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잡스'에 해당되는 글 45건

  1. 2017.05.04 스티브잡스 명언모음(4) 실수, 실패, 불효, 잘못, 후회, 경험, 해고에 대하여
  2. 2017.04.29 애플이 시장을 창조하는 비법(2) 생태계를 창조하라
  3. 2017.04.25 스티브잡스 명언집(3) 돈, 인생, 일, 동기, 엔지니어에 대하여
  4. 2017.04.21 애플이 시장을 창조하는 비법(1) 게임의 법칙을 바꿔라
  5. 2017.04.12 스티브잡스명언집(1) 모험, 인생, 기회, 픽사, 제품개발, 창업, 끈기에 대하여
  6. 2017.01.23 애플의 디자인은 어떻게 다른가?(4) 아낌없는 지원과 투자
  7. 2017.01.09 애플의 디자인은 어떻게 다른가?(3) 기술적인 디자이너와 예술적인 개발자
  8. 2016.10.06 애플의 디자인은 어떻게 다른가?(2) 디테일이 살아있는 단순함에 대한 철학
  9. 2016.09.28 애플의 디자인은 어떻게 다른가?(1) 애플 로고부터 아이팟까지
  10. 2016.08.29 애플은 왜 개발에 강한가(5) 애플이여 해적이 되어라! 세상을 바꾼다는 사명감을 고취시키다. (2)
  11. 2016.07.18 애플은 왜 개발에 강한가? (2) 개발자 중심의 기업 문화
  12. 2016.07.07 애플처럼 창조한다는것(14) 통합과 조합의 힘
  13. 2016.07.01 궁극의 최종 사용자 스티브 잡스의 독재 (2)
  14. 2016.06.09 돌아온 스티브잡스, 애플의 르네상스를 열다
  15. 2016.06.02 위대한 독재자의 귀환, 스티브 잡스 2.0의 시대
  16. 2016.05.30 위기속의 길 아멜리오 스티브 잡스에게 SOS를 치다.
  17. 2016.05.09 애플처럼창조한다는것(5) 존 스컬리의 시대
  18. 2016.04.25 포기를 몰랐던 스티브 잡스의 열정
  19. 2016.04.12 스티브잡스가 워즈니악을 만났을 때
  20. 2015.12.28 스티브잡스신화의 시작 양부모님의 각별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21. 2015.08.13 인재에 대한 스티브 잡스 명언 베스트 10 (1)
  22. 2015.08.06 짧지만 너무나 강렬한 스티브 잡스 명언 베스트 10
  23. 2015.07.31 디자인에 대한 스티브 잡스 명언 베스트 10
  24. 2015.07.27 스티브 잡스 화술법(3) 알기 쉬운 비유를 든다.
  25. 2015.07.22 스티브잡스 화술법(2)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어라
  26. 2014.01.14 스티브잡스 화술법(1) 머리보다 가슴으로 호소한다.
  27. 2013.12.13 애플스토어로 완성된 애플의 라이프 스타일 마케팅 (2)
  28. 2013.11.28 애플부활프로젝트(1) 기강을 세우다. (2)
  29. 2013.05.21 스티브잡스의 황금열쇠는 "단순함" 이었다. (8)
  30. 2013.05.07 스티브 잡스가 생각하는 디자인의 가치와 의미 (3)



사람들은 왜 그토록 스티브 잡스에 열광할까? 그가 만든 위대한 상품들이 주요한 요인이긴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대부분의 IT 대부들은 재력이 있는 부모를 만나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지냈고, 사업 초창기에 약간 고생을 하지만 이후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순탄하기만한 다른 IT 대부들과 다르게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으며 굴곡 있는 삶을 살았다. 스티브 잡스의 파란만장한 삶을 보면 몹시 극적이고, 그만큼 사람들에게 교훈과 감동을 준다. 스티브 잡스는 실패와 실수를 반복하였고 숱한 고난과 난관을 경험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깨달음을 얻어 더욱 강한 사람이 되었다. 예컨대,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쫓겨 난 후 실패자로 낙인이 찍혔지만 결국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장편 영화인 토이 스토리를 성공시켰고, 나중에는 애플에 돌아와서 회사의 르네상스를 이끌게 된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인생에서 매우 소중한 가르침을 얻었다고 한다. 만약 자신이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애플을 부활시킬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실패가 자신에게 약이 되었음을 깨달은 그는 실패마저도 삶의 양식으로 생각하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의 인생자체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된다. 이번 장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어떠한 고난과 실패를 경험했으며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31. 저는 흠집이 난 스테인리스를 좋아합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들과 비슷한 모습이거든요. 저도 내년이면 이제 50세가 되는데 제 인생도 흠집이 난 아이팟의 스테인리스하고 많이 닮았거든요.


The perfect thing, Steven Levy,Simon and Schuster, 2006





32. 제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운 순간 중 하나입니다. 저는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들은 저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많은 일을 해야 했던 분들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들이 내 주변에 있는 걸 원치 않았어요. 다른 사람이 나한테 부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않았으면 했거든요. 저는 기차로 떠돌다가 지금 막 도착한 고아처럼 보이고 싶었습니다. 뿌리나 연줄 그리고 배경이 없는 사람으로 말이죠.


Steve Jobs, Isaacson, Walter, Simon&Schuster  2011.11.21


<해설> 양부모님은 스티브 잡스를 정성스럽게 길렀고 평생 모은 재산을 있는 대로 모두 스티브 잡스의 대학교 학비로 사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브 잡스는 부모님에게 매정했다. 원래 부모님은 엄청난 학비 때문에 다른 대학을 가도록 설득했지만,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가고 싶다는 이유로 리드 대학교를 끝까지 고집했다. 스티브 잡스의 중학교 시절, 당시 가지고 있던 돈을 끌어 모아 가장 좋은 학군을 찾아 이사를 갔던 양부모님은 이번에도 결국 스티브 잡스의 뜻에 따랐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고 리드 대학교로 떠났는데, 이는 스티브 잡스에게 평생동안 가장 부끄러운 순간이 되었다. 이 모습만보자면 참으로 철없고 어이없는 행동이지만, 스티브 잡스는 부모님이 자신을 위해서 평생 모은 재산을 썼다는 사실을 알고는 달라졌다. 그는 누군가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를 양부모님이라고 이야기하면 바로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애플이 성공하자 스티브 잡스는 부모님에게 75만 달러어치의 주식을 주기도 했다. 1980대 초 스티브 잡스는 탐정을 고용해서 자신을 낳아준 부모를 찾기 시작했지만,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가 이 사실을 알지 못하도록 주의했다. 행여나 양부보님이 섭섭해 하진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  진정한 부모는 폴과 클라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랐다. 1986년 클라라 잡스가 폐암으로 사망하고 나서야 스티브 잡스는 생모인 조앤 심프슨에게 연락을 했다.




33. 제가 좀 다르게 처신했더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를 아버지로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검사 결과가 나왔을 때 그 애가 내 딸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지원하기로 했고, 크리스앤에게도 양육비를 좀 주었습니다. 팔로알토에 있는 집을 찾아 수리하고선 임대료 없이 크리스앤과 딸애를 살게 했습니다. 애 엄마는 아이가 다닐 만한 좋은 학교를 찾았고, 저는 교육비를 지불했습니다. 저는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일을 다시 할 수만 있다면, 더 잘 해보고 싶습니다.

Steve Jobs, Isaacson, Walter, Simon&Schuster  2011.11.21



<해설> 스티브 잡스가 받는 가장 큰 비난은 젊은 시절 여자친구 크래스앤 브레넌과의 사이에서 낳았던 친딸, 리사를 부정했다는 점이다. 그 사실만 본다면 스티브 잡스는 굉장히 나쁜 사람이지만, 후에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고,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인텔의 CEO였던 앤디 그로브는(이게 맞는말인데 잘못썼네요.)) 스티브 잡스는 본인 스스로 애플에 돌아오기 전의 스티브 잡스 1.0과 돌아온 후의 스티브 잡스 2.0으로 나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볼 때에는, 스티브 잡스는 결혼 전의 스티브 잡스 1.0과 결혼 후의 스티브 잡스 2.0으로 분류된다. 결혼 후 스티브 잡스는 무엇보다 가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남자가 되었다. 사실 스티브 잡스는 아내 로렌이 임신을 했을 당시, 헤어질 뻔한 위기를 겪었지만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리사를 데려와 정성스럽게 키웠다.로렌과의 사이에서 3명의 자녀를 낳았고 아이들과 노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스티브 잡스의 이웃은 그가 좋은 아빠였다고 기억했다. 결혼 후에 좀더 남을 생각하고 부드러운 남자로 변신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 잡으려 노력했기에 행복한 가족의 가장이 될 수 있었다. 





34. 자신의 컴퓨터를 직접 조립하고 싶어 하는 하드웨어 애호가들은 1,000명중에 한 명밖에 안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느긋하게 컴퓨터를 즐기고 싶을 뿐이지요... 제가 10살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애플 II에는 최초로 완성품 상태로 포장된 컴퓨터로 팔겠다는 나의 꿈이 담겨져 있습니다.

AppleDesign,Paul Kunkel, Rick English,Graphis Inc., 1997



 

<해설> 스티브 잡스의 개발과정은 그 자신의 인생과도 닮았다. 실수나 실패를 경험하고 나서 이에 깨달음을 얻고 극복하고자 한다. 150여 대 판매된 애플Ⅰ 컴퓨터는 엄밀히 말하면 실패작이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애플Ⅰ컴퓨터가 일부 마니아들에게만 통한 제품이었다는 점을 깨닫고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컴퓨터를 구상한 끝에 애플 Ⅱ를 완성하게 된다.




35. 무한히 셀 수 없는 돈을 잃었습니다. 만약에 애플 Ⅲ가 성공했다면 IBM은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들어오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이 인생이지요. 우리는 그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더 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STEVEN JOBS: PLAYBOY INTERVIEW , DAVID SHEFF , the February 1985





36. 우선, 너무 비쌌습니다. 만 달러 정도나요. 우리 회사의 근간이 팔려나가고 있을 때, 애플은《포춘Fortune》지에서 발표하는 500대 기업 리스트에 들었고, 거대 기업들에 상품을 판매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문제들도 있었습니다. 늦은 배송이었습니다. 애썼지만 소프트웨어가 결국 함께 배송되지 못했습니다. 일은 탄력을 잃었지요. 우리 가격이 너무 높고, 제품 배송이 6개월씩이나 늦어지는 사이에 IBM은 아주 순풍을 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다른 전략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150명의 딜러만으로 198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개인용 컴퓨터 모델 Lisa를 팔기로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정말이지 희생이 컸던 어리석은 결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케팅 및 경영 분야의 전문가들을 고용했습니다. 그럴 듯한 아이디어였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너무 신규 사업 분야였고,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들은 더 많은 손실만 초래했습니다. 

STEVEN JOBS: PLAYBOY INTERVIEW , DAVID SHEFF , the February 1985



<해설> 애플 Ⅱ 이후에 스티브 잡스는 애플 Ⅲ와 리사의 개발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 그러나 둘 모두 커다란 실패를 낳게 되었다. 애플 Ⅲ는 완성되지 않은 제품을 무리하게 출시한 것이 문제였으며, 리사는 9,995달러라는 비싼 가격과 소프트웨어 부족이 문제였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개발하면서 합리적인 가격의 컴퓨터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직접 부품 제조사를 찾아가 가격을 낮추기 위한 협상을 벌이기도 해서 모토로라의 CPU를 9달러에 공급받았다. 이는 원래 모토로라가 제시한 금액의 4분의 1밖에 안된 금액이었다. 덕분에 매킨토시는 리사보다 훨씬 저렴한 2,500달러에 판매되었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소프트웨어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 마이크로소프트나 로터스같은 업체를 직접 찾아가서 매킨토시용으로 소프트웨어를 발매하도록 하였다. 이때 스티브 잡스가 발굴한 업체 중에 하나가 바로 차고에서 시작된 어도비가 있다. 스티브 잡스는 어도비의 기술을 높이 사서 250만 달러를 투자하기도 한다. 

비단 이뿐만 아니라 여러 실패를 겪어서인지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의 완성도에 집중했다. 매킨토시는 1982년 1월까지 완성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발매를 계속 연기하였고 1984년에야 매킨토시를 소개할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직원들에게 “출시 전까지 끝나지 않았다”는 말을 하면서 늘 완성도 높은 제품을 강조했다. 출시 기일이 미루어지더라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려고 한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의 합리적인 가격과 풍부한 소프트웨어, 높은 완성도 덕분에 리사의 실패를 극복하고 컴퓨터를 재발명했다는 극찬을 받게 되었다.





37. 누군가 마치 제 배를 강타한 듯이, 숨통이 끊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겨우 30 세였고 계속해서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컴퓨터가 최소한 한 대 이상 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지요. 하지만 애플은 제게 그것들을 개발할 어떤 기회도 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PLAYBOY, September 1987(via Apple confidential 2.0)



<해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 것은 단순히 그가 창업한 회사를 그만두는 수준이 아니었다. 자신이 아버지라고 생각했던 마이크 마쿨라(애플이 차고 시절에 있을 때 자금을 투자했으며, 후에 애플의 CEO.), 아서록(인텔에 자금을 투자한 벤처투자가로 애플에도 자금을 투자함), 존 스컬리(스티브 잡스가 영입한 CEO)로부터 버림받은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38. 그때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것은 제가 겪었던 일들 중 최고 중에 하나였습니다. 성공한 사람의 무거움은 다시 초심자의 가벼움으로 바뀌었습니다. 모든 것이 덜 확실했지요.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창조적 시기로 들어가는 데 자유를 주었습니다. 

다음 5년 동안, 저는 넥스트에서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픽사라는 회사를 차렸고, 그곳에서 훗날 제 아내인 굉장히 멋진 여자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토이 스토리>라는 첫 번째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입니다. 더욱 믿을 수 없는 사건은 애플이 넥스트를 사고 내가 애플로 돌아간 것이었습니다. 넥스트에서 개발된 기술은 현재 애플 르네상스의 핵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로렌과 저는 멋진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만약 애플을 떠나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일이 벌어졌을 거라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지독하게 쓴 약이었지만 제 생각에 그것은 환자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삶이 당신의 머리를 벽돌로 내려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저를 계속 유지하게 한 유일한 힘이 바로 제가 하는 일을 사랑한 것에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여러분 역시 사랑하는 것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Steve Jobs Stanford Commencement Speech 2005‎




 

39. 저는 언제나 보다 혁명적인 변화에 마음이 더 끌립니다.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정말 힘들고 정신적으로 더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했는데도 말이죠. 게다가 저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완전히 끝장났다"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습니다. 


Steve Jobs in 1994: The Rolling Stone Interview, JEFF GOODELL, ROLLING STONE, 1994





40. 픽사에서 <토이 스토리>를 만들 때 스토리가 훌륭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을 겪었습니다. 그 당시의 스토리는 정말 별로였습니다. 우리는 5개월 동안 작업을 중단하고 빈둥거리며 진짜 <토이 스토리>라고 할 만한 시나리오가 완성되기만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만약 작업을 중단할 용기를 가지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토이 스토리>나 픽사는 절대로 존재하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는 그것을 스토리의 위기라고 하는데 그런 일이 절대로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사실 모든 영화에는 그와 같은 위기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5개월씩이나 작업을 중단하지는 않죠, 하지만 우리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 좀 더 현명하게 생각합니다. 일이 제대로 잘 되지 않는 순간은 언제나 있습니다. 그럴 때 당신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도 스스로를 바보라고 생각하기 쉬워지는 법입니다.


Steve Jobs speaks out, Fortune,  MARCH 07 2008


<러브 아이돌 주식회사와 IT 왕조실록에 많은 관심과 사랑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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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애플과 스티브 잡스는 미래를 위해 음악 산업을 구했습니다. 우리는 광고를 하지 않습니다만 애플의 캠페인에는 동참합니다.


- 록 밴드 U2의 드러머 래리 뮬런, December 23, 2004 <The Irish Times>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30)


세상은 생태계를 창조하는 기업과 이미 창조된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기업, 두 개로 나눌 수 있다. 생태계를 창조하는 기업은 마치 창조주처럼 생태계를 통치하며 세금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기업이라는 먹이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를 차지할 수 있다. 애플의 역사를 볼 때 놀라운 것은 혼자서 모든 것을 독식한다는 회사의 이미지와는 달리 생태계를 창조하기 위해 탁월한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다.


애플2 컴퓨터 이전만 해도 소프트웨어 산업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프트웨어만으로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세계 최초의 스프트레드시트 프로그램인 비지칼크의 등장 덕분이었다. 비지칼크가 애플2로 처음 등장한 배경은 댄 필스트라에게 스티브 잡스가 할인가로 애플2 컴퓨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하버드대학교 비즈니스 스쿨에서 공부하던 댄 브리클린은 컴퓨터를 이용한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는, 댄 필스트라에게 애플2 컴퓨터를 빌린다. 그리고 스티브 워즈니악이 작성한 베이직으로 비지칼크의 데모를 만든 후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한다. 나중에는 애플의 마이크 마큘라가 여러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개발된 비지칼크는 킬러 애플리케이션이라는 명성을 얻으며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비지칼크 이후 애플2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확실한 주도권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때 애플은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팔게 한다는 절대불변의 교훈을 얻게 된다.


하지만 리사를 개발할 때 애플은 소프트웨어마저도 혼자서 독식하려는 야망을 가졌다. 애플 내의 소프트웨어 개발팀은 소프트웨어가 시스템을 판다.’는 표어까지 만들면서 열심히 소프트웨어를 만들었지만 한계는 분명했다. 외부 소프트웨어 개발사의 도움 없이 혼자서 응용프로그램 을 만들어서는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리사의 끔찍한 실수에는 비싼 가격 등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소프트웨어의 부재 역시 한몫을 했다.


이런 경험을 한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 중점을 둔 부분은 소프트웨어 업체의 협력을 얻는 것이었다. 소프트웨어 업체와 상생해야만 매킨토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직접 개발사를 방문해서 매킨토시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도록 적극 설득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애플이 만들어 놓은 애플2 컴퓨터를 통해 많은 소프트웨어를 판매했고, 덕분에 높은 수익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가 협력관계를 맺기 위해서 마이크로소프트를 직접 찾아갔을 때만 해도 여전히 애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벤처회사에 불과했다. 스티브 잡스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매킨토시를 위한 소프트웨어 개발에 합의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의 도움으로 개발력을 증대시킬 수 있었다


1985년 마이크로소프트가 가장 많이 돈을 번 플랫폼이 매킨토시였을 만큼 두 회사는 서로 윈윈하며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포토샵으로 유명한 어도비와 전자출판의 강자 쿽(Quark) 같은 유명 소프트웨어 업체도 애플과의 협력을 통해서 급성장을 이룬 회사들이다.



애플은 매킨토시 출시 이후 아예 에반젤리스트(Evangelist)를 두고서 개발사들을 적극적으로 자사 플랫폼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했다. 에반젤리스트는 회사의 정책과 기술을 외부에 알리는 전도사들을 뜻하는데, 이들은 일반 대중에게 애플 브랜드를 알리는 일도 했지만 개발사들과의 관계증진을 위해서 힘을 쏟았다. 에반젤리스트는 직접 개발사를 방문해서 매킨토시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설득하였고, 나중에는 회사의 개발정보들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공유하였다. 매년 6월 새로운 아이폰을 공개해서 더욱 유명해진 WWDC도 사실은 World Wide Developers Conference의 약자로 전 세계 개발자들을 모아서 서로의 기술을 공개하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 애플이 1983년부터 개최한 이벤트다.


1995년 애플 내부에는 외부 개발자 관리팀이 있었는데 300명의 조직이 7,500만 달러의 예산으로 전 세계에 퍼진 12,000개의 독립적인 개발자들을 서포트해 주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매킨토시 판매량이 급락하자 개발사들 역시 애플을 외면한다. 결국 애플은 소프트웨어가 없으니 하드웨어가 더욱 팔리지 않는 악순환에 빠졌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돌아와서 한 일 역시 외부 소프트웨어 업체와의 관계회복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어도비의 창업자 존 워녹과 쿽의 최고기술책임자인 톰 길에게 전화를 해서 어떻게 하면 애플이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물었고, 함께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결국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가 좌우하는 시장이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팔게 하는 만큼 애플 역시 소프트웨어 개발에 힘을 쓴다. 하지만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애플이 자체적으로 몇 개의 응용프로그램은 만들지만 세상 모든 사람을 충족시킬 정도의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드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태계를 창조해서 소프트웨어 업체로부터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애플이 생태계를 창조하여 성장시키는 모습은 아이폰의 앱스토어에서 극대화된다. 애플이 공개한 개발도구를 이용하면 누구나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으며, 유통비용에 대한 부담 없이 전 세계인을 상대로 프로그램을 팔 수 있다는 성공 모델을 만들어낸 것이다. 앱스토어는 개발자들에게 꿈의 엘도라도가 되었다. 그래서 서부개척 시대처럼 개발자들의 골드러시 열풍이 일어났다. 그리고 실제로 수많은 부자들이 탄생했다.


에단 니콜라스라는 30살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두 아이를 가진 가장이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지자 살고 있는 집까지 팔아야 했다. 그는 출근하기 전과 퇴근 후에 아이슛(ishoot)이라는 게임을 개발했다. 그리고 이 게임을 앱스토어에 올리자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한 달 동안 60만 달러를 벌었고, 어느 날은 다운로드 수가 17,000회에 이르면서 하루 만에 37,000달러까지 벌었다. 그는 아예 다니고 있던 직장인 선마이크로시스템즈를 그만두고 회사를 창업했다. 그는 집에서 아이들을 보면서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애플 앱스토어의 성공에 대해서 가장 놀란 사람은 프로그램을 제작한 개발자 자신이다. 페이크 콜은 회의라든가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곳에서 가짜로 전화가 온 것처럼 꾸며 그 자리를 피하게 만들어주는 단순한 프로그램이다. 이 간단한 프로그램을 앱스토어에 등록했는데 무려 25만 건의 다운로드가 기록되었고, 개발자는 173,200달러의 수익을 얻었다고 한다. 이렇듯 기대도 못한 높은 수입에 개발자도 놀라는 공간이 바로 앱스토어다.


앱스토어의 위대함은 이른바 연약한 포유류도 살아갈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PC시장은 공룡들의 각축전이고, 개인의 능력보다는 회사의 기득권에 성패가 달려 있다. 이제 뛰어난 기술과 제품으로 승부를 보는 시대가 아니라 시장점유율을 확보한 회사의 영향력 아래서 승자와 패자가 결정 나는 상태라는 말이다. 게임만 해도 EA나 액티비전 같은 회사가 다 장악하였고, 사무용 프로그램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공룡이 존재하는 이상 소규모 회사들이 설 땅은 없다. 개발자의 삶도 결국 자신이 소속한 회사에 의해서 결정 난다. 개발자로서 뭔가를 새롭게 만들고 싶어도 그런 모험마저 허용되지 않는 게 PC시장이다. 이미 공룡들만의 생태계가 된 PC시장과는 다르게 앱스토어는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로 연약한 포유류가 억대의 돈을 벌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애플은 아이팟과 뮤직스토어를 통해 음악 생태계를 구축했고, 아이폰과 앱스토어로 애플리케이션 생태계를 창조했다. 그리고 지금은 아이패드를 통해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신문과 잡지 등을 한곳에 모아 미디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전통적인 언론 미디어들은 IT기업들에게 일종의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 자신들의 영광스런 날들이 인터넷의 등장으로 종말을 고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IT기업들은 언론사들의 날카로운 비판을 받기 쉽고, 협력을 얻기가 힘들다.


아이패드는 달랐다. IT기업을 마땅찮게 여기는 인물로 세계적인 언론 재벌인 루퍼트 머독은 아이패드는 뉴스를 위한 최고의 플랫폼이라며 극찬했다. 언론사들은 자신들의 구세주로 아이패드를 서슴없이 지목하였고, 개발단계부터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이는 애플이 아이팟으로 음반사를, 그리고 아이폰으로 컴퓨터 개발자들에게 돈을 벌게 해주었듯이 아이패드가 자신들을 위해 탁월한 능력을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 역시 이에 화답하듯 전통적 미디어업체들에게 직접 아이패드에 대해 설명하고, 유료화 모델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다. 아이패드는 등장한 지 3개월도 안 되어서 앱스토어처럼 온갖 성공신화를 탄생시키고 있다


미국의 유명 IT 전문잡지인 <와이어드>20106월호를 아이패드용으로 발행했는데, 4달러 99센트의 유료임에도 10만 부나 판매되었다. 종이잡지가 74,000부 판매된 것을 감안하면 잡지사로서는 새로운 수익모델을 발굴한 셈이다. 또한 Theodore W. Gray는 자신이 운영하는 periodictable.com의 자료들을 모아서 <The Element>라는 전자책을 아이패드로 발행했다. 앱스토어에 <The Element>를 발행한 지 단 하루 만에 periodictable.com을 운영하면서 5년 동안 구글 광고로 번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앞으로의 기업 역시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생태계를 창조하는 기업과 이미 존재하는 생태계 안에서 살아가는 기업 말이다. 생태계를 창조하는 기업은 바다처럼 커질 것이지만 생태계를 창조하지 못하면서 덩치만 큰 공룡 같은 기업은 서서히 멸종할 것이다. 생태계를 새로 만들기는 정말 어렵지만, 생태계를 구축해서 규모의 경제를 이끌 수 있다면 그 생태계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생태계 안에서라면 신처럼 권력을 부리면서 각종 이익을 얻을 수도 있다.


앱스토어에 올려진 프로그램이 판매될 때마다 애플은 세금처럼 30%씩 수익을 가져가게 된다. 애플은 하드웨어를 판매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태계 안에서 벌어진 경제행위에 대해서 수수료를 부과해 수익을 얻을 수도 있으니, 그 어떤 기업보다도 탄탄한 자금흐름을 이어갈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윈도우라는 생태계를 창조했고, 그 세금으로 돈을 버는 회사다. 델과 HP 같은 컴퓨터 회사에 윈도우 라이선스를 넘기면 델과 HP의 컴퓨터가 한 대씩 팔릴 때마다 자동으로 돈을 버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구글은 마이크로소프트와 다르게 무료로 소프트웨어를 제공하지만 광고로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소니가 구글 TV로 협력하고 있고, 수많은 휴대폰 제조사들이 구글의 안드로이드 밑으로 들어가고 있다.


생태계 창조자는 생태계의 지배자가 되어서 생태계에서 발생하는 경제행위에 대해서 일종의 세금을 부과할 수 있기 때문에 생태계 안의 기업이 커질수록 자연히 생태계 창조자는 더욱 거대해지는 선순환이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는 단순히 공룡처럼 커지는 것이 아니라 바다처럼 어마어마한 규모로 커지게 된다. 생태계를 창조하는 기업은 제국이 될 수 있지만, 생태계가 없는 기업은 제국의 지배를 받는 소왕국에 불과할 뿐이다. 애플에게 경쟁을 외칠 수 있는 회사란 뮤직스토어나 앱스토어 같은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할 수 있는 회사에게나 겨우 허락된 일이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그리고 저의 밥줄인 모바일 게임 러브아이돌 주식회사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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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저는 돈이 제 인생을 망치도록 하지 않을 것입니다. 웃기지 않습니까? 제 주된 생각은 돈이 좀 우스꽝스럽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지난 10년 동안 가장 통찰력 있고 가치 있는 존재로 다가온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돈은 제가 나이가 좀 든 사람처럼 만듭니다. 대학캠퍼스에서 강연을 했을 때 학생들이 경외심을 갖는 부분은 제가 백만장자라는 사실이더군요.


STEVEN JOBS: PLAYBOY INTERVIEW , DAVID SHEFF , the February 1985


 




23. 저는 돈을 벌기 위해서 애플에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전 운이 좋았습니다. 제가 25세  때 재산이 약 1억 달러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돈이 내 인생을 망치지 않도록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무도 그 돈 전부를 쓸 수 없을 겁니다. 부가 제 지성을 증명해주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Apple’s One-Dollar-a-Year Man , FORTUNE ,24 January 2000


 





24. 애플을 창업한 후 2년 사이에 우리는 애플을 포기하고 회사를 매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아마 그랬다면 애플은 세상에서 없어졌겠지요. 보람 있는 일은 단지 회사를 창업해서 주식시장에 상장시키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부모가 되면 출산의 경험이 하나의 기적이긴 해도, 진정한 보람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아이가 잘 성장하도록 보살펴 주는 데 있지요. 


Apple’s One-Dollar-a-Year Man , FORTUNE ,24 January 2000





25. 사람들에게 최고로 동기를 부여해주는 것은, 어떤 일에 당신의 가슴과 영혼을 모두 쏟아 부어서 진짜로 정말 열심히 일을 할 때, 고객들이 그것을 진실로 좋아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Channel NewsAsia , Mar 13 1999


 




26. 최고의 부자가 되어서 무덤에 묻히는 것은 제게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오늘 우리는 놀라운 일을 해냈구나!”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제게 중요한 것입니다.


The Wall Street Journal May 25, 1993


 




27. 저는 직원들이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자극받는 회사, 오래가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열정을 쏟았습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일이었습니다. 물론, 이익을 내는 것은 좋은 일이었지요. 그 이익금으로 훌륭한 제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동기는 이윤이 아닌 제품이었습니다. 존 스컬리(애플의 전 CEO)는 이런 우선순위를 뒤집었습니다. 목표가 돈을 버는 데 있었죠. 미묘한 차이였지만, 결국 모든 것을 뒤바꾸었습니다. 어떤 사람을 고용할지, 누가 승진이 될지, 회의에서 무엇을 논의할지가 모두 달라졌습니다. 


Steve Jobs, Isaacson, Walter, Simon&Schuster  2011.11.21





28. 저는 애플을 소생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애플에 있어서 완벽한 제품과 완벽한 전략에 이상이라는 것 외에는 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제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겠지요.


Fortune, Sept. 18, 1995



 

29. 당신이 무엇인가를 하고 결과가 좋다고 생각된다면 오랫동안 만족해하기보다 환상적인 또다른 무엇인가를 찾아서 떠나야 합니다. 다음에 할일을 바로 찾아내야 하는 겁니다.


"Jobs: Iconoclast and salesman", Brian Williams,  MSNBC ,25 May 2006 






30. 엔지니어에게 아이맥 디자인을 들고 가니 그들은 38가지 이유를 들면서 만들 수 없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이것을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엔지니어들이 왜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저는 애플의 CEO이고 이것은 반드시 해야만한다고 강조했죠. 엔지니어들은 마지못해서 겨우 아이맥을 만들었지만 아시다시피 아이맥은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How Apple Does It, LEV GROSSMAN ,TIME, Oct. 16, 2005



<해설> 이 명언을 이번 장의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천하의 스티브 잡스도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었다는 것 때문이다. 하물며 애플 내에 절대 권력자였다는 스티브 잡스였지만 직원들의 무수한 반대에 직면해야 했다. 전자 출판 혁명을 일으킨 레이저라이터 역시 이사회와 직원들로부터 반대가 있던 것은 작은 사례일 뿐이다. 


거의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주변 모든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했다. 앞서의 명언에 소개했다시피 스티브 잡스는 아이맥에서 플로피디스크를 들고 나오자 미치광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애플 I 컴퓨터를 들고 아타리를 찾아가자 단번에 거절당했고, HP로부터는 “대학도 나오지 않은 당신은 필요없다”라는 이야기까지 들어야만 했다. 투자를 받기 위해 돈 밸런타인을 찾아가자 이단아 취급을 받았고, 매킨토시가 나올 때에는 마우스를 비웃으며 손이 세 개 필요한 컴퓨터라는 냉소를 받았다. 5년 만에 연매출 10억 달러를 기록하며, 소매점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애플 스토어 역시 처음부터 환영받는 존재는 아니었다. 


<비즈니스위크>는 “2년 안에 애플이 값비싼 대가를 치러 큰 고통을 당할 것”이고 말하였다. 음악 산업을 변화시킨 아이팟이 처음소개 되자 와이어드의 기자 루카스 하우저는 “아이팟을 부수자!(Smash the iPod)”라는 칼럼을 통해서 스티브 잡스와 애플을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인터넷에는 아이팟의 철자를 따라해서 “나는 디스크를 가지는 게 더 좋아(I prefer Owing Discs)”, “멍청이가 우리의 기기에 가격을 매겼다(Idiots Price Our Devices)”, “나는 다른 기기가 더 좋아요(I Prefer Other Device)”같은 비아냥거림이 떠돌았다. 아이폰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자 매튜 린 (Matthew Lynn)과, 존 드보락(John Dvrak), 칼럼니스트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브 발머, 노키아의 마케팅 부사장이었던 엔시 벤조키, 팜의 CEO였던 에드 콜리건은 애플이 고전할 것이라 단언했다. 최근의 아이패드 역시 수많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나서서 애플이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하지만 아이패드는 8개월 만에 천만 대가 넘게 판매되는 기염을 토한다. 


원래 사람은 보수적인 동물이다. 기존의 고정관념에 따라 생각하기 때문에 정말로 새롭고 신선한 아이디어는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스티브 잡스가 새로운 제품을 들고 나올 때 사람들이 비아냥거렸던 까닭은, 과거에 그와 같은 제품이 성공한 적이 없으니 실패할 것이라고 고정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를 퍼뜨리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사람들은 남의 생각과 시선에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 되고, 누구보다도 신념이 강해야 한다. 그래서 열정을 강조하는 스티브 잡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더욱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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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적인 제품이 나오면 모든 것을 뒤바꿔 버립니다. 애플은 이런 일을 잘 해왔죠. 만약에 여러분이 그런 일을 한 번이라도 하면 당신은 정말 대단한 행운아일 겁니다. 그런 면에서 애플은 운이 좋았습니다. 애플은 세상을 바꾸는 혁명적인 제품을 여러 번 소개할 수 있었거든요.


‐ 스티브 잡스, 2007년 맥 월드 연설 중에서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29)


애플은 이른바 우리가 정석 혹은 상식이라고까지 생각하던 게임의 법칙들을 바꾼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다. 실제로 애플의 행보를 보면 이른바 비즈니스의 정석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걸어왔음을 알 수 있다. 애플 부사장인 팀 쿡은 애플이 ‘안티 비즈니스 스쿨’이라고 당당히 말할 정도다. 이를 테면 ‘선택과 집중’은 기업경영의 금과옥조처럼 통하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그래서 기업은 하나의 전문분야에서 한 우물만 파야 한다는 것이 비즈니스의 정석으로 통했다. 


과거 인텔은 메모리와 마이크로프로세서 두 가지 사업을 병행했다. 일본 기업의 대공세에 의해서 인텔이 적자에 시달리게 되자 경영진은 메모리 사업을 철수하고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에 올인한다.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인텔은 그 후 기업경영의 선택과 집중의 좋은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게임이라는 우물만 파는 닌텐도와 휴대폰 사업에 전념하는 노키아 역시 기업은 잘하는 한 가지 분야에만 주력해야 한다는 성공 모델로 꼽힌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소프트웨어 사업에 전력을 쏟아서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애플과 IBM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이 두 개의 사업 분야를 병행하고 있을 때 마이크로소프트는 오직 소프트웨어 사업만으로 승부를 걸었다. 당시만 해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통합된 개념으로 이해되었으나 마이크로소프트는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를 분리해서 오직 소프트웨어 경쟁력 향상에 매진하여 애플과 IBM을 물리치고 세계 최고의 IT기업으로 등극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확실히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게임의 규칙을 바꿀 줄 아는 게임 체인저다. 


애플은 아이팟 이후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들어 놓은 게임의 규칙을 새롭게 쓰고 있다. 아이팟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통합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튠스와 같은 음악 서비스까지 결합한 신개념 모델이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과거의 기준으로 보면 참으로 무모한 사업모델이었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아이팟은 과거 매킨토시의 재현이 될 것이라면서 곧 무너질 것처럼 예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로 빌 게이츠는 2005년 5월 애플의 성공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며, 매킨토시도 초반에는 큰 인기를 끌었지만 얼마 가지 않았다며, 아이팟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얘기했다. 



MP3 플레이어 시장에 본격 진출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과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PC 분야에서 펼쳤던 전략을 그대로 사용했다. 여러 하드웨어 업체들이 자사의 소프트웨어를 이용해서 MP3를 만들게 했다. 또한 아이튠스 뮤직스토어 서비스와 대항하기 위해서 다른 음악 서비스 업체와도 제휴하였다. 애플은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인터넷 뮤직 서비스를 혼자서 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각 전문 분야별로 여러 회사와 연합군을 구성한 것이다. 제휴업체를 늘리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세가 급격히 불어나자 아이팟이 매킨토시처럼 될 것이라는 예측도 늘어났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그야말로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버렸다. 그러자 기존의 연합군을 해체하더니 직접 준(Zune)을 제작했다. 회사 이름에 소프트가 들어갈 정도로 소프트웨어 중심임을 표명하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하드웨어를 직접 제작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이는 게임의 법칙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한 우물만 파는 모델이 MP3 플레이어 시장에서는 통하지 않음을 깨닫고 결국 애플식의 게임의 법칙을 받아들인 것이다.


애플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일거에 파괴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낼 줄 아는 회사다. 게임 체인저인 애플은 단순한 혁신이 아니라 혁명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애플이 무엇인가를 시도할 때마다 항상 부정적인 의견이 뒤따랐다. 현재를 지배하는 게임의 법칙이 미래에도 계속 적용될 것이라는 착각 때문이다. 어제까지는 승리한 게임의 법칙이라도, 다음날에는 게임 체인저에 의해 일거에 뒤집어질 수 있다. 그래서 애플의 일거수일투족은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이 하나의 성공을 만들어내면 세상을 지배하는 게임의 법칙이 또 그만큼 변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아이폰이 좋은 본보기가 된다. 2009년 11월 아이폰이 정식으로 출시되자 아이폰 판매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았다. 고작 10만 대에서 20만 대 정도 판매될 것이라 예상할 정도였다. 실패의 근거는 스마트폰 시장이 1%밖에 안 되고, 국산 휴대폰 점유율은 90%가 넘는다는 것이었다. 외국산 휴대폰의 무덤이며, 스마트폰 시장은 너무 작으니 아이폰 역시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이는 게임 체인저로서의 애플의 역량을 무시한 것이었다. 아이폰은 한국에서 출시된 후 40만 대를 판매하더니 6개월 만에 70만 대를 돌파했다. 아이폰이 처음 잘 팔릴 때는 대기수요가 한 번에 몰린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판매는 곧 줄어들 것이라고 장담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아이폰이 대세라고 보고 있다. 


아이폰의 성공과 함께 한국의 휴대폰 시장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1%밖에 안 되는 시장 점유율로 찬밥신세였던 스마트폰 시장에 이동통신업체와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회사의 사운을 걸고 전력을 쏟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무선랜은 이동통신업체로서는 반갑지 않은 기능이다. 무선랜으로 인터넷을 하면 이동통신업체의 망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통신요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원래 있던 무선랜 기능을 정작 휴대폰 모델이 발매될 때는 제거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하지만 아이폰 이후 이제는 일반 폰에도 와이파이가 달릴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다. 이동통신업체는 회사의 사활이 와이파이에 있다는 생각으로 너 나 할 것 없이 와이파이 확충을 위한 경쟁에 돌입할 정도로 무선랜에 대한 태도 자체가 돌변했다.


아이폰은 단순히 이동통신 산업만 바꾸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네이버나 다음 같은 인터넷 업체들은 모바일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으며, 기업들은 스마트폰을 업무에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또한 언론, 출판, 금융, 유통업체들도 아이폰이 변화시킨 환경에 적응하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현재 아이폰은 단순히 휴대폰 하나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사회와 문화 그리고 라이프스타일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이런 변화가 외국에서도 신기했는지 <월스트리트 저널>에서는 ‘The iPhoning of Korea’라는 이름으로 아이폰이 어떻게 한국 사회를 변화시켰는지를 보도할 정도였다. 


게임 체인저로서 아이폰이 만들어낸 가장 놀라운 모습은 액티브 엑스(Active X) 일색인 한국 인터넷의 변화다. 액티브 엑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자적인 기술로 다른 웹 브라우저에서는 호환되지 않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웹 브라우저인 익스플로러에서만 완벽하게 작동된다. 한국은 윈도우가 시장을 장악한 영향도 있지만 유독 익스플로러의 점유율이 높다. 익스플로러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62.7%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97%나 된다. 한국에서 유독 시장점유율이 높은 것은 액티브 엑스 덕분이다. 한국에서 액티브 엑스 없이 인터넷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문제는 액티브 엑스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자기술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차원에서 전자상거래에 필수적인 공인인증서를 법으로 규정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액티브 엑스를 사용하도록 강제하였다는 점이다. 


국가가 이렇게 특정기업의 기술을 강제로 사용하도록 하는 정책은 세계 흐름과는 맞지 않는 것으로, 이 때문에 한국의 인터넷 환경을 퇴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인터넷 브라우저인 익스플로러가 아니면 아예 인터넷을 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에, 다른 다양한 기술로 무장한 플랫폼이 설 자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폰이 실패할 중요한 근거 중 하나가 액티브 엑스였다. 액티브 엑스 없이 온전한 웹 서핑이 어려운 한국에서 아이폰에 탑재된 브라우저인 사파리로는 인터넷을 사용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폰이 등장하자 인터넷서비스업체들이 모바일 전용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아이폰으로도 편안하게 웹을 서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꾸고 있다. 또한 정부에서도 액티브 엑스 없이 아이폰에서도 인터넷 상거래가 가능하도록 공인인증서 제도를 바꾸기로 하는 등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역시 게임 체인저로서의 아이폰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애플은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게임의 법칙을 바꾸기도 한다. 애플은 처음부터 아이폰을 서비스할 이동통신업체를 직접 선택하려 했다. 이는 당시로는 정말 상상도 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이동통신업체와 휴대폰 업체의 관계는 슈퍼갑과 을의 관계였기 때문이다. 휴대폰 판매량은 이동통신업체가 밀어주느냐 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시장이었다. 그래서 휴대폰 업체들은 이동통신업체가 요구하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했다. 이런 관계 때문에 휴대폰 제조사와 이동통신업체를 농노로 표현하는 언론까지 있을 정도였다. 이동통신업체가 원하는 휴대폰이란 위대한 제품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동통신업체와 2년 정도 약정을 하는 고객에게 무료로 제공할 수 있는 정도의 무난한 휴대폰이면 충분했다. 그러다 보니 이동통신업체에서 보조금을 받고 소비자에게 무료로 팔 수 있는 정도의 그저 그런 수준의 휴대폰이 시장을 주도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이동통신업체의 입김을 배제하고, 철저히 애플의 생각으로 아이폰을 개발하려고 했다. 이동통신업체와 협의 없이 제품을 만들겠다는 것도 당시로는 놀라운 발상이었지만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이동통신업체의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콘텐츠를 소비자들에게 직접 팔아야 한다고까지 생각했다. 휴대폰을 만드는 업체가 이동통신사를 거치지 않고 콘텐츠를 직접 판매하겠다는 이런 계획 역시 당시에는 전례가 없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동통신사는 통신망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휴대폰의 기능에서부터 판매와 서비스 방식까지 모든 것을 통제하던 현실에서 애플의 계획은 그야말로 무모함, 그 자체였다. 


실제로 미국 1위의 이동통신업체인 버라이존에 아이폰을 제안하자 그 즉시 거절당했다. 하지만 애플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게임의 법칙을 바꾸려 했다. 만약 이동통신사로부터 자신들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직접 이동통신사를 세울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AT&T는 5년 동안 아이폰 독점판매권을 갖는 대신 그 이외의 모든 통제권을 애플이 가져가는 것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AT&T가 버라이존에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회사의 고객을 뺏어 와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AT&T는 애플의 아이폰이라면 다른 업체의 고객을 불러 모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내린 결정이었지만, 사실 매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동통신업체의 절대권력 중 상당 부분이 휴대폰 업체에게 이양된 날이기 때문이다. 아이폰 이후 이동통신업체는 자신들의 권력을 나누어 주면서까지 위대한 휴대폰을 모셔 오기 위한 경쟁을 펼치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그야말로 게임의 법칙이 완전히 바뀌었고, 혁명의 시작에는 역시 애플이 있었다. 


게임의 법칙을 애플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려는 모습은 최근 벌어지는 플래시와의 전쟁에서도 잘 드러난다. 애플은 플래시가 자원을 많이 사용한다는 이유로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고 있다. 플래시의 제작사 어도비가 강력하게 반발했으며, 이를 비난하는 여론도 커지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직접 장문의 글을 통해서 애플이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는 이유를 밝혀야 했다. 그는 “플래시는 PC와 마우스 시대에 맞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모바일 시대에 필요한 저전력과 터치 인터페이스 그리고 개방형 웹 표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므로 애플은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기술업계에서는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다. 


애플 입장에서 보면 플래시는 매우 껄끄러운 존재다. 플래시는 윈도우 PC와 매킨토시에서 동시에 돌아가는 멀티 플랫폼을 지원한다. 그러나 사실 윈도우 PC에서 훨씬 잘 돌아간다. 이 때문에 아이폰에서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는다고 하자 매킨토시 사용자들은 오히려 잘 됐다고 환영할 정도였다. 그동안 매킨토시 이용자들은 윈도우 PC에 비해 형편없이 돌아가는 플래시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도비는 시장 점유율 90%가 넘는 윈도우 PC에 전력을 쏟았고, 점유율 5% 내외에 불과한 매킨토시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애플에게도 악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은 윈도우 PC에서 쌩쌩 잘 돌아가는 플래시가 매킨토시에서 잘 돌아가지 않으면, 애플의 컴퓨터 기술력이 떨어져서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전에도 이런 비슷한 악몽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 MS 워드의 경우 윈도우에서 문서 파일을 불러오면 즉시 열렸지만 매킨토시에서는 30초나 걸렸다. 매킨토시에게는 치명적인 일이었다. 매킨토시 성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때야말로 애플의 암흑기가 시작되던 시기였다. (완전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는 MS 오피스가 아예 매킨토시용으로는 나오지도 않았었다.) 결국 애플이 너무 많은 부분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의존한 것이 화근이었다. 지금도 스티브 발머는 온전한 MS 오피스를 쓰고 싶다면 매킨토시가 아니라 윈도우를 쓰라고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다. 그런데 플래시가 같은 악몽을 재현하려 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에 의하면 매킨토시에서 일어나는 충돌 문제의 가장 빈번한 원인은 플래시 때문이라고 한다. 이 문제를 어도비에 지적했지만 별다른 대처를 해주지 않고 있다며 분노를 표했다. 


정작 어도비는 스티브 잡스의 불만에 대해 애플로서는 가장 치욕스러우면서도 절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답변을 내놓았다. 어도비 CEO인 산타누 나라옌은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매킨토시에서 플래시 때문에 충돌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플래시가 매킨토시 운영체제인 맥 OSX의 문제라고 밝혔다. 애플 입장에서 보면 정말 치명적인 일이다. 이는 맥 OSX가 윈도우보다 떨어진다고 낙인을 찍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도비는 10여 년 전부터 매킨토시 플랫폼에 소홀해 왔다. 어도비의 대표적인 소프트웨어인 포토샵만 해도 맥 OSX 버전이 윈도우보다 열등하다. 과거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와 비슷한 상황이 재현된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도움 덕분에 성공시대를 연 어도비가 정작 애플을 외면하자 스티브 잡스는 충격을 받았고, 그가 소프트웨어에 전력을 쏟는 계기가 될 정도였다. 이런 배경 때문에 애플이 플래시를 거부하는 이유가 사실은 과거에 대한 복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어도비는 매킨토시보다 윈도우에 정성을 쏟아왔다. 물론 돈을 벌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고객이 월등히 많은 곳에 회사의 자원을 투입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애플이 그런 사정까지는 봐줄 필요가 있을까? 애플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플랫폼을 보호해야 한다. 플래시는 애플의 명성에 타격을 주고 있으며, 플래시의 인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더 큰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어도비는 윈도우에 주력하는 회사이며, 이는 제품의 질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만약에 플래시를 기준으로 해서 윈도우와 맥 OSX을 평가하게 된다면 맥 OSX가 완패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 입장에서 보면 플래시가 플랫폼을 선택하는 기준은커녕 평가 대상도 될 수 없도록 플래시의 입지를 최소화시킬 필요가 있다. 


스티브 잡스의 공개 메일을 보면 애플의 이런 의도가 잘 드러난다. 스티브 잡스는 여섯 가지 이유를 들어서 플래시 거부 사유를 밝혔는데, 마지막 여섯 번째에 가장 중요한 이유를 말했다. 여섯 번째 항목에서 스티브 잡스는 외부의 소프트웨어 회사가 개발툴을 만들 경우 플랫폼의 기술과 성능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말한다. 회사에서 플랫폼을 향상시켜도, 외부 소프트웨어 업체에서 이를 적용하여 업그레이드해 주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 어도비의 플래시는 윈도우와 맥 OSX 두 개의 운영체제를 지원하는 멀티 플랫폼이지만, 맥 OSX의 최신 기술이 등장한 지 10년이 지난 후에야 이를 접목할 정도로 맥 OSX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어도비의 플래시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처럼 강력한 힘을 가지는 소프트웨어가 된다면 애플에게 치명타가 될 것이 자명하다. 고로 애플의 입장에서는 플랫폼을 사수하기 위해서라도 플래시를 견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애플이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으면 애플에 대한 비난 여론이 흐를 수밖에 없고, 어도비 역시 애플이 벽을 만들고 있다면서 폐쇄성을 집중적으로 비난하고 나섰다. 시장에서 이익을 얻기 위한 싸움이라도 거기에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특히 IT업계에서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애플은 표준 기술인 HTML5를 들고 나오며 오히려 플래시가 폐쇄적이라고 역공격을 펼치고 있다. 어도비 입장에서는 자사의 기술을 애플에서 지원해 주지 않으니 애플이 폐쇄적이라고 하는데, 정작 애플은 웹이 특정회사의 기술로 통제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플래시야말로 폐쇄형이라고 지적한다. 사실 웹은 주인이 없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업체 간 합의를 통한 공개 표준이 중요한 곳이다. 플래시가 편리해서 사용하기는 하지만 모든 기술을 어도비 혼자서 통제하는 폐쇄형 기술인 것도 사실이다. 


애플은 플래시를 교체하기 위한 기술로 공개개방형 표준기술인 HTML5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문제는 HTML5가 아직 확정된 기술이 아니며, 언제 대중화될지 모르는 미완의 기술이라는 점이다. HTML5의 미래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애플이 HTML5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나서자 어느덧 IT업계의 화두는 HTML5가 되었고, IT기업이 너도나도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2010년 6월 스트리밍 미디어(Streaming Media)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1,147개의 미디어 사이트 중 49%에 이르는 업체가 앞으로 HTML5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많은 업체들이 HTML5를 지원하는 것은 아이패드의 성공 덕분이다. 아이패드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플래시가 아니라 HTML5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아이패드와 아이폰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HTML5 기술도 더 빨리 보급될 것이다. 


애플은 자사의 홈페이지에 HTML5 기술을 이용하면 얼마나 멋진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쇼 케이스까지 만들어 HTML5 기술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 그들이 게임의 법칙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잘 알 수 있다. 플래시를 지원하지 않음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듣는 한편 경쟁업체에게는 폐쇄적이라는 격렬한 비난을 들어야 했지만, 이런 논란 속에 HTML5라는 표준기술을 제시하면서 업계 전체를 애플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HTML5의 보급은 그 자체로 인터넷을 지배하는 게임의 법칙을 바꾸는 일이다. 업계의 방향을 자사에게 유리하도록 게임의 법칙을 바꿀 수 있는 애플의 능력, 그것이 바로 애플이 혁신을 넘어 혁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다.


<다음회에 계속됩니다. 그리고 저의 밥줄인 모바일 게임 러브아이돌 주식회사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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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가 어렸을 때 우리 세대의 바이블 같은<The Whole Earth Catalog>라는 출판물이 있었습니다. 이 서적은 이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멜론파크에 살던 스튜어트 브랜드라는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그는 이 책에 시적인 느낌을 담아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개인용 컴퓨터와 데스크톱 출판이 이루어지기 전인 1960년대 후반에 출판되었기 때문에 그 책은 모두 타자기, 가위, 폴라이드 카메라를 이용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구글이 등장하기 전이었던 35년 전, 종이책으로 된 구글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깔끔하게 정돈된 도구와 기발한 개념들로 넘쳐난 이상적인 책이었지요.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Whole Earth Catalog>를 몇 회 발간한 후, 책의 역할이 끝나갈 즈음에 최종호를 내놓았습니다. 그것이 197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제가 여러분과 비슷한 나이였을 때지요. 마지막 호의 뒤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여러분이 모험심이 강하다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어 할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Stay Hungry(끝없이 갈망하라). Stay Foolish(한없이 바보처럼)” 이것이 바로 그들이 남겨준 작별의 메시지였습니다. “끝없이 갈망하라. 한없이 바보처럼” 저는 항상 그러기를 소망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졸업을 하고 새로운 날들이 펼쳐질 여러분들에게 제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Steve Jobs Stanford Commencement Speech 2005‎






2. 우리에게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일에 정말로 훌륭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의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인생은 짧고 결국에는 모두 죽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삶으로 선택한 일입니다. 우리는 일본 어딘가의 절에 앉아서 수행을 하거나 항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골프를 치러갈 수도 있겠죠. 그들은 회사를 경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일을 하면서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니 좀더 가치가 있게 일을 매우 잘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Steve Jobs speaks out, Fortune,  MARCH 07 2008





3. 이 산업과 함께 성장한 저는 매우 운이 좋았습니다. 사업 초창기에 저는 거의 모든 일을 담당했습니다.  제품출하, 영업, 부품구입 및 공급, 바닥 청소, 감자칩 구매 등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나는 내 양손으로 직접 컴퓨터를 나르기도 했습니다. 산업이 커져가는 동안에도 저는 그 일을 계속했습니다.


The Seed of Apple's Innovation, BUSINESSWEEK, OCTOBER 12, 2004






4. 픽사의 모든 사람들은 매우 헌신적이었고 토이 스토리와 캐릭터를 사랑했습니다. 우리는 새로 만드는 영화를 너무나 좋아해서 죽을힘을 다해서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회복하는 데 1년이 걸릴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정말 너무나 힘든 일이었어요.

다큐멘터리 The Pixar Story, 2007년





5. 많은 사람들이 픽사는 하룻밤 사이에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말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면 하룻밤사이에 이루어진 성공도 오랫동안에 걸쳐서 이루어진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Documentary Pixar Story  2007년





6. 리사를 만드는 사람들은 뭔가 훌륭한 것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맥을 만드는 사람들은 미치도록 훌륭한 제품을 원했다. 그것이 차이를 만들어냈습니다.


Apple confidential 2.0, Owen W. Linzmayer,No Starch Press, 2004





7.  사람들은 결과로 당신을 평가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결과물에 집중해야 합니다. 품질의 척도가 되세요. 어떤 사람들은 탁월함이 기대되는 환경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Steve Jobs: the journey is the reward,Jeffrey S. Young ,Scott, Foresman, 1988






8. 인터넷 창업 열풍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너무 많은 사람이 회사를 창업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끈기가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몰론 이해는 합니다. 사업을 하다보면 절망스럽고 고통스런 순간이 너무나 많거든요. 사람을 해고해야 하고, 무엇인가를 취소해야 하는 것처럼 매우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 여러분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여러분의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회사를 팔면 거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지만 그들 자신은 스스로를 속여야 합니다. 그들의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는 경험이 될 수 있었던 것을 포기한 채로 말이죠. 절망과 고통의 순간 없이는 절대로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으며, 새롭게 쌓아올린 부를 지켜낼 방법도 알아낼 수 없습니다.

Apple’s One-Dollar-a-Year Man , Fortune ,24 January 2000





9. 우리는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3.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대중화시켰고, 최초의 아이맥에서는 플로피 디스크를 제거했습니다. 우리는 직렬과 병렬포트를 없애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아이맥에서 USB를 처음 보았을 겁니다. 우리는 맥북에어에서 옵티컬 드라이브를 최초로 버렸습니다. 우리가 이런 일을 할 때 사람들은 우리가 미쳤다고 합니다.




<해설>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 열정을 쏟아 부어도 문제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고 열심히 파고든다고 해도 주변에서 냉소적이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절대로 그런 시선에 흔들리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D8 - AllThingsD(via Engadget Steve Jobs live from D8)  1 Jun 2010 11. 




10. 


여기 미치광이들이 있다.

사회부적응자, 반항아, 말썽쟁이

네모난 구멍 속에 쑤셔 넣은 둥근 못같은 사람들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

그들은 규칙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재를 존중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들의 말을 인용하거나, 

그들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은 그들을 찬양하거나 비난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당신의 자유지만 단 한 가지, 당신은 그들을 무시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을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인류를 앞으로 이끌고 나간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미치광이로 보겠지만, 

우리들은 그들이 천재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미친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직접 참여한 Think Different의 광고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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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야심가들이 제품을 만들 때는 순차적으로 개발을 진행해서는 안 됩니다. 도전이 정말 복잡하다면 좀 더 협력적이고 통합적인 방식으로 제품을 개발해야 합니다.


- 조너선 아이브, 2005년 <타임>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23) 



애플의 디자인 프로세스는 우선 실물 크기의 프로토타입을 직접 만들어 보고, 이를 수정하는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렇게 프로토타입을 직접 만드는 관행은 1980년대 초반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매킨토시 역시 애플의 다른 제품처럼 개발 초기부터 디자인 작업이 병행되었다. 애플2 컴퓨터를 담당했던 디자이너인 제리 메녹이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을 개발팀원들에게 공개하면, 개발팀원들은 자신의 생각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제리 메녹은 팀원들의 의견을 참조해서 매달 조금씩 달라진 프로토타입을 공개했다. 팀원들이 변화된 모습을 비교할 수 있도록 이전 모형들과 나란히 전시했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디자인이 최종 확정되는 날에는 팀원들이 모두 모여서 샴페인 파티를 열었다. 


당시 매킨토시의 프로토타입은 석고 모형이었지만, 지금은 실제 디자인과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 본다는 차이점이 있다. 애플 시제품은 조금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하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만든다. 이 때문에 애플은 시제품을 만드는 단계에서부터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다. 이 부분이야말로 다른 회사와 애플의 근본적인 차이다. 사실 시제품을 많이 만들게 된다는 것은 그만큼 실패작을 많이 만든다는 것을 뜻한다. 애플 디자이너들은 실패작을 만드는 데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자신들이 실패작을 만들어낸 것을 기뻐한다. 틀렸다는 것은 곧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조너선 아이브는 애플 디자인팀의 장점은 틀린 것을 추구할 줄 아는 호기심과 탐구정신에 있다고 밝힐 정도다. 실패작을 만드는 과정에서 얻게 된 경험은 디자인팀 전체의 학습능력을 발전시키고, 더욱 뛰어난 디자이너로 성장시킨다. 당장의 실패가 나중에 발생하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애플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실패작을 연발해도 새로운 시제품을 다시 만드는 데 부끄러움이 없다.


애플에서 프로토타입을 제작할 때는 10:3:1의 법칙으로 작업한다. 우선 디자이너들이 마음껏 자유롭게 10개의 프로토타입을 만든다. 10개의 프로토타입은 콘셉트 자체가 완전히 다른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완성된 프로토타입 중 3개를 선택한 후 몇 개월에 걸쳐서 선택된 프로토타입을 끊임없이 수정한다. 마지막에는 이 3개의 프로토타입 중 최종 디자인을 결정하게 된다.


디자인팀에는 브레인스토밍 회의와 제작회의 두 가지 종류의 회의가 있다. 브레인스토밍 회의는 그야말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든 것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회의인 반면, 제작회의는 철저히 현실성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회의다. 이때는 엔지니어와 협의하면서 제조 전반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된다. 애플의 디자인팀을 이끌었던 로버트 브르너에 의하면 애플에서 디자이너의 업무 시간은 디자인 콘셉트를 잡을 때 대략 15%에서 20% 정도만을 쓰고, 나머지 시간에는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고 한다. 아무리 훌륭한 디자인도 대량생산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애플 디자이너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항상 제조과정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해야 하며, 디자인 콘셉트가 제품에 제대로 구현되어야 하는 만큼 디자이너들이 직접 제조과정에 참여한다.


애플의 디자인 자체가 독창적이고 시대를 앞선 만큼 생산공정 역시 만만찮다. 다른 회사라면 생산의 어려움 때문에 포기하는 디자인이라도 애플은 많은 돈을 투자해서 직접 새로운 공법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매킨토시는 독특한 외관 때문에 대량생산이 힘들었지만 매킨토시만의 독특한 사출성형 방식(플라스틱 같은 가소성 재료를 열로 녹여서 원하는 모형의 형틀에 압력을 가해 찍어내는 제조 방법)을 만들어냈다. 하나의 제품에 다른 색을 동시에 입히는 방법을 더블 샷(Double Shot)이라고 한다. 더블 샷은 아이팟 크기의 제품에는 적용하기 힘들지만 애플은 더블 샷 기술을 보유한 회사를 찾아가 열심히 설득했고 결국 공장은 애플을 위해서 더블 샷 기술을 적용한 공정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디자이너들은 하청을 주는 공장 관계자와 만나서 생산공정에 대해서 직접 협의를 하는데 때로는 공장이 있는 아시아에 출장 가서 몇 개월씩 머무르기도 한다. 제조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만큼 외주 공장에서는 애플 디자인팀과 함께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애플의 제품은 만드는 것 자체가 까다롭다. 애플의 노트북에는 어떠한 나사도 들어가지 않아야 하는데 공장에서는 이를 위해서 기존에 없었던 제조공정을 배워야만 했다. 덕분에 공장은 더 뛰어난 기술력을 확보하면서 새로운 미래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애플 디자이너들은 재료에도 많은 시간을 투입한다. 2010년 조너선 아이브는 <Core 77>과의 인터뷰에서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컴퓨터의 3차원 기술에 너무 의존하지 말 것을 충고한 적이 있다. 3차원에 의존하면 재료가 가지는 중요성을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디오가 아니라 직접 재료를 이용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봐야 한다는 것이 조너선 아이브의 생각이다. 실제로 조너선 아이브는 끊임없이 재료에 대해서 연구하고 실험하면서 재료가 가진 속성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재료 연구가 조너선 아이브의 활약 덕분인지 실제로 애플은 플라스틱, 티타늄,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유리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서 제품을 만들어 오고 있다. 


재료에 대한 이런 노력 덕분에 한때 가졌던 환경오염기업이라는 불명예를 재빠르게 벗어 던질 수 있었다. 2007년 그린피스는 환경을 오염시키는 기업으로 애플을 선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언론에 알렸다. 이로 인해 애플의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받았지만 애플의 디자인팀은 알루미늄을 이용한 노트북을 만들어냈다. 재활용이 가능한 알루미늄을 사용한 덕분에 애플은 환경오염기업이라는 주장에 대해 떳떳이 반론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애플은 제품 제작에 알루미늄과 같은 친환경 재료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덕분에 2010년 그린피스에서 발표하는 환경보호 부분에서 최고 수준인 별 4개를 받을 수 있었다.


애플 디자인 성공 신화의 비밀


* 디자인은 단순한 외형이 아니라 작동 방식이다

외형은 디자인의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며, 좋은 디자인을 하려면 사물의 본질을 완벽하게 꿰뚫고 있어야만 한다.


* 디자인은 제품을 특별하게 만든다

IT제품이라도 패션 분야처럼 디자인만으로도 제품의 차별화를 이루고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 극도의 세밀함을 추구한다

남들이 보지 않는 컴퓨터 케이스 안의 전선 하나까지 배려하는 디테일이 애플의 제품을 살린다.


* CEO의 감각과 의지가 필요하다

단순히 디자인에 많은 돈을 투자한다고 해서 좋은 디자인이 나오지는 않는다. 훌륭한 디자인을 알아보고 힘을 실어 주는 CEO의 역할이 필요하다.


*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는 별개가 아니다

애플은 순차적인 개발 방식이 아니라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처음부터 함께 통합적으로 개발을 진행한다.


* 디자이너들을 위한 독립된 환경을 배려한다

애플 디자이너들은 외부 환경에 영향 받지 않고, 창조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독립적인 장소에 사무실이 배치되었다.


* 디자인도 팀 스포츠다

디자인은 개인의 창조성도 중요하지만 서로간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서 더욱 멋진 디자인을 만들 수 있는 팀 스포츠다.


* 디자인은 대량생산을 통해서 완성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디자인이라도 제품으로 대량생산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애플의 디자이너는 업무의 80% 정도를 제조 부분에 집중한다.




<"애플 처럼 창조한다는 것"  매주 연재 됩니다.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은 저의 페이스북 팬페이지에 접속하셔서 좋아요 버튼좀 눌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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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참 재미있는 단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디자인을 단순히 제품의 외형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사실은 제품이 어떻게 작동하느냐를 의미하는 것이죠. 맥의 디자인은 단순히 외형만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외형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작동 방식입니다. 정말로 디자인을 잘하고 싶다면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즉 제품의 본질에 완벽하게 통달해야만 합니다. 겉핥기가 아니라 완벽하게 제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열정적으로 헌신을 다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일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지요.


- 스티브 잡스, 1996년 <와이어드> 인터뷰 중에서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21) 



애플의 디자인 방식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CEO인 스티브 잡스가 회사 내에서 그 누구보다도 디자인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실제로 뛰어난 감각으로 직접 디자인을 챙긴다는 점이다.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에 대한 방향을 결정하고 디자이너를 직접 영입하는 일을 해왔다. 애플2 컴퓨터를 만들 때는 제리 마녹을, 매킨토시 이후에는 하르무트 에슬링어를 스카우트했다. 애플에 돌아온 직후에도 세계 제일의 디자이너를 데려오려 했지만 조너선 아이브를 보고는 즉시 그의 재능을 간파했다. 디자이너의 재능을 알아보는 스티브 잡스의 능력은 뉴욕 맨해튼에 있는 애플스토어를 디자인할 때도 잘 드러난다. 스티브 잡스는 직접 건축가 피터 보울린(Peter Bohlin)을 고용했다. 피터 보울린은 한 번도 매장을 디자인해 본 적이 없었지만 그가 디자인한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보고는 그 천재성에 감탄해서 애플스토어 디자인을 맡긴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스토어가 물건을 파는 장소가 아니라 소셜 스페이스(Social Space)가 되어야 하며, 아이폰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기념사진을 찍고 싶을 만큼 멋진 장소가 되기를 바랐다. 당시 애플이 뉴욕에 임대한 건물은 지하에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사람들을 지하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뭔가 특별한 것이 필요했다. 매장 디자인을 맡은 피터 보울린은 거대한 사각형의 유리로 입구를 만들었다. 화려한 사각형의 유리에서 뿜어내는 환한 빛이 지나가는 사람 누구에게나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발시켰고, 지하에 내려오는 행동은 마치 하늘에서 땅으로 강림하는 그런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애플스토어는 애플이 만들면 무엇이든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다는 저력을 충분히 보여 주었다. 피터 보울린이 디자인한 뉴욕 맨해튼의 애플스토어는 개장할 때부터 큰 화제를 불러 모으더니 지금은 어느덧 뉴욕의 중요한 관광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코넬대학교는 사진 공유 사이트인 플리커에 올라온 사진 중 350만 개를 조사했더니, 뉴욕 5번가의 애플스토어가 뉴욕에서 사람들이 가장 사진을 많이 찍는 장소 중 5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전 세계의 관광지와 비교해도 28위에 이를 정도다. 어느덧 여행객들이 뉴욕을 가면 맨해튼의 애플스토어를 방문하는 것이 중요한 코스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디자이너를 보는 능력이 뛰어난 만큼 스티브 잡스는 디자이너가 원하는 작업 환경을 구축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다. 스티브 잡스는 자동차 전시회에서 공개되는 멋진 콘셉트 카들이 4년이 지나 막상 출시되었을 때는 엉망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에 의하면 디자이너가 아무리 훌륭한 디자인을 만들어도 엔지니어들이 여러 기술적인 이유를 들이대면서 반대하기 시작하면 디자인은 길을 잃고 헤매기 마련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개발 모델 대신 개발 초기단계부터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이 모두 모여서 디자인을 같이 하는 통합적인 개발 방법을 구축했다.


협력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한 통합적인 개발 환경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엔지니어보다 디자인팀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 전화번호부 하나를 보여주면서 매킨토시의 크기는 이것보다 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전화번호부보다 작은 컴퓨터는 상상하기도 힘들었지만, 개발자들은 스티브 잡스의 고집을 꺽을 수 없었고 결국 그의 뜻대로 매킨토시를 만들기 위해서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매킨토시에서 보듯이 디자인을 결정하면 엔지니어가 따라가는 개발 방식이 애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애초에 스티브 잡스가 디자인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엔지니어들은 디자이너가 원하는 디자인을 제품으로 완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엔지니어들이 디자이너가 원하는 것을 항상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불행히도 그렇지 못할 경우 애플은 기술적으로 문제인 상품을 만들어낸다. 


2001년 출시된 파워맥 G4 큐브는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극찬을 들었다. 특히 컴퓨터로는 이례적으로 뉴욕 박물관에 전시되어 예술품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작고 아름다운 사각형 디자인 때문에 발열 문제가 심각했는데, 거기에 투명 케이스에 쉽게 금이 생기면서 갈라지기까지 했다. 아이폰 4 역시 애플의 디자인팀이 엔지니어팀보다 강력한 집단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애플의 실패작들을 살펴보면 디자인에 대한 과도한 욕심에 비해 기술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디자이너가 기술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기술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결코 아니다. 디자이너 역시 엔지니어처럼 기술적인 소양을 가지고 있다. 아이팟 셔플을 만들 때 디자이너들은 손수 회로기판을 둘로 나누는 방법을 알아냈다. 이러한 디자이너의 아이디어 덕분에 기기의 크기는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었다. 


애플의 디자인팀은 애플의 조직구성이 그렇듯이 철저한 소수정예를 추구한다. 애플은 IT업계를 리드하는 업체로 수많은 히트작을 내놓고 있는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디자이너는 고작 10명 내외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소수정예를 추구하는 건 사람이 많다고 해서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것도 아니며, 소수의 인재가 팀워크로 움직이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견해 때문이다. 애플 디자인팀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디자인팀을 이끄는 조너선 아이브 자체가 영국인 출신이고, 내부 디자이너들은 일본, 독일, 뉴질랜드, 이탈리아에서 온 다국적팀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자인 업계에서 가장 훌륭한 디자이너들을 스카우트한 만큼 연봉도 업계 평균의 50%가 넘는 20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 디자인팀은 단순히 일만 같이 하는 사이가 아니다. 저녁식사도 함께 하고, 함께 여행을 떠나는 등 모두가 가족처럼 지내고 있다. 보통 개인의 창의성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직원들에게 각각 개인 사무실을 제공하기 마련인데 애플 디자이너들에게는 개인 사무실 자체가 없다.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통한 협동 관계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만큼 디자인팀에는 아예 칸막이조차도 설치하지 않았다. 애플 디자인팀은 하나의 사무실 공간 안에서 음악을 함께 들으면서 모두가 얼굴을 맞대고 공동작업을 한다. 조너선 아이브가 애플 제품 대부분이 스튜디오 안의 작은 부엌에서 함께 피자를 먹으면서 태어났다고 말할 정도로, 애플의 훌륭한 디자인은 결국 끈끈한 팀워크를 바탕으로 태어난 협력과 협동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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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목수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해서 장롱 뒤에 형편없는 목재를 쓰진 않습니다.

- 스티브 잡스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21)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스티브 잡스는 감성 지향적이고, 빌 게이츠는 이성 지향적이다. 이러한 차이는 디자인을 바라보는 견해에도 큰 차이를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만들 때부터 디자인이 제품의 중요한 차별점이 될 수 있으리라고 봤다. 애플에 돌아온 그는 디자인이 애플을 부활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아이맥을 탄생시켰다. 빌 게이츠는 아이맥의 독특함은 색깔밖에 없다면서 아이맥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봤지만 아이맥은 빌 게이츠의 발언 이후에도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 가격이 내려가면 시장은 활성화되고, 디자인과 패션은 더욱더 중요해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손목시계가 단순히 시간이 정확해서가 아니라 디자인 때문에 팔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디자인에 대한 그의 신념은 아이팟 시대가 도래하면서 확실한 보상을 받게 된다. 사실 아이팟은 기능이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았을 뿐더러 가격도 비쌌지만 MP3 플레이어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애플이 아이팟에 ‘디자인과 패션’이라는 요소를 접목시킨 덕분이었다. 아이팟 이전에도 분명히 애플 컴퓨터의 디자인들은 뛰어났다. 그러나 컴퓨터는 집에서만 사용하는 기기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어도 매우 한정적이다. 패션과 디자인은 자기만족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과시할 수 있을 때 더욱 빛나기 마련이다. 휴대용 기기는 항상 착용할 수 있기 때문에 밖에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즉시 자랑할 수 있다. 특히 아이팟은 목걸이나 반지 같은 패션 아이템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이를 명품업체들이 놓칠 리가 없었다. 구찌, 버버리, 루이비통 같은 명품 패션업체들이 아이팟을 위해서 가죽 케이스를 만들기 시작했고, 새로운 시장이 창조되었다. 아이팟을 통해서 애플의 뛰어난 브랜드 파워와 훌륭한 디자인 감각이 폭발하였고 이는 MP3 플레이어 시장을 독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아이폰은 아이팟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아이폰은 애플의 브랜드 파워 덕분에 명품백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모임에서 누군가 명품백을 들고 나오면 사람들이 명품백에 주목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보듯이 최신 아이폰을 들고 모임에 참석하면, 똑같은 상황을 겪게 된다. 2010년 WWDC에서 스티브 잡스는 자신에게 온 이메일 내용을 공개했다. 카페에서 한 남자가 아이패드를 사용하고 있자 한 여성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면서 아이패드는 마법 같은 기기라고 극찬했다는 이야기였다. 이렇듯 휴대용 기기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취향과 특성을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도구인 만큼 옷을 잘 입는 것만큼이나 이성으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애플은 디자인에 대해서도 확고한 철학이 있다. 그것은 바로 ‘단순한 것이 곧 최고’라는 사고방식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조직과 제품 라인업을 단순화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제품 개발을 할 때도 기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단순함에 대한 집착은 디자인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애플 휴대용 기기는 배터리가 일체화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불만을 표해도 애플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애플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것을 디자인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받아들인다. 착탈식 배터리를 채용하게 되면 디자인에 이음새가 생기는데 극도의 단순함을 추구하는 애플 디자인팀이 이를 받아들일 리가 만무하다. 이음새뿐만 아니라 애플은 나사에 대해서도 참지 못한다. 어느 날 스티브 잡스는 디자이너에게 새로 개발하는 맥에는 나사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고 선포했다. 그런데 디자이너가 제품 하단에 나사가 하나 있는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나사를 발견한 스티브 잡스는 즉시 디자이너를 해고했다. 


나사 하나도 싫어하는 애플이 제품에 스티커를 붙이는 것을 허용할 리 없다. 그러나 전자제품은 필수적으로 몇 가지 제품에 대한 정보를 표시해야 하고, 애플은 고육지책으로 레이저를 이용해 필수 정보들을 새겨 버렸을 정도다. 단순함을 추구하는 애플은 리모컨을 만들 때 역시 다르다. 2005년 10월 스티브 잡스는 스페셜 이벤트에서 컴퓨터를 조종할 수 있는 리모컨을 발표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리모컨을 애플 스타일로 만들었다면서 버튼이 여섯 개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섯 개의 버튼으로도 고객이 원하는 동작을 완벽하게 컨트롤할 수 있음을 보여준 스티브 잡스는 경쟁 회사에서 만든 PC용 리모컨의 버튼이 40개가 넘는다는 사실을 비교하면서 여섯 개의 버튼밖에 없는 리모컨만큼 애플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자랑스러워 했다.


단순함을 추구하는 애플의 일화는 아이맥 G4를 만들 때 잘 드러난다. 신형 아이맥이 마음에 안 들었던 스티브 잡스가 집으로 조너선 아이브를 초대했다. 스티브 잡스는 부인이 정성스럽게 가꾸고 있던 텃밭 주변을 그와 함께 산책했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정원에 있는 꽃을 보여 주면서 모든 요소는 그 자체로 작동해야 한다면서 불필요한 부분이 하나도 없는 단순한 디자인을 요구했다. 마침 옆에는 해바라기 꽃이 있었고, 여기에서 영감을 얻은 조너선 아이브는 해바라기 모양의 뉴 아이맥을 디자인하게 된다. 


이렇게 애플은 단순함을 추구하고 단순함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는다. 애플이 추구하는 단순함은 이미 복잡함의 과정을 거치고 여러 심사숙고 끝에 내려진 일종의 해결책을 뜻한다. 조너선 아이브는 “매우 복잡한 문제를 소비자들이 전혀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게 만들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단순성은 복잡성보다 훨씬 어려운 것이다. 결국 애플의 디자인은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복잡함에서 누구도 쉽게 찾을 수 없는 단순함을 얻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함을 추구하는 애플 디자인의 또 다른 한쪽에는 디테일이 자리 잡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얼마나 세세한 것까지 집착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하나 있다.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보드가 예쁘지 않다며 불평했다. 개발자들은 누가 컴퓨터 보드 모양 따위에 관심이 있겠냐면서 스티브 잡스의 말에 반박했다. 그러자 스티브 잡스는 위대한 목수는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장롱 밑에 형편없는 나무를 쓰지 않는다며 오히려 큰소리쳤다. 이때 팀의 베테랑이었던 버렐 스미스는 컴퓨터 보드의 배선이 복잡한 것은 기술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항변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순순히 수긍할 사람이 아니었다. 보드를 깔끔하게 만들도록 새롭게 기판을 디자인하되 그래도 제대로 작동이 안 되면 그때 포기하자는 것이었다. 결국 5천 달러나 들여서 새롭게 기판을 만들었지만 작동되지 않아 다시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야 했다. 컴퓨터 내부의 디자인까지 신경 쓰는 스티브 잡스의 완벽주의는 여전히 애플의 디자인에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과거에 이루지 못한 꿈은 조너선 아이브에 의해서 현실이 되었다. 조너선 아이브의 책임 아래 나오는 애플의 매킨토시 내부는 깔끔하기로 유명하다. 애플은 박물관에 노트북을 전시할 때 일부러 내부를 분해해서 공개했다. 이때 조너선 아이브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도 몰두하는 자신들의 노력을 이야기하면서, 애플에서 일하는 가장 전형적인 작업 방식은 극도로 세밀한 부분을 디테일하게 신경 쓰는 것이라고 밝혔다. 



남들이 보지 않는 컴퓨터 내부까지 신경 쓰는 애플의 세세함은 제품 곳곳에서 발견된다. 애플은 포장 디자인에서부터 세심하게 고객을 배려한다. 아이맥을 예로 들면 배달된 상자를 열면 안에 스티로폼 조각이 보인다. 이를 꺼내면 아이맥의 상단부가 드러나면서 바로 손잡이가 보인다. 박스에서 컴퓨터를 쉽게 꺼낼 수 있도록 디자이너들이 세심히 배려한 부분이다. 컴퓨터를 꺼내고 나면 이제 소비자는 자신이 다음으로 할 일이 액세서리 박스를 꺼내는 것임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액세서리 박스를 열면 세 개의 선이 보인다. 각각 전기, 인터넷, 키보드에 연결시켜야 하는 케이블인데 한눈에 봐도 어떤 케이블이 어디에 꽂아야 하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쉽게 디자인되어 있었다. 컴맹이라도 이 세 개의 선만 연결하면 바로 컴퓨터를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당시 아이맥의 패키지 디자인은 고객을 생각하는 디테일한 구성이라는 극찬을 들었다. 



애플 컴퓨터는 사람들이 보는 앞면뿐만 아니라 뒷면까지도 세심하게 신경 쓴다. 특히 노트북의 경우 테이블에 놓고 사용하는 제품인 만큼 일반적으로 바닥 부분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데, 애플은 바닥 부분도 철저하게 신경 쓰기로 유명하다. 사용할 때 보이진 않지만 노트북을 들고 다닐 때를 생각해 정성스럽게 디자인한다. 애플스토어도 애플의 디테일이 돋보이는 공간이다. 아이맥이 인쇄된 광고지에서와 똑같이 보이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조명을 직접 테스트해서 선택할 정도였다. 뉴욕 5번가에 있는 철제 볼트가 마음에 안 든다고 스티브 잡스가 직접 볼트 전체를 교체하도록 명령을 내리기도 했었다. 아이팟의 경우 이어폰을 뺄 때 나는 소리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새로운 잭으로 교체하라고 명령한 스티브 잡스가 운영하는 회사답게, 애플의 디테일은 정말 대단하다. 약간의 디테일을 개선하기 위해서 비용을 아끼지 않는다. 애플은 휴대용 기기의 경우 사람들이 실제 들었을 때의 무게를 중요시 여기는데 어느 한쪽이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기 위해 부품 배치마저도 새로 할 정도다.



애플 디자인의 철학은 지금까지 설명하였듯이 ‘단순함과 디테일’ 두 가지로 요약된다. 단순함과 디테일은 별개의 철학이 아니라 반드시 함께 해야 하는 양 날개와 같은 것이다. 애플이 오직 단순함만을 추구한다면 애플의 디자인이 지금처럼 특별할 수 없다. 단순하지만 그 내부에 극도의 디테일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단순함이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불필요한 것을 담지 않는 대신 디자인을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는 최고를 담아냈기 때문이다. 반면에 애플 특유의 디테일이 가능한 것은 애플이 단순함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만약 애플이 화려함과 다양함을 쫓는 회사라면 애초에 디테일에는 한계가 있다. 회사는 자기만족을 위한 예술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팔리는 상품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당한 때에 적당한 제품을 내놓는 것이다. 특히 IT업계의 경우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전하기 때문에 발매시기를 놓치면 큰 손해를 입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제품의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디테일까지 생각한다면 제작기간이 한없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시간이 곧 돈이 되는 IT세상에서는 경쟁기업보다도 가능한 빨리 제품을 완성해서 발매해야만 한다. 


결국 애플이 단순함을 선택한 것은 욕심을 버리고 최선의 밸런스를 찾은 결과다. 애플에게는 제작 일정이 있고, 이를 맞추려면 무엇인가를 버려야만 한다. 그래서 애플은 무엇인가를 더하는 플러스 디자인이 아니라 무엇을 빼는 마이너스 디자인을 선택한 것이다. 더 이상 뺄 것이 하나도 없을 때까지 모든 요소를 제거하고, 대신 남아 있는 최소한의 것에 대해서는 최고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로 자연스럽게 탄생한 것이 애플의 디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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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디자인은 이제 전설이 되었다. 애플의 디자인은 매혹적인 동시에 질투의 대상이 된다. (Technology Review "The Secret of Apple Design" 중에서)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20) 


애플은 그동안 수많은 혁신을 이루어냈다. 애플2 컴퓨터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창조했으며, 매킨토시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아이맥으로 USB와 WIFI 같은 신기술을 대중화하였다. 아이팟과 아이튠스는 음악을 듣는 방법에 일대 혁명을 불러일으켰고, 아이폰은 휴대폰을 재 발명해서 전 세계 이동통신 시장에 새로운 빅뱅을 불러오고 있다. 애플은 제품뿐만 아니라 디자인을 통해서도 업계 전체에 강한 충격파를 선사했다.


애플은 로고부터 다른 회사와 달랐다. 원래 애플의 로고는 공동 창업자였던 론 웨인이 직접 펜으로 사과나무 밑에 뉴튼이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하지만 애플이 정식회사가 된 이후에 스티브 잡스는 새롭게 로고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레지스 맥키너에게 디자이너를 물색해 달라고 했고, 롭 야노프(Rob Janoff)를 소개받는다. 스티브 잡스는 절대 귀여워 보이면 안 된다는 조건을 걸고 일을 맡긴다. 


롭 야노프는 사과 모양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버전의 로고를 그려왔는데 스티브 잡스는 애플2 컴퓨터가 컬러를 지원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로고에도 다양한 색상이 들어가기를 바랐다. 이를 참고로 롭 야노프는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모양에 무지갯빛의 화려한 색상이 칠해진 로고를 완성해낸다.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모양에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아담과 이브의 사과를 의미한다는 것에서부터 사과에 독을 넣어서 죽은 천재과학자 앨런 튜링을 기리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롭 야노프에 의하면 사과의 모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를 그려야만 했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체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야노프가 그린 로고는 스티브 잡스의 마음에 쏙 들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로고에 들어간 화려한 색상을 사용하게 되면 인쇄비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회사 로고에 3가지 이상의 색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금기 같은 것이 있었다. 애플 내에서도 회사 로고의 색상을 하나로 통일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스티브 잡스의 끈질긴 고집으로 무지갯빛 애플 로고가 정식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 화려한 색들이 회사를 좀 더 인간미 있게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늘의 애플을 만들어 놓은 애플2 컴퓨터 역시 컴퓨터 디자인의 혁명을 불러왔다. 애플2 컴퓨터는 업계 최초로 플라스틱 케이스를 사용하여 기존의 컴퓨터보다 훨씬 세련된 다자인을 선보였다. 물론 스티브 잡스의 노력의 결과다. 애플1 컴퓨터는 엄밀히 말하면 조립이었기 때문에 케이스가 필요 없었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마니아가 아니라도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대중적인 컴퓨터를 원했기에 누구에게나 친숙한 디자인이 필요했다. 스티브 잡스는 백화점을 돌아다니면서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을 연구했고, 컴퓨터가 가전제품처럼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플라스틱 케이스를 소재로 컴퓨터를 만들 결심을 한다. 마침 스티브 잡스는 휴렛 팩커드 출신의 프리랜서 제리 마녹(Jerry Manock)을 알게 되었고, 그에게 일을 맡길 수 있었다. 키보드와 본체 일체형으로 만들어진 애플2 컴퓨터는 플라스틱 케이스를 사용한 덕분에 좀 더 세련되고 산뜻한 디자인이 가능했다. 애플2 컴퓨터의 외형은 당시로는 획기적이었고, 다른 컴퓨터보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모습이 훨씬 깔끔하고 세련되었다. 그 후 개인용 컴퓨터 업체들은 애플의 영향을 받아서 컴퓨터에 플라스틱 케이스를 채용하기 시작했다.


애플2 컴퓨터의 성공 이후 스티브 잡스는 더욱더 디자인에 집착하게 된다. 애플이 디자인을 통해서 다른 회사와 차별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좀 더 과감한 시도를 계획한다.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를 찾는다는 각오로 유명잡지를 통해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한다. 백설 공주의 일곱 난장이에서 이름을 딴 제품을 디자인하는 미션을 통해 소니에서 디자인을 담당했던 독일 출신의 하르무트 에슬링어(Hartmut Esslinger)를 발굴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하르무트 에슬링어의 회사인 프로그 디자인(Frog Design)에 월 10만 달러라는 거액과 각종 추가경비를 청구할 수 있는 파격적 조건으로 애플을 위해 독점적으로 일한다는 계약을 맺는다. 


그 후 스티브 잡스와 애플2의 케이스 디자인을 맡았던 제리 마녹, 프로그 디자인은 힘을 합쳐서 이른바 ‘스노우화이트 디자인’을 완성한다. 케이스의 로고 모양이나 컬러 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뿐만 아니라 컴퓨터 표면 처리까지 담긴 애플 내부의 디자인 양식이다. 스노우화이트 디자인이 최초로 적용된 애플2 컴퓨터는 등장하자마자 놀라운 디자인으로 격찬을 들었으며, 1984년 <타임>이 선정하는 올해의 디자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스노우화이트는 매킨토시에 그대로 전수되었으며 이후 개인용 컴퓨터 업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스노우화이트 디자인은 10년이 넘는 동안 컴퓨터 업계의 교과서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애플2와 매킨토시로 컴퓨터 디자인의 새 바람을 일으킨 애플은 또다시 아이맥으로 새로운 시대를 연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하얀 베이지색의 컴퓨터 케이스는 애플이 만들어 놓은 표준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아이맥이 바로 그 벽을 깨버렸다. 사탕 같은 푸른 빛깔의 일체형 투명 케이스를 자랑하는 아이맥은 지금까지의 컴퓨터에서는 볼 수 없는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아이맥에서 구현한 화려한 색상과 속이 다 보이는 누드 디자인은 단순히 컴퓨터 업계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산업계 전체에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애플 입장에서 보면 아이맥은 단순한 히트 상품이 아니었다. 애플에서 스티브 잡스 다음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인 조너선 아이브를 세상에 알린 작품이라는 게 중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조너선 아이브는 대학교 때만 해도 컴맹 수준으로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매킨토시를 접하면서 그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매킨토시에 완전히 반해 버린 그는 누가 이렇게 훌륭한 매킨토시를 개발했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그는 애플과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애플이라는 회사의 매력에 빠져든다.


 조너선 아이브는 대학 졸업 후 탠저린(Tangerine)이라는 회사를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동으로 설립한다. 이때는 욕조, 변기, 세면대, 빗 등 다양한 소비자 제품들을 디자인했다. 1992년이 되자 애플에서는 디자인 회사인 탠저린에게 노트북과 관련된 디자인을 의뢰한다. 이때 조너선 아이브가 내놓은 디자인에 감명을 받은 애플 디자인팀은 조너선 아이브를 아예 본사로 스카우트하기로 결정한다. 평소부터 애플에 큰 호감을 가지고 있던 조너선 아이브는 탠저린이 직접 창업한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영국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면서까지 선택한 회사였지만 당시 애플의 상황은 기대 이하였다. 대학시절부터 애플에 대해 품고 있었던 환상과 사랑은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큰 좌절감을 선사하였다. 회사생활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었을 즈음에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돌아온다. 스티브 잡스는 디자이너에 대한 기대치가 누구보다도 큰 사람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조너선 아이브를 보고 그가 그토록 꿈꾸던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임을 알고 감격했다. 처음부터 스티브 잡스가 조너선 아이브를 알아본 것은 아니다. 무려 1년 동안이나 스티브 잡스는 조너선 아이브를 방치하였다. 나중에야 조너선 아이브의 존재를 알고 면담을 하기로 약속을 잡았는데, 이때 조너선 아이브는 바지 뒷주머니에 사직서를 넣은 채 스티브 잡스를 만났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는 조너선 아이브를 만난 후 그에게 중책을 맡기기로 결정했고, 그 첫 번째 작품이 바로 아이맥이었다. 아이맥의 성공은 흥행성 높은 스티브-조너선 쇼의 시작이었다. 스티브 잡스와 조너선 아이브는 매일 만나 업무를 이야기할 정도로 밀접한 사이가 되었다. 


아이맥으로 단단해진 둘의 밀월관계는 아이팟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아이팟은 휴대용 기기가 패션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것, 특히 뛰어난 색깔 하나가 제품 판매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여실히 증명했다. 아이팟 1세대에서 보여준 고급스러운 흰색과 검정색은 많은 화제가 되었다. 아이팟 나노의 경우 연필보다 얇은 두께와 작은 크기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아홉 가지의 화려한 색상으로 다양한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아이팟이 시장을 독점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애플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어폰이 흰색이라는 것 역시 아이팟이 다른 MP3 플레이어와 구분되는 중요한 디자인이었다. 


애플은 단순히 아이팟 본체와 색깔을 맞추기 위해서 이어폰을 흰색으로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흰색 이어폰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둘 흰색 이어폰에 대해서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초창기 흰색 이어폰을 낀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구별되었고 그만큼 멋져 보였다. 길거리에서 흰색 이어폰을 낀 사람들끼리는 일종의 유대감이 있었다. 애플 마니아들끼리만 느낄 수 있었던 친밀감이었다. 아이팟 이전에는 충성도 높은 애플 마니아라도 자신의 신분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흰색 이어폰은 애플 마니아라는 징표와도 같았다. 


아이팟을 초창기에 구매한 애플 마니아들은 일종의 광고판이 되어 주었다. 흰색 이어폰은 어디에서나 눈에 띄었고, 사람들은 그것이 아이팟이라는 애플의 새로운 MP3 플레이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리 곳곳에서 흰색 이어폰을 한 사람들이 늘어나자 아이팟의 판매량은 더욱더 가파르게 상승했다. 애플은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모두 검정색으로 실루엣 처리한 후 흰색 이어폰을 강조하는 영상을 만들어 광고에 적극 활용했다. 


흰색 이어폰은 어느덧 아이팟의 상징이 되었다. 애플이라는 쿨한 브랜드는 소수의 멋쟁이가 사용한다는 이미지였다. 그러다 보니 아이팟의 판매량이 늘어나면 애플의 쿨함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우려와 달리 아이팟은 음악의 대명사가 되어 갔고, 학생들 사이에서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하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모르는 사이 흰색 이어폰은 시대의 아이콘이며, 필수적인 패션 아이템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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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주에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여기에 왔다. 그렇지 않다면 왜 우리가 여기에 있겠는가?


‐ 스티브 잡스



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19)


애플에서 일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폰 개발팀은 발표 3개월 전에는 퇴근은커녕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매일 개발에 나서야 했다. 애플 제품들은 발매주기가 있기 때문에, 직원들은 출시일을 맞추기 위해 계속되는 밤샘작업에 주말과 휴일까지 반납하면서 일한다. 일 많기로 소문난 실리콘밸리에서도 지독한 편이다. 또 스티브 잡스의 기대치는 누구보다 높기 때문에 이에 따른 압박감도 보통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은 해고당하기를 두려워할 뿐 정작 먼저 그만두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막상 해고를 당해도 오히려 회사 사정을 먼저 이해해줄 뿐만 아니라 회사를 그만둔 다음에도 애플이 필요하다면 다시 달려 들어가 일을 맡는다. 애플에 대해 충성심을 가지는 소비자만큼이나 직원들의 애사심 역시 만만찮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애플 직원들은 회사를 사랑할까?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우선은 애플이 사람을 고용할 때 애플을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뽑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을 사랑하는 사람을 뽑으면 다른 모든 것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애플을 사랑하는 직원은 애플에게 최선이 되는 일들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애플을 사랑하는 사람을 뽑으니 애초부터 애플 직원들의 충성심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애플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까? 애플은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기업으로, 그들의 제품은 전 세계에서 명품취급을 받으며 기록적인 판매량을 가진 회사인 만큼 애플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그 어떤 기업보다 많을 것은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애플에 들어오기 전에 호감을 가지는 것과 막상 애플에서 일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일단 들어온 직원이 회사에 애사심을 가지고 일하고 싶은 곳이라 여기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필요하다. 스티브 잡스는 <포춘>에서 사람들이 왜 애플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가를 묻는 질문에 다른 회사에서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미 대부분의 PC 회사에서는 엔지니어링이 사라졌으며, 다른 소비자 가전업체들은 소프트웨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예로 맥북 에어를 들며, 맥북 에어는 운영체제와 하드웨어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제품으로 이런 긴밀함은 윈도우와 델 노트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스티브 잡스의 발언을 보면 직원들이 애플을 사랑하는 것은 결국 애플에서만 제공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일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실 개발이라는 것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단순히 사회적인 성공과 편안함을 찾는다면 개발자의 길은 별로 추천하고 쉽지 않다. 특히 컴퓨터 업계는 기술 변화가 엄청나다. 그래서 어제까지 어렵게 익힌 기술이 오늘부터는 전혀 소용이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끊임없이 자기 발전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곳이 개발자의 세계다. IT업계는 하루라도 빨리 더 좋은 기능으로 무장한 신제품을 내놓기 위한 기업 간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개발자들의 업무량 또한 만만찮다. 이는 국내 개발자도 마찬가지다. 


결국 개발자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를 견뎌낼 수 있는 강심장과 뛰어난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IT의 숙명이기도 하다. 한 달이 멀다하고 새롭게 발표되는 IT기업의 기술과 제품에는 개발자들의 땀과 눈물이 스며들어 있다. 고생이 숙명이라면 개발자는 결국 좀 더 멋지고 매력적인 일을 하고 싶지 않을까?


애플에는 다른 회사가 제공해 주지 못하는 애플만의 것들이 있다. 사실 PC 업계에서의 기술이란 얼마나 싸게 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어차피 소프트웨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책임지고, 하드웨어는 인텔을 중심으로 여러 핵심적인 기술을 공급받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새롭게 창조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애플 역시 하드웨어 대부분의 부품을 공급받지만 여기에 소프트웨어를 결합함으로써 다른 회사가 만들지 못하는 애플만의 제품을 만든다. 사람이란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것을 행함으로써 스스로 특별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데 애플 개발자 역시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애플 직원의 충성심을 자극하는 또 다른 요소는 사명감이다. <위대한 경영의 요소 12가지>라는 책을 보면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은 회사를 다니는 목표가 세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첫째는 돈을 벌기 위해서 다니는 사람, 둘째는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서 다니는 사람, 마지막 세 번째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 다니는 사람이다. 세 부류 중 가장 열심히 그리고 행복하게 회사를 다니는 사람은 세 번째 사람이라고 한다. 스티브 잡스는 동기가 사람을 움직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사명감을 자극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끊임없이 애플이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든다는 점을 강조한다. 


1980년대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가치’라는 글을 작성한 적이 있다. 이 글은 직원들의 사명감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으로 가득하다. 그중에서도 “우리는 돈을 버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여기에 있다.”라는 구절이 특히 인상적이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들이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면서 사람들의 동기를 자극한다. 


스티브 잡스가 존 스컬리를 회사에 스카우트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펩시에서 잘 나가던 존 스컬리에게 “평생 설탕물만 팔면서 살 것이냐,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얻고 싶으냐.”는 말을 던져서 존 스컬리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인간의 사명의식을 자극하여 사람을 불러 모으는 최고의 동기부여다. 


또 1997년 보스턴 맥 월드에서는 “애플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은 창조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그들은 단순히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다. 애플은 이처럼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을 위한 도구를 만든다.”고 했다. 애플 제품을 사랑하는 사람을 특별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그들을 위해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사명감을 불어넣은 말이다.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을 통해 사람들의 삶 속에 다시 음악이 녹아들 수 있도록 한 일이야말로 멋진 일이며, 이렇게 작은 일로나마 애플은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스티브 잡스의 인터뷰들을 보면 세상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회사로서 애플의 역할을 강조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애플스토어 역시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시작했음을 생각해 보면 애플 스스로 사명감을 꽤 의식하고 있는 회사임을 알 수 있다. 애플이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는 발언을 자주 하는 것은 회사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것에만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Think Different가 일반 대중들뿐만 아니라 회사 직원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어 주었듯이 사명감의 강조는 직원들의 동기를 자극한다. 스티브 잡스의 발언은 직원들에게 당신들이 하는 일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신성한 행위라며 사명의식을 불어넣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명의식은 결국 직원들이 일에 더 열정을 가지게 만들고, 회사에 대한 만족도를 높이는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준다.


애플 개발 신화의 비밀


* 철저한 소수정예를 추구한다

애플은 팀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 소수정예를 유지한다.


* 환상적인 삼두체제를 구축한다

애플은 제품 개발을 책임지는 스티브 잡스를 필두로 생산과 제조를 책임지는 팀 쿡, 여기에 마케팅을 담당하는 필 실러의 환상적인 삼두체제로 이루어져 있다.


* 명확하고 단순한 조직을 만든다

애플의 제품이 그렇듯이 애플의 조직 역시 불필요한 것이 없이 단순하고 명확하다.


* 개발 지향의 문화를 만든다

아무리 영리하고 똑똑한 사람이 많아도 이들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강력한 제품 지향 문화 없이는 위대한 제품이 나올 수 없다.


* 평등문화를 뿌리 내린다

애플의 절대자 스티브 잡스마저도 전용 주차장이 없을 정도로 애플은 평등하다.


* 창조적 파괴에 앞장선다

애플은 과거의 업적에 연연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창조적 파괴를 추구한다.


* 직원들에게 사명의식을 불어넣는다

돈과 직위보다 세상을 더 나은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명의식을 가질 때 더욱 자신의 일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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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16)


기술업계 회사일지라도 제품 지향 문화가 필요합니다. 많은 회사들이 훌륭한 엔지니어와 똑똑한 사람들을 잔뜩 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로 묶는 힘이 필요합니다.

‐ 스티브 잡스, 2004년 <비즈니스위크> 인터뷰 중에서 




애플은 남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소비자가 선택해 주는 위대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애플의 모든 전략은 결국 ‘위대한 제품 만들기’라는 하나의 목표에 집중되어 있다. 스티브 잡스 스스로 가장 잘하는 일은 소수의 팀을 구성해서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힐 만큼 그는 제품을 만드는 것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회계장부도 읽지 못하는 그가 애플의 CEO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제품 만들기에 뛰어난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 만들기야말로 최고의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개발자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를 보면 이런 특징이 잘 드러나는데,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 사업부에서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외부의 각종 압력으로부터 개발자들을 보호해 주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경영진과 좋지 않은 사이가 되어 회사에서 쫓겨나게 되었지만 그에게는 오직 제품 개발이 중요할 뿐이었다.


제품 개발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스티브 잡스는 아무리 훌륭한 엔지니어와 똑똑한 사람이 있어도 회사에 제품 개발 지향적인 문화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회사를 운영하고 이끄는 사람 역시 제품 개발자가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티브 잡스가 존 스컬리를 밀어내려고 했던 것은 스컬리가 개발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며, 존 스컬리 밑에서 애플이 몰락의 길을 걸은 것도 스컬리가 개발자가 아니라 영업맨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위대한 회사가 서서히 과거의 마법을 잃어버리는 것도 결국 개발자 중심의 회사가 영업맨 중심의 회사가 되는 데 있다고 본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개발자들이 원동력이 되는 회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스티브 잡스에 의하면 영업맨이 회사를 운영하게 되면 제품 개발 지향 문화가 사라지면서 제품 개발보다는 독점을 이용하여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경향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개발자보다는 영업맨이 득세하게 되는데, 어느 날 독점이 끝나고 나면 이미 회사 안에는 개발자들이 떠나 있거나 발언권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회사는 혼란의 시기를 겪게 된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존 스컬리가 이끌던 애플이었고, 영업맨이었던 존 에이커스가 이끌었던 IBM의 모습이었다. 존 에이커스는 빌 게이츠에게 설득당해서 OS/2 개발을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맡기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재미있는 사실은 스티브 잡스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브 발머를 존 스컬리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스티브 발머는 존 스컬리와 유사한 점이 많다. 스티브 발머는 개발자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마이크소프트에 취직하기 전에 P&G에서 일했다. P&G는 샴푸와 비누, 기저귀 같은 생활용품부터 과자나 커피까지 판매할 정도로 폭넓은 사업 분야를 가진 회사다. P&G의 성공비결 중 하나는 브랜드 관리를 창안해서 이를 마케팅에 접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P&G의 마케팅 능력은 가히 세계 최고 수준이며, P&G는 ‘마케팅 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마케팅에 관해서는 매우 특별한 회사다. 


마케팅 전문가인 존 스컬리처럼 스티브 발머 역시 P&G에서의 경험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직원이 된 후 마케팅 부분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된다. 빌 게이츠의 요청으로 스티브 발머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처음 합류했을 때가 1980년인데 마침 그는 스탠퍼드대학원에서 MBA를 공부 중이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27명의 직원으로 1,25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승승장구하고 있었지만 회사운영은 그야말로 동아리 수준에 불과했다. 빌 게이츠는 회사를 제대로 된 법인으로 변신시키기 위해 경영전문가인 스티브 발머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평소 빌 게이츠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던 스티브 발머는 그와 함께 일하는 건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합류하게 된다. 그의 첫 직책은 사장 비서였다. 그의 일은 한 마디로 빌 게이츠가 잘 하지 못하는 회계와 법률 같은 부분을 보완해 주는 것이었다. 둘은 완벽히 대조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서 서로를 보완해 주는 사이였다. 


빌 게이츠는 철저히 기술 중심적 사고를 가진 데 비해 스티브 발머는 영업 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 기술 지향적 성격을 가진 빌 게이츠의 사람들은 대부분 기술 전문가이며, 스티브 발머의 사람들은 뼛속까지 영업맨인 사람들로 가득했다. 빌 게이츠가 그만 두고 스티브 발머가 CEO가 된 이후 둔 후 마이크로소프트의 인력도 개발자 중심에서 영업맨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개발자보다는 영업이나 MBA학위 소유자들이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으며, 자연스럽게 마이크로소프트는 과거 같은 개발 지향 문화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놀랍게도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는 과거 애플과 IBM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영업맨 중심의 회사가 된 마이크로소프트는 정말 과거처럼 압도적인 느낌이 사라졌다. 스티브 발머가 CEO가 된 2000년 이후 지금까지를 돌이켜 보면 빌 게이츠 시대에 구축해 놓은 윈도우와 오피스로 세계시장을 여전히 독점하고 있지만 단지 그것뿐 아무런 발전이 없다. 지난 10년 동안 애플이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세계에 연속적으로 충격파를 던지고 있는 모습과 비교하면 정말 초라하기 그지없다. 


주식 시장은 이런 마이크로소프트의 상황을 더욱 냉혹하게 평가하고 있다. 2010년 5월 27일을 기준으로 보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은 지난 10년 동안 18%나 감소된 것에 비해 애플의 주식은 열배 이상 뛰어올랐다. 이는 제품 개발 지향적인 스티브 잡스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영업맨인 스티브 발머의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는 오직 제품 만들기에 매진했고 실제로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같은 위대한 제품으로 성공을 이끌었다. 스티브 발머는 스티브 잡스와는 완전히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2010년 2월 <뉴욕타임스>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현재는 비록 좋은 실적을 기록하고 있지만 혁신의 부족과 내분의 영향으로 쇠퇴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전 마이크로소프트 부사장 딕 브라스(Dick Brass)의 칼럼을 기재했다. 그에 의하면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아이패드와 같은 스타일의 컴퓨터를 만들고 있었지만 오피스를 담당하던 부사장이 태블릿 컴퓨터 사업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체 협력해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태블릿 컴퓨터에는 오피스를 사용할 수 없었고, 나중에는 아예 태블릿 사업부 자체가 폐쇄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태블릿에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투자한 애플과는 비교되는 사건이라고 했다. 그는 거짓소문을 퍼뜨리면서까지 다른 사업부를 견제하는 사내 정치에 진저리를 치면서 글을 끝마쳤다. 


칼럼이 보도된 이후 <베타뉴스>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의 일화가 공개되었다. 20년 이상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근무한 한 간부에 의하면 사내정치에 의해서 정말 획기적인 제품이 없어지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고 한다. 원래 마이크로소프트의 장점은 작은 팀에 권한을 주는 것이었는데, 작은 팀들을 모두 큰 팀에 흡수시킴으로써 사내에 정치적 대립이 발생했다고 한다. 특히 조직개편이 빈번하게 일어남에 따라 관리직들이 팀보다 자신의 경력에만 힘을 쓰게 되면서 여러 사람들이 사내정치에 휘말리고 있다고 증언한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해고된 또 다른 직원은 과거 6단계의 계층이 있었다면 지금은 10단계로 복잡해졌는데, 이렇게 늘어난 관리자들이 회사보다는 자신의 정치싸움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13년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근무했다는 한 직원은 20명이었던 팀이 정리해고 되었는데 회사에 남은 사람은 관리자 4명뿐이었다고 한다. 스티브 발머가 마이크로소프트의 대권을 잡은 이후 영업맨 출신의 간부들이 회사를 장악하면서 회사 전체가 개발자보다는 관리자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이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제품 개발력까지 떨어뜨린 것으로 보인다. 


스티브 발머 이후 심각한 문제는 돈을 아무리 투자해도 이렇다 할 상품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애플이 지난 4년간 연구개발에 투자한 금액은 46억 달러이다. 그동안 영업 수입은 250달러에서 430억 달러로 증가했다. 이에 비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의 7배가 넘는 310억 달러나 연구개발에 사용했다. 이 부분이야말로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발머의 근본적인 역량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가 원하는 위대한 제품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으며 제품 개발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마이크로소프트보다도 훨씬 적은 돈으로도 멋진 제품을 효율적으로 만들고 있다. 이에 비해서 스티브 발머는 이미 만들어진 제품으로 수익을 극대화하는 하는 방법은 알고 있으나 스티브 잡스처럼 새로운 것을 만드는 능력은 한참 뒤떨어진다. 


빌 게이츠 시대는 ‘컴퓨터광의, 컴퓨터광에 의한, 컴퓨터광을 위한 개발자들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스티브 발머는 그런 개발 중심 문화에서 영업 지향의 문화로 회사를 변화시켰고, 결국은 스티브 잡스에 의해서 제품 개발 지향적 문화를 가지게 된 애플의 연구 효율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마이크로소프트에도 천재는 수두룩하다. 그리고 연구개발 비용도 애플보다 몇 배나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처럼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결국 CEO의 차이가 결정적이다. 스티브 발머는 분명 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훌륭한 경영자다. 하지만 그의 경쟁상대가 세계 역사에 기록될 개발자 스티브 잡스라는 것이 문제다. CEO 성향의 차이로 인해서 애플은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비용에 비해 극도의 효율성을 가지게 되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과거의 애플이나 IBM은 영업맨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가 독점이 끝나자 생사의 기로를 걸을 수밖에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라고 했는데, 과연 마이크로소프트가 어떻게 될 지 한 번 지켜볼 일이다. 


스티브 잡스가 얼마나 개발자를 중요하게 여기는지에 대한 사례는 많다. 젊은 시절 스티브 잡스는 자존심이 강해서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이거나 자신의 잘못을 시정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또 직원들이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함부로 직원들이 자신의 의견에 반기를 들지 못하게 할 정도로 독선적인 면이 강했다. 그런데 어느 날 빌 앳킨슨(Bill Atkinson)이 모임에 가려던 스티브 잡스를 가로막았다. 빌 앳킨슨은 자신이 리사를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인정도 받지 못했다면서 큰소리로 항의했다. 모임이 급했던 스티브 잡스는 빌 앳킨슨이 막아서자 짜증이 난 나머지 불같이 화를 냈다. 결국 둘은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서로를 몰아세우며 논쟁을 벌였다. 그런 식으로 스티브 잡스와 싸운 사람이라면 회사를 그만두는 게 당연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주에 스티브 잡스가 먼저 엔지니어인 빌 앳킨슨의 상한 마음을 풀어주려고 했다. 스티브 잡스는 빌 앳킨슨이 애플 펠로우(Apple Fellow)로 임명되도록 도움을 주었다. 애플 펠로우는 최고 기술자에게 주는 직위로, 그전까지는 스티브 워즈니악과 로드 홀트 단 두 명에게만 수여된 최고의 명예직이었다.


개발자들 앞에서라면 스티브 잡스의 엄격한 규율들도 종종 예외가 되는 경우가 있다. 스티브 잡스가 돌아왔을 때 애플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애플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강력한 구조조정을 시행해야 했다. 회사에는 각종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회사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해고를 당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스티브 잡스가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을 때 원하는 대답을 하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해고를 통보받는다는 루머가 돌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개발자는 예외였다. 만약에 스티브 잡스가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을 때 엔지니어라고 하면 해고당할 확률이 낮았다고 한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매우 중요한 원칙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회사의 정보가 밖으로 줄줄 새는 것은 회사 재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엄격한 비밀주의를 채택했다. 어느 날 스티브 잡스는 Think Different 광고 캠페인을 축하하며 직원들과 함께 야외파티를 열었다. 스티브 잡스는 Think Different를 소개하며 이것이 얼마나 멋진 의미를 담고 있는지 직원들에게 알렸다. 스티브 잡스의 연설에 감동한 한 여직원이 이를 친구에게 메일로 보냈다. 


문제는 메일을 받은 친구가 <데이브넷>이라는 메일 매거진의 관계자였다는 점이다. <데이브넷>은 빌 게이츠 같은 컴퓨터 기업의 유명 인사들에게 업계의 각종 정보를 수집해서 메일로 보내주는 서비스 회사였다. 결국 직원이 가벼운 마음으로 친구에게 보낸 메일이 <데이브넷>의 메일 매거진 서비스를 통해서 하루아침에 업계 전체에 동시다발적으로 퍼져나갔다. 스티브 잡스는 회사의 비전과 전략이 외부로 흘러나갔다는 사실에 너무나 화가 났다. 그래서 메일을 유출시킨 직원에게 직접 전화해 사무실로 불러들여 따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여직원은 해고되지 않았고, 그 이후로도 무사히 회사를 잘 다녔다. 보통의 스티브 잡스라면 절대 용서하기 힘든 사안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예외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은 그녀가 퀵타임이라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자라는 사실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마치 영화사와 같다. 영화사가 계속해서 영화를 선보이듯이 애플 역시 연속적으로 제품을 선보인다. 관객이 영화를 보지 않으면 영화사가 어려워지듯이 애플 역시 소비자가 제품을 구입하지 않으면 바로 타격을 입는다. 애플은 오직 제품으로만 승부하는 회사다. 제품은 결국 개발자가 만든다. 위대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개발자의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회사에 제품 개발 지향적인 문화가 퍼져 있어야 하며, 개발자가 실제로 회사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스티브 잡스가 돌아오기 전의 회사는 영업맨 중심의 회사였고, 스티브 잡스가 돌아온 후의 회사는 개발자 중심의 회사다. 물론 회사는 사정에 따라서 영업맨 혹은 개발자의 비중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애플의 부활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개발자가 원동력이 되는 제품 지향적인 문화를 가진 회사로의 변화였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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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14)


창조라는 것은 그냥 여러 가지 요소를 하나로 연결하는 겁니다. 창조적인 사람에게 어떻게 그렇게 창조적으로 일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죄책감을 느낄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실제로 무엇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뭔가를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그들의 창조성은 그들이 경험했던 것을 새로운 것으로 연결할 수 있을 때 생겨나는 겁니다. 그러한 능력은 그들이 다른 사람보다 많은 경험을 하고, 그들의 경험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거지요.


‐ 스티브 잡스, 1996년 <와이어드> 인터뷰 중에서





2010년 1월, 처음으로 아이패드를 소개하던 날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기술과 인문학 사이의 교차로에 서 있다고 말했다. 기술과 인문학을 결합함으로써 애플은 아이패드 같은 창조적인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강조한 것이다. 오래 전부터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기술 그 이상의 회사임을 주장해 왔다. 애플이 기술뿐만 아니라 인문학을 생각하는 만큼 그들이 만든 제품들은 사용하기 쉽고 더욱 인간적인 기기가 될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이질적인 두 개의 요소를 하나로 묶는 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또 다른 회사인 픽사를 보자. 픽사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영화 회사다. 엄밀히 말하면 예술을 추구하는 회사지만 여기에 컴퓨터 기술을 접목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영화를 창조함과 동시에 매우 특별한 회사가 될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 자신은 예술지향의 픽사와 기술지향의 애플, 이 두 회사를 동시에 경영함으로써 역시 새로운 경지에 오른 인물로 거듭났다. 스티브 잡스에 의하면 어느 분야에서든 최고의 반열에 오르는 사람은 한 가지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위대한 예술가이자 위대한 과학자였듯이 말이다. 그는 미켈란젤로 역시 채석장에서 돌을 자르기 위한 엄청난 지식들을 섭렵하고 있었음을 지적한다. 스티브 잡스는 한 번도 예술과 기술이 별개라고 생각한 적이 없으며, 자신이 아는 최고의 컴퓨터 과학자들은 곧 음악가였다고 강조한다.


애플의 저력은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독창적인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조합해서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 능력에 있다. 개인용 컴퓨터의 혁명을 불러일으킨 애플2 컴퓨터를 보면 애플만의 독창적인 기술은 거의 없다. 사실 애플2 컴퓨터 안에 들어가 있는 부품들은 누구나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들이다. 누구나 구할 수 있는 부품들을 모아서 역사에 남는 위대한 제품을 창조해낸 것이다. 헨리포드가 자동차 안에 들어간 부품을 직접 만들진 않았지만 모든 부품을 모아서 자동차를 발명했듯이 우리가 아는 창조라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닌텐도는 아예 이미 다른 분야에서 시든 기술에 자사의 아이디어를 접목하자는 개발 철학을 가지고 탄생한 제품이다. 전자계산기에 들어가는 액정값이 떨어지자 이를 이용해서 휴대용 게임기 ‘게임워치’를 개발해서 큰 히트를 쳤다. 닌텐도 DS는 PDA에서 일반적인 터치기술을 가져왔고, 닌텐도 Wii에는 모션센스 기술을 접목해서 위대한 제품을 탄생시켰다. 


다른 분야에 이미 존재하는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새롭게 접목하는 것은 창조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다. 미국 최고의 의류업체인 갭(GAP)의 전 CEO였던 미키 드렉슬러(Mickey Drexler)는 우연히 접하게 된 코카콜라 전략을 회사의 마케팅 계획에 접목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스토어를 생각했을 때 그는 다른 분야의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을 했고, 이를 위해서 미키 드렉슬러를 이사회로 초빙하였다. 애플은 패션 분야에서의 매장 관리 방법을 애플스토어에 융합함으로써 새로운 시대를 개척했다. 스티브 잡스는 그가 좋아하는 밥 딜런의 노래 가사처럼 모든 것에서, 모든 사람에게서 영향을 받는 존재다. 하지만 단순히 영향만 받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창조에 이용할 줄 안다. 스티브 잡스는 ‘창의성이란 여러 가지 요소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창의적인 사람은 뭔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전에 본 것들을 연결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창조라는 말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낄 것’이라고 까지 말했다. 스티브 잡스의 말을 참고하면 창조란 경험을 연결해서 새로운 것으로 융합하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 애플만의 독창적인 제품이라고 보이는 것들이 알고 보면 다른 분야에서 가져온 아이디어인 경우가 많다. 아이팟의 절대적인 성공 요소인 휠 인터페이스도 애플의 독창적인 생각이 아니라 다른 전자기기에 달린 휠을 참고해서 아이팟에 접목한 것이다. 한 손으로 모든 것을 조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각종 기기들을 연구하던 중 마케팅을 담당하는 필 실러 부사장이 자신이 쓰고 있는 기기에 휠이 사용된 것을 보고 이를 아이팟에 접목할 생각을 하게 된다. 


애플의 자랑 중 하나가 AC 어댑터다. 노트북을 충전 중일 때 실수로 어댑터 선에 발이 걸리면 책상 위에 있던 노트북이 바닥으로 떨어져 파손되는 사고가 발생하지만, 애플의 노트북은 이런 걱정이 없다. AC 어댑터의 컴퓨터 접속부가 자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전원 코드가 분리되기 때문이다. 자석을 이용한 애플의 아이디어는 사소하지만 고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로 칭찬받고 있다. 이런 자석 아이디어는 일본의 전기포트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한다. 애플 부활의 선봉에 섰던 아이맥은 화려한 컬러 덕분에 큰 화제가 되었는데, 이 역시 다른 분야에서 가져온 아이디어다. 컴퓨터 케이스에 색을 입히면 싸구려처럼 보이기 때문에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고급스런 색을 재현하기 위해서 애플의 디자인팀은 직접 사탕공장을 방문해서 제조과정을 꼼꼼히 살펴봤는데, 젤리에 색을 입히는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덕분에 아이맥은 사탕처럼 먹고 싶을 정도로 탐스러운 디자인을 자랑하게 되었다.


여러 요소들을 하나로 조합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이런 애플의 연금술사 같은 능력은 통합의 시대를 맞이해 더욱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아이폰의 탄생을 보면 오직 애플이기에 가능한 작품이었음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가 처음 아이폰을 정식으로 소개하기 전에 그는 애플의 신제품이 세 가지라고 소개했다. 하나는 와이드 스크린을 갖추고 터치를 통해서 조작이 가능한 아이팟, 둘째는 혁명적인 휴대전화, 셋째는 놀라운 인터넷 커뮤니케이터라고 밝혔다. 물론 이 세 가지 제품은 결국 아이폰을 뜻한다. 지금이야 애플의 아이폰과 경쟁하는 제품들이 매달 쏟아지고 있는 현실이지만 당시만 해도 아이폰 같은 제품을 세계적으로 히트시켜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은 애플밖에 없었다.


아이폰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던 힘은 개인용 컴퓨터 같은 수준의 뛰어난 소프트웨어와 훌륭한 하드웨어를 하나로 결합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컴퓨터에 들어가는 운영체제와 컴퓨터 하드웨어를 직접 만드는 회사는 애플밖에 없다. 아이폰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애플이 아이팟, 아이튠스, 아이튠스 스토어로 이어지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인터넷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제공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아이팟에서 성공모델을 만들지 못했다면 아이폰으로도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폰의 원류가 되는 아이팟 역시 애플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일체 전략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면 탄생할 수 없는 제품이었다. 애플 내에서 아이튠스라는 음악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다가 이를 하드웨어로 확장한 것이 바로 아이팟이다. 애플이 하드웨어를 만들고 있지 않았다면 아이팟을 만들 계획조차 세우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일체 전략 덕분에 아이팟이 등장했고, 여기에 또다시 앱스토어로 대표되는 인터넷 서비스를 통합시켜서 아이폰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애플의 저력은 결국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그리고 인터넷 서비스를 하나로 통합하는 삼위일체 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회사라는 것이고, 실제로 이를 통해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다.


아이폰 4의 부품을 보면 매우 재미있는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애플이 직접 만드는 부품은 거의 없다는 것인데, 아이폰 4 자체가 알고 보면 전 세계에 있는 부품들을 하나로 묶어서 조합한 제품이다. 애플의 독자적인 기술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세계 여러 회사와 정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애플의 또 다른 힘은 바로 외부 네트워크가 잘 발달되어 있다는 점이다. 맥 에어 자체가 사실은 인텔의 긴밀한 협의 덕분에 나올 수 있었다. 아이팟 역시 도시바의 중역들로부터 새롭게 개발한 제품이라며 1.8인치짜리 초소형 하드디스크를 소개받음으로써 중대한 전환을 맞이한 경우다. 애플은 부품을 하나하나 발명하진 않지만 결국 이들을 조합함으로써 새로운 제품을 탄생시킨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외부를 향해 커다란 레이더를 켜놓고 여러 기술과 현황들을 면밀히 검토한다. 


애플이 단순히 세상에 존재하는 부품만을 조립해서 제품 하나를 만드는 것에서 그쳤다면 애플이라는 기업은 결코 오래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다른 회사도 똑같이 애플과 같은 제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애플이 다른 회사와 차이를 보이는 것은 소프트웨어다. 앞에서 애플은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있다는 스티브 잡스의 말을 소개했다. 조금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는 2010년 WWDC의 키노트 연설 말미에 좀 더 구체적인 말을 해준다. 결국 기술과 인문학 사이에 있다는 이 창조적인 회사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결합해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단순한 기술 회사가 아닙니다. 애플은 그 이상입니다. 바로 기술과 휴머니티죠. 우리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작업을 함께 합니다. 단순히 위대한 카메라 시스템을 만든 게 아니라 찍은 영상을 편집할 수도 있게 만드는 거죠. 단지 전면부에 카메라를 넣은 게 아니라 18개월이 넘는 동안 소프트웨어 작업을 병행한 결과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완결된 솔루션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시스템 전문가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


애플 창조성 신화의 비밀


*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다

시장조사를 하면 기존 제품을 보완하는 제품은 나와도 완전히 창조적인 제품은 나오기 힘들다.


* 하나의 모델에 전력을 쏟는다

하나의 모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


* 스스로 사랑하는 제품을 만든다

자신들이 직접 써보고 싶은 제품을 만들게 한다. 하루라도 먼저 쓰고 싶은 마음에 제품개발에 대한 열정은 그만큼 커질 수 있다. 


* 기술에 얽매이지 않는다

애플은 스펙과 성능으로 기술을 자랑하지 않는다. 오직 사용자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


* 위원회가 없다

위원회 합의에 의해서 만들어진 제품은 단점이 없는 평범한 제품을 만들 뿐 특출한 제품은 만들기 어렵다.


* 긍극의 최종 사용자, 스티브 잡스가 존재한다

까다로운 스티브 잡스의 취향을 맞추기는 어렵지만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 조합과 통합의 힘을 발휘한다

애플은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부품을 조합하여 새로운 제품을 발명하는 연금술사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 외부 네트워크를 열어 놓는다

애플은 혼자서 모든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네트워크를 통해서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를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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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13회>






위대한 재능 따위는 없다. 운동감각? 전혀 없다. 지능? 그것도 별로다. 그에게 신이 주신 위대한 재능은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미리 간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스티브 잡스는 그 혼자만으로도 하나의 위원회다. 하나의 스티브 잡스는 100만 명의 기술책임자보다 가치 있다. 그는 흰색과 검정색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아이폰을 발표한다. 그는 단 하나의 아이패드만을 발표한다. 그의 재능은 이렇게 확고하다. 


- The street Steve Jobs: His Exponential Value for iPhone 4 기사 중에서



많은 회사들이 위원회를 통해서 중요안건을 결정하려 한다. 하지만 위원회 중심의 의사결정은 부작용도 만만찮다. 위원회에서 각종 안건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다수로부터 의견 일치를 보아야 한다. 그런데 위원회에서 의견을 수렴하고 토론하면서 하나의 안건을 결정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안건이 서로 논쟁만 벌이다가 그냥 대화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위원회의 폐해로는 과거 IBM의 이야기들이 좋은 교훈이 된다. 현재 데이터베이스 분야의 최강자는 오라클이다. 천하의 IBM이 오라클에 뒤쳐진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CEO 래리 앨리슨과 오라클 신화>라는 책을 보면 한 가지 좋은 사례를 들려주고 있다. IBM 내부에는 온갖 위원회가 존재하기 때문에 위원회에서 검토와 재검토를 거치지 않고는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고 한다. IBM의 전직 프로그래머에 의하면 “빈 상자 하나를 배에 선적하는 데도 아홉 달이나 걸리는 게 바로 IBM”이라고 한다. 위원회의 문제점은 단순히 일이 늦어지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공이 많으면 산으로 간다는 말처럼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결론을 내기도 한다. 또한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서 제품을 개발하게 되면 시장조사를 통해서 제품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위대한 제품이 나오기 어렵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는 기존의 통념과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기 때문에, 훌륭한 아이디어를 바로 알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다수결에 의해서 결정되는 위원회 내부에서는 소수자의 의견으로 전락해서 사장되기 일쑤다. 흔히 특징이 없는 평범한 상품을 일컬어 ‘위원회 스타일의 제품’이라고 비아냥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가 돌아오기 전만 해도 애플은 위원회에 의해서 제품개발을 결정했다. 아이디어를 제품화하기 위해서 애플은 마케팅, 엔지니어링, 사용자 경험 이 세 가지를 평가했다. 마케팅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 엔지니어링은 애플이 할 수 있는 것, 사용자 경험은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보는 것이다. 이 세 원칙에 따라서 관리자 위원회에서 승인하면 본격적으로 제품 개발이 시작되었다. 구조적으로 보면 훌륭해 보이지만 부작용도 만만찮았다. 위대한 제품이 없었다는 것인데 1989년에서 1996년 초까지 애플 산업디자인팀을 이끌었던 로버트 브르너(Robert Brunner)에 의하면 “애플에서 위대한 요소들이 사라졌던 이유는 합의에 의해서 결정하다 보니 중도만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위원회 스타일 제품 개발의 문제를 한 가지 더 들자면 쓸데없는 제품을 만든다는 것이다. 위원회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정치싸움의 결과다. 회사에서 예산을 받아야 자신이 맡은 조직이 운영되기 때문에 회사의 이익에는 관심 없이 오직 자기 팀이 맡는 제품을 하나라도 더 추가하려는 정치싸움을 벌인다. 1992년에서 1997년까지 애플은 ‘퍼포마’라는 제품명으로 70여 개의 모델을 판매했다. 너무 많아서 애플에서는 맥을 선택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포스터까지 제작할 정도였다. 회사직원들조차 애플이 왜 그렇게 많은 모델을 만들어야 하는지 이유를 몰랐을 정도다.


현재 애플에는 위원회로 인한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애플에는 위원회가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스티브 잡스가 모든 것을 결정하니 위원회가 필요 없을 듯도 하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의 철저한 통제 아래 돌아가는 독재국가라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독재야말로 애플을 위대하게 만들고 있다. 원래 IT업계는 발전 속도가 빠른 만큼 그 어떤 분야보다도 의사결정이 빨라야 하기 때문에,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독재형 CEO가 회사를 장악하기 마련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선비처럼 생긴 빌 게이츠만 해도 회사 내에서는 존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카리스마형 지도자다. 의견이 다른 직원에게 욕설이 담긴 메시지를 보내서 일부러 전투욕을 자극하기도 하며, 마음에 들지 않는 엔지니어에게는 내가 차라리 프로그래밍하는 게 낫겠다며 비아냥대기도 한다. 또 기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을 하면 바보 같은 질문이라면서 상대를 무안하게 만든다. 꽤 터프한 경영자로 알려진 빌 게이츠는 회사를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 방식으로 경영했다. 허브 앤 스포크 방식은 수레바퀴의 중앙축에 살이 연결되어 있듯이 CEO가 회사 전체의 중앙통로가 되어서 각 사업부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관계를 말한다. 실제로 빌 게이츠는 회사의 허브 역할을 하면서 사업을 직접 통제하였고, 이를 통해서 효율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냈다.



스티브 잡스 역시 빌 게이츠처럼 회사 전체 사업과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처럼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의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는 주로 개발자와 연결되어 있다. 스티브 잡스는 회사 내 100여 명의 사람들과 직접 의사소통하며 이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직위에 따라서 높은 사람들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아래 계층의 엔지니어와도 직속으로 연결되어 대화를 나눈다.


국가와 사회에서는 당연히 민주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스티브 잡스 역시 자신의 사명을 ‘기술 민주주의’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제품 개발에 있어 민주주의가 꼭 옳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오죽하면 닌텐도 Wii와 슈퍼마리오를 개발해서 게임의 신으로까지 불리는 미야모토 시게루는 개발 과정에서의 민주주의를 경멸한다고 밝힐 정도일까. 개발 과정의 민주주의는 리더가 능력이 없을 때뿐이라고 생각한다. 제품 개발은 리더가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팀원들을 이끌어야 하는데 리더 스스로 확신을 못하니 팀원들에게 중요사항을 물어보는 학급회의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책임회피가 만연해진다. 


서로 합의해서 진행했으니 나중에 실패를 해도 누구 하나 자기 책임이라고 하기보다는 모두가 결정한 것을 따랐을 뿐이라면서 변명하기 바쁘다. 사실 애플의 첫 번째 실패작이었던 애플3 컴퓨터가 바로 위원회 식으로 제작해서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다. 애플3가 실패하고 나니 그 누구도 애플3를 자신의 자식이라고 하지 않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이런 모습은 스티브 잡스의 독재 아래 있는 애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스티브 잡스는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팀원들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애플의 위대한 제품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스티브 잡스의 독재에 의해서 나왔다. 



어느 날 스티브 잡스는 개발자들에게 매킨토시는 전화번호부 크기여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만 해도 그렇게 작은 컴퓨터는 상상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팀원들은 스티브 잡스의 요구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민주주의처럼 투표로 결정했다면 매킨토시는 전화번호부 크기로는 절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맥을 개발할 때 엔지니어들은 38가지의 이유를 들어서 제작이 무리라고 답했다. 하지만 잡스는 자신이 CEO이고 내가 가능하다고 믿고 있으니 무조건 따르라고 명령했다. 결국 끝까지 저항하던 엔지니어들은 잡스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스티브 잡스는 조금 불가능할 듯한 목표를 세워서 개발자들을 당황시킨다. 아이팟을 만들 때는 세 번 안에 원하는 곡을 찾도록 했으며, 출시일을 크리스마스 시즌 전까지로 결정해서 개발자들을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었다. 이렇게 팀원들의 의견이 아니라 스티브 잡스의 일방적인 명령으로 채택된 아이디어들은 애플을 역사적인 성공으로 이끌었다.


스티브 잡스의 독재에 대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스티브 잡스가 직원들의 말을 일체 안 듣는 고집불통은 아니라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생각은 얼마든지 직원들에 의해서 거부당하기도 한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도 언제든지 그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아이팟에서 전원 버튼은 스티브 잡스의 요구로 없앴다. 메뉴 버튼도 제거하라고 했지만 개발자의 설득으로 메뉴 버튼은 살아남았다. 사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 순종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확신에 가득차서 자신의 이야기에 반론을 펼치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스티브 잡스의 말이 직원들에게 먹히는 건 그가 단순히 폭군처럼 큰소리로 윽박을 질러서가 아니다. 


애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애플의 엄격한 기준을 통과한 직원들이다. 그래서 애플의 직원들은 애플이 아니라 실리콘밸리 어디를 가도 좋은 조건으로 취직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티브 잡스의 독재를 견뎌내고, 끝까지 스티브 잡스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충성파들이 가득하다. 취업정보 사이트인 글래스도어닷컴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스티브 잡스에 대한 직원들의 지지율이 무려 98%에 이른다고 한다. 지지율이 두 번째로 높았던 CEO는 인텔의 폴 오텔리니(paul otellini)로 82%였고, 애플과 경쟁관계인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브 발머가 52%, 델의 마이클 델은 51%, HP의 전 CEO였던 마크 허드는 34%에 불과했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을 만들 때 천 번 이상 NO를 외친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개발자 입장에서 천 번이나 NO를 듣게 된다면 회사에서 버티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애플의 개발자들은 스티브 잡스의 높은 기대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열정을 다 쏟는다. 스티브 잡스가 훌륭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궁극의 최종 사용자이기 때문이다. 애플에서는 시장조사를 통해서 제품을 만들지 않지만, 대신 스티브 잡스의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충족시켜 줘야 한다. 만약 스티브 잡스의 의견을 토대로 제품을 만들었는데 제품이 형편없고 시장에서 외면 받는다면, 스티브 잡스가 아무리 독재형 CEO라고 할지라도 불같은 성격을 견디면서까지 함께 일할 마음은 없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의 마음을 읽는 최고의 심미안을 가진 존재다. 스티브 잡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면 이는 역사에 남는 위대한 제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개발자들은 누구나 위대한 제품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데 훌륭한 안내판 역할을 한다. 결국 스티브 잡스가 불같은 성격으로 독재를 부려도 개발자들은 그것이 위대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충성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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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은 너무 많은 잘못된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나는 애플에서 놀라운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애플에는 뛰어난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잘못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계획을 잘못 세웠기 때문입니다.


‐ 스티브 잡스, 1997년 보스턴 맥 월드 중


1997년 7월, 스티브 잡스는 길 아멜리오가 사퇴한 이후 회사의 실질적인 권한을 이양 받는다. 스티브 잡스는 우선 새는 돈을 막아야만 했다. 이미 길 아멜리오 시절부터 해온 일이지만 스티브 잡스 역시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사람을 해고하는 식은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는 문서뿐만 아니라 애플 직원들과 일일이 대화를 나누며 회사 사정을 면밀하게 조사했다. 그는 부서를 없앨 때도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결정했다. 자신의 부서가 존속되어야 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밝힌다면 얼마든지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모든 선택의 핵심에 수익성이 있었고, 결국 50여 개가 넘는 프로젝트 중 단 10개만이 살아남았다. 


또 제품 라인업도 간소화했다. 당시 애플은 컴퓨터뿐만 아니라 프린터, PDA, 디지털 카메라, 모니터 등 40여 가지가 넘는 제품을 만들고 있었다. 애플은 같은 컴퓨터 라인업에서도 가격과 성능을 달리한 수많은 모델들을 양산하고 있었고, 각 컴퓨터 간의 차이를 설명하지 못할 정도로 특징 없는 제품들을 이름만 달리해서 수십 개씩 내놓았다. 이는 소비자들에게도 큰 혼란이 되었다. 애플 컴퓨터를 선택하는 방법을 따로 문서로 작성해서 소비자들에게 보여줘야 할 정도였다. 


스티브 잡스는 과감히 제품을 4가지로 압축했다. 우선 고객층을 전문가와 일반 소비자로 나누고, 이들 고객에 맞는 데스크톱 컴퓨터와 휴대용 컴퓨터를 공급하기로 했다. 제품 개발 방식에도 칼을 대었다. 4개의 제품 라인업에 최고의 팀을 구성해서 하나의 팀이 하나의 제품을 전담하도록 했다. 하나의 모델명에 하나의 팀이 하나의 가격과 하나의 스펙, 그리고 하나의 디자인이 적용된 단일제품을 제작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일은 애플의 미래를 불안하게 보는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애플을 부정적으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마이크로소프트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로 운영체제 부분에서 경쟁 관계였지만, 사실 애플의 생사를 쥐고 있었다. 운영체제가 아무리 훌륭해도 응용소프트웨어가 형편없으면 소용없다. 컴퓨터와 운영체제는 응용소프트웨어를 원활하게 구동시키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응용소프트웨어가 없다면 컴퓨터와 운영체제가 존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당시 매킨토시에서 가장 인기 있고 가장 중요한 응용소프트웨어는 ‘MS 오피스’였다. 1994년 이후로 마이크로소프트는 매킨토시용으로 MS 오피스를 내놓지 않았다. 윈도우 95에만 MS 오피스를 독점적으로 제공하자 사람들은 MS 오피스를 쓰기 위해서 윈도우 95를 구입했다. 매킨토시 이용자들 역시 윈도우 95로 이탈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MS 오피스가 없는 매킨토시에게 희망이란 없었다. 결국 스티브 잡스는 그동안 자신이 그토록 조롱하던 필생의 라이벌 빌 게이츠에게 SOS를 칠 수밖에 없었다.


윈도우는 맥 OS를 참고해서 만들었다는 사실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원죄처럼 따라다닌 데다가 마침 애플이 내놓은 동영상 처리 프로그램인 ‘퀵타임’의 소스를 무단으로 윈도우에 도용한 문제로 소송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을 스티브 잡스가 놓칠 리 없었다. 그는 빌 게이츠에게 전화해서 지적재산권과 관련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지 않느냐며 먼저 협상을 제안했고, 빌 게이츠는 스티브 잡스의 전화를 반갑게 받았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이를 위해 무엇을 주고받아야 할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자질구레한 조건을 내걸지 않고 바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협상안을 제시했다. 과감한 결단 덕분에 두 회사는 일사천리로 협상을 진행하여 몇 가지 합의를 이끌어냈다. 우선 MS 오피스가 매킨토시 버전으로도 계속해서 발매될 것을 약속받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주식구매를 통해 애플에 1억 5,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당시 애플에게 큰돈은 아니었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을 살려주기로 결정한 듯한 인상을 준 덕분에 애플의 미래에 긍정적인 신호가 되었다. 협상 능력에서는 스티브 잡스와 호각을 다투는 빌 게이츠 역시 여러 실익을 얻었다. 우선은 골치 아픈 지적재산권 문제를 완전히 타결하면서 껄끄러웠던 과거 문제를 덮을 수 있었고, 당시 넷스케이프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던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애플이라는 우군을 얻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협약은 1997년 보스턴에서 개최된 맥 월드에서 발표되었다. 위성으로 연결된 빌 게이츠가 대형화면에 등장하자 많은 사람들이 야유를 퍼부었고, 두 회사의 협약에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사실 애플 팬들 입장에서 보면 빌 게이츠는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처럼 묘사되기 일쑤였다. 그런 빌 게이츠를 물리쳐줄 것으로 기대했던 스티브 잡스가 앞장서서 빌 게이츠와 손을 잡는다는 것은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성공하려면 마이크로소프트를 패배시켜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면서 애플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애플 스스로 정말 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애플은 가능한 많은 도움이 필요한 회사이며, 다른 회사가 애플을 도와준다면 아주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MS 오피스를 원하면 마이크로소프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면서, 그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경쟁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협력 소식은 즉시 반응이 왔다. 다음날 주식이 33%나 상승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두 회사의 협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협력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충격을 선사한 사건이지만 쓰러져가는 애플에게 긍정적인 지렛대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구조조정을 통해서 비용을 절감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력을 통해 애플의 미래에 대한 시선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놓은 스티브 잡스는 제품의 생산, 유통, 공급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 사실 이 부분이야말로 애플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였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델을 타깃으로 삼음으로써 새로운 도약을 마련할 수 있었다. 델의 창업자인 마이클 델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돌아왔을 때 “그냥 주주들에게 남은 돈을 돌려주고 애플은 자발적으로 파산하는 게 낫다.”는 발언을 해서 스티브 잡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었다. 스티브 잡스는 이를 갈았다. 델컴퓨터의 최대 장점은 생산비용이 다른 회사보다 월등히 낮다는 것이다. 이는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는 철저한 짠물 경영 덕분이었다. 짠물 경영의 교과서로 통하는 델컴퓨터는 마이크로소프트나 인텔처럼 원천기술로 성공한 업체가 아니라 효율적인 생산기술 덕분에 세계적인 기업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델처럼 효율적인 생산과 관리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새로운 인물을 영입하기로 한다. 헤드헌팅 회사를 통해서 몇 명의 후보자들을 소개받았는데, 그중 팀 쿡(Tim Cook)이 있었다. 팀 쿡은 스티브 잡스와 완전히 반대되는 인물이었다. 쉽게 흥분하지 않고 항상 침착했으며 감성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이었는데 이런 팀 쿡에게 스티브 잡스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팀 쿡이 당시 잘 나가던 컴팩(Compaq)을 다니고 있었던 것에 비해 애플은 아직 암흑 속을 헤매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누구인가? 스티브 잡스는 팀 쿡에게 애플이 다시 과거처럼 위대해질 것이라고 설득했다.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를 들은 팀 쿡은 언젠가 애플의 주식은 100달러가 넘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현재 애플의 주식 가격은 200달러를 넘어섰지만 당시의 주식은 20달러에 불과했음을 생각하면 그가 얼마나 확고하게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졌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팀 쿡이 합류한 후 애플은 놀라운 변신을 이뤄낸다. 컴퓨터 부품은 채소와도 같다. 채소가 하루만 지나도 신선도 때문에 가격이 떨어지듯이 컴퓨터 부품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컴퓨터 업계에서 재고관리는 무척 중요하다. 컴퓨터가 창고에 머무르는 기간이 최소화되는 것이 관건인데, 애플은 이 부분이 최악이었다. 애플의 재고는 몇 개월 치가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팀 쿡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생산공장의 문을 닫고 제조 부분을 외주로 돌린다. 덕분에 완성품을 보관하던 창고 역시 폐쇄되면서 애플의 재고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 100여 군데에 이르던 부품 공급 업체도 24곳으로 줄이면서 생산원가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팀 쿡의 활약 덕분에 애플의 가장 큰 약점이었던 제조, 생산, 유통은 애플의 가장 큰 자랑이 되었다. 현재 애플은 AMR 리서치에서 발표하는 공급망 관리 부분에서 2008년 이래 3년 연속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애플의 높은 이익률에는 팀 쿡의 놀라운 원가절감 노력이 있었다. 팀 쿡은 스티브 잡스와 환상의 짝을 이루어 애플 부활의 선봉에 섰다. 팀 쿡의 능력에 반한 스티브 잡스는 그에게 매킨토시 사업부까지 맡겼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과 간이식 수술로 회사를 비웠을 때는 CEO 업무를 대신 맡을 정도로 둘은 긴밀하게 일하고 있다. 팀 쿡은 현재 나이키의 이사로도 활동 중인데 애플 직원이 외부에서 이런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다. 스티브 잡스가 그를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를 가장 당황시켰던 것 중 하나는 애플의 브랜드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과거 애플의 브랜드는 시대를 앞선 선도자의 느낌이었지만 이제는 오히려 시대에 뒤쳐진 패배자가 되어 되었다. 애플의 브랜드 파워를 되살리는 것이 시급했다. 


스티브 잡스는 우선 매킨토시의 복제품 판매 계약을 취소시켰다. 전 CEO인 마이클 스핀들러는 모토롤라, 유맥스, 파워 컴퓨팅에게 매킨토시를 복제해서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로열티를 받기로 했었다.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지만, 이런 정책은 회사의 재정에 치명타를 주었다. 사람들이 애플의 매킨토시를 구입하는 게 아니라 가격이 상대적으로 싼 복제품을 구입했기 때문이다. 이 계약은 애플 브랜드에 좋을 게 없었다. 브랜드는 결국 제품에서 나온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드는 컴퓨터 업체라는 특별함이 애플의 브랜드를 더욱 값지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매킨토시가 애플이 아닌 다른 곳에서 생산되면서 애플만이 가지는 특별한 느낌도 사라진 것이다. 특히 복제품 중에는 애플보다 성능이 뛰어나지만 가격이 싼 제품도 있었다. 이런 일은 애플에 큰 위협이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복제품 생산을 중단시키려 했지만, 매킨토시 복제품으로 큰돈을 벌던 파워컴퓨팅이 극렬하게 반대했고 결국 파워컴퓨팅을 1억 달러에 매입해야만 했다. 


추락하는 브랜드 이미지를 되살리기 위한 또 다른 방법으로 대규모 캠페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스티브 잡스는 치아트 데이(Chiat/day)의 디렉터 리 클로와 접촉한다. 애플의 시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광고를 원한다는 말을 들은 리 클로는 매킨토시를 이용해서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광고에 활용하고 싶어 했다. 마침 스티븐 스필버그, 제프리 카젠버그, 데이비드 게펜이 공동 창업한 드림웍스 SKG에서 영화를 제작할 때 매킨토시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모습을 영상에 담을 계획을 세웠다. 괜찮은 아이디어였지만 스티브 잡스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는 흑백 초상화를 모으는 취미가 있었고, 스티브 잡스의 집은 아인슈타인과 같은 유명 인사들의 흑백 초상화들로 꾸며져 있었다. 리 클로는 여기에서 새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는 고정관념을 깨뜨린 창의적인 생각으로 20세기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등장하는 광고를 생각해냈다. 이번에는 스티브 잡스 역시 흡족해 하면서 적극적으로 광고 제작에 참여했다. 광고 캠페인의 주제는 ‘Think Different’였다. 광고는 토머스 에디슨, 아인슈타인, 존 레논, 무하마드 알리, 밥 딜런 등의 모습이 흑백영상으로 지나가면서 다르게 생각해서 결국 세상을 바꾸어 놓은 인물들을 찬미하는 자유시 ‘Here’s to the Crazy ones’가 음성으로 소개되었다. 


Think Different는 단순한 광고가 아니었다. 애플의 브랜드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애플 제품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찬미도 담고 있었다. 매킨토시의 점유율이 추락하자 일반 사람들은 매킨토시 이용자를 시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괴짜 정도로 치부하는 분위기였는데, Think Different는 매킨토시 사용자들이 비록 소수지만 그들이야말로 광고 속에 등장하는 존 레논이나 밥 딜런처럼 창조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했던 것이다. 소수자의 설움을 느꼈던 매킨토시 소유자들은 Think Different를 통해서 소수이지만 특별한 사람이라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이 광고는 단순히 고객에게 애플을 호소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직원들을 향한 스티브 잡스의 메시지이기도 했다. 애플 직원들을 향하여 다르게 생각해서 다시 한 번 세상을 바꿔 보자고 호소하는 것이었다.


구조조정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외주생산으로 제조의 효율성을 구축하였으며 다르게 생각하기로 브랜드 이미지를 재구축한 애플을 부활시키기 위한 마지막 단계는, 결국 다르게 생각하기를 통해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업계는 컴퓨터 가격이 급속도로 하락하면서 인터넷 열풍이 불고 있었다. 애플은 이 두 가지 키워드에 주목했다. 마침 애플 이사였던 오라클 CEO인 래리 앨리슨이 네트워크 컴퓨터, 즉 NC를 들고 나왔다. NC는 부수적인 기능을 최대한 제거하고 오직 네트워크에 최적화시킨 저가형 컴퓨터였다. 스티브 잡스가 돌아왔을 때 래리 앨리슨과 애플은 공동으로 맥 NC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맥 NC가 애플을 기업용 시장에 인도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특히 맥 NC의 디자인에 반해 버린 스티브 잡스는 맥 NC의 프로토타입을 일부러 자신의 사무실에 설치해놓고 감상할 정도였다. 하지만 네트워크 컴퓨터는 소비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자 스티브 잡스는 맥 NC를 인터넷에 최적화된 컴퓨터로 개발할 결심을 한다. 


‘인터넷 매킨토시’로 명명된 이 제품을 개발하면서는 조금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했다. 디자인팀에 좀 더 힘을 실어 그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도록 했는데,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디자인팀에서 조너선 아이브를 발견한 덕분이었다. 원래 애플 외부에서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를 영입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의 뛰어난 디자인 실력을 보고는 바로 마음을 바꿨다. 조너선 아이브 역시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이었지만 스티브 잡스의 선택을 받고는 애플에 남기로 결정한다. 기대에 부응하듯 조너선 아이브는 컴퓨터 역사에 가장 획기적인 디자인을 내놓는다. 스티브 잡스와 조너선 아이브의 합작이 빛난 이 컴퓨터가 바로 애플 부활의 아이콘으로 컴퓨터 업계에 신선한 충격파를 선사한 ‘아이맥(iMac)’이었다. 모니터와 컴퓨터 일체형 모델이었던 아이맥은 컴퓨터 색깔이 검정색 아니면 베이지색으로 통일되었던 당시에 푸른빛의 사탕 색깔로 업계에 컬러 바람을 일으켰다. 특히 컴퓨터 내부가 훤히 보이는 투명한 누드 디자인은 컴퓨터 업계뿐만 아니라 산업계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 


사실 누드 디자인은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다. 테스트를 위해서 만든 시제품은 마감처리가 되지 않아서 컴퓨터 내부가 훤히 보였는데, 테스트하는 학생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걸 본 스티브 잡스가 이를 놓치지 않고 제품개발에 접목한 것이다. 완성된 디자인을 본 스티브 잡스는 ‘훌륭한 디자이너만 사는 행성에서 온 것 같은 제품’이라며 격찬했다. 아이맥의 가격은 애플의 제품치고는 파격적인 1,299달러였지만 다른 제품에 비해서는 비쌌고, 특히 플로피 디스크가 없었기 때문에 아이맥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들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시장에 나온 아이맥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팔렸다. 6주 만에 30만 대를 넘더니, 연말까지 80만 대가 판매되었는데 스티브 잡스는 이를 15초마다 한 대씩 팔렸다면서 자랑스러워 했다. 아이맥이 발매된 후 1년 동안 2백만 대나 팔린 덕분에 애플은 1998년 회계연도에서 3억 950만 달러의 흑자를 기록하며 세상에 애플이 부활했음을 확고히 알릴 수 있었다. 아이맥은 단순한 히트작을 뜻하지 않는다. 애플 2.0, 즉 아이(i)의 시대가 왔음을 당당히 선포한 것이다.


<"애플 처럼 창조한다는 것" 매주 연재 됩니다. 다음에는 아이팟의 탄생 스토리가 이어집니다.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은 저의 페이스북 팬페이지에 접속하셔서 좋아요 버튼좀 눌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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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7회)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는 애플을 창업한 스티브 잡스 1.0과 애플에 돌아와서 애플을 되살린 스티브 잡스 2.0을 구분해야 합니다. 스티브 잡스 2.0은 예술가로 변했어요. 기술업계에서 스티브 잡스처럼 그렇게 강력하고 새로운 핵심 사업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사람은 없습니다.

‐ 전 인텔 CEO 앤디 그로브, 2009년 <포춘>


길 아멜리오는 3년 정도의 기간 안에 애플을 부활시킨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좋은 징조들이 조금씩 보이기도 했다. 길 아멜리오에 의해서 애플은 부활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처럼 오늘날의 위대한 애플로 재창조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와 길 아멜리오는 스케일 자체가 다른 인물이었다. 애플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 길 아멜리오가 스티브 잡스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길 아멜리오는 애플의 팬이었지만, 애플에서 월급을 받는 경영자였을 뿐 스티브 잡스는 애플과 하나였다. 


길 아멜리오는 연봉 300만 달러 이외에도 500만 달러의 융자금 그리고 2,700만 달러에 이르는 거액의 주식을 받았다. 그를 궁지로 몰고 간 것은 그의 자가용 비행기였다. 회사에서는 그의 자가용 비행기에 들어가는 수십만 달러의 비용을 지불해 주었는데, 여기에 그의 화려한 사무실 역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이 때문에 길 아멜리오의 진심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뉴욕타임스> 같은 유력 언론으로부터 추락하는 회사 사정에 비해 과도한 연봉과 혜택이라는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길 아멜리오는 퇴직을 하면서도 700만 달러라는 거액을 요구해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애플로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연봉 1달러만을 받고 일을 시작한다. 스티브 잡스는 항상 무대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인물이었던 만큼 회사에서도 직원이 아니라 주인이 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픽사(Pixar)에서도 50달러만 받고 일했으며, 넥스트에서는 전혀 돈을 받지 않았다. 애플에서 1달러를 받은 것은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 위한 최소 요건 때문이었다.


길 아멜리오와 스티브 잡스의 차이는 회사 장악력에서도 드러난다. 애플 이사회는 회사의 실적이 떨어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그동안 아무도 건들지 못했던 이사회 멤버를 갈아엎었다. 그중에는 누구도 함부로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던 마이크 마큘라도 있었다. 


직원과의 관계에서도 달랐다. 경영자가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와 전략을 가지고 있어도 직원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길 아멜리오 시대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길 아멜리오 이전의 인물들은 그래도 애플 내부 사람이었다. 외부에서 영입된 존 스컬리는 그래도 10년간 애플의 CEO로 재직했었고, 애플의 황금기를 같이 했다. 직원들이 당장 말을 잘 듣지 않고 실책을 저질러도 회사는 막대한 현금 보유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길 아멜리오는 회사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급하게 모셔 온 인물이었다. 언제 회사가 도산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던 만큼 전 직원들이 똘똘 뭉쳐야만 겨우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시기였는데, 안타깝게도 단결은커녕 오히려 이전투구의 양상을 보이며 서로를 헐뜯기 바빴다. 


특히 제품을 만든다면서 예산을 타놓고는 어떤 결과물도 내놓지 못하는 좀비 프로젝트가 사내에 즐비했다. 길 아멜리오도 이런 좀비 프로젝트를 제대로 컨트롤하진 못했다. 직원들은 애플이라는 전체 기업의 이익은 안중에 없고, 오직 자신이 속한 프로젝트만을 지키려고 했다. 애플의 한 임원은 일부러 <비즈니스위크>에 회사의 각종 정보를 알려 길 아멜리오를 비난하는 기사를 쓰도록 할 정도였다.


한 번은 회사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직원들의 공통된 목표를 세우고자 길 아멜리오가 각 부서의 책임자들을 호텔에 모아 각자 분야를 발표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서 서로가 단합하는 계기를 마련하려고 했지만 직원들은 각자의 일에만 관심 있을 뿐 회사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었다. 길 아멜리오는 극심한 조직 이기주의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좌절감을 느껴야만 했다. 애플이 외부에서 운영체제를 사온 것은 매우 치욕적인 상황이었다.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다. 맥 OS의 결함으로 인해 각종 불만이 쌓여가던 차에 이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하려 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자신들이 만든 맥 OS의 문제점도 파악하지 못하는 집단에게 새로운 운영체제를 개발하라고 하는 것은 더욱 끔찍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뿐이다. 그래서 길 아멜리오는 당시 라이벌 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선마이크로시스템즈의 운영체제를 고려하면서까지 회사를 살리려고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몇몇 직원들은 아예 길 아멜리오의 말을 면전에서 무시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톰 크루즈가 출연하는 <미션 임파서블>에 간접광고를 제안받은 길 아멜리오는 500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약속한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예산 권한을 가지고 있는 영업담당자가 영화에 협찬하는 것은 돈 낭비라면서 이를 거부했다. 길 아멜리오는 직접 영업담당자에게 명령을 내렸지만 오히려 길 아멜리오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다면서 큰소리를 칠 정도였다. 결국 광고 협찬을 할 수는 있었지만 길 아멜리오로서는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외부에서 영입된 길 아멜리오는 애플 직원들과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는 직원들의 자부심과 권위주의에 반감을 가지는 회사 문화가 뒤섞이면서 그 누구도 애플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이런 상황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 


그는 스타워즈로 유명한 영화감독 조지 루카스로부터 천만 달러에 인수받은 컴퓨터 그래픽팀을 ‘픽사(Pixar)’라는 애니메이션 회사로 변신시켜 성공 신화를 그려가고 있던 참이었다. 픽사는 토이 스토리를 통해서 영화업계 전체에 충격파를 주었고, 나스닥에 상장되면서 스티브 잡스 역시 큰돈을 벌었다. 결국 애플의 야생마들을 길들일 수 있는 인물은 기술과 예술업계 두 분야에서 전무후무한 성공 신화를 거둔 스티브 잡스밖에 없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돌아오기 전에 길 아멜리오를 만났을 때 애플을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단결이 필요한데 오직 자신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밝혔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아멜리오가 구체적인 계획안을 물었을 때 아무런 대답을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당시 애플에 필요했던 것은 단합이었다. 배에 구멍이 여기저기 뚫려서 배가 침몰하는 상황에서 단결해서 구멍을 막고 물을 퍼내야 하는데 모두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당시 침몰하던 애플에게는 각종 전략을 강력한 카리스마로 즉시 실행으로 옮길 인물인 스티브 잡스가 최고이자 유일한 답이었다.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과거보다 훨씬 더 강력해져 있었다. 그는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회사인 픽사를 경영하면서 창조적인 인재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제공하는 방법을 터득하였다. 항상 갑의 위치에서 일하던 스티브 잡스는 픽사의 영화를 배급하는 디즈니와 을의 입장으로 일하면서 기업과 협력하는 방법을 익혔다. 항상 주도권을 가지고서 모든 것에 참견하는 그가 픽사를 경영한 이후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권력을 나누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부하직원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나서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아는 사람이 되었다. 특히 애플을 그만둔 후 창업했던 넥스트의 실패를 통해 좀 더 겸손해졌으며 무조건적인 기술과 하드웨어 지향주의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인간적으로도 훨씬 성숙해져 있었다. 그는 자신이 미혼모에게 버림받은 입양아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여자친구 크리스 앤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리사(Lisa)를 모른 척했다. 끝까지 자신이 친부가 아니라고 주장하였으나 유전자 검사에 의해서 친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형편이 어려웠던 크리스 앤이 리사의 양육을 부탁하지만 억만장자가 된 스티브 잡스는 이를 거절했다. 이 문제로 인해 그의 인간성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다가 1991년 스탠퍼드 대학원생이었던 로렌 파웰과 결혼한 후 완전히 새 사람으로 거듭났다. 그는 좋은 아버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딸 리사를 데려와 키웠다. 그리고 로렌 사이에서도 두 아이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딸 리사는 명문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했고,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노래로 표현할 정도로 관계를 완전히 회복했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또 다른 비난은 주식공개 시 창업 공신들에게 너무 야박했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단순히 어려운 시절을 함께 했다는 이유만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창업 초기의 중요 인물들에게 주식을 나눠주지 않았다. 어린 시절 함께 자란 친구인 빌 페르난데스에 대한 박대는 유명하다. 이에 비해 워즈니악은 잡스와는 달랐다. 그는 자신이 받은 주식의 3분의 1 정도를 ‘워즈플랜’이라는 이름으로 직원들에게 헐값에 넘기거나 무상으로 나눠주었다. 워즈니악의 행동과 비교되면서 잡스는 더욱 매정한 기업가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달랐다. 2003년 잡스는 주당 9.15달러에 1,500만 주를, 21.80달러에 4,000만 주를 소유할 수 있는 스톡옵션을 가지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이 주식을 사기진작을 위해서 직원들에게 나눠주었다. 스티브 잡스가 그때 나눠준 주식은 현재 128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15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애플에서 쫓겨난 후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사업적으로 한층 성숙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정이라는 안식처를 가지면서 인간적인 면모를 갖추게 된 스티브 잡스는 확실히 스티브 잡스 2.0으로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스티브 잡스 1.0과 비교하여 스티브 잡스 2.0의 발전은 놀라운 변화였으며, 그런 그가 애플을 새로운 경지로 이끌게 될 것임은 너무나 자명해 보였다.


애플 몰락의 교훈 


사업의 세계는 결국 실적으로 말한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개인용 컴퓨터 시대의 아이콘을 부상했지만 실적이 악화되자 결국 회사에서 쫓겨났다.


사람은 의미있는 일을 원한다.

펩시에서 승승장구를 하던 존 스컬리는 애플에서 일하자는 제안을 거절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남은 인생을 설탕물이나 팔고 살 건가요?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원하십니까?”라는 말 한마디에 생각을 바꾸었다.


보물을 함부로 남에게 주지 마라

애플은 자신들의 보물인 맥 OS의 인터페이스를 MS에 라이센스해줌으로써 스스로의 특별함을 잃어버렸다.



친구를 버리지 마라

애플은 어도비에 250만달러를 투자한 덕분에 어도비와 특별한관계를 맺었지만 이를 매도함으로써 친구를 잃게 되었다.



준비된 자에게 행운이 온다.

애플은 원래 비오에스를 구입할 예정이었으나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 준비 부족으로 이를 놓치고 만다. 결국 행운은 준비된 스티브 잡스의 몫이 되었다.



리더는 회사에 충성심을 보여야 한다.

길 아멜리오는 과도한 연봉과 과도한 혜택으로 이방인 취급을 받았으나 연봉 1달러로 회사에 충성심을 보인 스티브 잡스는 회사를 통제할 수 있었다.


CEO의 업무는 항상 변한다.


스티브 잡스는 모든일을 혼자서 결정하고 많은 부분에서 참견하는 마이크로 메니저로 알려졌지만 픽사에서는 자애로운 후원자로 일에 간섭을 하지 않았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나서야 할때와 그렇지 않은때를 알고 있는 CEO임을 뜻한다.



<"애플 처럼 창조한다는 것"  매주 연재 됩니다. 다음에는 돌아온 황제, 애플의 르네상스를 열다가 이어집니다.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은 저의 페이스북 팬페이지에 접속하셔서 좋아요 버튼좀 눌러주세요. ^^; ; 이 글을 쓰는 순간 제 페이스북에 좋아요 버튼을 눌러준 분들이 97분입니다. 100분좀 넘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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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6회)




나는 애플을 소생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것이 완벽한 제품과 완벽한 전략에 대한 것 이상이라는 것 빼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그러나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듣지 않을 것이다.

‐ 스티브 잡스, 1996년 <포춘>


윈도우가 승승장구하면서 애플이 흔들리기 시작하는 동안 정작 회사의 CEO인 존 스컬리는 회사 일에 흥미를 잃어갔다. 그는 회사일보다 자신을 알리기 위한 언론 홍보활동에 열심이었다. 평생을 공화당 당원으로 살았던 그는 IT기업에 관심이 많던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빌 클린턴에게 호감을 느끼고, 선거운동 지원에 직접 나선다. 업무보다 선거운동에 더 열중하는 존 스컬리의 행동은 이사회의 분노를 사게 된다. 


마침 존 스컬리가 열정을 가지고 전념했던 제품이 ‘뉴튼’이었다. 휴대 가능한 손안의 컴퓨터라는 개념으로 시작한 뉴튼은 문자인식이 가능한 패드를 갖추어서 오늘날 태블릿 컴퓨터의 원조이자 PDA의 시작으로 일컬어지는 제품이다. 하지만 뉴튼이 당초 가지고 있던 원대한 포부와는 다르게 실제 구현상의 어려움으로 발매일이 계속해서 연기되었다. 1993년에 이르자 애플의 실적은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주가 역시 몇 주 만에 3분의 2로 추락하자 존 스컬리의 입지는 더욱 줄어든다. 이제 스티브 잡스가 존 스컬리에 의해서 축출되었듯이 똑같은 역사가 재현된다. 


존 스컬리는 애플을 두 개의 회사로 분사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소프트웨어 회사인 애플소프트와 하드웨어를 책임지는 매킨토시 사업부였다. 그는 매킨토시 사업부를 마이클 스핀들러(michael spindler)에 맡길 생각이었다. 원래 마이클 스핀들러는 인텔에서 근무하면서 마이크 마쿨라와 친하게 지낸 사이였다. 인텔에서 번 돈을 애플에 투자하여 큰돈을 벌게 된 마큘라는 평소 능력을 높이 평가하던 마이클 스핀들러를 애플로 불러들인다. 마이클 스핀들러는 독일 태생으로 주로 유럽에서 활동하던 인물이었는데, 마큘라는 그에게 유럽에서의 마케팅을 맡겼다. 유럽에서 뛰어난 실적을 기록하자 존 스컬리는 마이클 스핀들러를 미국 본사로 데려온다.


마이클 스핀들러는 사람 앞에서 낯가림이 심하고, 쉽게 긴장하는 성격으로 야망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지만 존 스컬리 덕분에 고속 승진을 거듭하면서 서서히 야망을 키워갔다. 특히 존 스컬리의 오른팔로 제품개발 전반을 책임지던 장 루이 가세가 여러 치명적인 실책들을 저지르고 자리에서 물러나자 후임으로 임명되어 더욱 대범해져 갔다. 존 스컬리가 분사 계획을 세우고, 전혀 가망 없어 보이는 매킨토시 사업부를 맡기려 하자 이에 큰 불만을 가지게 된다. 마이클 스핀들러가 매킨토시 사업부를 맡고 싶지 않다고 하자 충격을 받은 존 스컬리는 자신의 계획을 전면적으로 취소한다.


 이런 와중에 존 스컬리는 회사에서 신용을 잃어 갔으며 악화된 실적과 함께 결국 이사회에 의해서 쫓겨난다. 스티브 잡스의 모든 실권을 빼앗아서 스컬리에게 전권을 주었던 애플의 이사회 멤버이자 벤처 투자가인 아서 록이 이번에는 스컬리의 해고를 통보했다. 그리고 후임자가 된 사람은 존 스컬리가 그렇게 믿었던 마이클 스핀들러였다. 스핀들러는 처음부터 쿠데타 음모를 알고 있었으며, 미리 CEO 자리를 수락하였다. 하지만 스컬리에게는 마치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행동하며 CEO 자리에서 쫓겨난 그를 위로해 주었다.


회사의 CEO가 된 스핀들러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진행한다. 2,500명의 사원을 해고하고, 각종 임금인상을 취소하고 보너스를 삭감한다. 회사경비를 줄이기 위해서 무료였던 구내식당과 헬스장을 유료화 시킨다. 스핀들러의 지상과제는 9%로 떨어진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 매킨토시의 운영체제인 맥 OS를 모토로라, 파워컴퓨팅, 유맥스 등 다른 하드웨어 업체에 라이선스하는 초강수를 둔다. 덕분에 매킨토시의 시장 점유율은 상승했으나 매우 중요한 문제가 생겼다. 


다른 회사에서 제조된 매킨토시가 한 대씩 팔릴 때 애플은 50달러를 받았는데, 만약 애플이 직접 제조해서 팔았다면 500달러의 이익을 볼 수 있는 상태였다. 다른 제조사에서 제작한 매킨토시가 팔린다는 이야기는 결국 애플의 매킨토시가 그만큼 팔리지 않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애플은 이제 자신의 제품을 복제한 회사와 서로 경쟁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여기에 윈도우 95가 가세하면서 마이클 스핀들러는 직격탄을 맞는다. 매킨토시의 재고는 10억 달러에 이르렀는데 매킨토시 전체 매출이 60억 달러였음을 고려하면 엄청난 손실이었다. 회사의 시장 점유율은 9%에서 7.4%로 줄어들었으며, 1995년 마지막 분기는 6,800만 달러의 적자가 났다. 이런 실적으로는 더 이상 마이클 스핀들러가 회사에 머무를 수 없었다. 


마이클 스핀들러의 후임으로는 길 아멜리오((Gil Amelio)가 임명되었다. 물리학 박사학위를 가진 길 아멜리오는 디지털 카메라에 들어가는 핵심부품인 CCD를 발명한 개발자 출신으로, 40대의 나이에 내셔널 세미컨덕터(National Semiconductor)의 CEO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5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무너져 가는 내셔널 세미컨덕터를 3년 만에 회생시키는 뛰어난 경영수완을 보여준 덕분에 업계에서는 영웅으로 여겨졌다.


마침 내셔널 세미컨덕터는 애플에 각종 부품을 공급하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애플에서 이사직을 제안하자 평소 애플의 팬이었던 길 아멜리오는 기쁜 마음으로 애플의 이사회에 합류하게 된다. 전임 CEO인 마이클 스핀들러는 IBM, 썬마이크로시스템즈, 필립스, 게이트 2000, 소니 등에 애플을 팔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애플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던 길 아멜리오는 이사회에서 마이클 스핀들러의 행동을 비난하며 회사가 헐값에 팔리는 것을 막았다. 이때 길 아멜리오를 높이 평가한 이사회 멤버인 피터 크리스프(Peter Crisp)는 그에게 CEO직을 제안한다. 비록 애플의 실적은 엉망이었지만 애플의 CEO가 된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되는 것을 뜻했다. 게다가 그렇게 사모하던 회사가 아니던가? 이미 내셔널 세미컨덕터의 CEO임에도 불구하고, 길 아멜리오는 아무런 계약서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애플의 CEO직을 수락한다. 그는 구체적인 연봉이나 대우에 대한 합의도 없이 바로 애플에 출근했으며, 구체적인 계약 내용은 3개월 후에나 확정되었다. 


길 아멜리오는 이전의 CEO들과는 두 가지가 달랐다. 이전의 CEO는 마케팅 전문가들이었으나 마이클 스핀들러는 기술을 아는 개발자 출신이었다. 전의 CEO는 회사를 팔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지만 애플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그는 애플이 싸구려로 팔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애플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길 아멜리오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회사의 운영자금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6억 6,100만 달러에 이르는 사채를 골드만삭스에서 구입해 감으로써 잠시 숨통을 틀 수 있었다. 길 아멜리오는 회사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고민했고, 운영체제가 가장 문제라는 것을 발견했다. 윈도우 95가 발매된 이후 시장을 급속도로 확장하는 동안 애플은 이에 대응하는 어떤 제품도 내놓지 못했다. 원래 애플은 90년대 초반부터 차세대 운영체제인 코플랜드를 개발 중이었다. 하지만 5년여가 지나도록 아무런 성과도 없었기 때문에 결단을 내려야 했다. 회사 내에서는 도저히 운영체제를 만들 능력이 없으니 외부에서 사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를 알게 된 빌 게이츠는 애플에 전화를 걸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NT를 매킨토시에서도 작동되는 운영체제로 변환할 수 있도록 개발자들을 언제든지 투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빌 게이츠는 매킨토시 운영체제인 맥 OS 고유의 인터페이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다시 빌 게이츠는 맥 OS의 운영체제에 욕심을 내고 있었던 것이다. 길 아멜리오는 존 스컬리와는 다르게 그의 의도를 꿰뚫고 협상을 중지시켰다. 이때 장 루이 가세가 끼어들었다. 그는 이미 매킨토시에서 작동되는 비오에스(BeOS)를 개발 중이었는데, 길 아멜리오는 호감을 가지고 가격을 물었다. 하지만 5억 달러라는 거액을 부르는 바람에 협상은 잠시 중단된 상태가 되었다.


이런 소식들이 스티브 잡스의 회사인 넥스트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었다. 그리고 넥스트의 개발자들은 스티브 잡스 몰래 애플과 접촉한다. 애플 관계자들이 넥스트의 사무실을 방문해서 개발 중인 운영체제를 직접 테스트했고, 흡족한 결과를 얻었다. 충성스런 넥스트의 개발자들 덕분에 스티브 잡스의 인생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 이 접촉 사실을 알게 된 스티브 잡스는 직관적으로 이번 거래의 중요성을 알았고, 자신이 직접 협상을 주도했다. 


이미 스티브 잡스와 길 아멜리오는 구면이었다. 길 아멜리오가 애플의 이사회에 임명된 후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스티브 잡스가 직접 길 아멜리오를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었다. 길 아멜리오는 애플의 창업자이자 컴퓨터 업계의 전설인 스티브 잡스의 초대에 기꺼이 응한다. 스티브 잡스는 길 아멜리오에게 간접적으로 자신이 애플을 부활시킬 수 있는 인물임을 암시했다. 길 아멜리오는 애플을 부활시킬 전략이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당시 스티브 잡스는 구체적으로 말하지 못했고, 그들의 만남은 그렇게 어색한 침묵 속에서 끝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에는 실제로 존재하는 제품을 평가받는 것이었다. 애플 직원들은 매일 넥스트와 회의를 하면서 넥스트의 운영체제를 검증했다. 검증에 참여한 직원들은 넥스트의 운영체제가 비오에스보다 더 뛰어나다는 최종 평가를 내렸지만, 길 아멜리오는 운영체제 선택에 신중했다. 좀 더 합리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 스티브 잡스와 장 루이 가세가 애플 경영진 앞에서 직접 제품을 설명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런 경쟁 프레젠테이션이라면 이미 스티브 잡스에게 저울이 기울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승부는 이미 결정되었고, 관건은 이제 얼마나 좋은 조건에 계약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직접 노트북을 가지고 넥스트의 운영체제를 시연해 보이며 경영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반면 프레젠테이션도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장 루이 가세는 스티브 잡스와 비교되면서 오히려 스티브 잡스의 협상력만 높여주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길 아멜리오는 3억 7,750달러의 막대한 현금과 150만 주에 이르는 주식으로 넥스트를 인수하고, 스티브 잡스를 애플의 고문으로 영입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가 고문으로 애플에 돌아왔지만 회사는 아주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중이었다. 당시 스티브 잡스는 이상할 정도로 회사 일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는데, 오히려 애플로부터 받은 150만 주를 모두 처분함으로써 회사에 큰 충격파를 던져준다. 이런 태도에 대해서 사람들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쿠데타를 일으키기 위해 뒤에서 더러운 모략을 꾸민다는 사람들과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경영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확실한 것은 스티브 잡스가 길 아멜리오를 배신했다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절친한 친구인 오라클의 창업자 래리 앨리슨(Larry  Ellison)이 애플을 인수합병하려 하자 이를 말렸다고 한다. 자신이 애플로 돌아갔을 때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애플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스티브 잡스였던 만큼 그가 CEO 자리를 욕심내는 것은 당연하지만 길 아멜리오의 후임이 된다는 것은 사실 도박과 같았다. 길 아멜리오가 CEO로 재직 중일 때 애플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6%에서 3%로 떨어졌고, 교육 시장 점유율은 41%에서 27%로 하락하면서 실적은 계속 추락 중이었다. 결국 애플의 실적은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할 정도로 악화되어 갔고, 주식은 10년 내 최저로 떨어져 있었다. 언론 이곳저곳에서는 애플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고, 부정적이기는 스티브 잡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티브 잡스가 주식을 판 행위는 오히려 그만큼 회사의 미래를 밝게 보지 않았다는 반증이 될 수 있다. 주식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면 주식을 팔 이유가 없었고, 경영권을 목표로 한다면 더더욱 주식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면 스티브 잡스는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기 전에 팔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150만 주를 판 것이 회사와 언론에 일종의 충격파를 던져준 것은 확실하다. 창업자마저도 애플의 회생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사회는 길 아멜리오의 후임을 선택하기 위해서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에게 SOS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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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처럼창조한다는것(5)  존 스컬리의 시대


나는 항상 애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 인생의 실과 애플의 실이 서로 직물처럼 엮여 있으면 좋겠습니다. 애플에 내가 몇 년간 없을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돌아올 겁니다. 

‐ 스티브 잡스, 1985년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 중에서


사업은 결국 실적으로 말하는 세계다. 실적이 좋으면 찬양받지만, 실적이 떨어지면 온갖 비난에 시달려야 한다. 애플 컴퓨터의 창업자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창조한 영웅으로 칭송받던 스티브 잡스였지만 그가 온 전력을 쏟아 부은 매킨토시의 실적이 부진하자 함께 추락하기 시작한다. 당초 목표치였던 200만 대에 턱없이 부족한 25만 대만을 판매하는 것에 그쳤기 때문이다. 매킨토시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회사 사람들에게 스티브 잡스는 독선적인 행동들을 빈번하게 벌였었고, 이 때문에 사내에 많은 반대파들을 만들었다. 급기야 스티브 잡스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세력들이 결집하여 1985년 4월 11일 이사회에서 그의 모든 실권을 빼앗았다.


아이러니한 점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축출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그가 직접 뉴욕까지 날아가서 스카우트한 존 스컬리(John Sculley)라는 점이다. 펩시의 사장인 존 스컬리는 1980년대 초반 펩시 세대라는 광고 캠페인을 통해서 펩시가 코카콜라를 넘어 세계 최고의 음료회사로 발돋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마케팅 전문가였다. 애플로부터 CEO 영입을 의뢰받은 헤드헌터 업체인 에드 윙구쓰(Ed Winguth)는 존 스컬리와 접촉한다. 하지만 존 스컬리는 이를 단번에 거절했다. 이때 스티브 잡스가 나선 것이다. 뉴욕으로 직접 날아가서 존 스컬리에게 개발 중이던 매킨토시를 보여준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그 유명한 한 마디를 남긴다.


“남은 인생을 설탕물이나 팔고 살 건가요?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원하십니까?”


도발적인 발언에 애플에 매료되고, 함께 일할 결심을 한 그는 애플로 CEO 면접을 보러 온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존 스컬리를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마련했는데, 매킨토시 화면에서 펩시 뚜껑과 펩시캔이 여러 창 안에서 튀어나와서 이리저리 튕기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이 화면을 보고 더욱 깊은 인상을 받았다. 확실히 스티브 잡스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이미 애플 컴퓨터의 성공으로 전국적인 유명 인사였던 스티브 잡스가 직접 자신을 챙겨주자 더욱 감동했고, CEO 취임연설에서 애플로 온 이유가 “오직 스티브 잡스와 함께 일하기 위해서”라고 밝힐 정도였다. 처음 둘의 사이는 환상의 짝꿍이었다. 존 스컬리는 5년만 CEO를 하고 나중에는 스티브 잡스에게 물려줄 생각이었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의 스승이 되어서 마케팅과 기업경영에서 쌓은 자신의 모든 노하우를 전수해 주기 위해서 노력했다. 스티브 잡스의 대단함을 칭찬하며 항상 존중해 왔지만, 매킨토시의 판매량이 줄어들자 스티브 잡스를 몰아내는 일에 직접 나서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쉽게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 존 스컬리에게 실권을 빼앗긴 그는 다시 경영권을 회복하기 위한 비밀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쿠데타는 실패였다. 마케팅 이사인 장 루이 가세에게 자신의 전략을 설명했다가 오히려 큰 화를 자초하게 된다. 장 루이 가세는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중국으로 출장 가려던 존 스컬리에게 알렸고, 출장을 취소한 존 스컬리는 다음날 긴급회의를 소집한다. 그리고 이사진에게 자신과 스티브 잡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하며 익명의 투표를 재촉했다. 투표 결과 존 스컬리가 선택받았고, 스티브 잡스는 쓸쓸히 회의실을 나오게 된다. 권력싸움에서 패배한 스티브 잡스는 애플 본사 건물에서 나와서는 ‘시베리아’라고 불리는 작은 건물로 쫓겨났다. 회사에 나가봐야 정신건강에 해로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사무실에 나가지 않았다.


스티브 잡스는 일 자체를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의자에 편히 앉아서 서류에 사인이나 하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제품을 만드는 그런 일이 필요했다. 애플에서는 더 이상 제품 개발을 진두지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그는 직접 회사를 창업할 결심을 한다. 애플2 컴퓨터를 통해 중ㆍ고등학생들을 위한 교육용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듯이 대학교육에도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그리고 1985년 9월 17일 애플에 정식 사직서를 직접 제출한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직원 중 여섯 명을 데리고 넥스트(NeXT)를 창업한 후 애플의 주식을 단 한 주만 남겨두고 모두 처분한다. 이렇게 애플과 스티브 잡스의 인연은 완전히 끊기는 듯 보였다.


스티브 잡스가 떠난 후 존 스컬리가 애플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존 스컬리는 스티브 잡스가 이끌던 인재들을 모두 쓸어내었다. 내부분열을 최소화하고자 한 것이다. 그동안 사내 부서들은 애플2, 애플3, 리사, 매킨토시 등의 팀 단위로 나뉘어서 서로 경쟁했는데 이들 부서를 하나의 연구부서로 통합하고, 여기에 마케팅팀을 만들어서 두 부서가 긴밀히 협력하도록 했다. 


당면과제는 창업 후 처음 발생한 적자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였다. 그의 골칫거리는 스티브 잡스의 뛰어난 선견지명 덕분에 해결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가 사무실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가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고품질 인쇄가 가능한 프린터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몰두하였는데 이런 노력은 1985년 앨더스사(Aldus corp.)에서 등장한 페이지메이커(PageMaker)로 빛을 보게 되었다. 페이지메이커는 전자출판 혁명을 불러일으키며 추락하던 매킨토시의 컬러 소프트웨어가 된다. 사람들은 페이지메이커라는 소프트웨어를 이용하기 위해서 매킨토시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 후 어도비에서 포토샵(photoshop)이라는 이미지 처리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면서 매킨토시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에게도 사랑받는다. 애플2가 가정과 교육용 시장을 창조하였고, IBM PC가 기업용 시장에 안착했듯이 매킨토시는 프리랜서와 전문가들을 타깃으로 한 시장에서 강력한 포지션을 구축하게 되었다. 


존 스컬리는 이때 마진율 55% 정책을 고수하며 회사의 수익을 극대화한다. 당시만 해도 매킨토시를 대체할 컴퓨터는 없었고, 매킨토시 사용자층은 전문가들이었기 때문에 존 스컬리의 선택은 옳은 듯 했다. 1985년 25만 대 정도 판매되던 매킨토시는 1989년에는 300만 대 이상이 판매되었다. 어느덧 애플은 세계 1위의 컴퓨터 제조업체로 우뚝 선다. 하지만 90년대로 들어서자 문제점들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 시작은 존 스컬리의 판단착오 때문이었다. 


매킨토시의 힘은 바로 독창적인 제품이라는 것인데, 마이크로소프트가 매킨토시를 베껴서 윈도우를 내놓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스티브 잡스의 요청으로 매킨토시에서 구동되는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었다. 처음 스티브 잡스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찾아갔을 때만 해도 빌 게이츠는 매킨토시에 부정적이었다. 이에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방문하도록 요청했고, 직접 매킨토시 시제품을 보고는 완전히 반해버린다. 빌 게이츠는 스티브 잡스에게 현재 엑셀로 이름이 바뀐 멀티플랜과 워드를 매킨토시용으로 개발해 주겠노라고 말한다. 제휴관계를 맺은 스티브 잡스는 마이크로소프트에 개발용으로 매킨토시 시제품을 보내준다. 빌 게이츠는 매킨토시 시제품을 ‘SAND(Steve's Amazing New Device)’라고 부를 정도로 사랑했다. 매킨토시와 같은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야말로 미래 기술이라고 확신한 빌 게이츠는 매킨토시 운영체제를 참고해서 윈도우를 개발한다. 1985년 11월 20일 윈도우가 세상에 공개되자 존 스컬리는 이에 분노했다.


법적 소송까지 고려했던 존 스컬리는 이틀 후 라스베이거스에서 빌 게이츠를 만나서는 애플 역사상 최악으로 기록되는 계약을 하고 만다. 빌 게이츠는 윈도우 등장을 1년 정도 연기하는 조건으로 매킨토시에 사용된 애플의 고유 인터페이스를 마이크로소프트가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달라고 했다. 존 스컬리는 엑셀이 매킨토시 독점으로 1년간 묶여 있게 된다는 사실에 너무나 기쁜 나머지 맥 OS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라이선스하는 계약을 했다. 스티브 잡스라면 자신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맥 OS를 그렇게 쉽게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에 대해 무지했던 존 스컬리는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 계약을 맺은 것인지도 모른 채 빌 게이츠가 원하는 대로 맥 OS의 인터페이스를 선물로 바친다. 


윈도우 2.0이 나오자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를 고소하지만 1985년 맺은 계약 때문에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판결을 받게 된다.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더 이상 겁날 것이 없었다. 1990년에 등장한 윈도우 3.0은 기존의 형편없던 윈도우가 아니었다. 윈도우 3.0은 1년 동안 무려 4백만 개가 판매되는 돌풍을 일으킨다. 이전만 해도 쓸 만한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는 맥 OS밖에 없었지만 윈도우 3.0 이후 비로소 경쟁자가 생긴 것이다. 기업의 경우 누군가 뒤에서 추격할 때는 남보다 더 뛰어난 제품을 만들면 되지만 안타깝게도 존 스컬리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스티브 잡스가 뿌려 놓은 축복에 도취된 그는 미래 준비에 소홀했다. 


이것이 바로 스티브 잡스와 존 스컬리의 결정적인 차이다.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파는 능력은 있었지만 무엇인가를 새롭게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존 스컬리는 기술 개발을 잘 몰랐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었는데 오히려 이러한 자율성이 독이 되어 존 스컬리에게 돌아갔다. 매년 제품 개발에 5억 달러씩이나 투입됐지만 비용과 인력에 비해서 나오는 결과물은 형편없었다. 존 스컬리는 한때 ‘Aquarius’라는 CPU 개발에 거액을 투입하였다. 개발을 위해 1,500만 달러짜리 슈퍼컴퓨터까지 구입했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이 프로젝트는 취소되었다. 


존 스컬리는 서서히 회사에서의 통제력을 잃어갔다. 장 루이 가세(Jean Louis Gassée)는 스티브 잡스의 반란음모를 알려준 인물로 그 후 존 스컬리의 2인자가 되었지만, 몇 가지 치명적인 실수로 존 스컬리를 곤경에 처하게 만든다. 


우선 애플 매킨토시 성공에 절대적인 견인차 역할을 했던 어도비(adobe)와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스티브 잡스는 모니터 화면상의 그림과 글씨들을 프린터를 통해서 종이에 인쇄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마침 어도비는 최적의 상태로 쉽게 인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포스트스크립트’라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스티브 잡스는 이를 라이선스 받아 그동안의 골칫거리를 해결한다. 어도비 기술을 프린터에 적용하여 탄생한 것이 레이저 라이터였고, 이러한 솔루션 덕분에 애플의 매킨토시는 출판혁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단순히 기술만 사온 것이 아니라 250만 달러에 어도비의 지분 15%를 구입함으로써 어도비를 매킨토시의 강력한 후원자로 만들어 놓았다. 


장 루이 가세는 포스트스크립트 라이선스로 나가는 비용이 너무나 아까웠다. 장 루이 가세의 해결책은 어이없게도 당시 윈도우 문제로 재판 중이었던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협력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도움을 받아서 포스트스크립트를 대체할 트루타입 기술을 라이선스 받기로 한다. 이 사건으로 어도비는 애플에 분개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어도비의 주식이 애플의 발표로 50%나 떨어졌기 때문이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어도비의 주식이 떨어진 상황에서 애플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어도비의 지분까지 몽땅 팔아버렸다는 것이다. 


애플에게 어도비는 단순히 하나의 소프트웨어 업체가 아니다. 어도비는 매킨토시 판매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여러 킬러 소프트웨어의 제작자인 동시에 애플의 절대적인 우군으로서 형제와 같은 회사였는데, 장 루이 가세는 그런 회사의 등 뒤에서 배신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나마 마이크로소프트와 제휴한 트루타입 기술이 훌륭했다면 다행이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어도비의 포스트스크립트 기술과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트루타입을 사용한 프린터의 인쇄품질은 형편없었기 때문에 애플은 이를 저가형 프린터에서나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런 엄청난 사건이 CEO인 존 스컬리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됐다는 것이다. 


기술에 대한 무지함과 조직 관리에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던 존 스컬리의 무능력함은 빌 게이츠가 애플을 몰락시키는 데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하였다.


<"애플 처럼 창조한다는 것"  매주 연재 됩니다. 다음에는 매킨토시 개발과 존 스컬리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은 저의 페이스북 팬페이지에 접속하셔서 좋아요 버튼좀 눌러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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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처럼 창조한다는 것 (4)





애플 I 컴퓨터는 최종적으로는 150여대가 판매되었다. 사실 지금의 애플을 생각하면 정말 초라한 출발이었다. 판매량은 초라했지만 두명의 창업자는 세상의 변화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자부심을 가졌고 이들은 너무나 즐거웠다. 스티브 잡스는 유럽에 까지 애플 I 컴퓨터 샘플을 보내면서 판매에 의욕적이었다. 그런데 스티브잡스와 워즈니악의 첫번째 상품인 애플1 컴퓨터는 엄밀한 의미에서 완제품은 아니었다. 애플1은 케이스도 없는 기판의 형태로 팔았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1을 구입한 사람은 따로 모니터, 변압기, 케이스, 키보드등을 추가해야 비로서 전원을 넣고 컴퓨터를 작동할 수 있었다. 그래서 컴퓨터 애호가들이 아닌 일반사람들은 아예 애플1 컴퓨터를 구입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기 때문에 판매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마니아가 아니라 일반 사람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를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꿈꾸는 컴퓨터를 만들고 이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게 된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다녔던 게임회사인 아타리를 찾아가서 투자를 부탁한다. 하지만 아타리의 창업자인 놀란 부쉬넬은 게임이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벌이는 바람에 스티브 잡스에게 돈을 투자 할 수 없었다. 스티브 잡스는 홍보 역시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당시 인텔광고로 유명한 홍보 전문가인 레지스 맥키너(Regis McKenna)를 만나려 했다. 인텔에 전화를 해서 레지스 메키너의 회사 연락처는 알아냈지만 문제는 실리콘 밸리의 유명인사인 레지스 메키너를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고객 담당자인 프랭크 버지는 레지스 메키너와 애플은 맞지 않는다면서 함께 일하자는 스티브 잡스의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포기를 모르는 남자였다.


 그는 회사의 고객 담당자였던 프랭크 버지에게 끈질기게 전화를 해서 애플 컴퓨터를 직접 보고 이야기하자고 말한다. 결국 프랭크 버지는 애플 컴퓨터가 있던 스티브 잡스의 차고를 방문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프랭크 버지를 열심히 설득하지만 함께 일 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듣는다. 그렇다고 역시 스티브 잡스가 단번에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번에는 레지스 메키너의 비서에게 전화를 해서 레지스 메키너를 만나게 해달라고 통사정 했다. 처음 비서는 시 큰둥 했지만 결국 계속되는 스티브 잡스의 전화에 백기를 들고 레지스 맥키너를 연결시켜주고 만다. 


처음에는 레지스 메키너 역시 스티브 잡스를 마땅치 않게 여겼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조금의 위축됨 없이 레지스 메키너에게 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레지스 메키너는 개인용 컴퓨터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게 될 것인지를 완벽하게 설명하였다. 스티브 잡스가 제시하는 미래에 완전히 매혹된 레지스 메키너는 애플의 편이 되었고 오히려 돈을 투자 받을 수 있도록 돈 밸런타인을 소개까지 시켜준다. 세쿼이아 캐피탈(Sequoia Capital)의 창업자인 돈 밸런타인(Don Valentine)은 게임회사 아타리에 자본을 투자해서 큰 수익을 얻은 덕분에 실리콘 밸리 최고의 벤처 투자자로 활동 중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이번에도 역시 무작정 돈 밸런타인을 찾아가서 투자를 부탁했다. 돈 밸런타인은 가진 것 하나 없는 애송이가 찾아와서 다짜고짜 투자를 해달라고 하자 너무나 황당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를 소개해준 레지스 매키너에게 왜 그런 이단아를 내게 보냈냐며 화를 낼정도였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사전에는 포기가 없었다. 그는 역시 타고난 황금 배짱의 소유자답게 이번에도 역시 돈 밸런타인을 지겹도록 쫓아 다녔다. 결국 스티브 잡스의 끈질김에 굴복한 돈 밸런타인은 애플컴퓨터가 있는 차고를 방문하지만 온갖 시비를 걸면서 투자제안을 거절한다. 그러자 스티브 잡스는 투자를 하기 싫으면 다른 사람이라도 소개 시켜달라면서 전화공세를 펼치자 결국 돈 밸런타인은 할수 없이 자신의 인맥을 최대한 활용하여 마이크 마쿨라를 스티브 잡스에게 보낸다. 1942년생인 마이크 마쿨라는 페어차일드와 인텔에서 근무했던 마케팅 전문가였다.


 그는 인텔이 주식 시장에 상장되면 주식가격이 폭등하리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배당된 스톡옵션들을 대거 사들였는데 실제로 인텔이 주식을 공개한 후 큰 돈을 벌게 된다. 3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벌써 백만장자가 된 마이크 마쿨라는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수영장이 달린 대저택에서 편안히 은퇴생활을 즐기는 중이었다. 세계 최초로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개발한 인텔 출신답게 마이크 마쿨라는 개인용 컴퓨터의 가능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의 사업계획을 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데 비해서 마이크 마쿨라는 돈 밸런타인의 소개를 받고는 직접 스티브 잡스의 집을 찾아가서 애플 컴퓨터를 지켜봤다. 


마이크 마쿨라는 애플2 컴퓨터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티브 잡스가 제시하는 비전과 열정에 반한 마이크 마쿨라는 애플이 5년안에 <포춘>에서 선정하는 500대 기업에 들어갈 정도로 놀라운 성공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결국 그는 회사 지분의 3분 1을 갖는 조건으로 9만 1천달러를 투자했고 은행에서 25만달러를 융자 받을 때 보증까지 섰다. 마이크 마쿨라가 합류함으로써 애플은 이제 정식으로 주식회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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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0살인가 11살 때쯤 에임스에 있는 나사 연구소에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보았어요. 그것은 진짜 컴퓨터는 아니었고, 컴퓨터와 선으로 연결된 단말기였죠. 어쨌든 나는 눈을 뗄 수 없었죠. 내가 처음으로 데스크톱 컴퓨터를 본 것은 9100A라 불리는 휴렛 팩커드의 제품입니다. ABL과 베이직이 돌아가는 세계 최초의 데스크톱 컴퓨터였어요.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스티브 잡스, 스미스소니언 협회 인터뷰 중에서



스티브 잡스는 어린 시절부터 각종 기기들에 푹 빠져 살았다. 한때 기계공으로 일했던 아버지는 차고에서 여러 기기를 수리하거나 제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주위를 맴돌며 기계와 친해졌다. 스티브 잡스가 다섯 살이 되자 아버지는 그를 위해 작업대를 직접 만들어 주면서 망치 같은 공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덕분에 각종 기계에 친숙해진 그는 휴렛 팩커드의 엔지니어인 래리 랭을 만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어린 시절 스티브 잡스가 살던 동네는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본거지였으며, 마침 HP 같은 벤처기업들이 성공 신화를 쓰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과수원 촌 동네였던 지역에 엔지니어들이 몰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동네는 엔지니어들의 천국으로 변해갔다. 이웃이었던 래리 랭은 호기심 많은 아이였던 스티브 잡스에게 부품을 이용해서 각종 전자장치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친절한 래리 랭의 가르침을 통해 전자제품의 내부 작동원리를 이해하게 되었고, 실제로 몇 가지 전자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의 식견은 아버지도 깜짝 놀랄 정도로 발전했다. 전자제품에 대한 지식을 익히면 익힐수록 그는 성취감과 함께 강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전자기기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그에게 일종의 도피처이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는 학교에서 외톨이였지만 전자기기에 대한 열정 덕분에 쿠퍼티노 중학교에서 빌 페르난데스(Bill Fernandez)라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둘은 동급생들과는 어울리지 못했지만 동네의 엔지니어들과 친교를 맺으면서 전자기기에 더욱 탐닉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학교생활에 관심은 없었지만 전자기기에 대한 열망으로 ‘와이어 헤드(Wirehead)’라고 불리는 전자공학 관련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주말이 되면 각종 전자부품을 다루는 가게에서 점원으로 아르바이트 일을 했고, 전자부품에 대한 열정은 때론 뻔뻔한 거짓말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새로운 전자기기를 만들던 그는 부족한 부품을 얻기 위해 회사에 전화를 해서는 새로운 전자장치에 필요한 부품을 구한다는 거짓말로 샘플을 무료로 받아내었던 것이다.


전자기기에 대한 관심은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을 만나면서 고스란히 컴퓨터로 옮겨졌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1950년 프란시스 제이콥 워즈니악(Fransis Jacob Wozniak)과 어머니 마가렛 루이스 워즈니악(Margaret Louise Wozniak) 사이에서 태어난다. 프란시스 제이콥 워즈니악은 록히드(Lockheed)에서 일하는 유능한 엔지니어였다. 성공한 아버지의 자녀들이 그렇듯이 워즈니악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엔지니어가 되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는 워즈니악에게 과학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었고, 덕분에 또래 아이들보다 월등한 지식을 자랑했다. 워즈니악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과학경진대회의 상들을 휩쓸었으며 6학년 때는 고등학생도 만들기 어려운 과학 과제물을 내놓아서 선생님을 놀라게 했다. 학교에서 과학과 수학의 천재로 명성이 드높았던 워즈니악은 아버지가 보는 공학 저널에서 세계 최초의 컴퓨터인 에니악(ENIAC) 관련 기사를 읽고는 그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이때부터 컴퓨터는 그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워즈니악은 이웃집에 살던 빌 페르난데스와 의기투합하여 직접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한다. 어느 날 스티브 잡스가 친구인 빌의 집에 방문했고, 마침 워즈니악이 만들고 있는 컴퓨터를 목격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의 컴퓨터와 전문 지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워즈니악 역시 자신의 말을 바로 이해하는 스티브 잡스가 마음에 들었다. 둘은 전자기기에 대한 열정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로 공통점이 많았다. 둘 다 장난을 좋아하고 특히 비틀즈와 밥 딜런의 음악을 사랑했는데, 함께 만나면 새로운 장난꺼리나 음악을 이야기하면서 더욱 친해졌다. 


벤처 자본가들은 두 명의 친구가 함께 공동으로 창업한 회사를 선호한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는 두 명의 파트너가 있다는 것은 사업을 할 때도 더 현실적이고, 추진력 있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많은 벤처기업들이 두 명의 창업자로부터 시작되었다. 세계 1위의 개인용 컴퓨터 제조업체인 HP는 벤처기업의 원조로 인정받는데, 이 회사는 빌 휴렛(Bill Hewlett)과 데이비드 패커드(David Packard) 두 명이서 차고에서 시작한 회사다. 인텔 역시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와 고든 무어(Gordon Moore) 둘이서 시작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이 창업했다. 인터넷 시대에도 이런 공식은 계속되고 있다. 제리 양(Jerry Yang)과 데이비드 파일로(David Filo)가 야후를 함께 만들었으며, 대학원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을 공동으로 설립했다. 이러한 전형적인 벤처 스토리는 애플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애플의 창업 역시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이 파트너 관계를 맺으면서 시작된다. 워즈니악은 기술에 능했고, 스티브 잡스는 기획이 뛰어났는데 둘의 능력이 결합되면서 환상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둘은 같은 아웃사이더이고, 장난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이것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반대되는 인물이다. 스티브 잡스가 한때 마리화나까지 필 정도로 뼛속까지 히피였다면, 워즈니악은 30살까지 술 한 모금 마시지 않았으며,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은 대단히 인기 있는 남자라고 생각할 정도로 히피와는 거리가 먼 순진한 사람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했지만, 워즈니악은 모임에 나가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될 정도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스티브 잡스 역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대외관계가 원만치 않았으나, 누구에게든 위축되는 법이 없었고 뻔뻔스러울 정도의 배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부품을 구입하기 위해 둘이 상점에 들어가면 워즈니악은 필요한 부품을 바라볼 뿐 점원과의 가격 협상은 노련한 스티브 잡스의 몫이었다. 워즈니악이 엔지니어였다면, 스티브 잡스는 기획자였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자신의 기술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면 이를 돈이 되는 사업으로 만드는 것이 스티브 잡스의 역할이었다. 워즈니악이 공짜로 전화를 걸게 해주는 블루박스를 만들었고, 이를 상품화한 것은 스티브 잡스였다.


워즈니악이 기술에 의존했다면 스티브 잡스는 자유로운 발상과 창조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워즈니악이 현실에 만족하며 살았다면 스티브 잡스는 항상 배고픈 강한 야망의 소유자였다. 이러한 둘의 성향은 애플 컴퓨터의 개발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애플 컴퓨터는 워즈니악이 우연히 파퓰러 일렉트로닉스(Popular Electronics)라는 잡지를 보면서 시작됐다. 1975년 1월 파퓰러 일렉트로닉스는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컴퓨터 알테어 8800(ALTAIR 8800)의 탄생을 대서특필하였다. 이 기사는 당시 컴퓨터 애호가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으며, 미국 전역에서 알테어 8800을 구입하고자 제작사인 MITS에 서로 수표를 보낼 정도로 난리였다. 알테어 8800의 인기는 제작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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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성공신화의 비밀(1) 




“생산적인 나르시스트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들은 아버지가 부재하거나 약한 가정에서 자라났다는 거에요. 오바마, 클린터, 레이건, 닉스이 바로 이런 경우죠.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사람들의 시선 사이에서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만의 독창적인 관점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따르도록 하는 능력을 가지게 됐죠.”


-리더쉽 연구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마코비(Michael Maccoby) 타임즈 온라인 2009년 8월 16일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단순한 창업자가 아니다. 스티브 잡스가 곧 애플이고 애플이 곧 스티브 잡스다.  애플에서 근무했던 한 직원에 의하면 애플은 만개의 생명을 가진 스티브 잡스라고 표현할 정도다. 스티브 잡스를 빼놓고서는 결코 애플을 논 할 수 없다. 애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스티브 잡스를 이해하여야 한다. 애플의 모습 곳곳에서 스티브 잡스의 흔적이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를 아는 것은 애플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 내면의 영혼까지 이해하는 길을 제시해준다. 이 책은 애플에 관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창업이야기가 아니라 스티브 잡스로 부터 시작한다. 그의 삶 하나 하나를 보면 결국 애플은 스티브 잡스의 확장판이라는 것을 알게 될것이며 애플과 스티브 잡스는 결코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선 그의 가정 환경 이야기를 해보자. 그의 가정 환경을 이해하면 왜 애플이 혁신을 넘어서 시대를 리드하는 혁명적인 회사가 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1955년 2월 24일 대학원생으로 동거를 하던 압둘파타 잔달리(Abdulfattah Jandali)와 조앤 쉬블(Joanne Schieble)사이에서 태어난다. 미혼모였던 그의 어머니는 스티브 잡스를 양육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대학교육을 시켜준다는 조건으로 폴(Paul)과 클라라(Clara) 잡스 부부에게 입양시켰다. 폴 잡스는 고등학교를 중퇴했지만 해군에 입대해서 정비병이 되었으며 제대 후에는 기계공으로 일하였다. 


클라라와 결혼 한 그는 10년간 아이가 없자 입양을 결정했다. 스티브 잡스를 첫번째 자식으로 맞이한 그들은 모든 사랑을 담아 성심 성의껏 스티브 잡스를 양육했다. 어른이 되어서 누군가가 스티브 잡스에게 그의 부모를 양부모라고 칭하면 바로 친부모로 수정을 요구할 정도로 부모와의 관계는 좋았다. 말썽꾸러기였던 스티브 잡스는 이런 저런 사고를 일으켰지만 부모들은 스티브 잡스에게 뭔가를 강요하기보다는 자유롭게 스티브 잡스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도록 믿고 따라주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사춘기 시절 자신이 입양되었음을 알게 되었으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느꼈다. 그의 이런 감정은 그대로 세상에 대한 반항 정신으로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기성세대의 권위로 가득 채워진 학교에 적응하는 것을 힘들어 했으며 60년대 생겨난 자유분방한 생활과 탈 사회적인 정신으로 대표되는 히피문화에 흠뻑 빠져 들었다. 


스티브 잡스는 기성세대의 관습을 파괴하는 데 게의치 않았다. 이런 대표적인 예로는 블루 박스(Blue Box)가 있다. 블루 박스는 미국의 장거린 통신망을 교란하여 공짜로 전화를 걸게 해주는 불법장치였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거리낌 없이 이런 해킹 도구를 만들어서는 사람들에게 150달러에 팔기까지 하였다. 그는 블루박스로 꽤 짭짤한 수익을 얻은 동시에 당시 히피들 세계에게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비록 불법이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기간 시설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에 짜릿함을 느꼈다.


어린 시절부터 골치 아픈 사고 뭉치였던 스티브 잡스였지만 양 부모님들은 항상 애정을 가지고 그의 의견을 따라주었다. 스티브 잡스는 마운트 뷰의 크리튼던 중학교를 다녔었는데 학교가 마음에 안들었던 그는 부모님에게 전학을 시켜주지 않으면 학교를 다니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그의 부모님들은 스티브 잡스의 고집을 꺽을 수 없었고 가족 모두가 로스 앨토스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 대학교(Reed College) 물리학과에 진학하는 것 역시 순전히 스티브 잡스의 의지였다. 학비가 비쌌을뿐 아니라 집 하고도 너무 멀었기 때문에 처음에 양 부모들은  반대 했으나 결국은 스티브 잡스의 생각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평생 모은 돈을 대학교 등록금으로 모두 썼다는 사실을 알게된 스티브 잡스는 단 한학기만에 대학을 중퇴하고 만다. 하지만 그 후에도 스티브 잡스는 철저히 자신이 의지에 따라서 하고 싶은 것을 다하면서 자유분방하게 살았다. 그는 중퇴한 이후 집에 돌아와서 당시 세계최고의 게임회사였던 아타리(Atari)사에 취직하더니 돌연 선불교에 입문을 하면서 오리건주의 사과 과수원에서 공동체생활을 하였고 또 어느 날 갑자기 친구와 함께 훌쩍 인도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의 부모님들은 대학을 나오지 않은 노동자 계층이었고 자식들에게 자신과 같은 인생을 살도록 강요하지는 않았다. 이는 스티브 잡스에게 필생의 라이벌인 빌 게이츠의 가정환경과는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빌 게이츠는 지역의 유명 변호사인 빌 게이츠 2세와 사교계의 유명인사였던 메리 맥스웰 사이에서 태어난다. 덕분에 빌게이츠는 어린 시절부터 유복한 생활을 하였고 하버드 대학교보다 학비가 3배나 더 비싼 명문 사립 학교인 레이크 사이드를 다녔다.


 그런데 부모님들이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면 자녀들은 부모님의 길을 따라가려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빌 게이츠는 아버지를 따라서 변호사가 되려고 했지만 스티브 잡스는 부모님의 의지가 아니라  철저히 자신의 생각에 따라서 인생을 개척하려 했다. 그들의 이런 성향은 창의성과 사업방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빌 게이츠는 성공한 부모님의 모델을 그대로 따라가듯이 사업에 있어서도 성공한 기업의 모델들을 따라갔지만 기존 틀에 얽매이기를 싫어하는 스티브 잡스는 기존의 성공법칙을 완전히 파괴하는 혁명적인 제품으로 세상을 바꾸는 존재가 되었다.


<애플 성공신화의 비밀은 매주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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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채용을 한 이후에는 직원들이 자신과 동등한 재능을 가진 인재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고 느끼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동시에 자신의 일이 다른 사람들 것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기분이 들게 해야 합니다. 자신의 일이 굉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될 것이며, 강력하고 뚜렷한 비전의 일부라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채용은 대체로 당신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합니다. 따라서 나는 상호 협력적 채용과 A급 인재가 최선의 방식으로 뽑힐 수 있는 문화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예닐곱 개의 부서의 12명 이상의 사람들과 인터뷰를 해야 합니다. 이 방법은 당신의 많은 A급 인재가 회사 전체에 널리 알려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현재 직원들이 이미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하는 기업 문화가 존재한다면 후보자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In the Company of Giants



2. 나의 임무는 직원들을 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더 잘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2008년 포춘



3. 만약에 여러분이 훌륭한 능력을 가진 인재를 고용하고 계속 일하게 하려면 그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자주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특효약을 쓰는 정도여야 합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마저도 해서는 안 됩니다. 애플에서는 결국 아이디어입니다. 우리는 아이디어에 대해서 끊임없이 논쟁합니다.   


2007년 D5 컨퍼런스에서 



4. 나의 임무는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것이며, 바라건대 아이디어의 한 부분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애플과 픽사가 잘 돌아가도록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나를 위해 일해! 그러니까 이것을 해!”라고 명령하는 계층적 구조가 아닙니다. 이런 행동은 너무 멀리 가버린 것입니다. 정말로 훌륭한 인재가 당신을 위해 일할 때, 당신이 일일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지시한다면 그들은 바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할 것이라고 말하게 놔두는 누군가를 위해 일할 겁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여러분에게 봉급을 주는 까닭이 바로 여러분들 스스로가 무엇을 하겠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1999년 타임지




5. 저는 상위 100명의 인재들과 함께 일합니다. 그것이 제가 하는 일이지요. 그러나 100명의 인재는 회사의 부사장급 이상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100명 중 몇몇은 매우 개별적인 공헌자입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제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그것을 주변으로 퍼뜨리는 일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보고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하며, 함께 일하고 논쟁을 벌입니다. 그리고 상위 100명의 인재들끼리 서로 교류하게 만들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측면에서 아이디어를 탐구하도록 합니다.


2008년 포춘




6. 애플에는 정말로 유능한 인재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나는 팀 쿡을 COO로 임명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맥 개발부를 맡겼습니다. 그는 아주 훌륭하게 일을 해내더군요. 어떤 사람들은 “오 신이시여! 만약에 잡스가 버스에 깔리는 사고라도 당한다면 애플은 곤란에 처하게 될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게 즐거운 일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애플에는 정말로 유능한 인재들이 많습니다. 이사회는 저의 후임 CEO를 탁월하게 선택해 줄 겁니다. 그러니 제 일은 전체 임원진들을 후계자가 되기에 얼마든지 충분한 사람으로 성장시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노력하는 일입니다. 


포춘 2008년



7. 제 자신을 돌아보며 “내가 가장 잘하면서도 즐기는 것이 무엇이지?”라고 묻는다면 새롭고 혁신적인 제품 같은 것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제가 즐기는 것입니다. 저는 재능 있는 인재로 구성된 소규모 팀과 일하는 것을 최고로 잘하기도 하지만 즐기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애플 II 와 매킨토시를 만든 겁니다.


뉴스위크 1985년





8. 오래전 누군가 제게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당신의 전략과 인재 그리고 제품을 관리하면 나머지는 다 따라올 것이다.” 

CBS 60분  



9. 뛰어난 제품 개발 인재들이 매우 훌륭한 제품을 개발하게 되면 그 회사는 독점적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된 후에는 제품 개발 인재들이 더 이상 회사를 움직이지 못합니다. 마케팅 담당자 혹은 라틴 아메리카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그런 사람들이 회사를 운영하게 됩니다. 그 사업 분야에서 유일한 경쟁자가 자기 자신인 상황에서 무엇 때문에 제품 개발에 집중하겠습니까?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승진을 하게 되면 결국 누가 쇼의 주인공이 되겠습니까? 바로 영업자입니다. IBM을 이끌었던 존 에이커스가 좋은 예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이유로 독점은 깨집니다. 그때는 이미 제품을 개발하는 인재들은 회사를 떠났거나 이미 주도권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회사는 격동의 시기를 경험하게 되고 결국 살아남거나 그렇지 못하게 됩니다.


BusinessWeek, Oct. 12 2004 


10. 맨해튼에서 택시를 탈 때, 최악의 택시 기사와 최고의 택시 기사 사이에 2배 정도 차이가 날겁니다. 최고의 택시기사는 목적지까지 15분이 걸린다면 최악의 택시기사는 30분 정도 필요할 겁니다. 최고의 요리사와 최악의 요리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세 배정도의 실력차가 있을 겁니다. 그런 식으로 뽑아보십시오. 하지만 우리의 사업 분야에서 최고의 인재와 최악의 인재 사이에는 백 배 혹은 그 이상의 차이가 납니다. 좋은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위대한 소프트웨어 개발자 사이에도 50배 혹은 25배의 거대하고 역동적인 분포가 존재합니다. 


Smithsonian Institution Oral and Video Histories: Steve Jobs, 20 April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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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는 매우 짧지만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만드는 말들을 남겼다. 매우 짧은 문장들이지만 스티브 잡스의 전매특허처럼 되어버린 경구들이 있다. 길지 않고 오히려 짦기 때문에 오히려 스티브 잡스의 이미지를 더욱 강렬하게 만들어준, 간결하고 인상적인 문구들을 몇 개 소개하고자 한다.

 

1. insanely great! 미치도록 훌륭한!

 

<해설>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를 설명할 때 자주 쓰는 단어다. 매킨토시를 대중에게 선보일 때 매킨토시 화면에 처음으로 나타난 글씨가 바로 “Macintosh insanely great!”였다. 

 

2. Hello  안녕하세요!

 

<해설> 매킨토시가 음성으로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 첫마디가 Hello였다. 이후 애플의 신제품이 나오면 Hello가 슬로건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아이맥을 소개할 때는 “hello again”  아이폰에서는 “Say hello to iPhone”이 이용되었다.

 

3. one more thing 한 가지 더 

 

<해설> 1998년 맥 월드 행사에서 발표의 마지막에 “One More thing”으로 2년간 적자에 시달리던 애플이 흑자가 되었음을 알렸다. 2000년 맥 월드에서 역시 “One More thing”으로 자신이 임시 CEO에서 정식 CEO가 되었음을 알렸다. 이후에 페이스타임, 2세대형 애플 TV, 개선된 맥북 에어 등 애플의 신제품을 “One More thing”으로 소개하면서 스티브 잡스의 상징처럼 된 말이다.

 

4. It’s just works 그냥 작동합니다.

 

<주석> 애 제품을 설명하면서 간단한 사용법을 강조하기 위해서 프레젠테이션 도중에 스티브 잡스가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5.  It's Not Done Until It Ships.  출시되기 전까지 완성되지 않았다.


6. We're here to put a dent in the universe. 우리는 우주에 파장을 불러일으키기이 위해 여기에 있다.


 

7. Don't Compromise!" 타협하지 마라

 

8.  The Journey Is The Reward.  긴 여정이 곧 보상이다.

 

9. "Real Artists Ship" 진정한 예술가 정신?

 

10. We made the buttons on the screen look so good you'll want to lick them.

우리는 아이콘 버튼을 매우 아름답게 만들었기 때문에 여러분은 그것을 보고 핥고 싶을 겁니다.

On Mac OS X's Aqua user interface, as quoted in Fortune magazine (4 January 2000)


덧말: 과거 다음블로거 뉴스의 책임자였던 고준성님이 새롭게 런칭하신 텐핑(http://tenping.kr/) 덕분에 트래픽 폭탄을 순식간에 맞고 있습니다. 그런데 짧아서 뭔가 아쉬움이 있으시죠? 그래서 몇가지 추가합니다. ^^;;


Click, Boom, Amazing!


사연중에 스티브 잡스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스티브 잡스가 사연을 위해 클릭을 하고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찰나에 " Boom"을 외치고, 화면이 전환되고 나면 "Amazing" 이나 "Pretty Cool"또는 "awesome"등의 감탄사를 추간한다. 일종의 추임새라고 생각하면 된다.


1000 Songs In Your Pocket


아이팟이 처음 등장할때 캐치프레이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을 사람들에게 처음 공개할때 잣니의 손에 아이팟을 올려놓고 주머니 속에 아이팟을 넣으며 천곡의 노래가 들어감을 강조하였다.


Today Apple is going to reinvent the phone


2007년 처음으로 아이폰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아이폰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을 하기전에 하는 말이다. 재발명이라는 말은 스티브 잡스가 좋아하는 말중에 하나다. 스티브 잡스가 만든 제품을 보면 세상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제품에 혁신을 추구해서 역사에 남는 획기적인 제품을 만들어 왔음을 알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재발명이라는 단어는 그의 혁신을 잘 설명해주는 말이라고 할수 있다.


Our most advanced technology in a magical and revolutionary device at an unbelievable price


아이패드를 소개하면서 스티브 잡스가 한 이야기이자 아이패드의 슬로건이 되었다. 스티브 잡스 특유의 화려한 표현법이 그대로 녹아 있는 말이다. 처음 아이패드가 나오자 저 말에 반감을 가지느 사람이 꽤 있었다. 하지만 아이패드는 그 누가 상상했던 것보다 크게 히트했고 아이패드2를 바ㄹ표하는 자라에서 스티브 잡스는 사람들이 마법적이라는 표현을 비웃었지만 마법적이라는 말이 옳았다며 득의 양양하게 말한다. 가격 역시 경쟁자들의 제품 가격을 보라면 역시 자신만만했다.



 더많은 스티브삽스의 명언을 보고 싶은가요? 사실 주제별로 스티브 잡스의 명언을 보실수 있습니다. 아래의 링크를 확인하세요. ^^;;


디자인에 대한 스티브 잡스 명언 베스트 10

스티브잡스 성공에는 맹모삼천지교의 교훈이 담겨져있다.

제품에 대한 스티브 잡스 명언 베스트 10 (8)

유머가 느껴지는 스티브 잡스 명언 베스트 10 (10)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스티브 잡스 명언 베스트 10 (5)

혁신에 대한 스티브 잡스 명언 베스트 10 (7)

실패에 대한 스티브 잡스 명언 베스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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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 기능을 다하면서 삶 속에 녹아 든 제품을 좋아합니다. 리바이스처럼 말이죠. 리바이스 청바지는 삶 속에 스며들어서 우리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의식을 하고 그것을 바라보게 되면 디자인에 감탄하게 될 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느끼게 되죠. 품질은 사람들이 가진 감정을 통해서 전해집니다. 왜 그런지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만 제품의 디자인에 들어간 사랑과 세심한 배려를 알 수는 있습니다. 

(뉴스위크 2006년)




2)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고의 제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목수가 아름다운 서랍장을 만들 때 ‘아무도 보지 못할 테니 벽 쪽을 향하는 서랍장 뒷면은 합판을 사용하자!’라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제대로 된 서랍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뒷면도 아름다운 나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당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발을 뻗고 자기 위해서서, 우리는 미학적으로나 품질적으로 제품 전체의 완벽성을 끝까지 추구해야 합니다. 플레이보이 1985년






3) 부분의 사람은 디자인을 인테리어 장식, 혹은 소파나 커튼의 천처럼 겉치장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게 있어 디자인의 의미는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멉니다. 디자인은 인간이 만들어낸 창조물의 근본적인 영혼으로서, 제품과 서비스가 겹겹이 쌓이며 사물의 바깥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포춘 2000년





4) 사람들은 디자인을 그냥 겉치장정도로 생각합니다. 디자이너들이 어떤 상자를 전달 받고 “보기 좋게 만들어라”라고 들을 것이라고 알고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것이 디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디자인은 어떻게 보이느냐 혹은 어떻게 느끼느냐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디자인은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관한 문제입니다. 뉴욕타임스 2003년





5) ‘디자인’은 참 재미있는 단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디자인을 단순히 제품의 외형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좀더 깊이 들어가면 사실은 제품이 어떻게 작동하느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맥의 디자인은 단순히 외형만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외형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작동 방식입니다. 정말로 디자인을 잘하고 싶다면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즉 제품의 본질을 완벽하게 통달해야만 하는 것이죠. 겉핥기가 아니라 완벽하게 제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열정적으로 헌신을 다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일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습니다. 1996년 와이어드






6) 최신형 아이맥을 개발하며 저는 확고하게 쿨링팬을 없애자고 했습니다. 컴퓨터가 계속해서 웅웅대지 않는다면 일하기가 훨씬 더 쾌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쿨링팬을 없애는 것은 그저 ‘스티브 잡스의 결정’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전력을 관리하는 더 나은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기계의 열전도를 더 높이기 위해 막대한 기술적인 노력 필요했습니다. 이 노력은 결코 겉치레가 아니었습니다. 개발에 착수한 날부터 제품의 핵심이었습니다. 포춘 2000년





7) 많은 소비자 제품들의 디자인을 보십시오. 외관이 정말 복잡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좀더 포괄적이고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문제를 풀려고 할 때 머릿속에서 처음 나오는 해결책은 복잡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에서 멈춰버리지요. 그러나 양파껍질을 벗기듯이 계속해서 그 문제를 파고들며 함께 살다보면 종종 매우 우아하고 단순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한 시간과 에너지를 쏟지 않습니다. 우리는 고객들이 매우 똑똑하기 때문에 결국 심사숙고 끝에 개발한 제품들을 선택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Newsweek (14 October 2006)





8) 모터쇼에 전시된 콘셉트카를 보면 굉장합니다. 정말 멋지죠. 그런데 4년 뒤에 나오는 양산형 모델은 형편없습니다. 여러분은 아마 이렇게 물을 겁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분명 대단한 차였는데! 거의 완벽했는데! 그렇게 멋진 콘셉트에서 이런 엉터리가 나오다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처음에 디자이너가 정말로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엔지니어에게 가져갑니다. 그럼 엔지니어는 “이런 건 할 수 없어요. 구현이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디자인을 수정하고, 전만 못하게 되죠. 그리고 수정된 디자인을 가지고 제조업체에 갑니다. 거기서는 “이런 건 만들 수가 없어요!” 합니다. 결국 엉망이 되고 마는 거죠. 





9) 약 애플에서 제게 영혼의 동반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바로 조너선 아이브일 것입니다. 아이브와 나는 함께 제품을 구상한 뒤 다른 사람들을 불러서 “이런 건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습니다. 아이브는 제품에 대해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극도의 세심함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애플이 제품회사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는 단순한 디자이너가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아이브와 제가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며 일하는 이유입니다. 아이브는 회사운영에서 저를 제외하고는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도 그에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거나 참견조차 할 수 없지요. 제가 그렇게 만들어 놓았거든요.





10)  모든 구성요소는 그 자체로 본질적이어야 합니다. 타임 2002년

 Each element has to be true to itself.


 신형 아이맥 G4를 만들 때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조너선 아이브를 집으로 불러 부인이 가꾸던 텃밭을 함께 산책했다. 스티브 잡스는 “Each element has to be true to itself”라고 말하면서 정원에 있는 꽃처럼 아이맥에는 불필요한 부분이 하나도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컴퓨터가 해바라기처럼 보여야 한다고 하자 이에 조너선 아이브는 영감을 얻고 해바라기 모양의 아이맥 G4를 완성하게 된다.

 

둘은 회사에서도 하루 한 번씩 꼭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애플에서는 스티브 잡스와 조너선 아이브를 일컫는 자이브(Jive)라는 신조어도 생겨날 정도였다. 뛰어난 디자이너가 있다고 해서 제품의 디자인도 훌륭해지는 것은 아니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안 스티브 잡스가 후원을 해주었기 때문에 조너선 아이브의 디자인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조너선 아이브의 디자인은 번번이 하드웨어 개발팀에 의해서 거부되었지만 그럴 때마다 스티브 잡스는 조너선 아이브의 손을 들어주었다. 엔지니어를 책임졌던 존 루비스타인과 조너선 아이브는 논쟁을 넘어 몸싸움까지 벌일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스티브 잡스가 조너선 아이브의 편을 들어, 존 루비스타인은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보통 회사에서는 디자이너보다 엔지니어의 영향력이 크다. 하드웨어 개발이 끝난 뒤에야, 껍데기를 만든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을 먼저 결정하고 난 뒤, 엔지니어가 이에 맞추어서 제품을 완성하도록 했다.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의 모든 능력과 열정을 쏟아 정해진 디자인 기준을 맞춰내야만 했다. 이와 같은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었던 것은 스티브 잡스가 디자인에 특별한 의지를 가지고 조너선 아이브에게 절대 권력을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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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브 잡스의 제품발표회는 일반인들이 어렵게 느낄 수 있는 최신의 기술을 쉽게 풀어 설명하는 한편 애플의 제품이 최고라는 것을 이해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기술적인 용어를 일반인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는 최고의 방법은 역시 비유이다. 스티브 잡스의 뛰어난 말솜씨에는 바로 적절한 비유법이 한몫하고 하고 있다. 


2007년 맥월드에서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의 CPU를 인텔 프로세서로 교체하는 작업을 이야기하면서 거대한 심장이식 수술이라고 표현하였다. 일반인들은 CPU의 교체가 부품 하나 바뀌는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스티브 잡스는 심장이식수술로 비유함으로써 애플이 그야말로 큰 작업을 진행하고 있음을 대내외에 제대로 알릴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발표할 때 역시 기존의 모바일 인터넷을 베이비 인터넷이라고 말하고 아이폰을 빅 보이 인터넷이라고 표현했다. 베이비 인터넷은 말 그대로 인터넷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기존 모바일기기를 빗대에서 표현한것이고 빅보이 인터넷은 아이폰의 뛰어난 인터넷 기능을 비유한 것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비유법이 뛰어 난 데는 일반사람들이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았던 때에 개인용 컴퓨터를 팔아야 했던 상황도 한몫하고 있는듯하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창업할 때만해도 사람들은 컴퓨터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몰랐던 시기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비유법을 통해서 컴퓨터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광고에 출연해서 컴퓨터가 자전거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했다. 인간이 원래는 가장 효율이 낮게 이동하는 동물이었지만 자전거 덕분에 세상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이동하는 동물이 되었다면서 애플이 만드는 컴퓨터는 인간의 지성과 창조성에 자전거와 같은 존재라고 말하였다. 1985년 플레이 보이 인터뷰를 보면 스티브 잡스의 뛰어난 화술과 함께 훌륭한 비유들을 만날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아과 함께 시작한 혁명이 무엇인지 질문을 듣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우리는 100여 년전 석유혁명의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석유 혁명은 우리에게 자유로운 기계에너지를 선사하였죠. 이것은 우리의 사회의 곳곳을 바꿔버렸어요. 정보혁명은 자유 에너지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지적 에너지 혁명입니다. 우리의 매킨토시 컴퓨터는 100와트짜리 전구보다 전력을 덜 소모합니다. 이것은 당신에게 시간을 절약 시켜줄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에서 20년 또는 50년이 지나면 무엇을 할 수 있게 될까요? 이 혁명은 석유혁명을 압도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맨앞에서 서있습니다. “


스티브 잡스는 자신들이 일으키고 있는 혁명을 석유혁명에 빗대어 설명함으로써 지금 세상에 정말 중요한 변화가 있음을 알릴 수 있었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전화기에 비유함으로써 기존 제품과는 차별화된 컴퓨터가 등장했음을 정말 기가막히게 설명해낸다.


“생산성을 늘리기 위해서 모든 책상위에 IBM PC를 올려놔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그렇게는 안될겁니다. 왜냐하면 명령어들을 일일이 배워야 하거든요. 가장 유명한 워드프로세서인 워드스타의 매뉴얼은 400페이지가 넘습니다. 당신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소설을 읽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미스터리처럼 읽혀 질겁니다. 더 이상 모스부호외우지 않는 것처럼 앞으로 컴퓨터 명령어도 배우지 않게 될 겁니다. 매킨토시가 이와 같습니다. 매킨토시는 컴퓨터 산업의 첫번째 전화기입니다. “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이전의 컴퓨터는 마치 모스부호를 알아야만 통신을 할 수 있던 전신기였다면 매킨토시는 아무런 명령어를 익힐 필요가 없는 전화기로 비유를 함으로써 매킨토시가 얼마나 획기적인 제품임을 강조할 수 있었고 전신기에서 전화기로의 변화만큼 매킨토시 대단한 일을 해내었음을 대내외에 과시할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둘은 각자의 궤도를 가지고 있는 행성으로 자주 교차하는 경우가 많다고 비유를 통해서 멋지게 설명했다. 스티브 잡스는 적절한 비유를 통해 상대가 반박 할 수 없게 만드는 촌철살인의 대가이기도 하다. 2006년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아이포드가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딕 체니도 아이팟을 쓸정도로 대중적인데 어떻게 쿨하다고 할 수 있냐고 질문을 받자 스티브 잡스는 다음처럼 간단한 예를 든다. 


“그것은 마치 모든 사람이 입술을 가졌다고 해서 당신은 애인과 키스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말이 안됩니다. “


Good for the Soul’, Steven Levy, NewsWeek, 2006년 10월 15일


미래 비전을 설명할 때 역시 비유법은 요긴하게 사용된다. D8 컨퍼런스에서 스티브 잡스는 농경국가일 때는 사람들이 트럭을 사용했지만 도시가 발전하면서 승용차가 더 많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면서 PC는 트럭처럼 될 것이라고 말한다. 트럭처럼 계속 사용되겠지만 수요는 갈수록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뛰어난 비유능력을 이야기하면서 한가지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글이 하나더 있다. 90년대 중반 스티브 잡스는 오브젝트 지향의 소프트웨어 기술을 선보이게 된다. 당시 이 기술은 대중화되지 않은 신기술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개념이었다. 사실 이 용어는 매우 전문적인 지식을 가져야만 이해를 할 수 있는 기술인데 1994년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스티브 잡스는 오브젝트 지향의 소프트웨어에 대해서 소개하였다. 아래에 그 내용을 소개해본다. 어떤분들에게는 이해가 갈수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을 것이다. 이해를 하게 되는 분들은 스티브 잡스의 비유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오브젝트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들은 살아서 숨을 쉽니다. 오브젝트 내부에는 어떻게 일을 해야 할지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메모리도 가지고 있어서 기억도 할 수 있습니다. 낮은 수준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여기에서 하는 것처럼 추상화된 고수준으로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내가 당신의 세탁 오브젝트라고 생각해보세요. 당신은 내게 당신의 더러워진 옷을 보내주면서 세탁을 부탁합니다. 나는 샌프시스코에서 가장 뛰어난 세탁소를 압니다. 나는 영어를 말할 수 있고 주머니에는 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거리에 밖에 나가서 택시를 잡고 운전사에게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세탁소로 가자고 말을 합니다. 나는 세탁소에서 옷을 세탁하고 다시 택시에 타서 돌아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세탁된 옷을 주면서 이렇게 말하겠죠.


“여기 세탁된 옷이요 “


여러분은 내가 어떻게 세탁을 했는지 알 필요가 없어요. 세탁소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도 되요. 만약에 프랑스어를 쓴다거나 택시를 잡을지 몰라도 됩니다. 당신은 돈을 지불 할 수 없다거나 주머니에 달러가 없어도 됩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알 필요가 없습니다. 복잡한 모든 것은 내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는 추상화된 높은 수준에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오브젝트입니다. “


<다음회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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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자랑을 할 때는 수치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숫자 이상의 그 무엇으로 자신을 높이려고 노력한다. 플레이 보이 인터뷰를 보면 그의 성향이 잘 드러난다. 1985년 플레이보이지와의 인터뷰에서 애플컴퓨터의 성공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76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해서 우리는 20만달러를 벌었습니다. 197 7백만 달러의 수입을 얻었죠. 그건 정말 대단했습니다. 1978 우리는 1700만달러를 1979년에는 4,700만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우리모두는 뭔가 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1980 우리는 1 1700만달러를 1981년에는 3 3,500만달러를 1982년에는 5 8300만달러를 1983 9 8500만달를 벌었습니다. 올해는 15억정도가 될것같습니다. “

 

(Interview with 29yearold Zillionaire Steve Jobs of Apple Computers, PLAYBOY, 1985 2)

 

스티브 잡스가 창업 이후에 벌어들인 수입들을 쉬지 않고 단번에 말하자 인터뷰를 하던 기자도 놀랐는지 그런 수치들을 잊지 않고 다 외우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미 숫자로 자랑할 것을 다한 스티브 잡스는 마치 수치는 관심꺼리가 아닌 듯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리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건 단지 기준일뿐이죠. 가장 훌륭했던 일은 1979년에 교실에 들어갔을 입니다. 15대의 애플컴퓨터들이 있었고 아이들이 그것들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것들 이야 말로 매우 의미가 크죠

 

스티브 잡스는 수치로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최대한 이를 강조하지만 단순히 장삿꾼처럼 비추는 것을 경계하고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임을 어필하려고 한다.

 스티브 잡스가 인터뷰에서 들려주기 좋아하는 것중에 하나가 애플이 무상으로 컴퓨터를 기증한 사실이다. 애플은 아이들은 기다릴수 없어(Kids can’t wait)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학교에 1만대의 컴퓨터를 기증하고 무료 교육까지 시켜주었는데 덕분에 애플이 교육용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데 큰 역할을 하였고 스티브 잡스는 이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1997년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는 보스턴 맥월드에서 애플의 경쟁력있는 사업분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두번째 시장은 특히 마음에 두고 있는 분야입니다. 바로 교육분야입니다. 애플은 교육에 첫번째로 컴퓨터를 제공한 회사입니다. 지금 내가 여러분들에게 한가지 물어보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교육회사가 어디일까요? 대답은 애플입니다. 애플은 교육분야에서 가장 세계최대의 공급자입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교육회사입니다. “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돈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회사로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2010 D8 컨퍼런스에서인터뷰에서 애플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총액을 추월한것에 대한 소감을 묻자 환상적이기는 하지만 그건 별 의미 없다면서 무관심한 듯 대답을 한다. 스티브 잡스는 돈 때문에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쿨한 사람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플랫폼 전쟁을 펼쳤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마 그래서 우리가 패한거겠죠

 

D8 컨퍼런스에서 스티브 잡스가 위의 말을 하자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마치 위의 이야기를 들으면 돈이나 기업간의 경쟁에는 달관한 사람처럼 말이다. 스티브 잡스는 다음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도 우리는 단지 최고의 제품을 만들고 싶을뿐입니다. 우리는 어떡하면 더 나은 제품을 만들수 있는지만 생각합니다.” 라면서 마치 기업가보다는 경쟁보다는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열정을 다하는 예술가처럼 답변하였다. 한번은 타임지 인터뷰에서 월스트리트 저널이 애플을 디지털 흥행주라고 지칭했다면서 이에 대한 소감을 물어보자 스티브 잡스는 아래와 같이 답하였다.

 

저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카니발이라도 운영한답니까? 우리가 애플에서 하는일은 매우 간단합니다. 우리는 제품을 발명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개인용 컴퓨터와 개의 최고 소프트웨어를 만듭니다. 최고의 휴대용 MP3/뮤직 플레이어도 만들었죠. 그리고 우리는 이제 세계 최고의 온라인 음악 스토어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냥 제품을 만들뿐입니다. 나는 흥행주(impresario)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제품을 만들고 이를 세상에 내놓으면 사람들은 그것을 사용합니다. “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사업가보다는 무엇인가를 만든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애플을 그만둘 때 스티브 잡스는 1985년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내가 최고 잘하는 것은 새로운 혁신적인 제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즐기는 것입니다. 나는 재능있는 소규모팀과 일하는 것을 잘하고 즐깁니다. 그런 방법으로 나는 애플2 매킨토시를 만들었습니다. “

 

Jobs Talks About His Rise and Fall,Jobs Talks About His Rise and Fall,  Gerald C. Lubenow and Michael Rogers, NewsWeek, 1985 9 30

http://www.newsweek.com/1985/09/30/jobs-talks-about-his-rise-and-fall.html

 

 

뉴스위크와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스티브 잡스가 돈이 아니라 꿈을 쫓아가는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단순히 돈을 쫓는 사업가가 아니라 제품의 발명가로 어필하는 만큼 그가 힘을 주면서 자주 이야기하는 것은 애플이 혁신을 이루어낸 것을 설명할 때이다. 2010 D8컨퍼런스에 참석한 스티브 잡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는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3.5인치 플로피를 우리가 대중화시켰고 최초의 아이맥에서는 플로피를 제거했습니다. 우리는 직렬과 병렬포트를 없애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아이맥에서 USB 처음 보았을 겁니다. 우리는 맥북에어에서 옵티컬 드라이브를 최초로 버렸습니다. 우리가 이런일을 사람들은 우리가 미쳤다고 합니다. “

 

스티브 잡스는 혁신자로써의 자신을 강조하는 스티브 잡스는 최초, 혁명, 같은 말을 자주사용한다. 아이폰을 내놓을 때는 인터페이스에서 23년만의 최대 혁명이라고 강조했다. 스티브 잡스는 혁명만큼이나 재발명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에 대해서는 개인용 컴퓨터를 재발명하였다고 하고 아이폰에서는 휴대폰을 재발명했다고 말한다. 시대를 앞섰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다른회사보다 몇 년을 앞섰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아이폰을 발표할때는 다른 회사보다 5년을 앞섰다고 하였고 픽사에 대한 인터뷰에서는 다른 어떤 회사보다 분명 10년은 앞서있다고 강조하였다.

혁신성을 강조하기 위한 좋은 방법은 모방자에 대해서 언급을 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혁신이 리더와 모방자를 구분한다는 말을 하였다. 혁신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모방자가 필요한다. 그리고 모방자로 자주 언급되는 회사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이다. 스탠포드 대학교 연설에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리드 칼리지에서 서체를 배운 이야기를 하면서 윈도우는 맥을 카피했기 때문에 자신이 서체를 배우지 않았다면 개인용 컴퓨터들은 다양한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1994년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스티브 잡스는 좀 더 노골적으로 자신의 혁신성을 암시한다.

 

마이크로 소프트가 맥을 카피할 있었던 것은 맥이 발전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맥은 지난 10년간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대략 10% 정도 변했을뿐이죠. 애플은 종이 호랑이가 전락해 버렸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을 베끼는데 10년이 걸린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애플은 동정할 가치가 없어요. 그들은 연구개발비로 수억달러를 썼습니다. 하지만 결과물들이 없습니다. 그들은 오리지널 이후로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을 비난하는 내용이지만 우리는 스티브 잡스의 말에서 맥을 만들어낸 혁신자로써의 스티브 잡스의 모습을 떠올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혁신자로써의 스티브 잡스 이미지를 더 강화시켜 주는 것은 그의 뛰어난 미래 예측능력이다. 1990년대 중후반에는 인터넷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다녔다. 2000년대에는 스티브 잡스는 디지털 라이프를 예견하였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현실이 되어버렸지만 과거 스티브 잡스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그가 정말 미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통찰력에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대중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는 이미지는 단순히 돈을 쫓는 장사꾼을 넘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혁신가이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는 사람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혁신가가 되고 싶어한다. 2006년 뉴스크위크와의 인터뷰는 그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음악이 아이팟의 중심이 되지 않는 날을 상상하기 힘듭니다. 아이팟은 매우 오래, 오래, 오래, 오래 음악으로 남을겁니다. 음악이 정말 중요한 시기에 성장기를 보낸 저는 매우 운이 좋습니다. 저의 배경때문이 아니라 음악은 정말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중요합니다. 음악은 정말로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한동안 음악에 대한 중요성이 빛을 바랬지만 애플이 음악을 의미있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삶에 되돌려 놓았습니다. 음악은 우리안의 깊은 곳에 있지만 음악을 듣지 않아도 하루, 한주, 한달, 일년동안 살수 있습니다. 아이포드는 수천만명의 사람들을 변화시켰습니다. 그것이 저를 정말 행복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음악은 영혼에 좋은 거잖아요.“

 

Good for the Soul’, Steven Levy, NewsWeek, 2006 10 15

 

숫자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숫자만 강조하게 되면 결국 경제적인 성공을 자랑하는 장삿꾼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는 숫자 이외에도 자신의 이상과 가치 그리고 비전들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한다. 이러한 노력덕분에 스티브 잡스는 단순히 돈 많은 갑부의 이미지보다는 혁신가로써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아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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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에는 화술이 필수다.


기획을 훌륭하게 완수 해내기 위해서는 “말”을 잘해야 한다.  실체가 없이 아이디어만 있는 상태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자신의 머리속에 있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로 훌륭하게 표현해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획을 잘하는 사람들은 말을 잘한다. 실체화되지 않은 기획안을 마치 현실속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들을 가지고 있다. 스티브 잡스가 기획을 잘 할 수 있는 그 뛰어난 화술덕분이다. 스티브 잡스에게는 현실 왜곡의 장이라는 무기가 있다.  


현실 왜곡의 장이란 지금 현재 스티브 잡스와 함께 있는 곳이 회사 사무실일지라도 스티브 잡스가 원하기만 하면 말을 듣는 사람들이 식당이나 교회라고 믿게 만드는 뛰어난 능력을 빗댄 용어였다.  그런데 기획에는 현실 왜곡의 장이 필요하다. 눈앞에는 없지만 그게 마치 우리앞에 펼쳐져 있고 그것을 만들기만하면 성공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을 팀원들에게 심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현실 왜곡의 장을 만들어낼 정도로 매혹적인 그의 화술은 어떤 상황에서도 스티브 잡스가 원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스티브 잡스가 넥스를 진두지휘할 당시 픽사와 관련된 보고는 애드캣멀과 앨비 스미스로부터 정기적으로 보고를 받았다.  애드캣멀과 앨비 스미스는 대화가 항상 스티브 잡스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자 나름대로 작전을 세운다.  스티브 잡스의 화술에 넘어간다 싶으면 서로가 귀로 신호를 보내서 서로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대화는 항상 스티브 잡스가 말하고 싶은데로 흘러갔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가 말하는 방식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한가지 꼭 명심해야할 것이 있다. 스티브 잡스의 뛰어난 화술에는 이야기의 내용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하겠지만 눈빛과 제스추어 그리고 말의 억양, 리듬, 크기, 속도등 다양한 요소들이 조화를 이룬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상대를 사로잡는 매혹적인 말재주의 핵심은 바로 열정이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다. 좋다고 생각하면 세계 최고의 아첨꾼이 되어서 칭찬을 하고 싫으면 욕을 해서라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가 무엇인가를 좋아한다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다. 그의 말은 겉과 속이 다르지 않고 내면에서부터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프리젠테이션에서 제품을 소개하는 모습을 보면 그가 정말 자신이 만든 제품을 사랑하고 있다는게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개발의 최전선에서  진두지휘를 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제품은 스티브 잡스에게 자식과 같은 존재이다. 스티브 잡스가 제품을 소개하는 모습은 영락없이 부모가 사랑스런 자기 자식을 다른 사람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난 부모의 모습이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의 땀과 노력으로 자신이 정말 사랑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었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이 제품을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프리젠테이션을 한다. 그게 제품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은 고스란히 열정으로 승화되어서 프리젠테이션을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 프리젠테이션에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하고 있는 말에 확고한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그가 말을 할 때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게 만들어 준다.  결국 스티브 잡스처럼 말을 잘하고 싶다면 우선 스티브 잡스처럼 말에 열정을 담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머리보다 가슴으로 호소한다.


스티브 잡스는 무엇인가를 자랑하는 데는 도가 튼 인물이다. 2시간여 동안 진행되는 프리젠테이션은 결국 그의 제품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대내외에 자랑하는 무대이다. 스티브 잡스가 남들에게 자랑하는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숫자를 활용하는 것이다. 프리젠테이션의 시작은 항상 그의 인사와 함께 숫자의 향연이 펼쳐진다. 아이패드 발표회에서는 284개의 애플 스토어를 오픈 했음을 알리고 5000만명이 방문했다고 말한다. 애플의 앱스토어는 14만개의 앱이 올려졌고 30억다운로드가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아이폰4가 발표되었던 2010년 WWDC에서는 57개국에서 5200명의 컨퍼런스에 참석했다면서 8일만에 표가 다 팔린 사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는 단순히 숫자만 나열하지 않는다. 아이패드가 200만대를 판매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이는 3초에 한대씩 팔린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데 이는 추상적으로 다가 올 수 있는 숫자의 의미를 더욱 쉽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아이패드의 다운로드수가 3천 5백건을 기록했다고 했을때는 기기당 17회의 다운로드가 이루어졌다고 풀어서 설명해주었다. 2007년 아이폰을 발표했던 맥월드에서도 스티브 잡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아이튠의 성장률과 20억곡의 노래가 판매된 것에 대해서 행복함을 느낍니다. 우리는 매일 500만곡의 노래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는 매일, 매시간, 매초마다 58곡이 팔리고 있음을 뜻합니다. “


2008년 맥월드에서는 스티브 잡스는 발매 90일이 된 아이폰이 4백만대를 판매하는 성과를 올렸다고 발표하는데 이는 매일 2만대씩 판매되었음을 뜻한다고 부연 설명해주었다. 숫자에 의미를 담는 것은 기술사양을 공개할 때도 잘 드러난다. 2001년 당시로서는 대용량이었던 5GB하드디스크를 채용한 최초의 아이팟을 발표하면서 “천곡의 노래를 당시의 주머니속에(1000 Songs In Your Pocket)속에라는 슬로건을 들고나왔다. 5GB라는 하드디스크 용량만으로는 그 의미가 매우 추상적으로 다가오지만 애플이 들고나온 슬로건을 통해서 그 의미가 훨씬 쉽게 다가올 수 있었다. 


 2005년 스티브 잡스는 30GB라는 대용량의 하드디스크를 채용한 아이팟을 발표한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30GB를 채용한 아이팟은 7,500곡의 노래와 25.000장의 사진 그리고 75시간 분량의 동영상을 저장할 수 있다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또한 아이패드의 배터리 시간을 이야기할 때 스티브 잡스는 10시간동안 동영상을 볼 수 있다면서 이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도쿄로 가는 동안 내내 동영상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스티브 잡스의 노력은 망막을 뜻하는 레티나에서도 잘 드러난다. 레티나 디스플레이라는 용어는 머릿속에서 쉽게 잊혀질 수 밖에 없는 기술사양을 가슴으로 먼저 와닿게 만들어준다. 아이폰4는  960*640이라는 뛰어난 해상도를 들고 나왔다. 해상도는 화면전체에 표시되는 픽셀의 개수이다. 픽셀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정교한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게 된다. 960*640이라는 해상도는 인치당 326픽셀을 표현할 수 있는데 이 숫자만으로는 어떤 감흥을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 하다.  분명 좋아진 것은 알겠지만 그게 얼마나 대단하지는 감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아이폰4를 발표하는 자리였던 2010년 6월 WWDC에서 스티브 잡스는 망막의 뜻을 가진 레티나 디스플레이라는 신조어를 들고 나온다. 키노트 연설에서 스티브 잡스는 960*640의 해상도는 기존 제품에 비해 4배가 향상되었음을 밝히며 비교를 통해서 해상도가 높아지면 문자가 얼마나 더 깨끗하고 정교하게 표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정도는 해상도가 좋아지면 느낄 수 있는 차이이다. 하지만 여기에 스티브 잡스는 한마디를 더 추가함으로써 960*640이라는 해상도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스티브 잡스는 인치당 300픽셀이 인간의 망막이 구분할 수 있는 매직넘버라고 말한다. 애플이 왜 아이폰4의 디스플레이에 레티나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인간의 망막은 인치당 300픽셀까지만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인치당 326픽셀을 표현할 수 있는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제품이라는 뜻이 되어버린다. 덕분에 레티나 디스플레이는 선명한 인쇄물을 보는 것 같은 쾌적함을 준다고 스티브 잡스는 부연설명을 해준다. 960*640이라는 숫자로 끝날 수 있었던 기술사양이 레티나 디스플레이라는 이름을 가지면서 아이폰4는 인간의 망막을 뛰어넘는 매우 특별한 해상도를 갖춘 제품으로 세계인들에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애플2로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개척하고  매킨토시로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 시장을 열었으며 레이저 라이터로 전자 출판혁명을 일으켰으며  토이스토리로 3D영화 시대를 창조하더니 아이팟으로 음악시장을 송두리째바꾸었고 아이폰으로 휴대폰의 혁신을 일으키고 아이패드로 다시한번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낸 스티브 잡스를  위대한 기획자의 측면에서 분석한 "기획의 신 스티브 잡스" 이야기는 다음에도 계속 됩니다.>

 

덧붙이는 말 : 하단에 보이는 다음뷰의 추천버튼 클릭 하나 페이스북의 좋아요 버튼 클릭 하나가 글쓴이에게 큰 힘을 준다는 사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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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스티브잡스에 의하면 애플은 시장조사나 컨설턴트도 고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잡스가 컨설턴트를 고용한 것은 딱 한번 있었는데 이는 애플이 소매점 시장을 진출하면서 게이트 웨이의 소매점 전략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이것마저도 사실은 게이트웨이가 소매점 시장에서 실패한 이유를 알아내어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애플이 제품을 만드는 원동력은 스스로 사랑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애플이 아이튠스를 만든 것은 그들이 음악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애플이 아이폰을 만드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휴대폰이 너무나 사용하기에 불편하고 소프트웨어도 형편 없는데 하드웨어도 별로였기 떄문에 스스로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아이폰을 만들었다. 애플에서 마케팅은 다른 회사와 의미가 조금 다르다. 스티브 잡스가 제품을 만들 때는 철저히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인다. 소비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기전까지는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스티브 잡스는 “내가 만약 고객들에게 원하는 제품이 무엇인지를 물어봤다면 그들이 원하는 것은 좀 더 빠른 말이라고 대답했을것”이라는 말을 신봉한다. 


마케팅 기본은 시장의 세분화, 표적시장의 설정, 제품의 포지셔닝인데 아이튠스와 아이폰에서 보듯이 애플은 마케팅을 중심으로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 애플의 마케팅은 제품 개발이 완성된 후 판촉활동과 홍보의 일환이라고 봐야한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회사의 브랜드가 대중들에게 사랑받기를 원하는데 애플의 마케팅은 바로 신뢰받는 브랜드 이미지를 창출하는데 있다. 애플의 마케팅은 안티비즈니스 집단답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마케팅의 의미와는 조금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기획을 할 때 마케팅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제품개발과 마케팅을 따로 나누어서 분업화된 회사도 많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정말 위대한 기획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마케팅에도 적극적이었다는 점이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들고서 매킨토시의 장점을 소개하고 시연을 하는 판촉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이러한 일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스티브 잡스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제품을 홍보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제품이 완성되면 스티브 잡스는 세일즈 맨이되어서 직접 판매일선에 나섰다. 기업들을 찾아가서 열심히 제품을 홍보하였고 파티에 가서도 자신이 만든 물건을 꼭 구입하라고 적극적으로 설득하였다. 


회사의 CEO임에도 불구하고 판촉활동을 위해 두팔을 걷어올리고 현장을 누비는 스티브 잡스의 모습은 기획의 완성형을 보여준다. 기획을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의 전문분야에서만 힘을 발휘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분야를 초월해서 기획이 필요한 모든 분야에서 활약한다.  광고캠페인에도 스티브 잡스는 적극 관여한다. 애플의 1984광고와 Think Different를 만든 치아트 데이의 직원인 켄 시걸(Ken Segall )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CEO가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상세한 부분까지 스티브 잡스가 관여를 했다면서 Think Different 광고와 관련된 일을 직접 위탁하였다고 밝힌다.  


스티브 잡스는 광고 문구의 3번째 네번째 문단에 세번째 단어가 별로라면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광고 캠페인에도 적극 참여했다고 켄 시걸은 말한다. 애플 컴퓨터가 교육용 시장에 안착하는데도 스티브 잡스의 마케팅전략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학교에 무상으로 애플2 컴퓨터를 기증하는 Kids Can't Wait의 캠페인 덕분에 애플은 성공적으로 교육시장에 안착했는데 이 계획안을 마련한 사람이 바로 스티브 잡스이다. 또한 매킨토시를 대학교에서 할인된 가격에 학생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마케팅에도 스티브 잡스의 활약이 있었다. 


기획은 비전을 세우고 이 비전을 실행하기 위해서 사람을 모으고 아이디어를 현실속에서 실체화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은 결국 돈을 벌기 위한 상업적 행위이다. 비상업적인 행위에 기획이라는 말이 붙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기획형 아이돌이니 기획 영화라는 말이 붙었다면 상업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어딘가에 기획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시장의 요구를 분석해서 치밀한 계획하에 제품을 개발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기획과 시장은 따로 떼어놓고서 생각할 수 없다. 기획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상업적인 성공이 반드시 필요하다. 요즘처럼 물건이 쏟아지는 시대에는 제품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마케팅 전략이 필수적이다. 


비록 스티브 잡스처럼 직접 판촉활동에 참여하거나 획기적인 마케팅 계획을 세우지는 못해도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분야이다. 마케팅을 알게 된다는 것은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마케팅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기획을 하면 그만큼 시장에서 환영받을 수 있는 물건을 받을 만들 수 있다. 스티브 잡스가 직접 시장조사를 하지 않아도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그의 안에는 이미 마케팅에 대한 감각이 체화되어 있기 때문이다.기획을 위해서 마케팅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는 애플 컴퓨터를 창업하면서부터 직접 발로뛰면서 마케팅을 익혀온 사람이다. 스티브 잡스가 마케팅에 대한 정식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그의 지난 온 행적자체가 마케팅의 역사를 써오고 있다. 이번에 연재되는 글에 에서는 마케팅과 관련된 스티브 잡스의 활약상을 이야기하게 될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마케팅 방식이 일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할 수 있도 있다. 하지만 마케팅 감각이 기획에 얼마나 중요한 성공 요소인지를 체감할 수 있을 게 될 것이다.



라이프 스타일 마케팅


 애플은 처음부터 기술보다는 감성을 자극하는 광고로 다른 컴퓨터 업체들과  차별화되었다. 과일을 자르고 있는 한 여성이 부엌 한 켠에서 애플2 컴퓨터로 일을 하고 있는 남자를 사랑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습을 담고 있는 애플의 이 광고는 오늘날 애플의 마케팅을 규정지을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광고는 단순히 스펙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을 그림 한장으로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림 옆에는  애플 2컴퓨터를 이용하면 게임,  요리법, 주식, 가계부, 아이들 교육등 실제 생활에 어떤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지를 글로 설명해 주고 있다.  이렇듯 애플의 마케팅은 단순히 자사의 스펙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이는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의 광고속에도 쉽게 드러난다. 아이폰4에서는 페이스 타임으로 영상통화를 하는 모습들을 소개하고 있다.  출장간 아버지가 집에 있는 아내와 아기의 모습을 아이폰4로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이나 졸업을 앞둔 손녀와 통화하는 모습등을 잔잔한 음악으로 보여준다.. 아이패드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패드의 TV CF에는 경쾌한 리듬과 피아노소리에 맞추어서 아이패드에서 수학문제를 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 후 공부라는 자막이 등장한다. 곧 아이패드로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여준 후 음악이라는 자막이 흐른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광고속에서 아이패드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를 영상으로 계속해서 보여준다.  이 광고는 아이패드를 가지면 생활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애플 특유의 라이프 스타일 제시형 홍보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애플이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디지털 허브 전략아래 아이팟이 발매되면서부터다. 컴퓨터 업체로서는 애플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분명 한계가 있었지만 아이팟을 통해서 생활 가전 업체로 변신을 하게 되면서 애플은 생활속에 녹아드는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었다.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집에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애플이 명품 브랜드로 자리잡는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브랜드에 대한 욕망은 자동차나 패션상품처럼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수 있을 때 그 효과가 더욱 커진다.  컴퓨터는 집에서 그것도 책상아래에 있는 제품이니 자랑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고 브랜드 파워를 가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휴대용 음악기기인 아이팟은 다르다.  밖에서 돌아다니며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었던 만큼 다른사람에게 자신의 아이팟을 얼마든지 자랑할 수가 있었다. 애플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팟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애플의 브랜드를 광고해주는것과 다름 없었다.  아이팟이 횐색 이어폰을 채택한 것도 애플 브랜드에 큰 힘이 되어주었다. 당시만해도 이어폰은 검은색이었지만 애플은 아이팟 본체와의 색을 맞추기 위해서 파격적으로 이어폰을 흰색으로 결정했다.  검은색 이어폰 일색이던 길거리에 흰색이어폰은 단번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어느덧 횐색이어폰은 아이팟의 상징이 되었고 애플 역시 이를 이용한 광고를 내보낸다.  아이팟으로 신나게 음악을 듣는 사람의 모습을 검은 실루엣으로 처리하고 아이팟본체와 이어폰을 횐색으로 대비시킨 광고였다. 멋진사람은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는다는 느낌이 절로 들 수 있도록 강렬한 음악과 몸짓이 조화를 이루었다. 아이팟을 사용하는 사람을 매력적으로 보여주는 이광고는 아이팟을 모르는 사람도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횐색이어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려주는 동시에 음악을 듣는 방법이 소니의 워크맨이 아니라 아이팟으로 바뀌었음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주었다. 


애플의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 전략의 마지막 화룡정점은 애플 스토어로 완성된다. 애플 스토어는 고객들에게 애플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일종의 라이프 스타일 매장이라고 할 수 있다. 애플이 직접 소매점 시장에 진출한 것은 애플제품이 매장에서 전혀 환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킨토시의 시장 점유율이 추락하면서 매장의 구석에 먼지만 쌓인상태로 방치되기 일쑤였는데 이는 애플 브랜드에 큰 상처를 입혔다. 그리고 매장 점원들이 PC에 익숙했기 때문에 매킨토시를 사러 온 손님들에게 오히려 PC를 권장하는 일까지 발생하였다. 결국 스티브 잡스는 특단의 조치로 직접 유통시장에 진출하기로 결심한다. 


스티브 잡스는 이 일이 힘들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외부사람들에게 도움을 얻을 생각으로 갭의 CEO였던 미키 드렉슬러를 이사로 영입한다. 또한 타깃(Target)을 고급 유통점으로 변신시킨 론 존슨을 데려왔다. 스티브 잡스와 론 존슨은 삶을 풍요롭게라는 거창한 슬로건 아래 소비자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한 매장을 디자인한다. 애플 스토어를 만들때만 해도 애플의 제품 라인업은 고작 노트북과 데스크탑이 전부였기 때문에 사용자들의 경험에 초점을 맞춘 매장을 만들 수 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매장은 제품을 전시하고 있지만 사용자들이 마음대로 만져볼 수가 없었다. 운이 좋게 제품을 직접 사용해 불 수 있어도 매장 점원의 눈치를 봐야 했다. 애플 스토어에서는 아무런 제약 없이 고객들이 마음껏 제품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애플스토어에는 제품 배치도 남다르다. 대개의 매장은 손님들이 빠르게 원하는 물건을 찾아서 매장을 떠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하지만 론 존슨의 생각은 달랐다. 애플은 디지털 허브처럼 고객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회사이다. 그래서 론존슨은 고객에게 제품이 아니라 솔루션을 보여줘야 하다고 봤다. 일반상점에서는 제품 종류별로 전시를 하기 때문에 카메라와 컴퓨터를 따로 분류해서 배치한다. 하지만 애플 스토어에서는 카메라와 컴퓨터를 한곳에 전시해서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컴퓨터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도록 했다. 제품이 아니라 고객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애플스토어에서 애플 제품을 전시하는 공간은 4분의 1에 불과하다. 나머지 공간에서는 고객들이 미래의 디지털 라이프를 직접 경험 할 수 있도록 매장을 디자인했다. 25%의 공간은 음악과 사진에 대한 공간이고 또 다른 구역은 지니어스바와 영화를 위한 곳이고 나머지 25%는 액세서리와 기타제품들이 전시되었다.



 


지니어스바는 애플 스토어의 진수를 보여주는 공간이다. 일반 매장에서 고객이 물건을 구입하고 매장을 나서는 순간 매장과 소비자의 관계는 끝나버린다. 하지만 애플스토어는 반대로 고객과 매장의 관계는 물건을 구입하면서 시작된다. 바로 그 인연을 이어주는 것이 바로 지니어스 바이다. 지니어스 바는 호텔바처럼 아늑한 분위기속에서 열정을 가진 직원(애플에서는 이들을 지니어스라고 부른다.) 들이 1:1로 제품에 대해서 친절하게 상담을 해주는 곳이다.  지니어스와 고객의 관계는 단순히 직원과 손님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적인 관계로 발전하면서 각종 디지털 라이프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   손님이 키노트로 프리젠테이션하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아이무비에 어떤 음악을 삽입할지 혹은 결혼식에 어떻게 DJ를 볼지를 상담하기도 한다. 그래서 론 존슨은 애플 스토어가 스튜디오가 되었다고 말한다.


애플 스토어는 그 지역의 명소가 되어서 사람들의 일상생활로 파고 들고 있다.  애플 스토어는 밴드 공연이나 무료 워크숍등 각종 행사를 수시로 열고 애플 캠프를 진행해서 어린이들까지 매장으로 불러모은다. 애플 스토어는 부동산 값은 비싸지만 사람들이 쉽게 찾고 방문할 수 있도록 일부러 도심 한가운데 가장 번화가에 위치한다. 덕분에 애플 스토어는 애플과 고객의 생활은 더욱 가까워 졌다.


단순한 기술회사가 아니라 고객들의 일상을 파고드는 라이프 스타일 업체로 변신하게 된 덕분에 애플은 스펙경쟁에 비교적 자유롭게 되었다. 컴퓨터 산업은 이른바 스펙과 가격에 의해서 결정되는 시장이다. 소비자들은 컴퓨터를 구입할 때 디자인이나 디테일한 완성도를 따지기 보다는 스펙에 비해서 가격이 얼마나 저렴한지를 살펴본다. 그래서 컴퓨터 업체들은 처절한 가격경쟁을 펼친다. 그래서 가격공세를 펼치는 후발주자에 의해서 업계 1위였던 애플은 도산위기에 빠졌고 IBM과 컴팩은  PC 업계에서 사라졌다. PC업계에서는 브랜드라는게 별 가치가 없었고 오직 스펙과 가격경쟁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생활가전에서는 PC업계에서 만큼 스펙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않고 있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에 들어가는 CPU의 작동속도나 램의 용량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일부의 마니아들일뿐이다.  사람들이 PC를 구입할 때 처럼 꼼꼼하게 스펙을 따져보는게 아니라 브랜드를 믿고 구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1년에 하나의 제품을 내놓는 애플이기 때문에 불과 3~4개월만 지나도 더 좋은 스펙의 제품이 쏟아져 나온다. 만약 PC시장이었다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처럼  1년에 하나의 모델을 내놓는 비즈니스 모델자체가 성립할 수 없었다. 하지만 스펙보다는 라이프스타일 중심의 마케팅을 실행한 덕분에 애플 제품에 대항해서 스펙이 떨어지고 더 저렴한 제품이 등장할 지라도 PC 시장에서와 같은 큰 타격 없이 수 많은 사람들이 애플 제품을 선호하도록 만드는 시장환경을 구축할 수 있었다.


<애플2로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개척하고  매킨토시로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 시장을 열었으며 레이저 라이터로 전자 출판혁명을 일으켰으며  토이스토리로 3D영화 시대를 창조하더니 아이팟으로 음악시장을 송두리째바꾸었고 아이폰으로 휴대폰의 혁신을 일으키고 아이패드로 다시한번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낸 스티브 잡스를  위대한 기획자의 측면에서 분석한 "기획의 신 스티브 잡스" 이야기는 다음에도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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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연재] IT 삼국지2013.11.28 07:33

IT삼국지(16) 


스티브잡스의 애플부활프로젝트(1) 


기강을 세우다.






1985년 9월 16일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과 함께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한지 9년만에 회사를 그만둔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2컴퓨터의 성공으로 억만장자가 되었고 미국 젊은이들의 우상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가 의욕적으로 만든 매킨토시가 당초 판매목표였던 200만대에 턱없이 부족한 25만대에 그치자 스티브 잡스의 입지가 급속히 축소된다. 이런 와중에 스티브 잡스는  당시 CEO였던 존 스컬리와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아이러니한 점은  펩시콜라 사장으로 일하던 존 스컬리를 직접 만나서 평생 설탕물이나 팔것이냐이면서 애플로 데려온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처음만해도 둘은 찰떡 궁합이었다. 존 스컬리 역시 스티브 잡스의 스승을 자처하면서 나중에 CEO자리를 물려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 운영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서 치열한 정치싸움이 벌어진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개발과정에서 다소 무리한 운영으로 사내에 많은 적들을 만들었다. 결국 매킨토시가 실패를 하자 스티브 잡스는 더 이상 회사에서 버틸수가 없었다. 회장이라는 직책을 버리고 애플에서 나온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라는 컴퓨터 회사를 창업한다.  하지만 넥스트의 실적은 별로 좋지 못했고 스티브 잡스는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에 비해서 애플은 새로운 전성시대를 맞이한다. 그런데 애플의 황금기를 이끈 것은 스티브 잡스의 선경지명 덕분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획기적인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를 탑재한 매킨토시에 레이저 프린터를 결합한 사무용 솔루션을 기획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모니터상에서 보여주는 글과 그래픽을 종이로 인쇄하는데 어려움을 겪던 시절이었다. 어도비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포스트 스크립트 기술을 사용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스티브 잡스는 240만달러를 어도비에 투자하는 한편 관련 기술을 라이선스 받기로 한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일본을 직접 방문해서 매킨토시에 맞는 최적의 프린터를 찾아낸다. 스티브 잡스가 있을 때만 해도 이러한 노력은 전혀 빛을 발하지 못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회사를 나간 이후 얼마지 지나지 않아서 매킨토시의 기능을 극대화한 페이지 메이커나 포토샵 같은 킬러 소프트웨어가 등장한다. 페이지 페이커와 포토샵의 등장 이후 매킨토시는 출판업계와 그래픽디자이너 같은 전문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게 되고 애플 역시 기사회생하게 하게 된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자 애플은 곧 바닥을 드러나게 된다. 매킨토시가 큰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스티브 잡스의 퇴출이후 개발력이 급속도로 악화됨에 따라서 새로운 히트작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데 비해서 매킨토시는 정체상태에 빠져버렸다.


 윈도우 95가 등장하면서 매킨토시만의 장점도 없어지고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MS 오피스마저 등장하지 않으니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이미 실적 부진으로 93년에 스티브 잡스를 몰아냈던 존 스컬리가 애플에서 쫓겨난 상황에서 그의 후임으로 마이클 스핀들러가 임명되지만 윈도우 95라는 유탄을 맞고서는 그 역시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그 후 애플은 내셔널 세미건덕터의 CEO인 길 아멜리오를 영입한다.  그는 카메라에 들어가는 핵심 기술인 CCD를 발명한 엔지니어출신으로 무너져가는 내셔널 세미컨덕터의 CEO가 되어 회사를 부활시켜서 그 능력을 인정받은 경영자였다.


평소 애플의 팬이었던 그는 의욕적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그는 회사에 여러 문제가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최고 문제는 몇 년째 아무런 성과가 없는 운영체제 개발이었다. 1991년부터 애플은 기존 제품을 대체할 새로운 운영체제를 개발중이었는데 5년이 넘도록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매킨토시가 빛나는 것은 뛰어난 운영체제 덕분이었다. 그런데 운영체제를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하니 회사의 명성과 경쟁력도 하루 하루 뒤떨어졌다. 애플 내부에서는 절대로 운영체제를 만들지 못할 것 이라고 생각한 길 아멜리오는 고육지책으로 외부에서 운영체제를 구입해올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회사의 자존심을 버리는 매우 위험한 선택이었지만 그만큼 사내의 개발력은 형편없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마침 빌 게이츠는 애플의 이런 사정을 알고는 직접 길 아멜리오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사의 운영체제인 윈도우 NT를 매킨토시에 맞게 수정을 해주겠노라고 친절하게 말한다. 하지만 길 아멜리오는 빌 게이츠가 매킨토시의 인터페이스에 욕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빌 게이츠가 윈도우 NT를 제공해주는 대신 매킨토시의 핵심적인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싶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길 아멜리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제안은 거절한다.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솔라리스를 알아보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이런 와중에 애플 출신의 장루이 가세가 만든 비오에스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다.  장 루이 가세는 스티브 잡스가 존 스컬리를 회사에서 쫓아낼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린 인물이다. 장 루이 가세의 제보덕분에 중국으로 출장가려던 존 스컬리가 회사로 돌아와서 스티브 잡스의 쿠데타를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존 스컬리에 의해서 실권을 잃은 스티브 잡스가 회사를 그만두자 장 루이 가세가 매킨토시 사업부를 책임지게 된다.


 하지만 장루이 가세는 영업맨 출신으로 개발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는 몇가지 실책을 반복하다가 결국 존 스컬리와 함께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다. 회사를 그만둔 장루이 가세는 새로운 형태의 운영체제와 하드웨어가 결합된 컴퓨터를 개발하기 위해 비(Be)라는 회사를 창업한다.  비사의 직원 대부분은 애플에서 일했던 개발자들이었던 만큼 운영체제도 자연스럽게 매킨토시와 궁합이 맞았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길 아멜리오는 장루이 가세가 만들고 있던 비오에스(BeOS)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때만 해도 비오에스는 애플의 매킨토시에 사용될 가장 유력한 운영체제였다. 


하지만 애플이 새로운 운영체제를 구한다는 소식을 접한 넥스트 직원들의 활약덕분에 상황은 급변한다.  넥스트 직원들은 스티브 잡스 몰래 애플에게 연락을 해서 당시 넥스트가 만들고 있던 운영체제를 보여준다. 사무실을 방문한 애플 직원들은 넥스트의 운영체제에 감탄한다. 나중에야 이 소식을 알게 된 스티브 잡스는 이는 자신에게 매우 중대한 일이 될 거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전면에 나서서 직접 애플과 협상을 한다. 협상력하면 스티브 잡스 역시 뛰어난 감각을 지닌 인물이었다. 애플과 장루이 가세사이에 끼어든 스티브 잡스는 화려한 언변 실력을 뽐내면서 CEO인 길아멜리오의 마음을 빼앗아 놓는다. 결국 길 아멜리오는 스티브 잡스의 넥스트를 4억달러가 넘는 거액을 들여서 인수를 하기로 결정한다. 스티브 잡스는 12년만에 회사의 고문이 되어서 애플에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애플의 사정은 최악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길 아멜리오가 적극적으로 회생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매킨토시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6%에서 3%로 추락했고 회사는 실리콘 밸리 역사상 최악의 적자에 허덕이게 된다. 주식 역시 10년 역사상 최하가로 떨어지자 결국 길 아멜리오 역시 결국 해고를 당하고 만다. 애플 역사상 최악의 위기를 겪었던 순간 애플의 이사회는 자신들의 구세주로 스티브 잡스를 선택한다.


기강을 확립하다.


우리가 스티브 잡스를 이해할 때는 그가 애플에서 쫓겨날 때와 다시 복귀할때로 나뉘어서 생각해야할 것이다.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사실 그에 대한 대부분의 비난은 애플에서 쫓겨나기전의 스티브 잡스의 모습에 집중되어있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가장 큰 비난은 그가 자신의 딸을 버렸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 스스로가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나서 입양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자친구 크리스 앤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리사를 자신의 딸이 아니라면서 외면하였다. 이는 여전히 스티브 잡스를 비난하는 단골메뉴이지만 그 뒷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가족보다는 오직 야망을 추구하던 스티브 잡스는 1991년 로렌 파웰과 결혼한 이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는 리사를 데려와서 직접 키웠고 리사를 명문 하버드대학교를 졸업시킬 정도로 극진히 양육했다. 가족과의 행복은 스티브 잡스를 좀 더 부드러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회의가 시작되면 백보드 앞에서 마커를 들고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혼자서 떠들기 일쑤였던 스티브 잡스는 직원들에게 자애로운 후원자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었고 세탁기하나를 사는데도 가족과 며칠씩 상의를 하는 자상한 가장이 되었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실패를 통해서 더욱 위대한 사람으로 태어났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난 후 너무나 비참한 생각이 들어서 실리콘밸리를 아예 떠날 생각까지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실패가 곧 자신에게는 환자에게 꼭 필요한 약이 있듯이 그런 경험이 자신에게는 좋은 약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세계최초의 3D 에니메이션인 토이스토리를 만든 픽사를 통해서 완벽하게 부활하는데 픽사를 성공 시킨 경험은 스티브 잡스에게 창조적인재들과 어떻게 일해야는 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회사의 기강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스티브 잡스 이전의 애플 직원들은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처럼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제멋대로였다. 뛰어난 경영자였던 길 아멜리오가 실패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길 아멜리오가 아무리 훌륭한 전략을 세워봐야 직원들이 이를 따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런데  길 아멜리오의 지시는 놀랍게도 직원들에 의해서 묵살되기 쉽상이었다. 때로는 길 아멜리오를 비꼬는 기사를 쓰도록 임원들이 언론사에 재보를 할 정도였다. 이렇게 회사의 지휘체계가 붕괴를 되니 회사가 잘 될 수가 없었다. 


스티브 잡스는 처음부터 길 아멜리오와는 확실히 달랐다. 애플의 창업자답게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직원들을 휘어잡았다. 스티브 잡스는 아주 사소한 것 에서부터 신경 썼다. 직원들에게 회사에 애완동물을 가져오는 것과 흡연이 금지되었는데 이를 어겨서 스티브 잡스에 의해서 해고되었다는 소문이 떠돌았기 때문에 직원들은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스티브 잡스가 직원들의 마음을 휘어잡은 것은 단순히 강압적인 방법만 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솔선수범하였다. 이것이 길 아멜리오와 스티브 잡스의 근본적인 차이중에 하나였다. 비록 길아멜리오가 애플을 사랑했다고 하지만 스티브 잡스 만큼은 아니었다. 길 아멜리오는 애플에서 월급을 받는 경영자였지만 스티브 잡스는 스스로를 월급쟁이로 생각하지 않은 애플의 창조주였다. 길 아멜리오가 애플에서 일할 때는 연봉 300만 만달러 외에도 500만 달러를 융자받을 수 있는 권한과 2,700만달러에 이르는 거액의 주식을 받았다.


 또한 자가용 비행기에 들어가는 각종 비용을 지원받았고 휘황찬란한 사무실을 썼다. 도산 위기에 있는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CEO가 이렇게 거액의 연봉을 사용하고 회사의 비용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자 언론에서는 이를 도둑경영이라면서 비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건강 보험 혜택을 위해서 형식적으로 1달러의 연봉만 을 받았고 길 아멜리오가 사용하던 호화로운 사무실을 안쓰고 회의실 옆에 작은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았다. 


스티브 잡스는 임원들과 일반 직원들의 위화감을 줄이기 위해서 평등문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인텔에서부터 시작된 평등문화는 실리콘 밸리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문화이다. IT 분야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변화가 빠른 곳이다. 그래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받아야 들여야 한다. 회사가 역동적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회사 직원 누구나 자유롭게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회사의 의사결정을 잘 살펴보면 결국은 임원의 생각에 직원들이 따라가기 마련이었다. 임원들은 엄연히 말하면 과거의 기술을 바탕으로 승진한 사람인 만큼 그들의 사고방식은 과거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어준 기술과 방식에 연연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임원들이 주요 안건들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게 되면 회사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시대에 뒤쳐질 수가 있다. 문제는 회의에서 아무리 계급장을 떼고 마음껏 말하라고 해도 직원들은 임원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인텔의 CEO를 역임했던 앤디 그로브는 회의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떳떳하게 밝히면서 여러 안건에 대해서 건설적인 대립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회사의 문화자체가 달라져야 한다고 봤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똑 같은 직원이라는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인텔은 임원이나 일반 사원 할 것이 없이 똑 같은 사무실 공간에서 일하게 하고 식당에서나 주차공간에서도 임직원간의 차별을 없애 버렸다. 


임원과 일반사원간에 위화감을 없애고 최대한 평등한 대우를 하자 비로써 인텔에서는 권위주의와 관료주의가 점차 사라지고 회의에서도 건설적인 대립이 일어났다. 이런 인텔의 영향을 받아서 실리콘 밸리에서는 평등문화가 폭넓게 퍼져있다. 스티브 잡스는 평등문화의 기치를 내걸고 임원들의 중역실을 없애고 모든 직원들의 사무실 공간을 같게 만들었다. 사무실 배정에서 임원이 받을 수 있는 특혜라고 해봤자 창가 주변에 사무실을 얻을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주차장 공간이나 출장갈 때 비행기 좌석역시 임직원간에 차별을 없앴으며 평등주의를 바탕으로 특별 퇴사금 같은 여러 특혜를 없애고 회사 이사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에게 주식을 나누어 줬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의 천하 삼분지계를 다룬 IT 삼국지 이야기는 다음에도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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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스티브 잡스의 모든 행동과 철학은 결국 단순함으로 귀결된다. 단순함은 스티브 잡스를 성공으로 이끌어준 만트라이자 그를 이해하는 만능열쇠이다. 그의 패션을 한번 살펴보자. 스티브 잡스는 1998년 이후  검정 터틀넷 셔츠에 리바이스 청바지 그리고 뉴발란스의 운동화를 고집하고 있는데 이는 단추와 허리띠도 없는 단순함이 극대한된 패션이다. 스티브 잡스의 단순함은 그의 사생활에도 드러난다. 스티브 잡스는 사회외부 활동은 극도로 피하고 오직 일과 가정 딱 두 가지에만 포커스를 맞춘다. 과거 그가 총각 시절 살았던 집 역시 가구와 집기가 거의 없었다. 의자, 침대 램프, 스테레오 시스템 정도만이 있을 뿐이었다. 잘나가는 청년 사업가임에도 스티브 잡스의 집 안은 아무런 장식도 없이 단순함 그 자체였다.


 스티브 잡스는 조직운영도 최대한 단순화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조직구성은 누가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서 책임소재와 권한을 분명하게 한다. 조직을 간단하게 만들면 사내정치가 줄어들고 새로시작하는 회사처럼 활기있는 조직을 만들 수 있다. 또한 회사의 목표도 최대한 단순화하는데 이렇게 되면 직원들은 의사소통을 더욱 쉽게 할 수 있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직원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법도 아주 간단하다. 한번은 데이터를 DVD로 저장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지시받은 개발팀은 3주동안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스티브 잡스와 회의를 하기로했다. 개발자들은 프로그램이 어떻게 작동될지를 상세하게 정리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갔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는 자료들은 전혀 보지 않고 화이트 보드쪽으로 가더니 사각형을 그리고 다음처럼 말하였다.

 

여기에 창이 있습니다. 그리고 비디어 파일을 윈도우로 끌고 간 다음에 클릭하면 바로 복사가 되는거지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만들려는 겁니다

 

스티브 잡스의 단순함은 제품 라인업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돌아왔을 때 애플은 수많은 제품 라인업을 가지고 있었다. 프린터, 디지털 카메라, 스캐너 PDA 40여가지의 제품을 판매하였는데 더 큰 문제는 매킨토시의 모델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애플은 맥을 고르는 방법을 소개한 포스터를 제작할 정도로 제품 라인업이 혼란스럽고 어지러웠다. 이때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의 제품 라인업을 단 네개로 만들었다.


매킨토시는 휴대용과 데스크탑용 두개의 카테고리가 존재하고 그 안에는 각각 보통사람을 위한 일반 컴퓨터와 전문가를 위한 고급컴퓨터로 나눈 것이다. 제품 구성을 네가지로 단순화시키자 관계자들은 미친행위라고까지 생각했지만 결국 애플의 골치아팠던 재고문제를 4억 달러에서 1억달러로 줄였고 수익성이 늘러나면서 파산위기를 벗어날수 있었다. 현재 애플은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 보듯이 1년에 하나의 모델만 고수할 정도로 제품 라인업을 단순화하고 있다애플의 디자인도 바로 단순함으로부터 생겨난 아름다움이다. 조너선 아이브는 다음과 같이 말한적이 있다.

 

우리의 관심사는 바로 단순함입니다. 뻔뻔스러을 정도의 단순함을 드러냄으로써 완전히 다른 제품이 탄생합니다. 차별화가 우리의 목표는 아닙니다. 사실 남들과 다른 제품을 만드는 것은  매우 쉬운일입니다. 차별화는 제품을 매우 단순하게 만들겠다는 목표를 탐구하는 과정의 결과물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말한 단순함이야 말로 궁극적인 우아함이라는 말을 신봉하는 사람이다. 스티브 잡스와 조너선 아이브의 합작으로 만들어지는 애플제품의 디자인에는 단순성에 대한 그들의 철학이 잘 드러나 있다.  애플의 대표적인 제품인 아이폰, 아이팟, 맥북 에는 배터리가 일체형이다. 이 때문에 많은 불만을 사고 있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애플이 디자인의 단순함을 위해 이음새하나 허용하지 않는 집착의 증거이기도 하다. 스티브 잡스는 나사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신형 맥을 만들 때 스티브 잡스는 나사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고 지시를 내린적이 있다.  


그런데 시제품의 손잡이 밑에 나사 하나가 있는 것을 발견한 스티브 잡스는 디자이너를 해고 하였다. 단순함을 통해서 아름다운 디자인이 탄생된 대표적인 4세대 아이맥을 만들때이다. 조너선 아이브는 기존 아이맥을 수정해서 좀 더 날렵한 디자인을 완성했다. 디자인을 본 스티브 잡스가 보기에는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훌륭하다는 느낌이 없었다. 집으로 돌아간 스티브 잡스는 조너선 아이브를 호출한다.  그리고 함께 스티브 잡스의 부인이 가꾸고 있던 텃밭을 산책을 하면서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티브 잡스는 정원에 있는 꽃들 처럼 모든 요소들이 그 자체로 충실해야한다고 말했다.   불필요함 요소를 최대한 제거해야 한다는 스티브 잡스의 뜻을 알아차린 조너선 아이브는 새로운 디자인을 생각하게 된다. 마침 스티브 잡스가 예로 든 꽃은 해바라기 였는데 이에 영감을 얻은 조너선 아이브는 해바라기 모양을 한 아이맥 G4의 디자인 스케치를 단 하루만에 끝내버린다.


단순함에 대한 스티브 잡스의 집착은 제품개발에도 드러난다. 아이맥에서 플로피 디스크를 제거했고  맥북에어에서는 옵티컬 드라이브를 없앴다.  2005년 스페셜 이벤트에서 애플이 만든 리모컨을 발표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스타일로 만들어진 리모컨이라면서 버튼이 여섯개 밖에 없는 제품을 보여주었다. 이 리모컨이야 말로 애플이 어떤 회사인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고 말한 스티브 잡스는 버튼 숫자가 40개가 넘는 게이트 웨이와 HP에서 만든 리모컨과 비교를 해주었다. 애플의 리모컨과 타회사의 리모컨을 나란히 비교해놓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스티브 잡스는 이 그림만큼 애플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고 말하였다.


단순함에 끊임없는 추구는 애플이 사용자 인터페이스에서 혁신을 일으키는데 원동력이 되고 있다. 애플의 인터페이스는 복잡함을 최대한 제거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뇌하고 노력한 끝에 만들어진 걸작이다.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로 중무장한 매킨토시는 기존의 복잡한 인터페이스를 직관적이고 단순화 시켰다. 키보드 위의 수많은 버튼을 눌러야 실행시킬 수 있는 명령들을 매킨토시는 마우스 하나로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아이팟은 수천곡의 노래를 단번에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크롤 휠 덕분에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에서 버튼을 최소화하도록 지시했다. 버튼을 줄여야 조작도 그만큼 쉬워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능이나 메뉴를 넣을 때 애플에서는 그것이 꼭 필요한 구성요소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자문자답을 해본다. 천번이상의 노를 외치면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해간다. 이런 노력으로 아이팟에는 전원버튼이 없다.  스티브 잡스는 메뉴버튼도 없애려고 했지만 개발자들의 만류로 이를 포기했다고 한다.


아이폰 역시 단숨함의 절정을 보여준다. 아이폰은 물리적인 키보드와 스타일러스 펜을 제거하고 오직 손 하나로 모든 것을 조작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단순한 인터페이스 덕분에 휴대전화 업계에 큰 변화를 주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처음 아이폰이 처음 등장하자 스티브 발머는 아이폰이 너무 비싸다면서 키보드가 없다는 이유로 아이폰을 비아냥 거렸다는 점이다. 이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차이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존에 성공한 제품이 있으면 그것에 무엇인가를 추가하는 플러스 디자인을 추구한다


하지만 애플은 무엇인가를 제거하는 마이너스 디자인이다. 이는 타블렛 컴퓨터에서 잘 드러난다. 2002년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존 컴퓨터에 터치패드와 스타일러스 펜이 추가한 타블렛 PC를 선보였다. 2001년 처음 타블릿 PC를 소개할때 빌게이츠 5년이내에 가장 많이 팔리는 PC가 될것이라고 말할정도로 타블렛 PC 성공을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타블렛 PC는 거창한 시작과는 달리 시장에서 참패를 하였다


그리고 이제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를 들고나오자 빌 게이츠는 키보드와 스타일러스펜이 없는 아이패드의 등장에 시큰둥했다. 하지만 아이패드는 발매된지 8개월여만에 15000만대라는 놀라운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또 한번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빌 게이츠의 생각이 꼭 틀린 것은 아니다. 지금의 아이패드도 언젠가는 키보드와 스타일러스펜이 추가될 날도 올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극도의 단순함을 추구하는 스티브 잡스는  무엇이가를 제거함으로써 혁신을 만들어왔다는 사실이다. 비록 주변으로부터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지만 말이다.



<애플2로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개척하고  매킨토시로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 시장을 열었으며 레이저 라이터로 전자 출판혁명을 일으켰으며  토이스토리로 3D영화 시대를 창조하더니 아이팟으로 음악시장을 송두리째바꾸었고 아이폰으로 휴대폰의 혁신을 일으키고 아이패드로 다시한번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낸 스티브 잡스를  위대한 기획자의 측면에서 분석한 "기획의 신 스티브 잡스" 이야기는 다음에도 계속 됩니다.>

 

덧붙이는 말 : 하단에 보이는 다음뷰의 추천버튼 클릭 하나 페이스북의 좋아요 버튼 클릭 하나가 글쓴이에게 큰 힘을 준다는 사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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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애플이 IT 산업을 변화시킨 것 만큼이나 애플은 디자인분야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연 애플 2의 성공은 컬러그래픽이라는 기술적인 요소도 있었지만 PC역사상 최초로 케이스에 플라스틱을 사용한 덕분에 가전제품처럼 누구나 친근함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애플2의 성공 이후 컴퓨터 업계는 너도나도 컴퓨터 케이스에 플라스틱 소재를 채용하기 시작하였다. 매킨토시는 이후 이른바 스노우 화이트라는 독창적인 디자인방식을 채택하였다. 스노우 화이트는 본체의 형태, 컬러, 서체, 소재, 제작방식등 필요한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담은 애플만의 디자인 방식이다. 스노우 화이트 디자인으로 제작된 애플의 제품들은 격찬을 들었고 컴퓨터 업체는 이번에도 애플의 디자인에 영향을 받았다. 스노우 화이트는 디자인의 교과서로 통하면서 개인용 컴퓨터 업계 전체에 깊은 영감을 주었다. 

 

그런데 한 시대를 풍미하던 스노우 화이트 디자인을 깨고 새로운 시대를 연것도 바로 애플이다. 97년에 등장한 아이맥은 사탕을 연상케하는 푸른빛에 투명디자인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아이맥의 성공으로 애플은 부활찬가를 부를 수 있었고 이른바 투명 디자인은 IT 업계뿐만 아니라 전체 업계에 누드 디자인을 유행시켰다. 애플의 디자인 파워는 휴대용 기기 시장에 진출하면서 더욱 강력해졌다. 컴퓨터는 집에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디자인을 다른 사람에게는 제품을 자랑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아이팟과 아이폰은 휴대용 기기로 가방이나 지갑처럼 항상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다. 그래서 아이팟과 아이폰은 보석처럼 아름다운 디자인 덕분에 가방이나 지갑처럼 패션아이템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아이폰과 아이팟의 훌륭한 디자인은 애플이라는 브랜드가 명품으로 인식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애플이 디자인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역시 스티브 잡스가 디자인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디자인에 전폭적인 후원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제품을 만들 때 철저히 디자인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실제로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이란 사람이 만들어낸 창조물의 근본적인 영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집착한다.  다른 회사들은 제품의 겉면 정도로 밖에 생각하지 않지만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에 대해서 정말 진지하게 생각한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디자인은 참 재미있는 단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디자인을 단순히 제품의 외형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사실은 제품이 어떻게 작동하느냐를 의미하는 것이죠. 맥의 디자인은 단순히 외형만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외형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작동 방식입니다. 정말로 디자인을 잘하고 싶다면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즉 제품의 본질에 완벽하게 통달해야만 합니다. 겉핥기가 아니라 완벽하게 제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열정적으로 헌신을 다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일에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지요. “


- 스티브 잡스, 1996년 <와이어드> 인터뷰 중에서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을 단순히 제품의 겉모습 정도로 생각하지 않는다. 위에 말대로라면 스티브 잡스에게 디자인이란 제품의 본질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애플의 제품 개발 방식은 디자인팀을 중심으로 해서 돌아간다.  이는 애플과 다른 회사의 가장 중요한 차이이기도 하다.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팀의 조너선 아이브와 매일 만나서 제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스티브 잡스와 조너선 아이브가 서로 만나서 대화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스티브 잡스와 조너선 아이브를 일컬어 자이브(Jives) 라는 별칭으로 부를 정도다. 


애플의 전 CEO였던 존 스컬리는 Cult of Mac과의 인터뷰에서 디자인에 대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차이에 대해서 들려준 적이 있다. 존 스컬리의 지인이 업무차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본사를  방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디자이너들이 나타났는데 거기 모여있던 사람들이 순간 대화를 멈추었는데 이는 디자이너들이 애플이라는 조직에서 가장 존중받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애플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디자이너들과 직접 대면하면서 일을 하는데 이렇게 스티브 잡스처럼 CEO가 직접 디자이너의 보고를 받는 회사는 유일할 것이라고 존 스컬리는 설명한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과는 달랐다고 한다. 존 스컬리의 지인이 마이크로소프트를 방문해서 회의를 하는데 참석한 사람중에 디자이너는 단 한명 도 없었고 오직 기술을 다루는 사람들이 모여서는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를 토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존 스컬리는 이러한 방식은 재앙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애플처럼 회사의 최상부에서 디자인을 다루지 않으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을 채용해봐야 관료주의에 의해서 묻히게 되어있다고 말한다. 관료주의에 의해서 중간에 결재를 하지 않는 간부가 있기 마련이고 결국 제품은 타협의 산물이 되기 때문이다. 


애플의 새로운 라이벌로 부각되는 구글 역시 디자인에 대해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별반 다를바 없다. 구글은 창업한지 7년동안 교육을 받은 정식 디자이너가 없었다. 그리고 정식으로 교육받은 디자이너로 더글라스 바우만(Duglas Bowman)이 고용되지만 구글이 디자인에 접근하는 방식에 거부감을 느끼고 3년만에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그에 의하면 구글은 회사 전체가 엔지니어로만 가득차 있어서 구글은 어떤 문제를 공학적으로 풀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각 문제들은 단순한 논리문제로 간략화해서 결정해 버리기 때문에 모든 주관성은 배제하고 단순히 데이터로만 본다는 것이다. 데이터를 모든 의사결정에서 지나치게 의존하다보니 정작 대범한 디자인을 결정하는데 장애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구글의 디자인 환경에 지쳐버린 그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스티브 잡스는 디자이너들이 제품 개발을 주도할 수 있도록 회사의 제품 개발 프로세스 자체를 통합적으로 운영한다. 이는 전통적인 개발방식과는 거리가 먼것으로 디자인과 하드웨어 그리고 소프트웨어팀이 함께 모여서 동시다발적으로 한번에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스티브 잡스가 통합적인 작업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컨셉트카로부터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모터 쇼에서 정말 멋진 디자인을 자랑하는 차들이 막상 4년후에 실제 제품으로 출시되고 나면 매우 형편없어지는 경우가 있다. 


분명 멋진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고 승리가 눈앞에 있던 회사가 패배하고 마는 이유를 스티브 잡스는 단계별 작업 방식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디자이너들이 정말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지고서 엔지니어에게 가지고 가면 이를 본 엔지니어들은 이런건 불가능한 것이라면서 자신들은 할 수 없다고 부정적으로 말한다. 이때부터 상황은 나빠지기 시작한다.  제조를 담당하는 사람에게 찾아가면 또 그들은 이런건 만들수 없다고 답하게 되고 제품 디자인은 더욱 나뻐진다는게 스티브 잡스의 생각이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컨셉트카와 같은 고질적인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모든 부서들이 깊은 협력을 맺을 수 있는 통합적인 작업 프로세스를 마련한 것이다. 


개발단계에서부터 디자인팀이 주도적으로 개발을 이끌어 갈수 있도록 힘을 주는 동시에 스티브 잡스는 디자이너들이 창의적으로 일할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디자이너들은 업계평균의 50%가 넘는 액수인 20만달러를 초임으로 받고 있다. 최첨단의 값비싼 장비를 갖춘 애플 디자인팀은 회사 캠퍼스 내부 깊숙한 곳에 위치하였는데 디자인실은 애플직원들도 함부로 들어갈수 없는 독립성이 보장된 공간이다. 애플의 디자인팀은 외부의 간섭이 철저히 배제되었기 때문에 애플이 아니라 소규모 디자인 회사에 있는 분위기를 가지게 되었다.


애플 디자인팀이 아이디어를 얻는 원천은 소재에 있다. 조너선 아이브는 디자인을 공부할 때는 3차원 기술에 의존하지 말고 직접 재료를 이용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봐야 한다고 말한다. 소재를 충분히 이해하면 제품구조의 틀도 잡힌다는 조너선 아이브를 비롯한 애플의 디자인팀은 소재에 대해서 끊임없이 연구를 하고 실험을 하면서 소재를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실제로 애플은 플라스틱, 알루미늄, 유리, 티타늄, 마그네슘, 폴리카보네이트등의 각종 소재를 활용해서 애플만의 독특한 디자인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아이맥은 플라스틱을 사용해서 고급스런 반투명 케이스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애플의 노트북 역시 알루미늄을 활용한 디자인이다. 애플은 하나의 알루미늄을 가공하여 그안에 부품을 넣는 혁신적인 제조 공법이다. 애플은 알루미늄을 사용함으로써 얇고 고급스러우면서도 튼튼한 노트북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알루미늄 하나로 노트북을 만들기 때문에 환경오염도 막을 수 있는 부수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애플 디자인팀 마이클 룹에 의하면 애플 디자인을 결정할 때는 실제와 똑 같은 실물 모형을 만든다고 한다. 실물모형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지만 애플은 나중에 발생할 수 있는 실수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에 완벽한 실물모형을 만든다는 것이다. 애플의 디자이너들은 아무런 제약없이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실물 모형으로 10개를 만든다. 10개의 실물 모 형중에서 몇 개월에 걸쳐서 3개의 형태로 압축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1개의 디자인을 선택하게 된다.  디자이너들은 매주 두종류의 회의에 참석하게 된다. 하나의 회의는 브레인 스토밍으로 불리우는데  아무런 제약도 없고 자유롭게 무엇이든지 말할 수 있다. 이때는 개발자들이 미친 아이디어들을 내놓는다. 이와는 별도로 브레인 스토밍과는 반대되는 제작회의가 있다. 제작회의는 브레인 스토밍 회의에서 나온 터무니 없는 아이디어들을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는지를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이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된다. 


디자이너들은 단순히 아이디어만 내놓는 집단이 아니다. 이 부분도 애플과 다른 회사의 가장 중요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디자인 컨셉이 결정되고 나면 직접 공장을 방문해서 자신들의 디자인이 현실화 될 수 있도록 제조공정을 직접 주도한다. 다른 회사는 기존에 있는 제조라인에 맞춰서 디자인을 하지만 애플은 기존의 제조설비에 구애받지 않고 디자인을 결정하고 나면 제조라인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조너선 아이브를 스카우트하였고 한때 애플 디자인팀을 이끌었던 로버트 브루너에 으하면 애플 디자이너들이 아이디어를 생각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의 순수한 디자인 업무에 들어가는 시간은 10퍼센트에 불과하고 나머지 90%는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한 제조공정에 힘을 쓴다. 디자인 팀원들은 몇주일씩 공장에 상주해서는 제조상황을 검토하고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노력한다. 애플 디자인팀은 아이맥의 투명하고 고급스런 플라스틱을 구현하기 위해서 사탕봉지를 만드는 공장을 방문해서 공부했다. 


까다로운 공정을 가진 아이맥을 대량생산하기 위해서 아시아 파트너들과 몇 달을 함께 보냈다. 2001년 티타늄으로 만든 최초의 컴퓨터를 선보일때는 조너선 아이브와 디자인팀들은 샌프란시스코의 한 창고에서 6주일동안 디자인을 하고서는 제조업체와 협상하기 위해서 직접 아시아로 출장을 갔다. 아이팟은 하나의 제품에 두가지 소재가 자연스럽게 결합된듯한 느낌으로 고급스러움을 더 했는데 이는 하나의 면에 여러가지 색상을 합치는 더블샷이라는 제조공법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더블샷은 기존에 없는 새로운 공법이었다. 더블샷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애플이 여러 해동안 주형기법을 연구해온 결과이다. 더블샷 공법은 아이팟에 적용하기 힘들었지만 디자인팀은 투명플라스틱에 만든 여러 제품으로 끊임없이 실험한 끝에 겨우 성공할 수 있었다.



애플 디자인의 완성은 결국 스티브 잡스이다. 디자이너들이 만든 결과물을 꼼꼼하게 검토하고 디자이너들이 더 나은 결과물을 내놓도록 끊임없이 압박하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좋은 디자인이 아니라 위대한 디자인을 원한다. 비록 스티브 잡스가 직접 선하나 그리지 않지만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하게 포착하는 미적인 감각을 갖추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이런 감각은 하루이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정식으로 디자인을 배우지 않았지만 이미 매킨토시를 개발할 때는 독학을 통해서 산업 디자인 용어에 익숙해져 있었다. 리드 컬리지에서 서체디자인을 공부했던 그는 출력 인쇄물의 서체와 색상을 미친 사람처럼 탐구하였고 한때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을 공부하기도 했다. 프랭크 로이드 같은 건축가를 꼼꼼히 연구하면서 자신의 미적감각을 발전시켰다. 물론 35년을 넘게 현업에 근무하면서 디자이너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다양한 제품을 완성하고 성공시킨 경험만큼 값진 것은 없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성공이 오늘날 보여주는 교훈은 너무나 자명하다. 디자인이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기획자가 직접 그림을 그릴 수는 없어도 디자인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좋은 디자인과 그렇지 못한 디자인을 구분할 수 있는 미적인 감각을 가져야 한다. 정말 스티브 잡스처럼 되고 싶다면 디자이너가 구사하는 전문적인 용어를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지식을 쌓아야 할 것이다.



<애플2로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개척하고  매킨토시로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 시장을 열었으며 레이저 라이터로 전자 출판혁명을 일으켰으며  토이스토리로 3D영화 시대를 창조하더니 아이팟으로 음악시장을 송두리째바꾸었고 아이폰으로 휴대폰의 혁신을 일으키고 아이패드로 다시한번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낸 스티브 잡스를  위대한 기획자의 측면에서 분석한 "기획의 신 스티브 잡스" 이야기는 다음에도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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