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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07 스매쉬브라더스와 별의카비 탄생 비하인트 스토리




닌텐도처럼 창조한다는 것(4)


1991년 일본에서는 부동산 버블이 붕괴가 장기 불황의 시대가 열린다. 이는 2006년 서브프라임 사태가 미국에 끼친 영향보다도 당시 일본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져 주었다. 마침 1991년 HAL 연구소는 대규모의 사옥을 완성하는데 버블붕괴의 영향으로 자산가치가 하락하면서 경영위기를 겪게 된다. 결국 1993년 HAL 연구소는 무려 50 억엔에 이르는 부채를 갚지 못하고 부도가 난다.


 그리고 회사 위기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이 바로 32세의 프로그래머 이와타 사토루였다.  이와타 사토루의 뛰어난 기술력과 친화력은 난파된 HAL 연구소의 새로운 선장으로 최적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이와타 사토루가 HAL 연구소의 사장을 맡은 것은 대단히 위험한 선택이었다. 이와타사토루가 명문대생으로써 HAL 연구소라는 벤처기업을 선택한 것이 일종의 모험이라면 HAL 연구소의 사장이 되는 것은 도박이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일본에서는 회사가 빚을 지면 사장이 책임을 지어야 하는데 무려 50억엔의 빚을 지고 있는 회사의 사장이 되겠다는건 보통 정신으로 선택할 수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좋은 회사에서 더 많은 연봉을 주겠다는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이와타 사토루는 이미 결혼을 해서 아이도 있는 남자였다. 사실 이와타 사토루는 지금까지도 자신의 아내가 HAL 연구소의 사장이 되는 것에 반대 하지 않았다는 것에 가장 고마워할 정도로 그 자신도 꽤 위험한 선택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와타 사토루가 그 위험한 HAL 연구소의 사장직을 받아들인 데는 두 가지 성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우선 같이 땀흘렸던 동료들을 놔누고 도망갈수 없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실 그는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도망가거나 피하는 것을 아예 옵션으로 조차 생각하지 않는 성향의 소유자다. 왜냐하면 모든 일에서 방관자가 아니라 당사자가 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찬스가 있는데 그것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고 힘이 있으면 그것을 전부 사용하자라는 신념의 소유자인 그는 다른 한편으로는 리스크가 없으면 성취감도 느끼지 못하는 승부사 적인 기질을 타고난 만큼  사장직 제의가 왔을 때 피하지 않고 직접 위험한 도박의 주인공이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또한  이와타 사토루는 이공계 출신으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 즉시 각오가 서는 인물이었다. 이와타 사토루는 사물을 논리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으로써 스스로 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라는 결론을 얻었다.  왜냐하면 HAL 연구소는 기술에 강점이 있는 회사인데 결국 개발의 총 책임자였던 자신이 회사를 부활시키는데 적격자라고 봤다. 


그런데 이와타 사토루가 경영 서적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자신이  사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다른 사람보다 논리적으로 생각 할 수 있는 사고력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렇게 논리적인 이치 따지기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 스스로가 프로그래밍작업을 통해서 수련한 결과이기도 하다. 프로그래밍이라는 것은 사람이 원하는 작업을 컴퓨터에 구현하기 위한 논리적인 명령들의 집합이다. 


그러므로 프로그래밍작업에서 하나의 오류만 있어도 컴퓨터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프로그래머들은 코드를 짤 때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는 작업을 반복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프로그래머들은 자연스럽게 논리적 사고를 익히게 된다. 그는 컴퓨터와 실제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여러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항상 프로그래밍 작업을 통해서 곤란한 과제를 분석하고 실마리를 찾는 일을 해왔기 때문에 그런 경험들이 회사를 경영하는데 큰 도움을 얻었다고 말한다.

이와타 사토루의 행복 경영


이와타 사토루가 사장이 된 후 가장 먼저 한일은 대내외에 신용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우선  빚을 독촉하는 은행을 상대로 40억엔 부채가 있지만 우선 1년에 2억 5천만엔씩 6년에 걸쳐15억엔을 먼저 돌려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자 어떤 은행은 32세의 젊은 사장인 이와타 사토루에게 고압적으로 행동하였지만 그는 이에 개의치 않았다. 사실 은행 입장에서도 HAL연구소가 진 빚이 부담스러운 금액이라는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와타 사토루는 90명이 넘는 전직원을 상대로 직접 면담을 시작했다. 이때 이와타 사토루는 회사 재건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매일 철야로 일을 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직원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서 면담을 진행했다. 직원들은 회사를 믿고서 열심히 일을 했을 뿐인데 회사가 망했으니 직원들이 회사를 불신하는 건 당연하다고 봤다.  


그래서 직원들과 대화를 통해서 회사의 미래 계획을 함께 세우려고 했다. 직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이를 경영에 반영하려는 것으로 이미 계획을 세워놓고서 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형식적인 면담이 아니었다. 이해와 공감을 얻기 위한 장으로써 면담을 활용한 것이었다. 면담의 주제는 직원들에 따라서 달랐지만 그는 항상 첫 번째로 지금  행복한지를 물었다.  원래 이와타 사토루는 사장이 된 후 상품 만들기를 통해서 직원과 고객이 같이 행복해지는 회사로 슬로건을 정할 정도로 행복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면담을 통해서 회사도 행복하고 직원도 행복한 방법을 찾으려 했다. 이와타 사토루는 회사가 직원을 올바르게 알아주고 직원의 행복을 제대로 생각해주는  회사라는 점을 분명하게  알리고 싶었다. 그런데 이와타 사토루가 면담을 통해서 깨달은 한가지는 회사와 직원이 동일한 가치관을 함께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상호 행복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면담은  직원과의 소통을 통해서 서로 기분이 좋아질때까지 장시간이라도 대화를 나누었다. 이와타 사토루는 직원간의 면담이 자신에게 훌륭한 교육의 장이 되고 직원들의 신뢰을 얻는 좋은 소중한 방법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원래는 6개월동안 하려던 면담은 그가 HAL연구소에서 사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계속되었다.


HAL 연구소가 경영위기에 빠진 이후 회사는 이른바 자전거 조업이라는 악순환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자전거 조업이란 자전거 폐달을 밝지 않으면 넘어지듯이 만성적으로 자본이 부족해서 계속해서 끊임없이 물건을 만들어 내지 않으면 회사가 도산하게 되는 상황을 일컫는다. 게임이 출시되면 고객들이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게임을 내놓아야 하는 악순환에 대해서 이와타 사토루는 악마의 사이클이라고 부르곤 했다.  결국 이러한 악마의 사이클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역시 킬러컨텐츠가 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 


별의 카비 개발 스토리


그런데 마침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바로 HAL 연구소에서 들어온 사쿠라이 마사히로가 중심이 되어서 초보자들도 쉽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인 팅클 ☆ 포포라는 게임을 제작한다.  게임은 출시전부터 화제가 되어서 사전 예약만 2만 5천개를 받았다.  그런데 닌텐도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의 총책임자인 미야모토 시게루가 게임이 너무 좋으니 조금 더 수정해서 발매하라고 충고한다.  

오래전부터 이와타 사토루가 게임계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미야모토 시게루였다. 마리오와 젤다의전설등을 창조한 그는 만드는 게임마다 밀리언 셀러를 연발하면서 게임의 신으로 불리었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닌텐도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의 총책임을 맡고 있었던 만큼 이와타 사토루와는 오랜시간 친교를 맺고 있었다.  미야모토 시게루가 옆에서 여러 게임을 히트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떡하면 HAL 연구소가 미야모토 시게루처럼 인기있는 게임을 만들지 고심을 했다. 직접 미야모토 시게루의 비법을 연구한 레포트까지 작성할 정도의 이와타 사토루였던 만큼 미야모토 시게루의 의견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2만 5천개라는 적지않은 예약을 받은 상태에서 제작을 전면 중지하고 다시 게임을 개발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선택이었다. 특히 영업부에서는 회사의 신용을 손상시킨다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결국 고심끝에 이와타 사토루는 미야모토 시게루의 의견을 들었고 게임 발매를 취소하고 다시 게임을 개발한다. 그 후 이 게임은 팅클 ☆ 포포 별의 카비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게임보이용으로 출시하게 된다.  별의 카비는 발매후 무려 500만장이 판매되었고 시리즈 전체는 2천만개가 넘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며 HAL 연구소의 존재를 세계에 알린다. 


별의 카비의 빅히트 이후 이와타 사토루는 두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는다. 첫째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자는 것이다. 팅클 ☆ 포포가 완성 된 후 이와타 사토루는 그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는 이와타 사토루가 고객이 아니라 개발자 그리고 회사 관계자의 입장에서 제품을 바라봤기 때문에 문제점을 찾아낼수 없었다. 하지만 미야모토 시게루는 철저히 고객의 입장에서 팅클 ☆ 포포의 아쉬운점을 찾아냈다.  


둘째 이와타 사토루가 꺠달은 교훈은  모든 사람이 미야모토 시게루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대신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팀워크를 발휘해서 만든다면 더 훌륭한 아이디어를 탄생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결국 별의 카비는 팀 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된 좋은 교훈이 되었다

별의 카비는 게임을 해보지도 않은 사람도 쉽게 할 수 있는 초심자용 게임으로 큰 성공을 거두자 이때부터 야마우치 히로시도 이와타 사토루를 주의깊게 살펴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야마우치 히로시의 철학은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추구하는데 별의 카비가 바로 그가 원하던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HAL 연구소 부활에는 역시 이와타 사토루의 뛰어난 프로그래밍 실력도 한 몫한다. 일본에서 광고천재로 통하는 이토이 시게사토는 닌텐도에 마더라는 신개념의 게임을 제안한다. 그의 천재성을 높이 산 야마우치 히로시는 그가 제안한 게임을 개발하도록 도와준다.  마더는 닌텐도의 첫번째 게임기인 패미컴으로 발매되서 히트를 하게되고 야마우치 히로시는 아예 이토이 시게사토에게 APE라는 회사를 창업시켜준다. 그 후 APE사의 사장이 된 이토이 시게사토는  팍스소프트와 공동으로 마더2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4년동안 게임이 완성되지 않아서 관계자들의 속을 타들어 가게 만든다.  사실 이토이 시게사토는 광고 크리에이터 출신으로 컴퓨터 지식이 전무하였다. 그래서 당시 컴퓨터 성능과 프로그래밍 기술로는 황당 무계한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이토이 시게사토가 기획한 마더2에는 실제 게임으로 구현하기에는 난이도가 높은 아이디어로 구성되었었기 때문에 실제 개발작업도 별 진척없이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던 것이다.  원래 닌텐도에서는 게임 개발이 어려움에 처하면  이와타 사토루에게 SOS를 쳤는데 마더 2 역시 사실상 개발이 포기상태에 이르자 해결사 이와타 사토루를 호출했다.  


당시 개발중이던 마더2를 분석한 이와타 사토루는 만약에 기존 프로그램을 고쳐서 개발한다면 3년이 더 걸리겠지만 만약 자신이 처음부터 개발하면 1년만에 완성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와타 사토루가 장담한대로 4년 동안 완성하지 못했던 마더 2는 1년후에 발매된다. 이 에피소드는 슈퍼 프로그래머 이와타 사토루의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마더2의 기획자 이토이 시게사토는 이와타 사토루의 처음 제안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그냥 자신이 하면 1년 걸린다고 하면 될것을 궂이 기존의 방식대로 개발할 경우 3년 걸린다는 옵션을 던져주고 상대가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이와타사토루의 대화방식이 흥미로웠다. 이는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기 보다는 자신이 가진 모든 정보를 공개한 후 대안을 제시하는 이와타 사토루식의 대화법 이었던 것이다.  


한편 4년 동안 교착상태였던 마더2를 1년 만에 개발 완료할 수 있었던 것은 개발 도구의 자동화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게임이라는 것은 화면의 캐릭터 움직임이나 배경 처리등의 공통적인 요소들이 있다.  그런데 효율적인 개발 도구라는 것은 이런 단순 반복으로 이루어진 일들을 컴퓨터가 대신 처리해주는 자동화에 달렸는데 이와타 사토루의 프로그램은 이부분에서 탁월했다.  원래 이와타 사토루가 컴퓨터가 프로그래머에게 매력을 가지게 된 이유자체가 인간이 반복해서 해야하는 귀찮은 일을 기계에게 시킬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또한 이와타 사토루가 만든  개발 도구는 프로그래머들뿐만 아니라 컴퓨터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기획자나 그래픽 디자이너도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쉬웠다. 원래 그래픽 디자이너가 그림을 그리면 당시만 해도 무조건 프로그래머의 도움을 받아야만 컴퓨터 화면상에 보여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와타 사토루의 자동화된 게임개발 도구를 이용하면 그래픽 디자이너는 프로그래머의 도움 없이 간편하게 원하는 그림을 게임 화면상에서 즉시 확인할 수 있었다. 프로그래머의 도움을 최소화하고 그래픽디자이너가 원하는 그림을 즉시 게임 화면에 구현해주는 이러한 개발도구의 개념은 당시로써는 획기적이었다. 사실 슈퍼패미컴 시절만 해도 닌텐도가 다른 소프트웨어 업체에게 제공했던 개발도구에 대한 불평이 많았었다.  그런데 닌텐도 64에서부터 겨우 게임 개발 도구라고 부를 수 있는 툴을 제공했다.. 그런데  이 게임 개발 도구를 만든 곳이 바로 HAL 연구소 였다.  HAL 연구소가 닌텐도의 게임 개발 도구를 만들어 주는 회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이와타 사토루의 뛰어난 프로그래밍 능력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스매쉬 브라더스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



이와타 사토루가 HAL 연구소에서 선보인 마지막 작품은 스매쉬 브라더스였다. 이 게임은 닌텐도의 인기 캐릭터가 총출동한 격투 게임으로 최근에 닌텐도 위로 발표된 스매쉬 브라더스 X가 840만장이 넘게 팔릴정도의 대표적인 킬러 컨텐츠이다.  사실상 이 게임을 통해서 HAL연구소는 부활할 수 있었고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로 가는데 큰 원동력이 되었다.  스매쉬 브라더스는 별의 카비를 만든 사쿠라이 마사히로의 뛰어난 기획력과 이와타 사토루의  기술력 이외에도 닌텐도와의 협업이 빛을 발했다. 


스매쉬 브라더스는 원래 정식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이와타 사토루와 사쿠라이 마사히로가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한번 만들어본 작품이다.  처음 게임의 모습은 회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후지산 배경에 당시 인기 있었던 광고 캐릭터인 펩시맨을 이용한 격투게임이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닌텐도의 인기 캐릭터인 마리오와 돈키콩등을 등장 시킨 새로운 형태의 격투게임을 만드는게 더욱 승산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리오와 돈키콩을 만든 미야모토 시게루는 격투게임에 자신의 캐릭터가 사용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 사실을 직접 들은 이와타 사토루는 사쿠라이 마사히로에게 알리지 않고  닌텐도의 캐릭터들을 그대로 사용해서 우선 게임을 만들도록 지시한다. 당시 사쿠라이 마시히로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면 게임도 없었을 것이라고 밝힐 정도로 위태한 순간이었지만  이와타 사토루는 대범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갔다. 이와타 사토루 생각에는 좀더 완벽하게 게임을 만들어서 가져가면 분명 미야모토 시게루도 허락할 것이라는 생각에 일부러 프로젝트를 강행하게 된다. 그리고 마리오가 실제로 돌아가는 게임을 본 미야모토 시게루는 흡족해 하며 결국 허락하고 만다. 


이번에도 역시 이와타 사토루는 스매쉬 브라더스를 통해서 소중한 교훈을 깨닫게 된다. 우선 고객과의 소통이었다. 1999년 당시에는 인터넷이 활성화 되지 않았는데 HAL연구소는 스매쉬 브라더스가 발매 된 직 후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었다. 이는 고객과 직접 소통하겠다는 개발자들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였다.  원래 이와타 사토루는 장인으로써 상품을 만드는 것에 최선을 다할 뿐 그 다음에는 입을 조용히 다물고 있는 것이 더욱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인터넷을 통해서 고객과 소통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는 단순히 손님의 의견을 듣는다는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미디어 믹스로써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 동안 개발자가 고객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방법이 한정되었지만 인터넷을 활용한다면  더욱 멋지고 매력적인 그 무엇을  낳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이와타 사토루는 스매쉬브라더스를 만들면서 게임 개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게임을 개발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는 점이었다. 게임이 더욱 복잡하고 화려해지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앞으로 소프트웨어의 미래는 없다는 문제였다. 대작을 만들기 위해서 작업량은 방대해지고 작업량은 그만큼 늘어나니 신선한 아이디어를 좀더 빠르게 고객에게 선보이기가 힘들어지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그는 호화로운 대작 위주의 게임이 꼭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악순환을 끊어야 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이런 생각은 대작의 게임보다는 쉽고 가볍게 즐기는 게임이 더욱 소중하다는 야마우치 히로시의 경소단박론과 일맥상통하였다.  사실 스매쉬 브라더스는 기존의 격투게임과는 확연히 달랐다.  격투 게임은 시리즈가 계속 될수록 한 캐릭터당 가지고 있는 기술의 숫자가 늘어난다.  


게임을 1탄부터 한 사람은 늘어나는 기술이 부담스럽지 않겠지만 처음 게임하는 사람은 복잡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1999년 당시에 격투 게임은 초보자가 하기 힘든 마니아들만의 전유물이 되었다.  그래서 스매쉬 브라더스는 누구나 쉽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경소단박형 게임으로 제작한것이었다. 이런 이와타 사토루의 의도는 정확하게 적중하였다.  99년 1월에 일본에서 발매된 스매쉬 브라더스는 197만장이 판매되고 미국에서는 293만장이 판매되면서 격투 게임으로써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HAL 연구소의 재정은 더욱 좋아졌다. HAL 연구소를 부활 시키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은 야마우치 히로시는 2000년 되자 이와타 사토루는 닌텐도로 스카우트 한다. 경영 기획본부의 실장으로 발탁된 이와타 사토루는 2001년 발매된 가정용 게임기 게임큐브의 개발을 담당하게 되고 입사한지 단 2년만인 2002년 43살의 어린나이에 닌텐도의 사장으로 임명된다.



지금까지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에 입사하기전 까지의 모습을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와타 사토루가 닌텐도에 입사하기 전까지의 삶의 궤적들을 살펴보면 왜 야마우치 히로시가 이와타 사토루를 닌텐도의 사장으로 선택했지는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첫째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에 대한 기술이다. 이는 사실 야마우치 히로시가 가지지 못한 능력이자 닌텐도의 단점이었다. 하지만 슈퍼 프로그래머 소리를 들었던 이와타 사토루였던 만큼 닌텐도가 기술을 잘못사용해서 실패할 확률은 그만큼 적어질 것이다.  둘째 도산직전의 회사를 살려낸 경영능력이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이와타 사토루가 기대에 한번도 배신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했는데 HAL연구소를 부활시키는 과정에서 어떠한 구설수 없이 사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서 난파된 회사를 구한건 이와타 사토루의 능력을 충분히 증명하는 것이었다.  셋째 야마우치 히로시와 비슷한 철학이다. 평소 게임은 누구나 쉽고 가볍게 즐길수 있어야 한다는 경소단박을 강조한 야마우치 히로시의 철학이 HAL 연구소에서 발매된 게임인 별의 카비와 스매쉬 브라더스에 그대로 구현되었다. 이렇게 야마우치 히로시가 가지지 못한 기술 그리고 야마우치 히로시가 기대하는 경영능력 그리고 야마우치 히로시와 같은 개발철학을 공유했기 때문에 이와타 사토루는 수많은 유력후보들을 제치고 입사 2년만에 사장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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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