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도 구글창업자들과 같은 치밀함과 영리함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이는 창업자인 마크주커버그 보다는 숀 파커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숀파커는 MP3 파일을 공유하는 서비스인 냅스터를 창업해서 음악 업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킨 인물이었다. 그 후 플락소를 창업하는데 투자자들에 의해 그가 가지고 있던 지분이 휴지조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쫓겨나는 경험을 하였다. 


숀 파커는 마크 주커버그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자신이 투자자들과 연결시켜줄 수 있으며 다른 소셜 서비스 업체들의 CEO와 친분이 있기 때문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의 이 메일을 보내서 만남을 요청한다. 둘은 뉴욕에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고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마크 주커버그가 실리콘 밸리 지역으로 옮겨 오면서 재회하게 된다. 


마크 주커버그는 숀파커를 통해서 벤처투자사들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숀 파커의 경험을 높이 산 마크 주커버그는 함께 일하기로 결정한다. 숀 파커는 회사의 얼굴마담을 하면서 외부 투자자들과 접촉을 했다. 숀 파커는 페이팔의 창업자이자 개인 투자가로 할동 하는 피터 티엘로부터 투자를 받았고 WTI로부터 30만달러 대출과 투자를 받았다. 숀 파커는 투자를 받으면서도 회사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했다.


 사람들과 연락하는 도구로 사용하던 이메일과 노트북을 빼앗긴 채 회사에서 쫓겨난 경험이 있는 숀 파커는 회사 공식 문서에 창업자가 회사를 그만두더라도 이메일과 노트북은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할 정도로 이부분에 대해서는 철두 철미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기업에 자금을 투자하는 회사이기도 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CEO인 돈 그레이엄은 페이스북에 매력을 느끼고 마크 주커버그와 만남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곧 워싱턴 포스트는 페이스북의 지분 10%를 가져가는 대신 600만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제의한다. 당시 페이스북으로서는 대단히 좋은 조건이었고 너무나 기쁜 소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 창업자들은 창업자들은 쉽게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았다. 워싱턴 포스트에서는 이사 자리를 요구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워싱턴 포스트는 이를 포기하고 계약 내용을 조율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상 계약 조율이 거의 완료될 무렵 엑셀 파트너스가 끼어들게 된다. 


워싱턴 포스트가 페이스북의 가치를 6000만달러로 인정해서 6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는데 엑셀 파트너스는 페이스북의 가치를 8000만달러로 인정해서 천만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제의한다. 마크 주커버그는 돈 그레이엄을 인간적으로 존경하였고 친근함을 느꼈지만 더 많은 돈을 투자하겠다는 엑셀 파트너스에 흔들렸다.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마크 주커버그는 실리적인 차원에서 엑셀 파트너스를 선택하게 된다. 


마크 주커버그가 비록 엑셀 파트너스와 계약하기로 했다고 하지만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전까지 강경한 태도로 그는 얻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얻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래서 실제 계약서에는 페이스북의 가치를 9천백만달러 정도로 인정받았으며 엑셀파트너스가 15%의 지분을 가져가는 대신 1천 2백 7십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한다. 또한 계약서가 사인되기까지 숀 파커가 나서서 더욱 유리한 조건들을 얻어낸다. 이사회 전체 5 자리중에 마크 주커버그가 1석을 선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었고 숀 파커 자신이 이사가 되었다. 그럼으로써 사실상 이사회 자체를 페이스북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게 만들어 놓았다. 


마크 주커버그의 철두 철미함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더 페이스북의 창업자중에 하나인 세브린은 회사 운영과 관련되서 마크 주커버그와 갈등관계에 있었다. 그런데 세브린은 무려 34.4%의 주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마크 주커버그는 엑셀의 투자와 주식 배분등을 통해 세브린의 지분을 10% 이하로 만들어 놓았다. 이에 화가난 세브린은 회사를 그만두었고 마크 주커버그는 이메일 계정을 삭제하고 광고 업체에 세브린과 연락하지 말라는 민첩함을 보인다.


구글의 창업자 래리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그리고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의구글과 페이스북의 투자 협상이 비록 한국적인 상황과는 거리가 멀 수 이지만 투자자로부터 자신들의 경영권을 지키려는 철두 철미함은 배워야 할 것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다 혹은 죽써서 개준다는 말이 있듯이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잘못된 투자를 받아서 경영자들이 쫓겨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전통 자본주의에 반하는 이런 실리콘 밸리식의 자본주의가 옳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어렵게 창업을 해서 어이없이 회사에서 쫓겨나는 사례가 많은 만큼 투자를 받을 때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조건들을 협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과 사례로써 구글과 페이스북의 이야기에 참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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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창업스토리2012.10.22 13:53

 




마크 주커버그는 1984년 뉴욕 답스 페리(Dobbs Ferry)에서 치과의사인 아버지 에드워즈와 심리박사인 어머니 카렌사이에서 1남 3년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다재 다능한 아이였다. 학창시절 수학, 물리분야에서 상을 받았으며 프랑스어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등을 쓰고 읽을 수 있다. 펜싱팀의 주장으로 MPV까지 수상했던 그가 가장 좋아하고 뛰어난 능력을 발휘 했던 것은 컴퓨터였다.  12살 때 윈도우 3.1이 설치된 486 DX 컴퓨터로 가족을 위한 네트워크 서비스를 구축하기도 했다. 중학생 시절에는 모노폴리나 로마제국을 주제로 한 컴퓨터 게임을 제작하며 그의 프로그래밍 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고등학교시절에는 학교 친구와 함께 사용자에게 음악을 추천해주는 프로그램인 시냅스(Synapse)를 만들었는데 AOL과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대기업들이 백만달러에 구입하겠다는 제안을 받을 정도였다. 


하버드 대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컴퓨터 그중에서도 인터넷 에 대한 열정이 더욱 깊어졌다. 그는대학친구들에게도 자주 인터넷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는데 나중에는 컴퓨터에 관심 없던 친구도 컴퓨터와 인터넷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평소 장난끼가 많았던 그는 페이스 매쉬라는 프로그램을 만든다. 이 프로그램은 일종의 이상형 월드컵이라고 할 수 있는데 두명의 남자나 여자사진을 보여주고서 누가 더 마음에 드는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캠퍼스에서 누가 최고 얼짱인지를 투표하는 이 프로그램 만들기 위해서 마크 주커버그는 직접 기숙사의 서버를 해킹하기 까지 하였다.  마크 주커버그는 친구들에게 자신이 만든 사이트를 적극적으로 알렸는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입소문이 돌면서 450명이 접속을 하였다. 하버드 대학교에서는 주커버그의 프로그램을 발견하자 즉시 접속을 막고 마크주커버그와 함께 프로그램 개발을 도와준 친구들을 징계 위원회에 회부했는데 이 사건으로 마크 주커버거는 근신처분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뛰어난 프로그래밍 실력을 장난으로만 소진하지 않았다. 기말고사를 보기전에 직접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친구들이 그림에 대한 평을 쓰도록 유도하였는데 그는 친구들의 글들을 읽고 기말고사에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마크 주커버그는 자신의 컴퓨터 실력으로 자잘한 일들을 도와주면서 짭짤한 수익을 얻기도 하였다.


2004년 마크 주커버그는 자신이 가입한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였던 프렌드스터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직접 서비스를 만들 생각으로 TheFacebook.com 주소로 도메인을 등록한다. 마크 주커버그는 하버드 학생들이 직접 사진과 프로필을 올리고 이를 친구들과 공유하는 서비스를 구상한다.  온라인을 통해서 친구들과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근황을 전하는 이 서비스는 오직 하버드 대학생들만 이용가능하도록 한다는 차별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마크 주커버그는 여러가지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우선 하버드대생만 가입할 수 있다는 것은 가입자들에게 묘한 우월감을 주었고 실질적으로 학교내에서 이성친구를 사귀거나 인간관계를 확장시킬 수 있는 도구였다.  여기에 주변친구들과 하버드 대학교내의 학교신문을 통해서 홍보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구나 가입할 수 있었던 서비스로 시작했다면 당시 학생이었던 그는 서버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더 페이스북의 런칭은 성공적이었다. 오픈을 한지 3주만에 가입자수가 6천명이 넘어섰고 다른 학교 학생으로부터 자신들도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가 밀려 오기 시작했다. 마크 주커버그 역시 원대한 꿈이 있었던 만큼 하버드 대학에서만 자신의 서비스를 이용하게 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도 하루에 하나씩 더페이스북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대학교의 수를 추가하여 갔다. 2004년 2월에 서비스를 시작한 더 페이스북은 5월에 10만명의 가입자수를 받았다. 이러한 폭발적인 성장덕분에  페이스북에 투자하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는데 천만달러에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제안도 받을 정도였다. 


 

여름방학이 되자 마크 주커버그는 그의 인생을 결정할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된다. 페이스북을 만든 친구들과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에서 함께 지내기로 한것이다. 애플과 구글 같은 세계최고의 IT 기업들이 자리한 실리콘 밸리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팔로 알토의 방 네개짜리 집을 구한 마크 주커버그는 음악 서비스인 냅스터를 만들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숀 파커를 찾아간다. 냅스터를 그만 둔 숀 파커는 수십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인터넷 서비스를 만들었지만 자유분방한 그의 성격에 화가난 투자자들이 그를 회사에서 쫓아냈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의 가치를 꿰뚫어 보고 있던 숀 파커는 더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주커버그에게 사업에 대해서 도움을 줄 수 있다면서 이메일을 보냈다. 이를 계기로 마크 주커버그와 숀 파커가 인연이 되어서 팔로알토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고 함께 의기투합하게 된다. 마크 주커버그와 다른 친구들은 사업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지만 숀 파커는 이미 실리콘 밸리에서는 유명인사였다. 마크 주커버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숀 파커가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투자자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실패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마크 주커버그는 숀 파커를 사장으로 영입한다.


 숀 파커의 역할은 대학의 동아리 수준이었던 더 페이스북을 제대로 된 기업으로 탈바꿈 시키는 것이었다. 숀 파커와 마크 주커버그는 팔로알토의 집에서 함께 합숙을 하면서 사업을 더 확장시켰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더 페이스북의 회원은 20만명을 넘어섰는데 마크 주커버그는 부모님의 도움을 얻어서 서버와 같은 각종 비용으로 8만 5천달러나 쓰게 된다. 사업의 성공을 확신한 마크 주커버그는 방학이 끝나도 하버드대학교에 돌아가지 않고 팔로알토에남아서 더 페이스북에 전념하기로 결정한다.


사장으로 합류한 숀 파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실리콘 밸리에서 쌓은 폭 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투자자를 찾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페이스북은 늘어나는 사업자로 인해서 갈수록 불어나는 운영비를 충당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숀 파커는 당시 꽤 잘나가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링크드인의 창업자이면서 투자자로 활약했던 리드 호프만을 찾아간다.  그러나 호프만은 더 페이스북이 링크드인과 경쟁관계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투자 대신 전문 투자자인 피터 티엘을 소개해준다. 피터 티엘은 숀 파커와 마크 주거 버그를 만난 후 더 페이스북의 가치를 490만달러로 계산하고 50만달러를 대여형식으로 투자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늘어나는 회원수 때문에 피터 티엘의 자금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다시 숀파커가 나서서 WTI로부터 30만달러를 대출받는다. WTI는 숀 파커를 통해서 더 페이스북의 진가를 알게 되고 회사에 투자를 하게 된다. 페이스북의 창업자들이 숀 파커를 특히 좋아했던 것은 투자를 받는데 엄격한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창업자들이 투자자들에게 좌지우지 될 수 있는 상황을 애초에 피하고 철저히 자신들이 회사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인정받은 상태에서 투자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2005년 2월이 되자 더 페이스북의 가입자수는 200백만명을 넘어섰고 투자자들도 더 페이스북에 투자하기 위해서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페이스북의 가치를 6000만달러로 인정하고 지분의 10%를 600만달러에 구입하겠다고 제안한다. 비아컴에서는 더 페이스북을 7500만달러에 매입하겠다고 나서기까지 하였다. 여기에 엑셀파트너스가 더 페이스북의 존재를 알고 접근을 한다. 엑셀 파트너스는 케빈 에프루시는 리드 호프만을 통해서 더 페이스북의 관계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을 하였고 리드 호프만은 숀파커를 소개해준다. 페이스북의 가능성을 높이산 액셀 파트너스는 워싱턴포스트와 투자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몸이 달았다.


 액셀 파트너서는 워싱턴 포스트보다 더 좋은 조건에 천 만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히게 된다.  마크 주커버그는 하버드 대학교 선배이기도 한 워싱턴포스트의 CEO인 돈 그레이엄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워싱턴 포스트의 투자를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엑셀 파트너스가 페이스북의 가치를 9천 8백만달러로 인정하고 1천 2백 7()십만달러를 투자하겠다고 하자 결국 마크 주커버그는 엑셀 파트너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 투자를 통해서 마크 주커버그는 백만장자가 되었고 그동안 그를 괴롭혔던 자금 문제로부터도 해방될 수 있었다. 더 페이스북은 투자를 받기 위해서 노력하는 가운데서도 승승장구 하였다. 2006년 12월 100만이었던 회원은 6월이 되자 300만명을 넘어설정도로 폭발적인 증가를 보였다. 안정된 자금덕분에 실리콘 밸리의 인재들도 속속 영입 할 수 있었다. 더 페이스북의 가장 큰 문제는 이용자수가 증가함에 따라서 발생하는 과부하였다. 인기있었던 인터넷 서비스들이 불안한 서버문제로 인해서 무너졌던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더페이스북은 더욱 각별히 신경을 써서 서버관련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회사이름도 숀 파커의 제안에 따라서 더페이스북에서 정관사인 더를 빼고 페이스북으로 바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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