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디자인'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12.02 애플의 혁신은 디자인의 혁명이었다. (15)
  2. 2010.12.01 애플의 실패 극복 스토리 (26)
애플 이야기2010.12.02 08:22



애플은 그동안 수많은 혁신을 이루어냈다. 애플2 컴퓨터로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창조했으며, 매킨토시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아이맥으로 USB와 WIFI 같은 신기술을 대중화하였다. 아이팟과 아이튠스는 음악을 듣는 방법에 일대 혁명을 불러일으켰고, 아이폰은 휴대폰을 재 발명해서 전 세계 이동통신 시장에 새로운 빅뱅을 불러오고 있다. 애플은 제품뿐만 아니라 디자인을 통해서도 업계 전체에 강한 충격파를 선사했다.

애플은 로고부터 다른 회사와 달랐다. 원래 애플의 로고는 공동 창업자였던 론 웨인이 직접 펜으로 사과나무 밑에 뉴튼이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었다. 하지만 애플이 정식회사가 된 이후에 스티브 잡스는 새롭게 로고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레지스 맥키너에게 디자이너를 물색해 달라고 했고, 롭 야노프(Rob Janoff)를 소개받는다. 스티브 잡스는 절대 귀여워 보이면 안 된다는 조건을 걸고 일을 맡긴다.

롭 야노프는 사과 모양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버전의 로고를 그려왔는데 스티브 잡스는 애플2 컴퓨터가 컬러를 지원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로고에도 다양한 색상이 들어가기를 바랐다. 이를 참고로 롭 야노프는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모양에 무지갯빛의 화려한 색상이 칠해진 로고를 완성해낸다.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모양에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아담과 이브의 사과를 의미한다는 것에서부터 사과에 독을 넣어서 죽은 천재과학자 앨런 튜링을 기리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롭 야노프에 의하면 사과의 모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를 그려야만 했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체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야노프가 그린 로고는 스티브 잡스의 마음에 쏙 들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로고에 들어간 화려한 색상을 사용하게 되면 인쇄비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회사 로고에 3가지 이상의 색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금기 같은 것이 있었다. 애플 내에서도 회사 로고의 색상을 하나로 통일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스티브 잡스의 끈질긴 고집으로 무지갯빛 애플 로고가 정식으로 사용될 수 있었다. 화려한 색들이 회사를 좀 더 인간미 있게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늘의 애플을 만들어 놓은 애플2 컴퓨터 역시 컴퓨터 디자인의 혁명을 불러왔다. 애플2 컴퓨터는 업계 최초로 플라스틱 케이스를 사용하여 기존의 컴퓨터보다 훨씬 세련된 다자인을 선보였다. 물론 스티브 잡스의 노력의 결과다. 애플1 컴퓨터는 엄밀히 말하면 조립이었기 때문에 케이스가 필요 없었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 마니아가 아니라도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대중적인 컴퓨터를 원했기에 누구에게나 친숙한 디자인이 필요했다. 스티브 잡스는 백화점을 돌아다니면서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을 연구했고, 컴퓨터가 가전제품처럼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플라스틱 케이스를 소재로 컴퓨터를 만들 결심을 한다. 마침 스티브 잡스는 휴렛 팩커드 출신의 프리랜서 제리 마녹(Jerry Manock)을 알게 되었고, 그에게 일을 맡길 수 있었다. 키보드와 본체 일체형으로 만들어진 애플2 컴퓨터는 플라스틱 케이스를 사용한 덕분에 좀 더 세련되고 산뜻한 디자인이 가능했다. 애플2 컴퓨터의 외형은 당시로는 획기적이었고, 다른 컴퓨터보다 책상 위에 올려놓은 모습이 훨씬 깔끔하고 세련되었다. 그 후 개인용 컴퓨터 업체들은 애플의 영향을 받아서 컴퓨터에 플라스틱 케이스를 채용하기 시작했다.

애플2 컴퓨터의 성공 이후 스티브 잡스는 더욱더 디자인에 집착하게 된다. 애플이 디자인을 통해서 다른 회사와 차별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좀 더 과감한 시도를 계획한다.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를 찾는다는 각오로 유명잡지를 통해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한다. 백설 공주의 일곱 난장이에서 이름을 딴 제품을 디자인하는 미션을 통해 소니에서 디자인을 담당했던 독일 출신의 하르무트 에슬링어(Hartmut Esslinger)를 발굴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하르무트 에슬링어의 회사인 프로그 디자인(Frog Design)에 월 10만 달러라는 거액과 각종 추가경비를 청구할 수 있는 파격적 조건으로 애플을 위해 독점적으로 일한다는 계약을 맺는다.


그 후 스티브 잡스와 애플2의 케이스 디자인을 맡았던 제리 마녹, 프로그 디자인은 힘을 합쳐서 이른바 ‘스노우화이트 디자인’을 완성한다. 케이스의 로고 모양이나 컬러 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뿐만 아니라 컴퓨터 표면 처리까지 담긴 애플 내부의 디자인 양식이다. 스노우화이트 디자인이 최초로 적용된 애플2 컴퓨터는 등장하자마자 놀라운 디자인으로 격찬을 들었으며, 1984년 <타임>이 선정하는 올해의 디자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스노우화이트는 매킨토시에 그대로 전수되었으며 이후 개인용 컴퓨터 업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스노우화이트 디자인은 10년이 넘는 동안 컴퓨터 업계의 교과서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애플2와 매킨토시로 컴퓨터 디자인의 새 바람을 일으킨 애플은 또다시 아이맥으로 새로운 시대를 연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하얀 베이지색의 컴퓨터 케이스는 애플이 만들어 놓은 표준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아이맥이 바로 그 벽을 깨버렸다. 사탕 같은 푸른 빛깔의 일체형 투명 케이스를 자랑하는 아이맥은 지금까지의 컴퓨터에서는 볼 수 없는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아이맥에서 구현한 화려한 색상과 속이 다 보이는 누드 디자인은 단순히 컴퓨터 업계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산업계 전체에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애플 입장에서 보면 아이맥은 단순한 히트 상품이 아니었다. 애플에서 스티브 잡스 다음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인 조너선 아이브를 세상에 알린 작품이라는 게 중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조너선 아이브는 대학교 때만 해도 컴맹 수준으로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매킨토시를 접하면서 그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매킨토시에 완전히 반해 버린 그는 누가 이렇게 훌륭한 매킨토시를 개발했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그는 애플과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애플이라는 회사의 매력에 빠져든다. 조너선 아이브는 대학 졸업 후 탠저린(Tangerine)이라는 회사를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동으로 설립한다. 이때는 욕조, 변기, 세면대, 빗 등 다양한 소비자 제품들을 디자인했다. 1992년이 되자 애플에서는 디자인 회사인 탠저린에게 노트북과 관련된 디자인을 의뢰한다. 이때 조너선 아이브가 내놓은 디자인에 감명을 받은 애플 디자인팀은 조너선 아이브를 아예 본사로 스카우트하기로 결정한다. 평소부터 애플에 큰 호감을 가지고 있던 조너선 아이브는 탠저린이 직접 창업한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영국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면서까지 선택한 회사였지만 당시 애플의 상황은 기대 이하였다. 대학시절부터 애플에 대해 품고 있었던 환상과 사랑은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큰 좌절감을 선사하였다. 회사생활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있었을 즈음에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돌아온다. 스티브 잡스는 디자이너에 대한 기대치가 누구보다도 큰 사람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조너선 아이브를 보고 그가 그토록 꿈꾸던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임을 알고 감격했다. 처음부터 스티브 잡스가 조너선 아이브를 알아본 것은 아니다. 무려 1년 동안이나 스티브 잡스는 조너선 아이브를 방치하였다. 나중에야 조너선 아이브의 존재를 알고 면담을 하기로 약속을 잡았는데, 이때 조너선 아이브는 바지 뒷주머니에 사직서를 넣은 채 스티브 잡스를 만났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는 조너선 아이브를 만난 후 그에게 중책을 맡기기로 결정했고, 그 첫 번째 작품이 바로 아이맥이었다. 아이맥의 성공은 흥행성 높은 스티브-조너선 쇼의 시작이었다. 스티브 잡스와 조너선 아이브는 매일 만나 업무를 이야기할 정도로 밀접한 사이가 되었다.

아이맥으로 단단해진 둘의 밀월관계는 아이팟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아이팟은 휴대용 기기가 패션 아이템이 될 수 있다는 것, 특히 뛰어난 색깔 하나가 제품 판매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여실히 증명했다. 아이팟 1세대에서 보여준 고급스러운 흰색과 검정색은 많은 화제가 되었다. 아이팟 나노의 경우 연필보다 얇은 두께와 작은 크기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아홉 가지의 화려한 색상으로 다양한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아이팟이 시장을 독점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애플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어폰이 흰색이라는 것 역시 아이팟이 다른 MP3 플레이어와 구분되는 중요한 디자인이었다. 애플은 단순히 아이팟 본체와 색깔을 맞추기 위해서 이어폰을 흰색으로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흰색 이어폰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하나둘 흰색 이어폰에 대해서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초창기 흰색 이어폰을 낀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구별되었고 그만큼 멋져 보였다. 길거리에서 흰색 이어폰을 낀 사람들끼리는 일종의 유대감이 있었다. 애플 마니아들끼리만 느낄 수 있었던 친밀감이었다. 아이팟 이전에는 충성도 높은 애플 마니아라도 자신의 신분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흰색 이어폰은 애플 마니아라는 징표와도 같았다.

아이팟을 초창기에 구매한 애플 마니아들은 일종의 광고판이 되어 주었다. 흰색 이어폰은 어디에서나 눈에 띄었고, 사람들은 그것이 아이팟이라는 애플의 새로운 MP3 플레이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리 곳곳에서 흰색 이어폰을 한 사람들이 늘어나자 아이팟의 판매량은 더욱더 가파르게 상승했다. 애플은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모두 검정색으로 실루엣 처리한 후 흰색 이어폰을 강조하는 영상을 만들어 광고에 적극 활용했다. 흰색 이어폰은 어느덧 아이팟의 상징이 되었다. 애플이라는 쿨한 브랜드는 소수의 멋쟁이가 사용한다는 이미지였다. 그러다 보니 아이팟의 판매량이 늘어나면 애플의 쿨함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우려와 달리 아이팟은 음악의 대명사가 되어 갔고, 학생들 사이에서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하는 현상까지 벌어졌다. 모르는 사이 흰색 이어폰은 시대의 아이콘이며, 필수적인 패션 아이템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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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애플 이야기2010.12.01 08:22

1. 애플 1 컴퓨터 애플 2 컴퓨터의 초석이 되다.





애플 1 컴퓨터는 스티브 잡스의 차고에서 만들l진 제품으로 애플 신화의 시작이 되는 작품입니다만 판매량은 175대에 불과한 작품입니다. 두명이서 시작한 회사치고는 괜찮은 성적이었지만  애플1 컴퓨터를 유럽에 팔생각으로 샘플까지 보냈던 스티브 잡스의 야망은 충족시켜주지 못했죠. 스티브 잡스는 애플 1 컴퓨터의 문제는  한마디로 메인보드만 파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컴퓨터에 전문적인 지식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전압기나 키보드 같은 장치들을 구입해서 따로 완성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판매량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었고 스티브 잡스는 일반인들에게도 쉽게 다가갈수 있는 컴퓨터를 구상합니다.  완제품 형태의 컴퓨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나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필요했죠. 이때 스티브 잡스는 백화점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그는 퀴진아트 믹서기에 영향을 받아서 플라스틱을 채용한 디자인을 내놓습니다. 이것은 개인용 컴퓨터 업계에서 최초이자 개인용 컴퓨터 디자인의 유형을 제시한 큰 사건이 됩니다.  애플 1에서 애플 2컴퓨터로의 진화는 분명합니다. 애플 1이 컴퓨터 애호가들에게나 통하는 제품으로 판매에 한계가 있었으니 일반 대중 누구나 친숙한 제품이 되어야 한다는 각오로 만들어진 제품이 바로 애플2 컴퓨터 였던겁니다.

2. 리사의 끔찍한 실패  매킨토시를 탄생 시키다.




리사는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그래픽 운영체제를 채택한 제품으로 의의가 있지만 문제는 두가지 문제로 끔찍한 실패를 경험합니다.  리사는 가격이 9,995달러였고 정작 소프트웨어가 부족했습니다. 애플은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은 잘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부에서 소프트웨어문제를 해결할려는 과욕을 부립니다. 외부 업체협력없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려다가 극심한 소프트웨어 부족으로 리사는 실패하게 됩니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개발하면서 가격문제와 소프트웨어 문제를 위해서 총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매킨토시는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채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애플 2 가격의 절반인 500달러짜리 컴퓨터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죠. 스티브 잡스의 현란한 말솜씨 잘알고 있지 않습니까? 부품 제조사를 찾아가서 가격을 낮추기 위한 협상을 하였습니다. 모토로라의 CPU는 9달러에 공급받기로 했는데 이는 원래 모토로라가 제시한 가격의 4분의 1밖에 안되는 가격이었답니다. 이렇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매킨토시는 1955달러 가격에 겨우 맞출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존 스컬리가 애플2 컴퓨터와 경쟁할 수 있다는 이유로 2500달러에 판매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래도 리사에 비해서 가격은 훨씬 싸진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리사의 실패에서 스티브 잡스가 깨달은 또다른 교훈은 바로 소프트웨어입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가 완성되기 전에 외부의 소프트웨어 회사를 돌아다니면서 매킨토시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달라고 하죠. 그때 접촉한 대표적인 회사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도스로만 성공한지 알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매킨토시를 통해서 일대 도약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에 대한 노하우를 매킨토시에서 쌓게 되거든요.  로터스 같은 메이저 업체와 접촉하기도 하지만 어도비처럼 차고에서 이제막 시작된 회사를 발굴하기도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어도비가 개발한 포스트 스크립트 기술을 라이센스 받고  회사에 250만달러를 투자하면서 어도비 성공의 일등공신이 되었죠. 스티브 잡스와 어도비의 관계는 단순히 회사관계를 넘어 그 이상의 것이 존재하는 사이랍니다. 외부 소프트웨어 업체에 대한 노력은 WWDC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아이폰을 발표해서 더욱 유명해진 WWDC는 전 세계의 개발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 놓고서 기술을 공개하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1983년부터 시작한 행사입니다. 애플은 이른바 에반젤리스트를 두고 외부의 개발자가 매킨토시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설득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애플이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1995년에도 300명의 에반젤리스트가 7,500만 달러의 예산을 가지고 외부 개발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담당해왔답니다.

3. 실패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아이맥




아이맥은 등장과 함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6주 만에 30만 대가 팔렸고, 1년 동안 2백만 대나 팔리더니, 나중에는 600만대의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최고의 베스트셀러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아이맥의 성공으로 적자에 시달리던 애플은 3억 950만 달러의 흑자회사로 변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아이맥은 실패한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원래 애플은 저가형의 맥 NC를 개발중이었습니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돌아오기전 부터 진행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돌아온 이후에 강력한 구조조정을 펼쳤는데 50개의 프로젝트중에서 단 10개만이 살아났는데 다행히 맥 NC는 스티브 잡스의 선택을 받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맥 NC를 선택한 이유는 디자인이 너무나 예뻤기 때문입니다.  맥 NC의 프로토타입을 자신의 사무실에 놔두고 감탄을 했다죠. 그런데 NC는 래리앨리슨이 주창한 네트워크 컴퓨터의 개념인데 안타깝게도 NC는 쫄딱 망하고 맥 NC역시 사라질 운명에 처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이 너무나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디자인 중심의 매킨토시 개발을 지시합니다. 이때 선택된 인물이 바로 조너선 아이브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돌아온후 1년동안 자신을 방치하자 사직서를 들고 다녔던 조너선 아이브였는데 스티브 잡스가 조너선 아이브의 능력을 알아보고  맥NC의 개념을 확대해서 인터넷에 최적화된 컴퓨터 즉 아이맥 개발을 지시합니다. 그리고 이 컴퓨터는 이른바 반투명 컴퓨터의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적자 상태의 애플을 구원하게 됩니다.

4. 하드웨어에서 실패한 스티브 잡스 소프트웨어를 진지하게 고민하다.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는 의기양양하게 넥스트를 창업합니다 넥스트 스테이션을 만들지만 정부기관을 제외한 판매량은 5만 대에 그쳤고 넥스트에서 만든 또 다른 컴퓨터인 넥스트 큐브 역시 실패했습니다. 결국 스티브 잡스는 회사에서 하드웨어 사업을 철수하고야 맙니다. 스티브 잡스는 1994년 인터뷰에서 컴퓨터는 아무리 잘 만들어봐야 두 배 뛰어난 제품은 만들기도 힘들고, 운이 좋아서 1.33배나 1.5배 정도 빠른 컴퓨터를 만들 수 있지만 그래봐야 6개월이면 따라잡히고 만다고 한탄합니다. 그러면서 소프트웨어에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죠. 실제로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에서 하드웨어 사업을 철수하고 소프트웨어 사업에 접목합니다. 원래 스티브 잡스가 소프트웨어보다는 하드웨어 애착이 강하고 하드웨어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완전히 생각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올인한 이 부분에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고 나중에 4억달러라는 거액에 넥스트를 애플에 팔수가 있었고 스티브 잡스도 자신의 고향에 복귀할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소프트웨어 중심적으로 사고하면서 애플을 부활시킵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아름다운 상자안에 맥 OS X를 파는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MP3 플레이어 업체들의 형편없는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보고서는 아이팟으로 MP3플레이어 사업에 진출할 계획을 세우는등 철저히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사고하고 있죠. 그래서 언론에서는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소프트웨어에 있다고 합니다. 애플이 다망해가는 시점에서 소프트웨어를 들고 애플을 구원했다는 거죠. 하드웨어사업에서의 실패 그리고 소프트웨어 중심의 사고 이것이 바로 스티브 잡스의 2막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5. 애플 디자인의 아름다움 실패에 있다.


애플의 디자인은 왜 아름다울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무수한 디자인을 만들 수 있는 환경 덕분입니다.  애플은 실제와 똑같은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제품을 평가합니다. 실제로 애플 디자이너들은  엄청난 실패작들을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답니다. 오히려 실패작을 만드는 것에 기뻐하는데 그 이유는  실패작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는 거죠.  애플 디자인팀은 틀린것이라도 추구하고 이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탐험하는데 있다고 합니다.  당장의 실패가 시간과 비용을 낭비시키는것 같지만 결국에는 실패를 반복하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가 결국 디자이너를 발전시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듯합니다. 실패작을 연발해도 좌절하기 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것을 찾은 것이라며 좋아하는 문화야 말로 애플 디자인의 원동력이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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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