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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이야기2010.12.06 08:22




애플이 잘나가면 잘나갈수록 스티브 잡스가 칭찬을 들으면 들을수록 다른 한편에서는 그에 대한 비난도 커지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비난중 하나는 스티브 잡스는 남의 공을 가로채는 기회자의주일뿐 애플의 성공에 기여한 것은 사실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레퍼토리중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애플컴퓨터에 대한 이야기가 단골메뉴가 된다.  스티브 워즈니악의 공을 스티브 잡스가 다 빼앗아 갔다는 것이다.  과연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의 공로를 다 빼앗아가서 혼자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을까?

그렇다면 우선 스티브 잡스가 애플 컴퓨터 초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제대로 한번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컴퓨터를 만들게 된 것은 파퓰러 일렉트로니스에서 세계최초로 탄생한 알테어 8800가 등장했다는 기사를 읽고서 시작된다.  HP에서 근무하던 스티브 워즈니악은 밤새도록 컴퓨터를 만들었고 그가 속했던 일종의 사교모임인 홈브루 클럽에 공개하게 된다.

스티브 워즈니악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스티브 잡스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고 램의 사용에서 아주 중요한 조언을 한다. 원래 스티브 워즈니악은 AMI 사의 램을 쓰고 있었는데 스티브 잡스는 인텔의 램을 쓰도록 설득했다. 램하나 바꾼게 뭐 별건가 싶겠지만 원래 램을 바꾸기전까지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사이에는 오랜논쟁이 벌어졌고 스티브 잡스의 뜻대로 이루어진 조치였으며 나중에 스티브 워즈니악은 컴퓨터 개발과정에서 사장 운이 좋았던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이렇게 완성된 애플 1 컴퓨터는 유감스럽게도 전혀 눈길을 끌지 못한다. 애플1 컴퓨터의 가능성을 본 사람은 스티브 워즈니악 자신도 아니고 스티브 잡스였다.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에게 애플 1컴퓨터를 판매하자고 하였다. 처음 스티브 워즈니악은 거절의사를 밝혔지만 스티브 잡스 특유의 설득력으로 스티브 워즈니악의 마음을 돌려놓는다.

 스티브 잡스는 자동차를 그리고 스티브 워즈니악은 전자계산기를 팔아서 처음 사업 자금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동업자를 한명 불러들인다.  아타리에서 알게된 론웨인으로 40대인 그는 다양한 경험으로 사업과 영업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과 일을 하다보면 여러 분쟁과 갈등이 생길것을 알고 일부러 나이많은 론웨인을 영입한다. 론웨인은 동업계약서처럼 법적인 문제와 회사로고와 매뉴얼등을 작성하였다.

 또한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든 컴퓨터를 대량생산하기 위해서는 인쇄 회로 기판이 필요했다. 이역시 스티브 잡스가 아타리에서 알게된 캔틴에게 부탁했다. 캔틴이 애플의 일을 해준 것은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 “호의”를 베푼것이었다. 여기에 스티브 잡스는 아주 결정적인 거래를 하나 성사시킨다. 바이트숍을 운영하는 폴 테럴에게 찾아가서 애플 1 컴퓨터를 구매해달라는 것이었다. 폴 테럴은 스티브 잡스를 경계했지만 곧 50대의 컴퓨터를 현금으로 사주겠다고 하였다. 이 거래는 스티브 워즈니악도 믿지못한 애플의 기념비적인 첫거래였고 애플의 탄생을 알리는 그런 거래였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이를 애플 최대의 사건이라고 평한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의 활약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당장 애플 1컴퓨터를 조립하기 위해서는 부품을 살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이미 창업자금을 다 쓴 빈털터리 상황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은행에 찾아갔지만 단 번에 거절당했다. 친분있는 스탠 포드 대학교 교수를 통해서 부품 일부를 융퉁했다. 실리콘 밸리 곳곳을 찾아다녔지만 스티브 잡스에게 부품을 제공하겠다는 업체는 없었다. 다행히 키럴프 일렉트로닉스의 밥뉴턴은 폴 테럴이 신용을 보증한다면 부품을 외상에 구입하겠다고 말했다. 이 역시 스티브 잡스의 수완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거래였다. 원래 컴퓨터 부품가게에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가 함께 찾아가면 이런 진풍경이 벌어졌다고 한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필요한 부품이 있으면 그게 꼭 필요하다고 뗴를 쓰기마련이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그를 매장 한켠으로 밀어넣고서 더 좋은 조건의 거래를 위해서 점원과 점잖게 협상에 들어갔다고 한다. 부품 수급은 스티브 잡스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작업공간도 제공했다. 애플의 창업이 스티브 잡스 아버지 집의 차고라는 것은 원래 유명하니 다 알고 있을것이다. 그런데 그 차고라는 것이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원래 스티브 잡스 아버지는 부업으로 자동차를 수리해서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생떼에 아버지는 그 공간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장소제공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의 여동생이 결혼하기전 쓰던 방에 부품을 저장했고  스티브 잡스의 방에서 납땜작업을 하였다. 또한 스티브 잡스부모님집의 식탁은 사무실로 이용되었다.

  컴퓨터를 만드는 일이 쉬운 것이 아닌 만큼 그 공간에서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밤을 새면서 작업에 열중해야 했다.그들이 작업한 방에는 온갖 쓰레기들이 싸여있었는데 이를 청소해준 사람이 바로 스티브 잡스의 어머님이었다.

담낭수술을 받고 회복중이었던 스티브 잡스의 어머니는 전화를 응대하였고 찾아오는 손님을 대접해주었다. 그리고 행여나 아들의 일에방해가 되지 않을려고 일부러 피해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싸우면 이때 중재를 했던 사람이 바로 스티브 잡스의 아버지였다. 스티브 잡스의 아버지는 컴퓨터를 시험하는 장치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작업대등  컴퓨터를 생산하기 위한 장비와 각종 기구등을 구입하는 일은 역시 스티브 잡스의 몫이었다.

 컴퓨터를 조립하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여동생과 친구에게 이일을 맡겼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조립된 제품의 불량여부를 체크하였다. 그리고 완성된 제품은 스티브 잡스가 차에 싣고 매장에 가져가서 현금을 받아왔다. 그런데 바이트숍의 터렐은 애플 1컴퓨터를 보고서 크게 실망했다. 그가 원하던 제품이 아니었기 떄문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와의 약속때문에 어쩔수 없이 제품을 받아야 했다. 폴테럴이 넘겨받은 애플 1 컴퓨터는 사실 전혀 팔리지 않았고 바이트숍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애플 1컴퓨터 덕분에 돈을 벌었기 때문에 애플 2컴퓨터로 이어질수는 있었지만 애플1자체는 스티브 잡스의 영업력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판매자체가 어려웠던 제품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일이 여기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자금 관리를 위해 보석 세공사로 일하는 엘리자베스홈스에게 회계장부를 작성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컴퓨터를 100대정도 조립했을 때 5000달러가 더 필요하게 되자 앨머에게 돈을 빌렸는데 처음에 돈을 빌려주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스티브 잡스의 화려한 설득력에 넘어가서 5천달러를 빌려주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이밖에도 바닥청소나 매뉴얼정리 그리고 과자사오기등 그가 할수 있는 모든 일을 하였다. 회사에 좀더 세련된 인상을 주기 위해서 팰러앨토의 우편함을 임대하거나 회사에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 전화 대행업자를 고용했고 또한 여러 직원들도 직접 뽑았다.  멀리사는 다니엘 콧케을 고용했을 때는 가족 소파를 침대로 개조해서 집에서 함께 지내기도 했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다니엘 콧케와 광고 초안을 작성을 했다.

 애플 1 컴퓨터를 만들때 보여준 스티브 잡스의 활약이 이정도일뿐이다. 애플2에서는 스티브 잡스의 활동은 더욱 커져갔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상품으로서 애플 1컴퓨터는 엄밀히 말하면 실패작이다. 왜냐하면 150여대가 판매되었지만 정작 그건 소매점에 넘기 물건이지 실제 판매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스티브잡스는 진짜 사업을 위해서는 제대로된 홍보와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시 홍보전문가인 레지스 메키너를 설득해서 애플컴퓨터의 일을 맡긴다. 레지스 메키너는 애플 컴퓨터의 일을 맡을 생각이 없었지만 스티브 잡스의 계속되는 설득에 넘아가고 만다. 레지스 메키너는 이런 이야기를 남긴다.

 살면서 내가 만난 사람들 가운데 진실로 미래를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던 사람을 두명 꼽는다면, 스티브 잡스와 인텔의 밥 노이스에요,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미래를 그리지 못한채 살아요, 스티브 들어왔고, 내 기억으로, 그는 작은 회의실에 앉아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어린이들, 컴퓨터를 사용하는 교사들, 그리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업가들에 대해 이야기했죠, 그것이 1976년이나 1977년, 그 즈음의 일이었어요  – 애플의 방식 50장-

 이렇게 스티브 잡스에게 반한 레지스 메키너는 벤처투자자인 돈 밸런타인을 소개한다. 스티브 잡스가 돈밸런타인을 찾아가자 돈 밸런타인은 스티브 잡스가 이단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 투자를 부탁하자 결국 인텔에서 스톡옵션을통해 백만장자가 된 마이크 마쿨라를 소개해주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의 차고를 직접 방문한 마이크 마쿨라는 역시 스티브 잡스의 설득에 넘어가 애플이 앞으로 포춘이 선정하는 500대기업에 뽑힐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고 9만 1천달러를 투자하게 된다. 고작 동아리 수준에 불과했던 애플이 이제 정식으로 주식회사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정작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에 전념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를 설득할 사람은 역시 스티브 잡스 밖에 없었다아버지, 어머니, 형, 친구들이 돌아가면서 전화를 하자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 없었던 스티브 워즈니악은 마음이 흔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전화를 하도록 시킨 사람이 바로 스티브 잡스 였던 것이다.

이런 일들을 해낸 스티브 잡스에게 과연 남의 공적을 가로챈사람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회사는 무릇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함께 모여서 무엇인가를 이루는 곳이다. 그리고 애플의 애플의 성공은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의 환상적인 파트너쉽이 이루어낸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적어도 애플2 컴퓨터까지는 하나처럼 움직였으며 누가 누구의 공을 가로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일푼이었던 두명의 젊은이가 차고에서 시작된 애플의 성공은 그자체로 너무나 멋지고 훌륭해서 필자는 당시 관련글을 읽을때마다 묘한 감동을 느낀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애플처럼 차고에서 시작된 그런 성공기가 만들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런 기적같은 성공에 누가 잘났고 누가 못났다고 우열을 가릴 필요가 있을까? 세상을 바꾸는데는 뜻이 맞는 두 명의 친구만으로도 가능하다는 이 위대한 전설의 교훈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고 장점을 극대화 해주는 친구의 중요성이지 누가 더 공헌을 했다면서 순위나 메기는 일은 아닐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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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