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이야기2010.12.01 08:22

1. 애플 1 컴퓨터 애플 2 컴퓨터의 초석이 되다.





애플 1 컴퓨터는 스티브 잡스의 차고에서 만들l진 제품으로 애플 신화의 시작이 되는 작품입니다만 판매량은 175대에 불과한 작품입니다. 두명이서 시작한 회사치고는 괜찮은 성적이었지만  애플1 컴퓨터를 유럽에 팔생각으로 샘플까지 보냈던 스티브 잡스의 야망은 충족시켜주지 못했죠. 스티브 잡스는 애플 1 컴퓨터의 문제는  한마디로 메인보드만 파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컴퓨터에 전문적인 지식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전압기나 키보드 같은 장치들을 구입해서 따로 완성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판매량에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었고 스티브 잡스는 일반인들에게도 쉽게 다가갈수 있는 컴퓨터를 구상합니다.  완제품 형태의 컴퓨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나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필요했죠. 이때 스티브 잡스는 백화점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그는 퀴진아트 믹서기에 영향을 받아서 플라스틱을 채용한 디자인을 내놓습니다. 이것은 개인용 컴퓨터 업계에서 최초이자 개인용 컴퓨터 디자인의 유형을 제시한 큰 사건이 됩니다.  애플 1에서 애플 2컴퓨터로의 진화는 분명합니다. 애플 1이 컴퓨터 애호가들에게나 통하는 제품으로 판매에 한계가 있었으니 일반 대중 누구나 친숙한 제품이 되어야 한다는 각오로 만들어진 제품이 바로 애플2 컴퓨터 였던겁니다.

2. 리사의 끔찍한 실패  매킨토시를 탄생 시키다.




리사는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그래픽 운영체제를 채택한 제품으로 의의가 있지만 문제는 두가지 문제로 끔찍한 실패를 경험합니다.  리사는 가격이 9,995달러였고 정작 소프트웨어가 부족했습니다. 애플은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은 잘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부에서 소프트웨어문제를 해결할려는 과욕을 부립니다. 외부 업체협력없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려다가 극심한 소프트웨어 부족으로 리사는 실패하게 됩니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를 개발하면서 가격문제와 소프트웨어 문제를 위해서 총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매킨토시는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채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애플 2 가격의 절반인 500달러짜리 컴퓨터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시작됩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죠. 스티브 잡스의 현란한 말솜씨 잘알고 있지 않습니까? 부품 제조사를 찾아가서 가격을 낮추기 위한 협상을 하였습니다. 모토로라의 CPU는 9달러에 공급받기로 했는데 이는 원래 모토로라가 제시한 가격의 4분의 1밖에 안되는 가격이었답니다. 이렇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매킨토시는 1955달러 가격에 겨우 맞출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존 스컬리가 애플2 컴퓨터와 경쟁할 수 있다는 이유로 2500달러에 판매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래도 리사에 비해서 가격은 훨씬 싸진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리사의 실패에서 스티브 잡스가 깨달은 또다른 교훈은 바로 소프트웨어입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가 완성되기 전에 외부의 소프트웨어 회사를 돌아다니면서 매킨토시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달라고 하죠. 그때 접촉한 대표적인 회사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도스로만 성공한지 알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매킨토시를 통해서 일대 도약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에 대한 노하우를 매킨토시에서 쌓게 되거든요.  로터스 같은 메이저 업체와 접촉하기도 하지만 어도비처럼 차고에서 이제막 시작된 회사를 발굴하기도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어도비가 개발한 포스트 스크립트 기술을 라이센스 받고  회사에 250만달러를 투자하면서 어도비 성공의 일등공신이 되었죠. 스티브 잡스와 어도비의 관계는 단순히 회사관계를 넘어 그 이상의 것이 존재하는 사이랍니다. 외부 소프트웨어 업체에 대한 노력은 WWDC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아이폰을 발표해서 더욱 유명해진 WWDC는 전 세계의 개발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 놓고서 기술을 공개하고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1983년부터 시작한 행사입니다. 애플은 이른바 에반젤리스트를 두고 외부의 개발자가 매킨토시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설득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애플이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냈던 1995년에도 300명의 에반젤리스트가 7,500만 달러의 예산을 가지고 외부 개발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담당해왔답니다.

3. 실패 프로젝트에서 시작된 아이맥




아이맥은 등장과 함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6주 만에 30만 대가 팔렸고, 1년 동안 2백만 대나 팔리더니, 나중에는 600만대의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최고의 베스트셀러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아이맥의 성공으로 적자에 시달리던 애플은 3억 950만 달러의 흑자회사로 변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원래 아이맥은 실패한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원래 애플은 저가형의 맥 NC를 개발중이었습니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돌아오기전 부터 진행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돌아온 이후에 강력한 구조조정을 펼쳤는데 50개의 프로젝트중에서 단 10개만이 살아났는데 다행히 맥 NC는 스티브 잡스의 선택을 받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맥 NC를 선택한 이유는 디자인이 너무나 예뻤기 때문입니다.  맥 NC의 프로토타입을 자신의 사무실에 놔두고 감탄을 했다죠. 그런데 NC는 래리앨리슨이 주창한 네트워크 컴퓨터의 개념인데 안타깝게도 NC는 쫄딱 망하고 맥 NC역시 사라질 운명에 처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이 너무나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디자인 중심의 매킨토시 개발을 지시합니다. 이때 선택된 인물이 바로 조너선 아이브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돌아온후 1년동안 자신을 방치하자 사직서를 들고 다녔던 조너선 아이브였는데 스티브 잡스가 조너선 아이브의 능력을 알아보고  맥NC의 개념을 확대해서 인터넷에 최적화된 컴퓨터 즉 아이맥 개발을 지시합니다. 그리고 이 컴퓨터는 이른바 반투명 컴퓨터의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적자 상태의 애플을 구원하게 됩니다.

4. 하드웨어에서 실패한 스티브 잡스 소프트웨어를 진지하게 고민하다.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는 의기양양하게 넥스트를 창업합니다 넥스트 스테이션을 만들지만 정부기관을 제외한 판매량은 5만 대에 그쳤고 넥스트에서 만든 또 다른 컴퓨터인 넥스트 큐브 역시 실패했습니다. 결국 스티브 잡스는 회사에서 하드웨어 사업을 철수하고야 맙니다. 스티브 잡스는 1994년 인터뷰에서 컴퓨터는 아무리 잘 만들어봐야 두 배 뛰어난 제품은 만들기도 힘들고, 운이 좋아서 1.33배나 1.5배 정도 빠른 컴퓨터를 만들 수 있지만 그래봐야 6개월이면 따라잡히고 만다고 한탄합니다. 그러면서 소프트웨어에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죠. 실제로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에서 하드웨어 사업을 철수하고 소프트웨어 사업에 접목합니다. 원래 스티브 잡스가 소프트웨어보다는 하드웨어 애착이 강하고 하드웨어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완전히 생각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올인한 이 부분에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고 나중에 4억달러라는 거액에 넥스트를 애플에 팔수가 있었고 스티브 잡스도 자신의 고향에 복귀할 수 있게 되었죠.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소프트웨어 중심적으로 사고하면서 애플을 부활시킵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아름다운 상자안에 맥 OS X를 파는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MP3 플레이어 업체들의 형편없는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보고서는 아이팟으로 MP3플레이어 사업에 진출할 계획을 세우는등 철저히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사고하고 있죠. 그래서 언론에서는 애플에 돌아온 스티브 잡스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소프트웨어에 있다고 합니다. 애플이 다망해가는 시점에서 소프트웨어를 들고 애플을 구원했다는 거죠. 하드웨어사업에서의 실패 그리고 소프트웨어 중심의 사고 이것이 바로 스티브 잡스의 2막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5. 애플 디자인의 아름다움 실패에 있다.


애플의 디자인은 왜 아름다울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무수한 디자인을 만들 수 있는 환경 덕분입니다.  애플은 실제와 똑같은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제품을 평가합니다. 실제로 애플 디자이너들은  엄청난 실패작들을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답니다. 오히려 실패작을 만드는 것에 기뻐하는데 그 이유는  실패작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는 거죠.  애플 디자인팀은 틀린것이라도 추구하고 이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탐험하는데 있다고 합니다.  당장의 실패가 시간과 비용을 낭비시키는것 같지만 결국에는 실패를 반복하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가 결국 디자이너를 발전시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듯합니다. 실패작을 연발해도 좌절하기 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것을 찾은 것이라며 좋아하는 문화야 말로 애플 디자인의 원동력이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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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IT2010.04.01 08:17

저는 우리나라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여러가지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IT 분야에서 활약은 정말 대단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걱정되는게 우리가 한단계 도약하지 않으면 지금 일본이 겪는 문제를 똑같이 반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가격 경쟁력 역시 한 몫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격 경쟁력이라는 문제에서 보면 나중에 우리는 중국이라는 경쟁자를 만나게 될것입니다. 일본이 한국기업때문에 요즘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는데 한국은 나중에 중국때문에 더 크게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제조업의 숙명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제조업의 생산기지가 미국에서 일본으로 그리고 지금은 한국과 대만으로 넘어오는데 결국지금 한국이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제조업 산업의 우위는 중국으로 넘어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선업을 보면 그런 전조가 보입니다. 불과 몇년전만해도 세계 제1위의 조선강국이라면서 그 신화를 찬양하는 글들을 수없이 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조선업으로  검색하면 중국에 의해서 위기를 겪고 있는 한국 조선업계를 진단하는 기사가 수두룩합니다.  조선업 신화가 이렇게 금방 위기론으로 퍼지는 것을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의 다른 산업 역시 중국이라는경쟁자에 의해서 어려움을 겪게 될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을겁니다. 다행히 지금은 시간이 있기 때문에 너무 조급해 하지말고 대책을 세우면 될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미래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선발주자가 후발주자에게 역전당하는 것을 보면 일등보다 성능이 좋은데 가격이 비슷하면 일등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실 이래서 2등이 편한겁니다. 1등이 만든제품에다가 기능을 몇가지 추가하고 가격은 싸게 만들면 되니 고민할것도 없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는 중국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 상황들을 잘 분석하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즉 후발주자보다 성능도 부족하고 가격도 비싼데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업체들이 있기 때문이죠.

제가 그 토록 강조하면서 한국이 업그레이드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기업으로 손 꼽는 애플과 닌텐도가 있습니다.

애플과 닌텐도는 짝퉁을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누군가  짝퉁을 만들었다고 해봐야 별 타격이 없지요. 또한 경쟁 회사가 더 좋은 스펙과 싼 가격을 무기로 공격한다고 해도 그리 치명적인 타격을 받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에게 소프트웨어 파워가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소프트웨어를 팔기위해서 하드웨어를 만드는 느낌까지 드는 회사들입니다.  애플과 닌텐도는 소프트웨어의 힘을 보여줍니다. 특히 하드웨어 중심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지요. 사실 애플과 닌텐도에 대한 논쟁을 벌이다 보면 항상 그럽니다. 별로 대단하지도 않은 하드웨어 가지고 왜 그렇게 찬양을 하냐고? 애플과 닌텐도의 힘은 하드웨어 스펙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힘에서 나온다고 해도 스펙중심으로 하드웨어를 평가하는 그들에게는 그 어떤 논리도  통하지 않습니다.

애플의 아이팟을 보십시오. 아이팟 보다 가격이 싸고 좋은 MP3 세상에 수도 없이 넘쳐납니다. 짝퉁 역시 너무나 많구요. 하지만 아이팟은 시장을 사실상 독점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팟의 힘은 무엇일까요?

하드웨어의 성능이 아니라 아이튠스와 같은 소프트웨어 덕분이지요.

지금의 아이폰도 보십시오. 아이폰보다 좋은 하드웨어 스펙을 자랑하는 스마트폰이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폰이 자사의 하드웨어 스펙보다 뛰어난 스마트폰 때문에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하던가요?  아이폰 현상을 보면서도 스펙중심주의 사고 방식을 가지고 소프트웨어의 힘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앞으로도 애플이라는 회사를 계속 무시하게 될겁니다.

이는 닌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일 당장 누군가 닌텐도 DS보다 훨씬 뛰어난 휴대용 게임기를 내놓은다고 칩시다. 그런데 닌텐독스나 포켓몬스터같은 소프트웨어 없이 닌텐도와 경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닌텐도 Wii같은 모션 센스 컨트롤러를 넣고 훨씬 뛰어난 그래픽 기능으로 무장한 게임기를 내놓았다고 쳐봅시다. 젤다의 전설과 슈퍼마리오 같은 소프트웨어 없이 닌텐도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겠습니까? 닌텐도를 이기려면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경쟁해야 합니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팝니다. 닌텐도의 하드웨어 사업부는 자신들은 소프트웨어 사업부를 빛나게 해주는 조연이라고 까지 합니다.  닌텐도는 게임기 경쟁을 펼칠때마다 결국 승부는 소프트웨어에서 결정난다고 합니다.

애플의 흥망성쇠를 봐도 소프트웨어의 힘을 새삼 절감하게 됩니다.   1970년대 후반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놓고 애플 2, 코모도어, TSR-80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습니다. 하지만 1979년 오늘날의 엑셀과 같은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의 원조가 되는 비지캘크(VisiCalc)가 애플 2로 등장하면서 사실상 개인용 컴퓨터 전쟁의 승자가 됩니다. 비지캘크가 등장하기 전만 해도 개인용 컴퓨터는 실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않아서 그저 고급스런 사치품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재무관리를 쉽게 하도록 도와주는 비지캘크가 등장하자 개인용 컴퓨터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비지캘크가 애플2로 나온건 하드웨어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오죽하면 컴퓨터 업체의 성공을 추적한 로버트 크린즐리는 우연의 왕국이라는 책을 통해서 결국 회사의 성공이라는 것은 결국 노력보다는 행운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할까요?  비지캘크를 제작한 댄 브리클리는 유일하게 빌릴 수 있었던 컴퓨터가 애플2I였을뿐 그가 특별히 애플 2를 선호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로버트 크린즐리는 애플 2가 컴퓨터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댄 브리클리가 우연히 애플 2를 입수했기 때문으로 봅니다.

그리고 매킨토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1984라는 환상적인 광고와 충성도 높은 마니아들 덕분에 매킨토시는 출시 며칠간은 인기를 끌었습니다만 금방 판매량이 떨어집니다.  정작 매킨토시를 구입했지만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에 맞는 그래픽 소프트웨어등이 나오면서 디자이너와 같은 전문직들에게 사랑 받는 컴퓨터가 되면서 애플도 겨우 위기를 벗어나게 됩니다.
 
게임의 역사를 되돌아보아도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팔리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타리가 만든 가정용 게임기 VCS 2600은 출시 초기만 해도 판매량이 부진했습니다. 그래서 회사의 창업자인 놀런 부시넬은 실적 부진을 이유로 해고당하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해 일본 타이토 사에서 발매된 소프트웨어인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아타리의 VCS 2600의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기사회생했습니다. 닌텐도가 패미컴의 시대를 열 수 있었던 것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라는 소프트웨어 덕분이었습니다.



컴퓨터와 게임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결국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를 판다는 기본적인 명제를 만나게 됩니다 .   애플과 닌텐도가 아니라도 마이크로소프트가 소프트웨어만으로 전세계 컴퓨터 하드웨어 업체를 지배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역시 소프트웨어 힘을 가질때 미래도 보장 받을 수 있습니다.  요즘 국가의 격을 높인다면서 이런 저런 정책들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정말 우리나라가 한단계 올라가고 싶다면 우선 소프트웨어 강국이 되어야 합니다. 하드웨어힘만으로  후발주자와 경쟁한다면  후발주자들의 매서운 추격을 벗어나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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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애플 이야기2008.03.20 01:17


애플 연혁

1950년 애플의 공동창업자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서 태어나다.

1955년  스티브 잡스가 샌프라시스코미혼모인 조앤 캐롤에게 태어나지만 사내아이를 원하던 폴과 클라라 부인에게 입양된다.

1971년  홈스테드 고등학교를 같이 다니던 빌 페르난데즈의 소개로 21살의 대학생이었던 스티브 워즈니악과 교류하게 된다.

1972년  스티브 잡스가 오리곤주의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 칼리지 대학의 물리학과에 입학 하지만 한학기만 다니고 자퇴한다.

1974년  스티브 잡스는 퐁의 성공으로 당시 최고의 컴퓨터 벤처기업으로 군림하던 아타리에 취직하여 게임기획자가 된다.

1975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캘리포니아에 기반한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알테어 8800에 깊은 인상을 받은 스티브 워즈니악은 비싼가격으로 인해서 구입할 수가 없게 되자 손수 개인용 컴퓨터를 제작하기로 결심한다.

1976년 MOS Technology 6502 칩을 사용한 그들의 첫번째 컴퓨터 애플 1을 홈브로 컴퓨터 클럽에 최초로 선보인다.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는 상품화를 위해 휴렛패커드사람에게 애플 1을 보여주지만 거절당한다.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을 설득하여 직접 사업을 하자고 제안한다.  스티브 잡스는 자동차를 스티브 워즈니악은 전자계산기를 팔아서 사업자금을 마련한다. 둘은 스티브 잡스의 차고를 개조해서 애플컴퓨터를 설립하다. 그들의 첫번째 직원은 아타리사에서 알게된 론 웨인 이었다. 론 웨인은 애플의 첫번째 로고를 디자인했으며 매뉴얼 작성을 책임졌다.  애플1은 바이트 숍을 통해서 666달러에 주문을 시작한 후 열달에 걸쳐서 200여 대정도 판매된다. 
스티브 잡스는  레지스 메키나와 홍보와 광고 계약을 맺는다.

1977년 페어차일드와 인텔에서 마케팅 담당자로 일했던 백만장자 마이크 마큘라가 애플의 차고를 방문한 후 9만 2천달러의 투자를 결정한다. 그는 1985년에서부터 1997년까지 애플의 회장으로 근무한다.
세계 최초로 컬러를 지원하는 컴퓨터인 애플2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열린 WCCF(West Coast Computer Faire) 에서 소개되어 큰 인기를 끈다.
애플2가 1295달러에 정식 판매를 시작하고 첫달만에 백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한다.  애플의 CEO로 마이클 스캇이 임명된다.

1978년 최초로 플로피 디스크를 사용한 애플 II+를 출시하다. 마이크 마쿨라의 활약 덕분에300개가 넘는 판매점을 확보하게 되고 판매량은 전년도에 비해서 10배가 넘어선다. 늘어나는 매출과 수익으로 애플은 미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업체로 뽑히게 된다.
오늘날 애플이 있는 쿠퍼티노에 사옥이 들어서다. 애플의 본사는 애플캠퍼스라는 애칭을 얻는다.

1979년 애플은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2 만 천달러에 애플 베이직 소프트의 라이센스를 받고 판매를 시작한다.
최초의 스프레드 쉬트 프로그램인  비지캘크(VisiCalc)가 퍼스널 컴퓨터사를 통하여 백달러에 발매된다. 비지캘크의 높은 인기 덕분에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대세가 애플2로 급속히 기울어진다.

제록스는 애플의 주식 십만주를 백만달러에 투자한다. 이 거래를 통하여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엔지니어가 제록스의 연구소에 방문을 하고 거기서 그래픽기반의 운영체제를 탑재한 알토컴퓨터를 직접 목격한다.
애플의 컴퓨터는 타이핑 라이터가 아니라는 마케팅을 진행하면서 화제의 중심에 오른다.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타킷으로 한 교육용 컴퓨터 시장에 본격진출하다.

1980년 세계최초의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를 포함한 최고급 사양의 개인용 컴퓨터 리사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이를 위해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에서 15명의 새로운 인재들을 스카우트해온다.

애플의 직원이 천명을 넘어서고 판매점도 천개를 넘어선다.
애플이 주식시장에 공개되어 스티브 잡스는 2억 1천 7백만 달러의 갑부가 된다. 공동창업자인 투자자인 마이크 마큘라는 2억 3백만달러를 벌게된다.
3495달러에 애플 III를 출시하지만 각종 버그로 인하여 시장에서 혹평을 받고 애플 최초의 실패작으로 남는다.

1981년 애플의 이사회는 스티브 잡스를 리사 프로젝트에서 빠지도록 결정한다. 스티브 잡스는 리사와 같은 사용하기 쉬운 컴퓨터 컨셉이면서 가격은 대폭 낮춘 매키토시 프로젝트에 합류한다.

IBM의 본격적인 시장진출에 대해서 애플은 월스트리트 저널에 환영한다는 광고를 낸다. 하지만 IBM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선풍을 일으키자 애플은 위기의식에 가지게 된다.
세계화의 일환으로 애플은 프랑스 파리에 유럽 지사를 열다.
컴퓨터 업체 역사상 최초의 독자적인 행사인 애플 엑스포가 시작된다.

1982년 개인용 컴퓨터 업체중 최초로 10억달러 매출을 돌파하고 빌리온 달러 파티를 연다.( Billion Doller Party)

시사잡지 타임은 올해의 인물로 스티브 잡스를 내정하고 마이클 모리츠에게 관련 기사를 쓰도록 한다. 하지만 마이클 모리츠는 애플을 방문후 올해의 인물로 스티브 잡스가 아니라 개인용 컴퓨터로 교체한다.
대학교에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도구를 무상으로 제공하면서 대학교 마케팅을 본격화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의 차세대 컴퓨터인 매킨토시용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로 합의한다.

1983년 리사 컴퓨터가 9998달러에 발매된다. 언론으로부터 가장 혁신적인 제품으로 뽑히었으나 비싼가격으로 고객에게는 철저히 외면 당한다.
애플2 컴퓨터의 누적판매량이 백만대를 넘어서다.

초대 애플의 CEO였던 마이클 스캇의 후임으로 펩시의 마케팅 최고 책임자였던 존 스컬리를 영입한다.

1984년 궁금증을 자극하는 1984 빅브라더 광고를 선보여 매킨토시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다.

1월 24일 2495달러에 매킨토시가 정식으로 발매된다.
애플2의 누적판매량이 2백만대를 넘어서다.

1985년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백악관에 초대되어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국가 기술 유공자 메달을 받는다.
애플의 공동창업자중에 한명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회사를 그만두고 비디오 관련 회사인 CL9회사 설립하다..
매킨토시의 판매부진에 대한 책임으로 스티브 잡스는 모든 직무에서 손을 떼고 회장으로만 일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의 사무실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시베리아라는 별칭이 붙었다. 결국 그는 7월 17일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새로운 회사를 창업하기로 결정한다.
 올더스(PageMaker)가 전자 출판을 위한 페이지 메이커가 킬러 소프트웨어 역할을 하면서 판매량이 급상승한다.

1986년 애플은 회사를 그만 둔 스티브 잡스에 대해서 기밀 유출로 고소한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직원을 고용할때는 반드시 허락을 받을 것과 애플 컴퓨터와 겹치지 않는 제품을 개발해야한다는 조건에 합의하고 소송을 취하한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주식 1주만을 남기고 모두 매각한 후 넥스트(NexT)를 창업한다. 넥스트의 주요 투자자는  미국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억만장자 로스페로와 매킨토시 전용 프린터로 큰 수익을 얻은 캐논 그리고 넥스트의 본사가 위치했던 스탠포드 대학교 등이었다.

애플은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을 통하여 80개국이 넘는곳에서 애플컴퓨터를 판매하는 세계화에 성공한다.
애플은 학교 교사들을 위한 대규모 판촉전을 벌여서 큰 성공을 거둔다.
1986년  스티브 잡스는 스타워즈시리즈로 명감독의 반열에 오른 조지 루카스로부터 3D 그래픽 전문 업체 픽사(Pixar)를 천만달러에 인수한다.
       애플은 컴퓨터상에서 알파벳이 아닌 한자와 일본어를 자유롭게 입력할수 있는 칸지 토크(KanjiTalk)를 선보이면서 일본과 아시아 시장에서 폭발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87년 마이크로소프트 최초의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 윈도우(Window) 95 를 선보이다. 윈도우의 영향으로 애플의 시장 점유율은 한자리로 추락한다.

1988년 스티브 잡스의 넥스트는 최고급 사용자들을 위한 컴퓨터 넥스트큐브(NextCube)를 발매한다 넥스트 큐브는 최초로 월드와이드 웹(World Wide Web)의 서버로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시장에서의 반응은 좋지 못했다.

1989년 애플 최초의 노트북 애플 포터블을 선보이다. 6500달러라는 고가격과 가지고 다니기 힘든 무게로 인해서 상업적으로 실패하고 만다.

1991년 애플의 본격적인 노트북 브랜드 파워북이 등장하다.

1993년 매킨토시의 총 판매량이 천만개를 넘어서다.
세계최초의 PDA 뉴튼을 발매하다. 제품의 혁신성으로 많은 화제를 뿌렸으나 천달러가 넘는 금액과 짧은 시간의 배터리문제로 인기를 지속시키지 못한다. 매킨토시의 점유율 하락과 뉴튼의 판매 부진으로 인한 수익악화가 계속 되자 CEO인 존스컬리가 사임한다. 그의 후임으로 마이클 스핀들러가 CEO에 임명된다.

1994년 애플은 숙적 IBM과의 협력으로 파워매킨토시를 선보인다.
파워컴퓨팅과 유맥스등 전세계의 업체들에게 매킨토시 호환컴퓨터를 라이센스 주었다. 이제 매킨토시를 만드는 회사는 애플만이 아니게 되었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래픽 기반 운영체제 아래에서의 아이콘과 인터페이스 체계에 대해서 합의를 한다.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의 직원 530명중에서 280명을 해고하고 하드웨어 시장에서 철수하고 운영체제에 전념하기로 결정한다. 
애플에게 두번째로 큰시장인 일본에서 매킨토시 판매량이 백만대를 넘어서다.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95가 발매되고 이로 인하여 애플의 시장점유율은 한자릿수로 떨어진다.

1996년 애플은 최초로 가정용 게임기인 피핀을 발매한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피핀이야 말로 애플이 나아갈 길이라면서 극찬을 하지만  시장에서는 실패한 다.

6천 백만달러의 적자가 발표되자 CEO인 마이클 스핀들러가 사임하고 후임으로 질아멜리오가 선임된다.
애플의 CEO인질아멜리오는 새로운 운영체제 개발을 위해서 스티브 잡스의 넥스트를  4억 3천만 달러에 인수합병한다.

1997년 길 아멜리오가 사임하고 스티브 잡스 애플의 임시 CEO가 되다.
애플은 마이크로 소포트로부터 1억 5천만달러의 투자를 받는 동시에 계속해서 매킨토시로 오피스 시리즈등의 각종 응용프로그램을 5년이상 제공하기로 합의한다. 이에 대한 조건으로 애플은 매킨토시에 인터넷 브라우저 익스플로러를 기본으로 내장하기로 한다.
   인터넷으로 컴퓨터를 주문받는 애플 스토어가 열리다. 열두시간만에 50만달러의 주문을 받는다.

1998년 적자회사였던 애플은 스티브 잡스 복귀 1년만에  4700만달러의 수익을 기록하는 흑자회사로 바뀌었다.
      일체형 컴퓨터 아이맥을 선보이다. 아이맥은 1998년 한해동안 80만개를 판매하고 2003년까지 6백만개를 판매한다.

2001년 휴대형 MP3 플레이어 아이포드를 판매하다.
넥스트사의 인수 합병조건으로 시작된 유닉스 기반의 운영체제 맥오에스텐이 발매되어 시장에서 호평을 얻는다.
애플제품을 취급하는 상점이 줄어들자 이에 대한 고육지책으로 애플은 직접 경영하는 오프라인 상점인 애플스토어를 캘리포니아와 버지니아에 오픈한다.

2007년 현재 애플스토어는 172개의 직영점으로 확대되었다.

2003년 미국전체 음악 시장을 장악한 다섯개의 음반사 유니버셜, 워너 브로스,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BMG, EMI의 정식협의를 통하여 인터넷 음악 판매 사이트 아이튠스 스토어가 시작된다.

2004년 더 작아진 아이포드 미니를 선보여 그 인기를 이어가다.

2006년 아이튠스 스토어의 음악 판매량이 10 억곡을 넘어서다.
애플 최초로 인텔의 CPU를 사용한 데스크톱 컴퓨터 맥프로와 노트북 맥북을 발매하다.

2007년 아이튠스 스토어의 음악 판매량이 30억곡을 넘어서다.
       애플은 아이폰을 통해서 휴대폰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다.  아이폰은 100일만에 100만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구글은 2007년 가장 인기있었던 검색어로 아이폰을 선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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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