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블리자드2015.08.20 07:00






블리자드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던중에 나온 아이디어를 통하여 성공신화를 이어왔기 때문에 상대의 아이디어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논평하지 않는 브레인 스토밍을 즐긴다. 워 크래프트 개발이 시작된 것은 평상시처럼 블리자드 사원 전체가 모여서 점심식사를 하던중에 잡담을 나누던 중 듄2가 화제가 되면서 부터다. 블리자드의 직원들은 92년도에 등장한 듄2를 정말 재미있게 했는데 지난 2년간 비슷한 게임이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았다면서 게임 장르자체가 사라지는게 아닌가 하면서 아쉬워 하였다.  


서로가 실시간 전략 게임 장르의 매력을 이야기하던중에 급기야 다른 개발사가 만들지 않으면 블리자드가 직접 만들어서 게임을 즐기면 될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가 재미있게 플레이하고 즐길 수 있는 게임을 직접 만든다는 블리자드의 철학이 바로 이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게임에 대한 생각과 아이디어를 말할 수 있고 특별히 권장되는 사항이기도 하다. 그래서 게임 기획자들의 방은 프로그래머나 음악 담당자 같은 모든 개발자들에게 열려 있고 블리자드에서 게임 기획자들이 하는 중요한 일중에 하나는 개발팀원들이 들려주는 게임 아이디어를 정리해서 상부에 보고하는 일이다.


혼자 결정하지 않고 모두가 함께 생각하고 결정하는 이러한 정책이 빛을 발할때는 게임 테스트가 진행 될 때이다. 사원들 모두가 게임 마니아들로 이루어진 그들은 게임 테스트야 말로 가장 즐거운 순간이다. 그들은 게임 테스트가 시작되면 열심히 게임플레이를 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놓는다.  이러한 의견에 대해서는 역시 비판을 하기 보다는 모든 내용들을 수집하고 취합한다. 이렇게 모아진 의견들은 기획,그래픽,프로그래밍 등 각 개발 파트의 최고 책임자로 이루어진 스트라이크팀에 의해서 채택유무를 결정한다. 


 스트라이크팀에 소속된 사람은 블리자드의 창업자인 알렌 애드햄, 마이크 모하임, 프랭크 피어스와 기획책임자 롭팔도 그리고 시나리오 책임자 크리스 맷젠이 본사 사람으로 참여하고 블리자드 노스에서는 콘도르의 창업자인 데이비드브레빅과 쉐퍼형제가 포함됐다. 빌 로퍼는스트라이크 팀을 리드하는 동시에 블리자드와 블리자드 노스를 오고가면서 의견을 조율하는 조정자의 역할을 했다.  


스트라이크팀은 디아블로를 개발한 블리자드 노스와 효율적인 의사교환을 위해서 만들어진 팀이다. 하지만 스트라이크팀의 의사결정방법이 게임의 성공에 좋은 영향을 끼치자 권한을 더욱 확대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스트라이크팀은 실제로 따지고보면 결국 블리자드 본사에서 블리자드 노스에 일을 지시하기 위한 조직이었지만 나중에는 블리자드 노스가 블리자드 본사의 게임에 대해서 평가를 하고 의견을 주는 동등한 관계를 이루게 된다. 


혼자 결정하지 않고 다함께 생각하고 결정하는 이런한 방식은 의견이 제대로 조율되지 않을경우 제작지연등의 부작용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리자드가 이런 방식을 고수하는 건 게임 개발자들이 각종 의견에 대해서 토론과 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한마음 한뜻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블리자드에서는 특별히 업무지시를 하지를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미 토론과 합의의 과정에서 개발자들은 저마다 자신이 해야할일을 정확하게 알게 되기 때문이다. 민주적인 방식이 처음보기에는 느려보이고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대신에 한번 합의를 가지면 모든 사람들이 대동단결해서 게임개발에 전념을 하게 되는데 이를 올바른 방법으로 활용할줄 아는 것이 바로 블리자드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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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기획2014.07.04 16:06




일반적으로 게임회사는 철저한 분업화를 이루어야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분업화는 효율적인 제작을 가능하게 하지만 팀원들이 수동적으로 정해진 일만 하도록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 특히 대형화된 회사에서는 아이디어나 기술의 유출을 우려해서 직원들이 게임 개발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모아두는 것이 아니라 그래픽팀이나 프로그래밍팀별로 배치를 한다. 애초에 게임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게 아니라 업무의 지시를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 보여주기 때문에 개발자들은 오직 회사에서 정해준 그림만을 그리거나 프로그래밍을 해준다. 철저한 분업화는 효율성을 위해서 시작됐지만 철저한 보안을 위해서  게임의 아이디어나 전체적인 기술을 직원들이 아예 접근하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막는 방식으로 발전됐다. 치열한 경쟁으로 인하여 게임업계에서 아이디어와 개발기술이 그만큼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리자드의 경우는 모든 직원들이 실력만 있으면 게임 개발의 모든 부분에 참가할 수 있다. 일반 게임회사들이 전문화와 분업화를 축으로 움직인다면 블리자드는 히딩크 감독의 축구처럼 멀티플레이어를 추구한다. 빌 로퍼가 음악담당자로 취직했지만  성우를 거쳐서 시나리오와 기획을 담당하고 결국 프로듀서로써 제작지휘와 홍보를 담당하듯이 말이다. 일반회사는 개발계획에 따라서 팀원들을 배치한다면 블리자드는 팀원들이 원하는 부분에서 일을 할수있도록 배려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효율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막판에 일이 몰릴 때 여러가지 재주를 가진 직원들이 급박하게 일손이 필요한 개발파트에 참여함으로써 도움을 줄수도 있다. 원래 게임 개발은 모든 팀원들이 동시에 바쁜게 아니다.


 초반에는 게임기획이 바쁘고 중반에는 그래픽에 일이 몰리고 후반에는 프로그래머들이 강행군을 펼쳐야 한다. 그런데 한명의 개발자가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일이 바쁠 때 다양한 도움을 줄수 있다. 디아블로를 예로 든다면 블리자드 노스의 사장이었을 때 데이비드 브레빅은 초반에 게임기획에 참가를 했다. 하지만 그는 직원들이 절대 불가능하다면서 포기한것들을 척척 해결 해줄 정도로 뛰어난 프로그래머이다.  또한 블리자드 노스의 부사장이었던 에릭쉐퍼 역시 기획일을 책임지면서 그래픽팀에서 배경디자인일을 한다. 또 다른 블리자드 노스의 부사장었던 맥스 쉐퍼는 역시 기획을 하면서 동시에 캐릭터 디자인일을 담당하고 있다. 


블리자드의 직원들을 보면 이렇듯 동시에 두가지 업무를 공식적으로 수행하는 사람들이 많다. 빌로퍼의 경우 마인드 자체가 제작에 필요한 일은 무엇이든 다한다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빌로퍼 뿐만 아니라 블리자드 팀원들 모두가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게임 개발중 어느 한팀이 과부하가 걸리면  서로 도와줄려는 적극적인 마인드가 블리자드 팀원 모두의 가슴에 세겨져 있다. 


 회사의 개발팀원들이 원하는 모든 일을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는 이러한 시스템을 위해서 블리자드가 특별히 신경쓰는건 모든 직원들의 정보공유이다. 직원이라면 누구나 접속할수 있는 사내 전산망에 접속하면 게임의 아이디어들이 모두 공개 되어있다. 게임제작에서 변경되는 사항이 생기면 바로 실시간으로 수정이 된다. 또한 기술적인 부분에서 이해를 못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서 프로그래머가 아니라도 쉽게 내용을 파악할 수있도록 친절한 해설도 담겨있다. 


이러한 정보공유 시스템 덕분에 직원들은 회사에서 필요한일과 원하는 사람을 정확하게 파악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고려해서 다양한 업무분야에 지원할 수가 있다. 다만 블리자드는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얼마든지 지원할 수는 있지만 철저히 실력을 검증받아야 한다. 빌로퍼만 해도 그가 회사의 부사장이었고 나레이터로 여러 번 게임에 참여했지만 새로운 게임에 성우로 지원할때는 무조건 오디션을 봐서 정말 필요한 사람인가에 대한 테스트를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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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블리자드2014.01.21 14:11



성공하는 회사에는 그 회사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기 마련이다. 마이크로 소프트는 회사건물을 캠퍼스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회사처럼 딱딱한 분위기보다 대학처럼 학구적인 젊음의 패기가 넘치는 직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붙혀진 호칭이다. 또한 마이크로 소프트에는 이른바 실패를 권장하는 문화가 있다. 아무리 형편없는 제품을 만들어도 시도자체가 훌륭했다면서 승진을 시켜준다. 그런데 이 제품에서 기능을 하나라도 향상시키면 비록 경쟁사보다 제품의 질이 떨어져도 역시 승진을 시켜준다. 


그 다음에는 경쟁사와 제품이 비슷하기만해도 승진이 된다. 비록 시장에서는 판매가 부진해서 결과적으로 실패를 했다고 해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런 가이드 라인만 맞추면 승진이 된다. 이렇듯 실패에 대해서 승진으로 보답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오늘날 마이크로소프트는 레드오션의 최강자가 된것이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만 해도 처음에 나올때는 경쟁사의 넷스케이프보다 형편없었다. 하지만 두번째 버전에서는 여전히 넷스케이프다 나뻤지만 그래도 성능과 기능에서 그 격차를 줄였다. 세번째 버전이 되어서야 비로써 넷스케이프와 비슷하다는 소리를 들었고  네번째 버전에서는 넷스케이프를 역전하였다. 윈도우, MS 오피스, 비주얼 스튜디오등 현재 마이크로소프트를 대표하는 모든 제품이 처음에는 온갖 비난을 들었으나 꾸준한 버전을 통해서 경쟁회사를 뛰어 넘었다. 이는 그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고 격려하라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애플은 앞에서도 언급했던 이른바 해적문화를 신봉한다. 스티브 잡스는 투자를 받기 위해서 관계자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지만 번번히 퇴짜를 맞았다. 그럴때일수록 그는 기운이 빠지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아이디어가 그만큼 더 훌륭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홉시 출근에 여섯시 퇴근하는 사람들은 매일 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하기 때문에 저 앞에 있는 미래를 보지 못하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고 봤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가 제시하는 아이디어는 바로 생각의 벽을 뛰어넘는 신선한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받아들이기 힘들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벽을 파괴하는 해적이 되고 싶어했고 그래서 애플의 직원들에게 해적정신을 강조하였다. 애플의 표어인 다르게 생각하기(Think different) 도 결국 해정정신의 일부이다. 


인텔에는 평등문화라는게 있다. 사장이나 일반 직원들은 모두 2평공간의 동일한 책상공간을 제공받는다. 회사임원이라고 전용주차장도 없다. 그래서 회사의 CEO였던 앤디그로브는 주차를 위해서 주차장을 몇바뀌 돌아야 했다. 출근시간 역시 지각을 하면 사장이라고 해도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하는등 인텔에서는 모든 직원이 평등한 관계이다. 이렇게 평등문화가 인텔에서 발전한 것은 그들이 CPU 회사이기 때문이다. 인텔에서 CPU를 개발할때면 신기술과 관련되서는 많은 논쟁이 있다.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직위가 높은 사람의 의견위주로 채택되더니 회사내에서 자유로운 논쟁이 없어졌다. 새로운 신기술을 개발하려면 뭔가 창조적인 의견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이런 논쟁이 싫어서 과거의 기술에 얽매였다. 그래서 앤디그로브는 직위가 낮은 직원들이 자유롭게 의사를 밝힐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직장상사에게 주눅이 들어있었다. 그래서 앤디 그로브는 인텔내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임원들의 특혜를 모두 없애고 회사안에서는 월급만을 제외하고는 직원이 동등하게 대우받도록 하였다. 


덕분에 인텔에는 회의시간이 오면 계급장을 떼고 격렬한 논쟁을 펼치는데 이를 건설적인 대립이라 칭하며 그들만의 독특한 회의분위기가 생겨났다.

구글은 회사란 즐거운 놀이터라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구글의 본사 건물인 구글 플렉스에 들어가면 각종 장난감이 쌓여있다. 무료인 구글의 식당은 맛있는 음식이 가득하다. 회사내에는 사우나탕과 마사지실이 완비되어서 직원들의 피로를 풀어준다. 헬스장, 음악 연주실, 게임방등이 있어서 각자의 취미에 따라 즐겁게 놀수가 있다. 회사 앞마당에서는 자전거나 롤러블레이등을 마음껏 탈수 있다. 또한 직원들의 옷을 무료로 세탁해주고 차도 공짜로 세차해준다. 구글 직원들은 일주일에 하루는 다함께 주변 공원을 산책하면서 단합대회를 연다. 이렇게 구글이 신나는 직장이 될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건 창조적 아이디어란 단순히 책상에 앉아서 떠오르기 보다는 즐거움 마음속에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블리자드 역시 독특한 회사문화를 가졌고 이것이 그들의 성공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몇회에 걸쳐서 블리자드의 기업문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오직 게임마니아만을 환영합니다.


95년 워크래프트2의 성공 이후 블리자드에는 미국 전역의 많은 게임 개발자들이 일자리를 원한다며 이력서를 보내왔다. 그런데 블리자드가 채용하는 사람들의 첫번째 조건은 무조건 게임 마니야여야만 했다. 간혹 지원자들이 게임마니아라고 자신을 속이는 경우가 있었는데 블리자드는 이를 심층적인 인터뷰를 통해서 진정으로 게임을 좋아하는지 유무를 검증했다.  잡지나 인터넷을 읽고서 답변을 할 수 없는 구체적인 질문과 답을 내기 때문에 섣불리 거짓말을 할 수 없도록 하였다. 오직 게임 마니아만을 뽑는 이러한 정책은 블리자드 스스로 딜레마에 빠지기도 했다. 너무나 실력이 뛰어나지만 게임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래픽디자이너나 프로그래머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직 게임 마니아만을 뽑는 다는 회사의 정책은 바뀌지 않았고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게임 마니아가 아닌 지원자들은 채용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무조건 게임마니아만 뽑는 이유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 이유는 회사내 직원들의 친교를 위해서다. 무엇인가를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집단은 서로 화합하기가 더 쉬워진다. 성적 때문에 어쩔수없이 맞춰서간 학과보다는 공통된 취미로 모인 동아리에 더 애착이 가듯이 말이다. 특히 게임이 재미있는 이유중에 하나는 바로 사교성때문이다. 포커나 장기등이 사실 상대와 겨뤄서 승리감을 맛보기 위해서 존재하기도 하지만 함께 어울리고 친해지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블리자드 내에는 전용 아케이드 게임방과 보드 게임방이 있다. 이곳은 블리자드 직원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으로써 게임 회사의 직원들과 친해질수 있는 최고의 사교 공간의 역할을 한다.  이렇듯 게임으로 뭉친 블리자드는 가족과 같은 분위기로 게임 개발자들이 가장 가고 싶은 회사중에 하나로 손꼽힌다.


블리자드의 창업자인 알렌 애드햄이 블리자드의 게임은 재미있을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블리자드 직원 모두가 게임을 좋아하는 마니아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자신들 스스로가 게임 마니아들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볼것도 없이 직원들이 만족하는 게임을 만들면 된다는 것이 알렌애드햄의 지론이다. 블리자드에서는 금요일 오전시간에는 일을 하지않고 직원들을 상대로 개발중인 게임의 테스트를 시행하고 게임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데 알렌 애드햄은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타겟 마케팅을 위한 업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블리자드의 직원들은 최고의 게임 마니아들이고 그들이 좋아하고 원하는 방향으로게임을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개발된 게임은 결국 게임마니아들에게 인정받는 최고의 게임일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오직 게임 마니아만을 뽑는다는 블리자드 채용정책의 또 다른 이유는 게임에 대한 사랑이 게임개발에 대한 특별한 열정을 제공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블리자드의 직원들은 그들이 정말 해보고 싶은 게임을 개발하기 때문에 게임마니아들인 그들은 가능한 빨리 개발을 완료해서 그들이 만든 게임을 직접 플레이 해보고 싶은 열망에 빠지기 마련이다. 그들이 개발하는 게임을 하루라도 먼저 플레이 해보고 싶은 꿀뚝 같은 마음은 곧 열정으로 발전해서 게임개발에 혼신의 힘을 쏟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블리자드는 게임발매가 6개월정도가 남으면 가장 힘든시기를 보내는데 이때를 크런치타임이라고 한다. 


블리자드의 개발자들은 크런치 타임으로 불리는 시기가 오면  하루에 18시간이나 작업에 열중한다. 게임개발에 열정이 얼마나 크던지 스타크래프트를 개발하던 한 직원은 부인이 아기를 낳는 그 순간에도 바로 옆에서 노트북으로 게임을 개발한적도 있다고 고백할 정도이다. 아이러니 한점은 블리자드가 아닌 다른 게임 회사들은 게임 마니아를 별로 반기지 않는다. 게임을 개발하는 것과 게임 플레이를 좋아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업무시간에 몰래 게임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일에 지장을 준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정작 블리자드는 업무시간에 게임을 해도 자기 할일만 해놓으면 아예 터치를 안한다. 그리고 회사내에 있는 게임방은 직원들로 항상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결국 블리자드가 다른 게임 회사에서는 선호하지 않는 게임 마니아들을 뽑아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게임에 대한 사랑을 온전히 게임 개발에 대한 열정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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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블리자드2013.12.23 08:33



블리자드는 스타크래프트를 통해서 게임 스토리텔링에 자신감이 붙었다고 할정도로 스스로 가장 만족하는 부분이 바로 스토리이다. 기존에 워크래프트의 경우는 휴먼대 오크의 대결을 그리고 있는데 휴먼은 선을 대표하고 오크는 악을 대변하는 선과 악의 대결이었다. 디아블로 역시 유저가 악마인 디아블로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지하세계로 가는 스토리인데 역시 뚜렷한 선과악의 대결스토리이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에서는 이런 단순한 이분법적인 스토리 구조를 탈피했다. 누가 선이고 누가 악으로 구분되는게 아니라 모두종족이 생존을 위해서 싸우는 치열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또한 인간을 연상시키는 테란과 에일리언에서 모티브를 얻은 저그 그리고 프레테터를 연상시키는 프로토스는 각기 고유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는 얼핏 삼국지를 연상시키는 스타크래프의 갈등구조는 게임을 하는 유저들이 마치 신화속의 주인공이 된 것 과 같은 감정이입을 느끼게 해준다. 


테란의 황제 임요환에게 사람들이 열광하는건 인간을 연상시키는 테란을 이끄는 지휘관이 되어서 저그와 프로토스 같은 다른 외계 생물체를 상대로 멋진 승리를 거두는 감정이입도 하나의 이유다. 원래 테란은 저그와 프로토스에 비해서 힘이 약한 종족이었다. 하지만 임요환은 이러한 핸디캡을 이겨내고 각종 전략과 전술을 총동원해서 스타크래프트 내에서 최강의 종족으로 이끌었고 이는 그야말로 무협 소설속에 영웅이 등장하는 모습과 흡사하며 테란의 황제라는 호칭이 결코 아깝지가 않다. 


스타크래프트의 경우는 각 종족마다 10개의 미션을 가지고 있는데 이 역시 하나의 단선적인 스토리가 아니라 세 종족이 얽히고 설히면서 새롭게 비밀등이 밝혀지는 이야기를 갖춘 한편으로 스타크래프트는 스토리를 전달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방법을 동원했다. 기존에 게임 스토리라는 것은 유저들이 참여하는게 아니라 단순히 감상용으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게임에서 스토리가 진행되면 유저는 그냥 멀뚱히 화면을 응시하는게 전부였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에서는 게임 스토리에 유저가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 실시간 전략 게임에서는 모든 미션이 같은 게임방식으로 이루어져서 적을 이기는 것이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는 자원수집,건설,전투로 이어지는 이런 공식이 아니라 적의 기지에 침투해서 사람을 구하던가 지원을 하는등의 스토리와 어우러진 미션을 수행하였다. 이 덕분에 스타크래프트는 게임 플레이와 스토리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룸으로써 게임의 이야기 전달방식에 신기원을 이뤘다는 극찬을 들을 수 있었다. 


뜻밖의 행운이 재미로 승화되다.


스타크래프트의 성공요소중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행운들도 숨어있다. 절대 의도한 것이 아닌데 결과적으로 보면 게임의 성공에 일조한 것들로는 우선 스타크래프트의 길찾기등 인공지능의 부족함이다. 블리자드는 뛰어난 프로듀서 서 덕분에 게임을 재미있게 만드는 능력은 뛰훌륭하지만 프로그래머들의 게임 개발 기술로만 따지고 보면 최고는 아니었다. 앞에서 이야기 했다시피 풀 3D로 중무장한 토탈어니힐레이션은 인공지능에 있어서도 수준급이었다. 유닛을 이동하고 싶은 위치로 클릭을 해놓으면 최단거리로 길을 찾아갔다. 공격할 상대를 지정해두면 끝까지 그 임무를 수행하는 영리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비해서 스타크래프트의 경우 물론 워크래프트보다는 많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길찾기등의 인공지능 능력이 떨어졌다. 그래서 유저들이 일일이 이동경로를 일일이 표시해주고 길을 잘가고 있나 살펴봐야 했다. 상대 공격처럼 명령을 내려도 유저가 원하는데로 움직이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컸다. 그래서 게임을 하는 유저는 끊임없이 유닛들을 살펴보고 새롭게 명령을 내려서 컨트롤을 했다. 기술의 부족으로 토탈어니힐레이션보다 손이 많이 가게 된 게임이 스타크래프트였다. 


그런데 이렇게 유저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마우스로 컨트롤해야하는 답답함과 불편함이 오히려 게임플레이에는 새로운 재미를 주었다. 인공지능의 부족함 때문에 유저의 세밀한 컨트롤이 필요했고 이러한 마이크로 콘트롤이 게임의 흥미를 더욱 높였다. 인공지능의 패턴을 파고든 임요환선수의 마이크로 콘트롤은 블리자드가 놀랄정도로 예상못한 일이었고 컨트롤에 의해서 승부가 갈리지는 모습은 보는 사람도 감탄하게 만드는 특별한 테크닉이었다.  


또한 스타크래프트는 한부대에 열두명 밖에 까지 지정을 하지 못한다. 다른 게임은 스타크래프트보다 많은 수십개의 유닛을 동시에 지정할 수 있었다. 그래서 처음 스타크래프트가 처음나왔을때만 해도 게임의 단점을 뽑힌게 한번에 단 열두개의 유닛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답답함이었다. 하지만 부대로 지정할 수 있는 유닛이 열두개 밖에 되지 않으므로 결국 유저들은 유닛들을 여러 부대로 분산배치를 해야만 했다. 결국 열두명으로 한정된 부대를 어떤 유닛으로 구성하느냐가 게임 승패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유저입장에서는 더욱 전략적인 사고가 필요했다. 

또한 다른 게임에 비해서 대규모 부대 구성이 불가능 한 관계로 스타크래프트는 각 부대를 소규모로 쪼개야 한다. 


결국 유저들이 직접 일일이 명령을 내려야 하는 부대들의 숫자가 다른 게임에 비해서 월등했다. 그래서 유저들은 쪼개진 부대들의 움직임을 일일이 조종해야했는데 덕분에 마이크로 컨트롤로 불리는 능력이 다시한번 발휘돼야 했다. 유저가 얼마나 빠르게 마우스를 움직이느냐가 게임의 승패에 영향을 줌으로써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하는 박진감 넘치는 게임으로 변모할 수 있게 된것이다. 이렇듯 현재는 스타크래프트의 묘미중에 하나인 마이크로 컨트롤이지만 사실은 인공지능 능력의 부족이나 기획상의 문제등으로 생겨난 어쩔수 없는 일종의 편법이었다.


가치를 볼줄 아는 안목


스타크래프트의 성공을 보면 빌 로퍼는  무엇인가를 최초로 개발한 발명가나 창조자라기 보다는 기존의 것에 새로움을 더 한 혁신자이고 고객의 마음을 움직여서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은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그가 비록 실시간 전략 게임의 창조자는 아니었지만 백만장을 판매한 워크래프트2로 실시간 전략게임을 부활하고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디아블로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이 이것은 롤플레잉이 아니라 단순 노가다의 액션 어드벤쳐 게임이라고 했지만 재미있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이에 게의치 않았고 오늘날 MMORPG의 원류가 되었다. 스타크래프트 역시 3D 시대에 뒤떨어진 그래픽이라고 했지만 결국 이 덕분에 낮은 사양에서도 쾌적하게 돌아가는 2D게임을 만듬으로써 저사양 PC를 가진 많은 사용자들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을 창조하기보다는 가치를 볼줄 아는 안목이야 말로 디지털 리더에게 더 중요한 능력이다. 처음 게임을 개발한 윌리엄 히긴보텀이나 비디오 게임의 창조자 스티븐 러셀 그리고 최초로 게임에 특허까지 딴 랄프베어는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돈도 별로 벌지 못했다. 이에 반해서 아타리의 놀란 부쉬넬은 비디오 게임의 아버지라는 극찬과 함께 억만장자가 되기까지 하였다. 앞선 비디고 게임의 선구자들과 놀란부쉬넬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게임의 가치를 과소평가하여서 결국 상업화 과정에 놀란 부쉬넬 같은 열정을 쏟아붓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경우 매킨토시를 통해여 세계 최초의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를 대중에게 선보인덕분에 그 명성이 더욱 높아졌다. 키보드가 아니라 마우스를 움직여서 컴퓨터에 명령을 내리는 인터페이스 체계가 당시로써는 무척 혁명적이었지만 이는 그가 제록스의 연구소 PARC 에서 전시되어있는 시제품을 보고 상업적으로 개발한 것이다. 그런데 서태지이전에도 한국에서 랩을 한 사람은 있지만 정작 대중화를 한 것은 서태지였기 때문에 그를 인정하듯이 상업적인 성공이야 말로 오히려 더 높은 평가를 내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렇게 가치를 볼줄 아는 안목이라는게 쉬운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주위사람들로부터 온갖 비아냥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는 처음 세계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인 알테어 8800(altair 8800)이 나왔을 때 각 가정마다 텔레비전 처럼 컴퓨터를 가지는 날이 오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개인용컴퓨터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를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주위사람들은 누가 소프트웨어를 구입하겠느냐며 그의 사업계획을 비웃었다. 스티브 잡스가 휴렛 팩커드에 컴퓨터를 가져갔을 때 역시 어디에 쓰이는 물건이냐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마이클 델이 소매상을 거치치 않고 직접 고객에게 주문을 받아서 맞춤형 컴퓨터를 판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누가 천달러가 넘는 돈을 직접 물건을 보지도 않고 전화로 주문하겠느냐며 주문방식의 컴퓨터 회사가 금방 망할 것 이라고 단언하였다. 앤디 그로브가 인텔인사이드  마케팅을 시도 할때도 광고업체 사람들은 그냥 돈을 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까지 비아냥거렸다. 래리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미국의 포탈업체에 구글엔진을 판매하려 했지만 모든 업체들이 거부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사업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저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기존의 상식과 고정관념이라는 벽에 과감한 도전을 하여 디지털 시대의  성공신화들을 완성했다. 


<블리자드 이야기는 다음에도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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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블리자드2013.12.18 14:27



컴퓨터 게임을 개발하는 과정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마케팅에 근거해서 시장이 요구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과 게임 개발자들이 원해서 만드는 것 두가지이다. 블리자드의 경우는 애초에 남을 의식하지 않고 회사내의 게임개발자들이 직접 플레이 하고 싶은 게임들을 개발하도록 유도한다. 스타크래프트 역시 시작은 단순한 이유로 시작했다. 스타워즈와 스타트랙 같은 우주 SF 마니아인 자신의 만족을 위하여 우주를 배경으로 한 게임을 개발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이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워크래프트가 나올때만 해도 세상에서 실시간 전략 게임은 듄2가 유일했고 워크래프트2가 나왔을 때는 경쟁상대가 커맨드앤 퀀커밖에 없는 블루 오션이었다.


하지만 워크래프트와 커맨드앤 쿼커가 백만장을 넘기는 밀리언셀러를 기록하자 여기저기서 유사한 게임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 실시간 전략 게임시장은 치열한 경쟁이 판치는 레드오션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블리자드의 낙관적인 태도는 여전했다. 블리자드는  1996년 워크래프트2 엔진을 사용해서 우주를 배경으로 그래픽만 바꾼상태로 세계 최대 규모의 게임 전시회인 E3에 스타크래프트를 전시한다. 그런데 게임이 전시회에서 공개되자 스타크래프트는 온갖 혹평속에 혼쭐이 난다. 게임 화면속에는 특히 보라색이 강렬했는데 워크래프트가 보라색이 되어버렸다 혹은 오크가 우주로 갔다는 등 온갖 비아냥이 쏟아졌다. 


사실 E3에서 스타크래프트는 디아블로와 함께 전시중이었다. 여섯대의 모니터를 전시했는데  그중 세개의 모니터에는 스타크래프트를 그리고 나머지 세개의 모니터에는 디아블로를 전시중이었다. 하지만 블리자드는 사람들의 반응이 부담스러웠던지 결국 다섯대의 모니터에 디아블로를 전시했고 단 한대에만 스타크래프트를 전시하였다.


결국 E3에서 돌아온 블리자드 측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냥 계속 스타크래프트를 개발하던가 취소를 하던가 다시 만드는 일이었다. 결국 스타크래프트는 다시 개발하기로 하였다. 마침 1996년 12월의 마지막날에 발매한 디아블로가 시장에서 크게 성공하자 블리자드는 게임 개발에 대한 새로운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리고 완성이 되기전까지는 판매를 해서도 안되고 최고라고 생각이 들때가지 게임개발에 매진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블리자드는 한결 여유를 가지면서 개발에 임하게 되었다. 


그 장르의 최고를 꿈꾼다.


게임계를 뒤돌아 보면 각 장르별로 이른바 빅3가 존재하게 된다. 우선 가정용 게임기가 그렇다. 현재 가정용 게임기를 보면 마이크로소프트의 XBOX360과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3 그리고 닌텐도의 Wii가 삼분등을 하고 있다. 그런데 마이크로 소프트와 플레이스테이션3는 뛰어난 그래픽 성능을 어필하면서 경쟁을 하고 있다. 하지만 Wii는 그래픽이 아니라 컨트롤러에 변화를 주면서 게임계에 새로운 혁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비슷한 컨셉의 두 게임이 치고박고 치열한 전쟁을 펼치고 있을 때 기존에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발상으로 승부를 거는 게임이 등장해서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경우가 있다. FPS 게임도 바로 그렇다.






 원래는 Id 소프트웨어가 둠과 퀘이크를 통해서 FPS 라는 장르를 창조해내었다. 그렇지만 에픽 게임즈가 더 화려한 그래픽을 자랑하는 언리얼이라는 게임을 들고 나와서 강력한 라이벌관계가 형성 된다. 하지만 이러한 싸움에 밸브 소프트웨어가 그 동안 FPS는 스토리가 필요 없다는 기존의 선입견을 뒤바꾼 스토리 지향의 FPS인 하프라이프를 들고 나와서 다시 최고의 게임으로 거듭난다.


블리자드가 1998년 4월 1일 스타크래프트를 내놓았던 당시에도 실시간 전략 게임 시장이 바로 그러했다. 듄2로 실시간 전략 게임의 원조로 통하는 웨스트 우드는 새로운 게임시리즈인 커맨드 앤 퀀커로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강력한 라이벌로써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가 있었다. 그런데 3D로 중무장한 토탈 어니힐레이션이 등장해서 게임계의 새로운 판도를 그려나간다. 지금까지 볼수 없었던 화려한 3D 그래픽과 다양한 유닛의 등장으로 실시간 전략 게임의 성공 방정식이 달라졌다. 뛰어난 그래픽과 얼마나 다양한 유닛을 제공하느냐가 곧 그 게임을 평가하는 전부처럼 되어버렸다. 


토탈 어니힐레이션이 등장한 이후 기존의 양강체제를 구축한 웨스트 우드와 블리자드는 이에 깊은 고민에 빠진다. 사실 96년도에 블리자드가 깜짝놀랬던 것은 언론과 유저들의 조롱보다는 토탈 어니힐레이션의 충격때문이었다. 그런데 토탈어니힐레이션에 반응하는 웨스트우드와 블리자드는 완전히 새로운 길을 선택한다. 웨스트우드는 다음 차기작으로 자신들이 개발하는 게임을 3D게임으로 결정을 하고 새로운 그래픽 엔진을 제작한다. 하지만 블리자드는 기존 워크래프트엔진을 더욱 개정을 해서 2D로 게임을 개발하도록 결정한다. 이러한 선택은 두 회사의 운명을 완전히 갈라 놓는다. 


사실 웨스트 우드는 97년 발매한 커맨드 앤 퀀커:레드얼럿을 통해서 무려 1200만장이라는 어마어마한 판매량을 기록해서 기네스북에 올라갈 정도였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웨스트 우드는 몇 년간에 걸쳐 3D 기반의 커맨드앤 퀀커:티베리안썬을 1999년에 발매한다. 하지만 기존 컴퓨터 사양으로는 게임을 돌리기도 어려운 고사양을 요구했고 그나마 게임속도도 느려서 웨스트 우드 명성에 먹칠을 한다. 이후 웨스트우드는 이런 명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서서히 침몰하여 가고 결국 모회사인 EA에 의해서 스튜디오가 폐쇄당하기 까지 한다.





하지만 2D의 길을 선택한 블리자드는 게임에 컴퓨터 기술이나 그래픽 같은 외형에 치중하기 보다는 실시간 전략 게임의 본질을 더욱 깊게 연구하였고 최고의 실시간 전략 게임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결국 게임이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울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인가에 집중하게 된 빌 로퍼는 기술이 아니라 게임의 형태에서 일대 혁신을 불러 일으킨다.


절묘한 밸런싱으로 무장한 상성관계


스타크래프트의 가장 큰 차별화는 유저가 선택할 수 있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세 종족이등장한다는 것이었다. 기존 게임은 워크래프트의  휴먼과 오크처럼 대립하는 두개의 종족으로 구성되었다. 그나마 두 개의 종족이 갖추고 있는 유닛들은 그래픽만 다를 뿐이지 결국 기능과 용도과 똑 같았다. 그래서 워크래프트를 하게 될경우 휴먼으로 게임을 진행하든 오크로 게임을 진행하든 다른 재미를 느낄 수 가 없었다. 


애초에 게임 구성이 같고 겉모습만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는 테란,저그,프로토스 세 개의 종족들의 개성이 뚜렷했고 같은 기능과 용도를 가진 유닛이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이건 매우 혁신 적인 방식으로써 블리자드는 기존 관념대로라면 하나의 게임에 세 개의 게임을 집어넣은 것과 같은 노력을 기울인것이다. 그런데 이 세개의 종족이 각기 다르면 이른바 밸런싱 잡기가 힘들다. 이것이 사실 블리자드에게 가장 힘든 도전이었다. 원래 스타크래프트는 1년 매상의 50%을 차지한다는 연말상전에 발매하려 했다. 하지만 블리자드는 게임의 완벽한 밸런스를 찾기 위해서 4개월이나 발매를 연기하는 결정을 내린다.


완벽한 밸런스는 이른바 종족과 유닛의 상성관계를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일이다. 상성은 가위,바위,보 놀이처럼 서로 물고 물리면서 강점과 약점이 드러나는 관계를 말한다. 스타크래프트에서 테란은 프로토스에게 약하지만 저그에게 강하다. 프로토스는 저그에게 약하지만 테란에게 강하다. 저그는 프로토스에게 강하지만 테란에게 약하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미묘한 차이일 뿐이고 전략을 통해서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는 요소가 있다. 왜냐하면 스타크래프트의 수많은 유닛끼리 물고 물리는 복잡한 관계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테란의 대표적인 유닛인 마린은 저그의 대표적인 유닛인 저글링에게 강점이 있다. 


그런데 테란은 또 저그의 유닛인 럴커에게는 약점이 있다. 빌로퍼에 의하여 이런방식으로 밸런싱을 생각하게 된 것은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등장인물이 한가지씩 약점이 있다는 것에 착안을 하였다고 말한다. 스타크래프트의 유닛은 크게 보면 공격력, 방어력, 기동력 이 세가지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소설속의 주인공적처럼 공격력과 방어력이 강하면 기동력이 약하고 방어력과 기동력이 강하면 정작 공격력이 약하는 등의 한가지씩 약점을 가지고 있다. 각 종족별로 존재하는 수십개의 유닛이 거대한 피라미드를 구성하며 이들 유닛은 절대강자도 없고 절대 약자도 없는 세상이 스타크래프트 안에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서 실시간 전략 게임의 전투 방식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기존의 실시간 전략 게임은 빠른 시간안에 자원을 수집한다음에 강력한 성능을 가진 유닛을 빨리 뽑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결국 실시간 전략 게임에는 전략보다는 물량싸움이라고 보는게 옳았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에서는 자원을 수집하는 속도보다는 어떤 유닛을 선택해서 뽑아내느냐가 다른 실시간 전략게임보다 강화되었다. 많은 돈을 들여서 나름대로 강력한 성능의 유닛을 뽑은 다음에 총공세를 펼치러 갔더니 정작 상대가 천적관계로 이루어진 유닛들로 부대를 구성해 놓았다면 아무리 물량이 많아도 결국 전멸을 당할 수 밖에 없다. 


즉 기존 실시간 전략 게임은 상대방을 의식할 필요없이 재빠르게 자원을 수집하고 건설을 한다음에 유닛들을 쭉쭉 뽑아내는게 중요했다면 스타크래프트는 상대의 움직임을 정찰해서 그들의 유닛을 보고서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런의미에서 스타크래프트는 진정한 실시간 전략 게임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물량공세가 아니라 유닛의 구성에 의해서 승패가 갈라지는 스타크래프트는 전세가 불리할 때 대역전의 발판이 되었기 때문에 게임을 하는 사람이나 지켜보는 사람에게 극적인 요소를 불어 넣어줬다.


 그런데 게임은 수학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다. 심즈의 윌라이트는 게임이란 결국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수학으로 구현하는 것이라고 강조할정도로 수학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캐릭터의 이동이나 전투 같은 모든 행위가 수치의 계산에 따라서 움직이다. 전투의 경우 유저의 공격력과 적의 방어력을 비교해서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는 데미지 수치가 결정된다. 이를테면 스타크래프트에서 마린이 저글링과 맞붙을 때 공격과 방어에 의한 데미지 수치는 모두 수학공식에 따라서 움직인다. 


SCV가 한번에 채취하는 미네랄의 양 8이라는 숫자도 사실 엄청난 테스트와 고민끝에 나온 숫자이다. 건물을 건설할 때 들어가는 비용역시 게임 밸런싱의 중요한 축이다. 스타크래프트의 환상적인 밸런싱이라는 것도 결국 수치를 얼마만큼 잘 조정하였느냐이다. 스타크래프트의 이 절묘한 밸런싱은 결국 수학으로부터 나온다. 오늘날 스타크래프트가 완벽한 밸런싱을 자랑하는건 빌로퍼가 그렇게 강조하는 수학능력 덕분이라고 볼수 있다. 그래서 빌 로퍼는  훌륭한 게임 기획자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강조하는 것이 첫째도 수학, 둘째도 수학, 셋째도 수학이다. 실용음악과에서 성악을 전공한 빌 로퍼에게 수학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 그의 부모님이 게임이 수학에 좋으니 권장을 할정로 빌로퍼에게 


수학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공업디자인을 공부한 마리오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 역시 공부는 별로 못했지만 유일하게 좋아하고 잘했던 과목이 수학이었다. 사실 대학도 못갈뻔했지만 수학성적이 좋아서 대학에 갔다고 할정도로 그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과목이 수학이다. 블랙앤 화이트의 피터 몰리뉴는 학교를 무척 싫어하는 학생이었는데 오직 수학하나만을 좋아했고 이는 그가 게임 프로그래머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된다. 3D 게임 엔진 자체가 벡터와 행렬 같은 수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최초로 3D 게임 엔진을 창안한 존카멕인 만큼 역시 수학의 천재라고 봐도 무방하다. 


울티마의 리차드 게리엇 역시 아버지가 과학자였던 만큼 수학실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하니 게임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수학은 절대적인 필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수학능력은 단순히 게임 크리에이터에게만 필요한 능력이 아니다. 어쩌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일지도 모른다. 디지털이란 0과 1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세상이다. 컴퓨터의 모든 자료는 결국 0과 1로 이루어져 있다.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네오가 세상의 본질을 깨닫는 순간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녹색의 문자들로 보이듯이 실제로 컴퓨터에서 보여지는 모든 것은 숫자들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디지털 리더들은 특히 수학에 강하다. 빌게이츠의 경우 하버드 대학교에서 수학과를 다녔고 마이크로소프트 직원을 뽑을때는 특히 수학과를 우대한다. 스티브 잡스 역시 물리학과출신으로 수학과 밀접한 과목을 공부하였다. 구글도 역시 수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구글의 검색엔진 자체가 행렬,벡터,통계와 같은 모든 수학들이 총체적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검색엔진의 공식자체가 하나의 수학공식이라고 무방할정도이다.


 그래서 구글에서 사람을 뽑을때는 수학능력을 특히 중요하게 여긴다. 필기시험에서는 각종 수학문제를 내고 면담을 할때는 좋아하는 수학공식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또한 구글 사무실 앞에는 큰 전단지로 수학문제들이 적혀있다. 그 수학문제를 푸는 사람에게는 취직의 기회도 제공할정도로 디지털 시대에 사람의 실력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중에 하나다. 


<다음에 하편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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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블리자드2013.12.06 07:33



게임 크리에이터가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은 대략 세가지이다. 하나는 실제 일상생활에서 재미있었던 경험을 게임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어린 시절 동네 야산을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이때 산을 달리던 상쾌함은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라는 횡스크롤 액션 게임으로 개발되었고 1억 7천만개라는 판매량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또한 미야모토 시게루는 산속을 돌아다니면서 동굴안을 탐험하는 재미에 푹빠졌는데 이때 경험을 살려서 액션 어드벤쳐 게임 젤다의 전설을 개발하여 5천만장이라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미야모토 시게루는 재미있었던 어린시절의 추억을 게임으로 부활시킨 슈퍼마리오와 젤다의 전설 이 두 작품으로 게임계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꾸었고 그 덕분에 게임의 신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두번째로는 책이나 영화같은 매체로부터 영감을 얻는 것이다. 또 다른 게임의 명인 윌 라이트는 MIT 대학의 전자공학과 교수인 제이 포레스터의 도시공학이라는 책을 읽고서 게임의 아이디어를 얻는다. 제이 포레스터는  인구, 출생률, 부동산, 범죄, 공해 같은 20여 개의 변수를 활용하여 하나의 도시를 가상으로 시뮬레이션하려고 하였다. 이에 윌 라이트는 제이 포레스터가 50년대에 시도했던 도시 시뮬레이션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게임의 재미와 결합시킨 심시티를 개발하였다. 도시를 개발하는 게임인 심시티는 1989년에 발매되어서 1년동안만 3백만장이 넘게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세상을 깜짝놀라게 했다. 


당시로써는 이례적으로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지에도 심시티가 대서특필되었고 어린이들에게 게임은 교육상 나쁘다는 선입관을 한번에 잠재우기도 하였다. 그의 후속작인 심즈 역시 책을 읽다가 얻은 아이디어다. 크리스토퍼 알렉산더가 쓴 패턴랭귀지는 건축의 형태에따라서 인간의 삶이 어떠한 영향을 받는지 패턴에 따라서 분류한 것이다. 윌라이트는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이론을 받아들여서 집안의 건축형태나 물건배치에 따라서 캐릭터의 삶이 달라지는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 심즈를 개발한다. 심즈 시리즈는 발매후에 PC 게임과 관련된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다 여섯달 연속 차트 1위라는 신기원을 이룩하더니 연간매출 2천억원에 총판매량 7천만장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하여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하였다. 


세번째로 게임크리에이터가 아이디어를 얻는 발상법은 게임에 감명받은 후 거기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추가해서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다.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시리즈 자체가 듄2의 영향으로 시작된 것이 좋은 예이다. 그런데 콘도르의 창업자 데이비드 브레빅도 롤플레잉 게임에 빠져있는 열혈 마니아였다. 보통의 게임 크리에이터처럼  던전앤 드래곤을 즐기기는 마찬가지였고 그가 특히 즐기던 게임은 모리아(Moria)나 네트핵(NetHack) 같은 텍스트 롤플레잉이었다. 


보통 게임에서 유저가 적을 공격하면 그 모습이 그래픽으로 다 보여준다. 하지만 텍스트 롤플레잉 게임은 그것을 글로 표현한다. 명령자체가 공격이라고 하면 A(Attack)를 누르는데 화면에는 ‘적을 공격중입니다.’라고 텍스트로 화면에 보여준다. 그리고 그래픽게임에서는 적이 죽으면 화면에 그림으로 장렬한 최후를 보여주지만 텍스트게임에서는 K(Kill)이라는 표시를 해줄뿐이다. 이러한 형태의 게임은 나중에 쥬라기 공원 같은 텍스트 머드 게임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단순히 글로 표현되는 게임이지만 소설을 읽는 것처럼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칠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텍스트 기반의 롤플레잉 게임을 즐겼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모리아나 같은 텍스트 롤플레잉 게임에 90년대의 화려한 그래픽을 결합시킨 게임을 개발하고자 하였다. 


그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집에서 샤워를 하다가 머리속에 순간 떠올렸는데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직원들을 상대로 흥분한 목소리로 디아블로를 외칠정도로 그는 이 아이디어를 좋아했다. 디아블로는 스페이언어로 악마를 뜻하는데 데이비드 브레빅은 원래 그 뜻을 몰랐다. 그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산맥중에 디아블로가 있는데 그는 이 아름다운 산을 특히 좋아했다. 그래서 단순히 디아블로라는 어감을 좋아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중에 디아블로가 스페인어로 악마라는 뜻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이 단어가 게임과 참 잘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롤플레잉 게임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게임 이름에 디아블로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원래는 나중에 사업문제나 라이센스를 위해서 게임이름을 바꾸고 신조어를 만들어 내려고 했지만 자기가 살던 동네의 산 이름인 디아블로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디아블로는 텍스트 머드게임의 영향을 받은 만큼 게임방식도 원래는 장기나 바둑처럼 한번씩 서로 돌아가면서 행동을 선택하는 턴방식이었다. 그런데 블리자드를 대표로해서 콘도르에 파견된 빌로퍼의 생각으로는 턴방식의 게임이 아무래도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원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하면 당연하게 턴방식을 떠올리던 시기가 있었다. 삼국지와 문명 그리고 마이트앤매직 등 수많은  인기 전략 시뮬레인션 게임들이 바로 턴을 기반으로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판도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 등장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턴을 기반으로 한 게임은 시간을 두고 심사숙고하는 매력이 있지만 대신에 진행이 매우 느리다. 하지만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게임은 기다릴 필요없이 유저는 끊임없이 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 전략이라는 기본틀안에 박진감과 스피드한 전개가 동시에 충족시켜주니 많은 유저들이 정적인 느낌의 턴방식보다는 실시간 전략게임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를 재촉한 주역중에 한명이 빌로퍼였던 만큼 콘도르가 개발하는 게임이 턴방식이라는 말에 그의 생각은 부정적이었다. 그래서 빌로퍼는 콘도르에게 턴방식의 게임을 실시간 전략 게임처럼 포인트앤 클릭 방식으로 바꾸어서 박진감과 액션이 강조는 게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다. 또한 95년도는 윈도우가 출시 예정이었다. 그래서 빌 로퍼는 미래를 생각하는 의미에서 도스보다는 윈도우 플랫폼에 맞는 게임으로 개발하는 것이 좋다고 보았다. 

 

처음 빌로퍼가 자신의 의견을 전하자 데이비드 브레빅은 윈도우로 게임을 개발하기는 하겠지만 실시간 방식으로 롤플레잉게임을 개발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롤플레잉 게임하면 턴방식이 정통성을 가지고 있었고 데이비드 브레빅은 게임속에 전략성을 강조하고 싶었다. 빌 로퍼의 요구대로 게임을 바꾸면 전략성이 없어지고 액션게임이 되기 쉽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가 영감을 얻은 네트핵이나 모리아와 같은 게임 자체가 턴방식이었다. 마침 등장한 X-COM이라는 턴방식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보면서 전략과 롤플레잉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게임을 개발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빌로퍼는 문서상에 존재하는 게임 기획안은 단지 문서일뿐이고 실제로 구현해서 직접눈으로 확인하기전까지는 함부로 판단하거나 비난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요구하는 사항이 마음에 들지 않고 허무맹랑해도 무조건 거절하기 보다는 한번 게임을 고쳐서 수정한다음에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블리자드의 의견이 옳은지 틀린지를 결정하자고 하였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써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결국 빌로퍼의 의견대로 직접 턴방식의 게임인 디아블로를 실시간 으로 진행되는 포인트 앤 클릭 방식의 게임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막상 테스트를 해보니 회사내의 모든 사람들은 새롭게 바뀐 게임이 훨씬더 재미있고 박진감이 넘쳤다. 결국 데이비드 브레빅도 자신의 고집을 꺽을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빌로퍼는 이날 이후 콘도르의 게임이 제대로 진행되는지를 살펴보고 두 회사간에 의견을 조정자하는 가교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다음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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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블리자드2013.12.05 07:00




워크래프트의 성공 이후 블리자드는 후속편으로 워크래프트 같은 전략시뮬레이션 게임과는 완전히 다른 장르의 게임을 만들기로 결정한다. 워크래프트2가 히트를 해서 대규모의 자금이 들어오게 되자 알렌 애드햄은 회사에 새로운 바람과 혁신으로 불러일으키고 싶었다. 그래서 블리자드의 창업자인 알렌 애드햄인 평소 잘 알고 있던 게임 회사인 콘도르의 사장 데이비드 브레빅에게 전화를 걸어서 회사를 인수하고 싶다고 말한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블리자드 창업자인 알렌애드햄처럼 어린시절부터 게임을 좋아했고 애플2를 통해서 게임 프로그래밍의 세계에 빠졌다.  그는 고등학교때부터 자신만의 게임회사를 차리고 싶었는데 대학을 졸업한 후에 그는 게임회사를 창업하기로 결심 한다. 마침  동네 친구중에 컴퓨터 그래픽회사에서 아티스트로 일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은 에릭쉐퍼와 맥스 쉐퍼로 둘은 형제 사이었는데 게임을 좋아했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그들에게 함께 회사를 차리자고 제안을 했고 쉐퍼형제들도 기꺼이 회사를 그만두고 함께 콘도르를 창업한다. 콘도르는 창업한 이후 그들의 첫번째 계약은 아타리에서 발매한 휴대용 게임기인 아타리 링스(Atari Lynx)용으로 풋볼 게임을 개발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자금문제로 인해서 데이비드 브레빅은 잠시 회사를 나와서 1991년 창업한 신생회사 이구아나 엔터테인먼트라는 게임 업체에서 프로그래밍팀을 이끌어야 했다.


그런데 1993년 이구아나 엔터테인먼트는 캘리포니아에서 미국의 중부인 텍사스 오스틴으로 이사를 갔고 샌프란시스코를 떠날 생각이 없었던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쉐퍼형제들과 콘도르에 다시 합류한다. 쉐퍼형제의 경우 그래픽을 담당했지만 데이비드 브레빅과는 다르게 게임계에서는 별다른 경력이 없었다. 사실 텍사스로 이사간 이구아나 엔터테인먼트가 튜록64나 모탈컴뱃으로 유명한 어클레임 엔터테인먼트라는 게임회사로 인수되지만 93년도의 이구아나 엔터테인먼트는 무명이었고 결국 데이비드 브레빅이 가진 경력사항도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다. 그는 이곳저곳을 알아보면서 외주하청이라도 맡으려고 했지만 경력이 전무한 그들에게 아무도 일을 맡기지 않았다. 면접을 보러온 지원자가 초라한 회사건물에 실망하고 돌아갈 정도로 그들은 그렇게 힘들게 회사를 꾸려나갔다.


그들이 가장 힘들었던 때는 1994년 1월이었다.  현재 CES는 매년 1년에 한번씩 열리지만 94년의 경우 CES는  라스베가스와 시카고에서 겨울과 여름에 두 번 진행됐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겨울에 CES가 열리는 라스베가스에 가서 자신들이 개발하는 게임에 투자를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게임 회사도 아무런 경력이 없는 데이비드 브레빅의 말에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애초에 게임회사의 관계자들이 만나주려 하지도 않았다. 아무도 그들의 아이디어에 귀기울이지 않았던 그때가 데이비드 브레빅과 쉐퍼형제에게 가장 어렵고 괴로웠던 순간이라고 말한다.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온 데이비드 브레빅에게 때마침 선소프트(SUNSOFT)로부터 반가운 연락이 온다. 당시 미국에서 인기 만화였던 에어로스미스(Aerosmith)와 스쿠비 두 (Scooby Doo) 그리고 저스티스 리그 테스크 포스(Justice League Task Force) 이 셋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게임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였다. 당연히 콘도르는 저스티스 리그를 선택했다. 저스티스 리그는 배트맨, 슈퍼맨, 원더우먼등 우리에게 친숙한 슈퍼히어로 캐릭터들이 총집합 해놓은 만화였고 인기도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콘도로의 의견을 받아들인 선소프트는 세가의 게임기인 메가 드라이브용으로 스트리트파이터와 같은 격투게임을 개발하는 조건으로 외주계약을 맺는다.   


선소프트의 하청을 맡은 콘도르는 자신들이 개발중이었던 저스티스 리그를 여름에 열리는 CES에서 공개하기로 결정한다. 선 소프트가 마련한 부스에서 게임 저스티스 리그를 출품한 데이비드 브레빅은 같은 부스에서 전시중인  게임하나를 보고서 깜짝 놀란다.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회사가 데이비드 브레빅이 만든 저스티스 리그와 똑 같은 게임을 개발하고서 전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즉시 선 소프트 관계자를 통해서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 묻게 되었다. 알고 봤더니 선소프트에서는 만화 저스트리그의 판권을 구입한 후에 블리자드에는 슈퍼 패미콤용으로 게임을 제작하도록 하고 콘도르에게는 메가드라이브용 게임을 만들도록 계약한 것이었다.


 당시 미국 게임계는 슈퍼패미콤과 메가드라이브가 양대산맥을 이루면서 경쟁을 했기 때문에 당시 북미의 많은 게임 개발사들은 두 개의 가정용 게임기를 동시에 지원하는 멀티가 대세였다. 그런데 데이비드 브레빅이 더 놀랬던 것은 두 회사가 이전에 한번도 만난적이 없고 그렇다고 개발인원중에 교류를 하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두 회사의 게임이 너무나 똑같다는 것이다. 그는 이때 마치 쌍둥이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슈퍼패미콤용으로 저스티스 리그를 만든 블리자드의 관계자를 만나고 싶었다. 마침 선 소프트의 관계자를 통해서 블리자드의 사장인 알렌애드햄을 소개받을 수 있었다. 


알렌 애드햄도  데이비드 브레빅의 저스티스 리그를 보고 깜짝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알렌 애드햄은 서로 본적도 없는 두 회사가 마치 같은 회사에서 게임을 만든 듯이 똑 같은 게임을 개발해냈다는 사실에 뭔가 통했다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러한 동질감으로 처음 만난 둘은 실제로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서로가 게임을 보는 안목이나 개발철학들이 비슷함을 알게 되었고 더욱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알렌 애드햄은 데이비드 브레빅에게 그들이 개발중인 비장의 무기인 워크래프트를 보여주고 싶었다. 따로 마련된 블리자드의 부스로 도착한 순간 데이비드 브레빅은 워크래프트를 보고는 감탄을 하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환타지의 세상이 게임으로 완벽하게 구현된 모습이 너무나 반가웠다. 


전시회가 끝난후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온 데이비드 브레빅은 차기 게임으로 무엇을 개발할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94년에는 16비트를 대표하는 슈퍼패미콤과 메가드라이브의 시대가 서서히 종말을 고하고 32비트의 시대가 예견되던 때이다. 95년도에 플레이스테이션과 세가세턴이 발매되기전에 이미 32비트용으로 3DO가 등장했다. 콘도르는 3DO의 후속버전인 M2 게임기에 맞춰서 풋볼게임을 개발하려 했다. 다행히 3DO의 개발사로부터 개발비용을 투자 받았다. 하지만 3DO의 판매실적이 매우 저조했고 그래서 3DO의 후속편인 M2의 발매도 불확실해졌다. 그래서 데이비드 브레빅은 가정용게임기에 주력하던 기존의 전략을 바꾸고 새롭게 PC 기반의 롤플레잉 게임을 구상한다. 


그는 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열군데 정도의 회사를 찾아가서 투자를 제안했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다. 아예 만나주지도 않는 업체들이 수두룩했다. PC 게임 개발 경력이 없는 그들을 믿지 못했고 데이비드 브레빅은 또 다시 좌절의 시기를 보낸다. 그런데 콘도르의 창업자중에 하나인 맥스 쉐퍼는 블리자드가 CES에서 전시했던 실시간 전략 게임 워크래프트에 특히 감명을 받았다. 게임광이었던 그는 하루라도 빨리 게임을 하고 싶은 열망에 빠져있었다. 그래서 맥스 쉐퍼는 블리자드사장인 알렌애드햄과 안면을 튼 데이비드 브레빅에게 제발 워크래프트를 구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멕스 쉐퍼의 성화에 못 이겨 데이비드 브레빅은 결국 블리자드의 알렌 애드햄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이 전화 한통이 데이비드 브레빅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워 크래프트의 베타테스터가 필요하지 않느냐고 묻는 데이비드 브레빅에게 알렌 애드햄은 반가운 마음으로 워크래프트를 즉시 CD로 보내주겠노라고 화답한다. 둘의 통화는 자연스럽게 회사의 근황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가 전환되었다. 데이비드브레빅은 요즘 만들고 있는 롤플레잉 게임이 투자를 받지 못해서 답답하다는것과 최근 금전적으로 어려운 회사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마침 알렌 애드햄은 모회사인 Davidson & Associates로부터 게임 사업부가 규모면에서 더욱 확장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블리자드 이름으로 유통할 만한 게임을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고 이때 데이비드 브레빅의 전화를 받은 것이었다. 


알렌 애드햄은 콘도르가 개발중인 게임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데이비드 브레빅은 PC 게임기반의 턴베이스 롤플레잉을 만들고 있다고 답하였다. 이에 흥미를 느낀 알렌 애드햄은 데이비드 브레빅을 만나서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한다. 원래부터 롤플레잉 게임 마니아였던 알렌 애드햄은 꼭 한번 롤플레잉 게임을 개발하고 싶었다. 그래서 데이비드 브레빅을 만나자 구체적인 게임 개발계획서나 스케쥴을 꼼꼼히 살펴보지도 않고  콘도르가 만들고 있는 롤플레잉 게임의 유통을 맡는 조건으로 개발자금 30만달러를 지원해주겠다고 말한다. 사실 이정도의 금액을 투자할때는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이런 파격적인 계약을 맺은 것은 94년 CES에서의 특별한 인연덕분이었다. 이미 둘은 게임에 대한 안목과 비전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데이비드 브레빅 역시 반가운 마음으로 판권계약을 맺게 된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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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블리자드2013.03.20 08:33


블지자드에서는 모든 사람이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해냅니다. 나는 음악과 사운드로 일을 시작했지만 결국 나는 게임캐릭터의 목소리를 연기하게 됩니다. 그후 게임 프로듀서가 되었고 게임을 디자인 하였으며 언론홍보와 관련된 일을 했습니다. 나는 마케팅팀에서 일을 하고 스토리를 쓰기도 하였죠.



<블리자드 이야기 4>  빌로퍼 블리자드에 합류하다.






빌 로퍼가 회사를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사실 블리자드는 제대로 된 임금 체계 자체가 없었다. 정해진 임금보다는 회사에 돈이 들어오면 나눠주는 정도였다. 그나마 그가 들어오기 전만 해도 임금을 제대로 못줄 정도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휴가도 없이 연일 강행군을 펼쳤다. 하지만 1994년 3월 블리자드가 Davidson & Associates 인수 합병되면서 자금에 숨통이 트였다. 


그렇다고 직원들에게 넉넉하게 월급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블리자드라는 이름으로 직접 유통하는 게임을 기획하고 있었던 관계로 게임의 제작을 위해서 돈을 아끼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악을 만들어주는 대신 받는 급여로는 도저히 생계가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빌로퍼는 퇴근 후  킨코 데스크탑 퍼블리싱(Kinko's desktop publishing)에서 워드 프로세서로 문서를 만들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밤늦은 시간까지 일을 했던 관계로 정작 블리자드의 사무실에 출근하면 빌 로퍼는 졸기 일쑤였다. 그래서 일하는 시간보다 잠자는 시간이 더 많은 정도였다. 회사는 자기 일만 제대로 해놓으면 업무시간에 게임을 하든 운동을 하든 자유로운 분위기였기 때문에 아무도 빌 로퍼를 질책하지 않았다. 오히려 빌 로퍼는 그나마 회사에서 깨어있는 시간에는 일보다는 오히려 블리자드가 만든 로스트 바이킹이나 락앤롤 레이싱 같은 게임에 열광하면서 정말 자신이 멋진 회사에 취직했다고 뿌듯해 했다. 


그런데 회사에서 빌 로퍼에게 유독 가장 따스하게 대해준 사람은 역시 사장이었던 알랜 애드햄이었다. 영웅을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 같은 작품을 보면 반드시 존재하는 이야기 구조가 하나 있다. 바로 뛰어난 스승의 존재이다. 스타워즈에서 스카이워커를 제다이 기사로 인도하는 오비완이나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의 정신적 지주인 간달프 처럼 주인공을 이끌어주는 조력자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도 허준의 스승인 유의태나 대장금의 한상궁 그리고 주몽의 해모수처럼 주인공에게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중요한 인생의 지침이 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바로 알랜 애드햄 사장이야 말로 오늘날 빌 로퍼가 존재하게 만들어준 은인과 같은 존재이다.  경영과 회계 그리고 외부업체관리에서부터 프로그래밍과 기획 같은 모든걸 책임졌던 알렌 애드햄 사장은 직원들의 능력을 극대화하는데도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알렌 애드햄은 음악을 담당하던 빌 로퍼였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를 옆에 두고서 게임개발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다. 게임을 기획하는 방법에서부터 팀을 관리하고 사람을 다루는 법 그리고 게임 개발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는 알렌 애드햄이야 말로 오늘날 블리자드를 있게 한 주역이며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명성의 대부분은 알렌 애드햄에 돌아가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그런데 원래 사람들이 있는 곳 모두가 그렇지만 사실 게임 개발팀에는 엄청난 텃세 같은 것이 있다. 마리오와 젤다의 전설 같은 작품을 통하여 게임계에서 신이라고 까지 불리우는 미야모토 시게루도  게임계에 와서는 개발팀의 텃세로 괴로워했던 적이 있다.  원래 미야모토 시게루는 게임 그래픽에서부터 포장 디자인 그리고 글씨체 디자인등 각종 잡무와 허드렛일에 시달리고 있었을 때 마침 닌텐도는 게임사업부의 실적이 신통치 않았고 사장은 회사 직원들을 상대로 게임아이디어 공모전을 열었다.


 이때 미야모토 시게루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었고 그는 게임 기획자로써 그가 처음 게임 기획을 맡았을 때만해도 개발팀에서는 프로그래머들이 왕이었다. 닌텐도에 그래픽 담당자로 취직을 했다. 그가 회사를 다녔던 초기만 해도 프로그래머가 개발팀에서는 왕과도 같았다. 게임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 프로그래머의 코딩능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야모토 시게루는 게임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를 회사 사장으로부터 인정받아서 게임 개발을 진두지휘해보라는 권한을 위임받는다. 


하지만 정작 프로그래머들은 미야모토 시게루에게 시큰둥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기술에 대해서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업무를 내리는것에 불만이 많았고 그래서 미야모토 시게루의 의견을 묵살하기 일쑤였다. 결국 미야모토 시게루는 직접 컴퓨터 프로그래밍 공부를 열심히해서 프로그래머와 기술에 대한 논쟁을 하고 겨우 설득을 해서 일을 진행시킬 수 있었다. 이때 만든 게임이 동키콩으로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덕분에 부도위기의 닌텐도가 살아 날 수 있었다. 동키콩의 히트 이후에 미야모토 시게루는 회사에서 승진을 했고 그 다음부터는 그의 지시에 차마 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  게임 개발팀에서 인정받으려면 최소한 게임 개발 참여 경험이 있어야 인정을 받고 의견도 존중받을 수 있지 그렇지 않은 초보자는 쉽게 무시당하는게 게임계의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입 개발자들은 초기의 무시와 텃세를 제대로 이겨내야만 게임계에서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빌로퍼는 게임 개발경험도 없을 뿐더러 단지 계약직사원으로써 음악 담당자에 불과했다. 물론 회사로부터 게임개발에 대한 어떠한 직위나 직책 같은 권한을 인정받지도 못했다. 하지만 알렌 애드햄의 배려덕분에 비교적 쉽게 게임 개발팀에 안착할 수 있었다. 게임 개발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쉽게 무시 당했을 텐데 다행히 알렌 애드햄이 게임 개발 전반에 대한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팀원들의 텃세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빌로퍼는 분명 블랙 쓰론이라는 횡스크롤 액션 게임의 음악작업을 위해서 고용된 사람이었지만 그의 관심을 끌던 게임은 정작 다른 게임이었다. 워크래프트는 블리자드가 독자적인 개발을 하고 직접 유통을 하는 첫번째 게임으로 회사 전체가 전력을 쏟고 있던 게임이었다. 


워크래프트는 환타지를 배경으로 만들던 게임이었는데 이는 빌로퍼가 예전부터 좋아했던 반지의 제왕과 던전앤 드래곤의 세계관을 계승한 게임이었다. 그래서 빌로퍼는 워크래프트팀에 다가가 게임에 대한 의견과 각종 아이디어를 하나씩 하나씩 쏟아내기 시작했다. 야간 아르바이트 관계로 정작 블리자드의 사무실에서 항상 피곤한 몸으로 꾸벅꾸벅 졸았던 그였지만 회의는 절대 빠지지 않고 반짝이는 눈으로 팀원들의 의견을 듣고 또한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밝혔다. 처음 워크래프트팀에서는 게임 개발 초보자가 이러쿵 저렁쿵 하는 빌 로퍼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들이미는 그의 아이디어나 의견들이 신선하고 여러 가지로 참고할 만한 구석이 많았고 팀원들도 서서히 빌로퍼의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특히 빌 로퍼는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이야기하는데 있어서는 탁월한 면이 있었다. 게임 개발과정에서는 다양한 의견을 주고 받는데 사실 실제 게임에서는 채택되는 의견보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문제는 의견을 성심성의껏 냈는데 개발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감정을 상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팀의 내분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런데 빌 로퍼는 팀내에 여러 의견이 있으면 뛰어난 조정자 역할을 할 정도였다. 또한 대학에서 성악을 배운 만큼 그는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그는 팀원들과 경영진과의 의견충돌이 있으면 앞에 나서서 교통정리를 할 정도였다. 이 덕분에 개발팀원들은 경영진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할 때는 빌로퍼를 통해서 전달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러한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고 팀원들의 신망을 얻기 시작했다. 그가 팀원들과 화합하면서 리더로 떠오르는 모습에서 놀라운점은 그의 나이가 30살로써 회사직원들의 평균나이가 26살이었던 블리자드에서 연장자 측에 끼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회사의 주요임원은 물론이거니와 사장이자 스승인 알렌 애드햄마저도 빌 로퍼보다 나이가 어렸다. 게다가 빌로퍼가 다닌 CSU 대학은 우리나라로 치면 지방대정도의 수준이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대학이 크게 수준에 따라서 UC(University of California), CSU(California State University), UCC (California Community College System) 삼단계로 나뉜다. UC는 학업이 최고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들며 우리로 치면 수도권 대학 정도로 야구로 말하면 메이저리그라고 할 수 있다. CSU는 UC보다 한다계낮은 트리플A정도의 수준으로 지방대정도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UCC는 2년제 전문대이다. 그런데 블리자드의 창업자들과 직원대부분은 UC에서도 최고라고 할수 있는 UCLA출신이었다. 그들은 학교에 대한 자부심도 엄청 대단했는데 그들의 히트작인 워크래프트2에서 UCLA를 입력하면 "Go Bruins!" 라는 문구가 화면에 나타난다. Bruin은 불곰을 뜻하는데 이는 UCLA를 상징하는 마스코트이다.  이에 비해서 빌로퍼는 엄밀히 말해서 지방대학교 출신으로써 그나마 1년도 제대로 못 다니고 학교를 중퇴했다. 


회사를 들어갔는데 직원 대다수가 같은 명문대생 동창위주로 친밀한 관계이고 기술능력도 뛰어난데 나이마저도 어린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사실 그 조직안에서 적응하기가 힘들다. 회사내에는 이미 핵심적인 라인이 있는 만큼 쉽게 소외받기쉽고 주변부에 머물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빌 로퍼는 게임 개발 경력도 전무한 상태였고 그나마 음악을 담당하는 계약지원이었다. 심리적으로 위축받을 만도 함에도 불구하고 불구하고 그는 타고난 넉살과 낙천적인 성겨으로 회사의 분위기에 쉽게 적응해내더니 급기야  팀원들에게 인정받아 리더가 되었고 어느덧 프로젝트 전체를 총괄하는  프로듀서가 되고 나중에는 디렉터와 부사장으로까지 승진하는 것은 정말 대단한 성공이라고 말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멀티플레이어 빌로퍼


그가 블리자드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특유의 중저음의 목소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성악을 전공한 빌로퍼는 대학 교내 음악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을 정도의 뛰어난 가창실력만큼이나 목소리도 매력적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필요하게 된 계기는 블리자드가 워크래프트의 홍보를 위해서 미국 최대의 전자제품 전시회인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 참가를 결정하면서 부터다. 현재는 E3가 최대규모의  게임전시회를 자랑하고 있지만 94년 당시만 해도 CES가 게임을 전시하기에 가장 좋았던 무대였다.


 블리자드는 관람객들의 눈요기를 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당시로써는 화려한 그래픽으로 무장한 데모버전을 만들기로 하였다. 원래는 게임의 동영상 화면에 자막으로 워크래프트의 스토리를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를 본 개발팀의 관계자들은 너무나 밋밋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때 자막으로만 게임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를 넣어 들려 주는것이 어떠냐는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특히 미국의 경우 사람들은 자막을 잃지 않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나레이터의 목소리를 넣자는 의견이 채택되었다. 이러한 기회를 놓칠 빌 로퍼가 아니었다. 그는 이 소식을 듣자마다 워크래프트팀에  게임을 설명하는 나레이터로 지원을 했다. 그리고 빌로퍼는 오디션을 통해서 당당히 합격을 한다. 


그런데 막상 녹음실에 가자 크게 당황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원래 워크래프트팀에는 시나리오를 담당하는 사람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대본이라고 해서 가져온 것이 전단지 달랑 한장이었다. 또한 대본이라기 보다는 그림에 대한 설명이었다. 여기에 성이 하나있는데 그 옆으로 오크와 인간이 서로 대치를 하고 있다는 식의 묘사만 들어가 있을 뿐이었다. 결국 빌 로퍼는 스스로 시나리오를 창작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겨우 완성된 워크래프트의 데모판은 확실히 눈에 띄었고 팀의 전체 반응 역시 최고였다. 하지만 정작 CES에서의 초기 반응은 좋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지만 반응자체가 없었다. 왜냐하면 CES는 전세계의 수 백개 회사들이 참여를 하기 때문에 주로 메이저 업체들이 주목을 받기 마련이다. 블리자드처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중소규모의 회사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가 힘들다. 그리고 블리자드가 마련한 부스도 고작해야 작은 테이블 위에 컴퓨터 한대 덩그러니 놓여져서 슬라이드를 통해서 게임영상이 시연되고 있었을 뿐이었다. 무명회사가 마련한 이 초라한 부스에 사람들이 눈길을 보낼리 없었다.


 이때 타고난 넉살의 소유자인 빌 로퍼의 진가가 다시 한번 발휘됐다. 그는 전시회장을 돌아다니는 관람객을 불러 세워서는 블리자드가 전시하고 있었던 게임 워크래프트를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자들 역시 블리자드라는 이름을 처음들었고 그런 무명 개발사에게 무관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빌로퍼는 컴퓨터 게임 관련 기자라도 보게 되면 친절하게 블리자드의 부스로 불러들여서 워크래프트를 홍보하고 잡지에 관련 기사를 써달라고 애원하기 까지 하였다. 


경영진들은 이때의 맹활약이 마음에 들었던지 94년 CES 썸머가 끝난 직후에 경영진은 8월 1일자로 블리자드의 17번째 정식 직원으로 발령을 낸다. 이는 빌로퍼에게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고 밤늦도록 투잡스 생활을 청산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블리자드 이야기는 다음에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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