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2015.08.11 07:00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밀어 붙여 큰 성공을 거둔 일화는 야마우치 히로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어찌보면 야마우치 히로시는 스티브 잡스보다도 인생의 굴곡이 많았다. 미국 여행에서 돌아온 야마우치 히로시는 디즈니 캐릭터를 이용해서 카드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의 카드는 단순히 게임을 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지만 디즈니의 인기 있는 캐릭터를 넣으면 사람들이 갖고 싶고 보관하고 싶은 카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와 같은 그의 아이디어는 일본 시장에도 그대로 적중해서 디즈니 카드는 무려 60만 개에 이르는 판매량을 기록한다. 디즈니 카드의 대 히트 이후 닌텐도는 명실공히 일본 최대의 카드 회사로 거듭난다.


디즈니의 캐릭터를 이용한 카드의 성공을 바탕으로 닌텐도는 1962년 주식 시장에 상장되고 야마우치 히로시는 대규모의 자금을 공급받게 된다. 이에 고무된 그는 오래 전부터 소망하고 있던 닌텐도의 사업다각화를 위해 다양한 업종에 뛰어든다. 그는 시대가 갈수록 빠른 것을 원한다고 판단해서 인스턴트 식품업에 뛰어들지만 곧 처절한 실패를 경험한다. 그 후 일본 전체의 풍요로운 산업 발전으로 레저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택시와 같은 운수업과 호텔 같은 숙박업 등에도 진출하지만 새롭게 시도한 사업 모두 줄줄이 망하고 만다. 


이 결과로 한때 980엔에 이를 정도로 유망한 주식 종목 중 하나였던 닌텐도의 주가는 20엔까지 급락하게 된다. 이때 야마우치 히로시는 마지막 시도라는 심정으로 닌텐도가 놀이를 제공하는 카드 회사인 만큼 장난감을 개발해 보는 것이 어떨까 고민하게 된다. 그런데 이때 마침 공장 직원 중 한명이 손수 만든 장난감으로 재미 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 장난감을 보는 순간 야마우치 히로서는 직관적으로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바로 그 자리에서 그 장난감을 상품으로 개발하라고 직원에게 지시를 하고 판매까지 일사천리로 진행시켰다. 1962년에 발매된 이 장난감의 이름은 울트라 핸드로 600엔의 가격에 발매 되어서 무려 140만 개라는 경이로운 판매량을 기록한다. 이러한 놀라운 히트 재정적으로 수렁 속에 빠진 닌텐도의 어려움이 단번에 해결되었다.





울트라 핸드를 발명한 직원은 요코이 군페이였는데 그는 수공업으로 이루어지던 카드 생산을 기계를 이용한 자동화 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위해 고용한 기술자였다. 원래 닌텐도의 직원은 대학 졸업자가 별로 없었지만 요코이 군페이는 회사의 공장 자동화를 위해 회사에서 뽑은 몇몇의 고학력자 가운데 하나였다. 사실 야마우치 히로시가 고학력의 고급인력들을 사원으로 뽑겠다고 할때만 해도 사내의 반발이 심했다. 카드회사에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필요 없다는 것이 그들의 이유였다. 하지만 야마우치 히로시는 지금 당장보다는 미래를 위해서 고급인재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요코이 군페이 역시 야마우치 히로시의 고급인재 전략 덕분에 입사한 사원이었다. 울트라 핸드의 히트 이후 야마우치 히로시는 요코이 군페이를 공장의 자동화 시스템 개보수 관련 업무 담당자에서 장난감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총책임자로 임명한다.


한편 야마우치 히로시는 장난감 울트라 핸드의 성공덕분에 생겨난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하여 또 다시 여러 업종에 뛰어들었다. 아이들을 위한 육아용품을 만들고 사무기기 등의 문구업까지 손을 대지만 야마우치 히로시는 또 다시 크게 실패하고 만다. 이 무렵 야마우치 히로시는 다른 사람이 먼저 시작한 사업을 따라해 봐야 결국 남에게 뒤쳐질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래서 남을 따라가기 보다 남들이 해보지 못한 독창적인 것을 추구하기로 마음먹는다. 이때 마침 울트라 핸드를 개발한 요코이 군페이가 이번에는 전자기술에 장난감을 접목한 광선총을 개발한다.  광선총은 일본에서 사회현상으로 불릴 만큼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덕분에 닌텐도는 일본 최고의 완구업체로 등극하게 된다.


이러한 성공을 통해서 야마우치 히로시는 닌텐도의 발전 방향을 전자기술과 놀이의 결합에 초점을 맞추기로 결정한다. 그래서 관련 업종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서 크리스마스 성수기의 판매량을 높게 잡고 미리 많은 장난감을 대량 생산해 놓지만 때마침 터진 오일 쇼크 때문에 회사는 다시 어려움에 빠진다. 닌텐도는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기도 힘들어졌고 사장인 야마우치 히로시는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보다 외부에서 돈을 빌리러 다니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1972년에 세계최초로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 마그나복스의 오딧세이가 등장하는데 이를 본  야마우치 히로시는 그 어려운 재정 상황에서도 전자오락 분야에 진출한다. 비디오 게임이야말로 닌텐도의 미래라고 생각한 그는 새로운 대졸 신입사원들을 받아들여 게임 개발에 매진하게 한다. 1975년에 닌텐도는 마그나 복스의 오딧세이를 일본에서 직접 유통한다. 또한 닌텐도는 일본의 대표 전자업체인 미츠비시와의 합작으로 가정용 게임기인 GAME 6와 GAME 9을 자체 개발한다. GAME 6는 게임기에 여섯 개의 게임이 들어가고 GAME 9는 9개의 게임이 들어있는 게임기를 의미하였다. 


하지만 시장에서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못했고 닌텐도는 이제 언제 망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어려운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그때 또 다시 등장해서 닌텐도의 위기를 구해낸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요코이 군페이다. 그는 일본의 대표적인 철도인 신칸선을 타고 가다가 어느 회사원이 휴대용 전자계산기를 들고 심심풀이로 즐겁게 노는 것을 보고 휴대용 게임의 가능성을 깨닫는다.





요코이 군페이의 아이디어를 들은 야마우치 히로시는 샤프전자와 협력해서 휴대용 게임기를  개발하도록 지시한다. 이렇게 해서 개발된 것이 게임워치이다. 일본의 아이들은 방과 후 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이동시간이 많고 그래서 다른 나라 또래들에 비해 자투리 시간이 많다.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워치는 자투리 시간을 무의미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이들의 욕구를 정확하게 충족시켜주었다. 일본에서는 버스와 전철에서 게임워치를 즐기는 많은사람들이 곳곳에서 목격되었다. 처음 게임워치를 발매하려고 할때만해도 주위에서는 12800엔이나 되는 장난감을 사는 사람이 없을것이라고 야마우치 히로시를 비웃을 정도였지만 게임워치의 성공은 매우 놀라웠다. 게임워치 성공 덕분에 무너져가던 닌텐도가 회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게임 워치 발매전에 닌텐도의 빚이 무려 80억 엔에 이를 정도였지만 게임워치의 극적인 성공으로 단숨에 회사의 모든 빚을 갚고 40억 엔에 이르는 자금을 은행에 저금할 수 있게 되었다.


게임워치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을 무렵 마침 닌텐도의 업소용 게임 사업부에서 개발한 동키콩이 미국에서 히트해서 2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기록한다. 동키콩의 성공으로 닌텐도는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유명기업으로 통하게 되는데 동키콩의 게임 기획자가 오늘 날 게임의 신으로 일컬어지는 미야모토 시게루이다. 하드웨어 기술이 뛰어난 요코이 군페이와 게임 소프트웨어의 디자인이 뛰어난 미야모토 시게루라는 양 날개를 단 야마우치 히로시는 더 과감한 선택을 한다.


 그것은 바로 가정용 게임기 시장으로의 진출이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아타리 쇼크라고 해서 가정용 게임기 시장이 붕괴되고 있을 무렵으로 한때 유행한 디스코나 롤러스케이트처럼 게임도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질 무렵이었다. 이와 같이 암울한 시장 상황과 주위의 비난과 비아냥 속에 개발된 닌텐도의 가정용 게임기 패미컴이 미국시장에 발매하게 되는데..


<다음회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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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등불2008.03.20 01:51


What's Next 애플 & 닌텐도 - 10점
김정남 지음/길벗



저자의 거침없는 분석과 명쾌한 주장을 통해 오늘날 IT 기업이 갖춰야 할 덕목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요구되는 마인드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애플의 아이팟, 닌텐도의 게임기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회사원에 이르기까지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글로벌 히트 상품 뒤에 창조적인 기업 경영으로 가치 혁신을 이룬 애플과 닌텐도, 두 회사의 가슴 뛰고 숨막히는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 책은 넘버원이 아닌 온리원, 제품이 아닌 문화, 최고가 아닌 승리를 외치는 두 기업의 모든 것을 담아낸 책이다.  
 
 
   
 
 
 왜 우리는 애플과 닌텐도에 열광하는가?

‘매출 240억 달러-애플, 시가 총액 63조 2천억 원-닌텐도’
우리는 단순히 애플과 닌텐도라는 기업의 매출 규모나 순위를 보지 않더라도 이들이 만든 제품이 전 세계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대체 이들의 원동력이 무엇이며 또 앞으로의 행보는 어떨까?

?WHAT'S NEXT 애플&닌텐도?는 애플과 닌텐도라는 기업이 일등 보다 최고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애쓰는 과정과 제품과 더불어 문화까지 판매하는 고난이도의 마케팅 전략을 소개하면서 전 세계인이 왜 이들 제품에 열광하는지 알기 쉽게 설명한다.

그리고 이 책은 카리스마 넘치는 CEO, 경영 혁신, 창조적 기업 문화, 무한 도전 정신, 새로운 감각의 디자인, 감성적 마케팅 등 어느 것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애플과 닌텐도의 성공 요인을 말하면서 그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명하고 현대 기업이 갖춰야 할 덕목이 무엇이며 여기에 대비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때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Fun! Creative! Innovation! 

왜 우리는 애플과 닌텐도에 열광하는가?

‘매출 240억 달러-애플, 시가 총액 63조 2천억 원-닌텐도’
우리는 단순히 애플과 닌텐도라는 기업의 매출 규모나 순위를 보지 않더라도 이들이 만든 제품이 전 세계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한 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대체 이들의 원동력이 무엇이며 또 앞으로의 행보는 어떨까?

?WHAT'S NEXT 애플&닌텐도?는 애플과 닌텐도라는 기업이 일등 보다 최고가 되기 위해 치열하게 애쓰는 과정과 제품과 더불어 문화까지 판매하는 고난이도의 마케팅 전략을 소개하면서 전 세계인이 왜 이들 제품에 열광하는지 알기 쉽게 설명한다.

그리고 이 책은 카리스마 넘치는 CEO, 경영 혁신, 창조적 기업 문화, 무한 도전 정신, 새로운 감각의 디자인, 감성적 마케팅 등 어느 것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애플과 닌텐도의 성공 요인을 말하면서 그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명하고 현대 기업이 갖춰야 할 덕목이 무엇이며 여기에 대비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때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Fun! Creative! Innovation!

디지털 시대를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단어로 ‘재미’, ‘창조’, ‘혁신’을 꼽을 수 있는데 이 표현이 가장 잘 들어맞는 기업으로 애플과 닌텐도를 들 수 있다.

이것은 이들 기업이 유행을 ?i는 불나방처럼 어느 한 순간 시대를 잘 만난 요행으로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변화했기 때문에 이뤄낸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변화와 혁신은 기다리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가치 혁신을 이루고 기존의 벽을 허무는 무모함이 있어야 성취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디지털 시대를 이끄는 두 거인, 애플과 닌텐도의 열정을 통해 배울 수 있다.

?WHAT'S NEXT 애플&닌텐도?는 넘버원이 아닌 온리원, 제품이 아닌 문화, 최고가 아닌 승리를 외치고 창조적인 기업 경영으로 가치 혁신을 이룬 두 회사의 가슴 뛰고 숨 막히는 이야기를 잘 풀어냈다.


즐거움과 감성을 파는 기업을 통해 가능성을 보다!

‘08년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은 바로 애플' -
‘애플, 전 세계에서 가장 창의력이 있는 기업 3년간 연속 1위’ -
‘DSL이 11월 미국 시장에서만 153만대, 시간상으로 5초에 1대씩 팔려’ - <뉴욕타임즈>
‘전 세계가 없어서 아우성’ - <스포츠서울>, ‘닌텐도 찾아 삼만리 떠난 아이들’ - <오마이뉴스>

세계의 모든 기업이 ‘혁신’을 도전 과제로 삼고 있지만 결국 성공하는 것은 소수이다. 왜 같은 목적을 갖고 같은 고민을 하면서 같은 시도를 하는데 왜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하는가?

?WHAT'S NEXT 애플&닌텐도?는 창조와 혁신에 성공한 가장 대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애플과 닌텐도를 집중 분석하면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애플의 아이팟, 닌텐도의 DS 게임기와 같은 글로벌 히트 상품이 나오기까지 그들의 고민과 그들이 지키고 버려야했던 것이 무엇인지, ‘다르게 생각하기’, ‘밥상 뒤집기’, ‘해적 정신’ 등을 강조하는 독특한 기업 문화는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 등을 알아봄으로써 우리는 그들의 새로운 시각과 도전 정신에 자극 받을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애플과 닌텐도가 겪어온 세월과 현재의 실적을 얘기하면서 그들의 성공 신화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테이블 위에 스타벅스 커피 한 잔, 손에는 닌텐도 게임기, 귀에는 애플 아이팟을 꽂은 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요구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기민하게 대처해야 하는 우리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할 내용을 담고 있다.
 


 
 
 
 
 프롤로그 : 디지털 세상을 이끄는 작은 거인들

1. 기적은 무모함에서 시작된다
극과 극의 환경, 하지만 같은 성격
여행을 통해 새로운 인생에 눈을 뜨다
고정관념은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
기획자의 모범, 스티브 잡스와 야마우치 히로시

2. 시장이 커지면 더 강력한 경쟁자가 도전한다
가치를 보는 안목과 실행력이 승부를 가른다
판을 바꾸려는 새로운 도전자들
시장이 커지기를 기다리는 대기업들의 속성
애플과 닌텐도, 2인자의 자리로 추락하다

3. 그 누구도 마이크로소프트를 막을 수 없다
디지털 시대의 황제, 마이크로소프트
처음은 미약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패배를 모르는 기업, 마이크로소프트
애플과 닌텐도를 울려버린 마이크로소프트

4. 상황이 바뀌면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
모든 변화는 회사의 삼두체제에서 시작된다
실패 속에서 교훈을 얻어 변화를 모색한다
적군과 아군을 확실하게 구분해야 한다
시장 성공의 새로운 황금률을 찾아라!

5. 넘버원이 아닌 온리원을 추구한다
좀 더 특별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브랜드 전략
제품에서 문화가 되다
영혼을 불어넣는 디자인
유대감을 높여주는 커뮤니티

6. 최고의 기업에는 승리하는 기업 문화가 있다
최고의 인재만을 뽑는다
식료품점 같은 기업 문화
다르게 생각하기
밥상 뒤집기
균형을 추구하다

에필로그 |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부록
한눈에 보는 애플 연혁
한눈에 보는 닌텐도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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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닌텐도 이야기2008.03.20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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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연혁

1989년 야마우치 후사지로는 일본 교토에 화투와 트럼프 같은 카드제조회사인 닌텐도를 창업한다.

1927년 닌텐도를 게임시장에 진출시키는 야마우치 히로시가 태어난다. 어린시절 야마우치 히로시의 아버지 키미는  집을 나가 행방불명된다.

1929년 야마우치 세키요가 야마우치 후사지로의 뒤를 이어 사장이 된다. 야마우치 세키요는 야마우치 히로시의 할아버지로 야마우치 히로시를 실질적으로 양육한다.

1933년 야마우치 세키요는 교토지역에 있던 카드회사를 모두 합병한다. 그후 카드의 원재료인 종이회사를 인수하는등 사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1945년 와세다 대학의 법학과 학생이었던 야마우치 히로시는 지역의 명문가 출신인 이나바와 결혼을 한다.

1947년 와세다 대학의 재학중 할아버지인 야마우치 세키요가 쓰러지자 학교를 휴학하고 교토로 돌아온다.

1949년 야마우치 세키요의 뒤를 이어 23살의 야마우치 히로시가 사장이 된다. 야마우치 세키요는 야마우치 히로시의 뜻에 따라서 닌텐도에 근무하던 모든 친척들을 회사에서 그만두도록 한다. 초기 젊은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에 대한 반말이 컸으나 야마우치 세키요의 적극적인 지원과 야마우치 히로시의 탁월한 경영 성과로 모든 것을 잠재우고 회사 내에 강력한 원맨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1953년 가내 수공업 수준이었던 카드생산을 기계를 통한 대량 생산체제를 구축하다.
종이가 아닌 플라스틱 재질의 카드를 선보여 일본제일의 카드회사로 거듭나다.

1956년 야마우치 히로시 최초로 미국을 방문한다. 디즈니 본사에서 캐릭터 사용권을 합의하고 당시 세계 최고의 카드회사였던 플레잉 카드사를 방문한다. 하지만 회사의 사정에 크게 실망하게 되고 카드 사업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품게 된다.

1959년 디즈니사의 캐릭터를 이용한 카드를 선보인다. 닌텐도는 텔레비전 광고등의 대규모 프로모션을 진행하여 60만개가 넘는 카드세트를 판매하는 대성공을 거둔다.

1959년 오사카와 교토의 제2 주식시장을 통하여 기업을 공개한다.

1963년 닌텐도는 경영 다각화를 위하여 택시회사, 러브호텔, 인스턴트 식품산업에 진출하지만 실패를 거듭한다.

1964년 닌텐도는 완구업에 진출하여 장난감 게임기인 래빗 코스터를 발매한다.

1967년 공장의 유지보수를 맡던 엔지니어 요코이 군페이의 아이디어인 울트라 핸드가 발매되어 100만개가 넘는 큰 인기를 얻는다.  동경 올림픽 이후의 불황으로 경영상에 어려움을 겪던 닌텐도에 큰 힘이 되어준다. 이후 야마우치 히로시는 카드회사였던 닌텐도는 역시 재미를 아는 회사라고 생각해서 장난감산업에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다.

1970년 샤프의 기술협조로 광선검을 선보이다. 광선검의 대히트를 통해서 재미와 기술의 결합의 중요함을 깨닫는다.

1970년 오사카와 교토의 제1 주식시장에 정식으로 주식을 상장한다.

1973년 닌텐도는 사업 확장의 일환으로 볼링장과 사격장등을 인수하여 사업확장에 박차를 가한다.

1972년 세계 최초의 비디오 게임기 마그나 복스발매되다.

1975년 닌텐도는 세계최초의 비디오 게임기인 마그나 복스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해서 판매한다.

1977년 마리오와 젤다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가 닌텐도에 입사하다.
닌텐도는 미츠비시와 함께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인 Color TV 6를 발매한다.

1978년 요코이 군페이는 정식으로 게임 사업부의 팀장이 되다. 얼마후 닌텐도는 아케이드 게임시장에 진출하여 오델로를 개발한다.

1980년 미국 뉴욕에 닌텐도 최초의 해외지사인 닌텐도 어메리카가 설립된다. 책임자는 야마우치 히로시의 사위인 아라카와 미노루였다.
기차안에서 회사원들이 전자계산기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휴대용 게임기 게임 & 워치가 발매된다. 오일쇼크로 인해서 빚더미에 올랐던 닌텐도에게 큰 도움이 된다.

1981년 야마우치 히로시는 일본에서 히트한 레이더 스코프를 미국에서 판매하기로 결정한다. 게임의 성공을 장담했던 그는 2천여대의 게임기를 미국으로 보내지만 시장에서의 반응은 냉담하였고 결국 모두 재고로 남게 된다. 재고품의 롬 부분만 교체하면 다른 게임으로 바꿀 수 있다는데 착안하여 야마우치 히로시는 미야모토 시게루에게 새로운 게임 제작을 지시한다. 이때 개발한 게임이 동키콩으로 당시 아케이드 게임 역사상 최다 판매량인 6만 5천개를 기록한다.

1982년 닌텐도는 뉴욕에 있는 미국 지사를 워싱턴주에 있는 시애틀로 옮긴다.

1983년 일본에서 가정용 게임기 패미컴이 발매되어 두달만에 50만개를 넘게 판매된다. 일본에서의 성공을지켜본 야마우치 히로시는 패미컴을 미국에 진출시키기로 결정한다.
닌텐도는 세번째 해외지사로 캐나다의 밴쿠버에 지사를 연다.
게임워치의 판매를 중지한다.

1985년 패미컴이 미국의 뉴욕 일부지역에서 발매된다..

1986년 미국 전지역에서 패미컴이 199달러에 정식 발매된다. 슈퍼마리오가 출시되어 패미컴의 킬러 컨텐츠 역할을 한다.  슈퍼마리오는 현재 1억 7천만개가 넘는 판매량으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게임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유럽에 닌텐도 지사를 마련하여 패미컴을 발매한다. 1989년에 판매대수 2백만대를 돌파하며 유럽에서 입지를 다진다.

1087년 야마우치 증권과 손 잡고 집에서 주식거래를 할 수 있는 홈 트레이드 서비스를 개시하는데 패미컴을 단말기로 사용한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장난감으로 패미컴이 뽑히다.
젤다의 전설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백만개 이상의 게임을 판 첫번째 게임이 되다.

1988년 세가에서 16비트 게임기 메가드라이브를 발매하다.

1989년 하나의 게임만 가능했던 게임 & 워치의 한계를 극복하고 팩을 바꾸면 새로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게임 보이가 출시된다.
미국에서 미키마우스를 제치고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리터로 마리오가 뽑히다.

1990년 6천만대가 넘게 팔린 패미컴의 후계기인 16비트 게임기 슈퍼패미컴이 일본에서 출시된다.
전국의 유저들이 네트워크로 같이 게임을 즐길수 있는 패미컴 통신망을 구축하다.
슈퍼패미컴은 크리스마스에가 가장 선물받고 싶은 선물에 뽑힌다.
최초로 게임기와 건강을 접목한 패미컴 휘트니스 시스템이 시작되다.

1991년 슈퍼패미컴이 미국에서 출시된다. 슈퍼패미컴은 4천 9백만대가 팔린다.
일본 최초로 사원 1인당 1억엔의 매출을 기록하다.
 한주당 배당액과 한주당 판매 가격에서 일본 최고의 업체에 등극하다.

1991년 한해 동안 500만대의 게임기를 판매하였는데 이는 일본에서 생산된 모든 VTR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수이다.
일본 경제 신문이 뽑은 일본 최고의 우량기업 1위에 뽑히다.일본의 전자 전기 업체중에서

1992년 야마우치 히로시 미국 메이저리그의 야구단인 시애틀 매리너스를 인수하다.
닌텐도는 매출액 5,627억엔에 순이익 1,660억엔을 기록하는데 이는 일본의 전자업체중 1위이며 일본기업 전체로는 도요타 자동차와 NTT에 이어서 세번째로 많은 순이익이었다.
1995년 신개념의 3D 리얼리티 게임기 버추얼 보이 77만대가 판매되고 1년만에 철수한다. 게임보이로 닌텐도의 성공을 이끌었던 요코이 군페이는 이에 대한 책임으로 회사를 그만둔다.
소니가 처음 게임계에 진출하여 32비트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을 발매한다. 세가 역시 경쟁기종으로 세가 새턴을 내놓는다.

1996년 64비트 게임기 닌텐도 64가 발매되다. 닌텐도 64는 3천 2백 9십 3만대에 이르는 판매량을 기록하지만 게임시장의 왕좌를 소니의 플레이 스테이션에게 넘겨준다. 하지만 포켓몬 시리즈가 발매되어 게임보이 시장의 급격한 성장을 이루게 된다.

1998년 게임보이 컬러가 발매되어 닌텐도의 수익이 휴대용 게임기 시장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진다.

2001년 게임 보이의 후속버전인 게임보이 어드밴스가 발매되다.
128비트 게임기 게임큐브가 발매되다. 2천 백 6십만대가 판매되어서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시장 점유율 3위에 오르게 된다.

74세의 야마우치 히로시가 사장자리에서 물러나고 상담역으로 자리를 바꾸다. 사장은 42세의 이와타 사토루였지만 혼자서 모든 것을 하는게 아니라 미야모토 시게루 전무등의 6인이 함께 경영권을 가지는 집단 지도체제였다.

2003년 게임시장 진출이후 닌텐도 최초로 적자를 기록하다.

2004년 야마우치 히로시가 초기 아이디어를 제공한 닌텐도 DS가 149달러에 발매된다. 천만개가 넘게 판매된 두뇌트레이닝과 같은 킬러 콘체츠 덕분에 5천5백만개가 넘게 팔렸으며 2008년 현재도 역시 매진이 계속되고 있다.

2005년 닌텐도 DS에 WIFI 기능을 통하여 온라인 네트워크 서비스를 개시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차세대 게임기 엑스박스360을 정식으로 발매한다.

2006년 성능은 기존 엑스박스급이지만 새로운 형태의 컨트롤러를 선보인 신개념 게임기 위(Wii)가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에서 발매된다. 현재 위는 일본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중이며 월별 판매량에서도 엑스박스 360을 능가하면서 이미 차세대 게임기 시장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상태다.
 한국에 닌텐도 지사를 설립하다.

2007년 한국에 닌텐도 DS를 발매하여 1년만에 80만대의 성공적인 판매량을 기록중이다.
 게임과 건강을 접목한 위핏이 일본에서 발매되어 초기물량 30만개가 판매되고 매진행렬이 기록중이다.
닌텐도 DS는 10월에 전세계 누적판매량이 5천만개를 돌파했다.
가정용 게임기 위는 턱없이 높은 수요로 인해서 공급부족 사태를 겪고 있는데 이로 인해서 닌텐도는 15억달러 정도 손해를 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고 분석한다. 현재 닌텐도는 손님들에게 선불금을 받고서 예약을 받는 레인체크(Rain-Check) 제도를 시행하며 소비자들의 불만을 달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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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