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없음2015.08.18 07:00







아버지의 소원대로 73년에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한 빌 게이츠는 처음에는 열심히 학업생활에 충실하지만 이내 곧 캠퍼스 생활에 따분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는 기숙사에 친구들을 불러내서 함께 포커를 치며 밤을 세우기 일수였다. 타고난 승부사였던 빌게이츠 답게 포커게임의 판돈은 고스란히 그의 주머니속으로 들어 갔다. 학교에 흥미를 붙이지 못하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폴 알렌이 하버드대학교의 빌게이츠를 찾아오며 그들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폴알렌이 길을 걷다가 신문 가판대에서 우연히 파퓰러 일렉트로닉스(Popular Electronics)의 겉표지를 보게 된다. 세계 최초로 발매되는 소형 컴퓨터 세트라는 문구를 보고 바로 잡지를 구매하게 된다. 잡지를 본 폴은 즉시 하버드대학교의 빌게이츠에게 달려갔다. 함께 잡지를 본 빌과 폴은 그 순간 자신의 운명이 새롭게 시작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각 가정과 사무실의 책상위에는 소형 컴퓨터가 하나씩 놓이는 시대가 올것이라고 예감하고 있었던 그들은 지금이 바로 그런 시대의 시작임을 알고 있었다. 폭발적인 성장이 기대되는 컴퓨터 시장은 그야말로 기회의 땅이고 자신들은 그 곳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 생겼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기대하는 법조인으로써의 삶도 쉽게 포기하기가 힘들었다. 조금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이 앞으로 다가올 골드러쉬시대의 혜택을 고스란히 가져가는 것은 더욱 싫었다.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엄숙해오자 빌게이츠는 컴퓨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받치기로 결심한다. 


무엇이 성공할지에 대한 남다른 직관력을 가지고 있는 그는 자신의 일에 대해서도 그런 경향이 있다.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무의 상태에서도 자신들이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코드 한 줄도 작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는 세계 최초의 상업용 소형 컴퓨터 알테어 8800(Altair8800의) 제작사 MITS에 전화를 걸어서 자신들이 베이직프로그램을 완성했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이미 MITS에는 서로 프로그램을 개발해주겠다면서 수많은 전화가 폭주중이었다.  MITS의 사장은 시큰둥한 말투로 빌 게이츠에게 만약 알테어 8800에서 돌아가는 베이직을 다른 사람보다 먼저 개발해서 가져오면 프로그램을 구입해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빌 게이츠는 그날부터 폴알렌과 베이직 프로그램을 완성하기 위한 작업에 몰두한다. 그는Altair8800도 없는 상태였지만 학교의 컴퓨터를 이용하여 개발을 시작한다. 끼니는 피자로 떼우고 잠도 컴퓨터 실습실에서 자며 8주 만에 겨우 베이직을 만들어 낸다. 그 수많은 경쟁자중에서 가장 먼저 베이직을 개발한 것이다. 폴 알렌이 완성본을 가지고 MITS 본사가 있는 뉴멕시코로 날아갔다. 처음으로 Altair 8800에서 돌려보는 베이직이었기 때문에 폴 알렌은 너무나 떨렸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베이직은 Altair 8800에서 완벽하게 돌아 갔고 MITS와 계약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세계 디지털 제국의 황제라고 불리 우는 마이크로 소프트의 시작이다.






하버드 대학을 그만두고 회사일에 전념하려 하자 그의 아버지는 제발 졸업은 해달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빌 게이츠의 의사가 확고함을 알고는 이내 곧 후원자가 되어준다. 빌게이츠는 레이크 사이드 학교에서 같이 컴퓨터를 연구했던 친구들을 속속 합류시킴으로 회사도 점차 본궤도에 오른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창업한해에는 10만불의 매출을 기록하고 그 다음해에는 20만불을 벌어드리게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빌 게이츠에게는 한가지 근심이 늘어만 갔다. 처음 컴퓨터 사업을 하는데 도움을 준 MITS였지만 조금씩 걸림돌이 되어 갔기 때문이다. MITS는 생각보다 작은 회사였고 폭증하는 수요를 충족시켜줄 생산시설을 갖추지 못했다. 컴퓨터를 한대 팔때마다 로열티를 받는 빌 게이츠의 입장에서 MITS의 더딘 생산 시스템은 치명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컴퓨터 제작사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베이직을 자사의 컴퓨터에도 탑재하게 해달라며 라이센스를 요청하는 판국인데 MITS의 강력한 반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1977년 결국 마이크로 소프트는 MITS에게 계약 파기를 선언한다. 계약서에 제시된 충실한 마케팅 이행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분쟁은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소송사건으로까지 비화됐다. 다행히 법원은 빌게이츠의 손을 들어줬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들이 개발한 베이직을 MITS가 아닌 다른 회사에도 얼마든지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법원의 승소 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매출은 100만불을 돌파하였고 다음해에는 4배나 성장해서 400만불이라는 금액을 벌어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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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시애틀 내에서 손꼽히는 명문가 집안에서 1955년 10월 28일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은행창업자였고 아버지인 윌리엄 헨리 게이츠2세는 유명한 변호사였으며 어머니 매리 게이츠는 퍼스트 인터스테이트 은행( First Interstate Bank)의 워싱턴주 책임자로 일을 하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빌 게이츠의 이름이 같았던 관계로 집안에서는 그에게 트레이(Trey)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마을에서 알아주는 부자였지만 집안은 엄격하여서 초등학교시절의 하루 용돈은 25센트에 불과했다. 또한 주말에는 텔레비전을 시청하지 말고 보이스카우트 같은 적극적인 야외 활동을 하도록 하였다. 그는 아이큐 170을 자랑하는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는데 한번 읽은 백과사전은 있는 그대로 모든 내용을 기억 할 정도였다. 교회에서 성경 암송대회가 있기라도 하면 그는 가장 먼저 앞장서서 참가하고는 꼭 우승을 해내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서 학교 성적은 중간 정도에 머물렀다. 아버지는 빌게이츠에 대한 기대감이 컸고  그에게 항상 최고가 될 것을 강조했다. 경쟁에서는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아버지의 생각 때문에 그의 가족들은 여행을 가면 스포츠처럼 승패를 가리는 게임들로 여가시간을 보낼 정도였다. 


빌게이츠가 11살이 되던 해에 하버드 대학교의 등록금보다 3배가 더 비싼 시애틀 최고의 명문사립학교 레이크 사이드에 입학한다. 하지만 그에게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엄격한 교육환경을 자랑하는 학교였던 만큼 적응이 힘들었다. 이 때문에 짜증이 갈수록 늘어났고 반항심이 커져갔다. 결국 부모들은 그를  아동 심리 치료사에게 보낸다. 다행히 심리 치료사는 빌 게이츠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를 터득하도록 하였다. 부모와의 싸움은 결국 자식이 승리하는 게임이고 결국 그게다 부모가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으라는 조언 덕분에 그는 엄청난 양을 읽어 되는 독서가로 변모한다. 학교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아이가 15권이라면 빌 게이츠는 그 두 배인 30권을 읽었다. 포춘이라는 경제잡지처럼 어른들을 위한 서적과 심리학 서적을 특히 많이 읽은 덕분에 그는 나중에 뛰어난 협상가가 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중하위를 달리던 학업성적도 전체과목에서 A학점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학생으로 변모하였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정받으며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1968년 빌 게이츠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 일대 사건이 벌어진다.





레이크 사이드 학교의 어머니회는 바자회에서 3천달러의 수익이 나자 이 돈으로 학생들을 위한 컴퓨터를 구입하기로 결정한다. 이는 시애틀에서 최초로 컴퓨터 환경을 구축하는 학교가 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당시만 해도 컴퓨터의 개념은 대형컴퓨터에 단말기를 연결해서 사용하는 개념이었다. 학교에 설치된 컴퓨터 환경은 GE사의 ASR-33 텔레타이프를 임대하는 방식이었다. ASR-33은 회사 중앙 컴퓨터와 전화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타자기 모양의 단말기인데 모니터가 없는 대신 프린터로 출력결과를 알려주었다. 회사의 본사 중앙 컴퓨터에 데이터를 보내서 처리 결과를  단말기로 받아보기 위해서는 시간당 40달러의 요금을 내어야만 했다. ASR-33이 설치되자 학교에 호기심 많은 소년들이 달려들었다. 그 중에 으뜸은 역시 빌게이츠였다. 자신이 내린 명령을 척척 처리해내는 이 기계에 완전히 매료당한 그는 컴퓨터를 완벽하게 다루기 위해서 온 열정을 쏟아냈다. 그리고 빌게이츠 처럼 컴퓨터에 뛰어난 실력을 드러내는 소년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폴 알렌이다. 폴은 나중에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 창업하는 평생의 친구가 된다. 미국의 대학 수학능력 시험이라고 하는 SAT에서 1600점 만점을 받을 정도로 폴 알렌 역시 뛰어난 두뇌를 자랑하는 사람이었다. 천재가 천재를 알아 본다는 말이 있듯이 빌게이츠와 폴알렌은 처음 만남부터 컴퓨터를 매개로 하여서 깊은 우정을 나누기 시작한다.  둘은 컴퓨터에 대해서 정말 무섭게 달려들었다. 관련 서적은 물론이고 자료가 부족하면 컴퓨터회사에 직접 연락해서 기술지원과 매뉴얼을 받을 정도였다. 


중학생 밖에 안되는 이 소년들은 어느덧 TIC-TAC-TO 같은 게임을 직접 개발하며 컴퓨터 전문가가 되어갔다. 덕분에 학교선생님보다 컴퓨터에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컴퓨터 사용시간이 과다한 게 문제였다. 컴퓨터를 이용한 시간에 따라서 요금을 내는 종량제였기 때문에 어머니회에서 확보한 자금이 몇주만에 바닥난다. 결국 컴퓨터 사용료를 감당 못한 학교에서는 컴퓨터를 더 이상 학생에게 개방하지 않았다. 





이때 빌 게이츠가 하나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낸다. 자신들의 컴퓨터 프로그래밍 능력이라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폴을 비롯한 몇 명의 친구를 더 규합해서 레이크 사이드 프로그래밍 그룹을 결성한다. 그리고 빌게이츠는 대형컴퓨터를 임대해주거나 판매하는 C-CUBED 본사에 당당히 찾아가서 협상을 시도한다. 프로그램의 버그를 찾아 줄 테니 컴퓨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회사의 사장은 나이도 어린 10대 청소년들의 제안을 듣고는 잠시 당황스럽고 황당하기까지 했지만 이내 곧 그들의 실력을 인정하고 컴퓨터를 야간시간에 한정하여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허락한다.


하지만 C-CUBED는 얼마 못 가서 회사가 도산을 하게 되고 빌게이츠를 주축으로 한 레이크 사이드 프로그래밍 그룹은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생각해낸다. 그런데 마침 폴 알렌의 아버지를 통해서 워싱팅 주립대학교에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조금씩 이들의 컴퓨터 실력이 알려지게 되고 인포메이션 서비스라는 회사에서 일꺼리를 하나준다. 사원들의 급여를 컴퓨터로 관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제작의뢰를 맡겼다. 처음 제안이 들어 왔을 때 만해도 다른 친구들은 고등학생인 자신들의 수준을 뛰어넘는 일이라면서 중도에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이때 빌게이츠가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하여 팀원들과 함께 프로그램 제작을 완수해낸다. 3개월 동안의 작업끝에 1만달러의 수고비를 받은 빌게이츠는 이때의 자신감을 발판 삼아서 정식으로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사업도 인생의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아버지는 빌게이츠의 생각에 선뜻 허락해준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그가 세운 회사의 이름은 TRAF- O -DATA 였다. 그는 고속도로에 지나가는 자동차의 숫자와 용량을 컴퓨터로 계산해내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서 2만달러를 벌게 된다. 이렇게 빌게이츠의 컴퓨터 실력이 일취월장하게 되자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성적과 출석관리를 하는 프로그램의 제작을 부탁하기도 하였다. 이때 그는 학교에서 예쁜 여자학생들로만 이루어진 반을 구성하고 같이 수업을 듣는 남자는 빌게이츠 혼자만 출석하는 수업시간표를 만들기도 한다. 이때가  빌게이츠의 학생 생활 중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었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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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IT 삼국지2013.03.19 08:33


IT 삼국지(6)  빌게이츠가 애플을 굴복시킨 절대반지는?






빌 게이츠는 회사가 어떤 결정을 내리고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탁월한 감각이 있었다. 특히 빠르지도 않고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내는 데에는 세계 최고 일 것이다. IBM과의 결별이 최고의 타이밍에 이루어진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것은 현재 마이크로소프트가 전 세계 IT업계를 지배한다는 사실이 증명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IBM과 결별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윈도우3.0이 많이 팔려서가 아니다. 거기에는 MS 오피스라는 킬러 소프트웨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윈도우3.0과 MS 오피스를 가지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IBM은 소프트웨어의 힘을 끝까지 간과했다. 그들은 얼마든지 돈을 투입하면 마이크로소프트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1989년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이 OS/2를 공동 개발하면서 IBM은 이미 20억 달러를 사용했다. 독자적으로 OS/2 개발에 뛰어든 후로도 매년 몇억 달러를 들여서 OS/2를 만들었지만 막상 등장한 제품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전혀 몰랐다. OS/2는 분명 기술적으로 진보된 제품이었지만 너무 느렸고 사용하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응용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운영체제가 뛰어나도 거기에서 돌아가는 응용 프로그램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운영체제를 만들뿐만 아니라 직접 세계 최고의 응용 소프트웨어를 제작하는 업체였다. 아무리 천하의 IBM이라고 하지만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내는 기업을 상대로 바닥부터 다시 만들어 가며 경쟁하기는 어려웠다. IBM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 절치부심하며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지만 몇번의 패전을 거듭한 끝에 급기야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아예 철수하고 만다. 오늘날 개인용 컴퓨터를 뜻하는 PC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회사가 많은 하청 업체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마이크로소프트 때문에 PC 업계에서 사라지는 모습은, 인간에게 자만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는 회사다. 이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를 꿰뚫고 있음을 뜻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 매킨토시의 최대 응용 소프트웨어 제작사였다. 그 이야기는 애플 매킨토시의 운명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달려있음을 뜻하였다. 컴퓨터와 운영체제가 아무리 훌륭해 봐야 응용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런데 1990년대에 이르자 응용 소프트웨어 중에서 가장 중요한 킬러 소프트웨어는 바로 MS 오피스가 되었다. 이제 MS 오피스는 매킨토시의 생존까지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 소프트웨어로 성장했다. 이 상황을 이용하지 않을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니다.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사상 최고의 모험을 감행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95에 엄청난 개발비를 투입했기 때문에 윈도우95의 성공 유무에 따라서 회사의 흥망성쇠가 결정되는 중대한 일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마케팅 비용에만 2억 5천만 달러를 들였다. 당시 미국에서는 언제 어디에서나 윈도우 광고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다행히도 빌 게이츠의 도박은 다시 한 번 성공했다.


 윈도우95 이후 마이크로소프트는 명실공히 세계 IT 업계 제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면서 과거 라이벌이라고 했던 기업은 하나 둘 시장에서 퇴출되기 시작했다. 천하의 IBM마저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95를 자사의 컴퓨터에 탑재하기 위해서 각종 굴욕적인 계약을 감수해야 할 정도였다. 윈도우95의 성공은 역시 동시 발매된 MS 오피스의 힘이 컸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95 발매 이후 업그레이드된 MS 오피스를 매킨토시용으로 내놓지 않았다. 이는 매킨토시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MS 오피스가 없다면 레포트를 써야 하는 대학생이나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 직장인들을 매킨토시의 고객으로 모셔 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윈도우95의 성공으로 매킨토시의 위기가 왔다고 하지만 MS 오피스야말로 결정타였다. 1994년 이후 마이크로소프트가 매킨토시용 MS 오피스를 내놓지 않자 나중에는 매킨토시 사업에 관심이 없다는 루머까지 돌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매킨토시의 미래에 암운이 드리워졌다. 매킨토시 최대의 응용 소프트웨어 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가 매킨토시로 제품을 내놓지 않으니 애플의 미래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늘어났다.


 이는 매킨토시 진영에 대단한 위협이자 공포였다. MS 오피스로 인해서 매킨토시의 활용도가 떨어지고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는 것도 문제였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과거의 경쟁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매킨토시마저도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까지 해석되었기에 문제는 심각했다. 어느덧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의 매킨토시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는 위치에 오른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개인용 컴퓨터에서 최고의 킬러 소프트웨어로 칭송 받는 MS 오피스를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97년 부도가 임박하기 직전에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그가 그토록 미워하고 미학이 없다면서 험담을 늘어 놓았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만 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아니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과감한 선택을 한다. 그것은 애플의 보물이자 자랑인 동시에 마이크로소프트에게는 콤플렉스가 되는 맥 OS의 사용자 인터페이스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맥 OS를 참고해서 윈도우를 만들었기 때문에 항상 온갖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있었고 과감하게 그것을 주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굴욕적이라도 애플은 당장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에게 전화를 걸어서 우리 사이에 해결할 지적 재산권 문제가 있지 않느냐고 읍소한다. 스티브 잡스가 하는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빌 게이츠는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스티브 잡스가 빌 게이츠에게 주는 선물은 세 가지였다.


 첫째, 맥 OS에 사용된 고유한 인터페이스와 관련된 지적재산권 문제에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자유롭게 해 주고, 둘째는 마이크로스프트가 무단으로 소스를 도용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퀵타임(QuickTime) 문제 역시 타결을 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익스플로러(Internet Explorer)를 매킨토시의 기본 웹브라우저로 내장해서 판매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에 대한 보답으로 매킨토시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된 MS 오피스를 내놓는 한편 의결권 없는 애플의 주식 1억 5천만 달러를 매입한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을 살려두기로 결정한 것을 대내외에 알렸다는 사실이다. 당시 애플의 규모로 1억 5천만 달러는 큰돈이 아니었다. 단지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이 살아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자신들의 진정성을 시장에 천명하는 행위라는 점이 중요했다. 그리고 MS 오피스는 애플의 부활에 실질적 도움을 줄 도구였다.


스티브 잡스는 1997년 맥월드 보스턴 행사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협력 소식을 대내외에 알렸다. 그런데 그날 연출된 장면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위성으로 빌 게이츠와 연결해서 협상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려고 했을 때였다. 무대 뒤편에 마련된 대형 화면으로 빌 게이츠가 나타나자 장내는 잠시 아수라장이 되었다. 박수와 야유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지만, 빌 게이츠는 꿋꿋하게 컴퓨터 업계에 일하면서 매킨토시를 만드는 것은 가장 즐거운 추억이었으며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을 도와줄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가 고개를 들고 화면 속의 빌 게이츠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처량해 보였고, 대형 화면 속에서 만면에 인자한 미소를 띠고 말하는 빌 게이츠에게는 승자의 여유가 가득하였다. 무대 위의 스티브 잡스와 대형 화면 속의 빌 게이츠는 마치 신하와 황제의 알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마이크로소프트가 IT 업계의 황제로 등극하는 즉위식과 마찬가지였다. 빌 게이츠의 등장에 충격을 먹고 야유를 보내는 애플 팬들에게 스티브 잡스는 MS 오피스를 원한다면 마이크포소프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면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경쟁하는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맥월드 행사가 끝난 그날 몇 년간 폭락을 거듭하던 애플의 주식은 33%나 상승하였다. 1997년, 마이크로소프트는 IT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분명한 황제였고 마이크로소프트의 통치는 영원할 것만 같았다


<다음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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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사실들2011.07.19 09:32




1.빌 게이츠는 지기를 싫어하는 승부욕의 화신이다.





지기를 싫어하고 항상 누군가에 승리하고자 하는 열망은 어린 시절부터 빌 게이츠의 전체 능력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는 누나와 퍼즐 게임을 하거나 썰매를 탈때도 항상 절대로 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한번은 그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이 산상수훈을 다 암송하는 사람에게 고급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사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러자 빌 게이츠는 단 두시간 동안 성경책을 읽고서 산상수훈을 전부 암기했다. 사실 이는 믿음 때문에 성경을 외웠다기 보다는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승자가 되려는 타고난 승부욕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가 어린 시절부터 가장 즐겨하고 좋아하는 놀이는 브리짓 게임이다. 승자와 패자가 가려지는 경쟁에서 승리하는데 집착하는 그가 카드 게임에 빠져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보통 사람이 시험을 괴로운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의 실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을 좋아했다. 빌 게이츠는 학교에서 시행하는 읽기 시험에서 여러 번 일등을 했는데 그의 아버지는 그것이 지기 싫어하는 빌 게이츠의 성격 덕분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남에게 뒤쳐지기 싫어하는 성격은 이른바 보이스카우트 사건에서도 잘 드러난다. 보이스카우트는 여름에 80KM를 행군하는 캠프가 열린다. 빌 게이츠 역시 행사에 참여하는데 문제는 새로 산 신발 때문에 얼마 못가서 발 뒷꿈치가 까졌다. 발꿈치의 상처는 더욱 심각해져서 발에서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빌 게이츠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행군을 하였다. 행군의 반정도 왔을때는 신발 전체에 핏물이 보일정도였다. 그래도 끝까지 빌 게이츠는 뒤쳐지지 않고 행군을 하려 했다. 하지만 상처를 본 보이 스카우트 관계자의 전화를 받은 어머니가 강제로 빌 게이츠를 데려갔다



2. 빌 게이츠는 정신과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이렇게 모든 것에서 지기 싫어하는 성격은 종종 부모와 논쟁을 불러 일으켰고 결국 참다 못한 그의 아버지는가 컵에 있던 찬물을 빌게이츠 얼굴에 끼얹는 사건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이 사건이 있은 후 빌 게이츠는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했다. 정신과 상담의는 빌 게이츠 부모에게 그는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이라면서 그를 통제하려고 하지 말라고 조언하였다. 부모님과 전쟁중이라고 선언한 빌게이츠에게 의사는 부모님들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은 그들의 아들이기 때문에 결국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부모님에게 승리하기 위해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말에 빌 게이츠는 생각을 바꾸고 과거보다는 부모님에게 순종적인 아들이 되었다.



3. 트레이라는 애칭은 카드게임에서 나왔다.


빌 게이츠의 애칭인 트레이는 평소 카드게임을 즐겼던 그의 외할머니 아델 맥스웰이 붙여주었는데 이는 카드놀이에서 3점을 뜻한다. 



4. 빌게이츠는 학교 시간표를 조정해서 반에서 최고의 인기인이 됐다.


빌 게이츠는 뛰어난 컴퓨터 실력 덕분에 학교에서 유명했는데 교장은 빌 게이츠에게 학교의 수업 시간표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빌 게이츠는 수업시간표에 조금만 장난들을 숨겨두었다. 이를테면 수업을 듣는 학생중에 빌게이츠가 유일한 남자가 되어서 예쁜 여학생 틈에서 수업을 듣도록 한것이었다. 또한 수업 시간표를 잘 조절해서 자신이 포함된 반이 화요일 오후에 수업이 없도록 했다. 이에 빌게이츠의 반 친구들은 Tuesday Club이라는 티쳐츠를 입고 빌 게이츠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5. 빌게이츠는 사업자금을 카드게임으로 벌어들였다.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할 때 들어간 사업자금은 빌 게이츠의 친구인 폴알렌과 빌 게이츠가 공동으로 조달했는데 폴 알렌이 내놓은 자금은 그가 직접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번돈이었던데 비해서 빌 게이츠가 번 돈은 하버드 대학교에서 벌어진 심야의 포커판에서 번 돈이라고 한다.  



6. 빌 게이츠는 속도위반으로 구속된적이 있다.
 




그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 한 이후 처음 구입한 차는 스포츠카인 포르셰 911이었다. 그가 속도를 즐기는 것은 세상 모든 것을 경쟁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는 경쟁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기 위해서 최고 속력으로 자동차를 몰았다. 속도광이었던 그의 자동차를 타는 건 매우 긴장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제한속도가 35마일 인 곳에서도 80마일 이하로는 달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의 취미중 하나는 자동차가 별로 없는 새벽 3시에 속도를 즐기는 일이었다. 과속으로 인해 그는 수많은 벌금딱지를 받았다. 빌 게이츠에게 도착하는 메일 대부분은 벌금딱지였을 정도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경찰의 경고를 무시하고 과속을 하다가 결국 경찰에 체포되기 까지 했다. 또한 빌 게이츠는 곧 잘 회사 동료들과 레이싱 대결을 펼쳤다. 레이싱은 어느덧 회사의 문화가 되었다. 직원들 사이에는 회사와 공항까지 누가 더 빨리 차를 몰고 가는지 경쟁이 붙었다. 빌 게이츠는 비행기 출발 시간 10분전에 사무실을 나왔기 때문에 비행기의 탑승 출입문을 닫기 바로 전에야 도착하곤 했다. 


7. 빌 게이츠는 동안덕분에 직원으로 종종 오해를 샀다.


지금이야 제 나이를 찾았지만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할때만 해도 소년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하루는 새로 고용된 비서가 자신의 앞을 획 지나가서는 사장의 컴퓨터를 사용하자 그 비서는 꼬마가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 소년 같은 사람이 바로 그가 모셔야할  빌 게이츠였다.
 


8. 빌 게이츠는 너무 더러워서 여자 직원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빌 게이츠는 항상 꾀죄죄한 모습을 넘어서 샤워를 전혀 하지 않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스티브 발머보다도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9.  빌 게이츠는 누구보다 맥을 사랑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외부 업체를 돌아다니면서 매킨토시를 위해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달라고 부탁하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였다. 스티브 잡스가 처음 마이크로소프트를 방문해서 매킨토시에 이야기를 하자 빌 게이츠는 이를 부정적으로 여겼다. 이에 스티브 잡스가 애플 본사에 직접 방문해서 매킨토시를 직접 봐야하다고 초대를 한다. 빌 게이츠는 애플에서 매킨토시를 보고는 그것이 미래라고 여겼고 회사의 유능한 직원들을 매킨토시팀에 배치해서 응용프로그램을 만들도록 독려하였다. 빌 게이츠는 매킨토시의 프로토타입을 SAND(Steve's Amazing New Device)라고 부를 정도로 좋아했는데 그는 1993년 스티브 잡스가 주최한  Macintosh Software Dating Game 에서 다음과 발언하여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를 얻어냈다.



새로운 표준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조금 달라서는 안됩니다. 정말로 새로워야 하고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 잡아야 합니다. 내가 그동안 보아왔던 모든 기기중에서 매킨토시는 그 기준에 맞는  단 하나의 컴퓨터입니다.  




(참고적으로 빌 게이츠는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을 좋아해서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을 녹화해서 시청하고 연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0. 빌 게이츠도 스티브 잡스만큼이나 터프가이다.


스티브 잡스의 카리스마야 유명하지만 빌 게이츠는 샌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빌 게이츠는 스티브 잡스 만큼이나 터프하기로 유명하다.  애플이라는 회사가 스티브 잡스중심으로 돌아가듯이 빌 게이츠가 있을때는 회사의 모든 중요한 의사결정은 빌 게이츠가 내렸다. 회사의 조직자체가 빌 게이츠 중심으로 돌았으며 직원이 빌게이츠와 회의를 하는 건 마치 황제를 알현하는 것과 같았다. 빌 게이츠의 카리스마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빌 게이츠는 신과 같은 사람이었다. 또한 빌 게이츠는 회의를 할때 몸을 흔드는 버릇이 있는데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은 그것마저도 흉내를 낸다고 한다. 특히 빌 게이츠는 마음에 안드는 직원들에게 욕설을 하기로 유명하다.. 처음 빌 게이츠에게 욕설을 들으면 많은 직원들이 당황하는데 직원들사이에는 빌 게이츠가 욕을 하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있어서 그런거니 너무 섭섭해하지 말라고 조언을 한다고 한다.  빌 게이츠는 문제가 발생하면 그의 예리한 통찰력으로 상대를 예리하게 추궁하는 것으로 유명한다. 상대를 윽박지를때는 물건을 던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빌 게이츠의 이런 카리스마는 외부회사를 대할때도 마찬가지다.  애플의 CEO였던 길 아멜리오가 4억달러를 들여서 스티브잡스의 넥스트를 인수한다고 발표하자  길 아멜리오의 사무실로 달려가서는 큰소리로 스티브 잡스를 험담하면서 후회하게 될것이라고 큰 소리 쳤다고 한다. 빌 게이츠보다 12살이 많은 길 아멜리오로서는 참으로 황당할 수 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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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이야기2010.11.10 08:05

지금 세상은 애플, 구글, MS의 치열한 삼국지가 펼쳐지고 있지만 과거에는 애플, IBM, MS의 IT 삼국지가 펼쳤졌죠. 그때를 생각하며 1차 IT 삼국지시대의 이야기들을 작성하여봤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최근 애플 부사장이었던 페이지 마스터가 전격적으로 사임하자 여러 추측들이 쏟아졌다. 아이팟을 개발한 토니 퍼델 후임으로 2년전 IBM과 소송까지 불사하면서 데려온 페이지 마스터는 애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IBM의 분쟁 때문에 정식 업무를 시작한지 1년 4개월만에 페이지 마스터가 전격적으로 회사를 그만두자 이를 두고 아이폰 4의 안테나 게이트에 대한 문책성 인사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월스트리트 저널에 의하면 페이지 마스터가 애플의 기업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스티브 잡스의 신임을 잃은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애플은 원래부터 기존의 권위주의를 싫어하는 서부 지역 특유의 히피문화를 물려받았기 외부 인사들이 잘 적응하지 못하는 회사로 알려졌다.  특히 서부 지역과는 반대되는 기업 문화를 가진 동부 지역의 기업 그것도 IBM을 다닌 페이지 마스터는 더더욱 적응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1980년 애플과 IBM 사이에서 치열하게 벌어진 PC 전쟁은 단순히 라이벌 회사간의 경쟁이 아니었다. 애플과 IBM은 동부지역과 서부지역의 자존심 싸움과도 같았다. 유럽과 교류하기가 쉬웠던 동부지역은 모든 경제 환경이 서부지역보다 월등히 좋았다.

 그래서 서부지역에서 태어나서 대학까지 다닌 사람도 취직을 위해서 뉴욕 같은 동부지역으로 떠나야 했다 서부지역을 대표하는 명문사학인 스탠포드 대학교의 프레드릭 터먼교수는 제자들이 대학을 졸업하자 마다 동부지역으로 떠나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마침 그가 아꼈던 제자인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가 있었는데 대학을 졸업 후 각각 취직과 진학을 위해 동부지역으로 떠났다가 다시 서부로 돌아오자 그들에게 창업을 권유하면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회사이름은 동전 던지기를 통해서 결정했다. 동전 던기지는 휴렛의 승리가 되었고 회사이름은 휴렛 & 팩커드 즉 HP가 되었다. 차고에서 두 명의 젊은이가 538달러의 자본으로 시작된 이 회사는 현재 개인용 컴퓨터 세계 1위의 오른 HP이다.

 HP는 오늘날 실리콘 밸리의 시작으로 칭송받고 있다. HP 성공 이후 과수원밭이었던 실리콘밸리 지역은 첨단 벤처 산업의 요람이 되었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HP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애플의 청사진을 마련했고 스티브 워즈니악은 정식직원으로 근무했을 정도로 HP와 애플은 여러가지로 인연이 깊다. HP이후 인텔 같은 여러벤처 기업들이 성공했지만 여전히 동부지역의 회사들에 비하면 꼬맹이에 불과했다. 바로 이때 애플이 등장해서 동부지역을 대표하는 기업인 IBM에 도전장을 던진다. IBM은 메인프레임 같은 대형 컴퓨터 시장을 장악하고 컴퓨터 산업의 지배자였다. 70냔대 중반만 해도 컴퓨터는 곧 IBM으로 통하던 시대였다. 그런데 두명의 젊은이가 차고에서 시작된 애플은 창업한지 단 4년만에 주식시장에 상장되었고 포드 자동차 이후 가장 성공한 기업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단숨에 억만장자에 등극하면서 미국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다. 애플의 갑작스런 성공에 자극 받은 IBM은 곧 PC를 통해서 반격을 한다.  IBM-PC가 발매되자 이를 구입해서 분해를 해본 스티브 잡스는 성능과 기능면에서 엉망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IBM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뛰어든 것을 환영하는 광고까지 내보낼 정도로 자신만만했다. 처음에는 애플과 IBM이 그야말로 치열하게 싸웠고 언론도 이를 흥미롭게 지켜봤다. IBM과 당당히 경쟁하는 애플의 모습은 그 동안 뒤쳐졌던 서부의 반격과도 같은 것이었다.  두회사의 문화를 보면 서부와 동부의 지역차이를 알 수 있다. 유럽과 교류를 하면서 발전한 동부지역은 오랜 역사를 가진 회사가 많은 만큼 전통을 중요시하는 보수적인 경향이 많았다.

 이에 비해서 서부지역은 기존의 보수적인 문화에 반기를 든 히피 문화의 탄생지 답게 진보적이었다. 이런 차이는 그들의 복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애플은 청바지를 입은 젊은이의 회사였다면 IBM은 양복을 입은 신사들의 회사였다. 애플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심지어 양복도 없다. 동부지역에 본사를 두고 있는 통신회사인 AT&T의 직원들이 애플직원에게 회사의 이사를 만날 때는 예의차원에서 양복을 입어야 한다고 하자 애플은 양복을 입지 않는다면서 애플 직원들은 양복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고 반박할 정도로 양복과는 거리가 멀다. 이에 비해서 IBM은 복장이 엄격해서 무조건 하얀 셔츠에 넥타이를 입어야만 한다. 이러한 복장 차이가 기업 문화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IBM은 예의바르고 항상 격식을 차리는 어른의 회사지만 반면에 권위주의적이며 관료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해서 애플은 대학생처럼 활기차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대학생들의 회다. 하지만 사려깊지 못하고 즉흥적이며 팀보다는 개인을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애플 일본의 지사장이었던 하라다 에이코씨에 의하면 애플직원이 자신의 개성을 중요시 여기는 락앤롤의 밴드멤버라면 IBM은 하모니를 중요하게 여기는 교향곡 연주가와 같다고 말한다. 그런데 에이코에 의하면 팀 플레이를 통해서는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신 락앤롤 연주자는 모래알처럼 흩어지기 쉬운 위험함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애플과 IBM의 문화적 차이가 큰 만큼 IBM에서 일했던 페이지 마스터가 애플에 얼마나 적응하기가 힘들었을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애플과 IBM의 차이는 스티브 잡스가 주창한 해적정신에 집대성되어 있다. 스티브 잡스는 생각지도 못한 IBM-PC의 돌풍으로 회사가 위기에 빠지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매킨토시를 개발한다. 매킨토시 개발자들에게 스티브 잡스는 해군이 되지 말고 해적이 되라고 강조했다. 해군은 기존의 사물과 관습을 지키기에 급급하지만 해적은 이를 과감하게 파괴한다. 해군이 IBM이었다면 해적은 애플이었다. 애플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서 IBM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자 하였다. 사실 1980년만 해도 IBM의 매출은 애플의 200배에 이르고 연구금액은 100배가 차이나는 거대 기업이었다. 자신보다 훨씬 큰 회사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성공 방식대로 싸워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기존의 성공 방식은 결국 돈이 많은 회사가 승리하기 마련이다. 그런 회사와 싸워서 이길 려면 결국 더욱 새롭고 창조적인 제품을 내놓야만 한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가 내놓은 매킨토시는  텍스트기반의 개인용 컴퓨터와는 완전히 다른 그래픽 기반의 컴퓨터였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내놓으면서 IBM과의 경쟁을 더욱 극적이면서도 애플을 구원자로 만들고 싶었다. 이때 제작된 광고가 그 유명한 1984이다. 소설 1984는 절대권력을 가진 빅브라더스가 개인의 사생활을 완전통제하여 세상을 지배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매킨토시 광고는 소설속 내용을 그대로 담아내었다. 대형 스크린에서 빅브라더가 끊임없이 윽박지르면 넋이 나간 사람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사람들이 아무런 생각과 의지도 없이 빅브라더에 복종하는 이미지가 그대로 전해진다. 이때 망치를 든 여인이 총으로 무장한 경비병들을 따돌리고 달려와서는 빅브라더의 모습이 있는 대형스크린에 망치를 던진다. 그리고 자막을 통해서 애플이 1984년 애플이 매킨토시를 소개한다면서 왜 소설의 1984와 현실의 1984가 다른지를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 광고는 단 한번 방영했지만 미국에 센세이셔널한 충격파를 선사한다. 1984광고는 엄청난 호평을 들으며 각종 광고상을 휩쓸었고 26년이 지난 지금도 화제가 될정도로 광고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이 광고에서 전해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광고속 빅브라더스가 IBM이고 도끼를 든 여인이 애플이었다. IBM이 지배하는 컴퓨터 세상을 애플이 파괴하겠다는 의도가 이광고에 담겨져 있었다. IBM을 악당으로 만들고 악당과 맞서 싸우는 영웅 애플의 모습은 오늘날 애플에 열광적인 마니아들을 탄생시켰다. 광고 덕분에 매킨토시는 출시되자 마자 5만대 이상이 판매되면서 매진행렬을 이어간다.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를 탑재한 매킨토시는 기존의 컴퓨터와는 완전히 달랐고 개인용 컴퓨터를 재발명했다는 극찬을 들었다. 하지만 매킨토시에는 응용 프로그램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판매에 한계가 있었다. 결국 실적 부진으로 스티브 잡스와 이사회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고 결국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나고야 만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가 사무실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컴퓨터가 되기를 바랬다. 그래서 고품질의 인쇄를 가능하게 하는 프린터와 소프트웨어를 개발중이었는데 그의 이런 노력이 1985년 엘더스사에서 등장한 페이지 메이커이다. 페이지 메이커는 전자출판 혁명을 불러 일으키며 실적악화로 어려움에 빠져있던 매킨토시의 구원자가 된다. 페이지 메이커 덕분에 매킨토시의 판매량도 덩달아 급상승하며 애플은 화려하게 부활한다. IBM-PC는 일반 사람들을 위한 컴퓨터였다면 애플의 매킨토시는 그래픽전문가들을 위한 컴퓨터가 되면서 시장을 양분하게 된다.

정작 애플과 IBM의 치열했던 PC 전쟁의 최후 승리자는 마이크로소프트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IBM-PC에 DOS를 납품하면서 극성장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DOS를 개발하는 한편으로 애플의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베낀 윈도우를 만든다. 윈도우를 보고 분노한 애플의 CEO 존 스컬리는 빌게이츠를 직접 만나서 항의를 하였다. 이에 빌게이츠는 매킨토시 독점으로 응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주는 조건으로 매킨토시 운영체제에 사용된 인터페이스를 라이선스 해줄 것을 요구한다. 터무니 없는 요구였지만 기술에 문외한이었던 존 스컬리는 덜컥 빌게이츠가 원하는데로 계약을 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스티브 잡스가 몇 년간 고생하면서 만든 맥 오에스를 빌 게이츠는 얼마든지 마음껏 쓸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한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마침 IBM에서도 매킨토시 처럼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를 만들려고 했다. 당시만 해도 IBM이 컴퓨터 업계를 지배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빌게이츠는 무슨일이 있어도 IBM과 끝까지 같이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IBM쪽 사람들을 설득해서 IBM이 준비하는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인 OS/2를 마이크로소프트가 직접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한다. 이에 IBM은 아무런 의심없이 제휴관계를 맺는다. 하지만   OS/2의 개발속도가 너무나 느렸다. 마침 IBM 관계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OS/2를 만드는 척하면서 윈도우에 전력을 쏟는다는 것을 눈치챈다. IBM은 이에 분노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 관계를 정리하려 한다. 이때 빌 게이츠는 OS/2는 고급 컴퓨터들을 위한 운영체제고 윈도우는 상대적으로 속도가 낮은 저가형 컴퓨터를 위한 운영체제라면서 IBM을 설득한다.

  IBM은 기술에 문외한이었던 존 에이커스였는데 신기하게도 존 스컬리처럼 빌 게이츠의 감언이설에 넘아가고 만다. IBM은 마이크로소프트가 OS/2를 잘 만들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였지만 그 기대는 얼마 후 산산히 깨져버렸다. 1990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야심작인 윈도우 3.0이 시장에 등장하자 돌풍을 일으킨다.  1년동안 무려 4백만개가 판매되었는데 이는 매킨토시가 6년 동안 팔았던 전체 총 누적수보다 많은 숫자였다.  윈도우 3.0이 대성공을 거두자 마이크로소프트가 더 이상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당장 IBM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바로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IBM은 이에 분노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너무나 커버렸다. 윈도우 95가 발매될때는 IBM 역시 눈치를 봐야할정도였다. 윈도우 95의 성공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위세는 더욱 커졌고  IBM은 아예 PC 시장에서 철수를 선언했다. 애플 역시 윈도우 95 광풍에 치명타를 입고 추락하기 시작한다. 1997년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1억 5천만달러 투자를 받게 되는데 이는 사실상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항복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IBM과 애플의 1차 PC 전쟁은 결국 두 회사의 관계를 적절히 이용한 마이크로소프트를 IT 황제로 등극시키며 종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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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2009.11.04 07:51


지금 세계 IT 업계를 이끄는 갑부들을 보면 묘한 공통점 한가지가 있다. 게임과 이런저런 인연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빌 게이츠가 처음으로 프로그래밍 한 것이 게임 오델로였고 지금은 XBOX 360으로 세계 게임계를 이끌어가고 있지요. 구글의 창업자중에 한명인 세르게이 브린은 던전앤 드래곤스를 좋아했고 직접 컴퓨터 게임을 만들었고 학생시절에는 MUD게임을 즐겼다고 합니다.  델컴퓨터의 창업자 마이클 델은 그의 유일한 취미로 게임이라고 밝힌적이 있습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게임과 더욱 각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처음으로 다닌 정식 직장이 바로 세계 제일의 게임회사였던 아타리였습니다. 그런데 스티브 워즈니악의 게임사랑이야말로 어마어마 합니다. 그가 컴퓨터를 만든 이유가 게임을 즐기기 위한 것이었을정도니깐요. 스티브 워즈니악이 게임을 좋아한다는 것을잘알고 있던 스티브 잡스는 공짜로 아타리의 게임을 즐기게 해주는 대신 틈틈히 회사일을 대신해달라고 부탁하였는데 스티브 워즈니악은 매일 밤마다 아타리에 방문해서 밤새도록 게임을 즐겼다고 하죠.

그렇게 탄생한 게임중 하나가 바로 한국에서 벽돌깨기로 알려진 브레이크 아웃입니다.

애플2 컴퓨터를 만들 때 스티브 워즈니악은 컴퓨터로 애플2가 망할 수는 있지만 게임이 가능하기때문에 기본적인 성공을 거두리라고 생각할정도로 애플2는 게임에 최적화되었습니다.

애플2의 성공은 스프레드 시트 프로그램의 원조인 비주얼 캘크라는 킬러 컨텐츠 덕분이기도 하지만 애플2는 원래 게임 개발환경이 월등히 뛰어났습니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개발한 애플2용 베이직은 게임 베이직이라고 불리울 만큼 게임개발자들에게 환영받았습니다.

그런데 IT 역사를 뒤돌아 보면 게임이 정말 IT 의 세력판도에 엄청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던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에게 무너져 내린것도 따지고 보면 게임의 영향력이 발휘되었습니다.

매킨토시가 처음 나오자 사람들은 이것은 어른들을 위한 장난감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매킨토시는 화려한 그래픽 인터페이스와 멀티미디어 기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만해도 쓸만한 소프트웨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킨토시는 장난감이라는 비아냥을 들었고 당시 애플은 이런 말들을 싫어했습니다. 그들이 장난감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한 일은 어이없게도 매킨토시용으로 등장하는 게임들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매킨토시의 게임 개발 환경이 떨어지자 많은 회사들이 IBM-PC용으로 옮겨갔지요.

그리고 애플과 IBM-PC의 격차가 크게 줄어들기 시작하던 90년대 중후반을 보면.. 윈도우 95의 활약을 빼놓을수 없는데. 윈도우 95는 다이렉트 엑스의 등장으로 게임개발환경이 월등히 좋아졌습니다. 여기에 3D 게임이 본격 태동하면서 PC의 게임시장이 급성장 합니다.

게임이 IT 분야의 대세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볼수 있습니다. 스타크래프트가 우리나라의 인터넷 환경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잖습니까?

그리고 네이버가 한국 포탈 1위에 오를수 있었던 배경도 결국은 한게임 덕분 아니겠습니까?

최근 IT 분야의 최대 화두인 아이폰 역시 따지고 보면 게임의 활약이 가장 컸지요. 앱스토어에서 게임이 인기가 많자 애플은 아예 아이폰과 아이탓 터치를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기기로 포지셔닝을 할정도입니다.

그리고 요즘 제가 가장 주목하는 분야는 바로 소셜게임입니다. 저는 트위터가 뜬다고 하자 페이스북이 예전 같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페이스북이 아주 잘나갑니다. 이렇게 잘나가는 것은 페이스북 안에 생태계를 구축했기 때문인데 결국 그 생태계 안에서 돈을 버는 건 게임입니다.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인 FARMVILLE은 6천 5백만명이 즐기고 있고 Pet Society도 2천만명이 넘어섰더군요. 얼마전에 나온 Cafe World는 나온지 한달도 안되어서 천만명이 넘는 사용자를 확보했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가장 유망한 벤처기업으로 소셜 게임개발사들이 단연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요  직원수가 100명내외인 Zinga의 경우 매출이 1억 5천만달러가 추정된다고 할 정도로 아주 잘나가고 있습니다.

Sean Parker라는 벤처 캐피탈리스트는 인터넷의 패리다임이 페이스북처럼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서비스로 변화하고 있다고 하는데… 결국 그런 변화속에서 혜택을 보는건 게임회사가 아닌가 싶네요. 왜냐하면 게임은 원래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기 위해서 만든겁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면 역시 함께 할일은 게임이 가장 좋지요. 그러니 페이스북에서 게임들이 그렇게 잘나가고 있는것이구요.

물론 상호 영향을 준것이지만…

이런걸 따져보면..  어찌되었든 3D 기술의 발전을 이끈것은 게임이기도 하지만 역시 혜택을 본 것은 역시 게임회사였고.. 온라인의 발전에 게임회사들이 중요한 역학을 했지만 또 혜택을 본 것이 게임인데.. 이제 IT가 모바일과 소셜 네트워크로 바뀌는 환경속에서 역시 게임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시에 큰 혜택을 보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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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IT2008.06.21 17:16

6월 27일이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빌 게이츠와 관련된 소식이 쏟아지고 있는 요즘인데요. 포춘에서 빌게이츠 특집으로 그의 관련된 몇몇 사진을 공개했는데 참 흥미로운 모습들이 몇개있네요. 참고적으로 경영을 한번도 공부하지 않은 빌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경영할수 있었던 것은 고등학교 시절에 읽은 포춘덕분이었다고 하지요. 빌게이츠는 고등학교시절 학교에서 포춘을 읽었던 사람은 학교에서 나말고 두세명밖에 없다면서 포춘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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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살때의 빌게이츠입니다. 누가 이 소년이 세계에서 최고의 갑부자리에 오를지 예상이나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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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한국 나이 열두살때 풋볼팀의 빌게이츠..... 어디에 있을까요? ^^;; 가운데 열을 주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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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크 사이드 시절의 빌게이츠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은 공동창업자인 폴알렌이지요. 빌게이츠의 컴퓨터실력은 학교에서 독보적이었고 그래서 교장선생이 빌게이츠에게 특별히 컴퓨터로 학생들의 시간표를 짜달라고 부탁을 하죠. 이때 빌게이츠는 자신의 반이 화요일 오후는 수업이 없게 만들어서 학우들에게 영웅취급을 받았고 또한 빌게이츠는 자신의 앞뒤 옆자리에는 학교에서 가장 예쁜 여학생들이 앉도록 프로그래밍하기도 했답니다. 또한 학교에서 예쁜 여자학생들로만 이루어진 반을 구성하고 같이 수업을 듣는 남자는 빌게이츠 혼자만 출석하는 수업시간표를 만들기도 하였는데 빌 게이츠는 이때를 학창 시절중 중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었다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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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가 회사의 사명때문에 작고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파는 회사가 아니냐고 오해를 받았다고 하는데 저 명함을 보니 왠지 아이스 크림 회사처럼 느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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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살의 빌게이츠입니다. 피부의 주근깨가 참 인상적인 동안이지요?  사실 빌게이츠는 동안인 얼굴덕분에 여러 수모를 겪어야 했답니다. 어느 날 마이크로소프트에 스티브 우드라는 비서가 새로 고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한 소년이 사장실로 들어가서는 함부로 컴퓨터를 쓰길래 비서인 스티브 우드가 큰소리로 나가라고 했는데  바로 그 소년이 바로 빌게이츠 였다죠. 그리고 동안 때문에 많은 회사들이 빌 게이츠를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빌 게이츠 앞에서 어린 것이 뭘 아냐.. 까불지 마라. 이런식으로 큰 소리도 엄청쳤답니다. 그럴때 빌게이츠는 앞에서 조용히 있다가 자리를 빠져나왔다는군요. 그리고 바로 법정 소송으로 들어가서 각종 문제들을 해결 했답니다. 빌 게이츠 아버지가 시애틀에서 알아주는 변호사였고 하버드대학법학과 출신이었으니 법으로 밀리지를 않았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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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도의 모습입니다. 참고적으로 빌게이츠는 1955년생이고 스티브 발머는 1956년생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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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게이츠가 코스튬한 사진입니다. 참 인상적이죠? 1994년 샌디에이고에서 개최된 세일즈 미팅의 한 장면이라고 하네요. 참고적으로 이행사에서  스티브 발머는 훌라걸복장으로 행사에 참여했다는데 그걸 꼭 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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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자선단체인 유나이티드 웨이 행사에 참여한 빌게이츠와 스티브 발머의 모습입니다.

더많은 사진을 보고 싶은 분들은 아래의 사이트를 방문하세요..

http://money.cnn.com/magazines/fortune/storysupplement/gates_microsoft/index.html

빌게이츠의 나레이션과 더 많은 사진을 감상할수 있습니다.


덧말: 안녕하세요. 작가 김정남입니다. 저의 블로그에서는 IT와 관련된 재미있는 각종 비하인드 스토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래 지금까지 연재한  글들을 링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IT와 관련된 글들을 지속적으로 연재할 예정이니 여러분의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2008/06/20 - [IT] - 기적의 승부사 애플과 닌텐도의 화려한 부활!
2008/04/13 - [IT] - 애플과 닌텐도에게 꼭 배워야 할 교훈!
2008/05/18 - [IT] - 애플의 감성마케팅이 성공한 이유!
2008/05/12 - [IT] - 영화같은 스티브잡스의 삶과 사랑!
2008/06/27 - [IT] - 타고난 사업가 빌게이츠의 일화들
2008/06/26 - [게임] - 닌텐도 게임천재에게 배우는 행복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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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IT2008.05.09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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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테나님의 글에 의하면...

http://www.hatena.co.kr/489

일본을 방문한 빌 게이츠 회장이 니시 가즈히코와 손정의를 언급하면서 일본과의 각별한 인연을 이야기했는데요.

혹시나 궁금하신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제가 아는 몇가지 뒷이야기를 추가 해봅니다.

우선 빌게이츠 회장과 일본의 관계는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빌게이츠가 1975년도에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였고 1977년에는 스포츠카를 구입할정도로 부자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갑부도 아니었고 유명하지도 않았던 때입니다.

1978년이라고 해봐야 스티브 잡스가 애플2 컴퓨터를 고작 천대 팔았던 시절이니깐요. 그래도 스티브 잡스는 78년을 계기로 엄청나게 성장을 하였구요.  빌 게이츠는 애플 2 컴퓨터용으로 베이직을 납품하며 스티브 잡스에게 굽신굽신했었던 때죠.

그런데 마침 미국잡지에서 빌 게이츠에 관한 기사가 보도되었는데.. 이 잡지를 일본에 있는 니시 가즈히코가  읽게 되고 즉시 미국의 빌게이츠에게 전화연락을 하여 미국에서 만나기로 약속까지 합니다.

니시 가즈히코는 1977년 와세대 대학교를 중퇴하고 아스키를 창업한 후에 컴퓨터 잡지 I/O를 창간한 인물입니다.

앞으로는 컴퓨터의 시대가 올것이라는 확신으로 대학을 중퇴한 둘은 금방 의기투합하게 되고 빌게이츠는 일본 지역의 마이크로소프트 판권을 니시 가즈히코에 일임합니다.

니시 가즈히코는 일본에 돌아온 후에 NEC와 같은 대기업과 접촉해서 베이직을 판매하기 시작하는데요. 니시 가즈히코의 공격적인 마켓팅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은 불티나게 팔리고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보다도 일본에서 더 많은 돈을 벌게 됩니다. 이때 번 돈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가 MS-DOS를 개발할 자금을 마련했다고 할 정도로 말이죠.

니시 가즈히코는 아스키사의 사장인동시에 마이크로소프트의 부사장을 겸직하면서 빌 게이츠와는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됩니다.

문제는.. 니시 가즈히코가 많은 돈을 번 이후에 .. 초특급 호텔에다가 헬기를 타고 나니면서 온갖 사치와 향락에 빠져서 많은 돈을 탕진합니다.  걸핏하면 빌 게이츠에게 전화를 걸어서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할 정도였습니다. 처음에는 50만달러가 넘는 거액의 돈도 척척 보내주었던 빌 게이츠였지만 점점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는 1986년 일본에 지사를 열고 독점적 판매권한을  니시 가즈히코로부터 박탈하면서  둘의 관계는 영영 멀어집니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손정의 입니다. ^^;;

손정의는 니시 가즈히코와 라이벌 관계였습니다. 니시 가즈히코의 아스키가 잡지와 소프트웨어 유통이라는 두개의 사업으로 돌아갔는데.. 소프트 뱅크 역시 컴퓨터 잡지와 소프트웨어 총판으로 먹고 살았거든요. 근데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적인 판매권한을 가졌던 니시 가즈히코는 일본 컴퓨터 업계를 쥐락펴락하였고 각종 협회 회장으로써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라이벌이었던 손정의와 니시 가즈히코는 사사건건 부딪혔습니다.

근데 니시 가즈히코와 빌게이츠가 결별하자 잽싸게 손정의가 접근을 하지요.

일본 소프트웨어 유통의 양대축이었던 손정의와 멀리할 필요는 없지요.

어느날  빌게이츠는 손정의에게 PC-WEEK를 보여주면서 세상에서 가장 정확한 정보를 담은 잡지라고 극찬합니다. 그러자 손정의는 즉시 PC-WEEK의 모회사인 ZD-NET을 매수하기로 결정합니다. 21억달러에 ZD-NET을 매입하자 손정의는 세계 언론의 조명을 받기 시작합니다. 이때 손정의는 ZD-NET의 사장인 에릭히포를 통해서 유망한 회사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하는데.. 에릭히포가 손정의에게 야후를 소개하게 되고. 손정의는 미국 야후에 투자하는 대신 일본 야후를 소유하게 되죠. 야후가 대박난 덕분에 오늘날 인터넷 기업 소프트뱅크로 거듭나게 되는겁니다.

이렇게 빌게이츠와 손정의는 서로의 사업에 조언도 해주었고.  미래로 가는길이라는 책을 쓴 빌게이츠는 손정의에게 책을 선물하면서 첫페이지에 당신은 나 같은 승부사라고 적을 정도로 서로 친밀하게 느낀다고 하더군요.

손정의 집 정원에는 시냇물이 있는데.. 이게 빌게이츠 집에서 본 후에 자기집에도 만든거라는군요.

일반적으로 정원에 작은 웅덩이가 있는데.. 고인물은 썩잖아요..

그래서 항상 변화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웅덩이가 아니라 시냇물을 만들었답니다.

빌게이츠 초호화주택처럼 손정의 저택역시 엄청나게 크다죠


그리고 빌 게이츠가 일본기업들에게 특별히 고마워하는건….

일본 업체들을 통해서 빌 게이츠는 일하는 방식을 배웠다는 겁니다.  벤처기업들은 자유분방한 대신 체계적이지 못한 경향이 있는데.. 빌게이츠는 일본 기업을 통해서 많이 배웠다고 하더군요. 특히 납기일을 어기거나 버그가 있을 경우 일본기업의 직원들이 미국으로 날라와 엄청나게 불평을 해대었답니다. 한때 마이크로소프트 본사 건물에는 일본회사사람들만 머무르는 사무실이 있을정도로.. 일본인들이 엄청 들락거렸죠. 이때 일본인들의 잔소리들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이 고생을 했지만 그만큼 마이크로소프트가 성장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빌 게이츠가 일본을 좀 각별하게 여긴다고 하더군요. ^^;;

덧말

1983년 일본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주도로 개발된 컴퓨터 MSX도 발매된적이 있습니다 니시 가즈 히코가 야심차게 진행한 사업인데요. MSX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를 사용한 컴퓨터 규격안인데 소니와 캐논등 여러회사가 활발히 참여했지만.. 사업적으로 실패했습니다. 하여튼 MSX에서 보듯이 마이크로소프트와 일본은 각별한 그런게 있긴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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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IT2008.04.1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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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1977년 12월 13일 과속으로 인해서 경찰에 체포된 머그샷입니다. 빌게이츠는 1975년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이후 최초의 소형 컴퓨터 업체인 MITS사의 알테어 용으로 베이직을 만들어주었고 이미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23살의 젊은 나이에 벌써 포르쉐를 가지고 있던 그는 동네에서 속도를 즐겼죠. 그런데 당시 마이크로소프트 사무실은 지금의 시애틀이 아니라  뉴 멕시코주의 앨버커키에 있었습니다. 워낙 시골마을이어서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은 자주 외부로 출장을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 사이에는 공항까지 가장 빨리 차를 몰고가는 내기를 자주했는데 빌 게이츠 역시 이 경쟁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속도위반으로 경찰에게 자주 걸렸죠. 특히 빌 게이츠는 비행기 이륙시간 10분전에 사무실에서 공항으로 출발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과속에도 자주 걸리고 비행기 이륙직전에 비행기를 억지로 멈춰서 탄적도 한두번이 아니랍니다. 하루는 너무 바뻤던 빌게이츠는 과속을 하던중 경찰이 정지하라는 명령을 어기게 되고 교통신호까지 위반을 하게 되는 연타를 날림으로써 결국 경찰에 의해서 체포되고 위의 굴욕사진을 찍고 맙니다.

그런데 빌게이츠하면 왠지 모범생 같고 바른생활 사나이 처럼 보이지만 승부욕이 강해서 각종 잡기에  능한게 빌게이츠 입니다. 하버드 대학교 당시 수업은 안들어 가고 기숙사에서 포커를 즐겼는데요. 이때 딴 금액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자본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린시절부터 여러 운동을 했는데 스케이트를 그렇게 기가막히게 타고.. 골프도 수준급이랍니다. 그가 운동하는거 보면 가장 의외라고 할정도로 운동신경이 뛰어나다는 군요.


덧말: 안녕하세요. 작가 김정남입니다. 저의 블로그에서는 IT와 관련된 재미있는 각종 비하인드 스토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아래 지금까지 연재한  글들을 링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IT와 관련된 글들을 지속적으로 연재할 예정이니 여러분의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2008/06/20 - [IT] - 기적의 승부사 애플과 닌텐도의 화려한 부활!
2008/04/13 - [IT] - 애플과 닌텐도에게 꼭 배워야 할 교훈!
2008/05/18 - [IT] - 애플의 감성마케팅이 성공한 이유!
2008/05/12 - [IT] - 영화같은 스티브잡스의 삶과 사랑!
2008/06/27 - [IT] - 타고난 사업가 빌게이츠의 일화들
2008/06/26 - [게임] - 닌텐도 게임천재에게 배우는 행복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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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마음의 등불2008.03.20 01:42


세계 최고의 디지털리더 9인의 이야기 - 10점
김정남.김정현 지음/팜파스

머리말


썬마이크로 시스템즈, 컴팩, 넷스케이프, 아마존, 구글에 투자하여 대성공을 거둔 세계 최고의 벤처 캐피탈 리스트 존 도어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끊임없이 외치는 디지털 전도사이다.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합법적인 부의 창출이 바로 IT에 의해서 이루었다며 디지털 경제를 찬양하기에 바쁘다. 디지털에 의해서 많은 부를 축적한 세계 최고의 투자가 답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디지털 시대의 주역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특히 그는 디지털에 의해서 새롭게 구축된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하였는데 이는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깊은 감명을 을 주었고 이른바 신경제론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였다.  존 도어가 주창한 신경제론에 의하면 과거의 회사는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계급사회였지만 이제는 같은 목표를 가진 팀으로 변하였다. 직위는 곧 월급으로 구분되었지만 디지털시대에는 스톡옵션이 더 중요해졌다. 과거에 회사란 무릇 공장설비와 같은 자산의 크기로 움직였지만 이제는 정보력이 회사의 운명을 좌우한다. 또한 안전지향적인 회사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방식으로 경영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이 밖에도 구경제와 비교할 수 있는 여러요소들이 많이있다. 그런데 이러한 신경제 이론들을 하나하나 나열하게 되면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 탁월한 견해라며 동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지식들은 너무나 단편적이어서 응용력도 떨어지고 얼마 못 가서 우리 기억력의 한계로 금방 망각의 바다로 빠지고 실질적으로 인생의 도움이 별반 되지 않는다.

우리의 두뇌는 감정을 자극하면서 이야기의 구조를 가져야만 오랫동안 기억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실제 경험을 통하여 배운 것에 대해서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관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경험의 결과로 얻게 된 지식은 대개 이미 앞서가는 현인들이 이미 비슷한 경험을 하고 깨달은 바를 책으로 남긴 경우가 많다. 시간절약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직접 경험을 하면서 일일이 스스로 깨달음을 축적하기보다는 독서와 같은 학습의 결과로 지식을 쌓는 게 효율적이다. 그래서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이미 현인들이 직접 경험을 통하여 얻어낸 지혜를 습득함으로써 처음 제로상태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현인들이 만들어 놓은 토대위에서 새로운 발전을 모색하는 사람만이 시대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너무나 자주 들으면서도 반드시 알아야  되는 용어들이 창조경영, 속도경영, 지식경영, 고객만족경영, 감성마케팅, 블루오션등이다. 단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 덕분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그냥 단순히 책을 읽고서 관련 단어들을 암기해봐야 그 좋은 내용의 중요성을 간파하기 힘들고 막상 일상생활에서는 응용력을 가지기 힘들다.  이럴 때는 우리의 감성을 자극해서 관련내용을 숙지하고 이해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우리 시대의 생활을 바꾸어 놓은 위대한 디지털 리더들의 삶과 연관되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면 그 내용이 가슴으로부터 와닿기 때문에 어느덧 여러분들은 창조경영이니 속도경영이니 같은 말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우리 삶 속에서도 직관력을 발휘하게 도와준다.

이 책에서 설명해주는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예를 들어 보자. 그는 창조적인 아이디어(창조경영)와 치밀한 기술(지식경영)을 접목해서 남들보다 한 발짝 빠르게(속도경영) 개인용 컴퓨터, 디지털 에니메이션, 아이팟을 개발하였고 이를 통하여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블루 오션을 창출하였다. 고객의 삶을 풍요롭게 변화시키고자 하는 그의 열정은 고객의 감성을 자극하였고 이는 고객들의 충성도(고객 만족경영)를 높여서 애플의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된 것과 같은 근사한 기분을 선사하였다(감성마케팅).  이렇듯 앞에서 이야기한 최신 경영용어들이 스티브 잡스의 업적을 정리하면 자연스럽게 풀이가 된다. 존 도어의 신경제론도 그렇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창업했지만 경영진에 의해서 쫓겨나기도 하고 복귀도 했다. 결국 애플에는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가 아니라 애플의 비전에 의해서 누구든지 고용주가 될수도 있고 피고용인이 될수도 있는 팀과 같다.  애플은 사내에 인력구성이 팀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회사의 고위직이라도 다른 팀의 일에 왈가왈부 할수 없을적도로 각 팀간의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연봉은 단돈 1달러이지만 그는 스톡옵션덕분에 10억달러가 넘는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사업에 있어서도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안타를 치기보다는 홈런을 치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한다.  결국 존도어의 신경제 이론을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와 결합시키면 우리 모두 더욱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소개하는 디지털 리더들의 성공스토리 자체가 흥미롭고 감동적인 만큼 우리의 가슴속에 오래 남게 되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일상생활을 살아가는데 삶의 자세나 행동에 있어서 큰 교훈을 선사해준다. 무엇보다 이책에서 소개하는 아홉 명 의 삶을 보면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만나보게 됨으로써 우리 스스로 디지털 시대의 주역이 되기 위한 방향을 잡는데 큰 도움을 주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필자가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하다.

빌 게이츠는 2006년 5월 월스트리트 저널 기고문에서 PC 시대의 1막이 끝나가고 있으며 새로운 시대가 돌입했다고 말하였다. 필자는 현재의 변화가 단순히 PC시대의 1막 이라기보다는 디지털 시대의 1막이 종료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디지털 시대의 주역들은 컴퓨터와 관련한 제품을 통하여 승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훨씬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소프트웨어 전문회사였던 마이크로 소프트가 가정용 게임기를 만들고 있으며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던 애플은 MP3 음원을 판매하는 아이튠즈를 운영하고 휴대폰 시장에도 진출했다. 직접 판매 방식으로 컴퓨터를 팔던 델컴퓨터는 회사의 이름을 델로 바꾸고 가전시장에 뛰어들었다. 인텔 역시 마이크로 프로세서 전문 회사라는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서 로고도 바꾸면서 변화를 모색중이다. 소프트웨어 유통회사였던 소프트뱅크는 이동통신사를 인수해서 사람들을 깜짝 놀래켰다. 컴퓨터 하드웨어 회사인 IBM은 서비스 회사로 바뀌었다. 검색이 전문인 구글은 웹오피스로 마이크로 소프트를 위협하는 동시에 유투브를 17억 5천만달러라는 거액에 인수하면서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부분을 강화하였다.  지금 디지털 세계는 컨버전스(융합)와 엔터테인먼트라는 핵심 키워드 아래서 중대한 변화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으며 이는 디지털 시대의 2막을 알리는 전초전이기도 하다.

우리 대한 민국은 다행히 세계 최고의 네트워크 인프라를 바탕으로 디지털 시대에 성공적으로 안착하였다. 다만 세계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회사와 인물이 많이 부족하다. 디지털 시대의 처음 시작 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현재 새롭게 열리는 디지털 시대 2막 역시 분명 많은 기회의 문이 존재함을 뜻한다. 이 책에서 디지털 리더들이 성공한 이유도 역시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고 이를 기회 삼아서 적당한 때에 적당한 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디지털 시대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 사람도 기회를 발견해서  디지털 세계를 좌지우지 하는 많은 리더들이 탄생하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필자가 언젠가 이 책의 개정판을 낼 때는  세계최고의 디지털 리더중에 한국인이 포함되어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세계 경제를 뒤바꾼 디지털 리더 9인의 감동적인 성공 스토리!

디지털 시대의 주역으로 부와 명예를 한 손에 거머쥔 위대한 디지털 리더들의 이야기.『세계 최고의 디지털리더 9인의 이야기』는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인 빌 게이츠에서 구글의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까지 전 세계의 흐름을 뒤바꾼 디지털 주역 9인의 실패와 성공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저자는 빌 게이츠와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을 포함하여 애플 창업자인 스티븐 잡스, 현재 델을 이끌고 있는 마이클 델, 인텔을 성공시킨 앤디 그로브, IBM을 부활시킨 루이스 거스너, 소프트 뱅크의 손정의, 슈퍼마리오 기획자 미야모토 시게루 등 세상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 9인을 '디지털 리더'라고 정의하며 그들의 삶을 통해 성공 법칙을 되새겨본다.

이들을 통해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는 창조 경영과 치밀한 기술의 지식 경영, 남보다 한 발 앞서 자리를 차지하거나 개발하는 속도 경영,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는 고객만족 경영 등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도록 하였다. 아울러 꿈을 이루기 위해 디지털 리더들이 어떻게 노력했는지 그 과정도 실감나게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 이 책의 독서 포인트!
개성 넘치는 9인의 디지털 리더들을 통해 배우는 경제 패러다임과 삶의 법칙, 성공법칙들은 디지털 시대의 주역으로 살아가고 싶은 당신에게 좋은 나침반이 되어 준다. 
 
 
  
 
 
 
 김정남 & 김정현

김정남과 김정현은 각각 인기 게임 <캠퍼스 러브스토리>와 <짜요짜요 타이쿤> 제작에 참가한 베테랑 게임 기획자이다. 형제인 이들은 『세계 최고의 게임 크리에이터 9인의 이야기』(2006년 문화관광부 우수 추천도서)와 게게임의 운명을 결정하는 상상력과 기획』(인하대학교 문화경영대학원 기본필독서)을 공동 집필하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디지털 경영과 엔터테인먼트에 관한 책들을 출간할 예정이다.
 
 
 
  
 
 
 
 1. 디지털 시대의 황제 -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소프트웨어의 기초를 마련하다 | 컴퓨터 왕좌에 오르다 | 디지털 시대의 황제로 등극하다 |역사상 최고의 자선사업가를 꿈꾸다 | 경쟁에서는 이겨야 하는 승부욕을 가진 소년 | 한 번 빠지면 미치도록 사랑하는 놀라운 열정 | 기회가 오면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회사의 신화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 최고의 협상가 | 레드오션의 최강자! | 미래는 디지털 엔터테인먼트에 달렸다! | 빌 게이츠의 삶과 가족들 | 빌 게이츠의 성공 요소 | 빌 게이츠의 약력

2. 디지털 시대의 혁명가 - 스티브 잡스(애플 CEO)
개인용 컴퓨터의 선구자 애플시리즈 | 운영체제와 디자인의 신기원 매킨토시 | 디지털 엔터테인먼트의 혁명 픽사와 아이포드 |아름다운 인연이 있기에 행복했던 어린 시절| 황금 배짱을 가진 사나이 | 스티브 잡스, 날개를 달다 | 사람을 움직일 줄 아는 카리스마 | 창조적 파괴 | 역사상 가장 뛰어난 기획자 | 지치지 않는 열정 | 스티브 잡스의 삶과 사랑 | 스티브 잡스의 성공 미학 | 스티브 잡스 약력

3. 디지털 시대의 거장 - 마이클 델(델 회장)
개인용 컴퓨터의 왕이 되다 |샘 월튼과 헨리 포드를 합치는 전략 | 중퇴생 신화 3총사! | 타고난 사업가 마이클 델| 유통단계 없는 직접 판매모델을 고안해내다 | 회사에 대한 신뢰가 생명이다 | 실수에서 배운다! | 최고의 효율성을 찾아라! |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향해야 한다 | 또다시 찾아온 위기! | 마이클 델의 삶과 사랑 | 마이클 델의 성공미학 | 마이클 델 약력

4. 디지털 시대의 현인 - 앤디 그로브
실리콘밸리의 클래식 인텔 | 디지털 역사의 신기원 - 트랜지스터 | 인텔과 앤디 그로브 | 디지털 시대의 두뇌를 만들어내다 | 삶의 끝에서 부른 희망의 노래 | 제2의 삶이 시작되다 | 머리가 세 개 달린 괴물, 인텔 | 미스터 클린 | 선택과 집중의 전략 | 마케팅의 교과서 인텔 인사이드 | 항상 초긴장 상태를 유지하라! | 앤디 그로브의 가족과 삶 | 앤디 그로브의 성공 미학 | 앤디 그로브 약력

5. 디지털 시대의 손자(孫子)! - 손정의(소프트뱅크 회장)
일본 최고의 갑부 손정의 | 새로운 세상에 눈뜨다 | 타고난 사업가적 기질 | 설득의 천재 |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는 직관력 |속도가 곧 경쟁력이다 | 상생의 원리 | 도전은 계속 되어야 한다 | 손정의의 삶과 사랑| 손정의의 성공 미학 | 손정의 약력

6. 279디지털 시대의 경영귀재! - 루이스 거스너(전 IBM CEO)
IBM의 시작 | 화려했던 시절은 가고 | IBM을 부활시켜라! | 모든 가치는 고객의 만족으로부터 시작한다 |리더는 문화를 바꿀 줄 알아야 한다 | 과감한 구조조정 | 최고의 팀워크로 승부하라! | 지식을 이용하는 서비스 회사로의 대변신! | 루 거스너의 가족과 삶 | 루 거스너의 성공미학 | 루 거스너 약력

7. 디지털 시대의 행복 전도사! - 미야모토 시게루
비디오 게임의 창세기 |게임을 부활시킨 미야모토 시게루 |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다| 위기는 곧 기회 |가장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다 | 넘버원이 아니라 온리원이 되고 싶다 | 원점으로 돌아가자! | 미야모토 시게루의 삶과 사랑 | 미야모토 시게루의 성공 미학 | 미야모토 시게루 약력

8. 디지털 시대의 성공 방정식! - 구글 가이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인터넷의 제왕 구글 | 인터넷 산업의 아버지 넷스케이프 | 인터넷을 통하는 대문 야후 | 인터넷 비즈니스의 시작 아마존 | 인터넷의 완벽한 수익모델 이베이 |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과 교육열 | 컴퓨터와의 특별한 만남 그리고 수학에 뛰어난 이공계생 | 좋은 친구와 함께 사업을 시작하라 |좌절을 이겨낼 수 있는 강력한 도전정신 | 벤처 인프라의 도움을 받다 | 삼두체제로 회사의 체계를 갖추다 |좋은 회사에서 위대한 회사로 |마이크로소프트와의 대결 | 구글 가이스의 성공 미학 |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연혁
 
 
 
  
 
 
 
 세계 최고의 디지털 리더 9인
디지털 시대의 황제 빌 게이츠(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소프트웨어 개념 자체가 희박하던 1975년 여관방에서 마이크로 소프트웨어를 창업하여 도스와 윈도우로 13년 연속 세계최고의 갑부의 자리에 오른 디지털 시대의 황제이다.

디지털 시대의 혁명가 스티브 잡스(현 애플 CEO)
허름한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하여 개인용 컴퓨터의 시작을 이끌었다. ‘토이 스토리’와 ‘아이팟’의 성공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연 그는 현재 디지털 시대를 선도하는 혁명가이다.

디지털 시대의 거상 마이클 델(현 델 회장)
천 달러의 자금으로 기숙사에서 직접 판매 방식의 델 컴퓨터를 창업하여 전 세계 컴퓨터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른 그는 자산이 150억 달러가 넘는 디지털 시대의 거상이다.

디지털 시대의 현인 앤디 그로브(전 인텔 CEO)
단돈 20달러를 가지고 홀로 미국에 망명한 그는 세계 최초로 메모리와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개발한 인텔을 성공으로 이끌고 실리콘 밸리의 토양을 닦은 디지털 시대의 현인이다.

디지털 시대의 손자(孫子) 손정의(현 소프트 뱅크 CEO)
재일교포 출신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의 불모지였던 일본에서 소프트웨어 유통과 인터넷 포탈사이트 야후로 일본 최고의 부자에 오른 디지털 시대에 환생한 손자다.

디지털 시대의 경영 귀재 루이스 거스너(전 IBM CEO)
기업 역사상 최악이 적자를 기록하면서 도산의 위기로까지 몰렸던 IBM의 CEO로 전격취임하여 IBM을 완벽하게 부활시키고 전성기를 연 디지털 시대의 경영 귀재이다.

디지털 시대의 행복 전도사! 미야모토 시게루(현 닌텐도 전무)
게임 역사상 최고 걸작으로 인정받는 ‘젤다의 전설’과 가장 많이 팔린 게임 ‘슈퍼 마리오’의 기획자인 그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선사하는 디지털 시대의 행복전도사다.

디지털 시대의 성공 방정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구글 창업자)
인터넷 검색에 수학적인 공식을 접목하여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검색엔진을 개발한 그들은 기업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구글을 통하여 디지털 시대 2막의 새로운 성공 방정식을 창조해내고 있다.

 
 
 
  
 
 
 
 『세계 최고의 디지털 리더 9인의 이야기』는 디지털 시대의 주역으로 부와 명예를 한 손에 거머쥔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이클 델, 앤디 그로브, 손정의, 루이스 거스너, 미야모토 시게루,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9명의 삶과 성공스토리를 흥미롭게 엮은 책이다. 이 책에는 그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흘린 땀과 결실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디지털 리더들의 이야기를 통해 배우는 경제 패러다임과 삶의 법칙!
창조 경영, 속도 경영, 지식 경영, 고객만족 경영, 감성 마케팅, 블루오션 등 현 시대의 키워드라 불리는 것들을 디지털 리더들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실천했고, 성공으로 증명해 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살펴보자. 그는 창조적인 아이디어(창조 경영)와 치밀한 기술(지식 경영)을 접목해서 남들보다 한 발짝 빠르게(속도 경영) 개인용 컴퓨터, 디지털 애니메이션, 아이팟을 개발하였고 이를 통하여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블루 오션을 창출하였다. 고객의 삶을 풍요롭게 변화시키고자 하는 그의 열정은 고객의 감성을 자극하였고 이는 고객들의 충성도(고객만족 경영)를 높여서 애플의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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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디지털 리더 9인의 이야기』는 디지털 시대의 주역으로 부와 명예를 한 손에 거머쥔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마이클 델, 앤디 그로브, 손정의, 루이스 거스너, 미야모토 시게루,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9명의 삶과 성공스토리를 흥미롭게 엮은 책이다. 이 책에는 그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흘린 땀과 결실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디지털 리더들의 이야기를 통해 배우는 경제 패러다임과 삶의 법칙!
창조 경영, 속도 경영, 지식 경영, 고객만족 경영, 감성 마케팅, 블루오션 등 현 시대의 키워드라 불리는 것들을 디지털 리더들은 이미 수십 년 전에 실천했고, 성공으로 증명해 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살펴보자. 그는 창조적인 아이디어(창조 경영)와 치밀한 기술(지식 경영)을 접목해서 남들보다 한 발짝 빠르게(속도 경영) 개인용 컴퓨터, 디지털 애니메이션, 아이팟을 개발하였고 이를 통하여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블루 오션을 창출하였다. 고객의 삶을 풍요롭게 변화시키고자 하는 그의 열정은 고객의 감성을 자극하였고 이는 고객들의 충성도(고객만족 경영)를 높여서 애플의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된 것과 같은 근사한 기분을 선사하였다(감성 마케팅).
이렇듯 최신 경영 법칙들이 스티브 잡스의 업적을 정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세계 최고의 기업들의 성공 비법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소개하는 디지털 리더들의 성공스토리 자체는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수많은 시련을 극복해 낸 그들의 열정은 감동스럽다. 동시대를 치열하게, 그리고 앞서 살아나가고 있는 그들의 삶은 우리에게 삶의 목표와 원칙을 되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 줄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주역이 될 당신, 당신의 역할 모델을 찾아라!
동기부여 전문가인 앤서니 로빈슨은 “성공하고 싶다면 같은 분야에서 먼저 성공한 사람의 모델을 찾아서 그들의 생각과 행동방식을 똑같이 따라가라”고 했다. 앞서 성공한 사람처럼 되기 위해 생각하고 노력하면 결국 그 사람처럼 성공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아홉 명의 개성 넘치는 디지털 리더들의 삶은 디지털 시대의 주역으로 살고자 하는 당신에게 좋은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이다.

세계 최고의 디지털 리더 9인
디지털 시대의 황제 빌 게이츠(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소프트웨어 개념 자체가 희박하던 1975년 여관방에서 마이크로 소프트웨어를 창업하여 도스와 윈도우로 13년 연속 세계최고의 갑부의 자리에 오른 디지털 시대의 황제이다.

디지털 시대의 혁명가 스티브 잡스(현 애플 CEO)
허름한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하여 개인용 컴퓨터의 시작을 이끌었다. ‘토이 스토리’와 ‘아이팟’의 성공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연 그는 현재 디지털 시대를 선도하는 혁명가이다.

디지털 시대의 거상 마이클 델(현 델 회장)
천 달러의 자금으로 기숙사에서 직접 판매 방식의 델 컴퓨터를 창업하여 전 세계 컴퓨터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른 그는 자산이 150억 달러가 넘는 디지털 시대의 거상이다.

디지털 시대의 현인 앤디 그로브(전 인텔 CEO)
단돈 20달러를 가지고 홀로 미국에 망명한 그는 세계 최초로 메모리와 마이크로 프로세서를 개발한 인텔을 성공으로 이끌고 실리콘 밸리의 토양을 닦은 디지털 시대의 현인이다.

디지털 시대의 손자(孫子) 손정의(현 소프트 뱅크 CEO)
재일교포 출신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의 불모지였던 일본에서 소프트웨어 유통과 인터넷 포탈사이트 야후로 일본 최고의 부자에 오른 디지털 시대에 환생한 손자다.

디지털 시대의 경영 귀재 루이스 거스너(전 IBM CEO)
기업 역사상 최악이 적자를 기록하면서 도산의 위기로까지 몰렸던 IBM의 CEO로 전격취임하여 IBM을 완벽하게 부활시키고 전성기를 연 디지털 시대의 경영 귀재이다.

디지털 시대의 행복 전도사! 미야모토 시게루(현 닌텐도 전무)
게임 역사상 최고 걸작으로 인정받는 ‘젤다의 전설’과 가장 많이 팔린 게임 ‘슈퍼 마리오’의 기획자인 그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재미를 선사하는 디지털 시대의 행복전도사다.

디지털 시대의 성공 방정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구글 창업자)
인터넷 검색에 수학적인 공식을 접목하여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검색엔진을 개발한 그들은 기업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구글을 통하여 디지털 시대 2막의 새로운 성공 방정식을 창조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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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