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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4.12 스티브잡스가 워즈니악을 만났을 때






내가 10살인가 11살 때쯤 에임스에 있는 나사 연구소에서 처음으로 컴퓨터를 보았어요. 그것은 진짜 컴퓨터는 아니었고, 컴퓨터와 선으로 연결된 단말기였죠. 어쨌든 나는 눈을 뗄 수 없었죠. 내가 처음으로 데스크톱 컴퓨터를 본 것은 9100A라 불리는 휴렛 팩커드의 제품입니다. ABL과 베이직이 돌아가는 세계 최초의 데스크톱 컴퓨터였어요.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스티브 잡스, 스미스소니언 협회 인터뷰 중에서



스티브 잡스는 어린 시절부터 각종 기기들에 푹 빠져 살았다. 한때 기계공으로 일했던 아버지는 차고에서 여러 기기를 수리하거나 제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주위를 맴돌며 기계와 친해졌다. 스티브 잡스가 다섯 살이 되자 아버지는 그를 위해 작업대를 직접 만들어 주면서 망치 같은 공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덕분에 각종 기계에 친숙해진 그는 휴렛 팩커드의 엔지니어인 래리 랭을 만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어린 시절 스티브 잡스가 살던 동네는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본거지였으며, 마침 HP 같은 벤처기업들이 성공 신화를 쓰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과수원 촌 동네였던 지역에 엔지니어들이 몰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동네는 엔지니어들의 천국으로 변해갔다. 이웃이었던 래리 랭은 호기심 많은 아이였던 스티브 잡스에게 부품을 이용해서 각종 전자장치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친절한 래리 랭의 가르침을 통해 전자제품의 내부 작동원리를 이해하게 되었고, 실제로 몇 가지 전자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스티브 잡스의 식견은 아버지도 깜짝 놀랄 정도로 발전했다. 전자제품에 대한 지식을 익히면 익힐수록 그는 성취감과 함께 강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전자기기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그에게 일종의 도피처이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는 학교에서 외톨이였지만 전자기기에 대한 열정 덕분에 쿠퍼티노 중학교에서 빌 페르난데스(Bill Fernandez)라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둘은 동급생들과는 어울리지 못했지만 동네의 엔지니어들과 친교를 맺으면서 전자기기에 더욱 탐닉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학교생활에 관심은 없었지만 전자기기에 대한 열망으로 ‘와이어 헤드(Wirehead)’라고 불리는 전자공학 관련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주말이 되면 각종 전자부품을 다루는 가게에서 점원으로 아르바이트 일을 했고, 전자부품에 대한 열정은 때론 뻔뻔한 거짓말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새로운 전자기기를 만들던 그는 부족한 부품을 얻기 위해 회사에 전화를 해서는 새로운 전자장치에 필요한 부품을 구한다는 거짓말로 샘플을 무료로 받아내었던 것이다.


전자기기에 대한 관심은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을 만나면서 고스란히 컴퓨터로 옮겨졌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1950년 프란시스 제이콥 워즈니악(Fransis Jacob Wozniak)과 어머니 마가렛 루이스 워즈니악(Margaret Louise Wozniak) 사이에서 태어난다. 프란시스 제이콥 워즈니악은 록히드(Lockheed)에서 일하는 유능한 엔지니어였다. 성공한 아버지의 자녀들이 그렇듯이 워즈니악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엔지니어가 되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는 워즈니악에게 과학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었고, 덕분에 또래 아이들보다 월등한 지식을 자랑했다. 워즈니악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과학경진대회의 상들을 휩쓸었으며 6학년 때는 고등학생도 만들기 어려운 과학 과제물을 내놓아서 선생님을 놀라게 했다. 학교에서 과학과 수학의 천재로 명성이 드높았던 워즈니악은 아버지가 보는 공학 저널에서 세계 최초의 컴퓨터인 에니악(ENIAC) 관련 기사를 읽고는 그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이때부터 컴퓨터는 그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워즈니악은 이웃집에 살던 빌 페르난데스와 의기투합하여 직접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한다. 어느 날 스티브 잡스가 친구인 빌의 집에 방문했고, 마침 워즈니악이 만들고 있는 컴퓨터를 목격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의 컴퓨터와 전문 지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워즈니악 역시 자신의 말을 바로 이해하는 스티브 잡스가 마음에 들었다. 둘은 전자기기에 대한 열정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로 공통점이 많았다. 둘 다 장난을 좋아하고 특히 비틀즈와 밥 딜런의 음악을 사랑했는데, 함께 만나면 새로운 장난꺼리나 음악을 이야기하면서 더욱 친해졌다. 


벤처 자본가들은 두 명의 친구가 함께 공동으로 창업한 회사를 선호한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는 두 명의 파트너가 있다는 것은 사업을 할 때도 더 현실적이고, 추진력 있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많은 벤처기업들이 두 명의 창업자로부터 시작되었다. 세계 1위의 개인용 컴퓨터 제조업체인 HP는 벤처기업의 원조로 인정받는데, 이 회사는 빌 휴렛(Bill Hewlett)과 데이비드 패커드(David Packard) 두 명이서 차고에서 시작한 회사다. 인텔 역시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와 고든 무어(Gordon Moore) 둘이서 시작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이 창업했다. 인터넷 시대에도 이런 공식은 계속되고 있다. 제리 양(Jerry Yang)과 데이비드 파일로(David Filo)가 야후를 함께 만들었으며, 대학원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을 공동으로 설립했다. 이러한 전형적인 벤처 스토리는 애플에서도 그대로 재현된다. 애플의 창업 역시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이 파트너 관계를 맺으면서 시작된다. 워즈니악은 기술에 능했고, 스티브 잡스는 기획이 뛰어났는데 둘의 능력이 결합되면서 환상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둘은 같은 아웃사이더이고, 장난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이것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반대되는 인물이다. 스티브 잡스가 한때 마리화나까지 필 정도로 뼛속까지 히피였다면, 워즈니악은 30살까지 술 한 모금 마시지 않았으며,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은 대단히 인기 있는 남자라고 생각할 정도로 히피와는 거리가 먼 순진한 사람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외향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생각을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했지만, 워즈니악은 모임에 나가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될 정도로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스티브 잡스 역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대외관계가 원만치 않았으나, 누구에게든 위축되는 법이 없었고 뻔뻔스러울 정도의 배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부품을 구입하기 위해 둘이 상점에 들어가면 워즈니악은 필요한 부품을 바라볼 뿐 점원과의 가격 협상은 노련한 스티브 잡스의 몫이었다. 워즈니악이 엔지니어였다면, 스티브 잡스는 기획자였다. 스티브 워즈니악이 자신의 기술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내면 이를 돈이 되는 사업으로 만드는 것이 스티브 잡스의 역할이었다. 워즈니악이 공짜로 전화를 걸게 해주는 블루박스를 만들었고, 이를 상품화한 것은 스티브 잡스였다.


워즈니악이 기술에 의존했다면 스티브 잡스는 자유로운 발상과 창조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워즈니악이 현실에 만족하며 살았다면 스티브 잡스는 항상 배고픈 강한 야망의 소유자였다. 이러한 둘의 성향은 애플 컴퓨터의 개발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애플 컴퓨터는 워즈니악이 우연히 파퓰러 일렉트로닉스(Popular Electronics)라는 잡지를 보면서 시작됐다. 1975년 1월 파퓰러 일렉트로닉스는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컴퓨터 알테어 8800(ALTAIR 8800)의 탄생을 대서특필하였다. 이 기사는 당시 컴퓨터 애호가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으며, 미국 전역에서 알테어 8800을 구입하고자 제작사인 MITS에 서로 수표를 보낼 정도로 난리였다. 알테어 8800의 인기는 제작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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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