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 이야기2015.08.12 07:00







학생들을 위한 교육용으로 컴퓨터가 각광받자 급속도로 붕괴되는 산업 분야가 있었으니 바로 가정용 게임기 시장이었다. 사실 컴퓨터와 가정용 게임기는 같은 기술로 시작한 쌍둥이와도 같고 동시에 라이벌이기도 했다. 컴퓨터가 보급되기 전에 이미 가정용 게임기 아타리 VCS 2600가 2천만 대 넘게 판매되면서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당시 가정용 컴퓨터의 마케팅 포인트는 우선 게임을 할 수 있으며 그밖에 다른 일도 할 수 있는 만능 기계로 강조하는 것이었다. 가정용 게임기의 보완재이자 대체재로써 컴퓨터를 강조하여 초기의 컴퓨터 보급을 이끌었는데 마침 컴퓨터 과목이 정식으로 학교의 교과 과목으로 채택됐을 때 컴퓨터 회사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실행한다. 게임기는 아이의 학업을 망치지만 컴퓨터는 아이를 대학에 보내준다는 것으로 이와 같은 캠페인은 놀라운 파괴력을 발휘해 실질적인 경제권을 갖고 있는 부모들이 집에 있는 게임기를 버리고 새롭게 컴퓨터를 구입하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컴퓨터의 보급이 늘어가면 갈수록 놀랍게도 가정용 게임기 시장은 붕괴되었고 결국은 거짓말처럼 시장 자체가 증발되었다.


가정용 게임기 시장의 붕괴를 뜻하는 아타리 쇼크 후에 등장한 닌텐도의 문제는 당시 게임에 부정적이었던 여론들이었다. 실제로 처음 닌텐도가 미국 시장에 진출할 당시 언론들은 미국 사정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어느 일본의 무식한 기업가가 미국에 게임기를 들고 나왔다고 비아냥 거렸다. 당시 미국에서는 게임이란 이미 철이 지나도 한 참 지난 유행 같은 것이었다. 롤러 스케이트장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다가 사라졌듯이 미국에서는 게임은 그런 대접을 받고 있던 시기였다. 


이때 닌텐도의 사장인 야마우치 히로시는 가정용 게임기 시장 붕괴의 원인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수준이 떨어지는 게임들이 무분별하게 시장에 쏟아져 나온 것이 문제라고 봤다. 시장에서 질이 낮은 게임을 구매한 고객들이 게임이라는 매체 자체에 실망하고 그 다음에는 게임을 아예 구매하지 않게 됐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시장에 검증받은 양질의 게임 콘텐츠만을 제공하면 충분히 가정용 게임기 시장을 부활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바라본 미국 시장은 훨씬 더 심각했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너무 심한 나머지 유통업체에게 가정용 게임기인 패미컴을 소개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아예 닌텐도 사람을 대놓고 무시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판매 책임자는 야마우치 히로시의 사위였던 아라카와 미노루였는데 오랫동안 해외에서 근무해봤기 때문에 미국의 그런 현 사정을 너무나 잘알고 있었다. 우선 그는 패미컴이라는 제품명을  NES(Nintendo entertainment)로 바꾸고 여러가지 준비끝에 미국 최고의 전자제품 전시회인 CES에 출품해봤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이미 게임이라면 진절머리가 났는지 가정용 게임기를 전시하고 있는 닌텐도의 부스 자체를 방문하지도 않고 외면했다. 이때 아라카와 미노루는 너무나 큰 좌절감을 느낀 나머지 야마우치 히로시에게 미국 시장에서 철수하고 싶다고 밝힐 정도였다. 하지만 야마우치 히로시는 호통을 치면서 끝까지 책임을 다하라고 주문한다. 그러면서 500만 달러의 금액을 제시하면서 마케팅에 총력을 기울이도록 지시했다.


결국 아라카와 미노루는 패미컴이 가정용 게임기로 시장에 접근하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패미컴이 게임기라는 이미지로부터 탈피 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래서 패미컴의 디자인도 새롭게 수정하고 각종 부가 기능을 추가했다. 또한 패미컴은 그 자체가 패밀리 컴퓨터라는 약자에서 보여 주듯이 단순히 가정용 게임기가 아니라 컴퓨터의 기능도 고려한 제품이라고 선전했다. 사용자들은 패밀리 컴퓨터로 베이직 언어를 이용하거나 워드프로세서 작업도 할 수 있었고 또한 사운드 칩을 내장해 이를 통해 컴퓨터 음악도 구현할 수 있었는데 아라카와 미노루는 이와 같은 장점을 강조하면서 판촉전을 펼쳤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유통회사로부터 단 한 건의 주문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아라카와 미노루는 다시 완구 제품의 이미지로 패미컴을 재정립하기에 이른다. 닌텐도가 일본에서 내놓아 크게 히트한 완구제품인 로봇 형태의 장난감 R.O.B(Robotic Operating Buddy)를 보너스로 추가해 함께 판매한 것이다.






 R.O,B는 말 그대로 로봇 형태의 장난감이었는데 패미컴의 컨트롤러로 각종 움직임을 조종할 수 있었고 이는 많은 아이들에게 매력적인 상품이었다. 또한 재퍼라는 총 모양의 컨트롤러도 함께 추가했는데 이는 총을 쏘는 사냥 게임으로 실제로 체감하는 느낌의 재미를 살린 제품이었다. 아라카와 미노루의 미국 지사는 당시의 기준으로 일반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가정용 게임기가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으로 패미컴을 유통업체에 소개한 덕분에 그나마 완구점을 통해 판매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게임시장이 순식간에 증발해버린 미국에서 새롭게 가정용 게임기를 판다는 것은 여전히 어려움이 많았다.  애초에 패미컴을 취급해주는 가게는 그야말로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패미컴의 판매는 계속 지지부진 하였고 결국 닌텐도는 파격적인 유통안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닌텐도는 패미컴을 가게에서 전시해주기만 해도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로 하였다.   무료로 패미컴의 견본품을 보내주는 것은 물론이고 만약 가게에 패미컴을 전시할때는  닌텐도 직원들이 직접 찾아가서 패미컴을 설치하였고 가게 전체를 예쁘게 인테리어까지 해주었다. 


또한 패미컴의 재고가 생길 때 100% 환불해주기로 하는등 유통 상인의 입장에서는 패미컴을 상점에 전시한다고 하면 손해볼것도 없었고 오히려 이익이 더 많았다. 사실 일본에서 패미컴을 유통하는 사람은 무조건 선불금을 내고 물건을 가져가야 했으며 재고는 절대로 받아주지 않았던 점을 생각하면 미국에서의 각종 인센티브는 파격 그자체로서 시장 개척을 위해 닌텐도가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패미컴이 팔리든 안 팔리든 부담이 없었던 미국의 유통점들은 가게 한 켠에 패미컴을 전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유통점을 하나씩 장악하던 중에 마침 미국 최고의 성수기인 크리스마스 시즌이 돌아왔고 이때 아이들을 위해 선물을 고르던 부모들은 가게에 예쁘게 전시되어 있던 장난감으로서의 패미컴이 눈에 띄었는데 이때를  계기로 하여 패미컴 판매에 불이 당겨졌다. 한번 패미컴의 판매가 상승하기 시작하자 그야말로 식을줄을 몰랐고 이미 죽었다는 게임시장은 완벽하게 부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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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게임 기획2013.04.25 07:33



어떤분과 대화를 하다가 아타리 쇼크는 많이 과장되어있으며 실제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사건이라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의외로 아타리 쇼크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단순한 비판을 넘어선 조롱과 비웃음을 날리는 분들까지 있습니다.  1983년과 1985년사이에는 "쇼크"라는 단어를 사용할 만큼 비디오 게임산업의 위기는 없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아타리 쇼크라는 단어 그자체에 대해서 논란은 있을지라도  아타리쇼크라고 불리울수 있을정도의 아타리의 붕괴나 몰락은 분명히 있었던 사건입니다. 


 제가 게임과 관련되어서 최고의 책이라고 생각하는 "게임 대학"(http://imbc.gamemeca.com/feature/view.php?category=F&gid=124159)에도 아타리쇼크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아타리는 게임 비즈니스의 왕으로 군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재난은 83년에 찾아왔습니다. <아타리 VCS>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매출이 갑자기 떨어진 것입니다. <아타리 VCS>가 전혀 팔리지 않게 되었던 것입니다. 원인은 서드파티가 우후죽순처럼 참여하여 게임소프트를 마구잡이로 만든 결과 유저가 게임에 싫증을 내고 아타리는 고객에게 신용을 잃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타리 쇼크'가 일어난 것은 1983년 초였습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기세였던 아타리는 83년에 들어서자 막대한 결손을 안은 적자 회사로 전락했습니다.


미국의 경영학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아타리 쇼크가 일어난 것입니다."



제가 앞에서 인용한 게임 대학의 저자인 히라바야시 히사카즈는 자신의 글에서 아타리쇼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주3 원래 아타리 쇼크란 83년 가을에 일어난 워너의 주식 대폭락을 가리키는 것으로 월스트리트의 증권계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었다. 즉 달러 쇼크, 오일 쇼크와 마찬가지로 본래 아타리 쇼크는 주가의 '폭락'을 의미했다.


사실 아타리쇼크라는 단어의 어원이 어디에서 생겼느냐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런데 100% 정확한 어원은 누구도 밝힐수 없을겁니다. 왜냐하면 그 단어는 게임을 아는 사람 대부분은 알고 있는 용어이고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용어인데 이 용어를 누가 시작했는지 어찌알수 있습니까?   우리가 사용하는 어원을 다 알수 있습니까? 아타리쇼크라는 단어보다는 과연 아타리쇼크같은 사건이 벌어졌느냐입니다. 1983년에 어떤 사건이 벌어졌는데 그 사건에 대해서 아타리쇼크라는 단어가 타당하냐 그게 문제라는거죠.


러셀 드마리아와 조니 L 윌슨의 저서인 게임의 역사라는 책에는 아타리의 몰락(혹은 아타리의 쇼크)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해 크리스 마스 , 아타리가 요란하게 광고했던 E.T는 기대했던것과는 정반대의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결국 아타리 2600 버전 팩맨과 E.T가 보여준 문제들은 소비자들에게 아타리 제품에 대한 불신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불신은 비디오 게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기에 충분했다. 결국 아타리내부의 소수가 예견한대로 아타리는 대붕괴의 벼랑 끝에 서기 시작한 것이다. (107장)


아타리 쇼크는 아타리 붕괴 혹은 비디오 게임 붕괴라는 말로도 자주 사용됩니다.


Atari Crash , videogame crash1983 이라는 단어로 구글에서 검색해보십시오. 구글에서 얼마든지 발견할수 있습니다.


다시한번 이야기하지만 아타리쇼크나 아타리 붕괴라는 단어 그 자체가 중요하기보다는 정말 중요한것은 아타리 쇼크라는 단어를 사용할정도로 그런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느냐가 문제겠죠?


1982년까지 게임시장은 승승장구 했습니다. 당시 아타리 내부관계자는 " 난 쓰레기를 카트리지에 넣어서 백만개를 팔수도 있어"라고 말할정도로 자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1983년 6주만에 졸속제작된 ET가 이름값만 믿고 500만장을 제작했지만 대부분 재고로 남으면서 아타리의 위기가 시작됩니다. 게임의 시대 220장에는 아타리 붕괴의 전조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비디오 게임 산업에서 <ET> 굼뜬 진행과 시시한 이야기로 악명이 높았다. 그 게임은 스필버그의 귀여운 외계인이 여러가지 위험을 피하면서 은하계 장비를 모으는 내용으로, 아타리 2600의 기준으로 보아도 그래픽이 조악하기 짝이 없었고, 주인공 ET는 게임 내내 구멍속으로 허우적거렸다. 아타리는 <팩맥>의 실패에 뒤이어 <ET>도 끔찍한 꼴을 당했다. 그래도 <팩맨>카트리지는 수백만개 팔렸으나 <ET> 카트리지는 대부분 재고로 썩었다."


그리고 같은 220장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아타리에서 최신 아케이드 히트작을 가정용 버전으로 내놓아도 매출이 오르지 않았고 게임시장은 빠르게 식어갔다. 소비자들은 이미 아케이드 게임에 관심을 잃었으며, 1983년에는 가정용 게임 소프트웨어도 구매하지 않았다. 1982년 내내 놀라운 성장을 기록한 게임 산업이 갑자기 끝없는 블랙홀로 빨려든것이다. 1982년 10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능가를 운운하며 장밋빛 전망으로 게임 산업을 수놓았던 "타임"은 불과 일년 만인 1983년 10월 17일에 다음과 같이 우울한 기사로써 게임 산업의 붕괴를 전했다.


<스페이스 인베이더>,<애드더로이드>등 고전적인 가정용 게임도 게임을 개척한 워넉 커뮤니케이션의 아타리사는 현재까지 3억 560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이미 직원 1만명 가운데 3000명을 해고하고, 대부분의 제작시설을 홍콩과 타이완으로 옳겼다. 그리고 인테리비전 게임의 판매부진으로 2억 100만달러의 적자를 안게된 메텔 일렉트로닉스는 직원 1800명 가운데 37퍼센트를 감원했다. 액티비전도 <엔두로<와 <로봇탱크>등이 히트를 쳤지만 지난 3개월 동안 300~500만다럴의 적자가 발생했다. 아케이드 비디오 게임기 선두 업체인 불리사도 수익이 85%나 감소했다. "


1983년말 아타리는 5억 3600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했고 이때부터 몰락한 비디오 게임 시장은 붕괴하기 시작합니다. 게임이 너무 안팔려서 아타리는 게임 카트리지를 뉴멕시코 사막의 쓰레기 매립장에다가 수백만장을 버리기까지 했습니다.


액티비전의 회장이었던 짐 레비는 당시 상황을 다음처러 서술합니다.


"1983년 중반기의 상황은 뭐랄까, 마치 무너져가는 건물속에서 건물이 무너지기 전까지 비상구에 도달하길 바라며 달려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사실 나는 언제 아타리가 덤핑 경쟁에 뛰어들지 의문이었습니다. 아타리에서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 말하고 했지요, 그러나 아타리가 가진 재고의 수량은 엄청났고, 결국 아타리 역시 덤핑 경쟁에 뛰어들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아타리가 그 일을 시작하자 모든 것의 종말이 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타리의 붕괴와 함께 비디오 게임 산업 전체가 같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


EA의 창업자 트립 호킨스 역시 게임의 역사라는 책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모두에게 끔찍한 시기였습니다. 대부분의 소매상인들이 아타리의 추락과 함께 망하거나 또는 게임 유통을 포기하거나 했기 때문이지요. 새로운 유통망을 구축하는데 거의 2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또 소비자들은 소비자들대로 아타리의 몰락을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를 지켜보며 비디오 게임은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게임 자체를 꺼리게 되었습니다. "


아타리의 몰락은 비디오게임에만 영향을 끼친게 아닙니다. 게임의 시대 252장에서도 당시 상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1984년에 이르자 비디오 게임 산업은 붕괴했고 코모도어 64의 판매량도 한계에 다다랐다. 1984년 중반, 코모도어는 아타리 규모의 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지만 애플은 시장에서의 명성 덕분에 코모도어나 아타리처럼 급격히 매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일렉트로릭 아트(EA)가 훌륭한 데뷔작으로 성공을 거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컴퓨터 게임산업은 비디오 게임산업처럼 불황으로 치달았다."


다시 게임의 시대에서 트립 호킨스는 1983년 아타리의 몰락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정말이지 게임 업계에 지독한 세월이었어요. 너무나 끔찍했지요, 애플 II 게임을 내놓더라고 1만 5000개를 팔기 힘들었어요. 일렉트로닉 아트를 시작했을때는 카트리지 게임이나 플로피 디스크 게임을 만드는 업체가 130여군대나 되었지만 , 그 가운데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회사는 불과 6군데 뿐입니다."



1) 1983년 32억달러였던 비디오게임 시장이 8억달러로 줄어들었습니다.


2) 게임이 너무 안팔려서 유통업체들이 붕괴를 하였고 남아있는 재고 수백만장을 사막에 버렸습니다.


3) 아타리는 사상최고의 적자행진을 기록했고 워너브로더스의 소유의 아타리는 다음회사로 매각당합니다.


4) 많은 게임관련업체들이 망하거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하였고


5) 비디오 게임을 죽었다는 기사들이 언론을 장식합니다.


6) 현업에서 일하는 경영자는 너무나 지독하고 끔찍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와 같은 사건을 뭐라고 지칭하는게 좋을까요?  비디오 게임 산업 붕괴 1983이라는 말을 쓸수도 있고 아타리 몰락 혹은 아티라 붕괴라고도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련의 사건을 아타리 쇼크라고 지칭한다고 해서 그게 말도 안되는 이야기일까요? 정말 저런 일련의 사건들과 업체 사람의 증언에도 불과하고 "쇼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게 무리인가요? 이런사건 앞에서 쇼크라는 단어 붙이는 사람을 완전 얼간이 바보취급에 사람 비웃고 조소를 날리는 것이 과연 옳은 행동일까요? 자신과의 생각이 달라도  이미 사람들이 범용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아타리의 몰락과 함께 벌어진 일련의 비디오 게임 산업의 붕괴를 설명하는데 아타리 쇼크라는 단어만큼 효율적인 용어가 있을까요? 아타리 쇼크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애초에 쇼크라고 불릴수있는 만큼의 사건이 없었다고 주장하는것입니다. 즉 아타리쇼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애초에 비디오 게임 산업의 몰락자체가 없었다고 생각하는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스티븐 켄트의 저서로 한국에서는 게임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책속의 17장 "비디오 게임은 죽었다" 챕터에 적힌  문장 두개를 인용하면서 이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의 모든 인쇄 언론들은 비디오 게임의 죽음에 대해 계속해서 써댔어요, 마치 그러한 이야기를 즐기기나 하는 것처럼 "비디오 게임은 죽었다. 비디오 게임은 갔다. 이제 비디오 게임은 과거의 역사가 되어버렸다"라고 말이에요.


-허브 웨스봄 [CBS뉴스] 기자-


아타리가 박살나자 판매사들의 큰 타격을 입었어요. 그런 사람들 앞에서는 비디오 게임이라는 말을 꺼낼 수 조차 없었어요. 잘못해서 실수로 말했다가 주차장에 끌려나가 몰매를 맞을수도 있었으니까요


-짐 훰스, 전 월드 오브 원더 부사장-



덧붙이는 말:   사람마다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다를 수 있습니다. 1983년에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 어떤 용어를 붙이든지 개인마다 다를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1983년에서 1985년 사이에 벌어진 비디오 게임 산업의 극적인 몰락에 대해서  저는 아타리 쇼크라는 단어가 이미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기에 그 단어를 사용했을뿐 제가 만든 단어가 아닙니다. 저는 1983년과 1985년에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쇼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게 오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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