 제작하는 회사들은 한결같이 소프트웨어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애플에게는 아이튠스라는 강력하고도 인기 있는 음악 재생 관리 프로그램이 있었다. 소프트웨어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애플은 MP3 플레이어 시장을 진출할 때 발상부터가 달랐다. 애플은 단순히 휴대용 음악기기가 아니라 손안의 컴퓨터라는 개념으로 MP3 시장에 진출했다. 아이팟은 음악 소프트웨어 아이튠스와 연동되었으며, 아이튠스의 인터페이스를 아이팟 곳곳에 접목시켰다. 아이튠스라는 소프트웨어에 연결된 손안의 컴퓨터 아이팟은 2001년 발매되어 사람들의 디지털 라이프를 바꾸며 21세기 음악 혁명을 주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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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개발 방식은 목표를 레이저 광선같이 좁히고, 가능한 적은 제품으로, 가능한 많은 고객을 획득하려고 합니다. 개발하는 제품을 줄이는 만큼 우리의 상품 라인업이 최고의 것으로 완성될 수 있도록 사내에 있는 모든 자원을 집중 투하할 수 있습니다.

‐ 필 실러 애플 부사장, <PC WATCH> 인터뷰 중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 마이크로소프트는 승리라는 목표를 세우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경쟁한다. 이에 비해서 애플은 다른 회사는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위대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열정을 쏟는다. 


애플 저팬의 일본 사장인 하라다 에이코에 의하면 애플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와 같다고 설명한다. 피겨 스케이팅 선수는 상대 선수를 신경 쓸 필요 없이 자신의 리듬에 맞춰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심판들에게 점수를 받으면 그만이다. 애플은 경쟁사를 의식하지 않고 오직 위대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소비자에게 심판받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D8 컨퍼런스에 참석한 스티브 잡스에게 사회자가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플랫폼 경쟁에 대해서 묻자 자신들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경쟁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애플은 단지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을 뿐이라고 답했다. 이런 견해는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돌아왔을 때도 강조했던 사항이다.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1억 5,000만 달러를 투자받았다는 사실을 97년 <맥 엑스포>에서 알리자 당시 이 소식을 전해들은 청중들이 일제히 야유를 보냈다. 그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다시 예전의 영광을 회복하고 싶다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을 이긴다는 식의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애플은 누군가를 이겨서 잘하는 회사가 아니라 스스로 훌륭한 일을 해서 번성하는 회사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이 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업문화 자체가 미식축구와 닮았으며, 실제로 시장에서 경쟁하는 모습도 미식 축구선수와 같다. 피겨스케이팅과 다르게 미식축구에서는 점수를 얻기 위해서 상대팀과 끊임없이 몸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래서 마이크로소프트는 경쟁자에 대한 증오를 숨기지 않는다. 회사 모임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한 직원이 스티브 발머의 사진을 아이폰으로 찍으려 하자 수천 명의 직원 앞에서 아이폰을 빼앗고, 이를 짓밟는 시늉을 할 정도였다. 이 사건 이후 회사 내부에서는 함부로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게 되었다. 구글에 대해서도 스티브 발머는 마이크로소프트에게 2등은 의미가 없다면서 검색에서 1등이어야 한다며 구글을 격퇴의 대상으로 정했다. 승리를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는 미식축구 선수처럼 상대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자신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전략적으로 결정한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상대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는 회사다. 상대가 잘하면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그들을 이기기 위해서 더 열심히 개선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상대가 쓰러지면 그 순간 움직임도 둔해진다.


피겨스케이팅 선수 같은 애플과 미식 축구선수 같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차이는 창의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애플이 뭔가를 새롭게 창조하는 회사라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성공한 분야에 뛰어들어서 기존 제품을 철저히 연구한 후에 상대방보다 조금 더 개선된 상품을 내놓고 상대방의 점유율을 빼앗는 경쟁을 한다. 점유율에 의한 순위야말로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장 의식하는 부분이라면, 정작 애플은 점유율은 낮아도 사용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명품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비싸도 제품만 좋으면 소비자들은 애플의 제품을 사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애플은 어떻게 남들이 생각 못한 위대한 제품들을 만들 수 있을까? 이는 기존의 틀에 사로잡히지 않고 다르게 생각하기(Think Different)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혁신을 위해서 일정한 체계를 갖추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물론 효율적인 수단으로서의 프로세스는 갖추고 있지만 혁신을 위해서 따로 체계를 만들려고 하진 않는다. 스티브 잡스는 단지 위대한 상품을 만들려고 할 뿐이지 혁신하자고 따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는 회사에 혁신을 주제로 강좌를 열거나 혹은 혁신을 위한 다섯 가지 방법이 적힌 포스터를 회사 전체에 붙여 놓는다는 것은 쿨하지 못한 사람이 쿨한 척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밝힐 정도다. 스티브 잡스 스스로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애플이 제품을 만드는 방법을 보면 ‘안티 비즈니스’로 요약될 수 있다. 안티 비즈니스의 길을 택했기에 창조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제품을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대부분의 회사는 우선 시장조사를 한다. 시장에 어떤 제품이 나왔는지를 살펴보고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제품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집중 조사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마케팅 계획을 세운다. 마케팅의 첫 번째 단계는 소비자들의 성별, 나이, 직업, 소득, 인종 등의 요소를 고려해서 시장을 세분화하는데 이를 세그먼테이션(segmentation)이라고 한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회사는 자신들이 누구를 대상으로 제품을 팔게 될 지를 심사숙고하게 되는데 이를 표적시장, 즉 타깃을 결정한다(targeting)고 말한다. 만약 30대 초반이면서 컴퓨터에 익숙한 화이트 컬러 계층의 연봉 3,600만 원을 받는 솔로 남자를 타깃으로 삼았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제품을 개발한다. 이와 함께 타깃 내에서 다른 회사의 제품과 자사 제품의 차이를 연구해서 자사 제품이 시장에서 차지하게 될 위치를 결정하는데 이를 포지셔닝(positioning)이라고 한다. 시장조사를 통해서 세그먼테이션, 타켓팅, 그리고 포지셔닝을 결정하는 것은 마케팅의 핵심적인 요소로 흔히 앞의 단어들의 약자를 따서 ‘마케팅의 STP’라고 한다.


애플은 이런 전통적인 프로세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애플은 상품 개발단계에서 아예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 회사로 유명하다. 그래서 애플은 컨설턴트를 고용하지도 않는다. 스티브 잡스가 컨설턴트와 같이 일했을 때는 애플스토어를 계획했을 때 게이트웨이의 소매점 전략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그것도 시장에서 실패의 길을 걷고 있던 게이트웨이가 저지른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매킨토시를 만들 때도 역시 어떠한 시장조사도 없었다. 벨이 전화기를 만들 때 시장조사를 하지 않았듯이 매킨토시 역시 시장조사가 필요 없다는 것이 스티브 잡스의 생각이다. 사실 시장조사를 해서 나오는 상품은 결국 기존 상품에 무엇인가를 개선하는 정도의 제품일 수밖에 없다.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만약 내가 소비자들에게 원하는 상품이 무엇인지를 물었다면 소비자들은 그냥 좀 더 빠른 말을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을 창조할 정도의 위대한 상품은 소비자도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획기적인 것이어야 한다. 시장조사를 통해서 나오는 상품은 상식선에서 머무르지만 위대한 제품은 상식을 깨야만 한다.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 모른다.”고 말한다. 소비자가 기대하지 못한 놀라움을 전해줄 수 있는 상품은 고객에게 물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들처럼 스스로 창조해야 한다. 애플이 생각하는 위대한 제품은 애초에 시장조사로 나올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애플은 시장조사에 의존하지 않고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애플이 오직 하나의 제품에 전력을 쏟는 것 역시 안티 비즈니스적인 자세와 연결된다. 휴대폰을 예로 들면 많은 회사들은 고객집단에 따라서 다양한 모델들을 만든다. 그래서 한 개의 휴대폰 회사에서 나이, 성별, 직업, 취향을 고려한 모델들이 매달 몇 개씩 쏟아진다. 위험을 피하고 최대한 많은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마케팅의 기본인 STP 역시 고객을 취향별로 나누어서 타깃에 맞게 각양각색의 제품을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듯 일반 휴대폰 회사들이 비즈니스의 정석을 걷고 있는 데 비해 애플은 반대로 안티 비즈니스의 길을 걷고 있다. 애플은 위험을 감수하고 오직 하나의 제품에 전력을 쏟는다. 한 번 실패하면 위험이 크지만 대신 애플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노력을 기울여서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 


그렇다면 애플은 자신들이 만드는 것이 위대한 제품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평가할까? 애플은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원리를 가지고 있다. 애플 부사장인 필 실러는 “스스로 사랑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 애플의 중요한 개발 철학”이라고 말한다. 스티브 잡스에 의하면 애플이 아이튠스를 만든 건 애플 직원 모두가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음악 소프트웨어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애플의 개발팀들은 자신들이 만드는 게 곧 자신들이 원하는 제품이었던 만큼 하루라도 빨리 제품을 사용하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일했다. 아이팟 역시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직원들이 개발에 참여해서 온 열정을 쏟았다. 애플에서 디자인을 책임지는 조너선 아이브 역시 아이팟을 너무나 가지고 싶어서 정말 지치도록 일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것을 보면 이것이야말로 애플 창조성의 비결이 아닌가 싶다. 애플 직원들 스스로가 사랑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일단 개발이 시작되면 하루라도 빨리 완성품을 갖고 싶어서 더욱 열정적으로 일하며, 한편으로는 맨 첫 번째 고객으로서 제품을 까다롭고 엄격하게 바라볼 수도 있게 된다.


아이폰 개발도 마찬가지였다. 애플 직원들은 사용하기에 불편하고, 보기에 끔찍한 휴대폰이 너무나 싫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는 더 끔찍했고, 하드웨어 역시 별로라고 생각했다. 마침 주변사람들에게 그들이 가지고 있는 휴대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모두가 싫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휴대폰을 만드는 게 엄청난 도전이라는 것을 알긴 했지만 애플은 자신들이 스스로 사랑에 빠질 수 있는 휴대폰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애플에서는 완성된 제품을 평가할 때도 직원들이 사용해 보고 스스로 만족하느냐로 결정한다. 이것이야말로 애플에서 행해지는 시장조사 방법이기도 하다. 확실히 애플 직원은 시장조사를 하지 않아도 소비자의 마음을 꿰뚫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이것이 애플의 능력이며,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히트작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이고, 직원들이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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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10회)


우리가 맥을 발표하기 일주일 전이 생각나네요. 우리 모두는 컴퓨터가 맥처럼 바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앞으로 컴퓨터가 맥처럼 바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언제쯤 맥처럼 바뀌느냐가 문제였죠. 지금 이 순간 그런 느낌이 듭니다. 


- 스티브 잡스, 아이폰 발매 전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 중에서


아이폰 개발은 태블릿 컴퓨터 개발에서 시작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유리 위에 멀티터치를 입력할 수 있는 기기를 구상하고, 이를 개발하도록 지시한다. 지시를 받은 개발자들은 6개월이 지난 후에 정말 멋진 인터페이스를 구현한 기기를 가져왔다. 직접 만져본 스티브 잡스는 반해 버리고 개발자들이 만든 기기를 바탕으로 휴대폰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애플의 휴대폰 개발은 내부의 기술과 아이디어로 시작됐지만 외부 시장의 변화 역시 한몫했다. 아이팟 덕분에 엄청난 순이익을 기록할 수 있었지만 휴대용 MP3 플레이어 시장에는 한 가지 위험요소가 있었다. 바로 휴대폰에 MP3 재생 기능을 탑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휴대폰에서 MP3 음악 파일을 마음껏 들을 수 있다면 아이팟을 구입할 이유가 없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변화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애플이 휴대폰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상황이었다. 


특히 모토로라와 합작으로 아이튠스와 연동되는 MP3폰 로커(ROKR)를 개발하면서 스티브 잡스는 휴대폰 시장 진출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다. 로커는 시장과 애플 마니아로부터 혹평을 받았는데 이때 로커에 실망한 애플 중역들은 직접 휴대폰을 만드는 편이 낫다는 결론을 가지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다른 업체를 거치지 않고 애플 방식으로 휴대폰 시장을 직접 공략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애플이 아이폰을 만들 수 있었던 데는 애플이 자랑하는 데스크톱 운영체제인 맥 OSX가 모바일에서도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기술업계가 발전한 것도 한몫하였다. 2006년 애플은 인텔칩을 지원하는 맥 OSX 개발을 완료하였고, 이들 개발자들이 맥 OSX를 모바일 기기용으로 수정하기 시작했다. 


아이폰은 필연적으로 이동통신사와 함께 일해야 한다. 그런데 애플은 다른 기업과 같이 일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회사다. 애플의 중요한 사업원칙은 스스로 통제권을 가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휴대폰 업계는 이동통신사의 통제를 받는 것이 관행이었다. 다행히 미국의 이동통신업체인 AT&T사는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 애플이 개발하던 아이폰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아이폰이라면 시장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AT&T는 애플이 제시하는 까다로운 조건들을 수용하였다. AT&T는 오직 네트워크만 책임지고, 휴대폰과 콘텐츠 부분에서는 애플이 전적으로 통제할 뿐만 아니라 통신 요금의 10%를 받게 된다는 획기적인 계약이었다. 대신 애플은 AT&T에게 5년 동안 독점판매권을 넘겨주었다. 


1년간의 협상 끝에 2006년 7월 두 회사의 계약이 이루어진 후 아이폰 개발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AT&T는 아이폰의 통신망 테스트에 적극적인 도움을 주었다. 애플은 원래부터 비밀주의로 유명했다. 애플 직원들은 가족들에게도 자신이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이야기하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다. 스티브 잡스도 예외가 아니어서 집에서 제품을 테스트할 때는 혼자 몰래 검은 천을 덮어 놓고 할 정도다. 아이폰에서도 애플의 비밀주의는 예외가 아니어서 처음에 아이폰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만드는지도 몰랐다. 하드웨어팀과 소프트웨어팀이 각자 일했고, 나중에야 그것이 아이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플 내부에서도 철저히 기밀을 지켰던 만큼 AT&T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AT&T와 망 연동 테스트를 할 때 AT&T쪽 관계자는 제대로 된 아이폰이 아니라 통화만 가능한 시제품을 제공받아서 테스트를 진행해야 했다. 


AT&T가 애플에게 많은 양보를 하긴 했지만 문화적인 차이로 인한 갈등은 어쩔 수 없었다. 한 번은 AT&T 직원이 애플 직원에게 AT&T의 이사를 만나러 갈 때는 양복을 입고 가야 한다고 말하자 “우리는 애플이다. 우리는 양복을 입지 않고, 양복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라며 맞받아 쳤다. 통신칩 채택 문제나 무선인터넷 서비스와 관련된 요금문제로 두 회사는 심각한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그래도 파트너 관계는 잘 유지되었다. 


애플의 모든 제품이 그렇듯이 아이폰 역시 넉넉한 스케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이팟을 개발할 때처럼 모든 것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2007년 1월 맥 월드에서 완벽하게 작동되는 아이폰을 공개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2006년 가을까지만 해도 수많은 버그로 인해서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당시 제작 중이던 아이폰을 만져본 스티브 잡스는 평소처럼 큰소리로 꾸짖기는커녕 아직 물건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서 차분하게 말했다. 그러자 스티브 잡스의 조용한 말투에 개발자들은 오히려 공포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후 개발자들은 3개월 동안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오직 개발에만 매달려야 했다. 


개발자들의 고생은 드디어 2007년 1월 9일 결실을 맺게 된다. 맥 월드에서 스티브 잡스가 처음으로 아이폰을 공개하자 전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곧장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TV와 신문 같은 미디어는 물론이고 인터넷 전체가 온통 아이폰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시장조사 전문 기관인 컴스코어에 의하면 애플에서 아이폰을 발표한 후 일주일간 아이폰의 검색 횟수가 무려 120만 건에 이르렀다고 한다. 아이폰은 아이팟에 비해 호의적인 반응이었지만 실패를 예상하는 사람도 많았다. <불룸버그>의 매튜 린(Matthew Lynn) 기자와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인 존 드보락(John Dvorak)은 애플이 비록 아이팟에서는 성공했지만 휴대폰 업계에는 거대 기업들이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 고전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발매 당일 깨져버렸다. 아이폰이 처음으로 발매될 때 애플의 각 매장에는 아이폰을 구입하기 위한 긴 줄이 늘어섰다. 아이폰은 단 74일 만에 100만 대가 판매되면서 애플의 새로운 무기가 되었다.


당시 아이폰 판매량은 성공적이었지만 스티브 잡스의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는 판매량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출시 두 달 만에 599달러였던 아이폰을 200달러 인하해서 399달러에 팔았다. 이는 애플 마니아들을 자극했고 스티브 잡스는 엄청난 항의에 시달려야 했다. 결국 애플 마니아들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애플은 아이폰을 이미 구입한 고객에게 100달러짜리 보상 쿠폰을 지급하면서 사과했다. 아이폰의 판매량은 훌륭했지만 스티브 잡스의 야망을 충족시키지 못했음을 뜻한다. 사실 1세대 아이폰은 최신의 3G 이동통신이 아닌 한 세대 뒤쳐진 통신규격을 지원해서 무선 인터넷 속도가 느렸다. 


또한 애플이 처음으로 만든 휴대폰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불안정했다. 애플이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연 것은 3세대 이동통신 규격을 지원한 아이폰 3G가 나오면서부터다. 1세대 아이폰이 백만 대를 판매하는데 74일이 걸렸던 것에 비해서 아이폰 3G는 일주일 만에 백만 대가 판매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2008년 7월 10일 앱스토어가 시작되면서 아이폰 3G의 판매도 덩달아 늘어나기 시작한다. 이때만 해도 아이폰의 인기는 미국과 유럽에 치중되어 있었지만, 아이폰 3GS가 등장하면서 아이폰은 전 세계적인 히트상품이 되었고 2010년 6월까지 6천여 만 대가 판매되었다. 


아이폰은 이제 스마트폰의 대명사가 되었다. 아이폰은 ‘지저스 폰(Jesus Phone)’이라는 극찬을 들으면서 이동통신 업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중이다. 아직 별 감흥이 오지 않는가? 아이폰 효과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싶다면 일본 이동통신 역사를 다시 쓰고 있는 손정의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손정의는 한때 닷컴열풍 덕분에 2000년 자산 총액이 700억 달러에 이르며 세계 재산 순위 4위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불과 3년 만에 그의 재산은 11억 달러로 쪼그라든다. 다행히 중국에 투자한 주식 덕분에 2006년 자산 총액 70억 달러로 다시 일본 최고 갑부에 등극한다. 손정의는 153억 달러에 보다폰 저팬의 주식 97.7%를 인수하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다. 


일본 기업 역사에서 최대 자금이 투입된 인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직접 자신의 재산을 차압하기까지 했다. 당시 무리한 인수라면서 손정의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 파생상품에 투자해서 750억 엔에 이르는 거액의 손실을 기록했다. 사실 손정의가 의욕적으로 도입한 아이폰 3G 역시 별다른 인기를 끌진 못했다. 아이폰이 일본에서 처음 발매될 때 언론은 아이폰이 일부 애플 마니아들에게만 사랑받을 제품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손정의는 중국에 출장 갔을 때 PC를 사용하지 않고 아이폰만으로 모든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성공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폰이 저조한 판매량을 기록하자 사람들은 그 이유를 일본 브랜드만을 선호하는 폐쇄적인 일본 시장 환경에서 찾았다. 일본은 오래 전부터 세계 시장과 동떨어져 갈라파고스화 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에서 히트한 상품도 일본에서는 고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휴대폰 분야는 더욱 고착화되어 있었다. 세계 시장 점유율에서 각각 1위와 2위, 그리고 3위를 기록 중인 노키아와 삼성 그리고 엘지에게 일본 시장은 무덤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점유율 자체가 형편없다. 일본의 휴대폰 시장에서 성공하는 제품은 오직 일본 자국 브랜드밖에 없지만 정작 세계 시장에서 일본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은 3.5%에 불과하다. 아이폰 3G의 실패 이후 일본의 휴대폰 시장 자체가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만큼 세계 어떤 기업이 와도 좋은 성적을 거두기 힘들다는 것이 통념처럼 자리 잡게 되었다. 



아이폰 3GS가 나오면서 이런 고정관념은 완전히 깨져 버렸고, 일본에 큰 충격파를 선사했다. 판매시작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던 아이폰 3GS의 정확한 판매량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프트뱅크의 성공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서 아이폰의 성공을 추측할 수 있다. 2009년 10월 손정의는 실적 발표에서 아이폰이 전년보다 수백 % 성장했다면서 아이폰이 소프트뱅크의 실적에 기여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2009년 결산에서 소프트 뱅크의 영업이익은 4,658억 엔을 기록했는데, 이는 일본 전체 기업 중 세 번째로 높은 금액이었다. 소프트뱅크의 놀라운 실적은 역시 아이폰이 일등공신이었음은 당연지사이다.


애플 부활의 교훈


* 최고의 전문가를 고용해라

생산과 재고관리에서 약점을 가진 애플은 팀 쿡의 영입 이후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 제품 라인업을 단순화하라

위기에 빠진 애플로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경쟁력 있는 4개의 제품만을 만들어 핵심 역량을 강화했다.


* 적과도 협력하라

어려울 때는 도움을 줄 수 있는 협력자를 최대한 모아야 한다.


* 브랜드를 관리하라

브랜드는 회사의 훌륭한 자산으로 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 결국은 제품이다

애플이 부활한 것은 결국 아이맥이라는 히트작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 소규모 팀으로부터 시작해라 

아이팟은 두 명의 비밀팀에서 시작되고, 철저한 내부검증을 걸친 후 본격적으로 출발한 프로젝트다.


* 경제 위기에도 도전을 멈추지 마라

애플이 창업된 1976년은 오일쇼크로 인해서 경제위기를 겪는 순간이었고, 아이팟 역시 911과 닷컴붕괴로 어려운 시기였지만 애플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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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9회)



애플의 존재를 설명해 주는 제품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아이팟입니다. 아이팟에는 애플의 놀라운 기술과 누구나 다루기 쉬운 사용자 편의성, 그리고 굉장히 멋진 디자인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그래온 것처럼 말이죠. 만약 누군가 애플이 왜 세상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이팟을 들어 올릴 겁니다.

- 스티브 잡스


2001년 2월, 애플 내부에 비밀팀이 하나 결성됐다. 당시 애플의 실적은 1억 9,5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저가형 컴퓨터로 무장한 PC 업체들의 공습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던 애플은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비밀팀의 임무는 MP3 플레이어 시장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새로운 MP3에 대한 아이디어를 애플의 경영진에게 제공하는 것이었는데, 성과에 따라 애플은 컴퓨터 전문기업에서 소비자 가전기업으로 변신을 꾀할 생각이었다. 


비밀팀은 애플 정식직원인 Stan Ng와 외부 파트너 토니 파델, 단 두 명으로 구성되었다. 파델은 필립스에서 휴대용 기기를 만들었고, 리얼네트웍스 음악 서비스 개발에 참여한 경력 덕분에 휴대용 음악기기를 만드는 데 최적의 인물이었다. 원래 토니 파델은 디지털 뮤직과 관련된 제품을 만들어 보고자 직접 Fuse Networks라는 회사를 창업하기도 했다. 하지만 투자를 받지 못하고 사업은 정체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는 여러 회사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안했지만 이 역시 번번이 거절당한다.

 

이런 와중에 애플에서 8주 동안 진행될 계약을 하나 맡기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비밀이 엄격한 애플은 계약 전에도 파델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다만 파델에게 적합한 일이라는 정도만 전했을 뿐이다. 계약 후에야 애플이 휴대용 MP3 플레이어를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는 그가 예전부터 꿈꾸던 바로 그 일이었다. Stan Ng가 기존의 MP3 플레이어 시장을 꼼꼼히 체크하는 동안 토니 파델은 시제품을 완성했다. 


비밀팀은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단 두 달 만에 스티브 잡스를 포함한 중역들 앞에서 자신들의 결과물을 발표했다. 이때 토니 파델은 한 가지 꾀를 내 시제품을 일부러 세 개로 만들었는데, 그가 진심을 담아서 만든 시제품은 하나였지만 일부러 세 개를 선보여서 그중 하나만 선택하도록 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뭔가 부족하고 어정쩡한 시제품을 내놓고, 숨겨 놓은 진짜 카드는 마지막 세 번째에 보임으로써 좀 더 효과적으로 그의 시제품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는 그가 생각한 대로 반응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시제품을 보여줄 때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더니 세 번째 시제품을 보여주자 바로 마음에 들어 했다. 시제품을 보고 MP3 플레이어 시장에 진출할 결심을 한 스티브 잡스는 개발자들에게 크리스마스 시즌 안에 제품을 완성하라고 엄명을 내린다. 이는 단 9개월 만에 제품 개발을 완료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처음으로 만드는 상품을, 그것도 시장을 압도할 만한 최고의 제품으로 완성하라는 것은 시간상 거의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초 계획보다도 빨리 할 수 있었던 것은 애플의 저력과 훌륭한 전략 덕분이다. 애플 내부에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개발자가 있었고, 세계 최고 수준의 디자이너팀도 보유하고 있었다. MP3 플레이어 개발팀의 핵심적인 멤버는 수십 명에 불과했지만 회사 내부에 있는 수백 명의 개발자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에 효율적인 개발이 가능했다. 그러나 내부에서 모든 것을 처리하기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외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애플은 원래 내부에서 개발된 기술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지만 아이팟을 만들 때는 이러한 생각을 버리고 실용적으로 접근했다.


토니 파델만 해도 외부에서 데려온 파트너였지만 아이팟 개발의 총책임자로 임명될 정도였다. 토니 파델 역시 애플의 의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휴대용 음악기기를 개발한 적이 있는 포털 플레이어(Portal Player)사와 접촉해서 아이팟을 공동으로 제작할 것을 결심한다. 토니 파델은 포털 플레이어사를 직접 찾아가서 이번 프로젝트가 애플을 완전히 새롭게 변화시킬 것이며 앞으로 10년 후 애플은 컴퓨터 회사가 아니라 음악 회사가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해 직원들을 놀라게 했다. 애플의 적극적인 태도를 확인한 포털 플레이어 직원들은 다른 일은 제쳐두고 애플의 일에 더욱 열심히 매달렸다.


휴대용 뮤직 플레이어 개발이 본궤도에 오르자 스티브 잡스 역시 적극적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회의에 참석하더니 나중에는 매일같이 개발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음악광이었던 스티브 잡스는 좋은 소리와 나쁜 소리를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귀를 가졌던 만큼 음질 부분에서 많은 의견을 내었다. 인터페이스나 작동 방식에도 관여했는데 특히 버튼의 숫자를 최소화하도록 지시했다. 디자인에도 많은 신경을 쓴 스티브 잡스는 제품 표면의 광택까지 체크할 정도였다. 그는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메뉴의 반응속도를 중요하게 여겼다. 애플이 만드는 휴대용 음악기기는 5기가바이트의 용량을 자랑하는 미니 하드디스크를 넣을 계획이었는데, 무려 천 곡의 음악을 넣을 수 있는 방대한 저장 공간이다. 홍보 역시 천 곡의 음악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던 참이었다. 천 곡의 노래를 저장한 후 이를 쉽게 찾으려면 무엇보다도 메뉴 반응 속도가 빨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이팟’이라는 이름을 최종 결정한 것은 스티브 잡스였다. 그는 비니 치에코(vinnie chieco)라는 프리랜서에게 새로 만드는 휴대용 음악기기의 이름을 의뢰하였다. 이때 휴대용 음악기기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각종 디지털 기기를 매킨토시에 연결시킨다는 애플의 디지털 허브 전략을 소개했다. 비니 치에코는 스티브 잡스가 말한 ‘허브’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그는 휴대용 음악기기를 컴퓨터에 연결하여 사용한다는 말에 Pod(우주선에서 분리 가능한 작은 비행선) 이미지를 떠올렸다. 이런 생각은 실제 애플이 만들고 있던 음악기기를 보고는 더욱 확고해졌다. 흰색의 휴대용 음악 플레이어를 보는 순간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우주선 안으로 착륙하려는 작은 비행선들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Pod이라는 단어를 결정한 비니 치에코는 여기에 애플의 제품명에 애용되었던 i를 덧붙였다. 그래서 그가 스티브 잡스에게 제안한 최종 제품명은 ‘iPod’이었다. 비니 치에코는 iPod 외에도 수십 가지의 제품명이 적혀 있는 문서를 스티브 잡스에게 전달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스티브 잡스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iPod으로 제품명이 결정됐음을 알렸다.


촉박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개발은 너무나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하지만 발매 3개월을 앞두고 치명적인 문제가 드러난다. 아이팟을 작동하지 않아도 3시간만 지나면 배터리가 자동으로 방전되었던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개발자들은 8주 동안 밤낮없이 매달렸고 겨우 해결할 수 있었다. 또한 오리지널 아이팟은 하드디스크를 사용했던 만큼 기기에 조금만 충격을 주어도 음이 튀는 문제가 발생했다. 애플은 사용자가 음악을 선택하면 하드디스크에서 메모리로 데이터를 이동시킨 후 메모리에서 음악이 플레이되도록 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아이팟이 처음 대중에게 공개된 2001년 10월 23일은 최악의 시기였다. 911 테러로 미국 사회 전체가 충격에 빠졌었고, 닷컴붕괴와 함께 경제 사정도 밝지 못하던 시점이었다. 회사 사정역시 좋지 않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2,500만 달러의 홍보비용을 투입해서 아이팟을 출시하였다. 


아이팟이 처음부터 큰 히트를 친 것은 아니었다. 2001년에는 12만 5천 대를 판매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열혈 애플 마니아들이 아이팟을 구입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내면서 판매량은 서서히 달아올랐다. 특히 아이팟에 반한 몇몇 고객들은 직접 아이팟을 위해 자체적인 홍보물을 만들 정도였다. 마니아들의 노력과 입소문 덕분에 아이팟은 발매된 지 2년 만에 130만 대가 넘게 판매되면서 인기 제품의 반열에 오른다. 


애플이 음악 산업 전체를 바꿀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애플에서 만드는 제품은 오직 매킨토시에서만 돌아간다는 정책을 폐기했다는 점이다. 아이팟은 원래 매킨토시를 통해서만 음악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3세대 아이팟에서 윈도우와의 호환성을 대폭 개선하면서 아이팟의 판매량에 가속도가 붙었다. 3세대 이전만 해도 아이팟은 매킨토시 사용자들에게나 한정된 틈새시장용 제품에 불과했지만 윈도우를 본격 지원하면서 전체 대중들에게 사랑받기 시작했다. 실제로 아이팟 3세대가 등장하기 전 1년 동안의 판매량은 67만 3천 대에 불과했지만, 이후 1년 동안의 판매량은 218만 대에 이를 정도로 폭발적인 성공을 거뒀다. 애플이 이렇게 윈도우를 적극 지원하는 전략을 펼친 것은 애플이 그동안 지켰던 자존심보다는 실리를 선택한 중요한 변화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인터넷 서비스를 하나로 결합하는 삼위일체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이는 애플이 과거와는 다르게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회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아이팟이 잘 나가자 수많은 업체들이 아이팟을 모방했다. 아이팟보다 가격이 싼 제품이 쏟아지자 많은 전문가들이 매킨토시가 몰락했던 것처럼 그렇게 쓰러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빌 게이츠 역시 아이팟의 성공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면서 매킨토시를 예로 들었다. 그러나 애플에게는 다른 회사가 가지지 못한 온라인 음악상점인 아이튠스 뮤직스토어가 있었다. 세계 5대 음반 메이저 업체들의 음악을 한곳에서 서비스하는 아이튠스 뮤직스토어를 이용할 수 있는 MP3 플레이어는 아이팟이 유일했다. 2003년 아이튠스 뮤직스토어가 오픈할 때만 해도 합법적으로 음악을 구입하고 싶은 사람은 아이팟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회사는 휴대용 MP3 플레이어라는 기계 하나를 팔았지만 애플은 음악을 듣는 방식, 즉 경험을 판 것이었다. 


만약 애플이 하드웨어로 승부했다면 아이팟은 매킨토시처럼 어려운 순간을 맞이했을 것이다. 애플의 아이팟은 하드웨어에 아이튠스 뮤직스토어와 같은 인터넷 서비스를 결합함으로써 다른 기기들이 넘볼 수 없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실제로 아이튠스 뮤직스토어와 결합된 아이팟은 생활 그 자체를 바꾸었다. 이전에는 음악이 듣고 싶으면 상점까지 가서 음반을 구입해야 했지만, 아이팟 이후에는 인터넷으로 음원을 다운로드받아 바로 그 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고 사람들의 생활 자체가 바뀌게 되었다. 소비자들은 단순히 성능이 좋고 값이 싸다는 이유가 아니라 음악을 쉽고 간편하게 들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애플의 제품을 선택했다. 특히 아이튠스 뮤직스토어에서 구입한 음악은 오직 아이팟에서만 재생되었기 때문에 이미 구입한 음악이 아까워서라도 다른 기기로 떠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디지털 음원을 판매하는 인터넷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통합해낸 아이팟은 2009년 시장점유율이 70%에 이를 정도로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 독주를 하고 있다. 아이팟은 5년 반 만에 1억 대를 돌파하였고, 2010년 6월까지 2억 6,949만 대가 판매되었다. 


아이팟의 성공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애플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물리쳤다는 점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 95를 통해 PC시장을 장악한 이후 IT업계의 절대 권력자였다. 막강한 자본을 가진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느 분야에 진출하든 기존의 강자를 물리치고 시장의 지배자가 되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절대로 마이크로소프트와 경쟁하지 말라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그런데 아이팟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지고 있던 천하무적의 이미지에 상처를 입혔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준(ZUNE)으로 MP3 플레이어 시장에 등장할 때만 해도 기세등등했다. 준 사업의 책임자였던 제이 알라드(J Allard)는 준을 개발하는 직원 230명에게 마이크로소프트는 미학이 전혀 없다면서 회사의 창조성을 비웃는 스티브 잡스의 동영상을 보여 주면서, 스티브 잡스가 잘못을 인정하는 광경을 보기 위해서라도 다 함께 싸우자는 말을 덧붙였다. 


또다시 마이크로소프트가 스티브 잡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서 나선 것이었다. 하지만 준은 시장 점유율 두 자릿수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계속 고전 중이다. 조사 전문기관인 NPD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0년 5월 미국시장에서 아이팟의 시장 점유율이 76%에 이를 정도로 승승장구 하는 동안 마이크로소프트는 고작 1%에 머물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처음 시장에 진출할 때 보여준 자신감을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처참한 성적이다.


아이팟이 준을 상대로 승리한 것은 단순히 사업 하나가 성공했음을 뜻하지 않는다. 아이팟의 성공으로 애플은 PC가 아닌 소비자 가전업체로 변신할 수 있었고, 또한 PC가 아닌 분야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이라는 큰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애플 처럼 창조한다는 것" 매주 연재 됩니다. 다음에는 아이폰의 탄생 스토리가 이어집니다.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은 저의 페이스북 팬페이지에 접속하셔서 좋아요 버튼좀 눌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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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애플은 너무 많은 잘못된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나는 애플에서 놀라운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애플에는 뛰어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잘못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계획을 잘못 세웠기 때문입니다.


‐ 스티브 잡스, 1997년 보스턴 맥 월드 중


1997년 7월, 스티브 잡스는 길 아멜리오가 사퇴한 이후 회사의 실질적인 권한을 이양 받는다. 스티브 잡스는 우선 새는 돈을 막아야만 했다. 이미 길 아멜리오 시절부터 해온 일이지만 스티브 잡스 역시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사람을 해고하는 식은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는 문서뿐만 아니라 애플 직원들과 일일이 대화를 나누며 회사 사정을 면밀하게 조사했다. 그는 부서를 없앨 때도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결정했다. 자신의 부서가 존속되어야 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밝힌다면 얼마든지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모든 선택의 핵심에 수익성이 있었고, 결국 50여 개가 넘는 프로젝트 중 단 10개만이 살아남았다. 


또 제품 라인업도 간소화했다. 당시 애플은 컴퓨터뿐만 아니라 프린터, PDA, 디지털 카메라, 모니터 등 40여 가지가 넘는 제품을 만들고 있었다. 애플은 같은 컴퓨터 라인업에서도 가격과 성능을 달리한 수많은 모델들을 양산하고 있었고, 각 컴퓨터 간의 차이를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특징 없는 제품들을 이름만 달리해서 수십 개씩 내놓았다. 이는 소비자들에게도 큰 혼란이 되었다. 애플 컴퓨터를 선택하는 방법을 따로 문서로 작성해서 소비자들에게 보여줘야 할 정도였다. 


스티브 잡스는 과감히 제품을 4가지로 압축했다. 우선 고객층을 전문가와 일반 소비자로 나누고, 이들 고객에 맞는 데스크톱 컴퓨터와 휴대용 컴퓨터를 공급하기로 했다. 제품 개발 방식에도 칼을 대었다. 4개의 제품 라인업에 최고의 팀을 구성해서 하나의 팀이 하나의 제품을 전담하도록 했다. 하나의 모델명에 하나의 팀이 하나의 가격과 하나의 스펙, 그리고 하나의 디자인이 적용된 단일제품을 제작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일은 애플의 미래를 불안하게 보는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애플을 부정적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마이크로소프트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로 운영체제 부분에서 경쟁 관계였지만, 사실 애플의 생사를 쥐고 있었다. 운영체제가 아무리 훌륭해도 응용소프트웨어가 형편없으면 소용없다. 컴퓨터와 운영체제는 응용소프트웨어를 원활하게 구동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응용소프트웨어가 없다면 컴퓨터와 운영체제가 존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당시 매킨토시에서 가장 인기 있고 가장 중요한 응용소프트웨어는 ‘MS 오피스’였다. 1994년 이후로 마이크로소프트는 매킨토시용으로 MS 오피스를 내놓지 않았다. 윈도우 95에만 MS 오피스를 독점적으로 제공하자 사람들은 MS 오피스를 쓰기 위해서 윈도우 95를 구입했다. 매킨토시 이용자들 역시 윈도우 95로 이탈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MS 오피스가 없는 매킨토시에게 희망이란 없었다. 결국 스티브 잡스는 그동안 자신이 그토록 조롱하던 필생의 라이벌 빌 게이츠에게 SOS를 칠 수밖에 없었다.


윈도우는 맥 OS를 참고해서 만들었다는 사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원죄처럼 따라다닌 데다가 마침 애플이 내놓은 동영상 처리 프로그램인 ‘퀵타임’의 소스를 무단으로 윈도우에 도용한 문제로 소송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스티브 잡스가 놓칠 리 없었다. 그는 빌 게이츠에게 전화해서 지적재산권과 관련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지 않느냐며 먼저 협상을 제안했고, 빌 게이츠는 스티브 잡스의 전화를 반갑게 받았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이를 위해 무엇을 주고받아야 할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자질구레한 조건을 내걸지 않고 바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협상안을 제시했다. 과감한 결단 덕분에 두 회사는 일사천리로 협상을 진행하여 몇 가지 합의를 이끌어냈다. 우선 MS 오피스가 매킨토시 버전으로도 계속해서 발매될 것을 약속받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식구매를 통해 애플에 1억 5,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당시 애플에게 큰돈은 아니었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을 살려주기로 결정한 듯한 인상을 준 덕분에 애플의 미래에 긍정적인 신호가 되었다. 협상 능력에서는 스티브 잡스와 호각을 다투는 빌 게이츠 역시 여러 실익을 얻었다. 우선은 골치 아픈 지적재산권 문제를 완전히 타결하면서 껄끄러웠던 과거 문제를 덮을 수 있었고, 당시 넷스케이프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던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애플이라는 우군을 얻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협약은 1997년 보스턴에서 개최된 맥 월드에서 발표되었다. 위성으로 연결된 빌 게이츠가 대형화면에 등장하자 많은 사람들이 야유를 퍼부었고, 두 회사의 협약에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사실 애플 팬들 입장에서 보면 빌 게이츠는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처럼 묘사되기 일쑤였다. 그런 빌 게이츠를 물리쳐줄 것으로 기대했던 스티브 잡스가 앞장서서 빌 게이츠와 손을 잡는다는 것은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성공하려면 마이크로소프트를 패배시켜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면서 애플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애플 스스로 정말 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애플은 가능한 많은 도움이 필요한 회사이며, 다른 회사가 애플을 도와준다면 아주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MS 오피스를 원하면 마이크로소프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면서, 그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경쟁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협력 소식은 즉시 반응이 왔다. 다음날 주식이 33%나 상승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두 회사의 협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협력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충격을 선사한 사건이지만 쓰러져가는 애플에게 긍정적인 지렛대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구조조정을 통해서 비용을 절감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력을 통해 애플의 미래에 대한 시선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은 스티브 잡스는 제품의 생산, 유통, 공급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사실 이 부분이야말로 애플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였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델을 타깃으로 삼음으로써 새로운 도약을 마련할 수 있었다. 델의 창업자인 마이클 델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돌아왔을 때 “그냥 주주들에게 남은 돈을 돌려주고 애플은 자발적으로 파산하는 게 낫다.”는 발언을 해서 스티브 잡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었다. 스티브 잡스는 이를 갈았다. 델컴퓨터의 최대 장점은 생산비용이 다른 회사보다 월등히 낮다는 것이다. 이는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는 철저한 짠물 경영 덕분이었다. 짠물 경영의 교과서로 통하는 델컴퓨터는 마이크로소프트나 인텔처럼 원천기술로 성공한 업체가 아니라 효율적인 생산기술 덕분에 세계적인 기업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델처럼 효율적인 생산과 관리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기로 한다. 헤드헌팅 회사를 통해서 몇 명의 후보자들을 소개받았는데, 그중 팀 쿡(Tim Cook)이 있었다. 팀 쿡은 스티브 잡스와 완전히 반대되는 인물이었다. 쉽게 흥분하지 않고 항상 침착했으며 감성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이었는데 이런 팀 쿡에게 스티브 잡스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팀 쿡이 당시 잘 나가던 컴팩(Compaq)을 다니고 있었던 것에 비해 애플은 아직 암흑 속을 헤매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누구인가? 스티브 잡스는 팀 쿡에게 애플이 다시 과거처럼 위대해질 것이라고 설득했다.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를 들은 팀 쿡은 언젠가 애플의 주식은 100달러가 넘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현재 애플의 주식 가격은 200달러를 넘어섰지만 당시의 주식은 20달러에 불과했음을 생각하면 그가 얼마나 확고하게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졌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팀 쿡이 합류한 후 애플은 놀라운 변신을 이뤄낸다. 컴퓨터 부품은 채소와도 같다. 채소가 하루만 지나도 신선도 때문에 가격이 떨어지듯이 컴퓨터 부품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컴퓨터 업계에서 재고관리는 무척 중요하다. 컴퓨터가 창고에 머무르는 기간이 최소화되는 것이 관건인데, 애플은 이 부분이 최악이었다. 애플의 재고는 몇 개월 치가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팀 쿡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생산공장의 문을 닫고 제조 부분을 외주로 돌린다. 덕분에 완성품을 보관하던 창고 역시 폐쇄되면서 애플의 재고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 100여 군데에 이르던 부품 공급 업체도 24곳으로 줄이면서 생산원가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팀 쿡의 활약 덕분에 애플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제조, 생산, 유통은 애플의 가장 큰 자랑이 되었다. 현재 애플은 AMR 리서치에서 발표하는 공급망 관리 부분에서 2008년 이래 3년 연속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애플의 높은 이익률에는 팀 쿡의 놀라운 원가절감 노력이 있었다. 팀 쿡은 스티브 잡스와 환상의 짝을 이루어 애플 부활의 선봉에 섰다. 팀 쿡의 능력에 반한 스티브 잡스는 그에게 매킨토시 사업부까지 맡겼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과 간이식 수술로 회사를 비웠을 때는 CEO 업무를 대신 맡을 정도로 둘은 긴밀하게 일하고 있다. 팀 쿡은 현재 나이키의 이사로도 활동 중인데 애플 직원이 외부에서 이런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다. 스티브 잡스가 그를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를 가장 당황시켰던 것 중 하나는 애플의 브랜드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과거 애플의 브랜드는 시대를 앞선 선도자의 느낌이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시대에 뒤쳐진 패배자가 되어 되었다. 애플의 브랜드 파워를 되살리는 것이 시급했다. 


스티브 잡스는 우선 매킨토시의 복제품 판매 계약을 취소시켰다. 전 CEO인 마이클 스핀들러는 모토롤라, 유맥스, 파워 컴퓨팅에게 매킨토시를 복제해서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로열티를 받기로 했었다.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지만, 이런 정책은 회사의 재정에 치명타를 주었다. 사람들이 애플의 매킨토시를 구입하는 게 아니라 가격이 상대적으로 싼 복제품을 구입했기 때문이다. 이 계약은 애플 브랜드에 좋을 게 없었다. 브랜드는 결국 제품에서 나온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드는 컴퓨터 업체라는 특별함이 애플의 브랜드를 더욱 값지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매킨토시가 애플이 아닌 다른 곳에서 생산되면서 애플만이 가지는 특별한 느낌도 사라진 것이다. 특히 복제품 중에는 애플보다 성능이 뛰어나지만 가격이 싼 제품도 있었다. 이런 일은 애플에 큰 위협이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복제품 생산을 중단시키려 했지만, 매킨토시 복제품으로 큰돈을 벌던 파워컴퓨팅이 극렬하게 반대했고 결국 파워컴퓨팅을 1억 달러에 매입해야만 했다. 


추락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되살리기 위한 또 다른 방법으로 대규모 캠페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스티브 잡스는 치아트 데이(Chiat/day)의 디렉터 리 클로와 접촉한다. 애플의 시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광고를 원한다는 말을 들은 리 클로는 매킨토시를 이용해서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광고에 활용하고 싶어 했다. 마침 스티븐 스필버그, 제프리 카젠버그, 데이비드 게펜이 공동 창업한 드림웍스 SKG에서 영화를 제작할 때 매킨토시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모습을 영상에 담을 계획을 세웠다. 괜찮은 아이디어였지만 스티브 잡스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는 흑백 초상화를 모으는 취미가 있었고, 스티브 잡스의 집은 아인슈타인과 같은 유명 인사들의 흑백 초상화들로 꾸며져 있었다. 리 클로는 여기에서 새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고정관념을 깨뜨린 창의적인 생각으로 20세기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등장하는 광고를 생각해냈다. 이번에는 스티브 잡스 역시 흡족해 하면서 적극적으로 광고 제작에 참여했다. 광고 캠페인의 주제는 ‘Think Different’였다. 광고는 토머스 에디슨, 아인슈타인, 존 레논, 무하마드 알리, 밥 딜런 등의 모습이 흑백영상으로 지나가면서 다르게 생각해서 결국 세상을 바꾸어 놓은 인물들을 찬미하는 자유시 ‘Here’s to the Crazy ones’가 음성으로 소개되었다. 


Think Different는 단순한 광고가 아니었다. 애플의 브랜드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애플 제품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찬미도 담고 있었다. 매킨토시의 점유율이 추락하자 일반 사람들은 매킨토시 이용자를 시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괴짜 정도로 치부하는 분위기였는데, Think Different는 매킨토시 사용자들이 비록 소수지만 그들이야말로 광고 속에 등장하는 존 레논이나 밥 딜런처럼 창조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했던 것이다. 소수자의 설움을 느꼈던 매킨토시 소유자들은 Think Different를 통해서 소수이지만 특별한 사람이라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이 광고는 단순히 고객에게 애플을 호소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직원들을 향한 스티브 잡스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애플 직원들을 향하여 다르게 생각해서 다시 한 번 세상을 바꿔 보자고 호소하는 것이었다.


구조조정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외주생산으로 제조의 효율성을 구축하였으며 다르게 생각하기로 브랜드 이미지를 재구축한 애플을 부활시키기 위한 마지막 단계는, 결국 다르게 생각하기를 통해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업계는 컴퓨터 가격이 급속도로 하락하면서 인터넷 열풍이 불고 있었다. 애플은 이 두 가지 키워드에 주목했다. 마침 애플 이사였던 오라클 CEO인 래리 앨리슨이 네트워크 컴퓨터, 즉 NC를 들고 나왔다. NC는 부수적인 기능을 최대한 제거하고 오직 네트워크에 최적화시킨 저가형 컴퓨터였다. 스티브 잡스가 돌아왔을 때 래리 앨리슨과 애플은 공동으로 맥 NC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맥 NC가 애플을 기업용 시장에 인도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특히 맥 NC의 디자인에 반해 버린 스티브 잡스는 맥 NC의 프로토타입을 일부러 자신의 사무실에 설치해놓고 감상할 정도였다. 하지만 네트워크 컴퓨터는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자 스티브 잡스는 맥 NC를 인터넷에 최적화된 컴퓨터로 개발할 결심을 한다. 


‘인터넷 매킨토시’로 명명된 이 제품을 개발하면서는 조금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했다. 디자인팀에 좀 더 힘을 실어 그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도록 했는데,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디자인팀에서 조너선 아이브를 발견한 덕분이었다. 원래 애플 외부에서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를 영입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뛰어난 디자인 실력을 보고는 바로 마음을 바꿨다. 조너선 아이브 역시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이었지만 스티브 잡스의 선택을 받고는 애플에 남기로 결정한다. 기대에 부응하듯 조너선 아이브는 컴퓨터 역사에 가장 획기적인 디자인을 내놓는다. 스티브 잡스와 조너선 아이브의 합작이 빛난 이 컴퓨터가 바로 애플 부활의 아이콘으로 컴퓨터 업계에 신선한 충격파를 선사한 ‘아이맥(iMac)’이었다. 모니터와 컴퓨터 일체형 모델이었던 아이맥은 컴퓨터 색깔이 검정색 아니면 베이지색으로 통일되었던 당시에 푸른빛의 사탕 색깔로 업계에 컬러 바람을 일으켰다. 특히 컴퓨터 내부가 훤히 보이는 투명한 누드 디자인은 컴퓨터 업계뿐만 아니라 산업계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 


사실 누드 디자인은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다. 테스트를 위해서 만든 시제품은 마감처리가 되지 않아서 컴퓨터 내부가 훤히 보였는데, 테스트하는 학생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걸 본 스티브 잡스가 이를 놓치지 않고 제품개발에 접목한 것이다. 완성된 디자인을 본 스티브 잡스는 ‘훌륭한 디자이너만 사는 행성에서 온 것 같은 제품’이라며 격찬했다. 아이맥의 가격은 애플의 제품치고는 파격적인 1,299달러였지만 다른 제품에 비해서는 비쌌고, 특히 플로피 디스크가 없었기 때문에 아이맥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들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시장에 나온 아이맥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팔렸다. 6주 만에 30만 대를 넘더니, 연말까지 80만 대가 판매되었는데 스티브 잡스는 이를 15초마다 한 대씩 팔렸다면서 자랑스러워 했다. 아이맥이 발매된 후 1년 동안 2백만 대나 팔린 덕분에 애플은 1998년 회계연도에서 3억 950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며 세상에 애플이 부활했음을 확고히 알릴 수 있었다. 아이맥은 단순한 히트작을 뜻하지 않는다. 애플 2.0, 즉 아이(i)의 시대가 왔음을 당당히 선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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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7회)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 1.0과 애플에 돌아와서 애플을 되살린 스티브 잡스 2.0을 구분해야 합니다. 스티브 잡스 2.0은 예술가로 변했어요. 기술업계에서 스티브 잡스처럼 그렇게 강력하고 새로운 핵심 사업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사람은 없습니다.

‐ 전 인텔 CEO 앤디 그로브, 2009년 <포춘>


길 아멜리오는 3년 정도의 기간 안에 애플을 부활시킨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좋은 징조들이 조금씩 보이기도 했다. 길 아멜리오에 의해서 애플은 부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처럼 오늘날의 위대한 애플로 재창조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와 길 아멜리오는 스케일 자체가 다른 인물이었다. 애플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 길 아멜리오가 스티브 잡스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길 아멜리오는 애플의 팬이었지만, 애플에서 월급을 받는 경영자였을 뿐 스티브 잡스는 애플과 하나였다. 


길 아멜리오는 연봉 300만 달러 이외에도 500만 달러의 융자금 그리고 2,700만 달러에 이르는 거액의 주식을 받았다. 그를 궁지로 몰고 간 것은 그의 자가용 비행기였다. 회사에서는 그의 자가용 비행기에 들어가는 수십만 달러의 비용을 지불해 주었는데, 여기에 그의 화려한 사무실 역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 때문에 길 아멜리오의 진심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뉴욕타임스> 같은 유력 언론으로부터 추락하는 회사 사정에 비해 과도한 연봉과 혜택이라는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길 아멜리오는 퇴직을 하면서도 700만 달러라는 거액을 요구해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애플로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연봉 1달러만을 받고 일을 시작한다. 스티브 잡스는 항상 무대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인물이었던 만큼 회사에서도 직원이 아니라 주인이 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픽사(Pixar)에서도 50달러만 받고 일했으며, 넥스트에서는 전혀 돈을 받지 않았다. 애플에서 1달러를 받은 것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 위한 최소 요건 때문이었다.


길 아멜리오와 스티브 잡스의 차이는 회사 장악력에서도 드러난다. 애플 이사회는 회사의 실적이 떨어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그동안 아무도 건들지 못했던 이사회 멤버를 갈아엎었다. 그중에는 누구도 함부로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던 마이크 마큘라도 있었다. 


직원과의 관계에서도 달랐다. 경영자가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와 전략을 가지고 있어도 직원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길 아멜리오 시대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길 아멜리오 이전의 인물들은 그래도 애플 내부 사람이었다. 외부에서 영입된 존 스컬리는 그래도 10년간 애플의 CEO로 재직했었고, 애플의 황금기를 같이 했다. 직원들이 당장 말을 잘 듣지 않고 실책을 저질러도 회사는 막대한 현금 보유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길 아멜리오는 회사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급하게 모셔 온 인물이었다. 언제 회사가 도산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던 만큼 전 직원들이 똘똘 뭉쳐야만 겨우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시기였는데, 안타깝게도 단결은커녕 오히려 이전투구의 양상을 보이며 서로를 헐뜯기 바빴다. 


특히 제품을 만든다면서 예산을 타놓고는 어떤 결과물도 내놓지 못하는 좀비 프로젝트가 사내에 즐비했다. 길 아멜리오도 이런 좀비 프로젝트를 제대로 컨트롤하진 못했다. 직원들은 애플이라는 전체 기업의 이익은 안중에 없고, 오직 자신이 속한 프로젝트만을 지키려고 했다. 애플의 한 임원은 일부러 <비즈니스위크>에 회사의 각종 정보를 알려 길 아멜리오를 비난하는 기사를 쓰도록 할 정도였다.


한 번은 회사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직원들의 공통된 목표를 세우고자 길 아멜리오가 각 부서의 책임자들을 호텔에 모아 각자 분야를 발표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서 서로가 단합하는 계기를 마련하려고 했지만 직원들은 각자의 일에만 관심 있을 뿐 회사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었다. 길 아멜리오는 극심한 조직 이기주의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좌절감을 느껴야만 했다. 애플이 외부에서 운영체제를 사온 것은 매우 치욕적인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다. 맥 OS의 결함으로 인해 각종 불만이 쌓여가던 차에 이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하려 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자신들이 만든 맥 OS의 문제점도 파악하지 못하는 집단에게 새로운 운영체제를 개발하라고 하는 것은 더욱 끔찍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뿐이다. 그래서 길 아멜리오는 당시 라이벌 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선마이크로시스템즈의 운영체제를 고려하면서까지 회사를 살리려고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몇몇 직원들은 아예 길 아멜리오의 말을 면전에서 무시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톰 크루즈가 출연하는 <미션 임파서블>에 간접광고를 제안받은 길 아멜리오는 50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약속한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예산 권한을 가지고 있는 영업담당자가 영화에 협찬하는 것은 돈 낭비라면서 이를 거부했다. 길 아멜리오는 직접 영업담당자에게 명령을 내렸지만 오히려 길 아멜리오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다면서 큰소리를 칠 정도였다. 결국 광고 협찬을 할 수는 있었지만 길 아멜리오로서는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외부에서 영입된 길 아멜리오는 애플 직원들과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는 직원들의 자부심과 권위주의에 반감을 가지는 회사 문화가 뒤섞이면서 그 누구도 애플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이런 상황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 


그는 스타워즈로 유명한 영화감독 조지 루카스로부터 천만 달러에 인수받은 컴퓨터 그래픽팀을 ‘픽사(Pixar)’라는 애니메이션 회사로 변신시켜 성공 신화를 그려가고 있던 참이었다. 픽사는 토이 스토리를 통해서 영화업계 전체에 충격파를 주었고, 나스닥에 상장되면서 스티브 잡스 역시 큰돈을 벌었다. 결국 애플의 야생마들을 길들일 수 있는 인물은 기술과 예술업계 두 분야에서 전무후무한 성공 신화를 거둔 스티브 잡스밖에 없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돌아오기 전에 길 아멜리오를 만났을 때 애플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단결이 필요한데 오직 자신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밝혔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아멜리오가 구체적인 계획안을 물었을 때 아무런 대답을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당시 애플에 필요했던 것은 단합이었다. 배에 구멍이 여기저기 뚫려서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 단결해서 구멍을 막고 물을 퍼내야 하는데 모두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시 침몰하던 애플에게는 각종 전략을 강력한 카리스마로 즉시 실행으로 옮길 인물인 스티브 잡스가 최고이자 유일한 답이었다.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과거보다 훨씬 더 강력해져 있었다. 그는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회사인 픽사를 경영하면서 창조적인 인재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제공하는 방법을 터득하였다. 항상 갑의 위치에서 일하던 스티브 잡스는 픽사의 영화를 배급하는 디즈니와 을의 입장으로 일하면서 기업과 협력하는 방법을 익혔다. 항상 주도권을 가지고서 모든 것에 참견하는 그가 픽사를 경영한 이후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권력을 나누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부하직원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나서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아는 사람이 되었다. 특히 애플을 그만둔 후 창업했던 넥스트의 실패를 통해 좀 더 겸손해졌으며 무조건적인 기술과 하드웨어 지향주의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인간적으로도 훨씬 성숙해져 있었다. 그는 자신이 미혼모에게 버림받은 입양아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여자친구 크리스 앤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리사(Lisa)를 모른 척했다. 끝까지 자신이 친부가 아니라고 주장하였으나 유전자 검사에 의해서 친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형편이 어려웠던 크리스 앤이 리사의 양육을 부탁하지만 억만장자가 된 스티브 잡스는 이를 거절했다. 이 문제로 인해 그의 인간성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다가 1991년 스탠퍼드 대학원생이었던 로렌 파웰과 결혼한 후 완전히 새 사람으로 거듭났다. 그는 좋은 아버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딸 리사를 데려와 키웠다. 그리고 로렌 사이에서도 두 아이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딸 리사는 명문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했고,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노래로 표현할 정도로 관계를 완전히 회복했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또 다른 비난은 주식공개 시 창업 공신들에게 너무 야박했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단순히 어려운 시절을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창업 초기의 중요 인물들에게 주식을 나눠주지 않았다. 어린 시절 함께 자란 친구인 빌 페르난데스에 대한 박대는 유명하다. 이에 비해 워즈니악은 잡스와는 달랐다. 그는 자신이 받은 주식의 3분의 1 정도를 ‘워즈플랜’이라는 이름으로 직원들에게 헐값에 넘기거나 무상으로 나눠주었다. 워즈니악의 행동과 비교되면서 잡스는 더욱 매정한 기업가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달랐다. 2003년 잡스는 주당 9.15달러에 1,500만 주를, 21.80달러에 4,000만 주를 소유할 수 있는 스톡옵션을 가지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이 주식을 사기진작을 위해서 직원들에게 나눠주었다. 스티브 잡스가 그때 나눠준 주식은 현재 128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15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애플에서 쫓겨난 후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사업적으로 한층 성숙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정이라는 안식처를 가지면서 인간적인 면모를 갖추게 된 스티브 잡스는 확실히 스티브 잡스 2.0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스티브 잡스 1.0과 비교하여 스티브 잡스 2.0의 발전은 놀라운 변화였으며, 그런 그가 애플을 새로운 경지로 이끌게 될 것임은 너무나 자명해 보였다.


애플 몰락의 교훈 


사업의 세계는 결국 실적으로 말한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개인용 컴퓨터 시대의 아이콘을 부상했지만 실적이 악화되자 결국 회사에서 쫓겨났다.


사람은 의미있는 일을 원한다.

펩시에서 승승장구를 하던 존 스컬리는 애플에서 일하자는 제안을 거절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남은 인생을 설탕물이나 팔고 살 건가요?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원하십니까?”라는 말 한마디에 생각을 바꾸었다.


보물을 함부로 남에게 주지 마라

애플은 자신들의 보물인 맥 OS의 인터페이스를 MS에 라이센스해줌으로써 스스로의 특별함을 잃어버렸다.



친구를 버리지 마라

애플은 어도비에 250만달러를 투자한 덕분에 어도비와 특별한관계를 맺었지만 이를 매도함으로써 친구를 잃게 되었다.



준비된 자에게 행운이 온다.

애플은 원래 비오에스를 구입할 예정이었으나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준비 부족으로 이를 놓치고 만다. 결국 행운은 준비된 스티브 잡스의 몫이 되었다.



리더는 회사에 충성심을 보여야 한다.

길 아멜리오는 과도한 연봉과 과도한 혜택으로 이방인 취급을 받았으나 연봉 1달러로 회사에 충성심을 보인 스티브 잡스는 회사를 통제할 수 있었다.


CEO의 업무는 항상 변한다.


스티브 잡스는 모든일을 혼자서 결정하고 많은 부분에서 참견하는 마이크로 메니저로 알려졌지만 픽사에서는 자애로운 후원자로 일에 간섭을 하지 않았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나서야 할때와 그렇지 않은때를 알고 있는 CEO임을 뜻한다.



<"애플 처럼 창조한다는 것"  매주 연재 됩니다. 다음에는 돌아온 황제, 애플의 르네상스를 열다가 이어집니다.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은 저의 페이스북 팬페이지에 접속하셔서 좋아요 버튼좀 눌러주세요. ^^; ; 이 글을 쓰는 순간 제 페이스북에 좋아요 버튼을 눌러준 분들이 97분입니다. 100분좀 넘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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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6회)




나는 애플을 소생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것이 완벽한 제품과 완벽한 전략에 대한 것 이상이라는 것 빼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듣지 않을 것이다.

‐ 스티브 잡스, 1996년 <포춘>


윈도우가 승승장구하면서 애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동안 정작 회사의 CEO인 존 스컬리는 회사 일에 흥미를 잃어갔다. 그는 회사일보다 자신을 알리기 위한 언론 홍보활동에 열심이었다. 평생을 공화당 당원으로 살았던 그는 IT기업에 관심이 많던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빌 클린턴에게 호감을 느끼고, 선거운동 지원에 직접 나선다. 업무보다 선거운동에 더 열중하는 존 스컬리의 행동은 이사회의 분노를 사게 된다. 


마침 존 스컬리가 열정을 가지고 전념했던 제품이 ‘뉴튼’이었다. 휴대 가능한 손안의 컴퓨터라는 개념으로 시작한 뉴튼은 문자인식이 가능한 패드를 갖추어서 오늘날 태블릿 컴퓨터의 원조이자 PDA의 시작으로 일컬어지는 제품이다. 하지만 뉴튼이 당초 가지고 있던 원대한 포부와는 다르게 실제 구현상의 어려움으로 발매일이 계속해서 연기되었다. 1993년에 이르자 애플의 실적은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주가 역시 몇 주 만에 3분의 2로 추락하자 존 스컬리의 입지는 더욱 줄어든다. 이제 스티브 잡스가 존 스컬리에 의해서 축출되었듯이 똑같은 역사가 재현된다. 


존 스컬리는 애플을 두 개의 회사로 분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소프트웨어 회사인 애플소프트와 하드웨어를 책임지는 매킨토시 사업부였다. 그는 매킨토시 사업부를 마이클 스핀들러(michael spindler)에 맡길 생각이었다. 원래 마이클 스핀들러는 인텔에서 근무하면서 마이크 마쿨라와 친하게 지낸 사이였다. 인텔에서 번 돈을 애플에 투자하여 큰돈을 벌게 된 마큘라는 평소 능력을 높이 평가하던 마이클 스핀들러를 애플로 불러들인다. 마이클 스핀들러는 독일 태생으로 주로 유럽에서 활동하던 인물이었는데, 마큘라는 그에게 유럽에서의 마케팅을 맡겼다. 유럽에서 뛰어난 실적을 기록하자 존 스컬리는 마이클 스핀들러를 미국 본사로 데려온다.


마이클 스핀들러는 사람 앞에서 낯가림이 심하고, 쉽게 긴장하는 성격으로 야망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지만 존 스컬리 덕분에 고속 승진을 거듭하면서 서서히 야망을 키워갔다. 특히 존 스컬리의 오른팔로 제품개발 전반을 책임지던 장 루이 가세가 여러 치명적인 실책들을 저지르고 자리에서 물러나자 후임으로 임명되어 더욱 대범해져 갔다. 존 스컬리가 분사 계획을 세우고, 전혀 가망 없어 보이는 매킨토시 사업부를 맡기려 하자 이에 큰 불만을 가지게 된다. 마이클 스핀들러가 매킨토시 사업부를 맡고 싶지 않다고 하자 충격을 받은 존 스컬리는 자신의 계획을 전면적으로 취소한다.


 이런 와중에 존 스컬리는 회사에서 신용을 잃어 갔으며 악화된 실적과 함께 결국 이사회에 의해서 쫓겨난다. 스티브 잡스의 모든 실권을 빼앗아서 스컬리에게 전권을 주었던 애플의 이사회 멤버이자 벤처 투자가인 아서 록이 이번에는 스컬리의 해고를 통보했다. 그리고 후임자가 된 사람은 존 스컬리가 그렇게 믿었던 마이클 스핀들러였다. 스핀들러는 처음부터 쿠데타 음모를 알고 있었으며, 미리 CEO 자리를 수락하였다. 하지만 스컬리에게는 마치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행동하며 CEO 자리에서 쫓겨난 그를 위로해 주었다.


회사의 CEO가 된 스핀들러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진행한다. 2,500명의 사원을 해고하고, 각종 임금인상을 취소하고 보너스를 삭감한다. 회사경비를 줄이기 위해서 무료였던 구내식당과 헬스장을 유료화 시킨다. 스핀들러의 지상과제는 9%로 떨어진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매킨토시의 운영체제인 맥 OS를 모토로라, 파워컴퓨팅, 유맥스 등 다른 하드웨어 업체에 라이선스하는 초강수를 둔다. 덕분에 매킨토시의 시장 점유율은 상승했으나 매우 중요한 문제가 생겼다. 


다른 회사에서 제조된 매킨토시가 한 대씩 팔릴 때 애플은 50달러를 받았는데, 만약 애플이 직접 제조해서 팔았다면 500달러의 이익을 볼 수 있는 상태였다. 다른 제조사에서 제작한 매킨토시가 팔린다는 이야기는 결국 애플의 매킨토시가 그만큼 팔리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애플은 이제 자신의 제품을 복제한 회사와 서로 경쟁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여기에 윈도우 95가 가세하면서 마이클 스핀들러는 직격탄을 맞는다. 매킨토시의 재고는 10억 달러에 이르렀는데 매킨토시 전체 매출이 60억 달러였음을 고려하면 엄청난 손실이었다. 회사의 시장 점유율은 9%에서 7.4%로 줄어들었으며, 1995년 마지막 분기는 6,800만 달러의 적자가 났다. 이런 실적으로는 더 이상 마이클 스핀들러가 회사에 머무를 수 없었다. 


마이클 스핀들러의 후임으로는 길 아멜리오((Gil Amelio)가 임명되었다. 물리학 박사학위를 가진 길 아멜리오는 디지털 카메라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인 CCD를 발명한 개발자 출신으로, 40대의 나이에 내셔널 세미컨덕터(National Semiconductor)의 CEO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5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무너져 가는 내셔널 세미컨덕터를 3년 만에 회생시키는 뛰어난 경영수완을 보여준 덕분에 업계에서는 영웅으로 여겨졌다.


마침 내셔널 세미컨덕터는 애플에 각종 부품을 공급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애플에서 이사직을 제안하자 평소 애플의 팬이었던 길 아멜리오는 기쁜 마음으로 애플의 이사회에 합류하게 된다. 전임 CEO인 마이클 스핀들러는 IBM, 썬마이크로시스템즈, 필립스, 게이트 2000, 소니 등에 애플을 팔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애플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던 길 아멜리오는 이사회에서 마이클 스핀들러의 행동을 비난하며 회사가 헐값에 팔리는 것을 막았다. 이때 길 아멜리오를 높이 평가한 이사회 멤버인 피터 크리스프(Peter Crisp)는 그에게 CEO직을 제안한다. 비록 애플의 실적은 엉망이었지만 애플의 CEO가 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되는 것을 뜻했다. 게다가 그렇게 사모하던 회사가 아니던가? 이미 내셔널 세미컨덕터의 CEO임에도 불구하고, 길 아멜리오는 아무런 계약서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애플의 CEO직을 수락한다. 그는 구체적인 연봉이나 대우에 대한 합의도 없이 바로 애플에 출근했으며, 구체적인 계약 내용은 3개월 후에나 확정되었다. 


길 아멜리오는 이전의 CEO들과는 두 가지가 달랐다. 이전의 CEO는 마케팅 전문가들이었으나 마이클 스핀들러는 기술을 아는 개발자 출신이었다. 전의 CEO는 회사를 팔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지만 애플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그는 애플이 싸구려로 팔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애플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길 아멜리오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사의 운영자금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6억 6,100만 달러에 이르는 사채를 골드만삭스에서 구입해 감으로써 잠시 숨통을 틀 수 있었다. 길 아멜리오는 회사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고민했고, 운영체제가 가장 문제라는 것을 발견했다. 윈도우 95가 발매된 이후 시장을 급속도로 확장하는 동안 애플은 이에 대응하는 어떤 제품도 내놓지 못했다. 원래 애플은 90년대 초반부터 차세대 운영체제인 코플랜드를 개발 중이었다. 하지만 5년여가 지나도록 아무런 성과도 없었기 때문에 결단을 내려야 했다. 회사 내에서는 도저히 운영체제를 만들 능력이 없으니 외부에서 사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를 알게 된 빌 게이츠는 애플에 전화를 걸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NT를 매킨토시에서도 작동되는 운영체제로 변환할 수 있도록 개발자들을 언제든지 투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매킨토시 운영체제인 맥 OS 고유의 인터페이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다시 빌 게이츠는 맥 OS의 운영체제에 욕심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길 아멜리오는 존 스컬리와는 다르게 그의 의도를 꿰뚫고 협상을 중지시켰다. 이때 장 루이 가세가 끼어들었다. 그는 이미 매킨토시에서 작동되는 비오에스(BeOS)를 개발 중이었는데, 길 아멜리오는 호감을 가지고 가격을 물었다. 하지만 5억 달러라는 거액을 부르는 바람에 협상은 잠시 중단된 상태가 되었다.


이런 소식들이 스티브 잡스의 회사인 넥스트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었다. 그리고 넥스트의 개발자들은 스티브 잡스 몰래 애플과 접촉한다. 애플 관계자들이 넥스트의 사무실을 방문해서 개발 중인 운영체제를 직접 테스트했고, 흡족한 결과를 얻었다. 충성스런 넥스트의 개발자들 덕분에 스티브 잡스의 인생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 이 접촉 사실을 알게 된 스티브 잡스는 직관적으로 이번 거래의 중요성을 알았고, 자신이 직접 협상을 주도했다. 


이미 스티브 잡스와 길 아멜리오는 구면이었다. 길 아멜리오가 애플의 이사회에 임명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스티브 잡스가 직접 길 아멜리오를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었다. 길 아멜리오는 애플의 창업자이자 컴퓨터 업계의 전설인 스티브 잡스의 초대에 기꺼이 응한다. 스티브 잡스는 길 아멜리오에게 간접적으로 자신이 애플을 부활시킬 수 있는 인물임을 암시했다. 길 아멜리오는 애플을 부활시킬 전략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당시 스티브 잡스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했고, 그들의 만남은 그렇게 어색한 침묵 속에서 끝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에는 실제로 존재하는 제품을 평가받는 것이었다. 애플 직원들은 매일 넥스트와 회의를 하면서 넥스트의 운영체제를 검증했다. 검증에 참여한 직원들은 넥스트의 운영체제가 비오에스보다 더 뛰어나다는 최종 평가를 내렸지만, 길 아멜리오는 운영체제 선택에 신중했다. 좀 더 합리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 스티브 잡스와 장 루이 가세가 애플 경영진 앞에서 직접 제품을 설명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런 경쟁 프레젠테이션이라면 이미 스티브 잡스에게 저울이 기울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승부는 이미 결정되었고, 관건은 이제 얼마나 좋은 조건에 계약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직접 노트북을 가지고 넥스트의 운영체제를 시연해 보이며 경영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반면 프레젠테이션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장 루이 가세는 스티브 잡스와 비교되면서 오히려 스티브 잡스의 협상력만 높여주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길 아멜리오는 3억 7,750달러의 막대한 현금과 150만 주에 이르는 주식으로 넥스트를 인수하고, 스티브 잡스를 애플의 고문으로 영입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가 고문으로 애플에 돌아왔지만 회사는 아주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중이었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이상할 정도로 회사 일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는데, 오히려 애플로부터 받은 150만 주를 모두 처분함으로써 회사에 큰 충격파를 던져준다. 이런 태도에 대해서 사람들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쿠데타를 일으키기 위해 뒤에서 더러운 모략을 꾸민다는 사람들과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경영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확실한 것은 스티브 잡스가 길 아멜리오를 배신했다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절친한 친구인 오라클의 창업자 래리 앨리슨(Larry  Ellison)이 애플을 인수합병하려 하자 이를 말렸다고 한다. 자신이 애플로 돌아갔을 때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애플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스티브 잡스였던 만큼 그가 CEO 자리를 욕심내는 것은 당연하지만 길 아멜리오의 후임이 된다는 것은 사실 도박과 같았다. 길 아멜리오가 CEO로 재직 중일 때 애플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6%에서 3%로 떨어졌고, 교육 시장 점유율은 41%에서 27%로 하락하면서 실적은 계속 추락 중이었다. 결국 애플의 실적은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악화되어 갔고, 주식은 10년 내 최저로 떨어져 있었다. 언론 이곳저곳에서는 애플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고, 부정적이기는 스티브 잡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티브 잡스가 주식을 판 행위는 오히려 그만큼 회사의 미래를 밝게 보지 않았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주식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면 주식을 팔 이유가 없었고, 경영권을 목표로 한다면 더더욱 주식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면 스티브 잡스는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기 전에 팔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150만 주를 판 것이 회사와 언론에 일종의 충격파를 던져준 것은 확실하다. 창업자마저도 애플의 회생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사회는 길 아멜리오의 후임을 선택하기 위해서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에게 SOS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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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처럼창조한다는것(5)  존 스컬리의 시대


나는 항상 애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 인생의 실과 애플의 실이 서로 직물처럼 엮여 있으면 좋겠습니다. 애플에 내가 몇 년간 없을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돌아올 겁니다. 

‐ 스티브 잡스, 1985년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 중에서


사업은 결국 실적으로 말하는 세계다. 실적이 좋으면 찬양받지만, 실적이 떨어지면 온갖 비난에 시달려야 한다. 애플 컴퓨터의 창업자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창조한 영웅으로 칭송받던 스티브 잡스였지만 그가 온 전력을 쏟아 부은 매킨토시의 실적이 부진하자 함께 추락하기 시작한다. 당초 목표치였던 200만 대에 턱없이 부족한 25만 대만을 판매하는 것에 그쳤기 때문이다. 매킨토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회사 사람들에게 스티브 잡스는 독선적인 행동들을 빈번하게 벌였었고, 이 때문에 사내에 많은 반대파들을 만들었다. 급기야 스티브 잡스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세력들이 결집하여 1985년 4월 11일 이사회에서 그의 모든 실권을 빼앗았다.


아이러니한 점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축출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그가 직접 뉴욕까지 날아가서 스카우트한 존 스컬리(John Sculley)라는 점이다. 펩시의 사장인 존 스컬리는 1980년대 초반 펩시 세대라는 광고 캠페인을 통해서 펩시가 코카콜라를 넘어 세계 최고의 음료회사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마케팅 전문가였다. 애플로부터 CEO 영입을 의뢰받은 헤드헌터 업체인 에드 윙구쓰(Ed Winguth)는 존 스컬리와 접촉한다. 하지만 존 스컬리는 이를 단번에 거절했다. 이때 스티브 잡스가 나선 것이다. 뉴욕으로 직접 날아가서 존 스컬리에게 개발 중이던 매킨토시를 보여준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그 유명한 한 마디를 남긴다.


“남은 인생을 설탕물이나 팔고 살 건가요?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원하십니까?”


도발적인 발언에 애플에 매료되고, 함께 일할 결심을 한 그는 애플로 CEO 면접을 보러 온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존 스컬리를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했는데, 매킨토시 화면에서 펩시 뚜껑과 펩시캔이 여러 창 안에서 튀어나와서 이리저리 튕기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이 화면을 보고 더욱 깊은 인상을 받았다. 확실히 스티브 잡스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이미 애플 컴퓨터의 성공으로 전국적인 유명 인사였던 스티브 잡스가 직접 자신을 챙겨주자 더욱 감동했고, CEO 취임연설에서 애플로 온 이유가 “오직 스티브 잡스와 함께 일하기 위해서”라고 밝힐 정도였다. 처음 둘의 사이는 환상의 짝꿍이었다. 존 스컬리는 5년만 CEO를 하고 나중에는 스티브 잡스에게 물려줄 생각이었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의 스승이 되어서 마케팅과 기업경영에서 쌓은 자신의 모든 노하우를 전수해 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스티브 잡스의 대단함을 칭찬하며 항상 존중해 왔지만, 매킨토시의 판매량이 줄어들자 스티브 잡스를 몰아내는 일에 직접 나서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쉽게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 존 스컬리에게 실권을 빼앗긴 그는 다시 경영권을 회복하기 위한 비밀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쿠데타는 실패였다. 마케팅 이사인 장 루이 가세에게 자신의 전략을 설명했다가 오히려 큰 화를 자초하게 된다. 장 루이 가세는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중국으로 출장 가려던 존 스컬리에게 알렸고, 출장을 취소한 존 스컬리는 다음날 긴급회의를 소집한다. 그리고 이사진에게 자신과 스티브 잡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하며 익명의 투표를 재촉했다. 투표 결과 존 스컬리가 선택받았고, 스티브 잡스는 쓸쓸히 회의실을 나오게 된다. 권력싸움에서 패배한 스티브 잡스는 애플 본사 건물에서 나와서는 ‘시베리아’라고 불리는 작은 건물로 쫓겨났다. 회사에 나가봐야 정신건강에 해로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사무실에 나가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는 일 자체를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의자에 편히 앉아서 서류에 사인이나 하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제품을 만드는 그런 일이 필요했다. 애플에서는 더 이상 제품 개발을 진두지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그는 직접 회사를 창업할 결심을 한다. 애플2 컴퓨터를 통해 중ㆍ고등학생들을 위한 교육용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듯이 대학교육에도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그리고 1985년 9월 17일 애플에 정식 사직서를 직접 제출한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직원 중 여섯 명을 데리고 넥스트(NeXT)를 창업한 후 애플의 주식을 단 한 주만 남겨두고 모두 처분한다. 이렇게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인연은 완전히 끊기는 듯 보였다.


스티브 잡스가 떠난 후 존 스컬리가 애플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존 스컬리는 스티브 잡스가 이끌던 인재들을 모두 쓸어내었다. 내부분열을 최소화하고자 한 것이다. 그동안 사내 부서들은 애플2, 애플3, 리사, 매킨토시 등의 팀 단위로 나뉘어서 서로 경쟁했는데 이들 부서를 하나의 연구부서로 통합하고, 여기에 마케팅팀을 만들어서 두 부서가 긴밀히 협력하도록 했다. 


당면과제는 창업 후 처음 발생한 적자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였다. 그의 골칫거리는 스티브 잡스의 뛰어난 선견지명 덕분에 해결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가 사무실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고품질 인쇄가 가능한 프린터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몰두하였는데 이런 노력은 1985년 앨더스사(Aldus corp.)에서 등장한 페이지메이커(PageMaker)로 빛을 보게 되었다. 페이지메이커는 전자출판 혁명을 불러일으키며 추락하던 매킨토시의 컬러 소프트웨어가 된다. 사람들은 페이지메이커라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하기 위해서 매킨토시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 후 어도비에서 포토샵(photoshop)이라는 이미지 처리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면서 매킨토시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도 사랑받는다. 애플2가 가정과 교육용 시장을 창조하였고, IBM PC가 기업용 시장에 안착했듯이 매킨토시는 프리랜서와 전문가들을 타깃으로 한 시장에서 강력한 포지션을 구축하게 되었다. 


존 스컬리는 이때 마진율 55% 정책을 고수하며 회사의 수익을 극대화한다. 당시만 해도 매킨토시를 대체할 컴퓨터는 없었고, 매킨토시 사용자층은 전문가들이었기 때문에 존 스컬리의 선택은 옳은 듯 했다. 1985년 25만 대 정도 판매되던 매킨토시는 1989년에는 300만 대 이상이 판매되었다. 어느덧 애플은 세계 1위의 컴퓨터 제조업체로 우뚝 선다. 하지만 90년대로 들어서자 문제점들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 시작은 존 스컬리의 판단착오 때문이었다. 


매킨토시의 힘은 바로 독창적인 제품이라는 것인데, 마이크로소프트가 매킨토시를 베껴서 윈도우를 내놓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스티브 잡스의 요청으로 매킨토시에서 구동되는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었다. 처음 스티브 잡스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찾아갔을 때만 해도 빌 게이츠는 매킨토시에 부정적이었다. 이에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방문하도록 요청했고, 직접 매킨토시 시제품을 보고는 완전히 반해버린다. 빌 게이츠는 스티브 잡스에게 현재 엑셀로 이름이 바뀐 멀티플랜과 워드를 매킨토시용으로 개발해 주겠노라고 말한다. 제휴관계를 맺은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에 개발용으로 매킨토시 시제품을 보내준다. 빌 게이츠는 매킨토시 시제품을 ‘SAND(Steve's Amazing New Device)’라고 부를 정도로 사랑했다. 매킨토시와 같은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야말로 미래 기술이라고 확신한 빌 게이츠는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참고해서 윈도우를 개발한다. 1985년 11월 20일 윈도우가 세상에 공개되자 존 스컬리는 이에 분노했다.


법적 소송까지 고려했던 존 스컬리는 이틀 후 라스베이거스에서 빌 게이츠를 만나서는 애플 역사상 최악으로 기록되는 계약을 하고 만다. 빌 게이츠는 윈도우 등장을 1년 정도 연기하는 조건으로 매킨토시에 사용된 애플의 고유 인터페이스를 마이크로소프트가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고 했다. 존 스컬리는 엑셀이 매킨토시 독점으로 1년간 묶여 있게 된다는 사실에 너무나 기쁜 나머지 맥 OS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라이선스하는 계약을 했다. 스티브 잡스라면 자신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맥 OS를 그렇게 쉽게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에 대해 무지했던 존 스컬리는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 계약을 맺은 것인지도 모른 채 빌 게이츠가 원하는 대로 맥 OS의 인터페이스를 선물로 바친다. 


윈도우 2.0이 나오자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를 고소하지만 1985년 맺은 계약 때문에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판결을 받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더 이상 겁날 것이 없었다. 1990년에 등장한 윈도우 3.0은 기존의 형편없던 윈도우가 아니었다. 윈도우 3.0은 1년 동안 무려 4백만 개가 판매되는 돌풍을 일으킨다. 이전만 해도 쓸 만한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는 맥 OS밖에 없었지만 윈도우 3.0 이후 비로소 경쟁자가 생긴 것이다. 기업의 경우 누군가 뒤에서 추격할 때는 남보다 더 뛰어난 제품을 만들면 되지만 안타깝게도 존 스컬리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스티브 잡스가 뿌려 놓은 축복에 도취된 그는 미래 준비에 소홀했다. 


이것이 바로 스티브 잡스와 존 스컬리의 결정적인 차이다.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파는 능력은 있었지만 무엇인가를 새롭게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존 스컬리는 기술 개발을 잘 몰랐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었는데 오히려 이러한 자율성이 독이 되어 존 스컬리에게 돌아갔다. 매년 제품 개발에 5억 달러씩이나 투입됐지만 비용과 인력에 비해서 나오는 결과물은 형편없었다. 존 스컬리는 한때 ‘Aquarius’라는 CPU 개발에 거액을 투입하였다. 개발을 위해 1,500만 달러짜리 슈퍼컴퓨터까지 구입했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이 프로젝트는 취소되었다. 


존 스컬리는 서서히 회사에서의 통제력을 잃어갔다. 장 루이 가세(Jean Louis Gassée)는 스티브 잡스의 반란음모를 알려준 인물로 그 후 존 스컬리의 2인자가 되었지만, 몇 가지 치명적인 실수로 존 스컬리를 곤경에 처하게 만든다. 


우선 애플 매킨토시 성공에 절대적인 견인차 역할을 했던 어도비(adobe)와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스티브 잡스는 모니터 화면상의 그림과 글씨들을 프린터를 통해서 종이에 인쇄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마침 어도비는 최적의 상태로 쉽게 인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포스트스크립트’라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스티브 잡스는 이를 라이선스 받아 그동안의 골칫거리를 해결한다. 어도비 기술을 프린터에 적용하여 탄생한 것이 레이저 라이터였고, 이러한 솔루션 덕분에 애플의 매킨토시는 출판혁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단순히 기술만 사온 것이 아니라 250만 달러에 어도비의 지분 15%를 구입함으로써 어도비를 매킨토시의 강력한 후원자로 만들어 놓았다. 


장 루이 가세는 포스트스크립트 라이선스로 나가는 비용이 너무나 아까웠다. 장 루이 가세의 해결책은 어이없게도 당시 윈도우 문제로 재판 중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력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도움을 받아서 포스트스크립트를 대체할 트루타입 기술을 라이선스 받기로 한다. 이 사건으로 어도비는 애플에 분개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어도비의 주식이 애플의 발표로 50%나 떨어졌기 때문이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어도비의 주식이 떨어진 상황에서 애플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어도비의 지분까지 몽땅 팔아버렸다는 것이다. 


애플에게 어도비는 단순히 하나의 소프트웨어 업체가 아니다. 어도비는 매킨토시 판매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여러 킬러 소프트웨어의 제작자인 동시에 애플의 절대적인 우군으로서 형제와 같은 회사였는데, 장 루이 가세는 그런 회사의 등 뒤에서 배신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마이크로소프트와 제휴한 트루타입 기술이 훌륭했다면 다행이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어도비의 포스트스크립트 기술과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트루타입을 사용한 프린터의 인쇄품질은 형편없었기 때문에 애플은 이를 저가형 프린터에서나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런 엄청난 사건이 CEO인 존 스컬리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됐다는 것이다. 


기술에 대한 무지함과 조직 관리에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던 존 스컬리의 무능력함은 빌 게이츠가 애플을 몰락시키는 데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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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5회)



실리콘밸리의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변하지 않는다. 작은 팀이 한정된 자원으로 놀라운 일을 이룬다. 그리고 벤처 자본가의 지원을 얻어, 대단한 회사를 만들어낸다.

‐ 구글 CEO 에릭 슈미츠


창업 초기 동아리 수준에 불과했던 애플은 마이크 마쿨라의 합류 이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마이크 마쿨라는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에게 없던 것들을 완벽하게 보충해 주었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엔지니어로서,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기획자로서 컴퓨터 개발에 매진했지만 둘이서만 사업을 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스티브 잡스가 아무리 마케팅과 영업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어도 그는 회계장부도 읽지 못할 정도로 경영지식이 전무했고, 회사를 운영하기에는 사회경험이 부족했다. 아직 아마추어에 불과한 이들에게는 마이크 마쿨라처럼 이미 성공을 경험한 코치가 필요했다. 꿈꾸는 두 몽상가에게 마이크 마쿨라는 멘토가 되어서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고,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프로가 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애플2 컴퓨터는 1977년 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웨스트코스트 컴퓨터페어라는 대규모 행사에 최초로 공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두 창업자는 이런 행사에 익숙하지 못했다. 이때 마이크 마쿨라는 옷 입는 방법부터 사람을 대하는 말투와 행동, 그리고 제품을 소개하는 방식까지 친절하게 설명했다.

내셔널 세미컨덕터(National Semiconductor)에서 이사로 재직 중이었던 마이크 스콧을 회사 사장으로 영입한 마이크 마쿨라는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서 더 많은 돈을 투자받으려고 했다. 마이크 마쿨라는 인텔에 자금을 투자해서 거액의 돈을 벌어들인 아서 록을 찾아간다. 아서 록은 마이크 마쿨라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자금을 투자했을 뿐만 아니라 애플의 이사진에 합류하게 된다. 아서 록은 실리콘밸리에서 벤처 캐피탈의 원조로 꼽는 사람이었던 만큼 아서 록의 투자와 합류는 애플이라는 회사의 성공 가능성을 더 높이는 것이었다. 아서 록은 록펠러 가문을 찾아가서 애플을 소개하고, 50만 달러의 투자를 이끌어낸다. 

마이크 마쿨라는 애플2 컴퓨터의 성공에 중요한 발판이 되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원래 애플2 컴퓨터의 저장 장치는 카세트 테이프여서 데이터를 컴퓨터로 불러오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플로피 디스크는 획기적인 속도를 자랑했고, 마이크 마쿨라는 기업에서도 사랑받는 컴퓨터가 되려면 플로피 디스크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마이크 마쿨라의 아이디어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애플2의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왜냐하면 플로피 디스크는 애플2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비지캘크(엑셀 같은 스프트레드 시트 프로그램의 원조)와 찰떡궁합이었기 때문이다. 플로피 디스크에 저장된 비지캘크를 판매하기 시작하자 애플2 컴퓨터의 판매량도 덩달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비지캘크는 그동안 컴퓨터 애호가들의 취미와 게임기로 사용되던 애플2 컴퓨터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비지캘크의 간편한 수식계산 기능 덕분에 기업에서 회계장부를 작성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미국에서는 개인이 직접 세금 계산을 해야 했는데, 비지캘크를 이용하면 훨씬 간편했다. 비지캘크의 유용성을 알게 된 사람들은 오직 비지캘크를 사용하기 위해서 애플2 컴퓨터를 구입할 정도였다. 비지캘크는 IT업계에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팔게 한다.’는 교훈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되었다. 

하드웨어를 구입하게 만들 정도로 뛰어난 소프트웨어를 뜻하는 ‘킬러 앱(Killer App)’이라는 말도 비지캘크 덕분에 생겨났다. 사실 비지캘크가 나오기 전만 해도 애플2 컴퓨터는 코모도어 PET와 라디오 샤크의 TRS‐80과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그런데 비지캘크가 나온 이후 애플2 컴퓨터의 판매량이 수직 상승하면서 나머지 회사를 압도하게 된다. 실제 수치를 보면 1978년 애플2 컴퓨터의 판매량은 7,600대였지만, 비지캘크가 등장한 1979년에는 35,100대가 나갔고 1980년에는 78,000대나 판매된다. 

이러한 판매량 증가 덕분에 애플의 매출은 매년 100%씩 성장했고, 창업한 지 단 4년 만에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1980년 12월 12일 애플의 주식이 공개되자 한 시간 만에 450만 주나 되는 모든 주식이 팔렸고, 그날 하루 동안 주식가격은 32%나 상승한다. 덕분에 스티브 잡스는 하루아침에 2억 1,750만 달러를 보유한 억만장자가 되었으며 스티브 워즈니악의 자산 역시 1억 1,600만 달러를 넘어섰다. 마이크 마쿨라의 주식 역시 2억 300만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았는데 이것은 그가 투자한 자금의 2,000%를 넘는 금액이었다. 포드 자동차 이후 가장 성공적인 애플의 주식공개는 미국 전역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특히 25살에 불과했던 스티브 잡스는 미국에서 가장 젊은 부자로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개인용 컴퓨터라는 신세계를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얼굴도 잘 생긴 스티브 잡스는 미국 젊은이들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애플 탄생 신화의 비밀


* 부모님의 사랑과 교육열

대학에 보내기 위해 평생 모은 돈을 한 번에 써버린 부모님의 사랑을 빼놓고, 스티브 잡스의 현재를 말할 수는 없다.


* 컴퓨터와 사랑에 빠지다

그가 컴퓨터로 성공한 것은 그가 누구보다도 컴퓨터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 좋은 친구를 곁에 두다

기획이 뛰어난 스티브 잡스에게 기술 지향적인 스티브 워즈니악과의 결합은 환상적인 결과를 낳았다.



* 포기를 모르는 열정을 지니다

스티브 잡스는 많은 사람에게 거절을 당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였다.



* 경험많은 경영자와의 조화


인텔에서 마케팅 담당자인 마이크 마쿨라의 합류로 동아리 수준이었던 애플은 주식회사로 변모하게 된다.



* 실리콘밸리의 벤처 문화

애플은 실적이 아니라 아이디어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관대한 실리콘밸리의 벤처문화 덕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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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4)





애플 I 컴퓨터는 최종적으로는 150여대가 판매되었다. 사실 지금의 애플을 생각하면 정말 초라한 출발이었다. 판매량은 초라했지만 두명의 창업자는 세상의 변화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자부심을 가졌고 이들은 너무나 즐거웠다. 스티브 잡스는 유럽에 까지 애플 I 컴퓨터 샘플을 보내면서 판매에 의욕적이었다. 그런데 스티브잡스와 워즈니악의 첫번째 상품인 애플1 컴퓨터는 엄밀한 의미에서 완제품은 아니었다. 애플1은 케이스도 없는 기판의 형태로 팔았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1을 구입한 사람은 따로 모니터, 변압기, 케이스, 키보드등을 추가해야 비로서 전원을 넣고 컴퓨터를 작동할 수 있었다. 그래서 컴퓨터 애호가들이 아닌 일반사람들은 아예 애플1 컴퓨터를 구입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기 때문에 판매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마니아가 아니라 일반 사람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를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꿈꾸는 컴퓨터를 만들고 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게 된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다녔던 게임회사인 아타리를 찾아가서 투자를 부탁한다. 하지만 아타리의 창업자인 놀란 부쉬넬은 게임이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벌이는 바람에 스티브 잡스에게 돈을 투자 할 수 없었다. 스티브 잡스는 홍보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당시 인텔광고로 유명한 홍보 전문가인 레지스 맥키너(Regis McKenna)를 만나려 했다. 인텔에 전화를 해서 레지스 메키너의 회사 연락처는 알아냈지만 문제는 실리콘 밸리의 유명인사인 레지스 메키너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고객 담당자인 프랭크 버지는 레지스 메키너와 애플은 맞지 않는다면서 함께 일하자는 스티브 잡스의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였다.


 그는 회사의 고객 담당자였던 프랭크 버지에게 끈질기게 전화를 해서 애플 컴퓨터를 직접 보고 이야기하자고 말한다. 결국 프랭크 버지는 애플 컴퓨터가 있던 스티브 잡스의 차고를 방문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프랭크 버지를 열심히 설득하지만 함께 일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듣는다. 그렇다고 역시 스티브 잡스가 단번에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번에는 레지스 메키너의 비서에게 전화를 해서 레지스 메키너를 만나게 해달라고 통사정 했다. 처음 비서는 시 큰둥 했지만 결국 계속되는 스티브 잡스의 전화에 백기를 들고 레지스 맥키너를 연결시켜주고 만다. 


처음에는 레지스 메키너 역시 스티브 잡스를 마땅치 않게 여겼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조금의 위축됨 없이 레지스 메키너에게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레지스 메키너는 개인용 컴퓨터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게 될 것인지를 완벽하게 설명하였다. 스티브 잡스가 제시하는 미래에 완전히 매혹된 레지스 메키너는 애플의 편이 되었고 오히려 돈을 투자 받을 수 있도록 돈 밸런타인을 소개까지 시켜준다. 세쿼이아 캐피탈(Sequoia Capital)의 창업자인 돈 밸런타인(Don Valentine)은 게임회사 아타리에 자본을 투자해서 큰 수익을 얻은 덕분에 실리콘 밸리 최고의 벤처 투자자로 활동 중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이번에도 역시 무작정 돈 밸런타인을 찾아가서 투자를 부탁했다. 돈 밸런타인은 가진 것 하나 없는 애송이가 찾아와서 다짜고짜 투자를 해달라고 하자 너무나 황당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를 소개해준 레지스 매키너에게 왜 그런 이단아를 내게 보냈냐며 화를 낼정도였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사전에는 포기가 없었다. 그는 역시 타고난 황금 배짱의 소유자답게 이번에도 역시 돈 밸런타인을 지겹도록 쫓아 다녔다. 결국 스티브 잡스의 끈질김에 굴복한 돈 밸런타인은 애플컴퓨터가 있는 차고를 방문하지만 온갖 시비를 걸면서 투자제안을 거절한다. 그러자 스티브 잡스는 투자를 하기 싫으면 다른 사람이라도 소개 시켜달라면서 전화공세를 펼치자 결국 돈 밸런타인은 할수 없이 자신의 인맥을 최대한 활용하여 마이크 마쿨라를 스티브 잡스에게 보낸다. 1942년생인 마이크 마쿨라는 페어차일드와 인텔에서 근무했던 마케팅 전문가였다.


 그는 인텔이 주식 시장에 상장되면 주식가격이 폭등하리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배당된 스톡옵션들을 대거 사들였는데 실제로 인텔이 주식을 공개한 후 큰 돈을 벌게 된다. 3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벌써 백만장자가 된 마이크 마쿨라는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수영장이 달린 대저택에서 편안히 은퇴생활을 즐기는 중이었다. 세계 최초로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한 인텔 출신답게 마이크 마쿨라는 개인용 컴퓨터의 가능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의 사업계획을 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데 비해서 마이크 마쿨라는 돈 밸런타인의 소개를 받고는 직접 스티브 잡스의 집을 찾아가서 애플 컴퓨터를 지켜봤다. 


마이크 마쿨라는 애플2 컴퓨터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티브 잡스가 제시하는 비전과 열정에 반한 마이크 마쿨라는 애플이 5년안에 <포춘>에서 선정하는 500대 기업에 들어갈 정도로 놀라운 성공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결국 그는 회사 지분의 3분 1을 갖는 조건으로 9만 1천달러를 투자했고 은행에서 25만달러를 융자 받을 때 보증까지 섰다. 마이크 마쿨라가 합류함으로써 애플은 이제 정식으로 주식회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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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테어 8800의 인기는 제작사인 MITS도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마침 알테어 8800의 탄생을 통해서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개인용 컴퓨터 분야 뛰어든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빌게이츠다. 하버드 대학교에 재학중이었던 빌 게이츠는 파퓰러 일렉트로닉스의 표지사진을 보고는 알테어 8800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래밍 언어인 베이직을 개발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였다. 스티브 워즈니악 역시 빌 게이츠처럼 파퓰러 일렉트로닉스의 기사를 읽고 전율을 느꼈다. 당시 HP에서 공학용 계산기를 개발하고 있던 스티브 워즈니악은 기사를 꼼꼼히 읽으면서 자신도 알테어 8800같은 컴퓨터를 직접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워즈니악은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의 실력을 확인하고 주변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마이크로 컴퓨터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알테어 8800 컴퓨터는 인텔의 8080 CPU를 사용했지만 워즈니악의 한달 치 집세보다도 비쌌기 때문에 20달러 정도로 가격이 훨씬 쌌던 모스 테크놀로지의 6502 CPU를 사용하게 된다. HP를 다니면서 틈틈히 개발에 몰두한 워즈니악은 단 3개월만에 컴퓨터를 완성하게 된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자신이 만든 컴퓨터를 홈브루 컴퓨터 클럽((Homebrew Computer Club) )에서 공개했다. 홈브루 컴퓨터 클럽은 마이크로 컴퓨터를 연구하고 기술을 교류하기 위해서 실리콘 밸리에서 결성된 모임이었다. 이 모임에는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같은 컴퓨터 광들이 모여서 컴퓨터 정보도 나누고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자랑하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스티브 워즈니악의 기대와는 달리 그의 컴퓨터는 별 반응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런데 마침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서는 빌 게이츠가 유명했다. 그가 만든 프로그래밍 개발 도구인 베이직 이 모임에서 인기였기 때문이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자신도 베이직을 만들면 다른 사람에게 인정 받는 존재가 될 것 같았다. 그는 하드웨어만 존재했던 자신의 컴퓨터에 소프트웨어를 추가할 결심을 한다. 그가 계획한 소프트웨어를 구동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하드웨어 역시 업그레이드 되어야 함을 의미했다. 워즈니악이 컴퓨터를 만드는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본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의 작업을 적극 도와주었다. 당시 워즈니악의 컴퓨터의 메모리는 AMI D램을 썼는데 스티브 잡스가 인텔에서 만든 D램을 구해주었다. 사실 인텔 D램은 구하기 힘든 부품이었지만 스티브 잡스는 인텔에 전화를 걸어서 공짜로 얻어냈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자신의 자서전 IWOZ에서 자신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스티브 잡스의 수완을 칭찬할 정도였다. AMI D램에서 인텔의 D램으로 바꾼 덕분에 크기도 줄이고 훨씬 효율적인 구조를 완성할 수 있었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초에 컴퓨터를 팔 생각은 전혀하지 않았다. 자신이 완성한 컴퓨터의 설계도를 다른 사람들에게 무료로 공개하는 것에 만족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홈브루 컴퓨터 클럽내에서 스티브 워즈니악의 컴퓨터는 여전히 관심밖이었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든 설계도 대로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홈브루 컴퓨터 클럽내에서 워즈니악이 만든 컴퓨터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한 사람은 스티브 잡스 하나밖에 없었다. 사실 워즈니악 자신보다도 그의 컴퓨터를 더 높이 평가한 사람이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의 컴퓨터가 충분히 상업적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직접 컴퓨터를 판매해보고 싶었다. 스티브잡스의 계획에 대해 정작 개발자인 워즈니악은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알테어 8800이 이미 컴퓨터 마니아 사이에서 인기였기 때문에 그의 컴퓨터를 구입해줄 사람이 50명도 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평생에 한번 정도 시도해볼 수 있는 일이라면서 아예 회사를 창업해서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판매하자고 끈질기게 워즈니악을 설득했다. 스티브 잡스는 지금도 그렇지만 젊은 시절부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있어서는 절대적인 능력의 소유자였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결국 스티브 잡스의 강력한 설득에 마음을 바꾸고 자신이 가장 아끼던 물건이었던 HP의 공학용 계산기를 500달러에 팔아서 회사 창업자금을 마련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 역시 폭스바겐 자동차를 팔아서 창업 자금을 더한다. 처음에 회사이름은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워즈니악은 오리건주에 있는 사과농장으로 스티브 잡스를 태워주게 되었다. 그때 갑자기 스티브 잡스는 회사이름으로 애플을 제안하게 된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선불교사람들과 사과농장에서 공동생활을 했었다. 이때 즐거운 추억을 가진 스티브 잡스가 회사이름으로 애플을 생각해낸 것이었다 워즈니악은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인 비틀즈가 세운 회사이름과 똑같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결국 스티브 잡스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둘의 역할분담은 명확했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엔지니어로써 제품개발 전반을 책임졌고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이 할 수 없는 모든 일들을 서포트하였다. 우선 그는 컴퓨터를 판매하기 위해서 상점에 접근했다. 그 중 하나가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서 활동하던 폴 테럴이 운영하는 바이트 숍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폴테럴에 접근해서 50대의 컴퓨터를 주문받는다. 개당 500달러에 공급하기로 했기 때문에 25000달러의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문제는 당시 가지고 있던 돈으로는 도저히 주문받은 컴퓨터를 만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것에 쉽게 포기하는 스티브 잡스가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는 외상으로 부품을 공급받기 위해서 실리콘 밸리 지역의 상점 전체를 돌아 다녔다. 하지만 처음보는 20살의 애송이에게 거액의 부품을 외상으로 공급하는 매장은 없었다.



 그러던 중 키럴프 일렉트로닉스라는 컴퓨터 부품 상점에 들어간 스티브 잡스는 드디어 기회를 잡는다. 매장 관리인 봅 뉴턴이 만약 폴 테럴에게서 50대를 주문받은 것을 확인하고 나면 나중에 외상으로라도 부품을 공급해주겠다면서 스티브 잡스를 돌려 보내려고 했다. 그러자 스티브 잡스는 지금 바로 폴 테럴과 통화를 해야한다면서 적극적으로 설득하였고 할 수 없이 봅 뉴턴은 폴테럴에게 전화를 하게 된다. 폴 테럴과의 계약사실이 확인되자 스티브 잡스는 30일 이내에 부품값을 변제하는 대신 2만 달러까지 외상으로 부품을 가져 갈수 있게 된다.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스티브 워즈니악이 작성한 설계도를 보고서 컴퓨터를 조립하는 일이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친구와 여동생을 동원해서 컴퓨터를 만들도록 했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납기일에 맞추기 위해서 매일 밤샘을 하면서 함께 일에 매달려야만 했다. 그리고 컴퓨터가 완성되고 나면 스티브 잡스는 부모님의 차에 컴퓨터를 싣고 바이트숍에 가져가서 현금과 교환했다. 그들이 처음 거래에서  받은 돈은 6천달러짜리 수표였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세계 최고 기업의 반열에 오른 애플의 첫번째 매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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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0살인가 11살 때쯤 에임스에 있는 나사 연구소에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보았어요. 그것은 진짜 컴퓨터는 아니었고, 컴퓨터와 선으로 연결된 단말기였죠. 어쨌든 나는 눈을 뗄 수 없었죠. 내가 처음으로 데스크톱 컴퓨터를 본 것은 9100A라 불리는 휴렛 팩커드의 제품입니다. ABL과 베이직이 돌아가는 세계 최초의 데스크톱 컴퓨터였어요.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스티브 잡스, 스미스소니언 협회 인터뷰 중에서



스티브 잡스는 어린 시절부터 각종 기기들에 푹 빠져 살았다. 한때 기계공으로 일했던 아버지는 차고에서 여러 기기를 수리하거나 제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주위를 맴돌며 기계와 친해졌다. 스티브 잡스가 다섯 살이 되자 아버지는 그를 위해 작업대를 직접 만들어 주면서 망치 같은 공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덕분에 각종 기계에 친숙해진 그는 휴렛 팩커드의 엔지니어인 래리 랭을 만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어린 시절 스티브 잡스가 살던 동네는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본거지였으며, 마침 HP 같은 벤처기업들이 성공 신화를 쓰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과수원 촌 동네였던 지역에 엔지니어들이 몰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동네는 엔지니어들의 천국으로 변해갔다. 이웃이었던 래리 랭은 호기심 많은 아이였던 스티브 잡스에게 부품을 이용해서 각종 전자장치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친절한 래리 랭의 가르침을 통해 전자제품의 내부 작동원리를 이해하게 되었고, 실제로 몇 가지 전자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의 식견은 아버지도 깜짝 놀랄 정도로 발전했다. 전자제품에 대한 지식을 익히면 익힐수록 그는 성취감과 함께 강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전자기기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그에게 일종의 도피처이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는 학교에서 외톨이였지만 전자기기에 대한 열정 덕분에 쿠퍼티노 중학교에서 빌 페르난데스(Bill Fernandez)라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둘은 동급생들과는 어울리지 못했지만 동네의 엔지니어들과 친교를 맺으면서 전자기기에 더욱 탐닉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학교생활에 관심은 없었지만 전자기기에 대한 열망으로 ‘와이어 헤드(Wirehead)’라고 불리는 전자공학 관련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주말이 되면 각종 전자부품을 다루는 가게에서 점원으로 아르바이트 일을 했고, 전자부품에 대한 열정은 때론 뻔뻔한 거짓말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새로운 전자기기를 만들던 그는 부족한 부품을 얻기 위해 회사에 전화를 해서는 새로운 전자장치에 필요한 부품을 구한다는 거짓말로 샘플을 무료로 받아내었던 것이다.


전자기기에 대한 관심은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을 만나면서 고스란히 컴퓨터로 옮겨졌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1950년 프란시스 제이콥 워즈니악(Fransis Jacob Wozniak)과 어머니 마가렛 루이스 워즈니악(Margaret Louise Wozniak) 사이에서 태어난다. 프란시스 제이콥 워즈니악은 록히드(Lockheed)에서 일하는 유능한 엔지니어였다. 성공한 아버지의 자녀들이 그렇듯이 워즈니악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엔지니어가 되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는 워즈니악에게 과학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었고, 덕분에 또래 아이들보다 월등한 지식을 자랑했다. 워즈니악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과학경진대회의 상들을 휩쓸었으며 6학년 때는 고등학생도 만들기 어려운 과학 과제물을 내놓아서 선생님을 놀라게 했다. 학교에서 과학과 수학의 천재로 명성이 드높았던 워즈니악은 아버지가 보는 공학 저널에서 세계 최초의 컴퓨터인 에니악(ENIAC) 관련 기사를 읽고는 그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이때부터 컴퓨터는 그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워즈니악은 이웃집에 살던 빌 페르난데스와 의기투합하여 직접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한다. 어느 날 스티브 잡스가 친구인 빌의 집에 방문했고, 마침 워즈니악이 만들고 있는 컴퓨터를 목격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의 컴퓨터와 전문 지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워즈니악 역시 자신의 말을 바로 이해하는 스티브 잡스가 마음에 들었다. 둘은 전자기기에 대한 열정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로 공통점이 많았다. 둘 다 장난을 좋아하고 특히 비틀즈와 밥 딜런의 음악을 사랑했는데, 함께 만나면 새로운 장난꺼리나 음악을 이야기하면서 더욱 친해졌다. 


벤처 자본가들은 두 명의 친구가 함께 공동으로 창업한 회사를 선호한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는 두 명의 파트너가 있다는 것은 사업을 할 때도 더 현실적이고, 추진력 있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많은 벤처기업들이 두 명의 창업자로부터 시작되었다. 세계 1위의 개인용 컴퓨터 제조업체인 HP는 벤처기업의 원조로 인정받는데, 이 회사는 빌 휴렛(Bill Hewlett)과 데이비드 패커드(David Packard) 두 명이서 차고에서 시작한 회사다. 인텔 역시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와 고든 무어(Gordon Moore) 둘이서 시작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이 창업했다. 인터넷 시대에도 이런 공식은 계속되고 있다. 제리 양(Jerry Yang)과 데이비드 파일로(David Filo)가 야후를 함께 만들었으며, 대학원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을 공동으로 설립했다. 이러한 전형적인 벤처 스토리는 애플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애플의 창업 역시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이 파트너 관계를 맺으면서 시작된다. 워즈니악은 기술에 능했고, 스티브 잡스는 기획이 뛰어났는데 둘의 능력이 결합되면서 환상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둘은 같은 아웃사이더이고, 장난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이것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반대되는 인물이다. 스티브 잡스가 한때 마리화나까지 필 정도로 뼛속까지 히피였다면, 워즈니악은 30살까지 술 한 모금 마시지 않았으며,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은 대단히 인기 있는 남자라고 생각할 정도로 히피와는 거리가 먼 순진한 사람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했지만, 워즈니악은 모임에 나가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될 정도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스티브 잡스 역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대외관계가 원만치 않았으나, 누구에게든 위축되는 법이 없었고 뻔뻔스러울 정도의 배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부품을 구입하기 위해 둘이 상점에 들어가면 워즈니악은 필요한 부품을 바라볼 뿐 점원과의 가격 협상은 노련한 스티브 잡스의 몫이었다. 워즈니악이 엔지니어였다면, 스티브 잡스는 기획자였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자신의 기술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면 이를 돈이 되는 사업으로 만드는 것이 스티브 잡스의 역할이었다. 워즈니악이 공짜로 전화를 걸게 해주는 블루박스를 만들었고, 이를 상품화한 것은 스티브 잡스였다.


워즈니악이 기술에 의존했다면 스티브 잡스는 자유로운 발상과 창조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워즈니악이 현실에 만족하며 살았다면 스티브 잡스는 항상 배고픈 강한 야망의 소유자였다. 이러한 둘의 성향은 애플 컴퓨터의 개발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애플 컴퓨터는 워즈니악이 우연히 파퓰러 일렉트로닉스(Popular Electronics)라는 잡지를 보면서 시작됐다. 1975년 1월 파퓰러 일렉트로닉스는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컴퓨터 알테어 8800(ALTAIR 8800)의 탄생을 대서특필하였다. 이 기사는 당시 컴퓨터 애호가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으며, 미국 전역에서 알테어 8800을 구입하고자 제작사인 MITS에 서로 수표를 보낼 정도로 난리였다. 알테어 8800의 인기는 제작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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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