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워즈니악'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4.12 스티브잡스가 워즈니악을 만났을 때
  2. 2008.03.20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기업 애플의 연혁 (2)






내가 10살인가 11살 때쯤 에임스에 있는 나사 연구소에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보았어요. 그것은 진짜 컴퓨터는 아니었고, 컴퓨터와 선으로 연결된 단말기였죠. 어쨌든 나는 눈을 뗄 수 없었죠. 내가 처음으로 데스크톱 컴퓨터를 본 것은 9100A라 불리는 휴렛 팩커드의 제품입니다. ABL과 베이직이 돌아가는 세계 최초의 데스크톱 컴퓨터였어요.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스티브 잡스, 스미스소니언 협회 인터뷰 중에서



스티브 잡스는 어린 시절부터 각종 기기들에 푹 빠져 살았다. 한때 기계공으로 일했던 아버지는 차고에서 여러 기기를 수리하거나 제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주위를 맴돌며 기계와 친해졌다. 스티브 잡스가 다섯 살이 되자 아버지는 그를 위해 작업대를 직접 만들어 주면서 망치 같은 공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덕분에 각종 기계에 친숙해진 그는 휴렛 팩커드의 엔지니어인 래리 랭을 만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어린 시절 스티브 잡스가 살던 동네는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본거지였으며, 마침 HP 같은 벤처기업들이 성공 신화를 쓰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과수원 촌 동네였던 지역에 엔지니어들이 몰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동네는 엔지니어들의 천국으로 변해갔다. 이웃이었던 래리 랭은 호기심 많은 아이였던 스티브 잡스에게 부품을 이용해서 각종 전자장치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친절한 래리 랭의 가르침을 통해 전자제품의 내부 작동원리를 이해하게 되었고, 실제로 몇 가지 전자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의 식견은 아버지도 깜짝 놀랄 정도로 발전했다. 전자제품에 대한 지식을 익히면 익힐수록 그는 성취감과 함께 강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전자기기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그에게 일종의 도피처이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는 학교에서 외톨이였지만 전자기기에 대한 열정 덕분에 쿠퍼티노 중학교에서 빌 페르난데스(Bill Fernandez)라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둘은 동급생들과는 어울리지 못했지만 동네의 엔지니어들과 친교를 맺으면서 전자기기에 더욱 탐닉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학교생활에 관심은 없었지만 전자기기에 대한 열망으로 ‘와이어 헤드(Wirehead)’라고 불리는 전자공학 관련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주말이 되면 각종 전자부품을 다루는 가게에서 점원으로 아르바이트 일을 했고, 전자부품에 대한 열정은 때론 뻔뻔한 거짓말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새로운 전자기기를 만들던 그는 부족한 부품을 얻기 위해 회사에 전화를 해서는 새로운 전자장치에 필요한 부품을 구한다는 거짓말로 샘플을 무료로 받아내었던 것이다.


전자기기에 대한 관심은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을 만나면서 고스란히 컴퓨터로 옮겨졌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1950년 프란시스 제이콥 워즈니악(Fransis Jacob Wozniak)과 어머니 마가렛 루이스 워즈니악(Margaret Louise Wozniak) 사이에서 태어난다. 프란시스 제이콥 워즈니악은 록히드(Lockheed)에서 일하는 유능한 엔지니어였다. 성공한 아버지의 자녀들이 그렇듯이 워즈니악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엔지니어가 되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는 워즈니악에게 과학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었고, 덕분에 또래 아이들보다 월등한 지식을 자랑했다. 워즈니악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과학경진대회의 상들을 휩쓸었으며 6학년 때는 고등학생도 만들기 어려운 과학 과제물을 내놓아서 선생님을 놀라게 했다. 학교에서 과학과 수학의 천재로 명성이 드높았던 워즈니악은 아버지가 보는 공학 저널에서 세계 최초의 컴퓨터인 에니악(ENIAC) 관련 기사를 읽고는 그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이때부터 컴퓨터는 그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워즈니악은 이웃집에 살던 빌 페르난데스와 의기투합하여 직접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한다. 어느 날 스티브 잡스가 친구인 빌의 집에 방문했고, 마침 워즈니악이 만들고 있는 컴퓨터를 목격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의 컴퓨터와 전문 지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워즈니악 역시 자신의 말을 바로 이해하는 스티브 잡스가 마음에 들었다. 둘은 전자기기에 대한 열정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로 공통점이 많았다. 둘 다 장난을 좋아하고 특히 비틀즈와 밥 딜런의 음악을 사랑했는데, 함께 만나면 새로운 장난꺼리나 음악을 이야기하면서 더욱 친해졌다. 


벤처 자본가들은 두 명의 친구가 함께 공동으로 창업한 회사를 선호한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는 두 명의 파트너가 있다는 것은 사업을 할 때도 더 현실적이고, 추진력 있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많은 벤처기업들이 두 명의 창업자로부터 시작되었다. 세계 1위의 개인용 컴퓨터 제조업체인 HP는 벤처기업의 원조로 인정받는데, 이 회사는 빌 휴렛(Bill Hewlett)과 데이비드 패커드(David Packard) 두 명이서 차고에서 시작한 회사다. 인텔 역시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와 고든 무어(Gordon Moore) 둘이서 시작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이 창업했다. 인터넷 시대에도 이런 공식은 계속되고 있다. 제리 양(Jerry Yang)과 데이비드 파일로(David Filo)가 야후를 함께 만들었으며, 대학원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을 공동으로 설립했다. 이러한 전형적인 벤처 스토리는 애플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애플의 창업 역시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이 파트너 관계를 맺으면서 시작된다. 워즈니악은 기술에 능했고, 스티브 잡스는 기획이 뛰어났는데 둘의 능력이 결합되면서 환상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둘은 같은 아웃사이더이고, 장난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이것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반대되는 인물이다. 스티브 잡스가 한때 마리화나까지 필 정도로 뼛속까지 히피였다면, 워즈니악은 30살까지 술 한 모금 마시지 않았으며,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은 대단히 인기 있는 남자라고 생각할 정도로 히피와는 거리가 먼 순진한 사람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했지만, 워즈니악은 모임에 나가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될 정도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스티브 잡스 역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대외관계가 원만치 않았으나, 누구에게든 위축되는 법이 없었고 뻔뻔스러울 정도의 배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부품을 구입하기 위해 둘이 상점에 들어가면 워즈니악은 필요한 부품을 바라볼 뿐 점원과의 가격 협상은 노련한 스티브 잡스의 몫이었다. 워즈니악이 엔지니어였다면, 스티브 잡스는 기획자였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자신의 기술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면 이를 돈이 되는 사업으로 만드는 것이 스티브 잡스의 역할이었다. 워즈니악이 공짜로 전화를 걸게 해주는 블루박스를 만들었고, 이를 상품화한 것은 스티브 잡스였다.


워즈니악이 기술에 의존했다면 스티브 잡스는 자유로운 발상과 창조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워즈니악이 현실에 만족하며 살았다면 스티브 잡스는 항상 배고픈 강한 야망의 소유자였다. 이러한 둘의 성향은 애플 컴퓨터의 개발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애플 컴퓨터는 워즈니악이 우연히 파퓰러 일렉트로닉스(Popular Electronics)라는 잡지를 보면서 시작됐다. 1975년 1월 파퓰러 일렉트로닉스는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컴퓨터 알테어 8800(ALTAIR 8800)의 탄생을 대서특필하였다. 이 기사는 당시 컴퓨터 애호가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으며, 미국 전역에서 알테어 8800을 구입하고자 제작사인 MITS에 서로 수표를 보낼 정도로 난리였다. 알테어 8800의 인기는 제작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은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재미있게 읽으신 분은 저 밑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좋아요 버튼좀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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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애플 이야기2008.03.20 01:17


애플 연혁

1950년 애플의 공동창업자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서 태어나다.

1955년  스티브 잡스가 샌프라시스코미혼모인 조앤 캐롤에게 태어나지만 사내아이를 원하던 폴과 클라라 부인에게 입양된다.

1971년  홈스테드 고등학교를 같이 다니던 빌 페르난데즈의 소개로 21살의 대학생이었던 스티브 워즈니악과 교류하게 된다.

1972년  스티브 잡스가 오리곤주의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 칼리지 대학의 물리학과에 입학 하지만 한학기만 다니고 자퇴한다.

1974년  스티브 잡스는 퐁의 성공으로 당시 최고의 컴퓨터 벤처기업으로 군림하던 아타리에 취직하여 게임기획자가 된다.

1975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캘리포니아에 기반한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알테어 8800에 깊은 인상을 받은 스티브 워즈니악은 비싼가격으로 인해서 구입할 수가 없게 되자 손수 개인용 컴퓨터를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1976년 MOS Technology 6502 칩을 사용한 그들의 첫번째 컴퓨터 애플 1을 홈브로 컴퓨터 클럽에 최초로 선보인다.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는 상품화를 위해 휴렛패커드사람에게 애플 1을 보여주지만 거절당한다.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을 설득하여 직접 사업을 하자고 제안한다.  스티브 잡스는 자동차를 스티브 워즈니악은 전자계산기를 팔아서 사업자금을 마련한다. 둘은 스티브 잡스의 차고를 개조해서 애플컴퓨터를 설립하다. 그들의 첫번째 직원은 아타리사에서 알게된 론 웨인 이었다. 론 웨인은 애플의 첫번째 로고를 디자인했으며 매뉴얼 작성을 책임졌다.  애플1은 바이트 숍을 통해서 666달러에 주문을 시작한 후 열달에 걸쳐서 200여 대정도 판매된다. 
스티브 잡스는  레지스 메키나와 홍보와 광고 계약을 맺는다.

1977년 페어차일드와 인텔에서 마케팅 담당자로 일했던 백만장자 마이크 마큘라가 애플의 차고를 방문한 후 9만 2천달러의 투자를 결정한다. 그는 1985년에서부터 1997년까지 애플의 회장으로 근무한다.
세계 최초로 컬러를 지원하는 컴퓨터인 애플2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열린 WCCF(West Coast Computer Faire) 에서 소개되어 큰 인기를 끈다.
애플2가 1295달러에 정식 판매를 시작하고 첫달만에 백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한다.  애플의 CEO로 마이클 스캇이 임명된다.

1978년 최초로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한 애플 II+를 출시하다. 마이크 마쿨라의 활약 덕분에300개가 넘는 판매점을 확보하게 되고 판매량은 전년도에 비해서 10배가 넘어선다. 늘어나는 매출과 수익으로 애플은 미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업체로 뽑히게 된다.
오늘날 애플이 있는 쿠퍼티노에 사옥이 들어서다. 애플의 본사는 애플캠퍼스라는 애칭을 얻는다.

1979년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2 만 천달러에 애플 베이직 소프트의 라이센스를 받고 판매를 시작한다.
최초의 스프레드 쉬트 프로그램인  비지캘크(VisiCalc)가 퍼스널 컴퓨터사를 통하여 백달러에 발매된다. 비지캘크의 높은 인기 덕분에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대세가 애플2로 급속히 기울어진다.

제록스는 애플의 주식 십만주를 백만달러에 투자한다. 이 거래를 통하여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엔지니어가 제록스의 연구소에 방문을 하고 거기서 그래픽기반의 운영체제를 탑재한 알토컴퓨터를 직접 목격한다.
애플의 컴퓨터는 타이핑 라이터가 아니라는 마케팅을 진행하면서 화제의 중심에 오른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타킷으로 한 교육용 컴퓨터 시장에 본격진출하다.

1980년 세계최초의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를 포함한 최고급 사양의 개인용 컴퓨터 리사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이를 위해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에서 15명의 새로운 인재들을 스카우트해온다.

애플의 직원이 천명을 넘어서고 판매점도 천개를 넘어선다.
애플이 주식시장에 공개되어 스티브 잡스는 2억 1천 7백만 달러의 갑부가 된다. 공동창업자인 투자자인 마이크 마큘라는 2억 3백만달러를 벌게된다.
3495달러에 애플 III를 출시하지만 각종 버그로 인하여 시장에서 혹평을 받고 애플 최초의 실패작으로 남는다.

1981년 애플의 이사회는 스티브 잡스를 리사 프로젝트에서 빠지도록 결정한다. 스티브 잡스는 리사와 같은 사용하기 쉬운 컴퓨터 컨셉이면서 가격은 대폭 낮춘 매키토시 프로젝트에 합류한다.

IBM의 본격적인 시장진출에 대해서 애플은 월스트리트 저널에 환영한다는 광고를 낸다. 하지만 IBM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선풍을 일으키자 애플은 위기의식에 가지게 된다.
세계화의 일환으로 애플은 프랑스 파리에 유럽 지사를 열다.
컴퓨터 업체 역사상 최초의 독자적인 행사인 애플 엑스포가 시작된다.

1982년 개인용 컴퓨터 업체중 최초로 10억달러 매출을 돌파하고 빌리온 달러 파티를 연다.( Billion Doller Party)

시사잡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스티브 잡스를 내정하고 마이클 모리츠에게 관련 기사를 쓰도록 한다. 하지만 마이클 모리츠는 애플을 방문후 올해의 인물로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개인용 컴퓨터로 교체한다.
대학교에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도구를 무상으로 제공하면서 대학교 마케팅을 본격화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의 차세대 컴퓨터인 매킨토시용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로 합의한다.

1983년 리사 컴퓨터가 9998달러에 발매된다. 언론으로부터 가장 혁신적인 제품으로 뽑히었으나 비싼가격으로 고객에게는 철저히 외면 당한다.
애플2 컴퓨터의 누적판매량이 백만대를 넘어서다.

초대 애플의 CEO였던 마이클 스캇의 후임으로 펩시의 마케팅 최고 책임자였던 존 스컬리를 영입한다.

1984년 궁금증을 자극하는 1984 빅브라더 광고를 선보여 매킨토시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다.

1월 24일 2495달러에 매킨토시가 정식으로 발매된다.
애플2의 누적판매량이 2백만대를 넘어서다.

1985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백악관에 초대되어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국가 기술 유공자 메달을 받는다.
애플의 공동창업자중에 한명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회사를 그만두고 비디오 관련 회사인 CL9회사 설립하다..
매킨토시의 판매부진에 대한 책임으로 스티브 잡스는 모든 직무에서 손을 떼고 회장으로만 일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의 사무실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시베리아라는 별칭이 붙었다. 결국 그는 7월 17일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새로운 회사를 창업하기로 결정한다.
 올더스(PageMaker)가 전자 출판을 위한 페이지 메이커가 킬러 소프트웨어 역할을 하면서 판매량이 급상승한다.

1986년 애플은 회사를 그만 둔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 기밀 유출로 고소한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직원을 고용할때는 반드시 허락을 받을 것과 애플 컴퓨터와 겹치지 않는 제품을 개발해야한다는 조건에 합의하고 소송을 취하한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주식 1주만을 남기고 모두 매각한 후 넥스트(NexT)를 창업한다. 넥스트의 주요 투자자는  미국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억만장자 로스페로와 매킨토시 전용 프린터로 큰 수익을 얻은 캐논 그리고 넥스트의 본사가 위치했던 스탠포드 대학교 등이었다.

애플은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을 통하여 80개국이 넘는곳에서 애플컴퓨터를 판매하는 세계화에 성공한다.
애플은 학교 교사들을 위한 대규모 판촉전을 벌여서 큰 성공을 거둔다.
1986년  스티브 잡스는 스타워즈시리즈로 명감독의 반열에 오른 조지 루카스로부터 3D 그래픽 전문 업체 픽사(Pixar)를 천만달러에 인수한다.
       애플은 컴퓨터상에서 알파벳이 아닌 한자와 일본어를 자유롭게 입력할수 있는 칸지 토크(KanjiTalk)를 선보이면서 일본과 아시아 시장에서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87년 마이크로소프트 최초의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 윈도우(Window) 95 를 선보이다. 윈도우의 영향으로 애플의 시장 점유율은 한자리로 추락한다.

1988년 스티브 잡스의 넥스트는 최고급 사용자들을 위한 컴퓨터 넥스트큐브(NextCube)를 발매한다 넥스트 큐브는 최초로 월드와이드 웹(World Wide Web)의 서버로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시장에서의 반응은 좋지 못했다.

1989년 애플 최초의 노트북 애플 포터블을 선보이다. 6500달러라는 고가격과 가지고 다니기 힘든 무게로 인해서 상업적으로 실패하고 만다.

1991년 애플의 본격적인 노트북 브랜드 파워북이 등장하다.

1993년 매킨토시의 총 판매량이 천만개를 넘어서다.
세계최초의 PDA 뉴튼을 발매하다. 제품의 혁신성으로 많은 화제를 뿌렸으나 천달러가 넘는 금액과 짧은 시간의 배터리문제로 인기를 지속시키지 못한다. 매킨토시의 점유율 하락과 뉴튼의 판매 부진으로 인한 수익악화가 계속 되자 CEO인 존스컬리가 사임한다. 그의 후임으로 마이클 스핀들러가 CEO에 임명된다.

1994년 애플은 숙적 IBM과의 협력으로 파워매킨토시를 선보인다.
파워컴퓨팅과 유맥스등 전세계의 업체들에게 매킨토시 호환컴퓨터를 라이센스 주었다. 이제 매킨토시를 만드는 회사는 애플만이 아니게 되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래픽 기반 운영체제 아래에서의 아이콘과 인터페이스 체계에 대해서 합의를 한다.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의 직원 530명중에서 280명을 해고하고 하드웨어 시장에서 철수하고 운영체제에 전념하기로 결정한다. 
애플에게 두번째로 큰시장인 일본에서 매킨토시 판매량이 백만대를 넘어서다.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95가 발매되고 이로 인하여 애플의 시장점유율은 한자릿수로 떨어진다.

1996년 애플은 최초로 가정용 게임기인 피핀을 발매한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피핀이야 말로 애플이 나아갈 길이라면서 극찬을 하지만  시장에서는 실패한 다.

6천 백만달러의 적자가 발표되자 CEO인 마이클 스핀들러가 사임하고 후임으로 질아멜리오가 선임된다.
애플의 CEO인질아멜리오는 새로운 운영체제 개발을 위해서 스티브 잡스의 넥스트를  4억 3천만 달러에 인수합병한다.

1997년 길 아멜리오가 사임하고 스티브 잡스 애플의 임시 CEO가 되다.
애플은 마이크로 소포트로부터 1억 5천만달러의 투자를 받는 동시에 계속해서 매킨토시로 오피스 시리즈등의 각종 응용프로그램을 5년이상 제공하기로 합의한다. 이에 대한 조건으로 애플은 매킨토시에 인터넷 브라우저 익스플로러를 기본으로 내장하기로 한다.
   인터넷으로 컴퓨터를 주문받는 애플 스토어가 열리다. 열두시간만에 50만달러의 주문을 받는다.

1998년 적자회사였던 애플은 스티브 잡스 복귀 1년만에  4700만달러의 수익을 기록하는 흑자회사로 바뀌었다.
      일체형 컴퓨터 아이맥을 선보이다. 아이맥은 1998년 한해동안 80만개를 판매하고 2003년까지 6백만개를 판매한다.

2001년 휴대형 MP3 플레이어 아이포드를 판매하다.
넥스트사의 인수 합병조건으로 시작된 유닉스 기반의 운영체제 맥오에스텐이 발매되어 시장에서 호평을 얻는다.
애플제품을 취급하는 상점이 줄어들자 이에 대한 고육지책으로 애플은 직접 경영하는 오프라인 상점인 애플스토어를 캘리포니아와 버지니아에 오픈한다.

2007년 현재 애플스토어는 172개의 직영점으로 확대되었다.

2003년 미국전체 음악 시장을 장악한 다섯개의 음반사 유니버셜, 워너 브로스,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BMG, EMI의 정식협의를 통하여 인터넷 음악 판매 사이트 아이튠스 스토어가 시작된다.

2004년 더 작아진 아이포드 미니를 선보여 그 인기를 이어가다.

2006년 아이튠스 스토어의 음악 판매량이 10 억곡을 넘어서다.
애플 최초로 인텔의 CPU를 사용한 데스크톱 컴퓨터 맥프로와 노트북 맥북을 발매하다.

2007년 아이튠스 스토어의 음악 판매량이 30억곡을 넘어서다.
       애플은 아이폰을 통해서 휴대폰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다.  아이폰은 100일만에 100만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구글은 2007년 가장 인기있었던 검색어로 아이폰을 선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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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