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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IT 삼국지2013.11.28 07:33

IT삼국지(16) 


스티브잡스의 애플부활프로젝트(1) 


기강을 세우다.






1985년 9월 16일 스티브 잡스는 워즈니악과 함께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한지 9년만에 회사를 그만둔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 2컴퓨터의 성공으로 억만장자가 되었고 미국 젊은이들의 우상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가 의욕적으로 만든 매킨토시가 당초 판매목표였던 200만대에 턱없이 부족한 25만대에 그치자 스티브 잡스의 입지가 급속히 축소된다. 이런 와중에 스티브 잡스는  당시 CEO였던 존 스컬리와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아이러니한 점은  펩시콜라 사장으로 일하던 존 스컬리를 직접 만나서 평생 설탕물이나 팔것이냐이면서 애플로 데려온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처음만해도 둘은 찰떡 궁합이었다. 존 스컬리 역시 스티브 잡스의 스승을 자처하면서 나중에 CEO자리를 물려줄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 운영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서 치열한 정치싸움이 벌어진다.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 개발과정에서 다소 무리한 운영으로 사내에 많은 적들을 만들었다. 결국 매킨토시가 실패를 하자 스티브 잡스는 더 이상 회사에서 버틸수가 없었다. 회장이라는 직책을 버리고 애플에서 나온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라는 컴퓨터 회사를 창업한다.  하지만 넥스트의 실적은 별로 좋지 못했고 스티브 잡스는 그렇게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에 비해서 애플은 새로운 전성시대를 맞이한다. 그런데 애플의 황금기를 이끈 것은 스티브 잡스의 선경지명 덕분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획기적인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를 탑재한 매킨토시에 레이저 프린터를 결합한 사무용 솔루션을 기획했다. 그런데 당시만 해도 모니터상에서 보여주는 글과 그래픽을 종이로 인쇄하는데 어려움을 겪던 시절이었다. 어도비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포스트 스크립트 기술을 사용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스티브 잡스는 240만달러를 어도비에 투자하는 한편 관련 기술을 라이선스 받기로 한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일본을 직접 방문해서 매킨토시에 맞는 최적의 프린터를 찾아낸다. 스티브 잡스가 있을 때만 해도 이러한 노력은 전혀 빛을 발하지 못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회사를 나간 이후 얼마지 지나지 않아서 매킨토시의 기능을 극대화한 페이지 메이커나 포토샵 같은 킬러 소프트웨어가 등장한다. 페이지 페이커와 포토샵의 등장 이후 매킨토시는 출판업계와 그래픽디자이너 같은 전문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게 되고 애플 역시 기사회생하게 하게 된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자 애플은 곧 바닥을 드러나게 된다. 매킨토시가 큰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스티브 잡스의 퇴출이후 개발력이 급속도로 악화됨에 따라서 새로운 히트작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데 비해서 매킨토시는 정체상태에 빠져버렸다.


 윈도우 95가 등장하면서 매킨토시만의 장점도 없어지고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MS 오피스마저 등장하지 않으니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이미 실적 부진으로 93년에 스티브 잡스를 몰아냈던 존 스컬리가 애플에서 쫓겨난 상황에서 그의 후임으로 마이클 스핀들러가 임명되지만 윈도우 95라는 유탄을 맞고서는 그 역시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그 후 애플은 내셔널 세미건덕터의 CEO인 길 아멜리오를 영입한다.  그는 카메라에 들어가는 핵심 기술인 CCD를 발명한 엔지니어출신으로 무너져가는 내셔널 세미컨덕터의 CEO가 되어 회사를 부활시켜서 그 능력을 인정받은 경영자였다.


평소 애플의 팬이었던 그는 의욕적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그는 회사에 여러 문제가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최고 문제는 몇 년째 아무런 성과가 없는 운영체제 개발이었다. 1991년부터 애플은 기존 제품을 대체할 새로운 운영체제를 개발중이었는데 5년이 넘도록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매킨토시가 빛나는 것은 뛰어난 운영체제 덕분이었다. 그런데 운영체제를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하니 회사의 명성과 경쟁력도 하루 하루 뒤떨어졌다. 애플 내부에서는 절대로 운영체제를 만들지 못할 것 이라고 생각한 길 아멜리오는 고육지책으로 외부에서 운영체제를 구입해올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회사의 자존심을 버리는 매우 위험한 선택이었지만 그만큼 사내의 개발력은 형편없었기 때문에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마침 빌 게이츠는 애플의 이런 사정을 알고는 직접 길 아멜리오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사의 운영체제인 윈도우 NT를 매킨토시에 맞게 수정을 해주겠노라고 친절하게 말한다. 하지만 길 아멜리오는 빌 게이츠가 매킨토시의 인터페이스에 욕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빌 게이츠가 윈도우 NT를 제공해주는 대신 매킨토시의 핵심적인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싶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길 아멜리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제안은 거절한다.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솔라리스를 알아보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다. 이런 와중에 애플 출신의 장루이 가세가 만든 비오에스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다.  장 루이 가세는 스티브 잡스가 존 스컬리를 회사에서 쫓아낼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린 인물이다. 장 루이 가세의 제보덕분에 중국으로 출장가려던 존 스컬리가 회사로 돌아와서 스티브 잡스의 쿠데타를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존 스컬리에 의해서 실권을 잃은 스티브 잡스가 회사를 그만두자 장 루이 가세가 매킨토시 사업부를 책임지게 된다.


 하지만 장루이 가세는 영업맨 출신으로 개발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는 몇가지 실책을 반복하다가 결국 존 스컬리와 함께 회사에서 쫓겨나게 된다. 회사를 그만둔 장루이 가세는 새로운 형태의 운영체제와 하드웨어가 결합된 컴퓨터를 개발하기 위해 비(Be)라는 회사를 창업한다.  비사의 직원 대부분은 애플에서 일했던 개발자들이었던 만큼 운영체제도 자연스럽게 매킨토시와 궁합이 맞았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길 아멜리오는 장루이 가세가 만들고 있던 비오에스(BeOS)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때만 해도 비오에스는 애플의 매킨토시에 사용될 가장 유력한 운영체제였다. 


하지만 애플이 새로운 운영체제를 구한다는 소식을 접한 넥스트 직원들의 활약덕분에 상황은 급변한다.  넥스트 직원들은 스티브 잡스 몰래 애플에게 연락을 해서 당시 넥스트가 만들고 있던 운영체제를 보여준다. 사무실을 방문한 애플 직원들은 넥스트의 운영체제에 감탄한다. 나중에야 이 소식을 알게 된 스티브 잡스는 이는 자신에게 매우 중대한 일이 될 거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그리고 전면에 나서서 직접 애플과 협상을 한다. 협상력하면 스티브 잡스 역시 뛰어난 감각을 지닌 인물이었다. 애플과 장루이 가세사이에 끼어든 스티브 잡스는 화려한 언변 실력을 뽐내면서 CEO인 길아멜리오의 마음을 빼앗아 놓는다. 결국 길 아멜리오는 스티브 잡스의 넥스트를 4억달러가 넘는 거액을 들여서 인수를 하기로 결정한다. 스티브 잡스는 12년만에 회사의 고문이 되어서 애플에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애플의 사정은 최악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길 아멜리오가 적극적으로 회생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매킨토시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6%에서 3%로 추락했고 회사는 실리콘 밸리 역사상 최악의 적자에 허덕이게 된다. 주식 역시 10년 역사상 최하가로 떨어지자 결국 길 아멜리오 역시 결국 해고를 당하고 만다. 애플 역사상 최악의 위기를 겪었던 순간 애플의 이사회는 자신들의 구세주로 스티브 잡스를 선택한다.


기강을 확립하다.


우리가 스티브 잡스를 이해할 때는 그가 애플에서 쫓겨날 때와 다시 복귀할때로 나뉘어서 생각해야할 것이다.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사실 그에 대한 대부분의 비난은 애플에서 쫓겨나기전의 스티브 잡스의 모습에 집중되어있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가장 큰 비난은 그가 자신의 딸을 버렸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 스스로가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나서 입양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자친구 크리스 앤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리사를 자신의 딸이 아니라면서 외면하였다. 이는 여전히 스티브 잡스를 비난하는 단골메뉴이지만 그 뒷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가족보다는 오직 야망을 추구하던 스티브 잡스는 1991년 로렌 파웰과 결혼한 이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그는 리사를 데려와서 직접 키웠고 리사를 명문 하버드대학교를 졸업시킬 정도로 극진히 양육했다. 가족과의 행복은 스티브 잡스를 좀 더 부드러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회의가 시작되면 백보드 앞에서 마커를 들고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혼자서 떠들기 일쑤였던 스티브 잡스는 직원들에게 자애로운 후원자라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었고 세탁기하나를 사는데도 가족과 며칠씩 상의를 하는 자상한 가장이 되었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실패를 통해서 더욱 위대한 사람으로 태어났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난 후 너무나 비참한 생각이 들어서 실리콘밸리를 아예 떠날 생각까지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실패가 곧 자신에게는 환자에게 꼭 필요한 약이 있듯이 그런 경험이 자신에게는 좋은 약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스티브 잡스는 세계최초의 3D 에니메이션인 토이스토리를 만든 픽사를 통해서 완벽하게 부활하는데 픽사를 성공 시킨 경험은 스티브 잡스에게 창조적인재들과 어떻게 일해야는 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회사의 기강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스티브 잡스 이전의 애플 직원들은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처럼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제멋대로였다. 뛰어난 경영자였던 길 아멜리오가 실패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길 아멜리오가 아무리 훌륭한 전략을 세워봐야 직원들이 이를 따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런데  길 아멜리오의 지시는 놀랍게도 직원들에 의해서 묵살되기 쉽상이었다. 때로는 길 아멜리오를 비꼬는 기사를 쓰도록 임원들이 언론사에 재보를 할 정도였다. 이렇게 회사의 지휘체계가 붕괴를 되니 회사가 잘 될 수가 없었다. 


스티브 잡스는 처음부터 길 아멜리오와는 확실히 달랐다. 애플의 창업자답게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직원들을 휘어잡았다. 스티브 잡스는 아주 사소한 것 에서부터 신경 썼다. 직원들에게 회사에 애완동물을 가져오는 것과 흡연이 금지되었는데 이를 어겨서 스티브 잡스에 의해서 해고되었다는 소문이 떠돌았기 때문에 직원들은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스티브 잡스가 직원들의 마음을 휘어잡은 것은 단순히 강압적인 방법만 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솔선수범하였다. 이것이 길 아멜리오와 스티브 잡스의 근본적인 차이중에 하나였다. 비록 길아멜리오가 애플을 사랑했다고 하지만 스티브 잡스 만큼은 아니었다. 길 아멜리오는 애플에서 월급을 받는 경영자였지만 스티브 잡스는 스스로를 월급쟁이로 생각하지 않은 애플의 창조주였다. 길 아멜리오가 애플에서 일할 때는 연봉 300만 만달러 외에도 500만 달러를 융자받을 수 있는 권한과 2,700만달러에 이르는 거액의 주식을 받았다.


 또한 자가용 비행기에 들어가는 각종 비용을 지원받았고 휘황찬란한 사무실을 썼다. 도산 위기에 있는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CEO가 이렇게 거액의 연봉을 사용하고 회사의 비용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자 언론에서는 이를 도둑경영이라면서 비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건강 보험 혜택을 위해서 형식적으로 1달러의 연봉만 을 받았고 길 아멜리오가 사용하던 호화로운 사무실을 안쓰고 회의실 옆에 작은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았다. 


스티브 잡스는 임원들과 일반 직원들의 위화감을 줄이기 위해서 평등문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인텔에서부터 시작된 평등문화는 실리콘 밸리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문화이다. IT 분야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변화가 빠른 곳이다. 그래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받아야 들여야 한다. 회사가 역동적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회사 직원 누구나 자유롭게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회사의 의사결정을 잘 살펴보면 결국은 임원의 생각에 직원들이 따라가기 마련이었다. 임원들은 엄연히 말하면 과거의 기술을 바탕으로 승진한 사람인 만큼 그들의 사고방식은 과거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어준 기술과 방식에 연연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임원들이 주요 안건들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게 되면 회사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시대에 뒤쳐질 수가 있다. 문제는 회의에서 아무리 계급장을 떼고 마음껏 말하라고 해도 직원들은 임원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인텔의 CEO를 역임했던 앤디 그로브는 회의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떳떳하게 밝히면서 여러 안건에 대해서 건설적인 대립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회사의 문화자체가 달라져야 한다고 봤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똑 같은 직원이라는 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인텔은 임원이나 일반 사원 할 것이 없이 똑 같은 사무실 공간에서 일하게 하고 식당에서나 주차공간에서도 임직원간의 차별을 없애 버렸다. 


임원과 일반사원간에 위화감을 없애고 최대한 평등한 대우를 하자 비로써 인텔에서는 권위주의와 관료주의가 점차 사라지고 회의에서도 건설적인 대립이 일어났다. 이런 인텔의 영향을 받아서 실리콘 밸리에서는 평등문화가 폭넓게 퍼져있다. 스티브 잡스는 평등문화의 기치를 내걸고 임원들의 중역실을 없애고 모든 직원들의 사무실 공간을 같게 만들었다. 사무실 배정에서 임원이 받을 수 있는 특혜라고 해봤자 창가 주변에 사무실을 얻을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주차장 공간이나 출장갈 때 비행기 좌석역시 임직원간에 차별을 없앴으며 평등주의를 바탕으로 특별 퇴사금 같은 여러 특혜를 없애고 회사 이사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에게 주식을 나누어 줬다.  


<애플, 구글, 마이크로 소프트의 천하 삼분지계를 다룬 IT 삼국지 이야기는 다음에도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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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멀티라이터