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우치 히로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12.10 법앞에서 정말 강한 닌텐도의 역사 (14)
  2. 2008.03.20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는 기업 닌텐도의 연혁
닌텐도 이야기2009.12.10 08:17


닌텐도의 전 사장인야마우치 히로시는 상대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협상에 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중에 일부러 자리를 비워서 마치 다른 곳에서 더 좋은 제의가 온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외국인들에게 일본어로 고함과 욕설을 퍼부으면서 상대를 제압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닌텐도의 성공을 뒤돌아 보면 그들이 훌륭한 전략에 위대한 제품을 만든 덕분이었지만 회사의 이익을 공고히 하는 장면을 보면 법적인 협상전술도 한 몫했다.

닌텐도는 돈키콩이 세계적으로 히트한 직 후 유니버셜 영화사로부터 항의 문서를 받는다. 게임 돈키콩에 등장하는 고릴라가 영화 킹콩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했기 때문에 적절한 보상금을 주지 않으면 법적으로 고소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때 나선 인물이 미국 닌텐도의 법적 고문을 맡았던 변호사 하워드 링컨이었다. 닌텐도 보다 규모가 훨씬 컸던 유니버셜 영화사는 일류 변호사들을 고용해서 수많은 소송으로 돈을 버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유니버셜 영화사측에서 소송을 걸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 법원으로 가기전에 먼저 돈으로 합의를 볼 정도였다. 나중에는 유니버셜 영화사는 이점을 적극 활용하게 된다..

돈키콩은 닌텐도가 만들었지만 나중에 판권을 구입한 아타리와 콜레코등이 가정용 게임기로 제작하였다.  그래서 유니버셜 영화사는 닌텐도뿐만 아니라 아타리와 콜레코에게도 합의금을 주지 않으면 소송을 하겠다고 경고하였다. 유니버셜 영화사와 법적소송을 하면 변호사 비용도 만만치 않고 승소한다는 확신도 없던 아타리와 콜레코는 즉시 유니버셜 영화사에게 수백만달러에 이르는 합의금을 내어준다.  그런데 아타리나 콜레코보다도 더 작은 규모였던 닌텐도는 유니버셜 영화사와 법정으로 가는 배수진을 친다. 이는 유니버셜 영화사의 태도가 미심쩍음을 발견한 닌텐도의 변호사 하워드 링컨 덕분이었다.  법적 소송으로 가기전에 무조건적으로 합의를 종용하는 유니버셜의 행동이 수상하다고 여긴 하워드 링컨은 과연 그들의 말대로 유니버셜 영화사가 킹콩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지 근본적인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유니버셜 영화사에게 킹콩의 소유권을 정말로 가지고 있다면 그걸 증명할 만한 문서를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러자 유니버셜 영화사는 오히려 화를 내면서 차일피일 시간을 미루었다. 그러자 하워드 링컨은 여러조사를 통해서 유니버셜 영화사가 킹콩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지 않고 있음을 알게되었다.

킹콩은 1933년 RKO픽쳐스에서 제작되었는데 유니버셜 영화사는 1976년 RKO픽쳐스와 합의 없이킹콩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다. 이에 RKO 픽쳐스가 고소를 하자 유니버셜 영화사측은 킹콩이 처음 영화로 제작된 이후 40년동안 새롭게 나온영화가 없기 때문에 소유권도 자동소멸했다고 주장하였고 이는 법정에서 받아들였다. 유니버셜 영화사는 자신들이 킹콩에 대한 소유권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여러 회사에게 합의금을 받는 수완을 발휘했던 것이다.  닌텐도와 유니버셜 영화사의 다툼은  법정으로까지 가는데 법원은 닌텐도의 손을 들어준다. 또한 닌텐도는 나중에 법적 소송에 들어간 비용으로 180만달러를 유니버셜 영화사로부터 받아낸다. 이 사건 이후 닌텐도는 법적인 문제를 대비하기 위해 사내에 법률 시스템을 강화한다. 그리고 사건을 담당해준  하워드 링컨은 정식으로 미국 닌텐도에 입사해서 부사장이 된다. 그는 사장인 아라카와 미노루에 이어서 명실공히 회사의 2인자가 되는데 이를 보면 확실히 닌텐도가 얼마나 법적인 문제를 중요시 여기는지 알 수가 있다.

이후 닌텐도는 법적인 문제에서는 확실히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닌텐도는 패미컴으로 발매되는 모든 게임은 무조건 자사에게 허락을 받고 일정 금액의 로열티를 내야 했다. 또한 닌텐도는 다른회사에서 무단으로 패미컴게임을 만들수 없도록 보안칩을 심어두었다. 그런데 아타리에서 게임 소프트웨어 부문이 독립한 텐젠이라는 회사에서 해킹을 통해 보안칩을 무력화 시킨다. 그후 닌텐도에게 로열티를 주지 않고 패미컴용으로 게임을 발매하겠다고 발표한다. 법정으로까지 간 이 사건은 닌텐도의 일방적인 승소로 이어진다. 이후 텐젠은 닌텐도가 독점적인 지위를 통해서 자사를 게임시장에서 몰아내고 있다고 고발한다.  미국의 경우 반 독점법의 위력은 어마어마하다. 미국에서 사상 최대 흑자기업이었던 IBM이 한순간 나락에 빠졌던 것이 바로 이 반 독점법 재판때문이었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예전 같은 압도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것도 반 독점법 재판 이후이다. 반독점법에 걸리면 회사는 당국의 각종 규제로 인해서 정상적인 기업활동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회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법안이다. 그런데 닌텐도의 경우 반독점법 재판이 싱겁게 끝난다. 법원은 닌텐도가 가격에 대한 통제권을 발휘해서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이유로 패미컴을 구매한 모든 고객에게 5달러짜리 쿠폰을 나눠줘야 한다고 통보했다. 이는 사실 닌텐도 입장에서 보면 게임의 재고관리에 도움도 되었고 고객들이 상점을 방문함으로써 다른 닌텐도의 게임들을 판매할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테트리스의 사용권이 닌텐도로 넘어오는 과정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법적으로 엄격한 집단인지를 알수 있다. 모스크바 과학 아카데미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알렉세이 파지노프는 여가 시간을 이용해서 러시아 전통 퍼즐 ‘펜토미노’를 기반으로 테트리스를 개발한다.  그는 자신의 게임을 소련과 동유럽의 컴퓨터에 일부러 퍼뜨린다.  그 후 이 게임이 서방국가에도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기시작 한다.  그러자 게임회사들이 테트리스 판권을 구입하기 위해서 혈안이 되었다. 영국의 게임회사인 안드로메다의 로버트 스테인 사장은 러시아 모스크바로 가서 알렉세이 파지노프와 소련정부로부터 판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로버트 스테인 사장은 계약이 완료되기 전에 미국의 판권을 스펙트럼 홀로바이트에 유럽은 미러 소프트에 넘긴다.  하지만 로버트 스테인 사장은 나중에 오직 컴퓨터에서 작동하는 테트리스에 대한 권리만 계약하게 된다.  하지만 이 사실은 다른 회사에 알려지지 않고 스펙트럼 홀로바이트와 미러소프트는 자신들이 컴퓨터와 가정용 게임기에서 작동하는 테트리스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한편 휴대용 게임기에 대한 사업권은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된 행크 로저스는 직접 모스크바를 방문한다. 닌텐도로부터 새로운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가 나온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판권을 확보 후 이를 닌텐도에 팔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행크 로저스는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소련정부에서 행크로저스에게 가정용 게임기에 대한 테트리스의 판권을 구입하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키보드와 모니터가 달린 컴퓨터에서만 돌아가는 테트리스에 대한 권한만을 로버트 스테인에게 넘긴 사실을 파악하게 된 행크 로저스는 즉시 일본으로 가서 닌텐도 사장인 야마우치 히로시를 만난다. 

테트리스에 대해서 설명을 하자 야마우치 히로시는 게임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미야모토 시게루를 부른다. 사장실로 들어온 미야모토 시게루는 직원들이 쉬는 시간마다 테트리스를 즐기고 있는데 가끔은 일을 해야할 업무시간에도 그게임을 즐긴다고 하였다. 이에 깊은 인상을 받은 야마우치 히로시는 휴대용 게임에 대한 테트리스 판권을 구입하였다. 그리고 행크 로저스는 미국 닌텐도 사장인 아라카와 미노루에게 가정용 게임기에 대한 판권이 남아있다고 말해준다. 그말을 들은 아라카와 미노루는 즉시 소련측 관계자와 접촉해서 테트리스 판권을 구입한다. 문제는 스펙트럼 홀로바이트와 미러소프트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은 업체들이 제각기 테트리스를 제작하고 판매중이었다는 것이다. 그중에 하나가 아타리 소프트였다.  닌텐도의 소송으로 아타리의 제품은 판매중지를 당하는데 이때 폐기된 게임팩만 무려 25만개였다.

 테트리스의 판권문제를 되살펴 보면 회사의 역량차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아타리는 닌텐도에게 독점법이나 판권문제에서 법적으로 완패했다. 그런데  아타리는 변호사의 잘못된 판단 착오로 인해서 닌텐도와의 게임기전쟁에서 패배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래 아타리의 사장이었던 놀란 부쉬넬은  가정용 게임기 VCS 2600을 개발한 후 변호사에게 다른 회사가 VCS 2600용으로 소프트웨어를 발매할 경우 아타리에 허락을 받아야 하고 거기에 추가해서 로열티를 받고 싶다고 했다. 원래 놀란 부쉬넬도 닌텐도와 같은 수익모델을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변호사는 소프트웨어회사에게 로열티를 받게 되면 독점법에 걸린다면서 절대로 그런 수익모델은 불가하다고 통보한다. 만약에 아타리가 닌텐도처럼 소프트웨어 회사의 제품을 엄격하게 품질관리하고 로열티까지 받을 수 있었다면 저질 소프트웨어의 범람으로 인해 그렇게 허망하게 몰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회사가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법적인 문제도 회사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아타리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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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
닌텐도 이야기2008.03.20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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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연혁

1989년 야마우치 후사지로는 일본 교토에 화투와 트럼프 같은 카드제조회사인 닌텐도를 창업한다.

1927년 닌텐도를 게임시장에 진출시키는 야마우치 히로시가 태어난다. 어린시절 야마우치 히로시의 아버지 키미는  집을 나가 행방불명된다.

1929년 야마우치 세키요가 야마우치 후사지로의 뒤를 이어 사장이 된다. 야마우치 세키요는 야마우치 히로시의 할아버지로 야마우치 히로시를 실질적으로 양육한다.

1933년 야마우치 세키요는 교토지역에 있던 카드회사를 모두 합병한다. 그후 카드의 원재료인 종이회사를 인수하는등 사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1945년 와세다 대학의 법학과 학생이었던 야마우치 히로시는 지역의 명문가 출신인 이나바와 결혼을 한다.

1947년 와세다 대학의 재학중 할아버지인 야마우치 세키요가 쓰러지자 학교를 휴학하고 교토로 돌아온다.

1949년 야마우치 세키요의 뒤를 이어 23살의 야마우치 히로시가 사장이 된다. 야마우치 세키요는 야마우치 히로시의 뜻에 따라서 닌텐도에 근무하던 모든 친척들을 회사에서 그만두도록 한다. 초기 젊은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에 대한 반말이 컸으나 야마우치 세키요의 적극적인 지원과 야마우치 히로시의 탁월한 경영 성과로 모든 것을 잠재우고 회사 내에 강력한 원맨체제를 구축하게 된다.

1953년 가내 수공업 수준이었던 카드생산을 기계를 통한 대량 생산체제를 구축하다.
종이가 아닌 플라스틱 재질의 카드를 선보여 일본제일의 카드회사로 거듭나다.

1956년 야마우치 히로시 최초로 미국을 방문한다. 디즈니 본사에서 캐릭터 사용권을 합의하고 당시 세계 최고의 카드회사였던 플레잉 카드사를 방문한다. 하지만 회사의 사정에 크게 실망하게 되고 카드 사업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품게 된다.

1959년 디즈니사의 캐릭터를 이용한 카드를 선보인다. 닌텐도는 텔레비전 광고등의 대규모 프로모션을 진행하여 60만개가 넘는 카드세트를 판매하는 대성공을 거둔다.

1959년 오사카와 교토의 제2 주식시장을 통하여 기업을 공개한다.

1963년 닌텐도는 경영 다각화를 위하여 택시회사, 러브호텔, 인스턴트 식품산업에 진출하지만 실패를 거듭한다.

1964년 닌텐도는 완구업에 진출하여 장난감 게임기인 래빗 코스터를 발매한다.

1967년 공장의 유지보수를 맡던 엔지니어 요코이 군페이의 아이디어인 울트라 핸드가 발매되어 100만개가 넘는 큰 인기를 얻는다.  동경 올림픽 이후의 불황으로 경영상에 어려움을 겪던 닌텐도에 큰 힘이 되어준다. 이후 야마우치 히로시는 카드회사였던 닌텐도는 역시 재미를 아는 회사라고 생각해서 장난감산업에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다.

1970년 샤프의 기술협조로 광선검을 선보이다. 광선검의 대히트를 통해서 재미와 기술의 결합의 중요함을 깨닫는다.

1970년 오사카와 교토의 제1 주식시장에 정식으로 주식을 상장한다.

1973년 닌텐도는 사업 확장의 일환으로 볼링장과 사격장등을 인수하여 사업확장에 박차를 가한다.

1972년 세계 최초의 비디오 게임기 마그나 복스발매되다.

1975년 닌텐도는 세계최초의 비디오 게임기인 마그나 복스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해서 판매한다.

1977년 마리오와 젤다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가 닌텐도에 입사하다.
닌텐도는 미츠비시와 함께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인 Color TV 6를 발매한다.

1978년 요코이 군페이는 정식으로 게임 사업부의 팀장이 되다. 얼마후 닌텐도는 아케이드 게임시장에 진출하여 오델로를 개발한다.

1980년 미국 뉴욕에 닌텐도 최초의 해외지사인 닌텐도 어메리카가 설립된다. 책임자는 야마우치 히로시의 사위인 아라카와 미노루였다.
기차안에서 회사원들이 전자계산기를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휴대용 게임기 게임 & 워치가 발매된다. 오일쇼크로 인해서 빚더미에 올랐던 닌텐도에게 큰 도움이 된다.

1981년 야마우치 히로시는 일본에서 히트한 레이더 스코프를 미국에서 판매하기로 결정한다. 게임의 성공을 장담했던 그는 2천여대의 게임기를 미국으로 보내지만 시장에서의 반응은 냉담하였고 결국 모두 재고로 남게 된다. 재고품의 롬 부분만 교체하면 다른 게임으로 바꿀 수 있다는데 착안하여 야마우치 히로시는 미야모토 시게루에게 새로운 게임 제작을 지시한다. 이때 개발한 게임이 동키콩으로 당시 아케이드 게임 역사상 최다 판매량인 6만 5천개를 기록한다.

1982년 닌텐도는 뉴욕에 있는 미국 지사를 워싱턴주에 있는 시애틀로 옮긴다.

1983년 일본에서 가정용 게임기 패미컴이 발매되어 두달만에 50만개를 넘게 판매된다. 일본에서의 성공을지켜본 야마우치 히로시는 패미컴을 미국에 진출시키기로 결정한다.
닌텐도는 세번째 해외지사로 캐나다의 밴쿠버에 지사를 연다.
게임워치의 판매를 중지한다.

1985년 패미컴이 미국의 뉴욕 일부지역에서 발매된다..

1986년 미국 전지역에서 패미컴이 199달러에 정식 발매된다. 슈퍼마리오가 출시되어 패미컴의 킬러 컨텐츠 역할을 한다.  슈퍼마리오는 현재 1억 7천만개가 넘는 판매량으로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게임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유럽에 닌텐도 지사를 마련하여 패미컴을 발매한다. 1989년에 판매대수 2백만대를 돌파하며 유럽에서 입지를 다진다.

1087년 야마우치 증권과 손 잡고 집에서 주식거래를 할 수 있는 홈 트레이드 서비스를 개시하는데 패미컴을 단말기로 사용한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장난감으로 패미컴이 뽑히다.
젤다의 전설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백만개 이상의 게임을 판 첫번째 게임이 되다.

1988년 세가에서 16비트 게임기 메가드라이브를 발매하다.

1989년 하나의 게임만 가능했던 게임 & 워치의 한계를 극복하고 팩을 바꾸면 새로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게임 보이가 출시된다.
미국에서 미키마우스를 제치고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리터로 마리오가 뽑히다.

1990년 6천만대가 넘게 팔린 패미컴의 후계기인 16비트 게임기 슈퍼패미컴이 일본에서 출시된다.
전국의 유저들이 네트워크로 같이 게임을 즐길수 있는 패미컴 통신망을 구축하다.
슈퍼패미컴은 크리스마스에가 가장 선물받고 싶은 선물에 뽑힌다.
최초로 게임기와 건강을 접목한 패미컴 휘트니스 시스템이 시작되다.

1991년 슈퍼패미컴이 미국에서 출시된다. 슈퍼패미컴은 4천 9백만대가 팔린다.
일본 최초로 사원 1인당 1억엔의 매출을 기록하다.
 한주당 배당액과 한주당 판매 가격에서 일본 최고의 업체에 등극하다.

1991년 한해 동안 500만대의 게임기를 판매하였는데 이는 일본에서 생산된 모든 VTR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수이다.
일본 경제 신문이 뽑은 일본 최고의 우량기업 1위에 뽑히다.일본의 전자 전기 업체중에서

1992년 야마우치 히로시 미국 메이저리그의 야구단인 시애틀 매리너스를 인수하다.
닌텐도는 매출액 5,627억엔에 순이익 1,660억엔을 기록하는데 이는 일본의 전자업체중 1위이며 일본기업 전체로는 도요타 자동차와 NTT에 이어서 세번째로 많은 순이익이었다.
1995년 신개념의 3D 리얼리티 게임기 버추얼 보이 77만대가 판매되고 1년만에 철수한다. 게임보이로 닌텐도의 성공을 이끌었던 요코이 군페이는 이에 대한 책임으로 회사를 그만둔다.
소니가 처음 게임계에 진출하여 32비트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을 발매한다. 세가 역시 경쟁기종으로 세가 새턴을 내놓는다.

1996년 64비트 게임기 닌텐도 64가 발매되다. 닌텐도 64는 3천 2백 9십 3만대에 이르는 판매량을 기록하지만 게임시장의 왕좌를 소니의 플레이 스테이션에게 넘겨준다. 하지만 포켓몬 시리즈가 발매되어 게임보이 시장의 급격한 성장을 이루게 된다.

1998년 게임보이 컬러가 발매되어 닌텐도의 수익이 휴대용 게임기 시장으로 급격하게 기울어진다.

2001년 게임 보이의 후속버전인 게임보이 어드밴스가 발매되다.
128비트 게임기 게임큐브가 발매되다. 2천 백 6십만대가 판매되어서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시장 점유율 3위에 오르게 된다.

74세의 야마우치 히로시가 사장자리에서 물러나고 상담역으로 자리를 바꾸다. 사장은 42세의 이와타 사토루였지만 혼자서 모든 것을 하는게 아니라 미야모토 시게루 전무등의 6인이 함께 경영권을 가지는 집단 지도체제였다.

2003년 게임시장 진출이후 닌텐도 최초로 적자를 기록하다.

2004년 야마우치 히로시가 초기 아이디어를 제공한 닌텐도 DS가 149달러에 발매된다. 천만개가 넘게 판매된 두뇌트레이닝과 같은 킬러 콘체츠 덕분에 5천5백만개가 넘게 팔렸으며 2008년 현재도 역시 매진이 계속되고 있다.

2005년 닌텐도 DS에 WIFI 기능을 통하여 온라인 네트워크 서비스를 개시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차세대 게임기 엑스박스360을 정식으로 발매한다.

2006년 성능은 기존 엑스박스급이지만 새로운 형태의 컨트롤러를 선보인 신개념 게임기 위(Wii)가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에서 발매된다. 현재 위는 일본에서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중이며 월별 판매량에서도 엑스박스 360을 능가하면서 이미 차세대 게임기 시장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상태다.
 한국에 닌텐도 지사를 설립하다.

2007년 한국에 닌텐도 DS를 발매하여 1년만에 80만대의 성공적인 판매량을 기록중이다.
 게임과 건강을 접목한 위핏이 일본에서 발매되어 초기물량 30만개가 판매되고 매진행렬이 기록중이다.
닌텐도 DS는 10월에 전세계 누적판매량이 5천만개를 돌파했다.
가정용 게임기 위는 턱없이 높은 수요로 인해서 공급부족 사태를 겪고 있는데 이로 인해서 닌텐도는 15억달러 정도 손해를 보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고 분석한다. 현재 닌텐도는 손님들에게 선불금을 받고서 예약을 받는 레인체크(Rain-Check) 제도를 시행하며 소비자들의 불만을 달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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