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슈퍼리치2013.04.26 14:36




구글의 성공신화를 추적하다 보면 디지털 리더란 결코 한 두명의 천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가 받쳐줘야 한다는 사실을 더욱 절감하게 된다. 단순히 사회의 분위기나 풍토가 이나라 기반 시설 같은 인프라가 갖춰져서 천재의 재능이 꽃필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이는 유럽에서 축구 인프라를 잘 갖추어놓고서  체계적인 시스템에따라서 선수들을 어린 시절부터 육성하고 지원해서 결국은 세계적인 선수로 키우는 것과 유사하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스탠포드 대학교의 네트워크 망을 이용해서 서비스를 할 때 교내 네트워크 자원의 90% 이상을 사용한적이 있었지만 학교에서는 그들의 행동을 막기보다는 오히려 훌륭하다면서 응원을 해주었다. (나중에는 너무 많은 트래픽으로 골칫거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  그리고 교수님을 통해서 사업가들에게 조언을 들을 수 있었고 벡톨샤임 같은 투자자를 만나서 10만달러의 지원을 얻을 수 있었다. 사회경험도 없고 그리고 창업자금도 없는 무일푼이지만 오직 사업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 하나로 사업을 시작해서 성공한 벤처신화들은 결국 미국이라는 사회가 얼마나 훌륭한 기회의 땅인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차고에 사무실을 연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주인집의 냉장고를 몰래 심야에 습격해서 겨우 식사를 할 정도로 아끼고 아끼면서 회사를 경영했지만 벡톨샤임이 준 10만달러도 금방 바닥이 나고 만다. 자신들의 신용카드는 물론이고 가족들의 신용카드와 친구들의 돈까지 몽땅 끌어온 90만달러도 거의 동이 나서 그들은 또 다시 좌초 당할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 잘 갖추어진 벤처 금융 덕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미국의 양대 벤처 캐피틀인 클라이너 퍼킨스와 세쿼이아 캐피탈로부터 각각 1250만달러 전체로는 2500만달러에 달하는 거액을 투자받으면서 구글은 실리콘 밸리를 깜짝 놀래킨다. 클라이너 퍼킨스와 세쿼이아 캐피탈은 자존심이 강한 라이벌 기업들이기 때문에 같은 회사에 투자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두 회사가 동시에 투자했다는 것은 결국 구글에 고개를 숙이고 제발 자사의 투자를 받아 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2500만달러 투자소식이 전해지자 구글의 무엇이 그들의 고집을 꺾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무척 의아해 했다. 물론 이는 구글의 투자가 그 만큼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1999년 구글의 검색횟수는 하루 50만건을 넘게 기록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사용자들의 쏟아지는 호평이 두 벤처 캐피탈로 부터 공동 투자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이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미국 벤처 캐피탈의 역사를 되짚어 보도록하자. 미국에서 인정받는 첫번째 벤처 캐피탈 리스트로는 아서록이 유명하다. 


그는 원래 뉴욕의 투자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의 직장 상사로부터 자신의 아들 좀 도와줘야겠다면서 캘리포니아로 출장을 가게 된다. 캘리포니아에는 쇼클리 반도체에서 회사를 나온 후에 일자리를 알아보던 여덟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덟명 중에 클라이너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뉴욕에 있는 아버지에게 회사를 알아봐달라고 부탁을 했고 그래서 아서록을 보낸 것이었다.  아서록은 이때 페어차일드에 이들 여덟명을 소개시켜주고 투자금으로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설립하게 도와준다. 아서 록은 이때를 계기로 해서 뉴욕을 떠나고 캘리포니아에 벤처 캐피탈 사업을 시작한다. 아서 록이 미국 전체에서 유명인사가 되는 계기는 인텔의 창업을 도와준 덕분이었다.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무어가 인텔을 창업할 때 250만달러의 자금을 모금했을뿐만 아니라 30만달러를 직접 투자했다. 이때 투자한 30만달러는 나중에 7억달러가 넘는 돈이 되어 돌아온다. 아서록은 나중에 애플에 투자해서 역시 대박행진을 이어간다. 


그런데 아서록의 활약을 보고서 벤처 캐피탈 업체로 전직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쇼클리 반도체를 그만두고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클라이너였다. 클라이너는 인텔의 창업자들인 로버트노이스 그리고 고든무어와 절친한 사이로 페어차일드에서 함께 일하다가 그만둔후 여러가지 혁신적인 제품을 발명해서 꽤 많은 돈을 벌었다. 아서록을 통해서 벤처 캐피탈의 생리를 배운 그는 직접 투자회사를 차리기로 결정한다. 그가 세운 벤처캐피탈 회사가 바로 구글에게 1250만달러를 투자한 클라이너 퍼킨스이다.


 클라이너 퍼킨스는 인텔을 시작으로 해서 썬 마이크로 시스템즈, 컴팩, 넷스케이프, 아마존 닷컴에 투자하여 전세계에서 최고의 수익율을 기록하는 최고의 벤처 캐피탈회사로 명성을 쌓았다.  클라이너 퍼킨스에는 미국의 부자들이 서로 돈을 투자하기 위해서 경쟁을 해야할 정도다. 클라이너 퍼킨스의 펀드에는 빌게이츠, 마이클 델, 앤디 그로브와 구글에 초기 투자자인 벡톨샤임 그리고 제리양, 마크 앤드리슨이 가입할정도이다.


구글의 투자를 담당한 또 다른 축인  세쿼이아 캐피탈은 돈 밸런타인에 의해서 창업되었다. 비디오 게임기 회사인 아타리에 투자를 해서 큰 돈을 벌었지만 애플 컴퓨터의 스티브 잡스가 찾아오자 문전박대하고 지인사이인 마쿨라를 소개해서 대박의 기회를 놓쳤던 바로 그사람이다.  돈 밸런타인은 스티브 잡스에게 소액만 투자한 것에 대해서 땅을 치며 후회했는데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괴짜를 혐오하던 성격을 버리고 창조적인 성향의 CEO들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기업하는 사람은 좀 광적인면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현재 실리콘 밸리에서 최고로 뽑고 있는 사람이 바로 스티브 잡스이다.  애플을 놓친 경험을 교훈 삼아서 그는 더욱 적극적으로 벤처기업에 투자를 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기업이 시스코, EA, 오라클, 야후이다. 이들 업체의 투자를 통해서 소위 대박을 터트린 세쿼이아 캐피틀은 클라이너 퍼키슨와는 엎치락 뒤치락하면 쌍벽을 이루는 벤처 캐피털 업체로 성장했다.


그런데 클라이너 퍼킨스와 세쿼이아 캐피탈은 여러가지로 비교가 되는 업체들이다. 클라이너 퍼킨스는 첨단빌딩에 위치해 있는데 이들은 급진적이면서 화려함을 추구하는데 비해서 세쿼이아 캐피탈은 오래된 노후한 빌딩에 입주해있고 보수적이면서 검소함을 추구한다. 클라이너 퍼킨스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면 화려한 레스토랑에서 만나게 되겠지만 세쿼이아 캐피탈 사람들은 손수 회사 사무실까지 찾아와준다. 클라이너 퍼킨스는 투자업체를 선정할 때 미래가치를 높이보고 당장의 위험이 있을지라도 나중에 돌아오는 것이 많은 사업에 도전을 한다. 그에 비해서 세쿼이아 캐피탈은 현실적인 측면에서 꼼꼼하게 사업내용을 챙겨보기로 정평이 나있다. 


클라이너 퍼킨스의 대표적인 벤처 캐피탈 리스트는 존 도어이다. 그는 인텔에서 마케팅 관련 일을 하다가 80년도에 클라이너 퍼킨스로 합류했다. 그는 초기만해도 저조한 실적을 올리지 못하지만 썬마이크로 시스템즈, 로터스, 컴팩등을 발굴하면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낸다. 그의 능력이 폭발할 것은 인터넷의 시작과 함께 한다. 넷스케이프로 놀라운 성공을 거둔 그는 인터넷 경제가 본격적으로 돌입하자 그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었다. 넷스케이프와 아마존을 통해서 소위 대박을 친 그는 인터넷경제의 전도사로 각광받았다. 벤처 캐피탈 리스트들은 존도어를 슈퍼스타 대하듯이 경외하고 열광할정도로 이 업계에서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세쿼이아 캐피탈을 대표하는 사람은 마이크 모리츠이다. 그는 원래 타임지의 기자였다. 82년 올해의 인물로 뽑힌 스티브 잡스를 취재하기 위해서 그는 애플의 본사가 있는 실리콘 밸리를 방문하게 된다. 그는 애플의 협조아래서 스티브 잡스에 대한 심층분석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는 스티브 잡스의 독선적인 리더쉽 스타일에 대해서 비판하는 기사를 쓰게 되고 올해의 인물도 개인용 컴퓨터로 바꾸었다. 이에 스티브 잡스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광분하였다. 마이크 모리츠는 실리콘 밸리에서 취재를 하면서 벤처기업에 대한 매력을 느꼈던지 그는 기자라는 직업을 버리고 벤처투자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세쿼이아 캐피탈에 취직한 그는 초기만해도 역시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이렇다할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야후의 존재를 알게 되고 전격적인 투자를 통하여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구글에 2500만달러의 투자를 주도한사람이 바로 클라이너 퍼킨스의 존 도어 그리고 세쿼이아 캐피탈의 마이크 모리츠이다. 세계최고의 벤처 캐피탈 회사 두개가 투자를 위해서 최고의 벤처 리더 두사람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는 없었다. 물론 처음에는 두 회사 모두 구글에게 자신들만의 투자를 받으라고 했다. 그래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갈등 하였야 했는데 다행히 두 회사 모두 대박을 확실히 예감했는지 그들의 전통을 접고서 공동투자로 선회하게 되었다. 세계최고의 벤처 캐피탈 업체로부터 투자를 받게 된 구글은  그야말로 거침없는 성공의 일 막을 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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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연재] IT 삼국지2013.03.25 08:33



IT 삼국지(7)  서로 별로였던 구글창업자들이 친해진 이유





오늘날 세계적인 예술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3대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전한다. 우선 1세대가 돈을 많이 벌고, 2세대는 풍족한 환경에서 오직 예술을 탐구하고, 3세대는 예술적인 소양이 깊은 부모의 적극적인 관심 아래서 돈에 대한 걱정 없이 각종 교육을 받고 창작 활동에 매진해야만 위대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IT 업계에서도 비록 3대까지는 아니지만 부모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특히 구글의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의 성공 신화는 그들의 부모를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세르게이 브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수학자였다. 그들은 세르게이 브린이 여섯 살이 되자 자식의 미래를 위해 소련에서 탈출을 감행했다. 유대인 단체의 도움으로 미국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아무런 기반도 없이 빈털터리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하지만 워낙 뛰어난 학자 출신이었던 만큼 미국 생활에도 금방 적응하였다. 세르게이 브린의 아버지 마이클 브린(Michael Brin)은 메릴랜드 대학교의 수학과 교수가 되었고, 어머니 유지니아 브린(Eugenia Brin)은 나사에서 과학자로 일했다. 


부모님의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세르게이 브린은 어린 시절부터 수학에 천재적 재능을 보였다. 불과 19세의 나이에 메릴랜드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국립과학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아서 자신의 부모처럼 박사가 되기 위해서 스탠퍼드 대학원에 진학했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할아버지마저 수학자였을 정도로 세르게이 브린 집안은 학자 집안이었고 박사 학위는 그들에게 너무나 당연한 필수 코스였다. 미국 최고의 명문 대학 중 하나로 꼽히는 스탠퍼드 대학원에는 전 세계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곳에서도 세르게이 브린의 뛰어난 재능은 단연 빛을 발하였다. 1학년 학생 가운데 유일하게 첫해에 모든 시험을 통과하였고, 덕분에 학생들 사이에서 천재라는 명성을 얻었다. 


박사 2년차가 된 세르게이 브린은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을 데리고 샌프란시스코를 안내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신입생 무리 중에 래리 페이지라는 학생이 있었다. 처음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서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쉽게 친해졌다. 1973년에 태어난 동갑내기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서로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같은 유대인이었고, 형제가 있었으며, 세르게이 브린처럼 래리 페이지 집안 역시 학구적인 집안이었다. 아버지 칼 빅터 페이지(Carl Victor Page)는 미시간 주립대학교의 컴퓨터공학과 교수였고, 어머니 글로리아 페이지(Gloria Page) 역시 컴퓨터공학 석사 출신으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나중에는 데이터베이스와 관련된 컨설팅을 하고 있었다. 


래리 페이지의 친부모는 그가 여덟 살 때 이혼했는데 아버지 칼 빅터 페이지는 같은 대학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가르치던 동료와 재혼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집안은 과학적 사고를 중시하는 만큼 항상 질문하고 토론하는 가정 환경에 있었다. 토론이야말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일상이었고, 실제로 둘은 격렬한 논쟁을 벌이면서 서로 이끌리게 되었다. 부모의 교육열 역시 비슷했는데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둘다 놀이를 통해서 아이들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스스로 학습 방식인 몬테소리 교육을 받았다.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서 교수가 되려는 생각으로 스탠퍼드 대학원에 입학한 것까지 그들에게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을 연결시켜 주는 것은 바로 컴퓨터였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둘다 부모님들이 컴퓨터와 가까운 직업을 가졌던 만큼 일반 가정에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에 이미 컴퓨터를 접할 수 있었다. 남들보다 빨리 컴퓨터를 접한 것은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큰 행운이었다. 그리고 둘은 컴퓨터를 처음 본 순간부터 컴퓨터와 사랑에 빠졌고 평생의 동지가 되었다. 세르게이 브린은 아홉 살 때 코모도어64라는 개인용 컴퓨터를 생일 선물로 받았고, 나중에 친구와 함께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다. 래리 페이지는 일곱 살이 되던 1978년에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했다. 그는 가능한 자신의 모든 일을 컴퓨터로 하려고 했다. 


동화책을 일일이 타이핑해서 컴퓨터에 저장해 놓았고, 숙제도 컴퓨터로 작성한 후 프린터로 멋지게 인쇄를 해서 제출을 했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과제물을 받은 선생님들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직접 장난감 레고블럭으로 잉크젯 프린터까지 만들었던 그가 대학에서 컴퓨터공학과를 전공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렇게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한 래리 페이지는 미시간 주립대학교의 컴퓨터 엔지니어 모임인 에타 카파 누(Eta Kappa Nu)의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컴퓨터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스탠퍼드 대학원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것이다. 둘은 사람들이 래리 세르게이라고 부를 정도로 붙어 다니며 컴퓨터에 몰두했다. 그리고 새벽까지 컴퓨터 앞에서 함께 연구를 거듭하던 그들은 어느덧 컴퓨터를 통해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컴퓨터에 미친 청년들의 역사


사랑에 빠지듯 컴퓨터에 빠지고 컴퓨터를 통해서 평생의 파트너이자 친구를 만나는 것은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IT 삼국지를 이루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 신화 역시 뜻이 맞는 두 명의 친구로부터 시작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가 별로 없는 외톨이였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각종 전자기기에 탐닉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중학생이 되자 스티브 잡스는 자신처럼 전자기기에 관심이 많은 빌 페르난데스(Bill Fernandez)라는 친구를 알게 된다. 


그런데 마침 빌 페르난데스는 다섯 살 연상의 대학생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차고에서 컴퓨터를 만들고 있었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과학경진대회를 휩쓸었고 수학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천재 엔지니어였다. 스티브 잡스는 빌 페르난데스의 소개로 컴퓨터를 보기 위해서 차고를 직접 방문한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처음 본 날부터 둘은 서로 끌리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들고 있는 컴퓨터와 그의 뛰어난 지식에 감탄한다. 스티브 워즈니악 역시 다섯 살이나 어리지만 자신의 말을 즉시 이해하는 스티브 잡스가 마음에 들었다. 둘은 공통적으로 악동 기질이 있는 데다 비틀즈와 밥 딜런의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뭐니뭐니 해도 그들을 끈끈하게 연결해 주는 것은 바로 컴퓨터였다. 컴퓨터에 대한 열정으로 둘은 하나가 되었고 함께 애플을 창업하였다.


10대의 스티브 잡스는 전자기기와 컴퓨터공학에 대한 탐구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는 빌 게이츠 역시 마찬가지였다. 빌 게이츠는 13살 때 학교에서 컴퓨터를 처음 보았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컴퓨터라기보다는 컴퓨터에 연결된 단말기였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는 무척 비쌌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감히 설치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빌 게이츠가 다니던 레이크사이드 학교는 중앙컴퓨터에 전화선으로 ARS-33이라는 단말기를 연결해서 사용했다. ARS-33으로 처리할 데이터를 입력하면 중앙 컴퓨터에서 데이터를 계산한 다음에 다시 전화선으로 결과를 보내주었다. 1960년대와 70년대만 해도 컴퓨터라고 하면 보통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ARS-33을 처음 본 빌 게이츠는 매혹적인 컴퓨터의 세계에 자신의 마음을 다 빼앗겨 버렸다. 그는 컴퓨터를 완벽하게 다루기 위해서 열정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컴퓨터 덕분에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나듯이 빌 게이츠는 폴 알렌이라는 평생의 동지를 만나게 된다. 폴 알렌은 빌 게이츠보다 세 살 많았지만 컴퓨터에 대한 공통된 관심사로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빌 게이츠는 컴퓨터에 대한 사랑으로 해킹도 서슴지 않았다. 당시 컴퓨터는 이용 시간에 따라서 돈을 내야 하는 종량제였다. 그런데 시간당 내야 하는 돈이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레이크사이드 학교의 컴퓨터실은 예산 초과로 인해서 폐쇄 위기에 놓였다. 이때 빌 게이츠는 중앙 컴퓨터를 해킹해서 사용료에 상관없이 마음껏 컴퓨터를 썼다. 또한 그는 고등학교 시절 늦은 밤 부모님 몰래 집을 빠져 나와서 워싱턴 대학교에서 열심히 컴퓨터를 이용할 정도로 컴퓨터에 엄청난 집착을 보였다. 빌 게이츠의 컴퓨터 사랑을 보면 그가 나중에 컴퓨터로 세계 최고의 갑부로 등극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실 IT 삼국지를 이루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IT 시대의 승자가 되어서 갑부의 반열에 오른 대부분의 리더들이 첫눈에 반한 사랑처럼 컴퓨터에 빠져들었으며 평생의 배우자를 만날 때의 그런 확신을 컴퓨터에서 느꼈다. 델 컴퓨터의 창업자인 마이클 델(Michael Dell) 역시 고등학교 재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자주 라디오섀크에 놀러갔다. 라디오섀크는 라디오 키트나 거짓말 탐지기처럼 간단한 전자기기에서부터 컴퓨터 등을 판매하는 상점이지만 기계에 관심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컴퓨터와 전자계산기에 관심이 많았던 마이클 델에게 라디오섀크는 일종의 놀이터와 같았는데 그때의 즐거움이 세계적 컴퓨터 업체인 델 컴퓨터를 있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한편 손정의는 미국 유학 시절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 탄생 기사를 보고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세계를 움직이는 IT 갑부들의 성공 비결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로 묶을 수 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컴퓨터를 사랑했다. 컴퓨터를 사랑하는 만큼 컴퓨터에 대해서는 열정적으로 행동했고, 그로 인해 컴퓨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컴퓨터에 대한 열정적인 사랑에서 비롯된 통찰력과 실행력이야말로 그들이 사업을 하는 데 진정한 원동력이 되어서 역사에 남는 성공 신화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의 천하 삼분지계를 다룬 IT 삼국지 이야기는 다음에도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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